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컨벤션 센터에 도착하고 택시에서 내렸을 때 김예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아마도 대학교 교장이나 이사장을 기다리는 것 같았는데, 다들 김예훈과 이예운을 발견하는 순간 경쟁자인 줄 알고 째려보기 바빴다.다만 초대장을 꺼내는 이예운을 보자 하나같이 입이 떡 벌어졌다.학회에 초대받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고급 차를 타고 왔다. 그나마 아우디, BMW는 겸손한 측에 속했고, 택시 타고 등장하는 사람은 절대 없었다.컨벤션 센터에 들어선 김예훈과 이예운은 곧바로 연회장으로 향했다.직원이 초대장을 확인하고 나서 두 사람을 입구로 안내했다.“학회가 곧 시작되니 도움이 필요하시면 웨이터한테 부탁하세요.”김예훈과 이예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연회장으로 들어갔다.상징적인 학회인 만큼 연회장에 전부 낯선 얼굴로 가득 차 있는지라 김예훈은 아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다만 한 가지 확신하는 건 이들이 경기도 또는 성남시 교육 기관에서 꽤 높은 지위를 가진고 있다는 점이다.아무리 고위직 인사라고 해도 자녀 교육을 위해 이들과 최대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므로 하나같이 자만심에 빠져 콧대가 하늘을 찔렀다.연회장에 들어선 김예훈은 코너를 찾아 앉았다.그는 어떤 교장의 인품과 매너가 더 좋은지 천천히 관찰할 예정이다.이런 사람이 관리하는 대학교는 분명 좋은 학교로서 나중에 정소현을 보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반면, 김예훈이 조용히 학회를 즐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떤 여자가 의아함과 원망스러움이 담긴 표정으로 김예훈과 이예운을 노려보았다.그녀는 김예훈을 모르지만 이예운과 아는 사이며, 바로 한때 이예운의 절친이었다.오늘 라이브 바에도 있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다.따라서 김예훈과 이예운을 발견하는 순간 드디어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이예운, 오늘 여러 대학교에서 개최한 학회인 거 몰라? 왜 이 쓰레기 같은 놈까지 데려왔어? 현장 분위기 흐리면 어떡해?”주현경이 도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한동안
이러한 학회는 보안이 매우 철저했다.왜냐하면 연회장에 드나드는 사람은 모두 교육계의 거물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큰 사건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주현경의 말을 듣자 완전 무장한 경호원 몇 명이 잽싸게 달려왔다.“두 분 초대장 좀 보여주시죠.”경호원이 김예훈을 향해 물었다.김예훈은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술을 닦아내더니 이예운을 흘긋 쳐다보았다.이예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초대장을 꺼내서 건네주었다.이 광경을 본 주현경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이예운에게 진짜로 초대장이 있을 줄이야!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재빨리 말했다.“팀장님, 어디서 훔쳐 온 초대장일 지도 모르니까 자세히 보셔야 해요.”사과하려던 경호팀장이 그녀의 말에 서둘러 초대장을 펼쳐서 확인해보더니 안색이 돌변했다.“이건 성남 고등학교 교장한테 보낸 초대장이잖아요. 저도 아는 분이긴 한데, 대체 무슨 수로 이 초대장을 가지고 나타난 거죠?”“굳이 물어볼 필요 있나요? 이 여우 같은 년이 성남 고등학교 선생이잖아요. 초대장을 훔쳐서 애인이랑 어떻게든 기회를 노려보려고 몰래 들어왔겠죠!”경호팀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현경을 흘긋 쳐다보았다. 물론 고마운 기색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언짢은 듯 눈치를 주었다.몰래 훔친 초대장도 발견하지 못하고 현장에 들여보냈다는 자체만으로도 경비팀으로서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걸 보여줬다.이런 일은 모른 척하거나, 조용히 처리하는 게 상책이다.그런데 이 멍청한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쏠렸다.즉, 이 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해야만 그는 경호팀장 자리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이런 생각에 경호팀장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짜증을 애써 억누르며 심호흡을 했다.“저도 두 분이 대체 어디서 초대장을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괜히 소란을 피우지 말고 저를 그냥 따라오시죠? 나중에 억지로 끌려 나가게 된다면 서로 쪽팔리잖아요?”김예훈은 초대장에 적힌 글씨를 흘긋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잘 보세요, 초대장에는 성남 고등
경호팀장의 호통에 주현경은 깜짝 놀랐고 얼굴도 부루퉁해 있었다.기껏 학회를 위하는 마음에 사기꾼과 도둑년의 정체를 까밝혔더니 경호팀장은 전혀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었다.다만 그녀가 어찌 경호팀장의 생각을 헤아리겠는가? 만약 일이 계속 커지면 결국 잘 처리되더라도 경호팀장은 끝장날 운명인데!“두 분, 이쪽으로 오시죠?”경호팀장은 평정심을 되찾고 손짓했다.이예운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런 장소에 참석한 건 처음인지라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하지만 김예훈은 오히려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만약 내가 팀장님이라면 여기서 윽박지르는 대신 얼른 가서 이예운 씨의 신분부터 알아볼 겁니다. 어쨌거나 성남 고등학교는 성남시에서 제일 좋은 고등학교로 알려졌는데, 팀장님이 그런 학교의 교장님을 쫓아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지 않겠어요?”이내 경호팀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동안의 식순에 따르면 곧 양정국이 개회사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지라 얼른 이 상황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골치 아프게 될 것이다.“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경고합니다. 저도 저지만 스스로 난처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김예훈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모처럼 참을성 있게 설득했더니 경호팀장은 절대로 순순히 물러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팀장님, 진짜예요! 아니면 주총장님한테 연락해서 물어보세요. 제가 교장님으로 임명받은 건 오늘 오후에 있은 일이거든요.”이예운은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설명을 보탰다.경호팀장은 말문이 막혔다. 물론 이예운이 말하는 주총장이 성남시 교육청 일인자인 주현강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고작 경호팀장인 그에게 어찌 그런 분의 연락처가 있겠냐는 말이다.또한, 이를 통해 이예운이 사회초년생으로서 확실히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주현경은 이예운과 김예훈이 자리를 뜨기는커녕 오히려 경호팀장과 말다툼하는 걸 보자 자칫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일이 커질수록 결국에는 이예운이 더 큰 망신을 당하지 않겠는가?이렇게 되면 이예운과
이에 손지강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비록 손씨 가문의 세자이긴 하지만, 차마 이런 자리에서 함부로 날뛸 수 없는지라 주현경을 힘껏 노려보고 나서야 눈 딱 감고 앞으로 나섰다.“여러분, 두 사람이 저랑 아는 사이는 맞아요. 그러나 절대 친구는 아니에요. 저는 쓰레기랑 친구 사귀는 취미는 없거든요.”만약 평소라면 그는 이예운의 편을 들어줬을지 모르지만, 이예운이 또다시 김예훈을 선택한 이상 사내대장부가 어찌 자존심도 없이 한낱 여자의 비위를 맞춰줄 수 있겠냐는 말이다.사람들의 관심이 전부 김예훈한테로 쏠린 탓에 아무도 성남시 일인자 양정국이 연회장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오늘 성남 고등학교에 비서도 동행했던지라 그는 김예훈을 단번에 알아보고 목소리를 낮추었다.“무슨 오해가 생겼나 봐요. 김예훈 씨라는 분은 절대로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닌 것 같은데 제가 가서 설명할까요?”양정국이 다소 굳은 표정으로 손을 젓더니 한참 후에 느릿느릿 말했다.“통제 불능인 상황까지 가면 몰라도 아직은 나설 필요 없어.”비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비록 김예훈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문제는 그가 오늘 경기도 일인자의 수행비서마저 모셔왔다는 점이었다.이런 사람이 귀인 또는 거물이 아니면 뭐냐는 말이다!누가 봐도 곤경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당연히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양정국은 여유만만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고작 비서 따위가 그의 생각을 이해할 리가 없었다.그동안 성남시 일인자의 자리를 지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예를 들면 일류 가문인 손씨 가문은 그를 대신할 다른 사람을 적극 지원했는데, 그 후임자가 바로 왕태호였다.비록 오늘 사건 때문에 왕태호는 당분간 잠잠해질 가능성이 크지만, 손씨 가문은 양정국에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다만 그가 설령 성남시 일인자라고 해도 손씨 가문을 확실하게 해결할 자신이 없었다.이제 손씨 가문 세자가 화를 자처하려고 나대는데, 양정국은 당연히 수수방관하기 마련이다.이처럼 하늘에서 뚝
“남들이 손세자가 너무 일찍 성공한 탓에 자만심이 들기 마련이라고 하던데, 오늘 보니 전혀 김세자 못지않은데요?”“아쉽게도 시대를 잘못 타고났군요. 3년만 더 일찍 사회에 나왔더라면 성남시에 김세자란 이름이 들리지도 않았을 텐데.”“그러니까, 다들 김세자를 너무 추켜세웠나 봐요. 사실상 손세자가 더 유망할 수도 있겠네요?”스스로 고상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이제 손지강의 비위를 맞춰주기 급급했다.어쨌거나 손지강 덕분에 체면이 선 만큼 뭐라도 보답해야지 않겠냐는 말이다.물론 김세자와 비교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경기도의 일인자라고 하면 단연코 김세자이니까.전설 속 김세자와 비교하는 말을 들은 손지강은 저도 모르게 우쭐하는 표정을 지었다.경기도에서 김세자랑 같이 언급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영광이 따로 없었다.그날 복률이 김세자와 가장 근접한 남자라고 스스로 자부하지 않았는가!“자, 여러분, 저를 너무 비행기 태우시면 안 됩니다. 제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고 있거든요.”손지강은 겸손한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대단한 재주는 없어도 쓰레기 하니만큼은 기가 막히게 치우죠.”이 말을 듣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이내 손지강은 김예훈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꺼져.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나?”“손지강, 너무 한 거 아니야? 우리도 초대장이 있다고.”이예운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손지강이 일부러 태클 거는 게 뻔했다.손지강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피식 웃었다.“초대장? 성남 고등학교 이사장은 우리 집안 사람이야. 네가 초대장을 훔친 거지? 감히 우리 집 물건마저 손을 대다니? 이예운, 오늘 똑바로 설명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말을 마친 손지강은 이예운 쪽으로 걸어갔다.이예운의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그녀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김예훈이 앞으로 나서더니 앞을 가로막았다.순간 어리둥절한 이예운은 넋을 잃고 말았다.감히 자신의 앞길을 막는 김예훈을 보자 손지강이 싸늘하게 말했다.
옆에 있는 주현경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물론 일이 이 지경까지 될 거라고는 그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여우 같은 이예운의 애인이 감히 손지강에게 손을 대다니? 이건 죽음을 자초하는 짓과 다름없었다.이제 큰일이다! 저 남자가 끝장나는 건 물론 이예운도 처참한 결말을 맞이할 게 뻔했다.어쨌거나 손지강은 점잖은 겉모습과 달리 매너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당신 누구야? 감히 손세자에게 손을 대다니? 손세자가 대체 어떤 신분과 지위를 가진 사람인지 알고 있어?”주현경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손지강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 김예훈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어쨌거나 그녀는 일이 더 커지기를 바라는 입장이다.반면, 손지강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주변 사람들의 표정은 마치 그를 조롱하는 듯 하나같이 웃음거리를 기대하는 얼굴이었다.이에 이성을 완전히 잃은 손지강은 김예훈을 당장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반면, 경호원들도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김예훈이 감히 손지강에게 손을 댈 줄은 상상도 못 한지라 더욱이 귀싸대기 날릴 거라고는 예상조차 못 했다.이건 단지 손지강에게 손을 댄 걸 넘어서 일류 가문인 손씨 가문의 체면을 짓밟은 것과 마찬가지였다.곧이어 경호원들이 김예훈을 제압하려고 우르르 몰려드는 순간 위엄이 넘치는 누군가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이게 뭐 하는 짓이야!”성남시 일인자 양정국이 드디어 뒤늦게 모습을 보였다.그의 등장 타이밍은 기가 막혔다. 손지강이 김예훈의 심기를 건드리고 나서 손씨 가문과 김예훈의 모순도 극대화됨으로 서로 화해한다고 해도 무용지물인 상태였다.그리고 더 중요한 건 이 시점에 나서서 중재하면 나중에 양측 모두가 그에게 신세를 지게 되지 않겠는가!“어르신!”순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사람들은 잇달아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했다.성남시 일인자야말로 현장에 있는 손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자랑했다.여기저기서 인사가 오가는 가운데 양정국이 경호팀장에게 다가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상황인가?
“어르신, 진짜 초대장이든 신분이 얼마나 대단하던 감히 나한테 손을 댔다는 자체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이때, 손지강이 서늘한 얼굴로 입을 뗐다.양정국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손지강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손세자, 아마 눈앞에 있는 분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럴 텐데, 나조차 건드리기 힘든 귀인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고 있으니 먼저 태클 건 쪽이 맞아도 싸지 않겠어요? 지금 당장 무릎 꿇고 김예훈 씨한테 사과해요. 아니면 어디 한 번 두고 봅시다!”말을 마친 양정국은 정중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했다.양정국마저 공손하게 대하는 젊은이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양정국 씨! 그게 무슨 뜻이죠? 설마 지금 성남시 일인자라고 감히 손씨 가문의 앞에서 위세를 부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죠? 똑똑히 들어요. 손씨 가문 말 한마디면 당신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다고요.”손지강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까지 그에게 무릎 꿇으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전성기 시절의 김병욱마저 동년배로서 서로 왕래만 했을 뿐이었다.무릎을 꿇으라는 양정국의 한 마디에 손지강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손세자가 거절한 이상 손장건 회장님한테 연락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나중에 집안 어르신도 손세자처럼 당당했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양정국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또한 그가 계획한 일이기도 했다.곧이어 그는 휴대폰을 꺼내 손장건의 번호를 눌렀다.“손장건 씨, 그쪽 손자가 우리 학회에서 말썽을 피우는데 직접 와서 해결해줄래요?”양정국이 무심하게 말했다.휴대폰 너머로 손장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손자 녀석이 어찌 그런 고상한 자리에서 소란을 피울 수 있겠어요? 어르신의 눈에 띄었으니 저 대신 좀 혼내주세요. 설마 어르신마저 안중에 없겠어요?”“회장님, 아직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모르는 것 같은데 직접 오시는 게 어떤
학회 현장.양정국은 전화를 끊고 무심한 눈빛으로 손지강을 바라보았다.“회장님이 금방 오신대요. 그때 가서도 지금처럼 고집을 꺾지 않았으면 좋겠지만.”손지강이 냉소를 지었다.손씨 가문은 고작 성남시 일류 가문에 불과한 게 아니었다. 고난을 함께 나누는 다른 3대 일류 가문이 있는데, 뭐가 두렵겠냐는 말이다.이따가 할아버지가 오면 그는 김예훈한테 무릎 꿇고 꺼지게 하는 건 물론 일인자 자리에서 양정국도 끌어내릴 예정이다.반면,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고작 이런 일 때문에 손씨 가문의 회장인 손장건이 친히 찾아오다니?보아하니 결코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닌 듯싶었다.양정국은 그제야 김예훈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김예훈 씨,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조금만 일찍 도착했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김예훈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만약 진짜 늦었다면 당연히 상관없지만, 일찍 도착했으면서 일부러 수수방관하다가 기회를 봐서 나타나는 게 더욱 괘씸하지 않겠어요? 물론 어르신은 그런 분이 아니겠죠.”비록 김예훈은 웃고 있었지만 얼굴에 전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이 말을 듣자 제아무리 성남시 일인자라고 해도 양정국은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그는 마치 윗사람을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이내 당황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억지로 미소를 짜냈다.“정말 늦게 왔으니 오해하지 마세요. 김예훈 씨가 연루된 일인데, 당연히 중요시하지 않겠어요?”김예훈은 피식 웃었다.양정국이 손지강에게 무릎 꿇으라고 하는 순간 그는 이미 상대방의 의도를 눈치챘다.아마도 손씨 가문이랑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니라서 자신을 핑계로 손씨 가문을 상대하려는 듯싶은데, 물론 생각이나 수단 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다고 할 수 있었다.“머리는 잘 썼네요. 이 자리에 오를 수 있는데 다 이유가 있네요. 다만 날 도구로 삼다니, 그 결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있어요?”김예훈은 손을 뻗어 양정국의 어깨를 두드렸다.태산이 무너져도 눈 하
류서우의 편파적인 말투를 들은 나오키가 말했다.“류서우 씨, 제가 증언해 드릴게요. 저 자식이 바로 제 아들딸을 죽이고 한일 관계를 파괴한 놈이에요. 그리고 여기 쓰러져있는 일본인들도 전부 다 저 자식이 죽였어요. 살인마나 다름없는데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해요! 저런 사람이 죽지 않으면 한일 관계도 다시 호전될 수 없다고요.”나오키는 일본의 신성한 사무라이 정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어쩌면 비열한 것이 본모습이라 사무라이 정신은 그저 보여주기식일지도 몰랐다.남들이 믿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절대 믿지 않는 그런 거짓말처럼 말이다.나오키의 진심 어린 호소에 류서우가 웃으면서 말했다.“나오키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집법 부대에서는 법에 따라 이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할 거예요. 자기 사람도 다스리지 못한다면 용문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겠죠.”류서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 회장님, 정말로 반항할 준비가 되셨어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피식 웃었다.“반항? 만약 시비를 가리지 않고, 선과 악도 구분하지 못해 악당을 도와주는 것이 집법 부대의 스타일이라면 반드시 반항해야 하겠는데?”“이런 젠장! 어디서 이런 무례한 말을 하는 거예요! 용문당 집법 부대를 모욕한 죄로 더 큰 벌을 받아야 할 거예요!”류서우는 뒷짐을 쥔채 거만하게 김예훈을 쳐다보고 있었다.“지금 아셔야 할 것은 당신은 이미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거예요. 규칙이든 법도든 하나도 빠짐없이 위반했다고요! 그런데도 저희가 나서지 않으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 같아요?”‘하찮은 회장 주제에 공손하게 대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도전장을 내밀어?’류서우의 마음속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과거의 회장들은 류서우를 보면 바로 굽신거렸는데 처음 보는 태도에 더욱 분노를 샀다.이 순간, 류서우는 허리춤에서 활을 꺼내 김예훈의 머리를 겨냥하면서 차갑게 말했다.“손 머리 위로, 무릎 꿇으세요!”“정말 구제 불능이네.”김예훈은 한숨을
류서우는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냉랭하게 말했다.“제가 집법 부대를 대표해서 알려드리는데 무기를 내려놓고 나오키 씨한테 용서를 비세요. 그리고 저희 집법 부대에서 회장님을 어떻게 처리할지 기다려 주세요. 다시 마음대로 행동했다간 체면이고 뭐고 바로 체포할 거예요. 어차피 나오토 씨도 죽이고 세이이치로 씨도 죽인 건 사실이잖아요. 증거가 확실하고 사실도 명백하니 당신을 죽여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 같아요.”이때, 류서우의 손짓하나에 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들이 활을 꺼내 김예훈을 겨냥했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뒤돌아 류서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마치 자신을 싫어하는 듯 공격성이 강했다.하지만 집법 부대라는 말에 김예훈은 조금이나마 그녀가 이해되기도 했다.부산 용문당 회장이 된 이후로 많은 사람의 이익을 해쳤기 때문이다.그리고 지난번 만남에서 집법 부대를 짓밟아버렸는데 그런 그들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도 말이 안 되었다.짓밟힌 상황에서도 류서우가 이렇게 대담하게 찾아온 것을 보면 신분이 심상치 않거나 용문당 몇몇 장로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컸다.일반적인 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라면 김예훈 앞에서 아마 기침도 하지 못했다.이때 김예훈이 담담한 표정으로 류서우를 쳐다보면서 말했다.“나오토는 내가 죽인 게 아니야. 확실한 증거도 있고, 증인과 물증도 충분한데 어떻게 내가 죄를 지었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거야? 세이이치로는 내가 나오토를 죽이지 않은 걸 알면서도 그 핑계로 나를 공격하려고 했고, 나는 그저 정방 방위했을 뿐인데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래? 나오키도 복수심에 불타서 고수들을 조직해 나를 포위하려고 했고, 이 많은 사람이 나 하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그것도 내 잘못이야? 루미코 역시 의사로 가장해 나를 암살하려고 했어. 타케이 가문에서 자꾸만 나를 괴롭히고 죽이려고 해서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정당 방위했을 뿐이라고. 집법 부대 제자 입장에서는 내가 무모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해? 넌 도대체 한국인이야? 아니면 일본인이야?
랜드크루저가 마당을 뚫고 들어온 순간, 누군가 차 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스무 명이 넘는 젊은 남녀가 동시에 차에서 내렸다.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거만하고 차가운 표정이었다.그중 앞장선 사마은 키가 거의 1미터 70이 넘는 긴 생머리 미녀였다.그림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있는 그녀는 세상 모든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녀는 왼손에 태블릿을 쥐고 김예훈을 힐끔 쳐다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김 회장님, 무단으로 부산을 떠나 진주에 와서 살인 방화를 저지르다뇨! 저 류서우는 정말 회장님께서 뻔뻔한 사람은 처음 보네요. 제 발로 찾아왔으니 절대 이만 갈 생각하지 마세요. 죽고 싶지 않으면 무기를 내려놓고 무릎부터 꿇으세요. 그러면 목숨만은 구제해 줄게요.”김예훈은 이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너희들 누구야?”“용문당 집법 부대인데요?”아주 깔끔한 대답이었다.“저희 당주님께서는 회장님이 부산 용문당의 안위를 무시하고 일본 손님을 도발했다는 신고를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진주에까지 와서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진주 기관은 당신 같은 사람을 용납할 수 없어요! 저희 용문당에서도 용납할 수 없고요!”“그래?”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용문당 4대 장로님이 지켜주는 집법 부대? 글쎄 왜 이렇게 거만하게 행동하는가 했네.”김예훈은 용인주의 체면을 봐서 부산 용문당 회장을 하기로 한 것이다.아니면 당주를 하라고 해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라도 해도 그의 앞에서 잘난 척할 자격이 없었다.“마침 잘 왔어. 내가 이따 나오키를 죽이면 바닥을 깨끗이 청소하고 현장 정리 잘해. 아무리 그래도 진주 호텔인데 사람이 죽으면 너무 불길하잖아.”김예훈을 차가운 말을 내뱉으면서 나오키를 죽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결국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이 오늘 밤 그의 목적이었다.“김 회장님!”류서우는 결국 분노하고 말았다.“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세요? 저희 집법 부대는 당주님과 회장님을
퍽!바닥에 세게 부딪힌 나오키는 힘겹게 일어나려고 했지만, 체내에서 알 수 없는 힘이 휘몰아쳐 결국 피를 토해냈다.그는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이 순간 그는 대결로 모든 생명력과 잠재력을 소진했는지 아까보다도 더 늙고 초췌해 보였다. 나오키는 창백한 얼굴로 저항하지도 않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은 채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오른손에는 여전히 검을 쥐고 있었다.아직 죽지 않았지만, 곧 죽음이 다가올 운명이었다.김예훈의 손에 목숨이 잡혀있었기에 그가 원한다면 뺨 한 대로 바로 목숨을 끝내버릴 수 있었다.“안 돼!”이 모습에 일본 고수들은 마음속 신이 무너진 것처럼 통곡했다.여전히 표정이 덤덤한 김예훈의 모습에 일본 남녀들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진세은 역시 의심할 여지 없이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정신마저 혼미해졌다.김예훈이 나오키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거로 생각지도 못했다.몇 명의 아름다운 일본 여성들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막고 있었다. 무슨 소리라도 냈다간 함께 김예훈의 손에 죽을까 봐 겁이 났다.“네가 졌어.”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이미 말했잖아. 알아서 목숨을 내놓으면 체면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왜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그런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퍽!김예훈은 단검을 나오키 앞에 떨어뜨리더니 피식 웃었다.“일본 사무라이들이 전장에 나가서 지면 알아서 목숨을 끊는다고 들었어. 그리고 항상 두 자루의 검을 가지고 다닌다지? 장검은 적을 죽이는 데 쓰이고, 단검은 자결하는 데 쓰인다고 들었어. 단검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내가 직접 빌려줄게. 네가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줄지 너무나도 궁금해.”이 말에 열몇 명의 일본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이들은 그제야 김예훈이 전혀 용서할 마음 없이 뿌리까지 뽑아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런 제기랄! 끝까지 해봐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환각이 나타난 것처럼 나오키의 뒤에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귀신이 나타나 검을 들고 내리치는 것 같았다.이런 한방에 마음이 약하나 자는 바로 무너지기 일쑤였다.밖에서 그 기운을 느낀 진세은은 힘이 풀려 오줌을 지릴 뻔했다.쨍!이 순간,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나타나 나오키의 검을 막았다.쨍!김예훈은 멈추지 않고 뒤로 날아가 발이 바닥에 떨어질 때 뒤로 세 발짝 물러서 나오키의 검에 담긴 기운을 물리쳤다.“흥미롭군. 이제 막 무신 급에 접어든 실력이 아니야.”김예훈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음양술로 이 실력에 도달할 수 있는 거 보면 일본 국방부의 그 몇몇 무신들도 너의 상대가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죽고 싶어서 억지로 장병급에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무신 급으로 거듭난 거야? 이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무너지고, 사람 전체가 망가질 텐데?”김예훈은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그는 이러한 기이한 수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음양술, 주술 등을 이용하여 강제로 실력을 높이는 것은 자기 잠재력을 이미 소진하는 것과 같았다.특히 한 번에 큰 범위를 돌파하면 소진력은 더욱 무서웠다.나오키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대결이 끝나면 육체가 완전히 무너져서 병신이 될 수도 있었다.“김예훈, 너를 죽일 수만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어.”나오키는 차가운 표정으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다시 검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샤샥!나오키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또 한 번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완전히 방어를 포기한 상태라 오히려 빈틈을 드러내며 검을 휘둘렀다.샤샥!김예훈이 무심하게 휘두른 검은 정확히 나오키의 검에 부딪혔다.나오키는 부들부들 떨면서 어쩔 수 없이 뒤로 대여섯 발짝 물러났다.이순간 나오키는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렇게까지 큰 대가를 치렀는데 맞은편의 김예훈이 이 정도로 쉽게 공격을 피해버릴 줄 몰랐다.이것으로
나오키는 김예훈의 폭넓은 지식에 놀라긴 했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말 하지 않고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나머지 열몇 명의 일본 고수들은 소리를 지르며 추문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던 추문성은 진세은이 방금 바닥에 떨어뜨린 총을 집어 들고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퍽! 퍽! 퍽!여러 일본 고수가 피바다에 쓰러졌지만 다른 일본 고수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돌진해 왔다.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세은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전혀 움직일 수 없어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이 시각, 김예훈과 나오키는 정면으로 승부를 겨루고 있었다.샤샥!나오키가 은빛 광채를 띠는 검을 앞으로 내리치길래 김예훈은 검으로 그의 천둥 같은 일격을 막아냈다.쨍!두 검이 부딪히는 순간 고막이 터질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나오키는 숨을 가쁘게 쉬면서 연신 뒤로 물러났다.하지만 김예훈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오키를 바라보았다.“무신 급이네.”김예훈은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나오키가 종이 인형을 사용해서 실력이 업그레이드되어 무신 급이 될 줄 몰랐다.비록 오래 지속될 수도 없고, 그에 따른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무신 급은 엄연히 장병급과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예를 들어 오정범과 추문성이 젊은 층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긴 하지만 김예훈의 지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돌파구를 찾아 무신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나오키가 이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일본의 음양술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한 이유를 알수 있었다.김예훈이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나오키는 이미 무표정으로 칼을 들고 다시 접근했다.일본 검도를 수련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나오키는 김예훈과 같은 상대를 상대할 때 그 어떠한 허세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매번 검을 내리칠 때마다 온갖 힘을 다해 휘둘렀다.쨍! 쨍! 쨍!무표정을 한 김예훈
어쨌든 나오키도 전설적인 인물로서 많은 풍파와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다.하지만 자기가 직접 상속자로 지정한 아들이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자, 품위를 지키던 모습은 사라지고 극도의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세이이치로와 마찬가지로 신분을 밝혔는데도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며 자기 아들을 죽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이순간 나오키는 분노로 들끓기 시작하면서 김예훈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어했다.열몇 명의 일본 남녀들이 짐승처럼 포효하면서 검을 꺼내 언제든지 덮칠 준비가 되어있었다.오직 김예훈만은 무덤덤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추문성은 진작에 당도를 들고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진세은은 부들부들 떨면서 장례식장에서 빠져나갔고,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었다.따라서 홍성파 정예 부하들도 얼굴이 창백해진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그 순간, 진세은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지만 마치 느끼지 못한 듯 계속해서 중얼거렸다.“이런 미친놈은 절대 건드리면 안 돼.”진세은은 차라리 진주 감옥에 있었으면 했다.평생 감옥에 갇히더라도 이 장면을 겪고 싶지 않았다.“이런 제기랄! 감히 내 앞에서 내 아들을 죽여? 죽여버릴 거야! 너의 온 가족도! 너의 조상님들도 모조리 무덤에서 파내서 뼈를 부숴버릴 거라고!”나오키는 검을 꺼내 앞으로 돌진했다.김예훈 역시 무심하게 검을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은 부모님의 잘못이야. 네 아들이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른 것도 네가 잘 가르치지 못해서 그런거라고. 일본인이 대한민국에 왔으면 고개를 숙이고 다녔어야 한다고 진작에 말해줬어야지. 네가 불만이 많다는 거 알아. 그렇다면 내가 공정하게 대결할 기회를 줄게. 하지만 너는 분명히 내 상대가 아니야. 그러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좋을 거야. 나이를 잔뜩 처먹고 지는 것도 쪽팔리잖아.”말하는 사이, 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검을 들었다.쌍방의 원한은 이미 죽고 못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마냥 좋은 사람이 되기 싫은 김예훈은
다른 타케이 가문 사람들은 김예훈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도 나오키는 김예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예를 들어 부산 용문당 회장으로서 부산에 있을 때 야마자키파를 물리친 사실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부산에 있는 야마자키파 중에 무신 급은 없었기에 김예훈이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나오키는 비참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아들을 보면서 화를 내는 대신 차분한 모습이었다.김예훈은 그런 그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타케이 가문의 수장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고, 그저 약간의 호기심뿐이었다.‘장병급 주제에 대한민국에 와서 위세를 부려?’“이봐, 젊은이. 오늘 일은 여기까지인 걸로 해. 나오토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니 일본대사관에 진주 경찰서에 잘 협조하라고 할게. 만약 네가 정말 억울한 거라면 내가 타케이 가문을 대표하여 한마디 하지. 절대 너에게 복수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국제 경찰에 수배 신청도 내리지 않을 것이고.”나오키는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나 나오키는 타케이 가문의 수장이자 야마구치파의 장로로서 절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만 가봐. 떠나기 전에 내 아들한테 사과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대가를 치러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나오키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그의 신분으로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반드시 체면을 세워줄 거로 생각한 모양이다.죽어버린 타케이 가문 정예들에 대해서는 김예훈이 좋은 조건만 제시하면 따라서 없던 일로 해줄 수 있었다.“사과? 일본인 주제에 나한테 사과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발로 바닥에 있던 검을 두 동강 냈다.사람들이 반응할 틈도 없이 그중 한 조각은 세이이치로의 목구멍에 꽂히고 말았다.세이이치로는 부들부들 떨면서 목을 부여잡은 채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러다 서서히 바닥에 널브러져 숨을 거두게 되었다.그는 진주에 오고부터 타케이 가문의 상속자이자 야마구치파의
진세은은 총을 들어 올리려다 다시 움츠러들었다.김예훈이 추문성 덕분에 위세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이순간 절망감에 휩싸이고 말았다.세이이치로는 얼굴이 찌릿찌릿한 느낌에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당연히 자존심, 자부심과 사무라이 정신마저 짓밟히고 말았다.김예훈은 휴지 한 장을 꺼내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닦으면서 말했다.“넌 나한테 안 돼.”다시 정신을 차리려던 세이이치로는 이 말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사실 김예훈을 만나기 전에 그의 실력을 과대평가한 건 사실이지만 곁에 장병급 실력자가 있다고 해도 자기 상대가 안 될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뺨 한 대에 무너질 줄이야.야마구치파든, 타케이 가문이든, 실력자든, 김예훈의 소박한 뺨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세이이치로는 절망감에 휩싸였다고 해도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김예훈, 장난 아닌데? 그런데 나를 이겨서 뭐 하려고? 나는 진주에서 직접 모신 손님인데 나를 죽였다간 어떻게 보고하려고? 어떻게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겠어. 그래서 말인데 넌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나를 죽일 용기는 없을 거야. 지금 이 시대에서는 힘이 강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수 있는 건 아니거든. 김예훈,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어.”“그래?”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앞으로 다가갔다.“네가 날 이렇게 도발하는데 죽이지 않고서야 내 체면이 서겠어?”김예훈의 미소에서 살기를 느낀 진세은은 부들부들 떨면서 누군가에게 전화했다.“뭐하는 짓이야!”바로 이때, 뒷문 쪽에서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열몇 명의 일본 남녀가 검을 들고 문을 박차면서 들어왔다.조금 전의 일본인들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풍기고 있었다.뒤이어 기모노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뒷짐을 쥐고 걸어왔다.추문성은 이 사람을 보자마자 숨이 가빠지더니 본능적으로 김예훈의 앞을 가로막았다.“아버지.”상대방을 확인한 세이이치로는 뻘쭘한 표정이었다.“나오키 어르신!”진세은은 기쁜 마음에 재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