슉!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그 그림자는 한적한 외곽의 무인 별장 앞에서 멈춰 섰다.붉게 타오르는 눈동자 속에 기묘한 광택이 번졌다. 지엔은 기절한 엘리사를 어깨에 메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문을 밀고 들어서자 지엔은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공주님, 이제 우리 둘만 남았으니 공주님의 유혹적인 피를 실컷 맛보도록 하지.”지엔은 엘리사를 거실의 소파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엘리사 특유의 체질 때문에 그녀의 몸에서는 혈수사들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그 향기는 혈수사들에게는 마치 마약과도 같아, 결코 쉽게 뿌리칠 수 없는 강렬한 유혹이었다.지엔의 두목은 엘리사에게 상처를 입히지 말라고 지시했을 뿐 아니라 엘리사의 피를 빨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었다.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지엔과 엘리사밖에 없었다.지엔은 이 기회를 틈타 몰래 조금만 마신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혈수사가 피를 빨 때는 상대방이 그다지 큰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다만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정도로 이빨이 피부를 무는 순간만 조금 따끔할 뿐이다.창문을 통해 들어온 은은한 달빛이 엘리사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다.달빛에 은빛 망토를 두른 듯한 엘리사의 모습은 책 속에서 튀어나온 공주처럼 아름다웠다.지엔은 엘리사를 바라보며 억누를 수 없는 욕망에 휩싸여 굶주린 늑대처럼 엘리사에게 덮쳤다.하지만 엘리사는 여전히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지엔은 그녀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다.지엔은 엘리사의 몸에는 관심이 없었다.그저 엘리사의 피를 마시는 것만이 지엔의 목적이었다.엘리사의 하얀 목덜미가 고스란히 드러나자 지엔은 입을 벌려 천천히 다가갔다.쾅!이 긴급한 순간, 누군가가 문을 발로 차며 열어젖혔다.문이 부서지는 소리에 지엔은 깜짝 놀란 박쥐처럼 재빨리 엘리사에게서 떨어져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들이닥친 이를 쏘아보았다.잘록한 허리에 풍만한 곡선을 자랑하고 은빛 물결 같은 머리카락
지엔은 바이올렛을 바라보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엔의 눈에는 오직 공포만이 가득했고 감히 불만 하나 내비칠 수 없었다.자기와 바이올렛 사이의 실력 차이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다.“이번은 그냥 경고야.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있으면 네 목을 비틀어버릴 거야.”바이올렛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지엔은 그 말에 조금의 의심도 할 수 없었다.바이올렛은 절대 농담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지엔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됐어, 넌 여기서 지키고 있어. 난 위층에서 잠깐 쉬다 오마.”바이올렛이 기지개를 켜자 그녀의 검은 가죽옷 아래로 감춰진 섹시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하지만 지엔은 감히 그 모습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바이올렛이 그의 눈알을 뽑아버릴까 봐 두렵기 때문이었다.지엔은 결코 호들갑을 떨며 과장되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과거, 조직에 갓 들어온 한 청년 혈수사가 바이올렛의 성격을 모르고 그녀를 꼬시려고 했다가 바이올렛의 매혹적인 미소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그 사건 이후, 바이올렛은 피에 물든 장미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바이올렛은 위층으로 올라간 뒤, 잠자리에 들지 않고 검은 가죽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잠시 후, 욕실에서는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욕조에 물이 가득 차자 바이올렛은 그 속으로 몸을 담갔다.투명했던 욕조의 물은 금세 피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바이올렛은 눈을 살며시 감고 온몸의 모공을 열어 혈욕의 쾌감을 만끽했다.아래층에서 지엔은 엘리사에게 더는 감히 손을 뻗지 못하고 있었다.엘리사의 피가 아무리 달콤한 향기를 풍긴다고 해도 목숨과 맞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그 시각, 진서준은 엘리사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손에 쥐고 추적술을 사용해 이내 그녀의 위치를 알아냈다.“이 자식은 이미 필요 없어. 그냥 처리해.”진서준이 자리를 떠나기 전, 브래드를 가리키며 말했다.브래드는 그 말을 듣자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외쳤다.“날 죽이지 마. 공주의 위치를 아는 건 나뿐이야.”해리스도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엔은 이미 엘리사의 곁에 도착해 엘리사를 안고 도망칠 준비를 마쳤다.2층에 있던 바이올렛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문가에 서 있는 진서준을 바라봤다. 바이올렛의 눈동자에는 차가운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바이올렛은 눈앞에 있는 이 대한민국 사람이 자기 실력과도 비슷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실력자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대한민국 무도 종사인가?”바이올렛은 천천히 입을 열어 유창한 대한민국어로 말하며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진서준은 말없이 엘리사와 지엔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엘리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엘리사가 다친 흔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진서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때, 해리스도 다가와 이를 악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너 계획이 있다면서?”조금 전까지만 해도 해리스는 진서준이 뭔가 치밀한 계획이라도 세운 줄 알았다.그런데 해리스가 물어볼 틈도 없이 진서준은 이미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이다.그와 동시에 해리스도 2층에서 내려오는 바이올렛의 모습을 발견했다.바이올렛의 우아한 실루엣을 본 순간, 해리스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차가운 숨을 삼켰다.“저... 저 여자가 왜 여기 있어?”진서준은 해리스의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을 보자 몹시 궁금해졌다.“저 여자가 누구야?”“바이올렛... 당신들 대한민국 국안부에서 지의방 랭킹 26위로 지정한 혈수사입니다.”눈앞에 서 있는 이 성숙한 매력을 풍기는 여자가 지의방 랭킹 26위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진서준도 적잖이 놀랐다.바이올렛의 몸매와 외모만 봐서는 누구라도 그녀가 30대 초반의 매혹적인 여인으로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지금 해리스의 설명에 따르면 바이올렛은 지의방 랭킹 26위를 차지하고 있는 혈수사였다. 이는 바이올렛의 실제 나이와 외모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다.“저 여자가 몇 살인데?”진서준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지의방 랭킹 26위라면 그 실력은 대략 칠급 대종사에 해당할 것이고 대다수가 70살을 넘기지 않는 인물이다.진서준의
“그 여자는 나한테 맡겨. 넌 저놈을 쫓아.”진서준은 말이 끝나자마자 발걸음을 옮겨 바이올렛을 향해 걸어갔다.“부디 조심하세요...”해리스는 항상 진서준을 무시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서준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심이 생겼다.“도망가려고? 나한테 물어봤어?”바이올렛은 가볍게 웃더니 이내 몸을 어둠 속으로 녹였다.순식간에 광풍이 칼날처럼 휘몰아치며 방 안의 가구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진서준은 발을 구르며 속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소리 없이 바이올렛 앞에 나타났다.“네 상대는 나야.”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바이올렛의 짙은 붉은색 눈동자가 갑자기 밝은 빛을 내뿜었다.“대한민국 무인이라... 오늘 밤 네게서 특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구나. 너무 빨리 지지 않길 바랄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실망할 테니까.”바이올렛의 목소리는 매우 매혹적이었다.“남자로서 당연히 너무 빨라선 안 되지... 천천히 즐기게 해줄게.”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에 푸른 영기와 혈해의 힘을 불러냈다.하지만 이번에 불러낸 혈기는 예전처럼 거대하지 않았다.진서준의 몸에는 아직 숨겨진 내상이 남아 있어 오늘 밤 도대체 얼마 동안 버틸 수 있을지 진서준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하지만 두 나라 간의 전쟁을 막기 위해 진서준은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20cm나 되는 긴 손톱을 가진 손이 유령처럼 진서준의 목을 향해 갑자기 다가왔다.손톱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공기마저 완벽하게 압도되어 진공 상태가 되었다.진서준의 표정은 어떤 변화도 없었고 여유롭게 손을 들어 바이올렛의 손톱을 쳐냈다.끼익...손톱이 진서준의 손바닥과 부딪히며 강철 위를 긁는 칼 소리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길고 가느다란 손톱 중 하나가 진서준의 손바닥에 있는 혈기의 힘을 뚫고 진서준의 손바닥을 찔렀다.붉은 피 한 줄기가 진서준의 손바닥에서 쏟아져 나왔고 그중 두 방울이 바이올렛의 붉은 입술에 떨어졌다.바이올렛은 그녀의 유연한 혀를 내밀어 입술 위의 피를 가볍게 핥고는 거의 병적인
지익...푸른 번개가 순식간에 바이올렛의 온몸을 덮쳤다.요란한 천둥소리가 끊임없이 울리더니 바이올렛의 검은 가죽옷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그러자 눈처럼 새하얀 바이올렛의 몸이 진서준의 눈앞에 그대로 드러났다.옥중의 티는 바이올렛의 하얀 몸에 몇 군데 까맣게 탄 자국이 생겼다는 것이었다.그건 다름 아닌 진서준의 푸른 번개를 맞고 생긴 상처였다.눈앞의 유혹적인 몸을 보면서도 진서준의 눈빛은 변함없었다.고수의 대결에서는 한 방에 누가 강한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진서준은 자기가 바이올렛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진서준이 필요한 건 단지 바이올렛이 해리스를 뒤쫓는 걸 저지하는 것이었다.해리스가 엘리사를 구할 수 있다면 오늘 밤의 임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젠장!”바이올렛은 몸에 새로 생긴 까맣게 탄 자국을 보며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애송이가 날 단단히 화나게 했구나. 오늘 밤 네 몸의 피를 모조리 빨아서 널 미라로 만들어 주지.”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어넘겼다.“이봐, 입은 비뚤어도 말은 제대로 해야지. 내가 막 오해하잖아? 넌 도대체 내 피를 빨아먹고 싶은 거야? 아니면 내 다른 것들을 빨아먹고 싶은 거야?”진서준의 도발에 바이올렛의 눈에 차가운 분노가 피어났다.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비상시기에도 이 남자가 성희롱이나 할 여유가 있다니, 정말 간탱이가 부어도 너무 부은 것 같았다.바이올렛은 목소리를 낮게 깔고 으르렁대며 진서준이 잡고 있는 손톱에 힘을 주어 빼는 대신 진서준의 팔을 향해 찔렀다.푸슉...다섯 손톱 중 가장 긴 손톱이 진서준의 손바닥을 그대로 꿰뚫어 버렸다.손이 찢어질 듯한 극심한 고통이 팔의 신경을 따라 진서준의 뇌로 전달되었다.그 강렬한 고통 앞에서도 진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말 한마디에 이 정도로 화났어? 너 성격이 참 더럽네. 내 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구나.”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광 한 줄기가 측면에서 바이올렛을 향해 내
한참 동안을 도망치던 진서준은 사람이 살지 않는 허름한 집을 발견했다.진서준은 문을 박차고 그 집 안으로 들어가 이가 나미를 내려놓고 그녀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이가 나미는 바이올렛의 일격에 당한 후로 쭉 의식을 잃은 기절 상태였다.진서준은 정확하게 상처를 살펴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가 나미의 가죽옷을 벗겨내야만 했다.가죽옷이 벗겨지자마자 흘러넘칠 듯한 눈부신 하얀 가슴이 거의 다 드러났다.검은 레이스로 덮여 있지 않았다면 진서준의 마음은 이미 파도처럼 요동쳤을지도 모른다.의식을 잃은 이가 나미는 극심한 고통 때문인지 가끔씩 가벼운 신음을 내뱉었다.이가 나미는 타고난 매력적인 몸매로 남자에게 치명적인 유혹을 발휘하는 여자였다.지금 이가 나미는 진서준 앞에서 알몸으로 유혹적인 신음을 흘리고 있었고 진서준의 피는 순간적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자기 몸에서 이상한 반응이 슬슬 나오자 진서준은 급히 마음속으로 청심주를 외우며 서둘러 이가 나미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진서준은 이가 나미의 매혹술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고 있었다.진서준은 이런 상태로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만약 실수로 정신을 놓아버린다면 오늘 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진서준이 이가 나미의 피부를 만지자 이가 나미는 무의식적으로 진서준의 품에 안겼다.이가 나미의 피부는 그 무엇보다 더 부드럽고 매끈했다.촉촉하고 따뜻한 이가 나미의 몸이 닿자 진서준의 손은 잠시 멈추고 말았다.청심주는 이미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진서준은 이를 악물고 자기 혀끝을 세게 깨물었다.혀끝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찌릿한 고통이 밀려오자 진서준는 다시 정신을 번쩍 차렸다.진서준은 서둘러 속도를 내야만 했다. 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유혹의 화신을 이대로 품에 두고 있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유혹을 꾹 참으며 진서준은 이가 나미의 부러진 갈비뼈를 맞추었다.이가 나미의 상처를 다 치료한 후, 진서준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이가 나미에게 덮어주었다
허윤진의 시선에 찍힌 진서준은 바람피우다 들킨 기분이 들어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왜 그래? 윤진아, 내 얼굴에 뭐 묻었어?”진서준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어제 우리 언니 네 방에 갔었어?”허윤진은 진서준에게 바짝 붙어 물었다. 두 사람 얼굴과 얼굴 사이의 거리가 20cm도 채 되지 않았다.진서준은 심지어 허윤진이 내뿜는 따뜻한 숨결마저 느낄 수 있었다.“당연히 안 왔어. 엄마가 여기 있잖아. 사연이 눈치 보여서 어떻게 오겠어...”진서준은 한 발짝 물러서며 허윤진과 거리를 두려 했다.하지만 허윤진은 물러서지 않고 진서준이 한발 물러서면 그녀는 한발 더 다가와 결국 진서준을 벽에 몰아넣었다.진서준의 대답을 들은 허윤진은 진서준의 얼굴에 남은 키스 자국을 핸드폰으로 비추며 따졌다.“그럼 이게 누구 키스 자국인지 설명해 줄래? 연아가 한 거라고는 하지 마. 걔는 립스틱을 아예 안 바르잖아.”허윤진의 날카로운 눈빛에 진서준은 속으로 벌벌 떨었다.이 애가 평소에는 어리버리해 보였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른지 이해할 수 없었다.진서준은 허윤진의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허사연과 다른 사람들이 아직 이가 나미의 존재를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만약 다른 여자들에게 진서준이 타고난 매혹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하인으로 삼았다는 걸 들킨다면 큰 소란이 일어날 게 뻔했다.“왜 말을 못 해? 변명거리가 생각 안 나? 어서 실토해, 그 요망한 옆집 공주가 키스 자국 주인이 맞지?”허윤진은 진서준의 옷깃을 잡아채고 또 따졌다.허윤진은 밤에 진서준에게 몰래 접근할 가능성이 가장 큰 여자는 이웃에 사는 엘리사일 거라고 추측했다.외국의 공주인 엘리사가 누구도 찾지 않고 유독 진서준을 찾는 것부터가 굉장히 수상했다.게다가 진서준 얼굴에 묻은 립스틱 색이 엘리사가 어제 바른 것과 비슷해서 허윤진은 진서준의 키스 자국이 엘리사가 남긴 것이라고 추측했다.진서준은 허윤진의 추측을 듣고 한순간 난감한 상황에
진서준은 이웃에서 일어난 소동에 관해 설명했다.굳이 이 문제를 허사연과 다른 여자들에게 숨길 필요가 없었다.바이올렛이 아직 살아있는 상황에서 진서준은 바이올렛이 허사연 일행에게 해를 끼칠까 봐 두렵기도 해서 미리 상황을 대충 설명해야 했다.“뭐라고?”허사연 일행은 생각지 못한 대답에 다들 깜짝 놀랐다.“엘리사는 용란 공주 아니에요? 해외의 혈수사가 왜 공주를 잡아가죠? 아참, 근데 혈수사는 대체 뭐예요?허사연은 연달아 질문을 쏟아냈다.진서준은 어리둥절해하는 여자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그러니까 해외의 혈수사는 영화 속 흡혈귀 같은 존재라고 보면 돼?”허윤진이 혈수사를 비교적 실감 나게 비유했다.“거의 비슷하지만 혈수사는 낮에도 태양 아래서 살 수 있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혈수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진서준도 잘 알지 못했다.어제 혈수사 바이올렛과 한 번 싸워본 게 전부였다.이 사람들의 정체와 특징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알아봐야 했다.“그 공주는 구출됐어?”김연아가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용란의 공주가 대한민국에서 사고를 당하면 국제적인 문제가 생길 게 분명했다.“구출했어. 아침에 국안부에서 문자 왔는데 엘리사와 공주 경호원이 이미 경성에 돌아갔대.”아침에 이가 나미가 막 떠나고 진서준은 진서훈이 보낸 문자를 받았다.문자에는 엘리사가 안전하게 경성에 도착했으며 별다른 문제는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진서준은 오늘 류재훈의 일을 도와주고 그 후 경성에 갈 계획이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후 진서준이 외출한다고 하자 허윤진이 즉시 말했다.“나도 같이 갈게.”“난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거야.”진서준은 허윤진을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았다. 이 애는 성가실 정도로 진서준을 너무 졸졸 따라다니기 때문이었다.“무슨 소리야? 나도 너랑 같이 가서 중요한 일 도와줄 수 있잖아.”허윤진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지만 여전히 귀여워 보였다.“진서준 씨, 그냥 윤진을 데리고 가세요.”허사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