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을 들은 임은숙은 불같이 화를 냈다.“김예훈! 그만해! 아직도 내말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그러니까 성남시의 부시장께서 직접 초대장을 보내온단 말이야?”“네.”김예훈은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제가 그 제안을 미리 거절했는데 민아가 가고 싶다고 하니까 우리도 참석하면 돼요.”정군과 임은숙은 방패 같은 김예훈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이렇게 허세를 많이 부리는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두 사람은 정민아를 쳐다보고 말했다.“민아야, 엄마가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빨리 이혼하고 다른 남자 만나.”정군은 그저 깊은 한숨을 쉬며 자리를 떠났다. 이런 바보 같은 데릴 사위를 만났으니 앞으로 험난한 생활이 이어질 것이다.정민아는 조금 화가 났다.정소현만 김예훈을 믿어주고 그의 말이 모두 맞다고 인정해 줬다.삼촌이라는 사람도 형부 앞에서 공손하게 허리를 굽히며 우리 형부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다.집으로 돌아온 김예훈은 하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저희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만나러 가지 않으셨습니까?”“할아버지께서 그저 우리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셔서 그저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라고 했어요.”“그리고 임혁한테 전해주세요. 연회에 참석하겠다고.”“알겠습니다.”다음 날, CY 그룹.차 한 대가 비밀스럽게 구석에 주차되었다.CY 그룹의 대표 사무실에서 기세가 만만치 않은 한 중년 남자가 공손하게 하은혜에게 초대장을 건넸다.“하 비서님, 대표님께서 지금 부재시라면 직접 전달해 주세요!”“김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니 더 없는 영광입니다!”임혁은 공손하게 말을 건넸다.김세자의 역량을 잘 알고 있는 그는 하루아침에 이현숙을 밖으로 내몬 김예훈의 실력을 칭찬했다.김 씨 가문에 이제는 김만태만 남았다. 능력은 있지만 예전처럼 빛나지 않을 것이다.임혁이 직접 초대장을 주러 왔으나 하은혜는 임혁의 손에 있는 초대장만 건네받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다시 차에 돌아온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상냥한 표정이 바로 사라졌다.그리고
성남 호텔이곳은 이름이 호화스럽지 않지만 평소에 외부 영업을 하지 않고 외빈과 투자자를 접대하는 곳이다.오늘 이곳에서 임 씨 가문 노부인의 생신 연회가 열린다.이곳에서 생신 연회를 진행한다는 것은 임 씨 가문이 성남시에서 얼마나 세력이 강한지 알 수 있다.고급 외제차들이 하나둘씩 호텔 주차장에 들어서고, 호텔 입구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모두 성남시에서 고위 관리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다. 상업계에도 만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정 씨 가문만 무리에 속하지 않고 있었다. 정 씨 어르신, 정민택, 정가을, 정지용은 모두 참석했지만 정민아만 참석하지 않았다. 정 씨 가문의 사람들은 초대장을 손에 쥐고 삼엄함 경비를 뚫고 성남 호텔에 도착했다.정지용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 말했다.“할아버지, 진짜 대단하십니다. 오늘 이 연회에 세력이 강한 사람들만 나타나지 않겠습니까?”“아무 사람이나 친해져도 앞으로 우리 정 씨 가문에 큰 도움이 됩니다.”정 씨 어르신도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제일 중요한 사람은 임 씨 가문의 가주야. 성남시의 부 시장이 되는 사람이니까 그의 눈에 들면 우리 정 씨 가문의 앞날도 환하게 펼쳐질 거야.”“소문에 의하면 말 한마디로 한 가문을 일으킨다고 했어.”그 시각, 프리미엄 가든.정군과 임은숙 두 사람은 씩씩 화를 내며 김예훈을 쳐다보고 말했다.“초대장을 가져온다더니 지금 뭐 하고 있어?”“오늘 어르신 생신 연회인 걸 잊은 거야?”“아직도 초대장이 없으면 우린 어떻게 참석해!”정민아도 조금 실망한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 “앞으로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길 바래.”김예훈은 자신의 롤렉스 시계를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초대장은 현장에 보내도록 지시했어요. 지금 출발하면 저희를 맞이하는 사람이 나올 거예요. 갑시다.”하은혜는 오늘 김예훈을 모시러 오지 않았다.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다들 정군이 금방 새로 장만한 차에 몸을 실었다. 막 성남 호텔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 있는 정지용
“아버지 저희 오늘 연회에 참석하려고 왔습니다. 저희 초대장도 있어요!”정군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김예훈이 말한 초대장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기세가 눌리면 안 된다.“그래요? 초대장이 있으면 한번 보여주세요.”정지용은 김예훈을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예훈이가...”“예훈이가 왜요?”정지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 웃음에는 비웃음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설마 초대장이 현장에 있으니 현장에 도착하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나요?”“맞아.”정군은 고개를 끄덕거렸다.“아하하하하!”정군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정 씨 가문의 사람들은 저마다 배를 끌어안고 웃음을 터뜨렸다.김예훈의 성의 없는 거짓말에 정군 가족들이 모두 속아 넘어가다니.정 씨 어르신은 정군을 쳐다보고 말했다.“네가 이렇게 멍청한 사람인지 오늘에야 알았어. 너희 가족을 처음부터 성남시에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어. 진짜 내 낯이 너무 부끄러워서 어디 살겠니.”정 씨 어르신은 정 씨 가문의 사람들이 왜 성남시에 왔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주위의 비웃음과 욕설에 정군은 지금이라도 당장 김예훈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정군 가족들의 체면이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순간이다.정민아의 얼굴은 더욱 하얗게 질렸다. 정 씨 어르신이 자신의 세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김예훈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한 꼴이 되었다.“초대장이 없이 함부로 들어오면 할아버지께서 넓은 아량으로 함께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김예훈, 네가 지금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면 내가 명단 하나쯤은 남겨줄 수 있어.”정가을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아니면 민아 언니가 무릎을 꿇는 건 어때요? 두 사람이 함께 참석하면 더 좋을지도 모르잖아요.”“그만해!”정민아는 몸을 벌벌 떨었다. 화를 참지 못하면 정민아는 몸을 떨곤 했다.그때, 김예훈이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아버지, 어머니, 민아야. 그만해. 일분이 지나면 초대장이 도착할 거야.”정군은 이를 악물고 소리를 질렀다.“김
“김예훈 씨, 정민아 씨, 오셨어요? 자, 초대장 여기 있어요.”하은혜는 공손하게 초대장을 건네주고 미련 없이 떠났다.정군과 임은숙은 넋을 잃고 말았다. 초대장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사실이라니?정 씨 일가 사람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예훈이 큰소리친 게 아니었다. 그는 진짜 사람을 시켜서 초대장을 가져오게 했다!심지어 CY그룹의 하은혜가 직접 가져다줬다. 김예훈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란 말이지?이내 정군과 임은숙의 벙찐 표정을 뒤로하고 정민아 일가족은 깍듯한 안내를 받으면서 생신연 현장으로 향했다.연회장에는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어 커다란 홀이 미어터질 듯싶었다.이때, 정민아는 홀 안을 구경하는 대신 심각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김예훈, 내 말 좀 들어봐.”“왜? 우리 이제 입장했잖아.”김예훈은 어리둥절했다. 이미 들어왔는데, 또 무슨 불만이 있다는 거지?정민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아무리 「부춘산거도」의 일 때문에 하은혜 씨가 우리한테 신세를 졌다고 해도 어떻게 그걸 빌미로 자꾸 부탁드릴 수가 있어? 그분한테 초대장을 대신 가져오라고 하다니, 그건 진짜 아니야. 앞으로 그냥 줘도 안 받을 테니까 교훈으로 삼고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스스로 노력해서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야지, 남의 손을 빌리면 되겠어?”진지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혼내는 정민아를 보자 김예훈은 할 말을 잃었다.하은혜한테 초대장을 가져다 달라고 하는 게 노력과 상관없는 일인가?다만 당장 설명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고, 설령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다고 해도 정민아는 믿지 않을 것이다.결국 김예훈은 마지못해 대답했다.“알았어, 앞으로 안 그럴게.”“응, 이왕 입장했으니 제대로 누려보자. 어쨌거나 네 덕분에 오늘 외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잖아, 고마워!”말을 마친 정민아는 방긋 웃었다.곧이어 김예훈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 무표정일 때 몰랐지만, 미소 짓는 순간 그녀는 앙큼한 미인이 따로 없었다.다만 어디까지나
“엄마! 오빠!”임은숙은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이 흐를 뻔했다. 임씨 가문을 떠나서 대체 얼마 만에 만나는 가족이란 말인가!정군도 감격에 겨워 얼른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특히 임무경을 보자 두 눈이 반짝거렸다.만약 두 사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정 씨 일가에서 그는 굳건한 지위를 가질 것이다.다만 정군이 입을 떼기도 전에 임무경은 고개만 까닥했다.반면 임옥희는 콧방귀를 뀌며 정민아 일가족을 위아래로 훑더니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정군과 임은숙은 어안이 벙벙했다.호감을 표시해도 돌아오는 건 냉대밖에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이 얼마나 민망한 상황인가!임은숙은 임무경을 흘긋 쳐다보았다. 그나마 오빠의 태도는 나쁘지 않았다.아마도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 같은데, 어머니의 인정을 받으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심지어 오늘 어머니의 생신날만 아니었다면 자신을 일찌감치 외면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임은숙이 집을 떠난 지 20여 년 만에 드디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셈이었다.이때, 임은유가 나서서 수습했다.“엄마가 항상 소현의 언니인 민아를 입에 달고 살았잖아요. 봐봐요, 엄마 젊었을 때처럼 너무 예쁘지 않아요?”임은유는 말을 이어가면서 정민아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눈짓했다.“외할머니, 외삼촌, 안녕하세요.”두 사람을 처음 본 정민아는 어색한 듯 긴장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넸다.임무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민아야, 네가 백운 별장 시공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하던데, 꽤 큰 프로젝트잖아. 아주 잘했어!”임옥희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멋지구나! 꽤 능력 있군.”그녀는 자기 외손녀를 어느 정도 인정한 듯싶었다.이때, 정군이 김예훈을 흘끗거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멍하니 서서 뭐해? 얼른 인사하지 않고!”김예훈이 한 발 나서서 미소를 살짝 지었다.“외할머니, 외삼촌, 안녕하십니까? 저는 민아 남편 김예훈이라고 합니다.”임무경은 눈을 가늘게 뜨고 김예훈을 위아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특히 임은숙의 얼굴색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왜냐하면 그녀는 자기 어머니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당시 정군과 결혼했을 때 남편이 그나마 잘 나가는 편인데도 임옥희는 아주 못마땅해했다.그러나 정민아의 남편이란 사람이 지금 이런 파렴치한 말을 내뱉었으니 어찌 임옥희의 환심을 살 수 있겠냐는 말이다.아니나 다를까 임옥희는 한숨을 내쉬더니 정민아 가족은 쳐다보기도 싫은 듯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반면, 임무경은 싸늘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힐끗 쳐다보고 뒤돌아서 걸어갔다.어쨌거나 정민아는 능력이 꽤 있기에 친척 중에서도 그나마 인정할 만한 범주에 속했지만, 저런 남자와 결혼한 이상 그녀를 받아들일지 말지 온 가족이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았다.“형부, 괜찮아요. 할머니 성격이 워낙 깐깐해서 금방 기분이 풀릴 거예요.”정소현이 김예훈을 위로했다.“소현아, 지금이 어느 때라고 아직도 저 쓰레기 같은 녀석을 싸고도는 거야?”임은숙은 이를 갈며 말했다.“방금 했던 말은 네 할머니한테 스스로 무능한 놈이라고 인정한 것밖에 더 있겠어? 네 할머니가 평생 제일 업신여기는 사람이 바로 못난 자식이라고! 능력 없는 것도 모자라 대체 뭘 잘했다고 당당하기까지 해? 정말 구제 불능이군!”임은숙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번 기회에 다시 임씨 가문에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기대와 달리 김예훈의 말 한마디 때문에 모든 게 수포가 될 줄이야!정군도 화를 주체하지 못하며 말했다.“김예훈, 우리한테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알아? 임씨 가문에 빌붙을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얻은 기회인데, 네가 지금 모든 걸 망쳐놨어!”정군이 탄식하며 말했다.만약 사위라는 놈이 능력만 있었더라면 설령 돈을 좀 못 벌어도 임옥희의 인정을 받았을 텐데.정군은 후회막급이었다. 당시 왜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해줬을까?정민아의 안색도 어두웠지만 이내 나긋한 말투로 위로했다
한 참이 지나서야 정군은 비틀거리며 똑바로 서서 임은숙을 끌어안았다.“여보, 울지 마. 아직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잖아. 혹시라도 좋은 물건일 수 있지 않을까?”“좋은 물건이라고? 어떻게 좋은 물건일 수가 있겠어?”임은숙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차라리 옥이나 골동품이면 좋겠는데, 만약 진짜 별 보잘것없는 물건이라면...”이를 언급하자 임은숙은 자칫 까무러칠 지경이었다.오랜 세월이 흘러 모처럼 임옥희와 사이좋게 지낼 기회가 생겼는데, 쓰레기 같은 김예훈 때문에 다시 한번 놓치게 된다면 정말 제 명에 못 살 듯싶었다.생신연이 곧 시작될 예정이지만, 임옥희의 생신연에 참석하기로 한 거물급 손님들은 아직 대부분 도착하지 않았다.이들은 거의 경기도와 성남시 기관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다.임무경은 경기도의 3인자이자 기관에서 비교적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이 거물 중 다수는 실권을 장악하고 있기에 권력만 놓고 보면 그와 비등비등했다.상대방이 그의 체면을 생각해서 찾아온 이상 임무경은 직접 손님을 맞이해야만 했다.심지어 임옥희마저 경기도 1인자가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입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임씨 가문 자손들도 뒤를 따랐고, 임은유가 억지로 끌고 간 바람에 정민아 일가도 합류하게 되었다.이때, 임은숙 일행을 발견한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수군거렸다.“저들은 어느 집안의 사람인데, 임씨 가문과 나란히 서 있는 거예요?”“비록 제일 뒤에 서 있지만, 아마도 임씨 가문의 친척이 아닐까요?”“임씨 가문 사위 집안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 임씨 가문이 잘 나가기 전에 임무경 큰 여동생과 결혼했는데, 보아하니 의지하려고 찾아온 듯싶네요. 이제 출세할 일밖에 더 있겠어요?”“흥, 과연 그럴까요? 요즘은 가난하면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는 거 몰라요?”“능력 있는 집안이면 몰라도 염치없이 빌붙는다 한들 무슨 좋은 결말이 있겠어요?”열띤 의논이 이어지는 와중에 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정 씨 일가 사람들은 하나같이 착잡한 표정을
사람들이 웅성거릴 때 입구에서 제복 차림의 위엄 넘치는 남자 몇 명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선두에는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지위가 꽤 높은 사람처럼 기품이 흘러넘쳤다.그는 바로 임무경의 아들이자 정민아의 사촌 오빠 임영운이다. 현재 성남시 경찰서의 소대장급 형사로서 현지에서 꽤 권력이 있는 편이다.곧이어 임영운은 신이 나서 한 무리 사람을 데리고 들어섰다.“할머니, 아빠, 제가 대신 소개해드릴게요. 이분은 성남시 경찰서 2인자인 형사 부반장 임성휘이고, 이분은 성남시 경찰서 3인자인 형사 부반장 방시운입니다.”이내 성남시 경찰서 고위 간부 7~8명을 소개했는데, 다들 임영운보다 직급이 한 두 단계 높았다.하지만 성남시 경찰서 형사 반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물론 연회장을 찾은 간부들은 임영운의 체면을 세워준 셈이었다.이때, 그들은 임영운의 안내에 따라 잇달아 선물 박스를 건네주며 축하 인사를 올렸다.“어르신,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고 만수무강하세요.”“환영합니다, 여러분. 못난 저희 아들을 챙겨주셔서 고마워요.”임무경이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고, 임옥희는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임영운이 경찰서 고위 간부를 이렇게나 많이 데려올 수 있다는 건 고작 성남시라고 해도 인간관계가 꽤 나쁘지 않다는 점을 설명했다.이내 임옥희는 임영운의 손을 잡고 말했다.“영운아, 너 때문에 우리 집이 체면이 서는구나. 앞으로 임씨 가문의 미래는 모두 네 손에 달려있어.”“어르신, 회장님. 이 자리를 빌려 영운을 제대로 칭찬해줘야 할 것 같아요. 능력이 정말 출중해서 저희 반장님이 내년에 형사 부반장 자리에 추천해주겠다고 했거든요. 그때가 되면 우리 경찰서의 4인자가 되어 저희랑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죠. 임씨 가문에 곧 인재가 넘쳐나게 생겼어요!”경찰서의 1인자 형사 반장은 내부에서 모든 걸 주관한다. 한마디로 형사 부반장을 임명하는 일은 형사 반장의 마음에 달렸다.이처럼 어린 나이에 형사 부반장이 된다는 건 임영운보다 경력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