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규석 등 사람들이 떠나자, 김연아는 진서준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했다.“서준 씨, 제가 또 신세를 졌네요.”“괜찮아요. 별일 아니에요.”진서준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시간이 늦었으니 저는 먼저 집에 돌아가겠어요. 며칠 후에 마지막으로 다시 침을 놓아드릴게요.”진서준이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김연아의 눈에는 서운함이 스쳤다.그녀는 진서준을 붙잡으려 했다.“함께 점심이라도 먹으면 안 될까요?”이 말을 하자 김연아도 자신이 많이 변했음을 느꼈다.예전의 그녀는 남자들과 절대 주동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뜻밖에도 진서준과 함께 점심을 먹자고 했다!“그럼, 다음에 같이 식사하시죠. 오늘 점심에는 집에 돌아가기로 어머니와 약속했어요.”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네. 알겠어요.”김연아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참, 제 친구도 몸이 아픈데 혹시 치료해 주실 수 있나요?”“물론이죠. 제가 오후에 시간이 있으니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그럼, 오후에 다시 전화할게요!”오후에 진서준을 또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김연아는 살짝 기뻤다.진서준이 집에 도착했을 때 진서라는 이미 점심밥을 다 해놓았다.“우리 집에 밥을 잘하는 동생이 있으니 정말 행복하네!”진서준이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식사 중에 진서준이 물었다.“오늘 운전 연습하러 갔는데, 어땠어?”진서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았어.”하지만 진서준은 진서라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밥을 먹은 후 진서준은 진서라와 함께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있었다.“서라야, 혹시 무슨 일이 있었어?”“아니야.”진서라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넌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야. 아까 네 표정을 다 보았어.”진서준은 진지하게 진서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오빠한테 말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진서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건 뭐 큰일도 아니야. 그냥 어떤 남자가 계속 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어.”“다
진서준이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 조성우는 진서준이 자신을 놀리는 줄 알았다.조성우는 화가 나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한 번 더 묻겠어요. 의과대학 나온 거 맞아요?”“아니에요.”진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조성우는 상을 치며 일어나서 진서준을 노려보고 있었다.“그거 아세요? 제멋대로 의사 놀이를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도 같다는걸!”김연아는 표정이 바뀌었고 조성우가 일을 망칠 것만 같았다.“성우 오빠, 지유 언니. 진정하세요. 저 김연아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모르세요?”조성우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자기 입으로 의과대학 나온 사람이 아니라는데,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한지유도 꾸짖는 말투로 말했다.“연아야. 너무 신중하지 못했어. 아마 너도 이 사람한테 속은 것 같아.”조성우, 한지유 부부는 김연아와 매우 친하게 지내던 사이었다.그들이 지금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김연아가 방금 진서준의 의술이 훌륭하다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다.기대에 잔뜩 차서 왔지만 지금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은 화를 안 낼 수 없었다.진서준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조 사장님 맞으시죠? 사장님은 요즘 식욕이 없고 기운이 없어요. 매일 밤에 잠을 못 자고 꿈이 많아서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 수 있고요. 그리고 술을 마실 때마다 치질이 재발해서 화장실에 갈 때마다 고통에 시달리지요.”조성우는 살짝 놀라서 멍해 있었다. 두 부부는 눈을 크게 뜨고 놀라서 진서준을 향해 물었다.“어떻게 아셨어요?”진서준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한지유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사모님은 월경장애를 겪고 있고 복부가 자주 붓는 걸 봐서는 이건 난소암의 전증이에요. 그리고 그 외에도 가슴이 답답하고, 요즘에는 사소한 일로 남에게 화를 많이 낸 적이 있지요.”조성우 부부는 완전히 멍해졌다.진서준이 방금 말한 병세는 그저께 병원에 가서 진찰받은 결과였다.당시 진료를 본 의사 외에 다른 사람은 알 리가 없었다.
진서준은 BMW 자동차 대리점 문 앞에 왔다.가게 안의 판매원이 진서준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를 맞이하러 다가갔다.이때 한 남자 판매원이 경멸의 어조로 말했다.“걸어서 여기까지 온 저 사람이 입은 옷 좀 봐봐, 딱 봐도 BMW 자동차를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보아하니 그냥 와이파이나 에어컨을 공짜로 쓰러 온 사람이잖아! 상대도 하지 마!”BMW 차는 비교적 고급 차인 셈이었고 가장 싼 차 한 대도 4,000만 원 이상이었다.그래서 이런 종류의 차를 사는 사람들은 모두 거의 부자였다.남자 판매원의 말을 듣고 진서준을 접대하러 가려던 판매원도 잠시 진서준이 입고 있는 옷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진서준의 옷차림이 정말 별로인 것을 보자 판매원은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진서준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혼자 마음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한참을 둘러본 후, 진서준은 전에 보았던 BMW8 시리즈가 괜찮다고 생각했다.그는 고개를 돌려 남자 판매원에게 물었다.“이 BMW8 시리즈, 새 차가 있어요? 있으면 지금 바로 살게요.”남자 판매원은 바보처럼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이 차가 얼마인지 알아요? 혹시 뒤에 붙은 숫자 0을 잘못 본 거 아니에요?”남자 판매원의 말투에 약간의 경멸이 담긴 것을 보고 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젤 비싼 차가 2억 4천만 원이잖아요. 제가 똑똑히 보았어요!”그러자 남자 판매원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똑똑히 보았다면 더 이상 허튼소리 치지 마세요. 2억 4천만 원이 되는 차를 살 수 있어요? 만약 당신이 정말 살 돈이 있다면 먼저 지금 입고 있는 옷부터 갈아입고 여기 와서 부자 놀이 해요!”진서준은 자기가 또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판매원을 만났다는 것을 알았다.옷차림은 어느 정도 한 사람의 경제력을 보여줄 수는 있었지만, 부자면 꼭 화려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규정한 사람은 없었다.“여기 판매원들은 손님들한테 이렇게 대해요? 컴플레인 당하면 어찌하려고!”판매원은 진서준이 컴플레
조성우도 이곳을 향해 걸어오는 진서준을 알아보았다.그는 곧장 진서준의 앞으로 가서 진서준의 손을 잡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진 선생님, 그전에 있었던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이 장면을 보자 놀라움에 금치 못했고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수많은 판매원이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도영한과 아까 진서준을 깔보던 남자 판매원은 더더욱 멍해졌다.그들 둘은 바보처럼 제자리에 서있었다.방금 그들에게 모욕당했던 청년이 뜻밖에도 그들의 사장님과 아는 사이였다!그리고 조성우의 모습을 보면 사장님께서는 이 청년에게 매우 공손히 대했다.그들 둘은 이번에 자신이 큰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고, 모두 서로 눈에서 공포스러운 감정을 보았다.“조 사장님.”진서준은 담담하게 조성우에게 인사를 건넸다.“진 선생님! 아까는 저희 부부가 잘못했어요. 부디 마음에 두지 마세요!”조성우는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개의치 않고 공손하게 진서준에게 사과했다.조성우는 만약에 지금 사과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정말 사과할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자기의 사장님이 진서준에게 사과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또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조성우는 서울시의 모든 자동차 대리점의 사장이었고 심지어 그의 몸값은 2조 원이나 될 정도로 큰 인물이었다!조성우마저 모든 사람 보는 앞에서 진서준에게 사과해야 할 정도이었으니, 진서준의 실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꽈당하는 소리와 함께 도영한과 진서준을 깔보던 남자 판매원은 다리가 풀려서 땅에 그대로 주저앉았다.이 상황을 본 조성우는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이놈들! 왜 제대로 서있지도 못해!”조성우의 화가 난 목소리를 들은 도영한은 정신을 차리고 겁에 질린 얼굴로 자진 고백했다.“사장님, 우리가 방금 건드린 사람이 바로 진 선생님이에요.”“뭐라고?”이 말을 들은 조성우는 2초 동안 멍하니 서있었다.불과 한 시간 전에
진서준의 분부에 조성우는 그 어떤 불만도 없었다.한지유는 진서준이 자기에게 침을 놓으려고 하자 한 마디 물었다.“진서준 씨, 저 옷 벗을까요?”“바지 벗으세요.”진서준이 말했다.그러나 그 말을 한 진서준은 어쩐지 무안해 보였다.한지유는 비록 서른이 넘었지만 관리를 아주 잘했고 얼굴도 무척 예뻤다.그녀에게 자기 앞에서 바지를 벗으라고 하니 진서준은 어쩐지 쑥스러웠다.“진서준 씨, 왜 얼굴이 빨개졌어요?”진서준의 표정을 본 한지유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조성우는 조금 전 한지유에게 바지를 벗으라는 진서준의 말을 듣고 조금 언짢아졌다.그러나 쑥스러워하는 진서준의 표정을 본 그는 곧바로 언짢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의 표정은 그가 점잖은 사람이라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진서준 씨, 마음 푹 놓고 침놓으세요. 저희 부부는 진서준 씨의 인성을 믿습니다.”한지유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저희는 진서준 씨를 믿어요. 연아의 안목도 믿고요.”김연아는 한지유에게 진서준이 자기를 치료해 줄 때 거의 헐벗었다고 했었다.그리고 진서준은 치료 과정 중에서 전혀 자신의 사심을 채우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한지유가 그렇게 말했으니 진서준도 더는 난감해하지 않았다.“전 일단 돌아서 있을게요. 한지유 씨는 바지를 벗은 뒤에 겉옷도 벗어주세요.”진서준이 말했다.“네.”바스락 소리와 함께 한지유는 아주 빠르게 진서준의 분부대로 바지와 겉옷을 벗었다.조성우는 알코올을 들고 VIP룸으로 돌아왔다.진서준은 알코올로 소독했고 조성우는 진서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진서준 씨, 전 먼저 나가 있겠습니다. 침놓는데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조성우가 자신을 믿어주자 진서준도 별말 하지 않았다.“진서준 씨, 전 준비 됐어요. 언제든 침을 놓으셔도 좋아요.”한지유는 널따란 소파에 누워서 눈을 감고 진서준이 침을 놓아주길 기다렸다.은침을 들고 돌아선 진서준은 한지유의 훌륭한 몸매를 보았다.풍만한 가슴에 길고 흰 다리, 성숙한 여자에게서만 느
용행 무관.그곳에서는 십여 명의 검은색 도복을 입은 청년들이 연습하고 있었다. 도관 안에는 총 50여명 정도가 있었고 다들 실력이 약하지 않은 듯 보였다.그중 반 이상이 시 대회나 전국 대회에 나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얼마 뒤, 청년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와서 빠른 걸음으로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중년 남성의 앞으로 걸어갔다.“강 관장님, 도전장은 이미 보냈습니다.”청년은 공손한 태도로 중년 남성을 보았다.그 중년 남성은 강호걸의 아버지이자 서울시 무술 협회 부회장인 강옥산이었다.그는 여러 차례 서울시 무술 협회를 대표해 전국 태권도 대회, 킥복싱 대회에 참가했고 무에타이 등 다양한 무술로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심지어는 해외 고수들까지 그에게 패배한 적이 있었다.“감히 내 아들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난 오늘 그놈의 사지를 부러뜨리겠어. 내가 너무 오랫동안 조용히 지냈나 봐. 그래서 우리 강씨 집안이 만만하다고 생각한 거겠지.”말을 마친 뒤 강옥산은 두 눈을 번쩍 떴다.그의 호랑이 같은 눈동자에 무관의 코치들은 겁을 먹고 안색이 창백해졌다.강옥산은 갑자기 손을 번쩍 들어 앞에 놓인 대리석을 단번에 부쉈다.펑 소리와 함께 20센티미터 두께의 대리석이 소리를 내면서 깨졌다.도관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강옥산의 실력을 아는 코치들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관장의 실력이 또 강해진 듯했다.“호랑이도 관장님의 무시무시한 한방을 당해낼 수 없을 거야.”“도전장을 받은 청년이 오늘 저녁 찾아온다면 틀림없이 죽을 거야.”“저걸 사람이 맞았다면... 감히 상상도 못 하겠네.”“저녁에 우리 내기하자고. 저 녀석이 얼마 버티는지 말이야.”일부 수강생들과 코치들이 수군덕댔다. 강옥산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 두려움과 존경심이 가득했다.“아버지, 겨우 청년 한 명일 뿐인데 왜 직접 나서세요? 제가 대신하겠습니다!”그 목소리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문가를 바라보았다.강옥산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185센티미
복면을 쓴 강성준을 본 진서준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예전에 고한영이 도영광은 아주 속 좁은 사람이라 당한 것은 꼭 갚는 성격이라고 했었기 때문이다.그는 분양처 매니저일 뿐만 아니라 관리사무소 소장이기도 했다.그래서 진서준은 이 모든 것이 도영광의 계획일 거라고 짐작했다.강성준은 진서준이 태연해 보이자 비록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그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쓸데없는 얘기를 하지 않고 빠르게 진서준을 향해 덤볐다.강성준의 두 주먹은 철과 같아 공기마저 그의 철권에 찢어지는 듯했다.그러나 진서준은 이런 철권 앞에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평온했다.마치 자신을 때리는 것이 주먹이 아니라 솜인 것처럼 말이다.그의 태연한 태도에 강성준은 욱했고 눈동자에 살기가 어렸다.먼 곳에 숨어있던 도영광은 그 광경을 보고 입가에 조롱의 미소가 걸렸다.“저 자식 분명 강성준의 기세에 겁을 먹고 멍청해진 걸 거야!”학창 시절, 강성준은 홀로 대학 농구팀의 남학생들과 싸운 적이 있었다.그리고 졸업한 뒤에는 그의 아버지가 그를 한 고수에게 보내 실력을 쌓게 했다.도영광이 보기에 강성준이 진서준을 상대하는 것은 타이슨과 아기가 경기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강성준이 따르던 그 종사는 철권을 수련했다.강성준은 3년 동안 매일 쇠 모래에 주먹을 담그며 권법을 연습했고 매번 두 손이 피범벅이 되어서야 멈췄다.그리고 이후 2년 동안 강성준의 주먹은 위력이 나날이 상승했다.그는 예전에 깊은 산 속에서 굶주린 늑대 한 마리를 주먹 한 방으로 때려잡았고 그로 인해 다른 늑대들은 겁을 먹고 도망쳤다.심지어 그는 강철판도 쉽게 뚫을 수 있었다. 그러니 사람의 몸은 말할 것도 없었다.진서준의 움직임은 강성준이 보기에 죽음을 자초하는 움직임이었다.주먹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강성준과 진서준의 거리가 2미터가량 될 때 진서준이 드디어 움직였다.어느샌가 그의 두 손은 청색이 되었고 노을을 받아 은은한 광택이 감돌고 있었다.그 광경에 강성준은 큰
용행 무관.무관 안의 사람들은 강성준이 비참한 꼴로 돌아오자 모두 깜짝 놀랐다.“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설마 누군가에게 맞은 건 아니죠?”“1년 전 저는 강성준 씨가 주먹으로 벽에 5센티미터 깊이의 흔적을 낸 걸 직접 봤는데요!”“설마 서울에 강성준 씨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는 걸까요?”사람들은 놀랍다는 얼굴로 수군덕거렸다.“아버지, 아버지!”강성준의 목소리를 들은 강옥산이 무관 휴게실에서 나왔다.“성준아, 어떻게 된 일이냐?”강성준의 꼴을 본 강옥산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해요.”강성준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무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만약 그가 그보다 어린, 젊은 청년에게 맞았다는 걸 그들이 알게 된다면 앞으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두 부자는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고 강옥산은 곧바로 방문을 굳게 닫았다.“아버지, 저 맞았습니다. 심지어 그 사람은 제 오른손을 짓밟아 부러뜨렸어요!”강성준이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뭐라고?”강옥산은 처음엔 놀라워하더니 이내 눈빛에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오늘 그의 작은 아들은 팔이 부러졌고 이제는 큰아들까지 손이 부러졌다.누군가 일부러 그의 강씨 집안을 노리는 걸까?“널 이렇게 만든 그 빌어먹을 놈의 이름이 뭐냐?”강옥산이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강성준은 다소 무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몰라요.”당시 도영광은 그에게 사진 한 장만 건네줬을 뿐, 진서준의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다.“그놈이 널 어디서 때린 거냐?”강옥산이 또 물었다.“한 아파트에서요. 그 자식 아파트에서 살았어요.”강성준의 말에 강옥산은 어리둥절해졌다.“아파트는 왜 간 거야?”“아버지, 저는 제 후배를 위해 나선 거였어요. 그런데 상대방이 꽤 강한 놈이었어요.”강성준은 울화통이 치밀었다.그는 진서준뿐만 아니라 도영광에게도 복수를 할 셈이었다.“그래, 알겠다.”강옥산의 안색이 흐렸다.“오늘 저녁 그 진씨 성을 가진 놈을 해결한 뒤 내일 사람을 데리고 널 때린 그 자식
30분 후.“내가 먼저 올라가서 구할 겁니다.”진서준이 모두에게 선언했다.“진 교관님,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소정태가 앞으로 나서서 뜻을 밝혔다.“필요 없어요. 인질 구출은 나 혼자로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혼자 발걸음을 옮겨 폐기된 타이어 공장으로 향했다.2만 명의 부하들이 매서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주시하며 혹여나 이상한 짓이라도 할까 봐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어제 이 사람들은 이 청년의 실력을 직접 경험했고 이 청년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그런 괴물이 혼자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이 스며들었다.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비켜줬고 진서준은 조용히 폐기된 타이어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유기명이 널 보낸 거야?”진서준을 본 장정범 부자는 순간 멍해졌다.그들이 알던 진서준은 언제나 김평안의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가면 없이 나타나자 그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유정은 어디 있지?”진서준이 냉정하게 물었다.“끌어내!”장우림이 명령하자 두 손이 묶인 유정이 끌려 나왔다.“오빠!”유정은 진서준을 보자마자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유정아, 괜찮아?”진서준이 물었다.“저는 괜찮아요, 오빠. 국색천향 처방전을 절대 넘겨주면 안 돼요.”유정이 다급하게 외쳤다.“닥쳐, 이년아!”장우림이 유정을 노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순간, 진서준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유씨 가문이 약 처방전도 넘기고 국색천향도 전부 우리에게 넘긴 후, 앞으로 국색천향 연구도 절대 금지한다, 알았어?”장정범이 조건을 내걸자 진서준은 통쾌하게 수락했다.“좋아.”진서준이 통쾌하게 승낙하자 장정범은 별다른 의심이 들지 않았다.왜냐하면 진서준이 지금 이 상황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진서준이 처방전을 던지자 장정범은 얼른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아직은 인질을 풀 수 없어. 국색천향이 정식으로 우리 손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이 처방전이 진짜인지도 확
“서준아, 저 사람들 설마 네가 부른 건 아니겠지?”모두의 시선이 단숨에 진서준에게 쏠렸다.“맞아요, 제가 부른 겁니다.”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저 사람들은 누구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저건 혹시 8대 특전대 깃발인가?”유기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확인하느라 애썼다.거리가 멀어서 윤곽만 희미하게 보일 뿐, 저 사람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가까이 가야 확인할 수 있었다.“가까이 가보면 알 겁니다.”진서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아꼈다.호기심이 가득한 유기명 일행은 진서준을 따라 군중 쪽으로 향했다.가까이 다가가자 유기명 일행은 그대로 얼어붙었다.“8대 특전대가 전부 다 왔잖아!”강한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들은 전부 대한민국 군부 최정예를 상징하는 8대 특전대 것들이었다.“그리고... 전설의 전 도사님, 한 상경님까지 어쩌다가 여길... 저 사람은 설마... 샛터 소하비 왕자인가?”그야말로 전설 속 인물들이 눈앞에 한꺼번에 나타나자 서남 지역 최고의 가문을 자처하던 유기명조차 멍하니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서남 지역 대종사 일인자로 불리는 서산객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너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설마 진서준이 이 정도의 인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저 진서준이 진심으로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진서준은 사람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진 교관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우리가 지금 8대 특전대에서 새로 태어난 것도 다 진 교관님 덕분입니다.”“맞습니다, 용존님. 보해 전투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다 용존님 덕분 아닙니까?”“그래도 감사해할 줄은 아네요.”소하비가 시큰둥한 척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감격 그 자체였다.진서준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는다는 건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일이었다.“진 교관님, 어젯밤 저희 군부에 위성을 요청해서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진 교관님 여동생을 납치한 놈들은 지금 서쪽 지역
그때 그 짜릿한 광경은 아직도 그들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었고 아마 죽을 때까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이제 용존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이 대종사들은 당연히 와야 했다.국안부의 절반에 달하는 고수들이 지금 이 자리에 집결했다.“전 도사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소정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어라? 너희는 아직 무슨 상황인지 잘 몰라?”전원경이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네, 잘 모릅니다.”소정태가 고개를 저으며 순순히 인정했다.“용존님 여동생이 납치당했어.”전원경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스쳤다.“뭐라고요? 어떤 미친놈이 간땡이가 그렇게 부은 건가요? 감히 진 교관님 여동생을 건드린다니, 죽으려고 환장했네요.”이상아가 분노를 터뜨리며 욕설을 퍼부었다.진서준은 사령관들을 다시 태어나게 한 은인이나 다름없었다.은인의 가족이 납치당했다니, 사령관들은 당연히 참을 수 없었다.“우리도 누가 이렇게까지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지 몰라.”전원경이 고개를 저었다.“묘강조차 용존님 손에 뒤집어졌는데 아직도 용존님을 건드리는 놈이 있다는 게 신기해.”한창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이 세상엔 사람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미련한 놈이 참 많아. 처음엔 나도 용존에 대해 편견이 좀 있었지. 근데 다행히 하문천 어르신이 날 제지했어. 안 그랬으면 용존님 날 제대로 혼뜨검 냈을 거야.”“네?”모두가 그 말에 깜짝 놀랐다.국안부 상경인 한창순 같은 대단한 인물도 진서준과 충돌한 적이 있을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교회 황혼 기사, 올림푸스 신왕, 그리고 멸용 조직 절세 강자. 이 세 사람을 용존님이 단 하룻밤 만에 연달아 베어버렸어.”“헐...”모두가 차가운 숨을 들이켰다.한창순이 말한 이 세 사람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절세 강자였고 천의방에도 이름을 올린 천재이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인물들을 진서준이 혼자서 단 하룻밤 만에 모조리 베어버렸다.대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실력이어야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지?더 충격적인 건 진 교관
그날 밤, 유정의 안전을 우려한 유기명은 밤새 뒤척이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어쨌든 장씨 부자는 제대로 된 인간들이 아닌 음흉한 놈들이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저 개자식들이 내 딸한테 손가락 하나라도 대면 반드시 생지옥을 맛보게 해주겠어.”유기명은 속으로 이를 갈며 다짐했다.밤이 점점 깊어졌다.한 대, 또 한 대... 비행기가 잇따라 금도 근처 공항에 착륙했다.곧이어 군용 번호판을 단 험비들이 줄줄이 공항을 빠져나왔다.공항에서 나온 차량 행렬은 곧바로 유씨 가문을 향해 직진했다.그리고 유씨 가문 장원에서 500m 떨어진 곳에서 모든 차량이 일제히 정차했다.어떤 소음도 없이 차 안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대기했다.이들은 바로 수천km 밖 설표 특전대에서 급히 파견된 8대 특전대 전 병력이었다.800여 명이 이 밤에 한곳에 집결한 것이었다.“아마 진 교관님은 쉬고 계실 테니 모든 장병은 이곳에서 휴식해. 내일 아침, 진 교관님의 명령을 기다려.”소정태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알겠습니다!”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차량에서 내려 조용히 바닥에 자리 잡고 휴식을 취했다.하지만 소정태를 비롯한 8대 특전대의 여덟 지휘관은 잠을 청하지 않고 한자리에 모여 낮은 목소리로 내일 있을 일을 논의했다.“진 교관님이 전화로 다른 말은 없었어?”이상아의 질문에 소정태가 대답했다.“없었어. 그냥 오라고만 하셨지. 아무래도 큰일이 벌어진 것 같아.”“8대 특전대가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고인권이 웃으며 말했다.“그러게. 예전엔 서로 경쟁하느라 바빴는데 이번엔 한마음이 됐네.”소정태가 이런 신기한 상황에 감탄했다.“이게 다 진 교관님 덕분이지. 그분이 아니었다면 우리 8대 특전대는 아직도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었을 거야.”“맞아, 진 교관님한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어.”그렇게 소정태를 비롯한 사령관이 얘기를 나누던 중, 멀리서 불빛이 번쩍였다.여덟 명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을 주시하자 검은색 승용차들
“소정태, 진 교관님이 우리한테 임무를 주셨어?”이상아의 눈빛이 번쩍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진심으로 은혜를 갚겠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진짜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8대 특전대 전원, 즉시 출발하래. 목적지는 금도야.”“금도? 거기 가서 뭘 하라는 거지?”고인권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진 교관님이 자세한 내용은 말씀 안 했지만 해 뜨기 전까지 도착하라고 하신 걸 보면 중요한 일이 있는 게 분명해.”“좋아, 바로 아래에 명령을 전달하자.”“전원 집합! 5분 안에 짐 정리하고 공항으로 모인다.”“진 교관의 명령이야. 전원, 금도로 출발!”소정태는 군구의 최고 책임자인 최해준에게도 따로 연락을 넣었다.진서준의 명령이라는 걸 듣자 최해준은 단 한마디도 묻지 않고 바로 승낙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8대 특전대에 연락을 마친 후, 이번에는 국안부로 전화를 걸었다.“제 동생이 잡혔습니다. 상대는 2만 명이고요. 위치는 금도입니다.”진서준은 굳은 얼굴로 상황을 전달했다.“현재 임무가 없는 인원은 전부 투입하마.”전화 너머에서 진서훈이 조용히 대답했다.“감사합니다.”“묘강에서 네가 해낸 일은 정말 대단했어.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진서훈이 웃으며 말했다.곧바로, 진서준은 또 다른 번호를 눌렀다.“진서준 씨?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나한테 전화를 다 걸고?”소하비는 살짝 놀란 듯했다.지난번에 진서준이 예린을 치료한 이후로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현재 소하비와 예린은 여전히 대한민국에 머무르고 있었다.“제 여동생이 납치됐습니다.”진서준은 서론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뭐요? 누가 한 일인데요? 어디서 일어난 일인데요?”소하비의 목소리가 확 높아졌다.“금도요. 왕자님이 데려올 수 있는 인원은 전부 데려오세요.”“좋아요, 예린이랑 함께 갈게요.”진서준이 전화를 끊자 유기명이 궁금한 듯 물었다.“지금 누구한테 연락한 거야?”“내일 아침이면 알게 될 겁니다.”진서준이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여보세요.”유기명이 전화를 받았다.“유 가주, 나야, 장정범.”전화 너머로 장정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야 이 개자식아. 우리 딸을 네가 납치했어?”유기명의 분노가 폭발했다.유기명이 꽉 쥔 주먹의 손가락 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딸이 겨우 병에서 회복했는데 이제 또 장정범의 사람이 납치했다.유기명은 이 모든 게 자기 실수라 여기며 내심 자책했다.“맞아, 내가 납치했어.”장정범이 비열하게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걱정 마. 네 딸 다치게 하진 않을 거야. 대신 국색천향 처방전을 얼른 넘겨.”그 말을 듣는 순간, 진서준의 눈에 살기가 일었다.장정범 부자는 진서준에게 이미 죽은 시체나 다름없었다.“좋아. 처방전 넘겨주지. 어디서 언제 거래할 거야?”유기명은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유기명에게 가장 중요한 건 딸의 생명뿐이었다.“서두를 것 없어. 우리 쪽 사람들 좀 숨 좀 돌려야 하거든. 너희 집 대종사들이 너무 강해서 2만 명을 데려갔는데도 밀리기만 했어. 하룻밤 정도는 쉬어야지. 내일 아침 거래 장소를 알려주마.”장정범은 마지막으로 한마디 경고했다.“유 가주, 쓸데없는 짓 하면 네 딸 시체 거둘 준비나 해.”그 말을 끝으로 장정범은 전화를 끊었다.“이 빌어먹을 개자식이!”유기명이 화를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졌다.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감정을 다잡은 뒤 유기명은 진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준아, 내일 네가 처방전을 들고 가서 반드시 우리 유정을 무사히 데려와 줘. 내일 우리 집 대종사들을 전부 너와 함께 보내 암암리에 널 보호하게 할 거야.”“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직접 사람을 부를 거니까요.”진서준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네가 사람을 부른다고?”유기명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유씨 가문에 있는 대종사들만 해도 열 명이 넘는다.그 대종사들을 대동하면 2만 명을 상대로도 충분히 진서준과 유정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다.설마 진서준이 그보다 더 강한 팀을 부를 수 있다는 건가?
지금 따라가지 않으면 허윤진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허윤진의 목숨을 위해 유정은 주석철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주석철이 유정의 어깨를 움켜쥐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순간, 허윤진은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쓰며 소리쳤다.“유정아! 유정아!”하지만 너무 심하게 다쳐서 허윤진은 꿈쩍도 할 수 없었다.방금 주석철과 맞붙었던 팔은 뼈가 반쯤 부서져 있었다.“유정아!”그때, 유기명이 사람들을 이끌고 방에 들어왔다.하지만 한발 늦은 상태였다. 유정은 이미 주석철에게 납치당한 후였다.“허윤진 씨!”바닥에 쓰러져 처참한 모습이 된 허윤진을 보자 유기명은 자기가 장정범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빨리요! 유정이 어떤 노인네한테 잡혀갔어요. 어서 구해줘요!”팔이 부러졌음에도 허윤진이 가장 먼저 걱정한 건 유정이었다.“허윤진 씨를 얼른 병원으로 옮겨. 난 그놈을 추적하겠어.”유기명은 망설임 없이 주석철의 흔적을 따라 그를 추격했다.한편, 대규모 난전은 이미 절정에 이르렀다.2만 명 중 절반 가까이가 쓰러져 땅을 뒹굴며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나머지 1만 명은 그 광경을 보며 공포에 질렸다.1만 명이 고작 10여 명을 이기지 못했을뿐더러 상대는 아무런 상처도 없이 멀쩡했다.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그때, 군중 속에서 갑자기 외침이 터졌다.“철수하라!”명령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해방된 듯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급히 달아나기 시작했고 쓰러졌던 자들도 비틀거리며 도망치느라 애썼다.“뭐야? 왜 도망가? 아직 몸도 제대로 못 풀었는데?”유기태가 달아나는 자들에게 소리쳤다.“왜 저렇게 도망치는 거지?”진서준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벌써 절반이 나가떨어졌으니 더 싸워봤자 이길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거겠지.”유기태가 나름대로 추측했다.“애초부터 이길 생각이 없이 시간만 끌려고 작정했다면요?”진서준은 눈썹을 찌푸렸다.진서준도 정식으로 교전이 시작한 후에야 이 도리를 깨달았다.장씨 가문은 분명 유씨 가문의 대종사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
장정범의 명령이 떨어지자 2만 명의 부하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그 어마어마한 장면에 유씨 가문 하인들은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였다.하지만 최전선에 서 있던 진서준 일행은 아무런 동요 없이 몰려오는 싸움꾼들을 바라볼 뿐이었다.“오랜만에 몸 좀 풀겠군. 이런 장면도 참 오랜만이야.”지의방 30위에 오른 서산객이 담담하게 웃었고 그의 눈에는 일말의 두려움조차 없었다.서산객의 눈에 이 2만 명은 그저 날벌레나 다름없었다.“서 어르신, 너무 거칠게 하진 마세요. 사람 죽이면 곤란해집니다.”유기태가 서둘러 곁에서 귀띔했다.“그야 물론이죠.”서산객이 고개를 끄덕였다.“자, 다들 시작하죠.”진서준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장씨 가문 사람의 숫자는 압도적이었지만 진서준과 서산객 같은 대종사들에게는 그저 개미 떼나 다름없었다.대종사 몇 명이 몸을 날리자 그들의 그림자가 인파 속을 누볐다.그들이 한 번씩 손을 휘두를 때마다 수십 명이 강풍에 휩쓸리듯 날아갔다.진서준 일행은 전쟁의 신처럼 지나가는 곳마다 모든 걸 쓸어버렸고 그 누구도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하지만 진서준 일행은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가볍게 힘을 조절해 상대를 제압하고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 뿐이었다.2만 명을 전부 죽인다면 금도 당국에서도 수습하기 어려울 터였다.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이들이 유씨 가문 장원에 돌격해 들어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오히려 진서준 일행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조였다.이 수상한 낌새를 포위망 바깥에서 지켜보던 유기명도 눈치챘다.유기명은 미간을 찌푸리며 장씨 가문이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같은 시각, 유씨 가문 장원 안 유정의 방.주석철이 어느새 소리 없이 방 안으로 숨어들었다.하지만 유정의 방에는 그녀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넌 누구야?”갑자기 나타난 주석철을 보자 허윤진이 즉시 몸을 일으켜 유정을 보호하며 경계했다.“난 너희랑 싸울 생각 없어. 네 뒤에 있는 그 계집만 데려
장우림은 계속해서 부추기며 말했다.“이 일이 박 도련님 아버님에게 알려지면 박 도련님 지위가 한순간에 추락할 겁니다. 그러면 박씨 가문 후계자 후보 중에 박 도련님 자리가 있을까요?”2000억의 손실은 사실 후계자 후보에 비하면 하찮은 일이었다.박진용이 원하는 건 딱 하나, 바로 박씨 가문의 정식 후계자가 되는 것이었다.박씨 가문을 장악하면 2000억은 물론이고 2000조라도 박진용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그럼 내가 당신들 장씨 가문을 도와서 유씨 가문을 저격하라는 겁니까?”박진용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맞습니다.”장우림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고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바로 유정을 잡아 오는 겁니다. 그런 다음, 유씨 가문에 협박해서 국색천향의 처방으로 유정을 바꾸면 됩니다. 국색천향을 손에 넣으면 박 도련님이 수익의 30%를 가져가세요. 어때요?”박진용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생각할 시간 좀 주세요.”“하루 시간을 줄게요. 해가 지기 전에 결정을 내리면 사람들 데리고 우리 집에 오면 됩니다.”장우림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떠났다.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저녁이 되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며 하늘이 어두워졌다.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번쩍이며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박진용이 경호원 몇 명을 데리고 장씨 가문에 도착했다.경호원 중에는 대종사와 종사가 한 명씩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내공 무인이었다.“박 도련님, 정확한 결정을 내렸네요.”장우림은 박진용을 보자 기쁨을 숨길 수 없었다.“장우림 씨, 내가 요구 하나 있는데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난 이 일에 참가하지 않을 겁니다.”박진용의 말에 장우림이 웃으며 말했다.“어떤 요구인데요? 과하지 않으면 다 들어줄 수 있습니다.”“간단한 요구입니다. 유정을 잡고 나서 유정의 안전을 반드시 보장하고 절대로 유정을 다치게 하면 안 됩니다. 들어줄 수 있나요?”박진용이 진지하게 물었다.유정은 유기명의 외동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