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지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이 도시에서 그녀를 좋다고 쫓아다니는 남자는 넘쳐났기에 임무 수행만 아니었다면 남자를 못 찾을 리가 없는 그녀가 마을버스까지 올라타서 남자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어젯밤, 경찰서에는 현지 갑부의 아들이 신농산에서 여행하다가 중년 남녀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갑부의 아들이 납치되었다는 것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경찰들은 즉시 모든 인력을 동원해 조사를 진행했고 결국 이 버스에 범인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안수지는 그 중년 남녀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버스에 파견된 것이었고 그들이 차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연스럽게 돌아보면서 주시하기 위해 진서준에게 일부러 말을 걸었다.그러나 그녀는 상황이 자기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토라진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흥!”그리고 곧장 다시 몸을 돌리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서에 메시지를 보냈다.경찰서에 남아 있던 경찰들은 그녀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곧장 고속도로 길목에 방어진을 치면서 군중을 대피시켰다!한편, 버스 안에서는 얼굴에 뾰루지가 잔뜩 난 청년이 결심한 듯 그녀를 향해 걸어오면서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예쁜 아가씨, 내가 생긴 것과 달리 돈은 엄청 많거든요!”안수지는 곧장 휴대전화를 호주머니에 넣으며 냉담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당신이 돈이 많은 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그 청년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금시계를 뽐내려고 일부러 소매를 걷어 올렸다.“아니에요, 저는 그냥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에요!”청년은 자연스럽게 안수지의 옆자리에 앉더니 거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저는 여러 채의 집과 차, 억대의 자산까지 보유하고 있는데 유일하게 아내만 부족하거든요.”요즘 대부분의 여자는 비교적 현실적이라 돈을 위해서라면 자기보다 열 살이나 그보다 더 많은 중년 남자를 만나기도 했다!그 청년은 얼굴에 뾰루지가 잔뜩 나서 외모는 별로였지만, 젊은 데다가 엄청난 자산까지 보유하고 있어서 물질녀한테는 비교적 인기가 많
안수지는 진서준이 계속 말이 없자, 마음속으로 그를 경멸하기 시작했다.‘남자도 아니야!’경찰서의 젊은 남자 경찰들은 그녀를 빼앗으려고 자기들끼리 머리가 깨질 정도로 다퉜지만, 진서준은 잘생긴 얼굴과 달리 맞서 싸울 용기조차 없는 것 같았다.얼마 후, 시끄러운 상황에 언짢았던 진서준은 짜증을 내면서 차갑게 한마디 했다.“닥쳐!”얼굴에 뾰루지투성인 청년은 어리둥절해하더니 대수롭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여태껏 아무 말도 안 해서 말 못 하는 바보인 줄 알았지. 그런데 나한테 무례하게 말해? 내가 전화 한 통만 치면 당신을 장릉 마을에서 못 나가게 할 수도 있어!”진서준은 천천히 눈을 뜨더니 새까만 눈동자로 청년을 차갑게 쳐다봤다.“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버스는 왜 타지?”사실 다른 승객들도 그 정도로 대단하다는 그가 왜 버스를 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청년은 얼굴이 붉어진 채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고함을 질렀다.“난 그냥 버스를 타는 게 좋을 뿐이야. 당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나한테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전화해서 죽여버릴 수도 있어.”조희선은 진서준이 화를 참지 못해 청년을 때리느라고 귀가 시간이 지체될까 봐 그를 잡아끌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서준아, 됐어. 조금만 참아...”두 사람은 청년이 두려워서 피한 건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겁에 질린 것 같았다.조희선의 태도에 청년은 더욱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들었어? 당신 엄마가 참으라잖아! 역시 오래 살았다고 세상 물정을 잘 아네! 내가 화나면 팔 하나쯤은 쉽게 부러뜨릴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안수지는 이 정도의 모욕에도 참고 넘어가는 진서준을 보고 기개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곧이어 그 청년은 계속 안수지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무시할 뿐이었다.얼마 후, 버스가 고속도로 길목에 도착했고 운전기사는 길목에 서 있는 많은 경찰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때 한 경찰관이 차에 올라타면서 운전기사와 승
버스에서 먼저 내렸던 승객들은 놀라움에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조희선도 신농곡 사람이 쫓아온 줄 알고 두려움에 얼굴이 창백해졌다.“서준아... 이게 무슨 일이야? 설마 우리를 찾아온 건 아니겠지?”진서준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안심시켰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버스에 있는 사람은 우리를 찾으러 온 게 아니에요. 우리랑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진서준은 사실 버스에 올라탄 안수지가 먼저 말을 걸었을 때부터 그녀가 무슨 일로 왔는지 대충 짐작했다.버스 맨 뒷줄에 앉은 중년 남녀가 범죄자이고 경찰인 그녀가 그 두 사람을 주시하기 위해 버스에 탔다는 걸 말이다.단지 이 경찰관들은 아직 너무 어린 탓에 그 중년 남녀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를 뿐이었다!이때 진서준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 중년 남자가 노인에게 공손한 태도로 먼저 말을 건넸다.“왕 어르신, 여기까지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왕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오만한 눈빛으로 답했다.“내가 있는 한, 저 두 사람은 도망칠 수 없어!”경찰 국장인 안민수는 이내 버스에 있는 안지수와 젊은 경찰관을 향해 소리쳤다.“두 사람 빨리 버스에서 내려와서 인사해요! 왕 어르신께서 오셨어요!”왕 어르신이 왔다는 말에 두 사람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버스에서 내려왔고 그들 쪽으로 걸어가면서 바닥에서 울부짖는 청년을 멀리 끌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곧이어 안민수는 경적을 크게 울리며 버스에 있는 중년 남녀를 향해 소리쳤다.“당신들은 이미 포위했으니 반항할 생각하지 말고 당장 내려서 자수하세요!”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자기들을 에워싼 경찰들을 보며 시큰둥한 미소를 지었다.사실 중년 남자는 총알이 스쳐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무도 종사였다.“이런 쓰레기들을 데려오고 우리한테 항복하라는 건가?”안민수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다치고 싶지 않다면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현지 갑부의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범인에게 총을 쏘는 것이
이때 왕인혁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안 국장, 그냥 발포해!”드디어 정신을 차린 안민수는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쳤다.“모두 총알을 장전하고 저 여인을 향해 발포해!”남아있던 20여 명의 경찰관은 그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총알을 장전했다.종사가 아닌 중년 여인은 권총을 조금 무서워했다.그녀는 방심하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으로 손에 가늘고 날카로운 칼 하나를 들고 경찰들이 총알을 장전하는 사이에 돌격해서는 두 명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렸다.퍽퍽퍽...곧이어 총알이 소나기처럼 그녀를 향해 날아왔고, 중년 여인은 긴장한 몸으로 최대한 빠르게 1차 사살을 피했다!“저... 저 여자가 총알까지 피하다니!”안수지와 안민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어쩐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이더라니, 총으로도 제압하지 못하면 정녕 이 싸움을 이어 나갈 수 있을까?’이때 왕인혁이 한마디 하면서 전쟁터 가운데로 걸어갔다.“내가 두 사람을 너무 얕잡아 봤어. 경찰들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안민수는 급히 소리쳤다.“모두 철수해!”그의 지시가 떨어지자, 나머지 경찰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허둥지둥 뒤로 물러났다.왕인혁은 몸을 움직여 경찰들을 쫓아가려는 중년 여인의 앞을 가로막았다.바로 그때, 조금 전까지 가만히 있던 중년 남자가 도깨비처럼 빠른 걸음으로 왕인혁의 앞까지 돌진했다.“당신의 상대는 나야!”왕인혁의 눈에 놀라움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것도 잠시, 이내 기강을 모으더니 손을 들어 그 중년 남자를 가격했다.중년 남자도 물러서지 않고 손바닥으로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쾅...두 사람의 어마어마한 기세가 허공에서 충돌하면서 굉음이 났고, 콘크리트 바닥의 균열이 깨지면서 거미줄처럼 갈라졌다.안수지는 그들의 싸움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말했다.“이... 이게 인간한테서 나오는 힘이라고요? 아버지, 왕 어르신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요?”안민수는 이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이 세상에는 법으로 구속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은 총알을 무서워하지
안수지는 진서준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곧이어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당신이 왕 어르신을 구한다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하는 거죠? 아까 차에서 모욕을 당해도 아무 말 하지 못하던 사람이 이제 와서 사람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게 말이 돼요?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그녀는 하찮은 재벌 2세의 조롱에도 반박하지 못하던 그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악당을 구하러 나선다는 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이내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쳐다봤다.그러나 진서준은 담담한 태도로 반문했다.“하찮은 개미한테 분노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그들이 개미라는 건가요?”안수지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와 헛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그 사람이 개미라면 당신은 개미보다도 못한 존재예요! 그리고 왕 어르신은 당신의 도움 따위 필요 없어요. 그 두 바보는 어르신의 적수가 아니거든요.”“어르신이 누군지 알아요? 종사 급 무인이에요! 참, 당신 같은 사람은 종사가 뭔지도 모르죠.”안수진은 진서준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비아냥거렸다.사실 그녀도 종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총알을 막아낸다는 점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속에서 엄청난 존재로 자리 잡았다.“공격을 세 번만 더 받으면 무조건 질 거예요.”안수지와 쓸데없는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던 진서준은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곧이어 왕인혁의 양쪽 얼굴이 붉어졌고 중년 남자에게 대응하던 손도 희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그로써 그가 중년 남자의 적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고 계속 싸움을 이어 나간다면 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왕인혁은 자기를 이렇게 만든 상대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에 노려봤다.“당신, 대체 누구죠?”그러자 그 중년 남자는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곧 죽을 네 체면을 봐서라도 내 이름은 알려줄게. 난 진윤호라고 해, 무도계 놈들은 날 식인호라고 부르지!”식인호라는 말에 왕인혁과 안민수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
진윤호는 이내 차가운 눈빛으로 왕인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국안부에 대해서 나도 잘 알지. 당신을 죽이면 국안부에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게 뻔해서 목숨만은 살려줄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살아서 나갈 생각하지 마!”왕인혁은 진윤호가 역시 듣던 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색이 어두워졌고 곧장 안민수에게 소리쳤다.“내가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 테니까 어서 여기를 벗어나!”안민수는 생각지도 못한 그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물었다.“네? 어르신께서 저놈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까?”“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도망쳐!”진윤호가 자기를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왕인혁은 사람들이 도망칠 시간을 끌어주려고 무작정 진윤호를 향해 돌진했다.안수지도 왕인혁의 발언에 눈이 휘둥그레졌다.‘왕 어르신의 실력으로 식인호를 이길 수 없다고?’그녀는 곧장 진서준을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은 어떻게 알았어요? 우연히 알아맞힌 거죠?”진서준은 안수지의 말을 무시하고 왕인혁을 향해 소리쳤다.“내가 해결할 테니까 물러나세요!”그러나 왕인혁은 전력을 다해 싸우느라 진서준의 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이때 안민수가 이를 악물며 경찰관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다들 왕 어르신의 호의에 감사해하며 빨리 철수해!”곧이어 안수지도 진서준의 팔을 끌어당기며 다그쳤다.“못 들었어요? 빨리 당신 어머니를 모시고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요!”하지만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끌어당겨도, 그는 우뚝 솟은 산처럼 움직이지 않았다.퍽...그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진윤호에게 공격을 당한 왕인혁이 10여 미터까지 날아가서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입에서 엄청난 양의 피를 뿜어냈다!안수진은 결국 진서준을 향해 크게 외쳤다.“빨리 가요!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요?”그러자 진윤호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지금부터 그 누구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어! 어린 아가씨, 부드러운 피붓결이 엄청나게 맛있게 생겼네요.”안수지는 온몸의 솜털이 곤두선 것도 모자라, 몸
진서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안수지와 다른 사람들은 생소하다고 생각할 뿐이었지만, 왕인혁은 온몸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진서준이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자, 운전기사와 승객들은 총이 난무하는 틈을 타서 도망친 상태였고 그곳에는 총구멍이 가득 난 버스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그는 조희선의 곁으로 다가가면서 말했다.“해가 떨어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네요. 엄마, 우리 중고차를 사러 가요. 운전해서 집에 가는 수밖에 없겠어요.”새 차를 사려면 번거로운 절차들 때문에 반나절이나 기다려야 했기에 그는 상대적으로 편리한 중고차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조희선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엄마는 네 의견에 무조건 찬성이야.”그녀는 진서준이 더 이상 예전의 철없던 아이가 아닌 대견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이때 안수지가 진서준의 앞을 가로막았다.“잠깐만요, 이대로 가면 안 되죠!”진서준은 얼굴을 찡그리며 언짢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면서 물었다.“또 무슨 일이죠?”안수지는 곧장 엄숙한 태도로 답했다.“저희랑 같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죠.”그녀는 왕인혁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진서준이 버스를 탄 것은 분명히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아닌지를 밝혀내기로 결심했다.진서준은 경멸의 미소를 지으면서 되물었다.“내가 조사를 왜 받아야 하죠? 내가 무슨 죄를 지었죠? 당신의 작업에 넘어가지 않아서인가요, 아니면 당신을 보고도 못 본 체해서인가요?”그의 말에 다른 경찰관들은 수상한 눈초리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면서 나지막하게 수군댔다.“작업이라니요? 우리 안 경사가 먼저 저놈한테 대시했단 말이에요?”“이 세상 어느 남자가 안 경사의 대시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관건은 식인호를 단번에 죽인 걸로 보면 저놈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게 확실해요.”안민수는 그들의 수군거림에 화가 났는지 대뜸 고함을 질렀다.“언제까지 여기서 떠들 생각
왕인혁은 숭배심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용존이 바로 진 상경의 타이틀이야!”안수지는 용존과 상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왕인혁의 표정에서 진서준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실력을 갖췄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게다가 여태껏 벌어진 모든 사실도 그의 실력을 증명하고 있었다.왕인혁은 진서준이 중고차를 사러 간다는 말이 떠올라 다급하게 제안했다.“용존님, 차가 필요하세요? 제가 전화해서 당장 가져다 달라고 하겠습니다!”“괜찮겠어요?”“괜찮습니다, 10분 안에 가져다 달라고 하겠습니다!”왕인혁이 휴대전화를 꺼내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부자에게 전화를 걸려는 순간, 안민수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공손하게 한마디 했다.“왕 어르신, 제가 수지한테 차로 용존님을 집까지 모시라고 하겠습니다!”진서준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손사래를 쳤다.“됐어요, 날 집이 아닌 경찰서에 데려갈지 누가 알아요.”안수지는 조금 전까지 지질한 사람이라고 조롱했던 진서준을 자기가 숭배하는 왕인혁이 극진히 모시는 이 상황이 민망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왕인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용존님, 그러면 제가 같이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저의 자그마한 성의라고 생각해 주세요.”진서준은 이내 안수지를 한 번 바라보면서 물었다.“운전 실력이 어때요?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서울시에 도착할 수 있겠어요?”안수지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고 왕인혁에게 고마움의 눈빛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문제없어요!”“그럼, 빨리 떠납시다!”진서준도 그와 어머니를 빨리 서울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면 어린 계집애와 이것저것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서울로 가는 차 안, 진서준이 먼저 왕인혁에게 말을 걸었다.“지난 보름 동안 대한민국 무도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왕인혁은 그의 과분한 총애와 우대에 기뻐하면서도 불안감이 엄습했다.“아직 큰 움직임은 없지만 국안부의 인원 이동이 좀 잦습니다. 중부의 호국사들이 모두 국경으로 이동했고 해외에 있던 사람들도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
별장에서 황예은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옷이 거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상반신에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 속옷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이 속옷은 서지은이 가져온 속옷이었고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이었다.그리고 하반신에는 아까 진서준이 마사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여자는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예은의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지금 심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황예은은 자기 알몸을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사실 이번이 진서준에게 두 번째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순간이란 걸 몰랐다.“서준아, 왜 노크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어...”서지은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지은은 진서준이 약왕 이용진과 저녁 식사를 오래 하고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진서준이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다.“언제까지 더 볼 생각이야?”황예은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게.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날 불러.”진서준이 나간 뒤, 황예은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진서준이에요. 제 남자친구거든요.”서지은이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마디 보탰다.“예은 언니, 사실 언니 목숨도 진서준이 구한 거예요.”그 말을 듣자 황예은의 눈에서 뿜어나오던 냉기가 다소 누그러졌다.어쨌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너무 차가운 태도로 대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황예은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내 옷은 네가 벗긴 거야?”서지은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준이 언니를 치료할 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먼저 언니를 여기 데려온 거예요. 나도 여기 들어와 치료 과정을 볼 때 서준이 언니를 추행하는 줄 알았어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박씨 가문의 의도가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박씨 가문의 일은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진서준의 우선순위는 약재를 구하고 모든 정력을 간첩을 잡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호텔을 떠난 진서준은 이용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30여 분을 달린 끝에 진서준 일행은 마침내 이용진의 장원에 도착했다.이용진의 장원 면적은 서씨 가문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화려함만큼은 서씨 가문을 능가할 기세였다.각종 명인의 고화와 진귀한 보물들이 온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이 모든 보물은 하나하나가 최소 10억 이상의 진품이었고 적어도 진서준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조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보물들만 해도 자산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을 될 터였다.“용존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이용진이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난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군요...”이용진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돈을 통해 진서준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들고자 했던 이용진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진서준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나중에 치료를 부탁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이용진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약왕님 체내 내상이 다 나으면 매주 두 번씩 무도를 연마하고 한 달에 다른 사람과 한 번 실력을 겨루는 수준으로 수련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왕님 무도 실력도 늘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꼭 용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이용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많은 별장을 지나 진서준은 이용진을 따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냉장실로 들어갔다.냉장실 안에는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각 기둥 위에는 희귀한 약재들이 놓여 있었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다.진서준이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에 진열된 약재는 성약당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희귀성만큼은 성약당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 사람은 바로 어제 서울시에서 체포되었던 박운기였다.진서준 역시 이렇게 빨리 박운기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운기야, 저 사람 알아?”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박운기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바로 저놈이 사람들을 이끌고 내 계획을 망쳤습니다.”박운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만약 진서준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박운기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박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운 시선 대신 온갖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이번에 서울시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박운기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경쟁했다.모두가 보기에 이 임무는 그야말로 공을 세우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쉬운 임무를 박운기가 망쳐버렸다.망친 것도 모자라 박씨 가문은 관계를 동원해 박운기를 구출해야만 했다.공을 세워야 할 장사가 완전히 손해만 본 장사로 탈바꿈한 것이다.박씨 가문의 계획을 망친 장본인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 중년 남자는 진서준을 쓱 훑어보고는 냉랭하게 비웃었다.“전설 속의 용존님,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시는군요.”진서준은 그 남자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잠깐 스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약왕님은 언제부터 용존님과 친구가 되셨습니까?”중년 남자는 이용진을 발견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박재명, 분명히 말해두지. 용존님 일은 바로 내 일이야. 감히 용존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용진이 싸늘하게 대응했다.박재명은 박씨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그는 단지 박서명의 넷째 동생일 뿐이었다.그래서 이용진은 굳이 박재명을 깍듯하게 모시며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이용진의 말에 박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약왕님, 굳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박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이용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
이용진은 평생 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를 지키는 두 호위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아니, 심지어 방어할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당하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곽윤상 역시 진서준이 갑자기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약왕님, 이분은 바로 국안부 용존님이십니다.”곽윤상이 재빨리 이 틈을 이용해 설명했다.“뭐라고? 네가 바로 그 용존이라고?”이용진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용존이라는 이름은 이미 명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대다수 명주시 명문대가는 이 절세 천재를 돈으로라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진서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서준이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은 인물이니 앞으로 거의 3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서준과 겨뤄볼 만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심지어 4대 은거 문파조차도 진서준에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보시다시피 용존이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처음부터 용존이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이용진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나이에 육급 절정의 대종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이용진은 이제야 이 청년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용존님, 방금 제가 무례했던 점은 널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약왕 이용진은 몸을 약간 숙이며 진서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조금 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용진은 곽윤상이 명주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질책했었다.그런데 3분도 안 돼 본인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이용진은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약왕님, 앉으세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