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이 난무하는 와중에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휘청거리는 정민아를 보자 임은숙은 참다못해 폭발했다. 안 그래도 막무가내인 그녀는 이참에 앞으로 나서서 주위를 손가락질하면서 맞받아쳤다.“어디서 욕지거리야? 전남산 어르신을 초대하든 말든 그쪽이랑 무슨 상관인데? 게다가 우리 딸이 무슨 사람인지 몰라? 무려 김세자의 프러포즈마저 거절했던 여자라고! 이 중에서 감히 김세자를 거절한 영광을 누린 사람이 있기나 해? 우리 딸이 지금 공사 현장을 구경시켜주려고 전남산 어르신을 초대하는 건 결국 어르신의 체면을 세워주는 거라고.”말을 마친 임은숙은 팔짱을 끼고 전남산을 바라보았다.“어르신도 김세자는 들어보셨겠죠? 우리 딸은 김세자의 약혼녀와 마찬가지예요. 우리 딸은 몰라도 김세자의 체면은 세워줘야 하지 않겠어요?”이 말을 듣자 주위에서 야유가 퍼졌고, 전남산도 안색이 어두워졌다.반면, 정민아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차라리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갔을 텐데 말이다.이렇게 낯뜨거울 수가!어머니라는 사람이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임은숙은 개의치 않은 듯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능한 김예훈이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두고 보기로 했다.정민아가 그 병신이랑 이혼할 수만 있다면 만사대길이 따로 없을 테니까.더 높은 곳에 오를 일만 남은 딸인데, 어찌 쓰레기 같은 놈 때문에 인생을 망칠 수 있겠는가!이때, 전남산이 조용히 하라는 듯 손짓했다.단지 손만 들었을 뿐인데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모습에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던 임은숙마저 기가 죽어서 감히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전남산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정민아를 쳐다보았다.“그쪽이 김세자의 약혼녀라고?”정민아는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입술을 꼭 깨물었다.“어르신, 우리 엄마가 원래 큰소리 좀 잘 쳐요. 저는 김세자와 아무 상관이 없어요.”전남산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어갔다.“진짜 구경시켜주려고 날 공사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기 그지없었다.둘 다 간덩이가 부었나? 남편은 진주 이씨 가문이나 도발하고, 와이프는 무려 전남산의 앞길을 가로막다니?그리고 자기 주제도 모르는 데릴사위가 또다시 전남산 어르신을 막아서지 않겠는가?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이때, 참다못해 폭발한 임무경이 김예훈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김예훈, 이 쓰레기 같은 놈아! 대체 뭘 하려고 그러는 거야? 얼른 경비원 불러! 전남산 어르신을 귀찮게 하지 않도록 당장 저 자식을 끌고 가!”다른 사람들도 잇달아 말을 보탰다.“제발 그만해! 전남산 어르신에게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 만약 모두가 겁 없이 전남산 어르신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면 대체 일은 언제 처리하겠어?”“얼른 꺼져! 전남산 어르신을 계속 귀찮게 한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김예훈은 그들을 가뿐히 무시한 채 전남산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깜빡거렸다.“혹시 전남산 어르신 맞을까요? 저는 우버 운전기사인데, 차는 밖에 있어요.”전남산은 김예훈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2천 원 맞아요?”김예훈이 웃으며 대답했다.“네, 맞아요. 하지만 카풀이라서 다른 곳도 들러야 할지 모르거든요. 양해 부탁드립니다.”전남산은 고개를 끄덕였다.“카풀을 불렀으니 당연히 기사님이 가는 데로 따라가야죠.”두 사람의 대화에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자칫 잘못 들은 줄 알고 자기 귀를 후벼 파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카풀?! 전남산 어르신 같은 분이 카풀을 불렀다고? 게다가 저 데릴사위가 픽업하러 왔다니?사람들은 하나같이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전남산에게 접근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문과 대기업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우버 기사한테 전남산을 빼앗기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이장우를 비롯한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이때, 누군가 재빨리 치고 나서며 말했다.“어르신, 차가 필요하시면 저한테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밖에 마이바흐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는데, 어디 가시게요? 제가 모셔다드
정민아는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더듬거리며 말했다.“김예훈, 장난치지 마! 어르신을 목적지까지 모셔다드리는 게 중요하지, 자칫 어르신에게 폐라도 끼친다면 책임질 수 있겠어?”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자기야, 괜찮아. 어차피 카풀 부르기 전에 오늘 내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면 된다고 이미 얘기했거든. 2천 원 내면서 빨리 가려는 건 욕심이지.”정민아는 말문이 막혔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어르신을 데리고 한 곳만 들르는 게 아닌가?한편, 주위에 있는 사람은 원망이 가득한 눈초리로 김예훈을 노려보았다.이때, 이장우가 다가오더니 호통치기 시작했다.“김예훈, 괜히 전남산 어르신의 시간이나 지체하지 말고 꺼져. 내가 어르신을 모셔다드릴 테니까.”“안 돼.”김예훈이 무심하게 말했다.“왜?”이장우는 화가 발끈 났다.“어르신이 다른 차 타고 가시면 누가 결제해줄 건데? 공항까지 오는데 기름값은 안 드는 줄 알아?”김예훈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그래? 네가 원하는 건 돈이잖아. 이 정도면 기름값으로 충분하지? 이제 꺼져!”이장우는 지폐 뭉치를 꺼내서 김예훈 앞에 던졌다.김예훈은 무심하게 말했다.“더러운 돈 따위 관심 없어.”“이...!”이장우는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제야 김예훈이 일부러 말썽부리러 찾아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이때, 전남산이 이장우를 빤히 바라보며 쌀쌀맞게 말했다.“이세자, 난 살면서 남의 재산을 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죠.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날 모욕하는 겁니까?”폭발 직전까지 갔던 이장우는 겁에 질린 나머지 부르르 떨면서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어르신, 용서해주세요. 저 무능한 놈이 감히 어르신을 모시고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겠다고 하니 마냥 지켜볼 수가 없었어요. 저한테 속죄할 기회를 주신다면 제가 어르신을 목적지까지 모셔다드릴게요.”전남산이 무덤덤하게 말했다.“진주 이씨 가문은 사업하는 집안으로서 이미 신용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 않나요? 고작 의사에 불과한 나도 일약천금이 무슨
한편, 정민아는 쏜살같이 차를 몰고 백운 별장 공사장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운전하는 내내 그녀는 수십 통의 전화를 걸면서 귀빈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김예훈이 대체 카풀을 어떻게 잡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전남산 어르신을 공사 현장으로 모신다는 자체가 백운 그룹에게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허둥지둥 일 처리 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뒷좌석에 앉은 정군과 임은숙은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오늘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아무리 봐도 전남산과 접점이 없는 듯한 데릴사위가 무려 전남산 어르신을 모시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니?다들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곧이어 정민아는 공사 현장에 도착했다.시공사와 회사 직원들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현장을 깨끗이 정돈한 사람들은 전남산을 맞이하기 위해 성대한 환영식을 마련했다....한편, 허름한 봉고차는 도로 위를 천천히 달렸다.송준은 운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김예훈이 대시보드에서 소주 팩을 꺼내더니 전남산에게 건네면서 피식 웃었다.“어르신, 오랜만에 뵙는데 여전히 정정해 보이시는군요.”전남산이 한숨을 내쉬었다.“어쨌든 나이는 못 속이는 법이죠. 실력이 예전 같지 않더라고요. 지난번 사하라에서 예훈 씨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몇 년 전에 이미 사막에서 목숨을 잃었을지 몰라요.”김예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어르신, 과찬이십니다. 다들 같은 나라 사람 아니겠어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는 제 능력이 닿는 한 그 누구라도 구해줬을 겁니다.”전남산이 웃음을 터뜨렸다.“괜히 총사령관이 아니네요. 국민을 위해서 모든 걸 바칠 준비가 되어 있네요. 만약 총사령관이 없었더라면 한국은 5대 강국의 압박에 못 이겨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쳤을지도 모르죠.”김예훈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저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이게 다 최전선에서 혈투를 벌인 수많은 병사 덕분이죠.”전남산은 한숨을 내쉬었다.“예훈 씨 공로만 따져보면 벌
전남산이 웃으면서 말했다.“젊은이 일에 이 늙은이는 빠질게요. 하지만 와이프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날 납치해서 공사장에 데려가는 대신 한 가지 부탁 들어줘요.”김예훈이 미소를 지었다.“말씀만 하세요.”전남산이 말을 이어갔다.“간단해요. 그때 가서 총사령관 신분으로 경기도 국방부 교대의식에 참석해줘요.”“네? 왜요?!”전남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비록 예훈 씨가 5대 강국을 물리쳤지만, 일본과 미르 제국, 리카 제국이 아직도 못된 심보를 버리지 못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비록 우리나라는 남이 건드리기 전에 먼저 공격하는 법은 없으나 망나니 같은 놈들이 자꾸 설치니까 눈에 거슬리긴 하네요. 총사령관은 그야말로 국방부의 신화 같은 존재이죠. 총사령관님이 현역에서 물러났기에 저놈들이 감히 말썽 피우는 거예요. 하지만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모습을 비추고 몇 마디 하는 것만으로도 이 야비한 무리를 겁주기 충분하죠.”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런 일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전남산이 이렇게까지 얘기한 이상 김예훈도 포기했다.“그럼 박인철한테 공식 발표하라고 할게요.”김예훈은 전남산이 지켜보는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곧이어 전국을 뒤흔든 소식이 퍼졌다.이번에 전남산 어르신이 성남시를 찾은 목적은 경기도 국방부 일인자의 교대의식 때문이며, 새로운 장관의 취임식에서 전남산은 물론 한동안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국방부의 신화, 당도 부대 총사령관도 얼굴을 비춘다고 했다.이 소식이 퍼지자 사람들은 그제야 전남산이 왜 그 누구의 체면도 봐주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무려 총사령관을 만나러 갔을 줄이야!그리고 전남산이 왜 직접 카풀을 불렀는지도 납득이 갔다.소문에 의하면 총사령관은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로 아주 검소한 생활을 이어갔는데 아무도 그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전남산이 카풀을 부른 이유도 괜히 다른 사람 때문에 조용한 삶을 즐기는 총사령관이 방해받을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다만 이번 경기도 국방부 장관의 취임식에 전남산과
“위치는 나쁘지 않네요. 힐링하기 딱 좋은 곳인데, 오래 살다 보면 각종 만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겠네요.”“혹시 집값이 비싸나? 만약 싸게 나왔다면 나도 한 채 계약할게!”전남산이 웃으며 말했다.“어르신, 마침 특가로 10채 싸게 내놓은 매물이 있는데, 한번 보여드릴까요? 가격이 아주 저렴하게 나왔어요. 만약 당일 계약하신다면 할인해 드릴게요.”정민아는 전남산 어르신의 성격상 공짜로 집을 선물해준다면 절대로 받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아니나 다를까 전남산은 여느 어르신처럼 꼼꼼하게 따져보더니 크기도 적당하고 산과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별장을 골랐다.“그럼 이거로 할게.”정민아는 흘끗 보더니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가격은 10억 3천인데, 이 별장으로 하신다면 3천만 원은 안 주셔도 돼요. 그리고 앞으로 관리비도 저희가 부담해 드릴게요.”전남산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계약하는 거로 해.”말을 마친 그는 블랙 카드를 꺼내 정민아에게 건넸다.이 광경은 본 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비록 전남산은 겉보기에 수수하지만, 사실 돈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의학 관련 각종 발명품은 둘째 치고, 월급만 해도 꽤 많이 받았기에 별장 하나쯤은 쉽게 살 수 있을 것이다.이내 전남산이 백운 별장에 집을 샀다는 소식이 미디어 채널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반면, 성남시 부동산 종사자들은 하나같이 어안이 벙벙했다.백운 별장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중심지는 아닌지라 투자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전남산이 백운 별장과 계약한 이상 그곳에 입주할 수만 있다면 무려 전남산 어르신과 이웃이 된다는 걸 의미했다.10분도 안 되어 백운 별장 영업부에 전화가 폭주했다.심지어 어떤 해외 고객들은 한 두 채만 요구하는 게 아니었다.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에 정민아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듯 어찌할 바를 몰랐다.물론 정민아의 휴대폰도 쉴새 없이 울렸다.이제 성남시 상류층 인사들은 인맥을
김예훈은 손목에 찬 앤티크 롤렉스 시계를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그건 좀... 약속 시간이 다 돼서 전남산 어르신을 얼른 약속 장소로 모셔다드려야 해.”사실 이건 김예훈의 핑계다.전남산 어르신을 모시고 백운 별장 공사장에 온 것만으로도 미안해 죽겠는데, 임씨 가문까지 찾아가라니?사실 김예훈에게 임씨 가문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하다.정민아만 아니었다면 임씨 가문을 상대할 일조차 없었을 테니까.결국 김예훈은 전남산을 모시고 조용히 현장을 빠져나왔다.안 그래도 활동적인 그는 김예훈이 당도 부대 본부에 거처를 마련하자마자 냉큼 성남대병원에 가 본업에 복귀했는데, 전문의도 아닌 일반의로 단돈 2000원에 예약 후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이 소식이 퍼지는 순간 성남시 전체가 들썩였다.그동안 난치병에 고생하던 사람들이 진찰을 받으려고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반면, 임씨 가문에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차갑게 식어갔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전남산과 김예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약 1시간이 지난 뒤, 마침내 정민아의 전화가 걸려왔다.“외할머니, 제가 김예훈한테 얘기했는데 시간이 없다면서 얼른 전남산 어르신을 약속 장소에 모셔다드려야 한다고 가버렸어요.”“뭐라고?!”임옥희가 식탁을 내리쳤다.“내가 이미 다른 가문의 회장님을 모셔와 식사 자리까지 마련했는데, 이제 와서 그 쓰레기 같은 놈이 어르신을 모시고 갔다고 말하면 어떡해? 그전에는 무슨 수로 공사장에 데려갔는데?”정민아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외할머니도 아시다시피 카풀이 시간제한이 있잖아요. 만약 4시간 안에 승객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지 못하면 비용이 차감돼요. 김예훈이 수입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얼른 데려다줘야 한다고 했단 말이에요.”임옥희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고작 이런 이유로 전남산 어르신을 모시고 갔단 말인가?임옥희가 전화를 끊자 나성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어르신, 임씨 가문의 지위도 우리가 상상했던 만큼 대단하지는 않네요. 심지어
저녁이 되자 김예훈은 전남산과 식사하려고 성남대병원을 찾았다.전남산은 딱히 취미가 없긴 하지만, 그나마 노포를 찾아다니면서 현지 음식을 즐기는 걸 좋아했다.밤이 되자 김예훈은 일부러 허름한 봉고차를 다시 끌고 와서 전남산과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전남산은 모처럼 여유를 즐기며 말했다.“총사령관님, 오늘 밤 코 삐뚤어지게 마셔봅시다.”김예훈도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로서 생사를 함께 하며 각별한 우정을 나눈 두 사람이 술 몇 잔 마시는 게 뭔 대수랴!오늘이 아니면 김예훈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술을 입에 대지도 않을 테니까....한편, 프리미엄 가든.정소현을 포함한 정민아 가족이 모두 집에 있었다.이때, 갑자기 밖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몰려와 갖은 연장을 들고 문을 부수는 바람에 문이 산산조각이 났다.곧이어 일당은 하나같이 살벌한 기운을 내뿜으며 당당하게 걸어들어왔다.그들은 누가 봐도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다.집에 들어선 불청객들은 미안한 기색이 하나도 없이 주변을 살피다가 정민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당신들 누구야! 왜 갑자기 남의 집 문을 부수고 난리야? 이게 얼마인지 알아? 배상할 능력은 되고?”마침 팩하고 있던 임은숙이 일어나서 버럭 화를 냈다.“짝!”맨 앞에 선 남자가 임은숙의 뺨을 세게 내리치자 마스크팩이 저 멀리 떨어져 나갔고, 임은숙은 이내 얼굴이 벌겋게 부어올랐다.감히 집까지 찾아와서 손찌검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따로 없었다.반면, 정민아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벌떡 일어나서 임은숙의 앞에 막아섰다.“당신들 누군데? 무단으로 주거 침입하면 불법인 거 몰라? 게다가 손찌검까지 해? 경찰에 신고 할 거야!”앞장선 남자가 웃으면서 말했다.“정민아 양 맞죠? 딱히 폐를 끼칠 생각은 없지만, 경찰에 신고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어차피 서로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데 무슨 의미가 있어요?”그는 마치 정민아를 노리고 온 듯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뭐?”정민아는
김예훈은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그리고 김현민이 일본, 영국과 결탁한 의혹이 있는 것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신날 김현민이 상속받으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뜨려 주세요. 김현민이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긴장감을 줘야죠. 맨날 집에서 음모와 계략을 연구하는 것도 정신상태에 좋지 않거든요.”김현민이라는 사람은 너무 계산적이고, 자기 보호에 강했다. 그런 그에게 짜증 날 대로 짜증 난 김예훈은 이렇게라도 그를 압박하고 괴롭혀 보기로 했다.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해야 자기가 짜놓은 판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알아볼게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동씨 가문은 그래도 진주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어서 이런 일은 쉽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김예훈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했다.김현민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무 의도적으로 계획하면 안 되었다. 너무 티 나게 하면 그가 눈치챌 수 있었다.오히려 이런 무심한 계획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동하임은 갑자기 웃더니 그에게 다가가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도련님께서 저희 동씨 가문에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마땅히 내놓을 것도 없고 해서 제 몸을 바치는 거 어떨까요?”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김예훈만 원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튈 것이 분명했다.“하하하.”김예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으로 동하임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하임 씨, 농담도 참.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하임 씨 아버지의 친구이자 하임 씨의 삼촌이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농담으로 저를 화나게 하면 제가 어떤 벌을 내릴지도 몰라요.”동하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이런 걸 좋아하셨어요? 그러면 삼촌, 저한테 어떤 벌을 주실 건데요?”김예훈은 갑자기 주제가 잘못된 것 같아 순
“그렇다면 덕망 높은 두 분의 끊임없는 호소 끝에 김현민은 반드시 전략을 바꿔야겠죠. 만약 도련님께서 상대가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멀리 놓고 봤을 때 저 두 사람은 김현민이 자신을 위해 분풀이를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겠죠.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이 김현민의 마음을 흔들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다 단단한 고리에 작은 균열이 생길 수도 있어요. 만약 김현민이 오늘 일때문에 참지 못하고 직접 나선다면 계획이 급하게 진행되면서 그중에서 부족한 점이 보이겠죠. 어쩌면 도련님께서 이 기회를 이용해 그를 뿌리째 뽑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무튼 도련님은 이 건물에 들어선 순간부터 함정에 빠진 것이 틀림없어요.”동하임은 손에 들고 있던 수표를 김예훈에게 건넸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예훈이 흥분한 나머지 일을 너무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아버지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조언을 듣고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김예훈의 행동이 막무가내로 보이지만 사실은 신중한 움직임이었고, 걸음마다 김현민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비록 김예훈과 김현민이 아직 정식으로 붙지 않았지만, 신경전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현재 파악된 상황을 봤을 때 적어도 김현민은 김예훈에게서 그 어떠한 이득도 본 적이 없었다.이로써 동하임은 왜 아버지가 진주·밀양에서 아무런 기반도 없는 김예훈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지만 안타깝게도...동하임은 김예훈이 미혼일 때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이때 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힐끔 쳐다보았다.비록 동태원의 조언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사람은 조금만 더 가르쳐주면 곧 큰 인물이 될 사람이었다.하지만 김예훈은 인정하지 않고 피식 웃을 뿐이다.“너무 과대평가하신 거 아니에요? 저는 그저 사람을 때렸을 뿐인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신 거 아니에요? 저를 너무 그렇게 과대평가하지 말아
잠시 후, 용현성과 장현준은 처참한 모습으로 이곳을 떠났다.동하임은 손에 든 2,000억 원의 수표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김 도련님, 이번 만남은 정말 실패네요. 아무쪼록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줬냬요. 이 2,000억 원, 더 두 분이 여기저기 연락해서 겨우 모은 거예요.”동하임은 여전히 한숨이 나왔다.‘그렇게 거들먹거리더니 돈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어. 2,000억 원을 울며불며 여기저기서 빌려야 한다니.’김예훈은 그들에게 2,000억 원을 내놓으라고 한 것은 그들의 뺨을 때리는 것보다도 더 심했다.그들의 노후 자금마저 탈탈 턴 것과도 같았다.이로써 쌍방은 지금, 이 순간부터 더 이상 평화롭게 지낼 수가 없었다.“괜찮아요. 저희가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고 해도 저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었을 거예요. 어차피 저들 눈에는 제가 죽어야 마땅한 존재니까요.”김예훈은 다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공진해가 보내온 자료를 확인했다.“소식에 따르면 용현성은 특별한 능력 없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암암리에 일본 쪽과 연락하는 것 같더라고요. 류서우가 초대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기 위해 무조건 문제를 일으키러 왔을 거예요. 장현준은 원래부터 식민지 시대 때 영국에서 기르던 개였을 뿐이에요. 평생 무릎 꿇고 개처럼 살더니 외국인이 하느님인 줄 아나 봐요. 이런 사람은 아무리 체면을 세워주고, 또 기회를 줘봤자 절대 만족하지 않을 거예요. 아무튼 제가 회장 패쪽을 내놓지 않고, 또 그들의 요구에 따라 일본에 가서 사죄하지 않는 한 둘 중 하나는 죽는 운명이었다고요.”김예훈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해서 말했다.“어차피 죽고 못 살 판에 2,000억 원을 배상하라고 한 것도 많이 봐준 거예요. 오늘 이렇게 많은 눈이 지켜보지 않았다면 저 사람들 오늘 이곳을 벗어나지도 못했어요.”김예훈의 담담한 말투에는 살기가 가득했다.그에게는 외국과 은밀히 연락하고 국민을 해치려는 비겁한 자
“영국 사람을 등에 업으면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아니면 모든 사람이 어르신처럼 외국인을 언급하면 바로 무릎 꿇을 줄 알았어요?”쨕!말할수록 화가 난 김예훈은 장현준의 뺨을 때려 저 멀리 날려 보냈다.김예훈에게 얻어맞아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고 정신이 혼미해진 장현준이 바닥에서 일어나려고 했을 때, 김예훈이 또다시 접근해 오자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지금 사과할 기회를 드릴게요. 아니면 오늘 갈 생각도 하지 마세요. 내년 오늘이 어르신과 부당주님의 기일일 줄 아세요.”“너...”장현준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면서도 얼굴을 부여잡은 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도 하고싶은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비록 이 시대에서는 권력, 힘, 돈, 인맥이 모든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주먹이 강한 사람이 승자였다.용현성이 이미 김예훈에게 짓밟힌 것도 모자라 장현준도 뺨을 맞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장현준은 지금껏 의지해 온 영국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자 더 이상 김예훈과 맞서지도 못했다.이 순간, 장현준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미안하네.”쨕!“그렇게 사과하는 거 맞아요?”쨕!“영국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던가요?”쨕!“사과는 존중의 의미로 무릎부터 꿇어야 한다는 거 몰라요?”연이은 뺨에 장현준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그는 분노의 극치에 도달해 표정마저 일그러졌다.손을 쓰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없어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떨리는 몸으로 결국 무릎을 꿇었다.“김 회장님, 죄송합니다. 오늘은 제가 잘못했습니다.”장현준 같은 사람은 무릎 꿇는 것이 그렇게 굴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의 인식 속에서는 외국인을 만나면 무릎을 꿇어야 하지만 외국인은 김예훈에게 무릎 꿇을 자격이 없었다.“어르신같이 비겁한 자가 무릎을 꿇는다고 해도 아무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지만, 저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거든요.”김예훈은 휴지로 손가락을 닦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가보세요. 다음부터 저를
장현준은 힘겹게 일어나 숨을 헐떡이며 김예훈과 동하임을 째려보았다.“기다려.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거야!”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반드시 동씨 가문을 진주 1인자 위치에서 끌어내릴 것이고, 오늘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게 할 거야! 나는 전직 총독으로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 이 일을 영국 황실에 알리면 너희는 끝장이야!”동하임은 피식 웃고 말았다.“영국이요? 저희가 끝장날 거라고요?”김예훈은 서서히 장현준 앞으로 다가가 비웃음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어디 전화해 보세요. 영국에서 어디 저희 대한민국 일에 간섭할 수 있는지. 저희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정상에 서있는데 어르신은 아직도 서양인의 그림자 밑에서 살고 계시네요. 당신 같은 사람이 전직 총독이라고요? 어이가 없어서. 어르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서양인에게 길들어진 개일 뿐이에요.”김예훈은 또 한 번 발로 걷어찼다.장현준은 서양 격투기를 배워서 그런지 반응이 빨라서 김예훈이 발로 차는 순간에 최선을 다해 피했다.하지만 손을 들기도 전에 복부에 통증을 느끼며 의자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악!”비명이 퍼져나가고, 장현준은 네 발이 하늘을 향해 뒤집어져 마치 뒤집힌 거북이처럼 초라하기 그지없었다.“얼른 전화해 보세요. 어르신을 지켜줄 수 있는지 어디 한번 지켜보자고요.”김예훈은 피식 웃었다.“어르신께서 말은 힘이 무엇인지 확인해야겠어요.”류서우 등은 이 순간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뻔뻔한 자식. 동하임이 장현준 어르신을 다치게 한 틈을 타 진주에서 존경받는 전직 총독님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다니. 정말 완전히 무시하는 거잖아!’“김 회장!”장현준은 힘겹게 일어나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말했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쨕!김예훈은 장현준의 뺨을 때려 바닥에 쓰러뜨렸다.다음 순간, 머리가 세게 바닥에 부딪힌 장현준의 얼굴은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고 말았다.화가 났지만 두려움과 절망감이 앞섰다.충분히 자기도 고수라고 생각했는데 김예훈의 움직임을 전
“너...”용현성은 김예훈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극심한 통증 때문에 어질어질한 상태였다.그는 용문당 집법 부대의 부당주이며 용씨 가문의 사람인데 말이다.그동안 무송과 용문당에서 항상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추앙하고 존경했는지 모른다.그는 어디에서든 자신감이 넘쳤고, 심지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그런데 오늘 김예훈한테 체면이 짓밟힌 것도 모자라 큰 손해를 보게 될 줄 몰랐다.어린놈의 발에 체면과 존엄이 짓밟힌 지금, 용현성은 벽에 머리를 박아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하지만 김예훈이 또 움직일까 봐 소리치지도 못했다.“보아하니 이제는 사태 파악이 되셨나 보네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하면 안 되는지 아시겠죠?”김예훈은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용현성을 쳐다보고는 그를 발로 차버렸다.“오늘 교훈을 잘 기억하길 바랄게요. 안 그러면 언젠가 터질 정도로 얻어맞을 거니까요. 제가 마음이 약해서 그렇지. 김현민이었다면 진작에 죽었을 거예요. 무송으로 돌아가 집법 부대 사람들한테 알라세요. 앞으로 일을 처리할 때는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고 행동하라고요. 일본인의 말에 개처럼 달려오지 말고요. 한 명씩 올 때마다 본때를 보여줄 거니까요. 알겠어요?”용현성은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얼굴은 일그러진 채 처참한 모습으로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이순간 그는 김예훈에게 도전할 용기가 없어 애써 진정해 보려고 들숨·날숨을 쉬었다.“김 회장, 하임 씨,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야?”용현성이 이 정도로 다친 모습을 보자 장현준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여기가 어디라고. 여긴 국제 대도시인 진주이자 이곳만의 법이 있다고! 전직 총독의 신분으로 요구하는데 당장 당주님께 사과하고 처벌을 받아! 안 그러면 내 한마디로 진주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게 될 줄 알아. 내 말 믿어 안 믿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못 믿겠는데요? 저도 한 말씀 드릴까요? 제 앞에서 나이를 내세우면서 우쭐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생
김예훈의 발에 짓밟힌 용현성은 끊임없이 몸부림쳤고, 얼굴에는 발자국과 손자국이 나있는 채로 무척이나 비참한 모습이었다.그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김예훈의 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저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많은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비비기도 하고,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자기 뺨을 때리기도 했다.특히 집법 부대 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아무도 김예훈이 이 정도로 대담하게 행동할 줄 몰랐다.용현성의 뺨을 때린 것도 모자라 그의 얼굴을 바닥에 짓밟다니.이는 용문당 장관회의 체면을 짓밟은 것도 모자라 용씨 가문의 체면을 짓밟은 것과도 같았다.모두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장현준이 제일 먼저 반응하고 소리쳤다.“김 회장, 지금 무례하게 뭐하는 짓이야! 감히 당주님을 건드려?”김예훈이 용현성마저 무시할 줄 몰랐는지 류서우는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녀는 혈기가 솟구쳐 김예훈에 대한 두려움도 잊었다. 이때 그녀의 손짓하나에 한 무리의 집법 부대 제자들이 무기를 꺼내 분노에 차서 앞으로 돌진해 왔다.똑같이 동하임의 손짓에도 동씨 가문 정예 부하들이 사방에서 나와 집법 부대 사람들을 가로막았다.집법 부대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모두 강력한 시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이곳은 동씨 가문의 구역이라 인원이 더 많은 건 사실이었다.힘이 균형을 이룬 쌍방은 서로 대치 상태에 들어섰다.류서우는 또 한 번 누군가에게 가로막힐 줄 몰랐는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동하임 씨,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동하임이 냉랭하게 말했다.“김예훈 도련님을 해치려면 제 시체부터 먼저 밟고 가세요!”“너희들!”류서우는 이 모습을 보면서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김예훈을 노려보면서 말했다.“김 회장님, 당주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다 함께 묻어버릴 거예요!”김예훈을 직접 베어버리고 싶었지만 동씨 가문 정예 부하들이 너무 많이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이때 장현준이 기세등등한 말투로 말했다.“김 회장, 하임 씨, 지금 이러는 거, 어떤
이때 용현성의 손짓 한에 몇몇 부하들이 앞으로 나서서 칼을 뽑아 들고 김예훈을 노려보았다.이 장면은 동하임의 얼굴을 순간적으로 어두워지게 했다.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부당주님, 패쪽은 당주님이 저한테 맡긴 거라 누구도 가져갈 수 없고, 저보고 일본인에게 사과하라고요?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일본인이 저의 사과를 받을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하세요?”“왜? 네가 그렇게 대단해?”용현성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김예훈, 내가 너의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고 일본에 보내는 것으로 끝내는 것도 당주님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야. 그러니까 너무 잘난 척하지 마. 내가 나이 들어서 성격이 좋아져서 다행이지, 젊을 때였으면 너는 이미 머리가 날아가고 온 가족이 살해당했을 거야.”이 순간, 용현성은 언제든지 일어나 김예훈을 한방에 쳐 죽일 것만 같았다.“김 회장, 당주님은 용문당 내부에서 덕망이 높고 권력 있는 분인데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많은 배려를 한 거라고.”장현준은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그러니까 절대 나대지 마. 당주님이 화를 내는 순간 너는 끝장이라고. 회장 패쪽을 내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사과용으로 너의 사지를 부러뜨려 일본에 버릴 거라고. 너의 가족 또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야. 당주님은 단순히 용문당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용씨 가문도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 대한민국 전국 10대 명문가 중의 하나인 용씨 가문!”장현준은 소파에 편안히 기대어 앉아 말했다.“우리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패쪽을 내놓고 스스로 손발을 묶어. 내가 당주님을 위해 두번째 즐길 거리를 마련했는데 말이야. 당주님이 즐기는 데 방해가 되는 순간 네가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볼 거야.”류서우도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얼른 패쪽을 내놓고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요. 아니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류서우, 지금 날 협박해?”류서우는 눈가를 파르르 떨긴 했지만, 여전히 냉랭하게 말했다.“그렇게 이해하셔도 좋아요.”류
“나오키가 너를 죽일 수 있었는데 네가 용문당 이름으로 압박하는 바람에 생각에 잠겨있는 틈을 타 습격해서 죽였다는 것도 알아. 김예훈, 너는 정말 얼굴이 너무 두꺼운 거 아니야? 왜 그렇게 염치가 없는 거냐고.”용현성은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화가 잔뜩 나 있었다.김예훈은 멈칫하더니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류서우를 힐끔 쳐다보았다.류서우 뒤에 서 있던 집법 부대 제자들은 김예훈의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에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했다.이로써 류서우가 용현성을 데려오기 위해 일부 진실을 숨겼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예를 들어 김예훈이 혼자서 타케이 가문을 모조리 때려눕혔다는 사실을 숨긴 채 김예훈이 용문당을 이용해 타케이 가문을 압박했다고 말했다.만약 용현성이 김예훈이 직접 나오키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감히 올 용기도 없었을 것이다.“부 당주님, 한 번만 더 설명해 드릴게요. 타케이 가문은 자결한 것이 맞아요. 용기가 대단해 일본 천황이 큰 상을 내리기로 했다니까요?”김예훈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이미 진주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에요. 일본대사관 측에서도 이 주장을 받아들였고요. 부당주님께서 만약 불만이 있으시면 그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도 좋아요. 소송에서 이기면 다시 이야기해 볼까요?”“너!”용현성은 화가 나서 할 말을 잃었다.‘김예훈 이 자식, 실력 있는 것도 모자라 말솜씨도 대단해.’김예훈이 일본대사관까지 거들먹거려 한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바로 이때, 장현준이 웃으면서 말했다.“김 회장, 어떻게 자결했는지는 김 회장이 나보다 더 잘 알잖아. 동씨 가문이 이 사건에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아부었는지 김 회장도 모를 리가 없잖아. 굳이 밝혀봤자 재미도 없을 것 같고. 실력이 뛰어난 데다 동씨 가문이 뒤를 봐주고 있어서 자신감이 넘치는 거 알아. 하지만 김 회장도 알겠지만, 이 세상에서 많은 일은 단순히 싸우고 죽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아. 이 바닥에서는 예의를 갖춰야 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데 당주님과 맞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