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선생님, 공주님을 반드시 구해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결과가 올 겁니다.”진서준은 그 말에 콧방귀를 끼며 물었다.“감당할 수 없는 결과라고? 그게 뭔데? 설마 우리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는 건가?”공주를 납치한 자가 누구인지는 진서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하지만 진서준은 그자가 대한민국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했다.엘리사는 줄곧 용란에서 살아왔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대중 앞에 나온 적도 없었다.엘리사의 정체를 아는 이는 분명 용란 본국 사람일 것이다.게다가 엘리사와 해리스가 몰래 금운에 왔으니 두 사람의 정체를 아는 자는 더더욱 적었을 터였다.해리스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맞습니다. 서양의 혈수사들이 공주님을 납치했습니다. 혈수사들이 공주님을 잡아간 이유는 바로 우리 국왕을 협박해 황실 친위대를 용멸 계획에 참여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귀국의 무인들이 이번 대한민국 무도계 공격에 용란의 공식 인력이 관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때는 상황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진서준의 얼굴이 굳어졌다.이런 사실은 진서준도 금시초문이었다.만약 해리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엘리사 공주를 구하는 건 필수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잠깐 기다려. 내가 전화를 좀 걸어 확인해 볼 테니.”진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들어 진서훈에 전화를 걸었다.이런 고위급 기밀은 진서훈 같은 호국장군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전화가 몇 번 울리자 진서훈이 전화를 받으며 농담 섞인 목소리로 꾸짖었다.“이 녀석이 자기는 안 자고 왜 이 노인을 괴롭혀? 조금만 날 배려해 주면 안 되겠냐?”진서준은 헛기침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할아버지, 중요한 일이 있어서 여쭤보려고 전화했어요.”“그래, 말해봐.”“이번 용멸 계획에 용란의 황실 친위대가 참여하지 않은 게 맞나요?”진서훈은 그 말에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진서준이 이 질문을 한다는 건, 분명 용란 사람들과 접촉했음을 의미했다.게다가 이번에 당당히 대한민국에 들
슉!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그 그림자는 한적한 외곽의 무인 별장 앞에서 멈춰 섰다.붉게 타오르는 눈동자 속에 기묘한 광택이 번졌다. 지엔은 기절한 엘리사를 어깨에 메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문을 밀고 들어서자 지엔은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공주님, 이제 우리 둘만 남았으니 공주님의 유혹적인 피를 실컷 맛보도록 하지.”지엔은 엘리사를 거실의 소파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엘리사 특유의 체질 때문에 그녀의 몸에서는 혈수사들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그 향기는 혈수사들에게는 마치 마약과도 같아, 결코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강렬한 유혹이었다.지엔의 두목은 엘리사에게 상처를 입히지 말라고 지시했을 뿐 아니라 엘리사의 피를 빨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었다.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지엔과 엘리사밖에 없었다.지엔은 이 기회를 틈타 몰래 조금만 마신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혈수사가 피를 빨 때는 상대방이 그다지 큰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다만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정도로 이빨이 피부를 무는 순간만 조금 따끔할 뿐이다.창문을 통해 들어온 은은한 달빛이 엘리사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달빛에 은빛 망토를 두른 듯한 엘리사의 모습은 책 속에서 튀어나온 공주처럼 아름다웠다.지엔은 엘리사를 바라보며 억누를 수 없는 욕망에 휩싸여 굶주린 늑대처럼 엘리사에게 덮쳤다.하지만 엘리사는 여전히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지엔은 그녀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다.지엔은 엘리사의 몸에는 관심이 없었다.그저 엘리사의 피를 마시는 것만이 지엔의 목적이었다.엘리사의 하얀 목덜미가 고스란히 드러나자 지엔은 입을 벌려 천천히 다가갔다.쾅!이 긴급한 순간, 누군가가 문을 발로 차며 열어젖혔다.문이 부서지는 소리에 지엔은 깜짝 놀란 박쥐처럼 재빨리 엘리사에게서 떨어져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들이닥친 이를 쏘아보았다.잘록한 허리에 풍만한 곡선을 자랑하고 은빛 물결 같은 머리카락
지엔은 바이올렛을 바라보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엔의 눈에는 오직 공포만이 가득했고 감히 불만 하나 내비칠 수 없었다.자기와 바이올렛 사이의 실력 차이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이번은 그냥 경고야.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있으면 네 목을 비틀어버릴 거야.”바이올렛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지엔은 그 말에 조금의 의심도 할 수 없었다.바이올렛은 절대 농담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지엔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됐어, 넌 여기서 지키고 있어. 난 위층에서 잠깐 쉬다 오마.”바이올렛이 기지개를 켜자 그녀의 검은 가죽옷 아래로 감춰진 섹시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하지만 지엔은 감히 그 모습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바이올렛이 그의 눈알을 뽑아버릴까 봐 두렵기 때문이었다.지엔은 결코 호들갑을 떨며 과장되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과거, 조직에 갓 들어온 한 청년 혈수사가 바이올렛의 성격을 모르고 그녀를 꼬시려고 했다가 바이올렛의 매혹적인 미소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그 사건 이후, 바이올렛은 피에 물든 장미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바이올렛은 위층으로 올라간 뒤, 잠자리에 들지 않고 검은 가죽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잠시 후, 욕실에서는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욕조에 물이 가득 차자 바이올렛은 그 속으로 몸을 담갔다.투명했던 욕조의 물은 금세 피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바이올렛은 눈을 살며시 감고 온몸의 모공을 열어 혈욕의 쾌감을 만끽했다.아래층에서 지엔은 엘리사에게 더는 감히 손을 뻗지 못하고 있었다.엘리사의 피가 아무리 달콤한 향기를 풍긴다고 해도 목숨과 맞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그 시각, 진서준은 엘리사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손에 쥐고 추적술을 사용해 이내 그녀의 위치를 알아냈다.“이 자식은 이미 필요 없어. 그냥 처리해.”진서준이 자리를 떠나기 전, 브래드를 가리키며 말했다.브래드는 그 말을 듣자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외쳤다.“날 죽이지 마. 공주의 위치를 아는 건 나뿐이야.”해리스도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엔은 이미 엘리사의 곁에 도착해 엘리사를 안고 도망칠 준비를 마쳤다.2층에 있던 바이올렛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문가에 서 있는 진서준을 바라봤다. 바이올렛의 눈동자에는 차가운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바이올렛은 눈앞에 있는 이 대한민국 사람이 자기 실력과도 비슷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실력자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대한민국 무도 종사인가?”바이올렛은 천천히 입을 열어 유창한 대한민국어로 말하며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진서준은 말없이 엘리사와 지엔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엘리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엘리사가 다친 흔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진서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때, 해리스도 다가와 이를 악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너 계획이 있다면서?”조금 전까지만 해도 해리스는 진서준이 뭔가 치밀한 계획이라도 세운 줄 알았다.그런데 해리스가 물어볼 틈도 없이 진서준은 이미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이다.그와 동시에 해리스도 2층에서 내려오는 바이올렛의 모습을 발견했다.바이올렛의 우아한 실루엣을 본 순간, 해리스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차가운 숨을 삼켰다.“저... 저 여자가 왜 여기 있어?”진서준은 해리스의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을 보자 몹시 궁금해졌다.“저 여자가 누구야?”“바이올렛... 당신들 대한민국 국안부에서 지의방 랭킹 26위로 지정한 혈수사입니다.”눈앞에 서 있는 이 성숙한 매력을 풍기는 여자가 지의방 랭킹 26위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진서준도 적잖이 놀랐다.바이올렛의 몸매와 외모만 봐서는 누구라도 그녀가 30대 초반의 매혹적인 여인으로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지금 해리스의 설명에 따르면 바이올렛은 지의방 랭킹 26위를 차지하고 있는 혈수사였다. 이는 바이올렛의 실제 나이와 외모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다.“저 여자가 몇 살인데?”진서준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지의방 랭킹 26위라면 그 실력은 대략 칠급 대종사에 해당할 것이고 대다수가 70살을 넘기지 않는 인물이다.진서준의
“그 여자는 나한테 맡겨. 넌 저놈을 쫓아.”진서준은 말이 끝나자마자 발걸음을 옮겨 바이올렛을 향해 걸어갔다.“부디 조심하세요...”해리스는 항상 진서준을 무시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서준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심이 생겼다.“도망가려고? 나한테 물어봤어?”바이올렛은 가볍게 웃더니 이내 몸을 어둠 속으로 녹였다.순식간에 광풍이 칼날처럼 휘몰아치며 방 안의 가구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진서준은 발을 구르며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소리 없이 바이올렛 앞에 나타났다.“네 상대는 나야.”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바이올렛의 짙은 붉은색 눈동자가 갑자기 밝은 빛을 내뿜었다.“대한민국 무인이라... 오늘 밤 네게서 특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구나. 너무 빨리 지지 않길 바랄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실망할 테니까.”바이올렛의 목소리는 매우 매혹적이었다.“남자로서 당연히 너무 빨라선 안 되지... 천천히 즐기게 해줄게.”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에 푸른 영기와 혈해의 힘을 불러냈다.하지만 이번에 불러낸 혈기는 예전처럼 거대하지 않았다.진서준의 몸에는 아직 숨겨진 내상이 남아 있어 오늘 밤 도대체 얼마 동안 버틸 수 있을지 진서준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하지만 두 나라 간의 전쟁을 막기 위해 진서준은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20cm나 되는 긴 손톱을 가진 손이 유령처럼 진서준의 목을 향해 갑자기 다가왔다.손톱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공기마저 완벽하게 압도되어 진공 상태가 되었다.진서준의 표정은 어떤 변화도 없었고 여유롭게 손을 들어 바이올렛의 손톱을 쳐냈다.끼익...손톱이 진서준의 손바닥과 부딪히며 강철 위를 긁는 칼 소리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길고 가느다란 손톱 중 하나가 진서준의 손바닥에 있는 혈기의 힘을 뚫고 진서준의 손바닥을 찔렀다.붉은 피 한 줄기가 진서준의 손바닥에서 쏟아져 나왔고 그중 두 방울이 바이올렛의 붉은 입술에 떨어졌다.바이올렛은 그녀의 유연한 혀를 내밀어 입술 위의 피를 가볍게 핥고는 거의 병적인
지익...푸른 번개가 순식간에 바이올렛의 온몸을 덮쳤다.요란한 천둥소리가 끊임없이 울리더니 바이올렛의 검은 가죽옷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그러자 눈처럼 새하얀 바이올렛의 몸이 진서준의 눈앞에 그대로 드러났다.옥중의 티는 바이올렛의 하얀 몸에 몇 군데 까맣게 탄 자국이 생겼다는 것이었다.그건 다름 아닌 진서준의 푸른 번개를 맞고 생긴 상처였다.눈앞의 유혹적인 몸을 보면서도 진서준의 눈빛은 변함없었다.고수의 대결에서는 한 방에 누가 강한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진서준은 자기가 바이올렛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진서준이 필요한 건 단지 바이올렛이 해리스를 뒤쫓는 걸 저지하는 것이었다.해리스가 엘리사를 구할 수 있다면 오늘 밤의 임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젠장!”바이올렛은 몸에 새로 생긴 까맣게 탄 자국을 보며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애송이가 날 단단히 화나게 했구나. 오늘 밤 네 몸의 피를 모조리 빨아서 널 미라로 만들어 주지.”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어넘겼다.“이봐, 입은 비뚤어도 말은 제대로 해야지. 내가 막 오해하잖아? 넌 도대체 내 피를 빨아먹고 싶은 거야? 아니면 내 다른 것들을 빨아먹고 싶은 거야?”진서준의 도발에 바이올렛의 눈에 차가운 분노가 피어났다.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비상시기에도 이 남자가 성희롱이나 할 여유가 있다니, 정말 간탱이가 부어도 너무 부은 것 같았다.바이올렛은 목소리를 낮게 깔고 으르렁대며 진서준이 잡고 있는 손톱에 힘을 주어 빼는 대신 진서준의 팔을 향해 찔렀다.푸슉...다섯 손톱 중 가장 긴 손톱이 진서준의 손바닥을 그대로 꿰뚫어 버렸다.손이 찢어질 듯한 극심한 고통이 팔의 신경을 따라 진서준의 뇌로 전달되었다.그 강렬한 고통 앞에서도 진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말 한마디에 이 정도로 화났어? 너 성격이 참 더럽네. 내 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구나.”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광 한 줄기가 측면에서 바이올렛을 향해 내
한참 동안을 도망치던 진서준은 사람이 살지 않는 허름한 집을 발견했다.진서준은 문을 박차고 그 집 안으로 들어가 이가 나미를 내려놓고 그녀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이가 나미는 바이올렛의 일격에 당한 후로 쭉 의식을 잃은 기절 상태였다.진서준은 정확하게 상처를 살펴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가 나미의 가죽옷을 벗겨내야만 했다.가죽옷이 벗겨지자마자 흘러넘칠 듯한 눈부신 하얀 가슴이 거의 다 드러났다.검은 레이스로 덮여 있지 않았다면 진서준의 마음은 이미 파도처럼 요동쳤을지도 모른다.의식을 잃은 이가 나미는 극심한 고통 때문인지 가끔씩 가벼운 신음을 내뱉었다.이가 나미는 타고난 매력적인 몸매로 남자에게 치명적인 유혹을 발휘하는 여자였다.지금 이가 나미는 진서준 앞에서 알몸으로 유혹적인 신음을 흘리고 있었고 진서준의 피는 순간적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자기 몸에서 이상한 반응이 슬슬 나오자 진서준은 급히 마음속으로 청심주를 외우며 서둘러 이가 나미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진서준은 이가 나미의 매혹술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고 있었다.진서준은 이런 상태로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만약 실수로 정신을 놓아버린다면 오늘 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진서준이 이가 나미의 피부를 만지자 이가 나미는 무의식적으로 진서준의 품에 안겼다.이가 나미의 피부는 그 무엇보다 더 부드럽고 매끈했다.촉촉하고 따뜻한 이가 나미의 몸이 닿자 진서준의 손은 잠시 멈추고 말았다.청심주는 이미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진서준은 이를 악물고 자기 혀끝을 세게 깨물었다.혀끝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찌릿한 고통이 밀려오자 진서준는 다시 정신을 번쩍 차렸다.진서준은 서둘러 속도를 내야만 했다. 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유혹의 화신을 이대로 품에 두고 있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유혹을 꾹 참으며 진서준은 이가 나미의 부러진 갈비뼈를 맞추었다.이가 나미의 상처를 다 치료한 후, 진서준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이가 나미에게 덮어주었다
허윤진의 시선에 찍힌 진서준은 바람피우다 들킨 기분이 들어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왜 그래? 윤진아, 내 얼굴에 뭐 묻었어?”진서준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어제 우리 언니 네 방에 갔었어?”허윤진은 진서준에게 바짝 붙어 물었다. 두 사람 얼굴과 얼굴 사이의 거리가 20cm도 채 되지 않았다.진서준은 심지어 허윤진이 내뿜는 따뜻한 숨결마저 느낄 수 있었다.“당연히 안 왔어. 엄마가 여기 있잖아. 사연이 눈치 보여서 어떻게 오겠어...”진서준은 한 발짝 물러서며 허윤진과 거리를 두려 했다.하지만 허윤진은 물러서지 않고 진서준이 한발 물러서면 그녀는 한발 더 다가와 결국 진서준을 벽에 몰아넣었다.진서준의 대답을 들은 허윤진은 진서준의 얼굴에 남은 키스 자국을 핸드폰으로 비추며 따졌다.“그럼 이게 누구 키스 자국인지 설명해 줄래? 연아가 한 거라고는 하지 마. 걔는 립스틱을 아예 안 바르잖아.”허윤진의 날카로운 눈빛에 진서준은 속으로 벌벌 떨었다.이 애가 평소에는 어리버리해 보였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른지 이해할 수 없었다.진서준은 허윤진의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허사연과 다른 사람들이 아직 이가 나미의 존재를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만약 다른 여자들에게 진서준이 타고난 매혹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하인으로 삼았다는 걸 들킨다면 큰 소란이 일어날 게 뻔했다.“왜 말을 못 해? 변명거리가 생각 안 나? 어서 실토해, 그 요망한 옆집 공주가 키스 자국 주인이 맞지?”허윤진은 진서준의 옷깃을 잡아채고 또 따졌다.허윤진은 밤에 진서준에게 몰래 접근할 가능성이 가장 큰 여자는 이웃에 사는 엘리사일 거라고 추측했다.외국의 공주인 엘리사가 누구도 찾지 않고 유독 진서준을 찾는 것부터가 굉장히 수상했다.게다가 진서준 얼굴에 묻은 립스틱 색이 엘리사가 어제 바른 것과 비슷해서 허윤진은 진서준의 키스 자국이 엘리사가 남긴 것이라고 추측했다.진서준은 허윤진의 추측을 듣고 한순간 난감한 상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