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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화

한편, 화호산 깊은 곳에 위치한 협곡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서양인의 용모를 지닌 그는 은발에 회색의 긴 도포를 두른 채 협곡 여기저기에 남아있던 전투 흔적들을 둘러보았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천천히 눈을 감은 그가 알 수 없는 힘을 뿜어내어 협곡 전체를 덮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곳에서 일어났던 전투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충 어떤 식으로 전투가 벌어졌는지는 파악할 수 있었다.

곧이어 눈을 뜬 그가 새빨간 혓바닥으로 입술을 쓰며 입맛을 다시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들 정말 대단한 실력들을 갖고 있었네. 쉽지 않겠어. 피의 알까지 다 사라진 마당에 이거 어떡하면 좋지?”

꽤 오랜 시간 동안 깊은 고민에 잠겨있던 남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깊은 산 속 어딘가에서는 성스러운 빛으로 상처를 입을 사슴을 치료해주고 있던 길버트가 다급히 고개를 돌려 협곡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길버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같잖은 게 감히 날 몰래 염탐하시겠다?”

치료를 끝마친 사슴이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풀숲으로 뛰어가는 것을 확인한 길버트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또 한편, 호텔에서 단자에 빠져있던 추소영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혼잣말을 했다.

혈신교 놈들이 드디어 목숨을 드러낸 건가? 간땡이가 부어도 제대로 부었지. 감히 경성까지 올 생각을 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짐 정리를 마친 추소영이 문밖으로 나섰다.

해 질 녘이 되어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던 때였다.

서경시내로 나온 회색의 도포를 두른 남자가 덮개가 덮인 우물 앞에 서 있었다.

그 남자는 순식간에 선혈의 핏자국으로 변해 우물 덮개 틈으로 스며들었다.

그 핏자국들은 하수구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서경시의 모든 수도시설을 이어주고 있는 그 하수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해 미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수도 안에는 오염수만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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