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요. 나는 그렇게 오래 기다리고 싶지 않아요. 내일 당장 저 자식을 아작낼 거예요.”황현호가 매섭게 말했다.은범은 조언을 해줘도 못 알아듣는 황현호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면 대신 복수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요.”“오늘 저녁에 있었던 일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말고요.”은범이 황현호에게 초크를 걸었다.“내가 바보도 아니고.”황현호가 은범을 째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도 진서준에게 무릎 꿇고 사과했으니 얘기가 새 나가지 않게 데려온 졸병들에게 입단속을 잘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누가 입이라도 뻥끗하면 끝장이라는 게 뭔지 톡톡히 보여줄 심산이었다.은범이 가고 황현호는 바로 누나에게 문자했다.[누나, 한 마스터님 집에 계셔?]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도착했다.[안 계셔. 아빠 모시고 외국으로 출장 갔어. 왜? 경성에서 누가 괴롭혀?]한 마스터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황현호는 벽에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그러고 아팠는지 손을 꽉 움켜쥐었다.“아, 겁나 아프네.”황현호가 답장하지 않자 누나가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현호야. 경성에서 누가 괴롭혔니?”수화기 너머로 청아하지만 도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니. 그냥 아까 은범 씨랑 밥 먹으면서 자랑하고 싶어서.”황현호가 얼른 설명했다.“너 얌전히 있어. 아빠 몇 달 동안은 외국에 나가서 안 돌아오실 거야. 또 사고 쳤다간 정말 내가 너 죽인다.”“알았어.”전화를 끊은 황현호는 은범이 한 말이 떠올랐다.“3월에 나도 한번 가봐?”...“서준 씨, 아까는 살짝 경솔했어요. 황현호의 신분은 은범보다 훨씬 강력해요.”“황현호는 갑부 황경영의 유일한 아들이라 평소에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단 말이에요.”허사연이 걱정스레 물었다.“괜찮아. 이렇게 쪽팔리는 일은 함부로 나가서 얘기하지 않을 거예요. 집에 알릴 일은 더더욱 없을 거고요.”진서준이 덤덤하게 웃더니 덧붙였다.“그리고 내일이면 바로 경성을 떠나는데 찾으려 해도 절대 못 찾을 걸? 그런
오늘 저녁 허사연을 포함한 다른 여자 일행도 술을 많이 마셨다.진서준이 봉호를 따내는 데 성공했을뿐더러 조금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이다.허사연은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발그레했고 곧 바닥에 넘어질 것처럼 몸을 비틀거렸다.“송년회를 이렇게 많은 사람과 보내게 될 줄은 몰랐네?”허윤진뿐만이 아니라 진서라도 예상하지 못했다.사실 지금까지 그들은 정말 너무 외로웠다.진서라와 유정은 집안이 째지게 가난해 친구로 지내려는 사람이 없었고 허사연과 서지은은 신분이 너무 귀하다 보니 감히 그들과 친구로 지내지 못했다.하여 지금까지 송년회는 혼자 보냈다. 이성 친구는커녕 동성 친구도 매우 적었다.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다가오는 이성들은 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형부, 고마워요. 형부가 내 인생을 이렇게 다채롭게 바꾼 거예요.”허윤진이 와인을 가득 부은 잔을 들고 진서준 앞으로 내밀었다.“적당히 마셔. 몸 상할라.”진서준이 걱정스레 말했다.“괜찮아요. 오늘처럼 중요한 날은 기분이 좋아서 다 괜찮아요.”허윤진은 진서준이 다리에 올라앉기까지 했다. 술에 취한 허윤진은 지금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고 진서준 옆에 허사연이 앉아 있다는 것도 잊은 것 같았다.진서준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윤진아, 너 취했어. 소파 가서 좀 쉬어.”진서준이 허윤진을 안아 소파에 앉히려고 했다.“싫어요. 여기 앉을래요.”허윤진은 두 팔로 진서준의 목을 옭아맨 채 도망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방안은 히터가 틀어져 있어 조금 더웠기에 여자들은 입고 온 코트를 다 벗은 상태라 허윤진도 옷 한 벌만 걸친 상태였다. 허윤진이 진서준을 꼭 끌어앉자 진서준은 허윤진의 쭉쭉빵빵한 몸매를 살짝 느낄 수 있었다.게다가 허윤진의 몸에서는 잔잔한 향기까지 났다.순간 진서준은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고 피가 그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윤진아, 얼른 일어나. 사람들이 보잖아.”진서준이 얼른 이렇게 말했다.만약 허윤진에게 추태를 들키기라도 하면 앞으로 허윤진을 볼 면목이 없을 것이다.
허윤진은 자세를 바꾸더니 아예 진서준의 두 다리 위에 앉았다. 하지만 자리를 바꾸자마자 허윤진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빨갛던 얼굴이 더 빨개졌다.진서준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얼른 허윤진에게 술을 먹여주고 돌아가서 한잠 자고 싶은 생각이었다.갑자기 얌전해진 허윤진은 진서준이 술을 먹여주자 얼른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서준 씨, 나도 먹여줘요.”서지은도 술잔을 들고 걸어왔다. 차별 대우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진서준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다행히 서지은은 허윤진처럼 짓궂지 않고 말을 잘 들었다.유정은 그런 서지은과 허윤진이 부러웠다. 유정도 먹여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진서준이 화날까 봐 무서웠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진서준을 동생으로 삼았다는 것이었다.혈연관계는 아니라 해도 오누이라 너무 친근한 스킨십을 하면 안 되었다.진서라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진서라는 진서준과 피를 나눈 오누이였다.“다 먹었죠? 그럼 일찍 들어가서 쉬는 게 어때요? 내일 아침 일찍 금운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허사연이 이렇게 말하자 진서준은 계산하러 갔지만 매니저가 돈을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황현호도 쥐어팰 수 있는 사람을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진서준은 먹튀할 생각이 없었기에 바로 계산했다.별장에 도착하니 허윤진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진서준은 허윤진을 방에 데려다줬고 다른 사람도 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허사연은 진서준과 동거 중이었기에 진서준의 방에서 샤워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채 침대에 누워 진서준이 잘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참느라 힘들지 않아요?”진서준이 침대에 눕자 허사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허사연의 손이 올라간 곳을 확인한 진서준은 멈칫하더니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됐어요. 탓하려는 것도 아닌데. 정상적인 생리 현상일 뿐이에요.”허사연이 웃으며 말하자 진서준은 그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그래도 벌은 받아야죠.”허사연은 실눈을 뜬 채로 이렇게 말했다.“내가 자라고 할 때 자요.”...새벽
이가 나미가 화들짝 놀랐다.“주인님, 지금 농담하신 거죠?”이번에 섬나라에서 온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모두 엘리트였다.이가 나미는 진서준과 둘이서 해결하기에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농담은 무슨. 가서 옷 입고 올게. 지금 바로 가자.”진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20여 년 전, 섬나라도 대한민국 무도계를 탄압하는 일에 참여했다. 그런 섬나라가 다시 사람을 보냈다고 하니 진서준은 절대 그대로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잠깐만요. 주인님.”이가 나미가 얼른 쫓아가더니 진서준을 말렸다.“왜 그래?”진서준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언짢은 표정으로 이나 나미를 쳐다봤다.“아직도 그 사람들 보호하고 싶은 거야?”이가 나미는 진서준이 화내자 얼른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황송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닙니다. 주인님. 이번에 온 사람들이 다 엘리트라서 그래요.”“그중에는 저희 셋째 숙부님도 있는데 실력이 정말 막강해요. 5급 정점 대종사에요.”“다른 사람도 다 3급 이상이고요.”이번에 섬나라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무인에게 손을 댈 생각은 없었고 그저 신분을 숨긴 채 소식을 캐내러 온 것이었다. 내년 4월에 대한민국 무도계를 탄압할 때가 되면 명확한 목표가 생길 수도 있다.진서준이 이를 듣고 바로 물었다.“모두 몇 명이 왔는데?”“저희 셋째 숙부님을 포함해 모두 다섯 명입니다.”이가 나미가 한마디 덧붙였다.“다섯 명이 같은 곳에서 지내지 않고 모두 따로 지내고 있습니다.”아마도 국안부에서 그들을 발견하고 한꺼번에 잡아낼까 봐 걱정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발을 붙인 곳은 대한민국 경성이었으니 몰래 잠입한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들키지 않으려면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따로 지낸다고? 그럼 더 다행이지. 나는 같이 지내면 어쩌나 했는데.”진서준이 가볍게 웃었다.따로 지내는 게 오히려 진서준에게는 기회가 되었다.섬나라에서 온 다섯 명의 엘리트를 동시에 대적해야 한다면 진서준도 거의 승산이 없지만 따로 지내면 승산이
진서준은 일단 먼저 사과하고 설명하기 시작했다.“섬나라에서 사람을 보내왔는데 남서구의 윈드 호텔에 있어요.”섬나라에서 사람을 보내왔다는 말에 진서훈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온 자는 누구야?”“이가 가문의 사람을 포함해 총 5명이에요. 하지만 지금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에요.”진서준이 한마디 덧붙였다.“다른 네 명의 행방을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을 잡아서 족쳐야 해요.”“그런데 이 사람 5급 절정이라 저 혼자서는 상대하지 못할 것 같아요.”진서훈이 멈칫하더니 웃으며 욕했다.“봉호전에서 온갖 잘난 척은 다 해놓고 왜 그래? 문호동까지 이겼잖아. 이제 와서 섬나라의 오급 대종사가 무섭다고?”“달라요. 죽이는 건 쉽지만 제가 알고 싶은 건 다른 사람들의 행방이에요.”진서준이 물었다.“그래. 지금 당장 건너갈게.”진서훈도 더는 너스레를 떨지 않고 운전기사를 불러 그쪽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진서준이 전화를 끊자마자 이가 나미가 이렇게 물었다.“주인님,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신 거예요?”진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호국 장군.”이를 들은 이가 나미가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집에 있을 때 집안 어르신들이 호국 장군에 대해 토론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대한민국 무도의 절정을 찍은 사람들이었다.이가 가문의 어르신도 호국 장군을 보면 몸을 사릴 정도였다. 그렇게 무서운 존재를 진서준이 어떻게 불렀는지 의문이었다.“왜 그래? 너도 호국 장군 들어봤어?”진서준은 이가 나미의 표정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네... 전 세계 강자 중에 호국 장군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요?”이가 나미가 황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할아버지께 들어본 적 있어요. 해외 세력이 합세해서 대한민국 무도를 탄압했는데 12명의 호국 장군이 나서서 대부분의 해외 강자를 변방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고요.”“그 전쟁이 아주 치열했다고 하더라고요. 적지 않은 강자들이 호국 장군의 손에 죽었죠.”“하지만 호국 장군도 4명이나 전사하셨죠.”이가 나미가
진서훈이 단번에 이가 나미의 체질을 알아본 건 딱히 놀랍지 않았다. 진서훈의 경험에 비하면 두 사람은 새 발의 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주인님, 제발 저를 믿어주세요. 저는 절대 주인님을 해치지 않습니다. 하늘에 맹세할 수 있습니다.”이가 나미가 얼른 충성심을 표했다.진서준이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알아.”“가자. 작은할아버지 따라가야지.”진서준과 이가 나미는 얼른 진서훈의 뒤를 따라 이가 나미의 셋째 숙부가 묵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두 분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문을 열어달라고 할게요.”이가 나미가 문을 두드렸다.“숙부님, 숙부님, 주무세요?”안에서 인기척이 열리더니 문이 열렸다. 이가 나미와 조금 닮은 중년 남자가 문을 열었다.“나미야. 네가 웬일이야?”이가 무투가 이글이글한 눈빛으로 이가 나미를 바라봤다. 뒤에 있는 진서훈과 진서준은 발견하지도 못했다.이가 무토가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자 이가 나미는 정말 너무 역겨웠다. 이가 무토는 분명 이가 나미의 숙부인데 말이다.“오늘이 숙부님의 마지막이 될 거예요. 역겨워 죽겠네 정말.”이가 나미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진서준과 진서훈이 있으니 이가 나미는 자신감이 뿜뿜 솟아올랐다.“뭐라고?”이가 무토는 이가 나미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나미야. 미쳤어? 지금 숙부한테 무슨 말버릇이야?”이가 무토가 훈수를 두었다.“아직도 숙부라는 말이 나와요? 어떤 숙부가 그렇게 더러운 눈빛으로 자기 조카를 바라봐요?”이가 나미가 큰소리로 질책했다.집에 있을 때 이가 나미는 매일 이런 눈빛을 견디면서 살아야 했다. 하여 임무가 있을 때마다 앞다투어 나가겠다고 했다.“섬나라는 변태가 많구나.”진서준이 감탄했다. 진서준은 이가 나미가 그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이가 가문의 사람들이 변태적인 건 맞는 것 같았다.진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서야 이가 무토는 뒤에 서 있는 진서준과 진서훈을 발견했다. 두 사람을 본 이가 무토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이가 나미, 가
진서훈은 모든 선천적인 강기를 정확하게 이가 무토에게 사용했고 다른 사람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더 중요한 건 이가 무토가 5급 절정의 대종사라는 것이었다.진서훈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5급 대종사의 무릎을 꿇렸다. 너무나도 무서운 실력이었다.진서준은 그제야 진서훈과의 실력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 것 같았다. 정말 천지 차이였다.호국 장군 중 누군가 진서준을 죽이고 싶다면 손가락 하나로 충분할 것 같았다.“당… 당신 설마 호국 장군이야?”이가 무토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진서훈을 바라봤다.그를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천의방에 이름을 올린 호국 장군이 아니고서는 어려웠다.이가 무토는 이미 식은땀으로 옷이 흠뻑 젖었고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정말 너무 무서웠다.“다른 네 사람은 어디 있어?”진서훈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이가 무토는 대답 대신에 이가 나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이런 배신자 같으니. 가주가 너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가 나미가 차갑게 말했다.“여기를 살아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숙부님이 죽으면 국안부에 신분을 들켜서 죽은 거라고 보고할 거예요.”“지금 이가 가문에 내 몸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서 의심이 가더라도 너무 내몰지는 않을 거예요.”맞는 말이긴 했다.이가 가문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가 나미의 몸을 탐하고 싶어 했다.이가 나미가 배신했다고 의심할 수는 있어도 절대 입 밖에 꺼내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사람을 보내 조사하고 확실한 증거가 나오면 강제로 잡아갈 것이다.진서준이 앞으로 다가가 이가 무토에게 말했다.“네 사람의 위치를 알려주면 고생은 덜하게 해줄게.”이가 무토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꿈 깨.”“그래. 그러면 대한민국에서 유실된 지 오랜 침형을 보여줄게.”진서준이 은침을 꺼내더니 일단은 이가 무토가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게 막고 평생 잊히지 않을 체험을 선사했다.은침을 몇 개 꽂아 넣자 이가 무토의 눈알이 거의 튀어나올 것 같았
남은 4명까지 해결한 진서준은 돌아가서 휴식하려 했다. 몇 시간만 지나면 동이 틀 시간이었고 내일엔 운전해서 운대산으로 돌아가야 했다.“주인님, 앞으로 혼자 위험한 곳으로 가시려는 거죠?”이가 나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진서준과 진서훈이 말하는 신농이 뭔지 모르지만 몇 마디 안 되는 두 사람의 대화, 그리고 두 사람의 표정에서 신농이 매우 위험한 것임을 단번에 눈치챘다.진서준이 솔직하게 대답했다.“맞아.”“만약 내가 신농에서 죽는다면 넌 앞으로 자유의 몸이 되는 거지.”이가 나미가 진서준의 손을 잡고 다급하게 말했다.“주인님, 오해에요. 저는 주인님이 죽기를 희망하지 않아요.”이가 가문에서 이가 나미는 따듯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거기엔 그저 악의만 있었다.비록 진서준과 알고 지낸 지 얼마 안 되지만 이가 나미는 그가 다른 남자와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여 이가 나미는 자발적으로 진서준을 주인으로 삼았다.이가 나미가 갑자기 진지하게 나오자 진서준은 약간 의외였지만 그래도 손을 내밀어 이가 나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아.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는데 그러면 안 되지.”이가 나미가 이를 악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주인님, 저를 가지세요.”“제 몸을 가지고 내공의 비약을 이룩하세요.”진서준이 이를 듣더니 덤덤하게 웃었다.“아니야. 너나 수련을 열심히 하면 돼.”그때 이가 나미를 하인으로 선택한 것도 섬나라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였지 이가 나미의 몸을 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진서준도 빨리 실력을 향상하고 싶었지만 이런 방식은 싫었다. 정말 그렇게 한다면 이가 가문의 짐승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진서준이 거절하자 이가 나미는 정말 너무 슬펐다.“주인님, 설마 나미가 싫어서 그래요?”“나미는 굉장히 깨끗해요. 그 어떤 남자도 제게 손을 댄 적이 없어요.”이가 나미는 이렇게 말하며 진서준의 손을 잡아 거봉으로 가져다 대려 했다.진서준이 멈칫하더니 얼른 손을 빼며 흥분한 이가
예크스와 함께 온 청년들은 충격을 받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예크스의 시신을 그대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진서준은 아무런 자비도 베풀지 않았고 손바닥을 한 번 뒤집는 순간, 또 몇 명이 죽어갔다.“진서준, 너 진짜 큰 문젯거리를 일으킨 거야.”이세아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 남자가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이세아도 인정하지만 그가 일으킨 이 문제는 만만치 않았다.서오런 교회는 올림푸스 신전, 멸용 조직과 대한민국 국안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였다.얼마 전 이세아는 길거리에서 떠도는 소문을 들었는데 혈수가 그 세 대형 조직에 의해 함께 몰살되었다는 소식이었다.그러니 이 세 조직의 실력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내 주변은 항상 문젯거리가 끊이지 않아.”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하자 이세아는 말문이 막혔다.“그래도 더 신중하게 움직이는 게 나쁠 게 없어.”그 후, 예크스 일행의 시신은 이씨 가문 사람들이 와서 정리했고 진서준은 허윤진과 서지은에게 말했다:“너희는 먼저 올라가서 쉬어.”유람선 10층에는 전용 휴식실이 있었고 문을 열자 문 앞에 네 명이 서 있었다.“진서준 씨.”박서명이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채 진서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죠?”진서준이 차갑게 물었다.“네, 사실 얘기하고 싶은 게 좀 있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박서명은 자기 신분까지 낮춰가며 매우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박서명의 태도는 진서준 일행에게 다소 의외였다.이세아의 눈에도 놀라운 표정이 스쳤다.박씨 가문은 이씨 가문보다 실력이 더 강한 가문이었고 박서명은 바로 그 대단한 박씨 가문의 가주였다.대한민국 전역에서도 박서명의 신분은 최고급에 속하는 존재였다.그런 대단한 인물이 진서준에게 이런 겸손한 태도를 보일 이유가 없었다.혹시 방금 진서준이 황혼 기사를 죽인 사실이 박서명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걸까?진서준도 머릿속에서 의문이 넘쳤다.“시간은 괜찮은 것 같네요. 여기 잠시 기다리세요.”진서준
하지만 오늘 손원순은 너무나 큰 실수를 저질렀다.진서준이 조금 전 링에 올라와 손원순을 돕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황혼 기사의 창에 맞아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다시 묻는다. 내 실력이 의심스러운 사람 있어?”진서준의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지며 지하 1층에 메아리쳤다.링 아래에서 적막만 흘렀다.천의방의 강자도 처치할 수 있는 사람을 누가 감히 건드릴 수 있겠는가?진서준은 그제야 빙그레 웃으며 몸을 돌려 링에서 내려갔다.“용존님!”손원순이 재빨리 진서준을 따라갔다.“방금 실례가 많았습니다. 용존님께서 부디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손원순은 진서준에게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사과했다.그러자 진서준은 즉시 손원순을 손으로 붙잡고 웃으며 말했다.“의협심이 넘치시는 손 천사님은 우리 모두의 본보기입니다.”그 말에 손원순이 어색하게 웃어넘겼다.“용존님, 과찬입니다. 저는 그저 제 능력 범위내에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용존님, 명주시에 돌아가신 후 시간이 되면 꼭 한 번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손원순이 이 기회를 빌려 진서준을 식사에 초대했다.“좋습니다, 시간이 되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손원순과 같은 선량한 사람과는 당연히 친구가 되어야 했다.진서준이 방으로 돌아가자 허윤진이 신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다가왔다.“진서준, 방금 진짜 멋있었어. 공격 두세 번 만에 그 사람을 처치할 줄은 몰랐어.”“그 해외 사람들 좀 잡아 와.”진서준의 말에 이세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정말 그렇게 할 거야?”“당연하지.”잠시 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이 예크스 일행을 끌고 왔다.“너... 너 뭐 하려고 그래?”예크스의 얼굴에는 아까 보였던 거만하고 교만한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대신 두려움이 가득한 기색이 역력했다.예크스의 눈에선 원탁 십이 기사가 신의 사자와도 같은 존재였다.하지만 지금 진서준은 신의 사자를 죽였다.그러니 진서준은 분명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일 것이다.“
현장은 말 그대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링 위의 그 인물을 쳐다보았다.원탁 십이 기사는 말 그대로 천의방에 오르는 슈퍼 강자였다.천의방은 비록 대한민국 국안부가 만든 목록이지만 국내외 모든 권력자와 강자가 그 권위성을 인정하는 목록이기도 했다.전 세계를 둘러보면 강자가 수없이 많지만 70억 가까운 인구 중에서 단 100명만이 천의방에 기록된다.이 100명은 어느 나라에 가든 각국의 권력자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쓰는 존재였다.수많은 강자가 천의방에 올라가려고 발버둥 칠 때 놀랍게도 천의방 78위에 위치한 황혼 기사가 지금 20살 남짓한 청년의 공격 세 번으로 죽음을 맞이했다.용존 진서준.이 이름은 해외 강자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이름이었고 갑자기 떠오른 인물일 뿐이었다.진서준이 대한민국에서 벌인 가장 유명한 전투는 봉호전과 강남에서 육급 대종사 두 명을 단 일격으로 처치한 일이었고 그 외에는 특별한 전과가 없었다.천의방의 다른 강자와 비교했을 때, 이 정도의 전과는 너무나 미미해 보였다.만약 국안부가 보해 전투의 결과를 공개했다면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질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의 안전을 고려해 진서훈 일행은 그 사실을 숨겼다.지금 진서준은 각국 강자들 앞에서 교회의 기사를 단번에 처치했다.이번 결투 이후로 진서준의 명성은 앞으로 더욱 널리 퍼질 것이다.가장 중요한 점은 진서준이 겨우 26살이라는 것이다.실력도 무시무시했지만 이토록 어린 나이는 더 공포스러운 사실이었다.VIP룸안에서 이세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얼음처럼 차가운 황예은이 저 녀석을 따랐구나.”“세 분, 여러분이 힘을 합친다면 저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요?”박서명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박서명은 진서준이 기껏해야 지의방 정도의 실력밖에 없을 거라 여겼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당황하기 시작했다.진서준이 천의방의 강자를 처치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실력을 갖춘 것이다.게다가 진서준은 너무 쉽
사실, 눈앞의 이 청년은 기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해서 살짝 놀랐다.하지만 황혼 기사는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황혼 기사는 갑자기 뒤로 물러났고 긴 머리가 공중에서 휘날렸다.그러고는 두 손을 가슴에 교차시켜 놓고 경건한 신도처럼 거만한 고개를 살짝 숙였다.“신성한 빛이여, 이 세상 모든 악을 멸해 버리옵소서.”기사가 입으로 중얼거리자 손에 쥔 긴 창에서 눈부신 빛이 방출되었다.황혼 기사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기도 이 순간 전부 폭발했다.조금 어두운 지하 링은 지금 한낮의 밝은 햇살처럼 강렬한 빛을 발산했다.“저 녀석 드디어 숨통이 끊어지겠네. 황혼 기사가 성력을 사용했어.”예크스가 눈을 반짝이며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성력은 오직 교회 원탁 십이 기사와 주교 세 명만이 소유한 특별한 힘이다.이 힘은 산을 하나 통째로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이세아도 그 눈 부신 빛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유람선이 과연 이 엄청난 힘을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이세아이 우려한 것처럼 유람선에서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유람선 위의 손님들은 저마다 불안해했다.그때, 링 위의 황혼 기사가 갑자기 움직였다.기사는 순간 이 세상에서 사라진 듯, 한순간에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졌다.그리고 다시 나타났을 때, 이미 진서준의 앞에 서 있었다.진서준은 검을 쥔 손을 급하게 들어 올리며 청색의 검빛이 발산하는 일격을 날리자 눈앞의 눈 부신 빛을 찢어버렸다.우르릉!굳건한 링의 바닥이 진서준의 일격을 맞고 기다란 균열이 나타나며 부서진 돌멩이가 사방으로 튀었다.그 후, 진서준은 손에 쥔 참선검을 풀었고 이내 그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청색과 적색을 띤 거대한 용 두 마리가 진서준의 뒤에서 나타났다.두 용은 하나로 합쳐졌다가 다시 청색과 적색이 엇갈린 용 세 마리로 나뉘었다.진서준의 주먹 앞에서 거대한 용 한 마리가 거대한 입을 벌려 모든 것을 삼켜버리려 했다.콰지직!한 줄기의 갈라진 금이 황혼 기사의 창에
모든 사람은 입을 떡 벌린 채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이 청년은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선전포고하는 건가?구경꾼들만 놀란 게 아니었다. 진서준 뒤에 서 있던 손원순도 진서준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이 애송이가 대담해도 너무 대담한 것 같았다.이 유람선에 올라탄 사람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어쩌면 링 아래에 팔급, 심지어 구급 대종사 경지의 경호원이 있을지도 모른다.이런 강자가 지금 링에 올라간다면 진서준도 무척이나 난감해질 것이다.“너 과연 그렇게 오만하게 굴 실력이 있을까?”이세아가 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잠시 후, 사람들이 정신을 가다듬었고 그들의 눈에서 스치던 경악은 사라지고 그 대신 불타오르는 분노가 가득 찼다.“오만하고 무지한 애송이가 감히 큰소리를 쳐? 이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를 거야.”“우리가 나설 필요 없어. 저 기사님이 알아서 널 처단해 버릴 거야.”“허세를 부리다가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군중의 분노가 폭발했지만 아무도 무대에 올라가지 않았다.다들 무대 위에 있는 황혼 기사가 진서준의 목을 쳐낼 것이라 믿고 있었다.황혼 기사는 차가운 살기를 눈에 띄게 드러내며 말했다.“이봐, 너 지금 대형 사고 친 건 알고 있어?”“몰라. 단지 네가 이제 곧 죽을 거라는 것만 알아.”진서준이 평온하게 답하자 손원순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외쳤다.“빨리 물러나. 이 사람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명주시 최고의 술법 천사인 손원순도 황혼 기사를 이길 수 없었는데 어떻게 한낱 국안부 소속의 상경인 진서준이 상대할 수 있겠는가?진서준은 손원순을 힐끗 바라보더니 가볍게 그의 어깨에 손바닥을 얹었다.그러자 손원순의 얼굴이 급변했다.하지만 진서준이 손원순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기운이 손원순의 온몸에 편안한 흐름처럼 퍼져 나갔다.그러자 방금 황혼 기사의 공격에 심각하게 다쳤던 상처가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맙소사, 이게 바로 손 천사님의 실력인가?”“이 검을 과연 저 기사가 막을 수 있을까?”“막을 수 없을 거야. 손 천사님은 우리 명주시 최고 술법 강자잖아.”대다수 사람은 황혼 기사가 이 공격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황혼 기사도 눈앞의 광경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우리 스승님 시그니처 술법이네!”곽윤상이 흥분하며 소리쳤다.예전에 명주시에서 요괴들이 날뛰었을 때, 손원순은 바로 이 보라색 검으로 악귀 세 마리를 단번에 처치했다.그 사건을 계기로 손원순은 일약 명성을 떨쳤다.지금의 손원순은 그때보다 몇 배나 더 강해졌고 이 전설적인 기술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해졌다.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 보라색 뇌검에 집중되었다.하지만 황혼 기사도 물러서지 않았다.황혼 기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손원순 못지않았다.황혼 기사는 은색 창을 높이 들고 길게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전쟁의 신처럼 우뚝 섰다.그리고 황혼 기사가 갑자기 바닥에 발을 내딛자 강철처럼 단단한 바닥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황혼 기사의 모습은 빛처럼 빠르게 움직였고 순식간에 링 중앙에 도달했다.손원순 앞에 있던 뇌검도 같은 순간에 바닥을 쪼개듯 사나운 기세로 내려쳤다.창과 검이 공중에서 충돌하며 폭발적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펑!그 후, 뇌검은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부서져 날아갔다.그리고 공중에서 멈췄던 황혼 기사의 모습이 바로 손원순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술법이 깨져버리자 손원순은 원기가 크게 상하며 시뻘건 피를 왈칵 토해냈다.손원순의 강기는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격렬한 충격에 연신 뒤로 물러서며 발을 제대로 디딜 수도 없었다.“죽어!”황혼 기사는 손에 들었던 창을 힘껏 던졌고 그 창은 손원순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그 창에 맞으면 신선이라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이 순간, 두 사람의 결투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전부 경악을 금치 못했다.명주시에서 오랜 세월 명성을 떨친 술법
내기를 건 사람들은 전부 불만을 표했다.다들 진서준이 질 것에 내기를 걸었고 이건 확실한 이득이 보장된 거래였다.하지만 이제 손원순이 갑자기 진서준을 대신해 출전한다고 하니 그들의 돈줄이 끊긴 셈이었다.“손 천사님, 그 녀석과 무슨 관계인가요? 왜 그 녀석을 대신해 나서시는 거죠?”“맞아요, 손 천사님, 이건 경기 규칙에 맞지 않아요.”“손 천사님, 그냥 내려가세요. 우리 돈 벌게 놔두세요.”사람들이 하나둘씩 손원순에게 내려가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손원순은 차가운 눈빛으로 구경꾼들을 쏘아보며 답했다.“불만이 있으면 먼저 올라와서 날 이겨봐.”손원순의 말 한마디에 떠들썩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손원순을 이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칠급 영선 술사라면 누구나 다 인정하는 실력이었다.황혼 기사도 냉정하게 말했다.“좋아, 그럼 먼저 너부터 죽이고 저 녀석을 죽여야겠어.”VIP룸에 앉아 있던 예크스는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황혼, 저 녀석도 죽여버려! 저 늙다리에게 우리 교회 실력을 알려줘야 해.”심판이 마지막 확인을 마친 뒤 경기가 드디어 시작되었다.“난 밖에 나가 있을게. 손 천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구할 수 있게.”진서준의 말에 이세아가 놀란 듯 물었다.“너 손원순이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이세아가 놀란 듯 물었다.“아까 보니까 교회 기사들 강기는 호국장군과 비슷한 수준이야. 손 천사 실력도 약한 편은 아니지만 저 기사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좀 불안해.”진서준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무인와 수선자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무인도 나이가 많으면 실력이 점점 더 강해지긴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도 문제였다.나이가 너무 많으면 예전처럼 정정하지 않아 작은 상처나 질병이 있을 경우, 고수와 결투할 때 그 사소한 문제가 점점 더 커져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었다.수선자는 한 단계씩 경지가 올라가면 수명이 늘어나지만 무인은 그렇지 않았다.무인은 지선 경지에
“이 진서준이라는 사람, 이름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구경꾼들은 결투장에 오를 사람의 정보를 보고 수군대기 시작했다.토론이 끝나자 적지 않은 사람이 황혼 기사에게 돈을 걸었다.교회의 원탁 십이 기사의 명성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반면 진서준을 아는 사람들도 그의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다.“진서준, 너 왜 교회 기사와 결투하게 된 거야?”이세아가 진서준을 보며 물었다.“전부 내 탓이야...”허윤진의 얼굴에 자책과 후회가 가득했다.“윤진아, 이 일은 네 탓이 아니야. 저 사람들이 일부러 시비를 걸었잖아.”서지은은 허윤진을 위로하며 한편으로 진서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우리가 아까 3층에서 당구를 치고 있을 때, 저 무리가 음흉하게 웃으며 우리 쪽으로 걸어오더니 일부러 윤진과 부딪힌 거야. 당시 윤진도 상대가 일부러 건드리자 화를 참지 못하고 그만...”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윤진 앞에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네가 잘못을 깨달았다면 앞으로는 절대 도박에 손을 붙이지 마.”허윤진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진서준, 앞으로 절대 도박 같은 걸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도박은 사람의 인생을 망치기 쉬웠다.돈을 잃은 사람은 기분이 더러워지고 기분이 더러울 때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기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규모가 커지기 마련이다.“조심해. 교회 기사는 그렇게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이세아가 진서준에게 경고하자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황예은은 어디 있어? 왜 여기 없지?”“우리 둘이 한방에서 사이좋게 있을 것 같아?”이세아가 이내 진서준에게 되물었다.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심한데 한 방에 있을 리 없었다.두 사람 전부 훌륭한 교육을 받은 교양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미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다.“그럼 어디 갔어?”진서준의 질문에 이세아는 아니꼬운 눈길을 보냈다.“그렇게 걱정돼?”진서준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황예은이 경호원 없이 혼자 나갔으니까 사고라도
은발의 청년은 자기 목을 겨누는 장검을 보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눈앞의 청년은 아무래도 자기 뒤에 있는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런데 자기 배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우리 아버지는 서오런 교회의 계아 주교야. 이래도 날 죽이겠다고 헛소리 칠 거야?”어느새 흉측한 몰골이 된 은발의 청년은 벌겋게 충혈된 두 눈으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주변에서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유람선에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거액의 자산과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은 사람들이었다.이들은 각국의 세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은발 청년이 말한 계아 주교는 바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회의 3대 주교 중 한 사람이었고 그 명성 또한 자자했다.중요한 교회의 의식이 있을 때면 항상 계아 주교가 그 자리에 참석했다.계아 주교는 명성이 자자한 걸 떠나서 실력도 대단한 인물이었다.무려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전설 속의 지선 경지에 들어설 수 있는 놀라운 실력이었다.그때, 3층의 관리자가 급히 달려왔다.진서준이 검을 휘두른 것을 본 관리자는 서둘러 말렸다.“손님, 천하 유람선에서는 무력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원한이 있으시면 유람선 지하 1층에서 해결해 주세요.”관리자가 말한 곳은 바로 지하 1층에 있는 생사 결투장이었다.유람선에서 누군가와 사적인 원한이 있으면 전부 그 결투장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규칙이 있었다.하지만 보통 결투장에 가서 해결하려면 규모가 큰 소란이 일어나야 했다.소란이 그다지 크지 않으면 유람선의 사람들은 전부 보고도 모른 척하곤 했다.다들 괜히 끼어들어 소란의 규모를 부풀려고 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예크스 씨, 무슨 일이죠?”이때 한 서양의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이 남자는 거대한 체구와 여성들이 부러워할 만큼 찬란한 금발 머리를 자랑하는 잘생긴 남자였다.이 남자는 바로 원탁 십이 기사 중 하나인 황혼 기사였고 실력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