허윤진의 시선에 찍힌 진서준은 바람피우다 들킨 기분이 들어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왜 그래? 윤진아, 내 얼굴에 뭐 묻었어?”진서준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어제 우리 언니 네 방에 갔었어?”허윤진은 진서준에게 바짝 붙어 물었다. 두 사람 얼굴과 얼굴 사이의 거리가 20cm도 채 되지 않았다.진서준은 심지어 허윤진이 내뿜는 따뜻한 숨결마저 느낄 수 있었다.“당연히 안 왔어. 엄마가 여기 있잖아. 사연이 눈치 보여서 어떻게 오겠어...”진서준은 한 발짝 물러서며 허윤진과 거리를 두려 했다.하지만 허윤진은 물러서지 않고 진서준이 한발 물러서면 그녀는 한발 더 다가와 결국 진서준을 벽에 몰아넣었다.진서준의 대답을 들은 허윤진은 진서준의 얼굴에 남은 키스 자국을 핸드폰으로 비추며 따졌다.“그럼 이게 누구 키스 자국인지 설명해 줄래? 연아가 한 거라고는 하지 마. 걔는 립스틱을 아예 안 바르잖아.”허윤진의 날카로운 눈빛에 진서준은 속으로 벌벌 떨었다.이 애가 평소에는 어리버리해 보였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른지 이해할 수 없었다.진서준은 허윤진의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허사연과 다른 사람들이 아직 이가 나미의 존재를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만약 다른 여자들에게 진서준이 타고난 매혹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하인으로 삼았다는 걸 들킨다면 큰 소란이 일어날 게 뻔했다.“왜 말을 못 해? 변명거리가 생각 안 나? 어서 실토해, 그 요망한 옆집 공주가 키스 자국 주인이 맞지?”허윤진은 진서준의 옷깃을 잡아채고 또 따졌다.허윤진은 밤에 진서준에게 몰래 접근할 가능성이 가장 큰 여자는 이웃에 사는 엘리사일 거라고 추측했다.외국의 공주인 엘리사가 누구도 찾지 않고 유독 진서준을 찾는 것부터가 굉장히 수상했다.게다가 진서준 얼굴에 묻은 립스틱 색이 엘리사가 어제 바른 것과 비슷해서 허윤진은 진서준의 키스 자국이 엘리사가 남긴 것이라고 추측했다.진서준은 허윤진의 추측을 듣고 한순간 난감한 상황에
진서준은 이웃에서 일어난 소동에 관해 설명했다.굳이 이 문제를 허사연과 다른 여자들에게 숨길 필요가 없었다.바이올렛이 아직 살아있는 상황에서 진서준은 바이올렛이 허사연 일행에게 해를 끼칠까 봐 두렵기도 해서 미리 상황을 대충 설명해야 했다.“뭐라고?”허사연 일행은 생각지 못한 대답에 다들 깜짝 놀랐다.“엘리사는 용란 공주 아니에요? 해외의 혈수사가 왜 공주를 잡아가죠? 아참, 근데 혈수사는 대체 뭐예요?허사연은 연달아 질문을 쏟아냈다.진서준은 어리둥절해하는 여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그러니까 해외의 혈수사는 영화 속 흡혈귀 같은 존재라고 보면 돼?”허윤진이 혈수사를 비교적 실감 나게 비유했다.“거의 비슷하지만 혈수사는 낮에도 태양 아래서 살 수 있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혈수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진서준도 잘 알지 못했다.어제 혈수사 바이올렛과 한 번 싸워본 게 전부였다.이 사람들의 정체와 특징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알아봐야 했다.“그 공주는 구출됐어?”김연아가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용란의 공주가 대한민국에서 사고를 당하면 국제적인 문제가 생길 게 분명했다.“구출했어. 아침에 국안부에서 문자 왔는데 엘리사와 공주 경호원이 이미 경성에 돌아갔대.”아침에 이가 나미가 막 떠나고 진서준은 진서훈이 보낸 문자를 받았다.문자에는 엘리사가 안전하게 경성에 도착했으며 별다른 문제는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진서준은 오늘 류재훈의 일을 도와주고 그 후 경성에 갈 계획이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후 진서준이 외출한다고 하자 허윤진이 즉시 말했다.“나도 같이 갈게.”“난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거야.”진서준은 허윤진을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았다. 이 애는 성가실 정도로 진서준을 너무 졸졸 따라다니기 때문이었다.“무슨 소리야? 나도 너랑 같이 가서 중요한 일 도와줄 수 있잖아.”허윤진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지만 여전히 귀여워 보였다.“진서준 씨, 그냥 윤진을 데리고 가세요.”허사
병상 위.권해철은 온몸이 하얀 붕대로 감겨 있었고 얼굴만 드러나 있었다.반 달 전과 비교해 보니 권해철은 적어도 20년은 늙어 보였고 머리카락은 전부 하얗게 변했으며 주름투성이인 얼굴은 늙은 나무처럼 말라 있어 진서준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권해철은 진서준이 온 것을 보고 감정이 격해져서 입을 약간 벌리며 피로가 가득한 목소리로 겨우 말을 뱉어냈다.“진... 상경... 님...”권해철의 안타깝고 처참한 모습을 보자 진서준은 마음이 무거워졌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진서준은 즉시 앞으로 나아가 한 손으로 권해철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시간이 흐를수록 진서준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권해철의 모든 뼈는 부러져 있었고 단전은 누군가의 손에 완전히 파괴되었다.그야말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옆에 서 있던 허윤진도 권해철의 모습에 눈가가 붉어졌다.진서준이 예전에 혼자 강남에 갔을 때 권해철이 책임지고 허윤진 일행을 보호해 주었다.그래서 허윤진과 그 일행은 권해철과 나름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런데 그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권해철이 지금 심각하게 다친 걸 보니 허윤진은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누가 이랬어요?”진서준은 온몸에서 섬뜩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을 정도로 싸늘해졌다.류재훈은 이렇게 무시무시한 살기가 가득한 진서준을 난생처음 보는지라 겁에 질려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진 상경, 우리 밖에서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럽시다.”진서준은 권해철을 가볍게 두드리며 단호한 목소리로 약속했다.“제가 반드시 권 마스터님 복수를 할 겁니다. 권 마스터님을 다치게 한 그 사람은 온몸의 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겁니다. 권 마스터님 뼈는 제가 오래된 처방으로 이어줄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권해철의 뼈는 모두 부러졌지만 조희선이 예전에 부러진 것처럼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부러진 것은 아니었다.진서준은 장청결의 오래된 처방을
하지만 지금 권해철은 그 가짜 각주의 상대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온몸의 뼈가 가짜의 손에 부러진 상태였다.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그 가짜 각주의 실력은 최소한 5급 대종사 수준이 틀림없었다.진서준은 상황을 전부 전해 듣고 망설임 없이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그 가짜 각주가 권해철에게 주소 하나를 말했을 게 분명했다.그리고 그 주소는 당연히 진서준이 가짜 각주를 찾을 수 있는 주소였다.진서준은 권해철이 당한 이 고통을 그 가짜 각주의 피로 톡톡히 갚아주겠다고 속으로 결심했다.“권 마스터님, 그 사람의 위치를 알려주세요. 제가 마스터님을 위해 복수해 드릴게요.”진서준의 눈빛은 그윽했고 목소리는 확고했다.하지만 권해철은 고개를 저으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진... 상경님... 그 사람... 실력... 너무 강해서... 저는... 당신이 죽는 걸... 원치 않아요... 콜록콜록...”두 마디도 채 못 한 권해철은 격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진서준은 즉시 영기를 사용해 권해철의 내상을 완화했다.“권 마스터님, 설령 말씀하지 않으셔도 그 사람은 무조건 저를 찾아올 거예요. 다음에는 제 가족을 해칠지도 모릅니다.”진서준의 눈에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만약 그 사람이 또 찾아온다면 분명 진서준의 가족에게도 손을 댈 것이다.그런 최악의 상황이 오면 진서준은 아무리 땅을 치며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다.그래서 진서준은 지금 그 사람의 위치를 반드시 알아야 했다.그 사람한테 제대로 복수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진짜 정체도 밝혀야 했다.권해철도 진서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 사람은... 진산에 있어요...”그렇게 가짜 각주의 위치를 알게 된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세요, 권 마스터님.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내서 오래된 처방에 필요한 약재를 찾게 할게요. 한 달 안에 반드시 권 마스터님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권해철은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진서
점심 식사 시간에 진서준은 진산에 가야 한다는 결정을 허사연과 일행에게 전했다.권해철이 누군가의 손에 온몸의 뼈가 부러졌다는 소식에 허사연과 김연아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어쩔 바를 몰랐다.하지만 두 사람은 권해철의 상처보다는 진서준의 안전이 더 걱정됐다.“이게 혹시 그 가짜가 일부러 만든 함정일 가능성은 없어요?”허사연이 우려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함정이라 해도 난 무조건 가야 해.”진서준은 지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이 가짜는 지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에 띄는 곳에 있는 진서준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주동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가짜의 다음 목표는 허사연 일행일 가능성이 높았다.진서준은 허사연이 두 번째 권해철이 되는 걸 절대 원하지 않았다.“서준아, 조심히 잘 다녀와.”조희선은 자기가 진서준의 결정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진서준에게 안전을 잘 챙기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걱정 마세요, 엄마. 알아서 꼭 조심할게요.”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럼 언제 출발해?”허사연이 옆에서 물었다.“오늘 오후 고속열차를 타고 가면 자정쯤 진안시에 도착할 거야.”직행 비행기가 없어서 진서준은 부득불 고속열차를 타고 가야 했다.하지만 고속열차 속도도 그렇게 늦진 않아서 반나절이면 진안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진서준은 도착한 후 먼저 진안시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진산에 가려고 계획했다.식사가 끝난 후, 허사연은 즉시 위층에 올라가 진서준의 옷을 챙겼다.진서준이 방에 돌아갔을 때, 허사연은 이미 이번 여행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작은 여행 가방에 담아 놓은 상태였다.“세탁할 속옷과 양말이 여기 들어 있어요. 아침 일찍 진산에 가니까 온도가 산 아래보다 유독 낮을 거예요. 두꺼운 옷도 챙겨놨으니까 꼭 알아서 챙겨입어요. 그리고 진안시에 도착하면 꼭 전화해서 안부 전해줘요, 알겠죠?”허사연이 돌아서서 진서준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며 부탁했다.허사연의 설명을 듣자 진서준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날
진서준의 손이 아래쪽으로 뻗어가는 걸 느끼자 허사연은 허벅지를 급히 조였다.진서준은 잠시 멈칫하다가 어쩔 수 없이 손을 뺐다.“무슨 뜻인지 알겠어...”“근데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허사연은 말을 마치고 화끈하게 달아오른 얼굴이 거의 피가 나올 것처럼 빨개졌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오후에 진서준을 배웅할 때 김연아와 허윤진 두 사람은 말없이 침묵만 지켰다.이틀도 안 되는 시간만 같이 보내고 또 헤어져야 하니까 이 상황이 참 어이없고 답답했다.“그렇게 우울한 얼굴 하지 마, 난 볼일 다 보고 즉시 경성에 갈 거야. 너희는 먼저 경성에 가서 서라를 만나. 나중에 우리 경성에서 다시 만나자.”진서준이 두 사람에게 웃으며 말했다.“응... 그럼 빨리 와야 해, 진안에 가서 바람피우면 절대 안 돼.”허윤진이 주먹을 쥐고 진서준을 위협했다.“바람피우기만 해 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지한 일을 해결하러 가는 거야. 내가 뭐 여자 찾으러 가는 줄 알아?”점심을 먹은 후, 허사연은 관계를 가지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진서준을 여러 번 배출하게 했다.고로 진서준은 이미 현자 타임에 접어들어 지금 이가 나미가 진서준 앞에 나타나도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을 유지할 자신이 있었다.“네가 볼일 본다고 해놓고 심심풀이로 여자 하나쯤 찾을지 누가 알겠어...”허윤진 눈을 부라리며 투덜댔다.진서준은 그 말에 헛기침하며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고속열차에 타자마자 진서준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늦은 밤이 되어서야 고속열차는 진안시에 도착했다.진서준은 오기 전 이미 호텔을 예약해 두었고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허사연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했다.그런 다음 진서준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택시를 잡아 진산으로 출발했다.“이봐요 청년, 무슨 일을 하시는 거예요? 보통 사람이라면 다 출근하는 화요일에 이렇게 여행할 여유가 있다니 참 신기하네요.”택시 기사
진산은 대한민국 오악 중에서도 으뜸인 천하제일 산으로 불렸다!총면적이 20,000헥타르에 달할 정도로 매우 크며 주봉인 옥황정은 해발이 1,500미터가 되었기에 다 둘러보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렸다.그러나 진서준에게는 편하게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그는 도착하자마자 가짜 각주가 옥황정에 머물러 있다고 확신하고는 얼른 출발 준비를 했다.진서준이 일찍 온 덕에 관광지에는 사람이 없었고 정상까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평온한 눈빛으로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옥황정을 바라보던 진서준은 문득 가짜 각주로부터 유용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곧이어 그는 등산을 시작했고, 한걸음에 5미터씩 앞으로 나간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중턱에 도착할 수 있었다.그러나 정상까지 300미터도 남지 않았을 무렵, 그림자 하나가 그의 앞을 가로막더니 관헌 제복을 입은 한 중년 남자가 위풍당당하게 말했다.“거기 멈춰! 옥황정은 현재 관광 금지니까 다시 돌아가!”사실 며칠 동안 옥황정을 등반하려던 관광객들은 그에게 저지당해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고 관광지 측에 아무리 민원을 제기해도 당분간 관광 금지라서 협조해달라는 답변만 했다.강압적으로 올라가려던 사람들은 그 중년 남자한테 한바탕 두들겨 맞기도 했다.진서준은 그 중년 남자의 몸속에 진기가 출렁인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술법 영선이 문 앞을 지킨다고? 꽤 능력이 있는 놈인가 보네!’진서준이 무심하게 허리에 차고 있던 천기각 옥패를 꺼내서 보여주자, 그 중년 남자는 순식간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호통을 쳤다.“각주님의 옥패를 왜 네가 가지고 있어? 너 누구야?”그러나 진서준은 상대방의 반응에 가짜 각주가 옥황정에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면서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천기각의 주인이거든.”중년 남자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곧이어 실소를 터뜨렸다.“젊은이, 농담이 너무 지나치네! 천기각이 뭔지 알기는 해?”사실 진서준은 창욱 어르신한테서 천기각
매의 발톱 같은 중년 남자의 손이 진서준의 어깨를 향해 다가왔다.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바위를 부술 정도의 엄청난 힘을 소유한 그의 손아귀에 어깨가 부서졌겠지만, 진서준은 그의 공격을 무시하고 정상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중년 남자는 곧장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곧이어 진서준의 앞을 가로막고 어깨를 움켜쥐려고 순간, 눈앞에는 잔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중년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뒤돌아보니 진서준은 어느새 10여 미터 앞에 있었다.“거기 서!”남자는 곧장 진서준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체내의 진기를 모으면서 쏜살같이 진서준을 향해 다가갔다.진서준도 질세라 중년 남자를 힐끗 쳐다보고는 손바닥으로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평범하기 그지없는 손바닥이었지만, 중년 남자는 마치 진산이 짓누르는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 남자의 몸에 있던 진기가 유리처럼 와장창 깨져버리더니 공중을 거꾸로 날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돌벽에 심하게 부딪히면서 먼지를 일으켰다.한편, 진서준은 아무 일 없었던 듯 뒷짐을 지고 태연하게 산 정상을 향해 걸어갔다!중년 남자는 입가에 피가 흐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놀란 눈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태성민, 4급 영선경 절정.지의방 제73위 고수!이 정도의 실력이면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태성민은 다른 가문의 사람들에게도 극진한 대접을 받던 자기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패배당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말도 안 돼!’태성민은 문득 중부 남주성의 용존이 나타났다는 무도계의 소문이 떠올랐다.작년 연말 봉호전에서 6연승을 거두며 당당히 용존의 칭호를 얻은 사람의 나이도 20대 초반이었다!그는 곧장 눈살을 약간 찌푸리더니 놀라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설마 당신이 정안부의 그 용존이란 말인가?”진서준은 산 정상을 향해 계속 나아가면서 간단하게 답했다.“그래.”태성민은 진서준이 인정하자, 쓴웃음을 지
묘왕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체내의 선천강기를 돌려 방어 태세를 취했다.동시에 묘왕은 자기 몸에 숨겨둔 독충들을 풀어 진서준의 얼굴로 날려 보냈다.이 독충들이 가진 독은 전부 강력한 부식성을 지니고 있어 육급 이하의 선천 대종사 강기조차 이 독충들의 독성을 막아낼 수 없었다.독충과 진서준 사이의 거리가 반 미터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진서준의 눈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곧이어 그 불꽃이 하늘로 솟구치며 독충 무리를 덮쳤다.치지직...순간 고기를 구울 때 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독충들은 진서준이 내보낸 영화에 의해 몰살당했다.순식간에 가루로 변한 독충들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빗물에 씻겨 사라졌다.이를 본 묘왕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그러나 묘왕은 지금 독충을 걱정할 여유조차 없었다.진서준의 양주먹이 이미 묘왕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오고 있기 때문이었다.묘왕 역시 자기 양 주먹을 내밀어 진서준의 주먹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펑!두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히며 산이 무너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발밑의 지면이 지진이라도 난 듯 사방으로 갈라져 퍼져 나갔다.무시무시한 충격파에 머리 위로 떨어지던 빗물조차 접근하지 못했다.이를 꽉 악물고 있는 묘왕의 얼굴이 철판처럼 굳어졌다.묘왕은 산을 뒤엎는 듯한 공포스러운 힘이 주먹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지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게다가 묘왕의 주먹 끝 강기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반면, 진서준의 상태도 묘왕보다 크게 나아 보이지 않았다.백 년 가까이 살아온 묘왕의 내공과 실력은 역시나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우르릉!하늘에서 갑작스러운 천둥소리가 울렸다.번개의 섬광이 칠흑 같은 밤하늘을 찢어 잠깐의 백광을 드러냈다.곧이어 하늘에서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가 들려왔다.묘왕과 정면으로 겨루고 있던 진서준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헬리콥터 두 대가 빠르게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묘왕과 속
비는 점점 거세졌고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빗물로 흠뻑 젖은 바닥에 쓰러진 유문기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단 한 방에 자기가 완전히 폐인이 되다니, 이 녀석의 실력이 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진서준은 유문기를 멍청이를 보듯이 바라보며 말했다.“너 같은 비겁한 수작질이나 하는 녀석이 감히 나랑 정면으로 겨룬다고? 널 쉽게 죽이고 싶지 않아서 봐주는 거야. 그게 아니었으면 너도 방금 그 탱크처럼 새까만 시체로 변했을 거야.”탱크조차 진서준의 일격을 당해내지 못했는데 하물며 겨우 종사 경지에 불과한 유문기가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지금 진서준에게 유문기를 죽이는 건 손바닥 뒤집는 일과도 같았다.하지만 그냥 죽이는 건 유문기에게 너무 가벼운 벌을 내리는 것과 같았다.진서준은 유문기의 뼈를 하나하나 산산이 부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사람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두고 왜 굳이 짐승이 되려고 해?”짐승이 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너... 너 대체 누구야?”유문기의 눈알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같은 20대 청년인데 왜 이 녀석의 실력은 자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있는 거지?“너희 집 큰 짐승이 안 알려줬어?”진서준이 유기철을 가리켰다.“누굴 짐승이라는 거야? 너야말로 짐승이야!”유기철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분노에 차 욕을 내뱉었다.“유기명 삼촌이 네 목숨을 살려줬을 때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사람을 시켜 유정을 독살하려고 시도해? 네가 짐승이 아니면 뭔데? 짐승조차도 은혜를 알고 갚을 줄 알아. 넌 인간의 뇌를 가진 고등 동물인 주제에 자각도 없는 거야?”진서준은 유기철을 바라보며 섬뜩한 살기를 내뿜었다.“그건 그 여자가 죽어 마땅했기 때문이야!”유기철은 일말의 자책도 없이 계속 헛소리를 지껄였다.“다들 입 다물어!”묘왕이 분노의 외침을 터뜨리더니 곧이어 원한에 가득 찬 시선으로 진서준을 노려봤다.“이봐, 오늘 네가 무슨 이
“스승님, 지금 어떡해야 하죠?”유문기가 긴장한 기색으로 묻자 묘왕은 곧 평정심을 되찾으며 말했다.“당황하지 마. 우리에게는 아직 숨겨둔 비장의 카드가 있어. 오늘 저 녀석이 설령 지선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여기서 끝장날 거야. 게다가 방금 그 일격으로 꽤 체력을 소모했을 게 분명해. 오늘은 묘강의 모든 주민을 동원해서라도 저놈을 기어이 지치게 만들어야 해.”묘강에는 무려 3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있었고 그중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남자만 10만 명이 넘었다.이런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상대하려면 지선도 버거울 게 뻔했다.죽이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쳐서 움직일 수 없게 할 수는 있었다.이게 바로 묘왕이 태연하게 있을 수 있는 이유였다.그러나 진서준은 묘왕 일행에게 비장의 카드를 꺼낼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방금 참선검을 휘두르며 진서준은 곁눈질로 유기철을 발견했다.진서준이 발끝에 힘을 주고 허공에 뛰어오르자 그의 모습이 귀신처럼 제자리에서 사라졌다.사람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진서준은 이미 묘왕 일행 앞에 나타나 있었다.“너였구나!”유기철은 진서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확 변했다.“저 녀석을 알아?”묘왕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묘왕님, 이 사람이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진서준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녀석이 예전에 우리의 계획을 망쳤습니다.”유기철이 서둘러 진서준을 소개했다.눈앞의 청년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묘왕은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네놈이 내 오랜 계획을 그렇게 망쳐놓고 감히 혼자서 우리 묘강에 쳐들어와? 우리 묘강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묘왕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진서준을 노려보며 버럭 화를 냈다.하지만 진서준은 묘왕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대신 유기철을 차갑게 바라보며 은은한 살기를 드러냈다.유기철은 그 시선에 수만 마리 개미가 자기 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유기철, 자기 친조카에게 독을 퍼뜨리는 네놈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짐승이야.”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탱크는 현대 전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 중 하나였고 말 그대로 전쟁 기계라 불릴 만했다.완전히 무장한 병사들이 대전차 무기가 없이 탱크를 마주하면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무도를 익힌 무인이라 해도 이런 존재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지금의 올기는 체내의 영기가 거의 소진된 상태였다.묘강에 들어왔을 때 탱크를 만났다면 한 번 싸워볼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모든 희망을 진서준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진서준은 아래를 쓱 훑어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이제 넌 그만 물러나.”“알겠습니다!”올기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곧바로 몸을 줄여 진서준의 어깨 위로 돌아왔다.진서준은 몸을 천천히 놀려 기러기처럼 부드럽게 지면에 내려왔다.지면에 있는 사람들이 진서준의 움직임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세상에, 저 용 머리 위에 사람이 서 있었어!”“어머나, 그럼 아까 그 괴수가 주인이 있었단 말이야? 그럼 그 주인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사람일까?”“아무리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쩌겠어? 우리에겐 탱크가 있잖아. 게다가 전투기들도 곧 도착할 거라고.”놀라 두려워하는 사람도, 오만하게 웃는 사람도 있었다.한편, 묘왕과 유문기 두 사람은 여전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보아하니 저 녀석이 바로 그 짐승의 주인인가 보구나.”묘왕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저놈을 당장 죽여! 묘강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줘!”진서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손바닥을 살짝 떨었다.그러자 참선검이 허공에 떠올라 진서준의 손으로 들어왔다.낯선 대한민국 청년을 보자 탱크 안에 있던 병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그들을 전멸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자가 겨우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라고?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노인이라면 차라리 납득이라도 했을 것이다.“포격! 포격해!”지휘관의 목소리가 작전 통신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펑! 펑! 펑!포탄 세 발이 진서준이 서 있는 방향으로 동시에 발사되었다.포탄이 터지며 대지가 흔들리고 귀청이 찢어질 듯한 폭음이
진서준과 올기는 막강한 실력으로 묘강 병사들을 처참하게 밀어붙였다.조금이라도 늦게 움직인다면 팔이 잘리거나 다리가 떨어지기 일쑤,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게다가 묘강 병사들은 급하게 전투를 시작한 터라, 위력이 강력한 무기들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했다.“뭐라고요? 사람 한 명에 용 한 마리라고요?”유문기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유문기만 경악한 게 아니었다. 묘왕 역시 충격을 받고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너 지금 뭐라는 거야? 세상에 용이 있을 리 없잖아!”묘왕은 지휘관의 목을 붙잡고 거칠게 흔들며 받아들이지 못했다.지휘관은 머리가 어지러워졌지만 여전히 단호하게 말했다.“묘왕님, 제가 거짓말하는 게 아닙니다. 믿기지 않으시면 직접 나가서 확인하시면 됩니다.”묘왕은 지휘관을 놓아주고 창백한 표정을 유지한 채 밖으로 나갔다.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묘왕의 몸에는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묘왕님.”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유기철은 묘왕 일행이 나오는 걸 보고 서둘러 다가갔다.하지만 지금 묘왕은 유기철과 대화할 여유가 없었다.묘왕은 쳐들어온 사람이 배논국 군대 사람이 맞는지 급히 확인해야 했다.만약 배논국 사람이 아니라면 묘왕은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묘왕 일행은 차를 타고 폭발 소리가 끊이지 않는 방향으로 달려갔다.5분쯤 지나 목적지에 도착해 묘왕과 유문기가 차에서 내리자 그들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턱 막혔다.지휘관의 말대로 현장에는 정말 용이 있었다.올기의 입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있었다.번개가 내리칠 때마다 묘강 군대 병사들은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총알이 올기에게 닿아도 올기의 가려운 데를 긁는 꼴이었다.“묘왕님, 제가 거짓말한 게 아니죠? 정말 용이 존재합니다.”지휘관은 절망과 공포가 가득한 눈빛으로 하늘의 거대한 용을 바라봤다.“용이면 뭐 어쩔 건데? 당장 탱크와 비행기를 끌고 와!”묘왕은 버럭 화내며 소리쳤다.자기 예측이 틀리자 묘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게다가 이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유기철이 문을 열고 나가 앞에서 불길이 치솟는 모습을 보자 마음속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혹시 배논국 정부가 갑자기 쳐들어온 건가?”군대 외에 유기철은 묘강을 이 정도로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존재가 누구일지 상상할 수 없었다.혹시 누군가가 단독으로 일으킨 소동인가?그럴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았다.지선이 직접 나타나야만 이 정도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소란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문기야! 저기 저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유기철은 아들을 보자 급히 달려가 물었다.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신경 쓸 틈도 없이 급하게 움직이며 유기철을 밀어내며 말했다.“저도 몰라요. 마침 이 소동을 스승님께 알려드리려고 했어요.”유문기의 태도에 유기철은 마음속으로 상처를 받았다.이래 봬도 자기는 유문기의 친아버지인데 유문기가 어떻게 이런 태도로 자기를 대할 수 있는 거지?유문기는 속도를 내서 한달음에 전당 앞에 도착했다.이번에는 예의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까 유문기가 있는 곳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앞에서 들리는 소란이 너무 요란했기 때문이었다.“스승님. 큰일 났어요!”유문기는 바로 문을 밀고 전당 안으로 들어갔다.“침착해, 나도 그 소동은 들었어.”묘왕이 차가운 표정으로 태연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유문기도 한결 안심할 수 있었다.그와 동시에 유문기는 묘왕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몇 킬로미터나 떨어진 전당에서 묘왕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었다.“스승님, 누가 우리 묘강을 기습한 겁니까?”유문기가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배논국의 그 몇 놈 외에 누가 더 있겠어?”묘왕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묘강의 세력이 점점 더 커져서 이제 배논국과 거의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규모가 되었어. 그래서 그놈들이 우리를 기습하는 거야.”묘왕의 말에 유문기는 깊이 공감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스승님 말씀이 맞아요. 배논국 부대 외에는 이렇게 큰 소동을 일으킬
“검 소리인가? 맞는 것 같은데?”“야, 누구 하나 나가 확인해.”결국, 방 안의 병사가 일어서기도 전에 고탑 전체가 갑자기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쿵!귀를 찢는 듯한 소음이 100미터 안팎을 뒤흔들었다.“무슨 일이야? 나가서 확인해 봐.”병사들은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던지고 즉시 밖으로 뛰쳐나갔다.병사들이 아래를 내려다보자 믿기지 않는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5미터가 넘는 철문이 이 순간, 쑥대밭처럼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고 철문 앞에는 거대한 대한민국 용 한 마리가 서 있었다.그리고 그 용 위에는 한 사람이 검을 들고 뒷짐을 낀 채 있었다.이 장면을 목격한 병사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멍하니 서 있었다.“대박이야, 용이 진짜 존재해!”배논국은 대한민국과 매우 가까운 나라라 대한민국의 거대한 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진짜 용을 보는 건 난생처음이었다.“빨리 경보를 울려! 침입자야, 침입자!”누군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경보를 울리려고 했다.하지만 병사들이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청색의 검광이 바닥에서 하늘로 솟구쳤다.우르르!수십억이 넘는 고탑이 순식간에 무너졌다.진서준은 고탑을 바라보지도 않고 발밑의 올기에게 담담하게 지시했다.“앞으로 가.”올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흔들며 앞으로 나아갔다.본래 잠을 자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창문을 열고 이 장면을 바라보았고 진짜 용이 나타난 걸 보고 모두가 멍해져 할 말을 잃었다.“어머나! 이... 이게 뭐야? 날아다니는 뱀인가?”“눈멀었어? 저건 용이야! 그렇게 상식이 없어?”“넌 상식이 있어 여기서 살아? 입 닥쳐!”올기는 아래의 사람들을 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용존님, 이 사람들은 안 죽입니까?”“무고한 평민을 죽인다면 내가 그 개자식들과 다를 게 뭐야?”진서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때 경보가 울렸고 완전하게 무장되지 않은 병사들이 나와서 진서준의 앞길을 막으려 했다.하지만 다들이 그 거대한 용을 보고는 모두 마른침을
유문기는 노인이 점점 더 격앙된 어조로 말하는 걸 보자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제자 유문기는 스승님의 위대한 사업을 위해 몸이 부서지고 뼈가 으스러져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됐어. 시간도 늦었으니 얼른 돌아가서 쉬어.”“네!”유문기는 조심스럽게 전당에서 물러났다.밖으로 나온 순간, 유문기의 머리 위로 먹구름이 가득 드리웠다.잠시 후, 부슬부슬 내리던 빗방울이 점차 굵어지기 시작했고 비는 점점 더 거세졌다.묘강 전역에 빗소리 외에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이 시각, 대한민국 국경 지역.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대한민국 국경 안쪽에서 국경 밖으로 날아갔다.경비병이 레이더에서 이를 포착하고 즉시 보고했다.레이더는 이 검은 그림자를 포착해냈지만 밤이 너무 어두웠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자욱해 희미하게 보이는 검은 그림자의 윤곽 외에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이상하네, 저거 우리 신화에 나오는 용이랑 좀 닮지 않았어?”누군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댔다.“이봐, 책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니야? 세상에 어떻게 용이 있을 수 있어?”“그럼 저건 뭐라고 설명할 건데? 이렇게 크고 길면서 하늘을 날아다니잖아.”“아마 전신전 병사들이 또 임무 수행하러 나간 거겠지. 이제 익숙해져야 해.”대다수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전신전 병사들은 임무 수행 시 보안을 위해 경비병들에게 정보를 따로 제공하지 않았다.그만큼 극비 사항이기 때문이었다.이 검은 그림자를 포착한 건 대한민국 국경 경비병뿐만이 아니라 배논국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배논국 쪽은 더욱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심지어 대다수 사람은 대형 새일 거라고 추측했을 뿐이다.동남아 지역은 각종 이수가 빈번하게 나타나는 곳이다.길이가 20미터나 되는 거대한 뱀이 나타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기에 길이가 10미터나 되는 새를 포착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이 이수들이 자기를 공격하지 않는 한 굳이 주동적으로 건드릴 필요도 없었다.이 검은 그림
“우리는 그저 가만히 앉아 어부지리를 누리면 돼.”유기철은 호탕하게 웃었다.이 순간을 위해 유기철은 오래도록 기다려왔고 이제 곧 그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다.“아버지, 이제 돌아가면 우리 스승님 일을 계속 도와야 해요.”유문기가 갑자기 다른 화제를 꺼내자 유기철은 표정이 어두워졌다.“그건 당연하지. 근데 문기야, 제발 스승님 얘기 좀 그만해. 너와 내가 한 가족이야.”유문기의 태도에 유기철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자기야말로 유문기의 친아버지인데 대화할 때마다 유문기는 자꾸 스승 얘기만 꺼내니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 불편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묘강 묘주가 자기 불평을 들으면 큰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아버지는 물론 제 아버지입니다. 근데 그분도 제 스승님이잖아요.”유문기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우리 스승님이 없었으면 지금 저도 이 자리에 없을 거였고 아버지도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유기철은 불편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다들 딸을 키우면 결국 남 좋은 장사만 될 거라고 하지만 유기철 아들은 더 심한 것 같았다.“그만하죠. 일찍 쉬세요. 전 스승님을 찾으러 가겠습니다.”유문기는 말을 마치고 일어나 방을 떠났다.유문기가 나가자 유기철는 마음속에 쌓인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그깟 기술을 몇 개 가르친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해? 아들이 스승이 아니라 신선님을 모시는 것 같잖아. 이제 내가 대한민국에 다시 돌아가면 더 이상 네놈 말을 듣는지 두고 봐.”유기철은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통제당하는 인형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유기철은 유씨 가문을 완전히 장악해 서남 지역의 모든 명문대가의 위에 서서 호령을 내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유문기는 방을 떠난 후 큰길을 따라 규모가 거대한 궁전에 도달했다.그는 먼저 세 번 무릎을 꿇고 큰 예를 올린 뒤 안으로 들어갔다.지금 유문기의 얼굴엔 경건한 표정이 가득했고 궁전 안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하늘의 신을 만나는 것처럼 대단한 일이라고 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