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영이네 가족은 손님이니까 손님 의견을 따라줘.”정군의 말에 정민아는 할 수 없이 쇼핑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잠깐의 휴식 후, 이들은 쇼핑하러 출발했다.정민아가 포르쉐를 몰고 나타나자 장미순이 흠칫 놀랐다. 하지만 유문석과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애마는 벤츠였고 기세도 엄청났다.그리고 그녀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남편이 아무 쓸모가 없으니 비교할 바가 없었다.장미순은 심지어 임은숙 가족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우수한 사위를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았다.쇼핑몰에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특히 럭셔리 상가 앞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면세점이라 성남의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사치품을 구매하곤 했다.“이 쇼핑물을 세운 사람이 바로 송준이에요. 우리 남편 친구이기도 하죠.”이아영은 소개를 하며 남편 자랑을 잊지 않았다.임은숙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비록 김예훈을 쫓아내기 위한 계획이었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그와 달리 정군은 아무 일도 없는 듯했다. 어찌 됐든 김예훈을 집에서 쫓아낼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김예훈만이 어이가 없었다. 송준의 친구인 게 왜 자랑거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나중에 이 일로 송준을 놀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이런 쇼핑몰은 일반 사람이 세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송준 역시 당도 부대의 인맥을 빌어 이 건물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이 역시 송준의 능력을 검증하는 일이었다.이아영은 이들을 이끌고 샤넬 상가로 향했다. 그녀는 새로 나온 신상을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유문석은 계속 그녀한테 사주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은 김예훈의 기를 죽이기 위해 샤넬 백 사는 걸 동의했다.백을 얻음과 동시에 불쌍한 언니를 도와 모지리 남편을 벗어나게 한다는 생각에 이아영은 자기가 영웅처럼 느껴졌다.“언니, 이 백 어때?”이아영이 정민아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녀는 일부러 가격표를 보며 경악했다.“헉, 2천 5백만 원이야. 문석아, 사도 돼?”
유문석은 자기가 나설 때가 됐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가격표를 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사, 비싸지도 않네, 뭘. 아내가 좋아하는 거라면 별도 따줘야지.”이아영은 그를 껴안으며 볼에 뽀뽀했다.“사랑해, 여보. 이런 남편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정민아는 두 사람의 발연기를 보며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김예훈은 매장 통째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이까짓 샤넬 백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여기 괜찮네. 마음에 들어?”김예훈이 정민아 곁으로 다가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 그를 보며 정민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김예훈은 도대체 무슨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그녀가 고개만 끄덕인다면 김예훈은 매장 전체를 살 게 분명했다.“민아 언니 마음에 들면 사주려고요? 배보다 배꼽이 크네요.”이아영은 김예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그러나 김예훈은 그녀를 무시하고 정민아한테로 눈길을 돌렸다. 그녀가 마음에 든다면 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차피 얼마 후 청혼할 것이니 이걸 선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정민아는 백운산 프로젝트 때문에 워낙 골치가 아파 매장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여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관심 없어.”“민아 언니, 예훈 씨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거야. 내가 보기엔 여기 있는 백 하나도 살 수 없는걸? 어차피 왔으니까 하나 골라. 우리 남편이 사면 그만이니까.”이아영이 그녀를 유혹했다.“아니야, 집에 많아. 아직 다 써보지도 못했는걸.”정민아는 솔직하게 답했다.“칫!”이아영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돈이 없다고 하면 그만이지. 왜 저런 소리를 해?’하지만 그녀는 바로 표정을 숨기고 웃으며 말했다.“언니, 남편이 사줄 수 없다는 거 알아. 그러지 말고 하나 골라. 우리 남편이 살 거라니까?”이렇게 말을 했지만 아까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백 하나에 몇백만 원을 호가했으니 말이다.
이아영의 끝없는 조롱에 정민아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이윽고 정민아는 가장 비싼 백이 전시된 존으로 향했다. 이아영은 순간 머리가 저릿했다. 정민아가 향한 곳에 있는 백은 모두 천만 원이 넘었기 때문이다.그녀가 평소 쳐다보지도 못하는 백을 사려 한다는 생각에 저절로 이가 깨물어졌다.정민아가 가장 비싼 백을 든 순간, 이아영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언니, 너무 하는 거 아니야? 그건 한정판 4억짜리라고!”이아영의 목소리가 떨렸다.“아무거나 고르라며? 그러면 가장 비싼 거로 사야지. 연봉이 억 단위인데 몇억짜리도 못 사줘?”정민아가 웃으며 말했다.정민아한테 선물하려고 한 건 김예훈을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민아의 욕심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언니는 양심도 없어? 선물한다고 했지, 이렇게 비싼 걸 사준다고는 안 했어!”이아영이 이를 꽉 깨물었다.“이것도 못 산다고? 그럼 됐어.”정민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녀는 오늘 가만히 있으려고 했지만 끝없이 남편을 조롱하는 이아영 때문에 이미 화가 가득 나 있었다.김예훈은 곁에서 흥미진진하게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전에 정씨 가문의 괴롭힘을 받던 그 여자가 아니었다.“그게 아니라 이렇게 비싼 선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일부러 이걸 고른 거잖아!”이아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렇게 마음에 들면 남편한테 사달라고 해. 내 남편이 왜 사줘야 하는데? 아, 참, 남편이 그걸 살 돈이 없지?”그녀는 김예훈을 조롱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만약 자기 때문에 정민아가 이혼한다면 그녀의 공로는 엄청나게 된다.이때, 누군가가 매장으로 들어오며 말했다.“이 한정판 백, 포장해주세요.”
이에 모두 깜짝 놀랐다. 이렇게 비싼 백을 망설임도 없이 사는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이아영과 유문석은 고개를 돌렸다.“헉! 송준?”이 사람이 왜 여기에 나타난 거지?아침에 터진 뉴스 덕분에 정민아는 바로 송준을 알아봤다. 그러나 그녀는 송준이 왜 이 백을 사고 자기한테 주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아침에 사진에 뒷모습을 드러낸 사람이 진짜 김예훈이란 말인가?정민아는 고개를 돌려 김예훈을 봤다. 송준도 고개를 돌려 김예훈의 눈치를 봤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예훈 옆에서 1년여 동안 경호를 맡은 송준은 바로 그가 화났음을 알아챘다.이에 송준은 바로 설명하기 시작했다.“정 대표님, 갑작스럽겠지만 얼마 전 CY그룹 회의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 대표님이 마침 우리 쇼핑몰의 십만 번째 고객이라 이 선물을 주려는 겁니다.”비록 억지스러웠지만 유문석과 이아영은 바로 믿었다. 그들은 정민아와 송준이 무슨 사이라도 될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녀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유문석은 자신감을 되찾고 송준한테로 다가갔다.“송 대표님, 저 기억나죠?”송준은 그를 훑어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나 김예훈의 체면을 봐서 조심스레 물었다.“이분은...”“전 CY그룹의 팀장 유문석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만난 적이 있죠...”유문석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그는 송준이 자기를 알아보길 바랐다.“팀장?”송준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누군지 모르겠고 당신과 알고 지낼 필요도 없습니다.”송준의 솔직한 답변 때문에 유문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이때, 임은숙이 의문스레 물었다.“송 대표님, 유문석이랑 친구 사이 아니세요?”그녀는 유문석을 깎아내릴 생각이 없었다. 단지 송준이 기억하지 못한 거라고 믿었다.송준은 김예훈의 표정을 살피고 말을 이어갔다.“죄송합니다. 누군지 모릅니다. 알 필요도 없죠.”말을 마친 송준은 매장을 나섰다.총사령관이 화가 났으니 얼른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었다.
송준이 떠난 후에야 정민아가 웃으며 말했다.“오늘 좋은 사람을 만났네요. 저분이 화를 내지 않은 게 다행이에요.”이아영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이를 꽉 깨물었다.“언니, 우리 남편이 송준이랑 친구가 아니라고 해도 언니 남편보다 백배, 아니 천 배는 나아!”“그래? 하지만 우리 남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그건...”이아영은 화가 나 몸이 부르르 떨렸다.이때, 임은숙이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됐어, 가족끼리 왜 이러는 거야? 남들이 보면 웃어.”정민아는 입을 다물었다. 임은숙은 이아영 편이었다.‘모두 같은 편이었네.’하지만 김예훈은 화를 내지 않고 임은숙과 장미순을 보기만 했다. 이건 그한테 게임에 불과했다. 이 게임이 어떻게 끝날지 그도 궁금했다.이들은 샤넬 매장에서 나온 후 다른 매장으로 향했다.“잠시만요, 제가 뭘 두고 온 것 같아요.”김예훈이 갑자기 말했다. 그는 재빨리 샤넬 매장으로 달려갔다.“아마 백 사러 간 것 같네요. 뭐, 세일 백이나 사러 간 거겠죠.”이아영은 득의양양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김예훈이 아내 카드로 백 사는 광경을 상상하며 피식 웃었다.정민아는 김예훈의 뒷모습을 보며 의아함이 들었다.‘진짜 백 사러 간 건 아니겠지?’김예훈이 또다시 예전처럼 매장 전체를 살까 봐 걱정되었다.“방금 저 백 포장해주세요.”김예훈은 샤넬 매장으로 들어오자마자 블랙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그제야 직원들은 송준이 왜 그렇게 예의를 갖췄는지 알게 되었다. 김예훈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잠시 후, 김예훈은 백 포장을 들고 매장을 나섰다.“진짜 산 거예요? 얼마짜리에요? 20만 원?”이아영이 조롱하듯 웃었다.김예훈은 아무 말도 없이 정민아 곁으로 다가가 포장을 쥐여줬다.“여보, 수고했어.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그래.”정민아는 남편이 주는 선물이라면 모두 마음에 들어 했다.“언니, 그래도 어떤 백인지 한번 열어봐.”이아영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집에 가서 볼게.”정민아가 거절했다.
곧이어 이아영은 정민아의 손에 든 물건을 잽싸게 낚아채더니 피식 웃었다.“언니, 무슨 볼썽사나운 물건도 아니고 굳이 집에 가서 봐야 할 이유라도 있어? 설마 너무 싸구려라서 망신당할까 봐?”“이아영, 작작해!”정민아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김예훈이 자신한테 준 선물인데, 이아영이 대체 무슨 명목으로 뺏어간단 말인가!이아영은 본인의 무례함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언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이게 다 언니를 위해서야. 무능한 언니 남편이 눈속임하려고 아무거나 가져오면 어떡해? 99.5% 할인해서 40만 원 정도는 되는 구형 모델일 수도 있으니까 다른 선물 달라고 해야 하지 않겠어?”이아영은 말을 이어가면서 포장지를 뜯기 시작했다.하지만 포장지 속의 내용물을 보았을 때 그녀는 마치 감전된 사람처럼 그대로 얼어붙었다.한정판이라니? 그것도 무려 4억짜리 한정판이라고?!순간, 이아영은 잘못 본 줄 알고 연신 눈을 비볐다.이때 유문석도 다가와 한 마디 거들었다.“누나, 만약 쓰레기 같은 물건이라면 내가 10배 더 좋은...”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입을 닫고 얼굴을 찡그렸다. 김예훈이 다름 아닌 이 한정판 가방을 샀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순간 유문석도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이내 김예훈을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고작 병신같은 놈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사람이 무슨 돈이 이렇게 많단 말이지?4억에 육박하는 액수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평생 벌어도 4억이 없는 일반 가정이 얼마나 많은데!“김예훈, 너 혹시 훔친 거야?”이아영은 김예훈의 코앞에서 손가락질하며 따졌다.“이제 말 놓기로 한 건가? 네가 살 형편이 안 된다고 남들도 살 수 없는 건 아니잖아?”김예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하지만 이아영은 김예훈이 샀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이 쓸모없는 자식한테 몇십만이 있으면 몰라도 몇억 원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그나마 이 자식이 싸구려 물건을 사서 점원이 방심한
“다들 눈이 멀었어요? 이렇게 귀한 제품이 바꿔치기 당한 것도 눈치채지 못했어요?”이아영은 도도한 걸음걸이로 매장으로 들어서자 큰소리로 외쳤다.몇몇 점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곧바로 점장이 다가와서 물었다.“손님,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네요.”“이해가 안 가다니? 저기 좀 보세요. 저 사람이 가방을 사고 실제로는 뭘 들고 나갔는지!”이아영은 등 뒤의 김예훈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점장은 오리무중한 표정으로 이아영을 바라보더니 김예훈을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저분께서 이 가방을 산 게 맞는데요?”점장의 공손한 태도는 절대 연기가 아니었다.방금 훔쳐본 김예훈의 잔액이 대체 0이 몇 개 있는지 아직도 가늠이 안 갔다.“그럴 리가! 두 눈 크게 뜨고 똑똑히 확인해봐요! 저런 인간이 어떻게 이 가방을 살 수 있단 말이죠?”이아영은 점점 조바심이 났다. 어디까지나 김예훈을 망신시키기 위해서였지, 스스로 체면 깎이려고 찾아온 건 아니었다.“손님, 예의 좀 지켜주시겠어요? 그리고 저분께서 구매한 가방이 확실해요. 영수증도 있으니까 잘 보세요!”점장은 불쾌한 티를 팍팍 났다. 소란을 피우는 사람은 봤어도 이렇게 막무가내인 적은 처음이었다.남이 무엇을 사든 본인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제정신이 아닌 듯싶었다.이아영은 그 말을 듣고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뒤적거리며 영수증을 꺼내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영수증에는 금액이 찍혀 있었고, 정확하게 3억 5150만 원이었다.그렇다면 이 가방을 진짜 김예훈이 돈 주고 샀단 말인가? 이럴 수가?!고작 쓰레기 같은 녀석한테 무슨 돈이 이렇게 많지?이아영은 무의식중에 정민아를 바라보았다. 설마 김예훈이 그녀의 카드를 긁었나?“언니 진짜 대단하구나. 고작 체면치레를 위해 이런 짓까지 서슴없이 해? 언니를 너무 얕잡아 봤나 봐.”이아영이 냉소를 지었다.“내가 왜?”정민아는 어리둥절하기만
“이 쓰레기 같은 놈이 또 뭐 하려고?”이아영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설마 매장에 다시 들어왔으니 민아 언니한테 또 선물 사준다는 말은 아니겠지? 아주 가관이네, 그럼 사! 어디 한번 매장에 있는 가방 싹 다 결재해보지? 그게 가능하다면 무릎 꿇고 절이라도 해줄 테니까.”이아영은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다. 김예훈이 4억 가까이 되는 가방을 샀다는 자체만 하더라도 이미 충분히 무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따라서 매장에 있는 가방을 전부 구매하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적어도 수십억이 넘지 않겠냐는 말이다.“그래?”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정민아를 힐긋 바라보았다.“이따가 잊지 말고 찍어.”말을 마친 김예훈은 점장을 돌아보았다.“여기 있는 거 다 포장해주세요.”내내 대꾸하느라 바쁜 점장은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진짜 다 구매한단 말인가? 매장에 있는 제품을 전부 더하면 족히 몇십 억은 넘었다!“손님, 농담이시죠?”점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아니요.”김예훈이 딱 잘라 말했다.점장은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비록 김예훈이 돈이 많은 건 알고 있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통으로 물건 달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순간 그녀는 머리가 띵해 나더니 멍한 느낌이 들었다.반면, 이아영은 얼굴이 잿빛이 되었다. 김예훈이 진짜 그녀의 도발에 응할 줄이야! 그녀를 망신 주려고 작정한 건가?다만 말은 쉽게 내뱉어도 과연 결제할 돈이 있냐는 말이다.정민아가 아무리 대표 자리에 올랐다고 해도 몇십억에 육박하는 현금이 있을 리가 없다고 장담했다.“얼른 포장해서 계산하지 않고 뭐해요?”이때, 이아영이 이를 갈며 말했다.이아영은 점점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 저런 못난 놈이 자기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꼴을 어찌 눈 뜨고 지켜볼 수 있냐는 말이다.반면, 옆에 있던 유문석은 식은땀이 확 났다.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으로서 그는 김예훈의 태연한 모습은 진짜 아무렇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며, 절대로 허세 부리는 느낌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
“김예훈?”일본인들은 김예훈의 이름을 듣고 그제야 반응했다.“저놈이 바로 타케이 도련님을 죽인 김예훈이야?’다음 순간,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있던 일본인들은 전부 다 일어나 검을 들고 달려왔다.“김예훈!”세이이치로는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 차가운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내 동생을 죽인 것도 모자라 장례식장까지 찾아와서 난리를 피워? 그리고 내 아버지를 모욕하다니! 죽여버릴라! 우리 일본인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내가 널 검으로 베어버려도 동태원이 아무말도 하지 못할 거야.”세이이치로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김예훈의 집으로 찾아가기도 전에 그가 직접 찾아올 줄 몰랐다.‘우리 일본인이 안중에도 없다니.’일본인들은 하나같이 수치심에 가득찬 표정으로 당장 김예훈을 죽여버리겠다고 아우성쳤다.이때 진세은도 한마디 했다.“김예훈, 너무한 거 아니야? 총독님께서 너를 보호해 준다고 진주에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살인을 저지르고, 장례식장에서 깽판 치고, 외국 손님을 모욕하다니!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진세은을 쳐다보면서 말했다.“타케이를 죽여? 내가 그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면 어젯밤에 진작에 죽었어. 그런데 내 손을 더럽힐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김예훈은 루미코를 바닥에 넘어뜨리면서 말했다.“이 여자가 이미 증거를 봤어. 내가 타케이를 죽인 게 맞는지 어디 한번 물어보든가.”상대방을 알아본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아가씨?”세이이치로도 루미코가 김예훈한테 잡혀있을 줄 몰랐는지 깜짝 놀랐다.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세은은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이대 세이이치로가 냉랭하게 말했다.“김예훈, 무슨 뜻이야? 내 남동생을 죽인 것도 부족해서 내 여동생까지 죽일 작정이야? 정말 우리 타케이 가문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죽이려고 했다면 여기로 데려왔겠어? 오늘 오후에 진주 경찰
세이이치로는 서류를 받아 자세히 살펴보더니 진지하게 말했다.“아버님께 전하세요. 타케이 가문은 홍성파와 영원히 친구 사이로 지내고 싶다고요.”“저희 아버지께서 슬픔에 잠겨있어 위에서 쉬고 있지만 않았다면 직접 감사의 인사를 전했을 거예요. 이 사건이 완전히 끝나버리면 꼭 직접 방문하도록 할게요.”진세은은 웃으면서 세이이치로 귓가에 속삭였다.“그리고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김현민 도련님도 대표해서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러 온 거예요. 지금은 처리할 일이 있어서 오시지 못했지만, 야마구치파에서 도련님을 친구로 삼고 싶다면 앞으로 진주·밀양에서의 모든 행보를 절대적으로 지지할 생각이라고 하셨어요.”안동 김씨 가문의 언급에 세이이치로는 눈빛이 더욱 이글거렸다.그는 진세은을 힐끔 쳐다보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김현민 도련님께도 전해주세요. 저희 야마구치파 눈에는 당연히 안동 김씨 가문이 진주·밀양의 주인이라고요. 김현민 도련님이야말로 안동 김씨 가문의 주인인 거예요.”진세은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속으로 김현민의 능력에 감탄했다.겉으로는 땅을 잃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타케이 사건을 해결하고, 또 야마구치파의 분노를 김예훈에게 돌린 것이다.그것도 모자라 야마구치파와의 우정도 얻었으니 말이다.이 우정만 있다면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는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이들이 웃고 떠들 때, 밖에서 자동차 굉음이 들려왔다.퍽!이 소리를 듣고 막아보려던 일본 청년 몇몇은 난폭하게 운전하는 토요타 프라도에 치여 날아가고 말았다.저 멀리 날아간 일본 청년들은 뼈가 몇 개 부러진 채 바닥에 엎드려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누군가가 타케이 가문의 영역에서 소란을 피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세이이치로가 벌떡 일어나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런 제기랄! 도대체 누구야!”이때 진세은은 뭔가를 떠올리며 부들부들 떨었다.그녀는 본능적으로 가슴에 숨겨둔 총을 꺼내 약간 당황한 듯 뒤쪽을 바라보았다.다음 순간,
세이이치로의 말은 섬뜩하기만 했다.그는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있는 검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김예훈이라는 사람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든, 어떤 실력을 갖추고 있든 반드시 설명을 요구할 거예요. 김예훈은 반드시 죽어야겠어요! 타케이 가문이든 야마구치파든 절대로 목숨을 이대로 낭비할 수 없어요.”세이이치로한테는 타케이가 일본의 영웅인 것 같았다.영정 앞에 무릎 꿇고 있던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살기가 가득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복수라는 두 글자가 적혀있는 두건이 묶여있었다.김예훈을 찾아내 산산조각 내지 않고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만 같았다.김예훈을 증오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본 진세은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속으로 깨 고소했다.이번 사건으로 홍성파는 체면이 말이 아닌 데다 라이언 킹까지 죽게 되어 손실이 막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아직 내세울 만한 고수가 없어 겸손함을 유지하고 있었다.진세은은 사실 화를 꾹 참아보려 하기도 했다.그런데 일본인이 직접 나선다는데 김예훈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진세은은 직접 나서진 못해도 김예훈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보고 싶었다.이는 타케이 가문, 일본 야마구치파, 그리고 양국 외교와 관련된 문제였다.진세은은 김예훈이 어젯밤처럼 작은 수단을 이용해서 전화 몇 통으로 미디어의 힘을 빌려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로 믿지 않았다.‘김예훈, 곧 죽을 날이 올 거야!’진세은은 이런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깊게 한숨을 들이마시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진세은은 세이이치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세이이치로 씨, 타케이 가문의 너그러움에 죄송할 따름이네요. 저희 아버지께서 그러시는데 타케이 도련님이 김예훈 그놈한테 살해당하긴 했지만, 저희 홍성파에서 보호해 드리지 못했던 것도 책임 있다고 하셨어요. 저희 성의를 보여드리기 위해 오늘부터 외곽에 있는 땅은 야마구치파에 드리려고 해요. 이 중에 여러분이 눈여겨본 땅도 포함되어 있고요. 앞으로 건설회사를 찾기
저녁 무렵 진주 호텔.이름은 호텔이라고 해도 사실 진주에서 유일한 숙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례식장이었다.독채 별장도 있어 전문 고위층들이 사용하고 있었다.타케이는 부검 결과가 나오자마자 이곳 어딘가 구석에 옮겨졌다.한적한 이곳 환경은 너무나도 쾌적했다.타케이 시신이 옮겨지고 나서 타케이 가문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나오키와 그의 아들딸 외에도 타케이 가문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찾아왔다.타케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면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였다.저녁 7시.검은색 벤츠 마이바흐 차량이 소리 없이 이곳에 도착하게 되었다.차 문이 열리고, 홍성파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뒤이어 얼굴이 다소 수척해 보이는 젊은 여성이 따라서 차에서 내렸다.하루 종일 취조받긴 했지만, 진주에서 내로라하는 변호사들이 보증 서준 덕분에 바로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여전히 예쁜 그녀는 바로 홍성파 우두머리의 큰 따님인 진세은이였다.경찰서에서 풀려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바로 타케이에게 향을 올리는 것이다.전체 장례식장에 은은한 향이 퍼지고, 진세은은 영정 앞에 국화꽃을 내려놓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앞으로 다가가 90도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세이이치로 씨,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개를 숙이는데 가슴골이 훤히 보였다.본능적으로 그녀를 힐끔 쳐다본 세이이치로는 눈빛이 흔들렸다.진세은의 신분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그저 가볍게 눈인사할 뿐이다.“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진세은은 이상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말했다.“세이이치로 씨, 저의 아버지께서 직접 타케이 도련님께 향을 올리려고 했는데 범인을 찾기 전까지는 차마 찾아뵐 수 없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진주 경찰서 서열 1위 님 찾으러 가셨어요. 어떻게든 제대로 된 설명을 해드릴 거예요. 저희 진주에도 법도가 있다는 것을 알려드려야죠. 그리고 저희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일본 손님을 잘 돌보지 못한 것은 저희 홍성파의 책
“그래서 바로 총독님께 문자를 보냈죠. 총독님 같은 분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를 리가 없잖아요. 의사 선생님인 척 문을 두드릴 때부터 살인범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절대 경계를 늦추지 않았었죠. 그 뒤로 일어난 일은 다 아시잖아요.”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당신을 어떻게 해보려던 것이 아니라 당신이 너무 어리석어서 이렇게 된 거예요. 알았어요?”“너...”루미코는 직접 짠 계획이 처음부터 김예훈에게 간파당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아까 했던 모든 일은 그저 미친 광대나 다름없었다.“이런 제기랄!”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무시당해도 고개 숙일 생각이 없었다.이때 그녀가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김예훈, 내 동생을 죽인 것도 모자라 나까지 죽이려고? 우리 타케이 가문에서는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능력 있으면 나를 죽여보든가! 아니면 천군만마를 이끌고 너를 죽이러 다시 올 거야. 타케이 가문은 죽을지언정 절대 모욕당할 순 없어! 와봐! 나를 죽여보라고!”김예훈은 루미코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나를 자극해서 너를 없애게 하려는 거야? 아쉽게도 난 너를 죽일 생각 없어. 타케이 가문에서 이유없이 나를 죽이겠다고 소리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이때 김예훈의 손짓 하나에 동하임이 수갑을 꺼내 루미코의 손발에 직접 채웠다.그러고는 루미코가 출혈 과다로 사망할까 봐 개인 의사를 불러 그녀의 상처를 봉합시켰다.“아무 이유없이 너를 죽이려고 한다고?”루미코는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김예훈, 내 동생을 죽였으면서 왜 억울한 척이야.”“누가 그래? 타케이가 내 손을 더럽힐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김예훈은 한껏 싫증난 얼굴이었다.“그리고 난 진주의 ‘착한 시민’이라고. 모욕죄로 배상해야 한다는 거 몰라?”루미코는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이때 동하임이 담담하게 말했다.“부검 결과에 의하면 당신 동생은 아침 7시에 살해되었어요. 그 시각 김 도련님은 저랑 함께 동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난처하게 하지 않을거니까요. 김현민 도련님께서 이미 경고했거든요. 비록 김예훈이 동씨 가문과 손잡았다고 해도 김현민 도련님을 봐서라도 인질로만 삼았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따르는 것이 좋을 거예요. 아니면 그 아름다운 얼굴에 상처를 낼지도 모르겠거든요.”루미코는 검을 꺼내 동하임을 먼저 제압한 후 김예훈을 협박하려고 했다.슉!바로 이때, 갑자기 타케이 시체 밑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칼로 루미코 복부를 찔렀다.“풉!”미처 예상하지 못한 루미코는 피를 뿜어내며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영안실에 동하임 외로 또 다른 인물이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결국 그녀는 후회할 시간도, 질문할 시간도 없이 뒤돌아 영안실을 떠나려 했다.쨕!루미코가 영안실을 벗어난 순간, 누군가 나타나 그녀의 뺨을 때렸다.순간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루미코는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고 싶었지만, 몸속에 어마어마한 힘이 휘몰아쳐 힘없이 무너져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문밖에서 김예훈이 무표정으로 걸어들어와 루미코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루미코 씨? 쯧쯧. 타케이 가문에 그렇게 인력이 부족해요? 사람을 죽이려고 해도 직접 나서야 하는 거예요? 돈 없으면 말씀하시지. 제가 대신 돈을 들여서 킬러 몇 명을 고용해 드릴 수 있었는데. 타케이 가문이 돈이 아까워서 킬러도 고용하지 못한다고 하면 체면이 구겨지지 않을까요?”김예훈이 앞으로 다가가 상대방의 마스크를 벗겨내자, 타케이와 닮은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내가 하임 씨를 인질로 삼을 줄 어떻게 알았던 거야?”루미코는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루미코는 자신이 왜 노출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특히 아까 그 칼 한 방에 전투력을 잃어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김예훈은 그녀의 원망 가득한 표정을 보면서 말했다.“일할
동하임이 본능적으로 말했다.“의사 선생님, 이분은 제 친구인데 좀 양해해주시면 안 될까요?”“양해요? 양해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의사 선생님은 동하임의 명찰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말했다.“동하임 씨였네요. 그런데 아무리 동하임 씨라고 해도 규칙을 어길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분을 들이는 거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밖에 나가서 먼저 등록하고 기록을 남겨야 들어올 수 있는 거예요.”김예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요? 그러면 먼저 등록하러 다녀올게요. 등록실이 어디죠?”의사 선생님은 직접 밖으로 나가 등록실 방향으로 안내했다..“저쪽에 보시면 등록실이 있을 거예요. 송학민이라고 등록을 도와주시는 분이 계실 거예요.”“감사해요.”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텅 빈 복도를 걸어갔다.의사 선생님은 김예훈의 모습이 사라져서야 두 명의 경찰한테 시선을 돌렸다.“어머!”그녀는 갑자기 발목을 접질렸는지 비명을 질렀다.경찰들은 본능적으로 하얗고 가느다란 발목을 쳐다보게 되었다.샤샤샥!두 명의 경찰이 시선을 돌린 순간, 그녀가 휘두른 소매에서 하얀 연기가 퍼져 나왔다.두 경찰은 그대로 휘청거리면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다시 시체를 확인하려던 동하임은 이 소리에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결국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신 누구야. 아무런 원한도 없는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데 뭐 하려는 거야. 누가 보냈어.”동하임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있는 총을 꺼내려 했지만 방호복을 입고있는 관계로 재빨리 빼낼 수 없었다.그러자 정체 모를 그녀가 문을 잠그고는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총독님 딸을 제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당신이 죽어버리면 저도 곤란할 수밖에 없어요. 그냥 잘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뿐이에요. 원망하려면 제 동생을 죽인 김예훈을 원망하세요.”“동생?”멈칫한 동하임은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시체를 한번 쳐다보았다.“타케이 누나라고?”상대방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맞아요. 타케이
뚜뚜뚜.김예훈은 걸어가면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복도 끝에 있는 영안실 입구에는 경찰 두명이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이들은 김예훈을 보자마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로 안으로 모셨다.동하임은 흰색 의료용 장갑을 끼고 짧은 머리를 묶어 이국적인 매력을 지닌 목을 드러냈다.김예훈이 서서히 다가갔을 때, 그녀는 타케이 목에 나 있는 상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너무나도 집중한 나머지 하얀 가슴골이 드러난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의사 가운을 입고 있다고 해도 날씬한 몸매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김예훈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가가 말했다.“하임 씨, 검시관 일까지 해버리면 그분들이 뭐 해 먹고 살겠어요?”동작을 멈춘 동하임은 눈빛 하나로 무한한 매력을 발산했다.“검시관 결과는 이미 나왔어요. 현장 증거도 모두 수집 완료한 상태고요. 그 증거들 모두 김 도련님이 살인자라고 말해주고 있어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그런데 저는 살인을 저지를 시간이 없었잖아요. 어젯밤 내내 구룡성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었잖아요. CCTV가 증거로 될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동씨 가문 별장에 같이 있었잖아요. 하임 씨가 증인이 될수 있는 거잖아요. 범죄를 저지를 시간이 없는데 저를 살인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거 아니에요?”말하는 사이, 김예훈은 타케이의 창백한 얼굴과 아직 가시지 않은 놀라운 표정을 발견했다.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아마도 타케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동하임은 경직된 어깨를 움켜잡으면서 김예훈의 생각을 읽었는지 말했다.“사실 누가 범인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증거가 위조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것으로 김 도련님을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문제는 이 쓸모없는 증거들이 일본인에게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사카모토 류이치마저 죽였잖아요. 여러 가지 관계로 경찰이 죄를 묻지 않았지만, 일본인에게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지위가 높다고 해도 배시시 웃으면서 일어나 말할 뿐이다.“김현민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특별 경로를 통해 일본 야마구치파에 소식을 전했거든요. 야마구치파 장로님인 나오키가 오늘 저녁 진주에 도착한다고 해요. 아들딸 세이이치로와 루미코도 동행한다고 하네요. 가족인 타케이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김현민이 가식적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에요? 직접 진실을 파헤쳐야 하다뇨. 정말 일본인 친구들한테 미안하네요. 지훈 씨, 저를 대신해 일본 손님들을 잘 대접해 주세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드리고요. 물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거 아시죠?”남지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남씨 가문은 밀수로 일어난 가문이잖아요. 아무도 추적할 수 없을 거예요.”김현민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김병욱을 힐끔 쳐다보았다.“병욱아, 정말 김예훈이 타케이 도련님을 죽인 게 확실해?”김병욱이 피식 웃었다.“그럼요. 병원 CCTV에 김예훈 모습이 찍혔고, 현장에 남겨진 당도 위에 그의 반쪽 지문이 남아있거든요. 비록 확실한 증거가 아니라 평생 콩밥을 먹일 순 없겠지만 일본인이 복수할 만한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김현민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증거는 증거야. 확실한 증거든 아니든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본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뿐이야. 그들이 어떻게 선택할지는 그들의 문제라고. 아, 또 한 가지 일이 있어.”김현민이 곽영현을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곽씨 가문에 믿을만한 변호사가 몇 명 있잖아요. 진세은 씨를 구해내죠? 일본 손님을 대접하는데 진세은 씨가 없어서 되겠어요?”곽영현은 반짝이는 두눈으로 말했다.“네.”김현민은 또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저희는 진주·밀양의 고위층을 대표하기도 하고 공평 공정을 대표하기도 하는 거예요. 기관에서 공평 공정하게 처리 못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