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은 BMW 자동차 대리점 문 앞에 왔다.가게 안의 판매원이 진서준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를 맞이하러 다가갔다.이때 한 남자 판매원이 경멸의 어조로 말했다.“걸어서 여기까지 온 저 사람이 입은 옷 좀 봐봐, 딱 봐도 BMW 자동차를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보아하니 그냥 와이파이나 에어컨을 공짜로 쓰러 온 사람이잖아! 상대도 하지 마!”BMW 차는 비교적 고급 차인 셈이었고 가장 싼 차 한 대도 4,000만 원 이상이었다.그래서 이런 종류의 차를 사는 사람들은 모두 거의 부자였다.남자 판매원의 말을 듣고 진서준을 접대하러 가려던 판매원도 잠시 진서준이 입고 있는 옷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진서준의 옷차림이 정말 별로인 것을 보자 판매원은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진서준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혼자 마음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한참을 둘러본 후, 진서준은 전에 보았던 BMW8 시리즈가 괜찮다고 생각했다.그는 고개를 돌려 남자 판매원에게 물었다.“이 BMW8 시리즈, 새 차가 있어요? 있으면 지금 바로 살게요.”남자 판매원은 바보처럼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이 차가 얼마인지 알아요? 혹시 뒤에 붙은 숫자 0을 잘못 본 거 아니에요?”남자 판매원의 말투에 약간의 경멸이 담긴 것을 보고 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젤 비싼 차가 2억 4천만 원이잖아요. 제가 똑똑히 보았어요!”그러자 남자 판매원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똑똑히 보았다면 더 이상 허튼소리 치지 마세요. 2억 4천만 원이 되는 차를 살 수 있어요? 만약 당신이 정말 살 돈이 있다면 먼저 지금 입고 있는 옷부터 갈아입고 여기 와서 부자 놀이 해요!”진서준은 자기가 또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판매원을 만났다는 것을 알았다.옷차림은 어느 정도 한 사람의 경제력을 보여줄 수는 있었지만, 부자면 꼭 화려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규정한 사람은 없었다.“여기 판매원들은 손님들한테 이렇게 대해요? 컴플레인 당하면 어찌하려고!”판매원은 진서준이 컴플레
조성우도 이곳을 향해 걸어오는 진서준을 알아보았다.그는 곧장 진서준의 앞으로 가서 진서준의 손을 잡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진 선생님, 그전에 있었던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이 장면을 보자 놀라움에 금치 못했고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수많은 판매원이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도영한과 아까 진서준을 깔보던 남자 판매원은 더더욱 멍해졌다.그들 둘은 바보처럼 제자리에 서있었다.방금 그들에게 모욕당했던 청년이 뜻밖에도 그들의 사장님과 아는 사이였다!그리고 조성우의 모습을 보면 사장님께서는 이 청년에게 매우 공손히 대했다.그들 둘은 이번에 자신이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고, 모두 서로 눈에서 공포스러운 감정을 보았다.“조 사장님.”진서준은 담담하게 조성우에게 인사를 건넸다.“진 선생님! 아까는 저희 부부가 잘못했어요. 부디 마음에 두지 마세요!”조성우는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개의치 않고 공손하게 진서준에게 사과했다.조성우는 만약에 지금 사과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정말 사과할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자기의 사장님이 진서준에게 사과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또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조성우는 서울시의 모든 자동차 대리점의 사장이었고 심지어 그의 몸값은 2조 원이나 될 정도로 큰 인물이었다!조성우마저 모든 사람 보는 앞에서 진서준에게 사과해야 할 정도이었으니, 진서준의 실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꽈당하는 소리와 함께 도영한과 진서준을 깔보던 남자 판매원은 다리가 풀려서 땅에 그대로 주저앉았다.이 상황을 본 조성우는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이놈들! 왜 제대로 서있지도 못해!”조성우의 화가 난 목소리를 들은 도영한은 정신을 차리고 겁에 질린 얼굴로 자진 고백했다.“사장님, 우리가 방금 건드린 사람이 바로 진 선생님이에요.”“뭐라고?”이 말을 들은 조성우는 2초 동안 멍하니 서있었다.불과 한 시간 전에
진서준의 분부에 조성우는 그 어떤 불만도 없었다.한지유는 진서준이 자기에게 침을 놓으려고 하자 한 마디 물었다.“진서준 씨, 저 옷 벗을까요?”“바지 벗으세요.”진서준이 말했다.그러나 그 말을 한 진서준은 어쩐지 무안해 보였다.한지유는 비록 서른이 넘었지만 관리를 아주 잘했고 얼굴도 무척 예뻤다.그녀에게 자기 앞에서 바지를 벗으라고 하니 진서준은 어쩐지 쑥스러웠다.“진서준 씨, 왜 얼굴이 빨개졌어요?”진서준의 표정을 본 한지유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조성우는 조금 전 한지유에게 바지를 벗으라는 진서준의 말을 듣고 조금 언짢아졌다.그러나 쑥스러워하는 진서준의 표정을 본 그는 곧바로 언짢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의 표정은 그가 점잖은 사람이라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진서준 씨, 마음 푹 놓고 침놓으세요. 저희 부부는 진서준 씨의 인성을 믿습니다.”한지유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저희는 진서준 씨를 믿어요. 연아의 안목도 믿고요.”김연아는 한지유에게 진서준이 자기를 치료해 줄 때 거의 헐벗었다고 했었다.그리고 진서준은 치료 과정 중에서 전혀 자신의 사심을 채우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한지유가 그렇게 말했으니 진서준도 더는 난감해하지 않았다.“전 일단 돌아서 있을게요. 한지유 씨는 바지를 벗은 뒤에 겉옷도 벗어주세요.”진서준이 말했다.“네.”바스락 소리와 함께 한지유는 아주 빠르게 진서준의 분부대로 바지와 겉옷을 벗었다.조성우는 알코올을 들고 VIP룸으로 돌아왔다.진서준은 알코올로 소독했고 조성우는 진서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진서준 씨, 전 먼저 나가 있겠습니다. 침놓는데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조성우가 자신을 믿어주자 진서준도 별말 하지 않았다.“진서준 씨, 전 준비 됐어요. 언제든 침을 놓으셔도 좋아요.”한지유는 널따란 소파에 누워서 눈을 감고 진서준이 침을 놓아주길 기다렸다.은침을 들고 돌아선 진서준은 한지유의 훌륭한 몸매를 보았다.풍만한 가슴에 길고 흰 다리, 성숙한 여자에게서만 느
용행 무관.그곳에서는 십여 명의 검은색 도복을 입은 청년들이 연습하고 있었다. 도관 안에는 총 50여명 정도가 있었고 다들 실력이 약하지 않은 듯 보였다.그중 반 이상이 시 대회나 전국 대회에 나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얼마 뒤, 청년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와서 빠른 걸음으로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중년 남성의 앞으로 걸어갔다.“강 관장님, 도전장은 이미 보냈습니다.”청년은 공손한 태도로 중년 남성을 보았다.그 중년 남성은 강호걸의 아버지이자 서울시 무술 협회 부회장인 강옥산이었다.그는 여러 차례 서울시 무술 협회를 대표해 전국 태권도 대회, 킥복싱 대회에 참가했고 무에타이 등 다양한 무술로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심지어는 해외 고수들까지 그에게 패배한 적이 있었다.“감히 내 아들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난 오늘 그놈의 사지를 부러뜨리겠어. 내가 너무 오랫동안 조용히 지냈나 봐. 그래서 우리 강씨 집안이 만만하다고 생각한 거겠지.”말을 마친 뒤 강옥산은 두 눈을 번쩍 떴다.그의 호랑이 같은 눈동자에 무관의 코치들은 겁을 먹고 안색이 창백해졌다.강옥산은 갑자기 손을 번쩍 들어 앞에 놓인 대리석을 단번에 부쉈다.펑 소리와 함께 20센티미터 두께의 대리석이 소리를 내면서 깨졌다.도관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강옥산의 실력을 아는 코치들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관장의 실력이 또 강해진 듯했다.“호랑이도 관장님의 무시무시한 한방을 당해낼 수 없을 거야.”“도전장을 받은 청년이 오늘 저녁 찾아온다면 틀림없이 죽을 거야.”“저걸 사람이 맞았다면... 감히 상상도 못 하겠네.”“저녁에 우리 내기하자고. 저 녀석이 얼마 버티는지 말이야.”일부 수강생들과 코치들이 수군덕댔다. 강옥산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 두려움과 존경심이 가득했다.“아버지, 겨우 청년 한 명일 뿐인데 왜 직접 나서세요? 제가 대신하겠습니다!”그 목소리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문가를 바라보았다.강옥산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185센티미
복면을 쓴 강성준을 본 진서준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예전에 고한영이 도영광은 아주 속 좁은 사람이라 당한 것은 꼭 갚는 성격이라고 했었기 때문이다.그는 분양처 매니저일 뿐만 아니라 관리사무소 소장이기도 했다.그래서 진서준은 이 모든 것이 도영광의 계획일 거라고 짐작했다.강성준은 진서준이 태연해 보이자 비록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그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쓸데없는 얘기를 하지 않고 빠르게 진서준을 향해 덤볐다.강성준의 두 주먹은 철과 같아 공기마저 그의 철권에 찢어지는 듯했다.그러나 진서준은 이런 철권 앞에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평온했다.마치 자신을 때리는 것이 주먹이 아니라 솜인 것처럼 말이다.그의 태연한 태도에 강성준은 욱했고 눈동자에 살기가 어렸다.먼 곳에 숨어있던 도영광은 그 광경을 보고 입가에 조롱의 미소가 걸렸다.“저 자식 분명 강성준의 기세에 겁을 먹고 멍청해진 걸 거야!”학창 시절, 강성준은 홀로 대학 농구팀의 남학생들과 싸운 적이 있었다.그리고 졸업한 뒤에는 그의 아버지가 그를 한 고수에게 보내 실력을 쌓게 했다.도영광이 보기에 강성준이 진서준을 상대하는 것은 타이슨과 아기가 경기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강성준이 따르던 그 종사는 철권을 수련했다.강성준은 3년 동안 매일 쇠 모래에 주먹을 담그며 권법을 연습했고 매번 두 손이 피범벅이 되어서야 멈췄다.그리고 이후 2년 동안 강성준의 주먹은 위력이 나날이 상승했다.그는 예전에 깊은 산 속에서 굶주린 늑대 한 마리를 주먹 한 방으로 때려잡았고 그로 인해 다른 늑대들은 겁을 먹고 도망쳤다.심지어 그는 강철판도 쉽게 뚫을 수 있었다. 그러니 사람의 몸은 말할 것도 없었다.진서준의 움직임은 강성준이 보기에 죽음을 자초하는 움직임이었다.주먹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강성준과 진서준의 거리가 2미터가량 될 때 진서준이 드디어 움직였다.어느샌가 그의 두 손은 청색이 되었고 노을을 받아 은은한 광택이 감돌고 있었다.그 광경에 강성준은 큰
용행 무관.무관 안의 사람들은 강성준이 비참한 꼴로 돌아오자 모두 깜짝 놀랐다.“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설마 누군가에게 맞은 건 아니죠?”“1년 전 저는 강성준 씨가 주먹으로 벽에 5센티미터 깊이의 흔적을 낸 걸 직접 봤는데요!”“설마 서울에 강성준 씨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는 걸까요?”사람들은 놀랍다는 얼굴로 수군덕거렸다.“아버지, 아버지!”강성준의 목소리를 들은 강옥산이 무관 휴게실에서 나왔다.“성준아, 어떻게 된 일이냐?”강성준의 꼴을 본 강옥산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해요.”강성준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무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만약 그가 그보다 어린, 젊은 청년에게 맞았다는 걸 그들이 알게 된다면 앞으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두 부자는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고 강옥산은 곧바로 방문을 굳게 닫았다.“아버지, 저 맞았습니다. 심지어 그 사람은 제 오른손을 짓밟아 부러뜨렸어요!”강성준이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뭐라고?”강옥산은 처음엔 놀라워하더니 이내 눈빛에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오늘 그의 작은 아들은 팔이 부러졌고 이제는 큰아들까지 손이 부러졌다.누군가 일부러 그의 강씨 집안을 노리는 걸까?“널 이렇게 만든 그 빌어먹을 놈의 이름이 뭐냐?”강옥산이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강성준은 다소 무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몰라요.”당시 도영광은 그에게 사진 한 장만 건네줬을 뿐, 진서준의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다.“그놈이 널 어디서 때린 거냐?”강옥산이 또 물었다.“한 아파트에서요. 그 자식 아파트에서 살았어요.”강성준의 말에 강옥산은 어리둥절해졌다.“아파트는 왜 간 거야?”“아버지, 저는 제 후배를 위해 나선 거였어요. 그런데 상대방이 꽤 강한 놈이었어요.”강성준은 울화통이 치밀었다.그는 진서준뿐만 아니라 도영광에게도 복수를 할 셈이었다.“그래, 알겠다.”강옥산의 안색이 흐렸다.“오늘 저녁 그 진씨 성을 가진 놈을 해결한 뒤 내일 사람을 데리고 널 때린 그 자식
용행 무관 입구.진서준은 그곳에 도착한 뒤 바로 차에서 내리지 않고 허사연이 오기를 기다렸다.동시에 진서준은 오늘 밤 꽤 많은 사람이 연달아 용행 무관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코치도 있고 수강생도 있고, 용행 무관 광고에 끌려 들어가는 행인들도 있었다.용행 무관은 도관이 매우 컸다. 거의 축구장만큼 컸다.안에서 들리는 소리로 판단해 보자면 도관 안에 500명 가까이 있는듯했다.몇 분간 기다리니 허사연의 차가 보였다.“사연 씨!”진서준은 서둘러 차에서 내려 허사연에게 다가갔다.“이렇게 큰일을 왜 내게 얘기하지 않은 거예요? 양소빈 언니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난 계속 몰랐겠죠?”허사연은 진서준을 바라보며 화난 듯 말했다.허사연은 걱정스럽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 진서준이 그런 그녀를 위로했다.“내 실력이 어떤지 사연 씨는 알잖아요. 그 이승재도 내 상대가 되지 못하는걸요.”“그건 다르죠. 이승재는 풍수술사고 강옥산은 무인이잖아요. 게다가 실력도 약하지 않고요.”허사연은 곧바로 설명했다.“술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서준 씨는 이기지 못할 거예요.”진서준은 허사연의 손을 잡고 나긋나긋하게 말했다.“술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할 거라고 누가 그래요? 겨우 작은 무관의 관장조차 이기지 못한다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사연 씨와 결혼하겠어요?”그의 말에 허사연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허사연은 고개를 살짝 수그리고 쑥스러운 듯 말했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난 그저 당신이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것뿐이에요. 당신이 다친다면 내 마음이 아플 거라고요. 그냥 안 들어가는 게 어때요? 내가 아빠더러 사람을 불러서 서준 씨 대신 나서게 할게요.”허사연이 방법을 생각했다.진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허사연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사연 씨, 난 사연 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아요. 오늘 밤 그 점을 증명해 보일게요. 전 술법만 할 줄 아는 게 아니에요!”진서준의 확고한 태도에 허사연은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하지만 그
저녁 8시, 용행 무관 안은 인산인해였다.모든 학생과 코치는 경멸의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들이 보기에, 진서준과 강옥산이 경기를 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었다.일부 행인들은 진서준과 강옥산의 체형 차이를 보고 이 청년은 반드시 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죽음을 자초한 놈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길어야 10초겠죠. 10초 후면 항복한다고 빌고 있을 겁니다.""용서를 빌 기회도 없이 우리 강 관장님에게 걷어차일 것 같습니다."일부는 낮은 목소리로 토론하고 일부는 심지어 진서준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추측하는 베팅도 했다.그때, 링 위의 강옥산이 움직였다.그는 바람과 같이 빠른 속도와 건장한 체형을 가지고 있어 날개를 가진 호랑이와도 같아 보였다.강옥산이 진서준에게서 5미터도 떨어지지 않았을 때, 그가 갑자기 뛰어올랐다. 방금 그가 밟았던 돌바닥에 엄지손가락만 한 자국이 하나 남았다.이것은 시멘트로 만든 플랫폼이었다.큰 쇠망치로 세게 쳐도 작은 구덩이를 만들 수 없었다.하지만 이 장면을 링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은 보지 못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강옥산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높이 뛰어올라 거의 3미터 되는 높이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회전의 힘 덕분에 오른 다리 힘이 더욱 강해진 것이었다.강성준과 달리 강옥산은 주로 오른발을 수련했다. 견고한 돌조차 그의 오른쪽 다리 앞에서 도저히 일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강옥산이 자가용 문을 발로 차서 움푹 들어간 적이 있다고 들었다.사방에서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일반인은 물론 일부 코치들도 강옥산의 이 수법에 놀랐을 정도였다. 링 아래에서 이를 지켜보던 허사연은 손을 꼭꼭 감싸고 빌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넘쳐흘렀다. 허사연은 속으로 결정했다.만약 진서준이 강옥산을 이기지 못한다면, 그녀는 가장 먼저 진서준에게 달려가 허씨 가문으로 강옥산을 협박할 것이었다.하늘 높이 떨어진 강옥산을 바라보는 진서준의 표정은 어두웠다.두 사람이 마주치려고
“저기 있어...”진서준은 박신준을 바닥에 내던지고 빠르게 건물로 달려갔다.“경비 연대 좀 보내.”박신준은 숨을 두어 번 가까스로 몰아쉬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오늘 박신준은 무슨 일이 있어도 황예은이 떠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하문천 어르신, 보셨죠? 저는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 얌전하게 있는데 저 녀석은 제 체면 따윈 신경도 안 씁니다.”박신준이 이를 악물고 바로 고자질하자 하문천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만둬, 방금 일어난 일은 못 본 걸로 할게.”박신준은 하문천이 자기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인 줄 알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그 말은 사실 진서준에게 하는 말이었다.지선도 죽일 수 있는 진서준이 굳이 박신준을 두려워할 리 없다.진서준은 속도를 내서 뛰어가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진서준은 진한 피비린내를 맡고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빠르게 피비린내가 나는 쪽을 따라갔다.우르릉!갑자기 진서준은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눈앞의 황예은은 도살장에 끌려간 죽은 돼지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황예은의 몸은 피투성이였고 피부가 찢겨나갔으며 살점이 거의 다 떨어져 나갔다.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거의 온전한 상태의 피부가 보이지 않았다.피는 황예은의 발끝에서부터 조금씩 떨어져 바닥에 흘러내리고 있었다.쿵!진서준은 발로 감옥 문을 열어젖히고 참선검을 꺼내 밧줄을 끊어냈다.그러자 황예은이 이내 진서준의 품에 떨어졌다.“이 개자식!”진서준은 황예은의 처참한 몰골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박신준이 여자에게 이렇게 가혹한 대우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더군다나 박신준의 아들 박진강은 황예은이 죽인 게 아니었다.참선검도 주인의 살기를 감지한 듯 미세한 빛을 발산했다.진서준은 황예은를 안고 천천히 건물을 빠져나갔고 참선검은 그의 뒤를 떠다녔다.작은 건물 밖에는 수백 명이 총을 장전하고 출구를 겨누고 있었다.진서준이 황예은를 안고 나오는 것을 보자 군인들은 총알을
박신준은 흑석영에서 이미 수년을 지냈고 여기 있는 모든 군인은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그래서 박신준은 하문천에게 공개적으로 대들 수 있었던 것이다.박신준은 하문천이 고작 여자 하나를 위해 장군 계급인 자기와 공개적으로 싸울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내가 손을 대야 정신을 차릴 거야?”하문천이 평온하게 물었다.흑석영에는 군단 하나 정도의 전력이 있었고 설령 지선이라고 해도 정면으로 맞설 수는 없었다.하지만 진서준을 위해서라면 하문천은 기꺼이 흑석영을 상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왜냐하면 그들 호국부가 진서준에게 진 빚이 있기 때문이었다.보해 전투에서 진서준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진서훈과 그 일행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하문천 어르신, 그 여자는 도대체 어르신에게 어떤 사람입니까?”박신준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여자라고?”하문천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네가 잡은 건 남자야, 여자야?”박신준도 의외의 질문에 멍하니 서 있다가 답했다.“어르신이 구하려는 사람은 황씨 가문 그 여자가 아니었습니까?”“당연히 아니야.”박신준은 비로소 자기가 하문천의 말을 오해한 사실을 깨달았다.하문천이 구하려는 사람은 진서준이지 황씨 가문의 여자가 아니었다.“너 도대체 몇 명 잡은 거야?”하문천이 냉랭하게 물었다.“두 명입니다. 그중 하나는 남자입니다. 지금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오해가 풀리자 박신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박신준이 만약 호국장군과 싸운다면 나중에 군부에서 그를 해임할 가능성이 컸다.얼마 지나지 않아 박신준과 하문천은 진서준이 갇혀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유리창 너머로 방 안에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보자 하문천은 박신준이 진서준에게 형벌을 가했음을 눈치챘다.다행히 진서준은 추위를 타지 않는 편이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얼른 문 열어. 왜 이렇게 멍하니 서 있어?”박신준이 언성을 높여 부하에게 소리쳤다.문이 열리자 뼈까지 파고드는 차가운 공기가 순식간에 쏟아져 나왔다.박신준은 저도 몰래
말을 마친 박신준은 손에 든 긴 채찍을 휘둘러 황예은의 옆구리를 강하게 내리쳤다.팍!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황예은의 옷이 찢어져 나가고 그녀의 하얗고 부드러운 복부에는 깊은 핏자국이 남았다.채찍이 박신준의 손에 돌아올 때 길고 날카로운 가시들에 피와 살이 묻어 있었다.극심한 고통이 밀물처럼 밀려와 황예은은 기절할 뻔했다.그 후, 채찍은 폭우가 쏟아지듯 미친 듯이 황예은에게 내리쳤다.팍팍!결국 황예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뼈저린 고통에 황예은의 몸은 계속해서 경련을 일으켰다.본래 완벽했던 황예은의 몸매는 이 가혹한 형벌을 겪은 후, 살점과 피가 튀어나오고 끔찍한 몰골이 되어 있었다.채찍의 가시에는 피와 살점이 가득했다.자세히 보면 황예은의 뼈마저 아슬하게 드러나 있었다.연약한 여자가 아니라 강철처럼 단련된 군인도 이 고문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옆에서 지켜보던 군인들도 이 광경이 너무 참혹해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장관님, 이 여자 기절했습니다.”“물을 부어 깨워.”박신준은 황예은이 하나도 불쌍하지 않았다.박진강은 박신준의 유일한 아들이었다.그런데 그 유일한 아들이 죽은 마당에 박신준은 절대 황예은을 가볍게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대한민국 최고 부자의 딸이라 해도 상관없었다.박신준의 아들을 죽인 자는 반드시 그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이내 군인이 커다란 통에 담긴 고추 물을 들고 왔다.이 고추 물을 피범벅이 된 몸에 부으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었다.촤락!고추 물이 황예은의 몸을 타고 흐르면서 상처투성이인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다.극심한 고통에 기절해 있던 황예은은 다시 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자극을 받고 눈을 떴다.지금 황예은의 머릿속은 온통 고통과 아픔으로 꽉 차서 터질 것만 같았다.“그만해, 얼른 날 죽여...”황예은의 목소리를 듣자 박신준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떠올랐다.“죽고 싶어? 내가 네 말을 들을 것 같아?”팍팍
다른 심문실에서 황예은은 의자에 단단히 결박된 채 앉아 있었다.황예은의 맞은편에는 박신준이 앉아 있었다.박신준이 황예은을 쳐다보는 눈빛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증오가 담겨 있었고 황예은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두 사람은 분명 처음 만난 사이인데 왜 상대방이 이렇게 자기를 증오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국가를 배반한 반역죄를 저질렀다니, 황예은은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었다.“황예은 씨, 박진강과 당신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었습니까?”박신준이 다짜고짜 물었다.“네?”황예은은 그제야 왜 자기가 이곳에 끌려왔는지 알 것 같았다.“당신은 그 사람 삼촌인가요?”황예은의 질문에 박신준이 퉁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난 박진강 아버지입니다!”이 말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고 황예은은 순간 얼음처럼 얼어붙었다.박서명이 자기 친형제에게 오쟁이를 지게 되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박신준을 쳐다보는 황예은의 의아한 눈빛을 본 박신준은 한마디 덧붙였다.“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자강은 우리 형이 나한테서 직접 입양한 아들입니다.”황예은은 더 이상 그 이유에 관해 묻지 않았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박신준이라는 장군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였다.흑석영에서 박신준은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황예은과 진서준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없을 것이다.“당신 아들은 내가 다른 사람을 시켜 때린 거예요.”황예은의 말에 박신준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그냥 때리기만 했습니까?”“그래요.”“근데 우리 아들이 죽었네요!”박신준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의 눈빛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죽었다고요?”황예은도 순간 당황했다.진서준이 그 당시에는 꽤 과격하게 행동했지만 박진강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분명 누군가가 박진강을 죽였을 것이다.“내가 한 일이 아니에요...”황예은은 본래 우리라고 하려다가 곰곰이 생각하고는 혼자서 모든 걸 떠안기로 결심했다.황예은은 진서준에게 진 빚이
“군부에 잡혔어.”진서준의 말에 진서훈의 목소리가 다소 불쾌해졌다.“어느 군구야?”“너희는 어느 군구 소속이야?”진서준이 군관을 보며 물었다.“동부 임해 전구야.”“동부 임해 전구라고? 알았어.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낼게.”진서훈은 여전히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전화를 끊은 후, 군관은 진서준의 휴대폰을 강제로 빼앗았다.하지만 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침묵만 지키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군부 사람들과 함께 차를 타고 두 시간 이상 간 후, 진서준 일행은 깊은 산속에 도착했다.마침내 차는 흑석영이라는 군사 기지에 도달했다.흑석영 군사 기지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죄수만이 갇히는 곳이다.일단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는 사람은 없다고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했다.차에서 내리자 진서준은 주변 환경을 천천히 살폈다.은은한 달빛과 반짝이는 별이 먹구름에 가려져 있었고 주변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딱 봐도 곧 폭우가 쏟아질 것 같았다.그때 두 사람이 진서준과 황예은을 향해 다가왔다.“황예은 씨, 제 이름은 박신준입니다. 흑석영 군사 기지 총책임자입니다.”장군 훈장을 단 중년 남자가 차갑게 말했다.박씨 성을 듣자 진서준과 황예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혹시 이 사람이 박씨 가문의 사람인가?하지만 황예은은 박씨 가문에 군부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왜 날 잡아들였죠?”황예은이 차가운 목소리로 따졌다.황예은은 장군급 군관을 상대하면서도 여전히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황예은 씨는 반역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박신준이 차갑게 말하자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간첩이냐 아니냐는 네가 잘 알지 않아?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까놓고 다 말하는 게 낫지 않겠어?”박신준의 얼굴을 보니 이전에 만났던 박진강과 조금 닮아있는 듯했다.이 사람은 박진강의 삼촌이나 큰아버지일 가능성도 있었다.박신준이 진서준을 힐끗 보더니 이내 부하들에게 지시했다.“이 두 사람 분리해서 구속해.”박신준이 두 사람을 따로 구속하려는
군부 사람들이 자기를 찾으러 온 것을 본 황예은은 눈꺼풀이 저절로 뛰기 시작했다.그동안 박씨 가문 회사를 전적으로 맡고 있는 동안, 황예은은 군부 사람들과는 전혀 교류가 없었다.국민은 절대 공무원과 싸우지 말고 공무원은 절대 군부 사람과 싸우지 말라는 말이 있다.역사적으로 군부는 언제나 국가의 최고 권력이었다.군부의 고위층을 건드리면 그 후엔 끔찍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진서준도 바로 그 군부 군관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알아보고 설표 특전대에서 교관직을 맡기로 했다.“제가 바로 황예은이에요. 무슨 일이죠?”군부가 무서운 존재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황예은의 말투는 여전히 그 여느 때와 다름없이 냉랭하고 자존심 강했다.그 군관은 황예은의 말을 듣고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우리의 조사에 따르면 넌 반역죄를 지질렀어. 넌 해외에서 우리나라에 침투한 간첩이야.”군관이 거친 목소리로 꾸짖었다.반역죄를 저지른 간첩이라고?황예은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황씨 가문은 대대로 대한민국에 충성한 가문인데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죄를 지을 수 있을까?이건 명백히 누군가 고의로 자기를 음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심지어 상대방은 자기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군부까지 동원했다.황씨 가문은 군부에 아무런 인맥도 없었다.지금 이 상태로 군부로 끌려가면 그 처참한 결말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이에요. 저는 절대로 간첩이 아닙니다.”황예은은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간첩인지 아닌지는 네 주장 하나로 해결할 수 없어. 우리와 함께 가서 조사받자.”군관도 똑같이 차가운 말투로 대응했다.그때, 진서준이 앞으로 나서서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누가 너희를 보냈어?”황씨 가문에 부귀전승이 존재하는 마당에 반역죄를 저지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황예은과 며칠을 함께 지내면서 진서준은 황예은이란 사람에 대해 자세하게 잘 알게 되었다.황예은은 극도로 자존심 강한 여자였
비밀 문 안으로 들어가니 아래는 온통 까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10여 미터를 걸어 내려가니 대략 10평 정도 되는 지하실이 나타났다.지하실은 매우 간소했고 고작 탁자 하나, 의자 하나, 침대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그 탁자 위에는 오래되어 누렇게 바랜 고서가 놓여 있었고 첫 장에는 큼지막하게 ‘부귀전승’ 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누님, 이거 우리 아빠가 남긴 거예요?”황현호는 탁자로 뛰어가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5년 전, 아빠가 신비스러운 태도로 날 불러 여기로 데려왔었어.”황예은의 눈빛은 추억에 젖은 듯했다.“그땐 아빠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건 널 위해 준비해 둔 것 같아.”그때 황경영은 황예은에게 이렇게 말했다.“황씨 가문에 큰 위기가 닥치면 현호 혼자 이 비밀 공간으로 내려와 책에 적힌 전승을 배우게 해.”황예은은 이미 이 책을 읽고 따라 연습해 본 적이 있었는데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당시 황예은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자기처럼 똑똑한 사람도 장악하지 못한 걸 머리가 둔한 황현호가 배울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황현호는 부귀전승을 집어 들고 몇 장 넘겨보더니 곧 그 책에 푹 빠져들었다.“보아하니 이 책은 우리 동생을 위해 준비된 게 맞는 듯하군.”황현호의 몰입한 모습을 보며 황예은은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너 아까 왕권부귀라고 했잖아. 그럼 혹시 왕권전승 같은 것도 있는 거야?”황예은의 질문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당연하지. 다만, 왕권전승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나도 몰라.”국가급 지도자는 몇몇밖에 없었지만 진서준은 쉽게 추측할 수 없었다.과거 왕권과 부귀는 막상막하의 힘을 자랑했지만 과학 기술이 급속히 발전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부귀의 세력은 왕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처졌다.황예은은 진서준을 향해 고개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진서준, 정말 고마워.”“내가 너희를 도운 건 단순히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들으려고 한 게 아니야.”진서준이
왕권부귀!이건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무도 수련의 체질이었다.예전에 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에게 이 체질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부귀의 체질은 그 자체로 부귀의 기운을 지니고 있어 무도를 수련하지 않더라도 가문을 번영하게 할 수 있었다.반면, 왕권의 체질은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이 체질은 가문을 승승장구하게 하고 국가급 지도자 한 명은 반드시 배출해 낼 정도의 체질이었다.약 10분 뒤, 진서준은 황현호의 복부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끝났어.”황현호는 몸이 한결 가벼워졌음을 느꼈다.가장 놀라운 건, 황현호의 체내 에너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황현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손발을 움직여보더니 진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네가 날 살리면 내 단전이 없어질 거라고 했잖아. 근데 왜 멀쩡하지?”황예은 또한 의아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황예은은 특히 진서준이 언급했던 ‘부귀의 체질’이라는 말에 더 신경이 쓰였다.진서준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힐끔 바라보며 눈짓을 보냈고 황예은은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말했다.“다들 일단 여기서 나가.”방에 진서준과 황예은, 황현호 세 사람만 남자 진서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왕권부귀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그게 뭔데?”황현호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황현호는 예전부터 먹고 놀고 즐기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반면 황예은은 어딘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내가 기억하기론 아빠가 그런 말을 언급한 적이 있어. 근데 그땐 나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진서준은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황경영 씨가 너희에게 뭔가 남겨준 게 없냐?”대한민국의 최고 갑부 황경영이 장악한 정보는 적지 않을 게 분명했다.그러니 아마 황현호가 부귀의 체질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다만 황현호가 무도를 배울 생각이 없어 보이자 굳이 말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황현호의 태어난 부귀의 체질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진정
“어떻게 낮춰야 할지 모르겠어.”황예은은 솔직히 털어놓았다.“제발, 이 두 글자만 붙이면 돼요.”서지은의 조언을 들은 황예은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제발 내 동생을 구해줘.”“거 참 말투가 딱딱하네.”황예은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우리 동생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네가 동생을 살려준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뭐든 할게.”하지만 진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봐...”황예은은 두 주먹을 꽉 쥐었고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파고들었다.“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도 모르잖아. 그냥 돌아가.”진서준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존중을 원한다 이거지?”황예은은 이를 악물더니 다리를 굽혀 무릎을 꿇었다.이 장면에 서지은과 허윤진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심지어 진서준조차도 순간 표정이 굳었다.그렇게 자존심 강한 여자가 지금 이 순간 동생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이 사실이 소문으로 퍼지기라도 하면 명주시 상류층 사회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제발 우리 동생을 살려줘.”황예은은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그녀의 말투는 조금도 나약하지 않았다.“일어나.”“네가 허락하지 않는 한, 일어나지 않을 거야.”황예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내가 구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 없어.”진서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길 안내해.”황예은은 그 말에 눈빛을 반짝이며 곧장 일어나 진서준을 데리고 차에 올랐다.황씨 가문으로 가는 내내 진서준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황예은 역시 침묵을 지켰다.30분 남짓이 지나 병실에 도착했을 때, 황현호는 얼굴이 창백해 종잇장 같았고 근육은 다 풀어져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상태였다.그 모습은 꼭 열흘은 굶은 떠돌이와도 같았다.진서준은 황현호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았다.“조금만 더 늦었으면 진짜 죽었을 거야.”진서준이 의아해하며 말했다.다시 말해 지금은 아직 살릴 기회가 있다는 뜻이었다.황예은은 그 말을 듣고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진서준은 황현호를 바라보며 냉랭하게 말했다.“내가 널 살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