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말의 의문을 품고 있던 정민아 역시 이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어제 정민아도 장미와 프라하의 심장 모두 박동훈이 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오늘 박동훈이 사실대로 인정하니 더욱 확실해졌다.어제 오전에 했던 말인데 오후에 곧바로 프라하의 장미와 프라하의 심장을 준비하다니, 박동훈이 말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금방 찾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닌데, 혹시나 오래 전부터 준비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아내가 있는 남자이기에 정민아는 이 혼사에 응해서는 안 된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감동이 몰려오면서도 부끄러워졌다.“김예훈 표정 봤어? 아주 놀라 자빠진 것 같은데, 웃겨 죽겠네! 하하하!”이때, 정지용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김예훈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많은 사람들이 또 다시 웅성이기 시작했다.김예훈의 표정은 확실히 일그러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박동훈의 뻔뻔한 거짓말 때문이었다. 누군가 폭로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없는 거짓말이다.“박 대표님, 우리 데릴사위 표정 좀 보세요. 대표님을 때리고 싶나 본데요?”정지용은 계속 입을 놀렸다.“그럴 수나 있겠어? 박 대표 머리카락도 못 만질 걸? 하하하!”“몸에 있는 거 전부 합쳐도 박 대표님 머리카락 한 가닥 만도 못 하지. 건들기만 해 봐, 우리가 가만히 안 둬!”“왜? 아무 말도 못 하겠어? 놀라서 벙쪘어?”정지용은 ‘하하하’ 박장대소를 했다.“김예훈, 더 머저리 같을 수는 없어? 오늘 당신 와이프 때문에 온 사람이 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잖아. 데릴사위 꼴이 말이 아니네.”“하하하!”사방에서 신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정민아는 부끄러움이 극에 달했다. 아직 법적으로는 부부사이이기에 김예훈이 놀림 받는 만큼 스스로도 창피했다.오늘 밤에 이런 일이 있는 줄 진작 알았더라면 그를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옆에 있던 임은숙이 김예훈을 노려보며 말했다.“아직도 화가 나나? 말 한 마디라도 잘못 놀렸다가는 큰 코 다칠 줄 알게!”
별장에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김예훈을 바라봤다.저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혹시 정말 YE 투자 회사의 새 대표이사가 누군지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김예훈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YE 투자 회사의 새 대표이사는 바로 나, 김예훈입니다.”모두가 경악했다. 장내 전체에 숨막히는 정적이 흘렀다.하지만 그 순간,“당신이라고? 하하하하!”박동훈은 배를 잡고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그는 겨우 웃음을 멈추고 정동철을 향해 말했다.“어르신, 저 데릴사위가 허풍 떨기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바보였네요.”정지용과 일부 사람들이 모두 ‘풉’하며 웃음을 뿜었다. 그러고는 바보를 쳐다보듯 김예훈을 바라봤다.“김예훈, 네가 무슨 대표이사야!”정지용이 말했다.“참 재미없네. 그런 헛소리를 누가 못해?”정가을이 비웃으며 말했다.임은숙 역시 성이 났다.“그만 망신시키고 당장 돌아와!”“고집 부리지 말고 그만 해.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네 얼굴에 침 뱉는 거나 마찬가지야.”정민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김예훈이 오늘 너무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자신이 YE 투자 회사의 대표이사라고 최면을 건다고 여겼다.“그만 해. 의사한테 가보자.”정민아는 김예훈을 끌어당기며 말했다.“민아야, 날 믿어. 내가 증명할게.”김예훈은 휴대폰을 만지며 말했다. 그의 통화기록에 이름이 하나 눈에 띄었다.“박동훈 씨, 당신은 YE 투자 회사의 임원이니 이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죠?”‘하은혜’라는 세 글자가 박동훈의 눈에 들어왔다.“참 우습네요. 우리 대표이사님의 비서 이름이 증거라는 겁니까? 그럼 휴대폰에 세계 갑부의 비서 이름이 있으면 저도 세계 갑부겠네요?”박동훈은 전혀 믿지 않았다.YE 투자 회사의 명성은 대단하다. 베일에 싸인 새 대표이사를 제외하면 부 대표부터 대표이사 비서까지 남해시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김예훈도 아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허풍은 도를 넘었다.“그럼
”박 대표님, 바보랑 무슨 대화를 하겠어요. 전 하나도 안 믿어요.”주변에 있던 정지용이 더 이상 못 봐주겠다는 듯 말했다. 이내 김예훈의 폴더폰을 빼앗아 바닥에 내던지며 소리쳤다.“하루 종일 허풍이나 떨고 있어! 증거라고? 웃기고 있네!”“당장 나가! 같은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역겹다고!”“우리 정 씨 가문에 어떻게 저런 놈이 있을 수가 있는지!”“파렴치한 놈!”하나 둘씩 정 씨 일가에 먹칠을 한다며 김예훈을 욕하기 시작했다.김예훈이 대표이사일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 김예훈에게 당했다는 생각에 수치심이 밀려왔다.“이게 왜…….”하은혜가 3년 전에 사용하던 전화번호를 더 이상 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휴대폰을 바꿨다는 말도 해주지 않다니, 하은혜에게 연락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짜악!전혀 예상치 못했다. 모두가 이 소동을 즐기려고 하던 그때, 한 편에 앉아있던 임은숙이 갑자기 일어나 김예훈의 뺨을 내리쳤다.김예훈조차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고 그만 바닥에 고꾸라질 뻔했다. 얼굴도 부어올랐다.“개자식, 아직 덜 망신 당했다 이거야? 우리 집 개에 불과한 놈이 누가 입을 놀리라 했어!”“네가 정말 뭐라도 된 것 같니? 새 대표이사라고?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하하하하!”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코미디라도 보듯 흥미진진한 눈빛이었다.정민아는 복잡한 표정으로 머뭇거렸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오늘 일 때문에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건 알겠지만 왜 이렇게 뻔히 들킬 거짓말을 하는 거야? 이럴 필요 없어. 이혼하겠다는 말 안했으니까.”“당장 박동훈 대표님께 사과해. 이 일이 새어나가 YE 대표이사가 알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이야.”김예훈은 잠시 멍해졌다. 정민아가 자신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 순간 박동훈은 참을 수 없었다. 김예훈이 계속 발악을 하는 것이 이득이었다.“어르신, 이렇게 허풍을 치다가는 큰일날 지도 모릅니다.”박동훈이 말했다.
박동훈의 말에 정동철은 가슴이 철렁했다. 맞는 말이다. 김예훈이 계속 저렇게 발악한다면 정말 정 씨 가문에 해가 될지도 모른다.“어르신, 오늘은 정 씨 일가의 연회인 만큼 피 봐서 좋을 게 없을 겁니다. 제가 직접 앞뒤 분간 못하는 저 사람을 따끔히 혼내겠습니다!”박동훈이 나서려고 하는 모습에도 정동철은 전혀 말릴 생각이 없었다.다른 사람들도 구경거리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애초부터 김예훈이 마음에 안 들었기에 박동훈이 해결해줬으면 했다.박동훈은 앞으로 달려나가 뛰어오르더니 김예훈을 향해 발을 날렸다.그의 운동 실력은 몇 년 간의 헬스로 다져졌다. 게다가 태권도를 배우며 검은 띠도 땄었다. 발차기를 하는 순간 강한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태권도 검은 띠 고수라고 하지 않았어? 김예훈은 망했네. 당장 쓰러지겠군!”“저 녀석 너무 멍청한 거 아니야? 집안 때문에 때리지 못한 거지, 아니었으면 나한테 진작 맞았어!”“허세 부릴 게 없어서, 자신이 대표이사라고? 어떻게 죽을지 감도 안 잡히네!”주변에서 비난이 몰아쳤다. 모두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소동을 지켜봤다.저 발에 맞으면 머리까지 돌아갈지도 모른다.하지만 김예훈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발에도 미동없이 우뚝 서있었다.“김예훈, 어서 잘못했다고 인정해!”정민아는 김예훈이 맞기까지 하는 모습에 스스로 긴장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어쩌면 정말 강아지를 키운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는 아무렇게나 다뤄도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없다는 그런 감정.“싸움은 흉내만 낼 줄 아나 봐요.”물러설 생각이 없던 김예훈은 오히려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어느 삼류 강사에게 배워온 기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발차기는 겉보기에 대단해 보여도 시범 경기 기술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김예훈은 YE 가문의 직계 자제로서, 어렸을 때부터 무술을 배워야만 했다.그가 배운 건 태극권이었다. 그것도 실전에서 가장 강하다는 ‘무가태극권’을 배웠다.3년 동안 무술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뭐야?”모두 벙찐 얼굴이 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오른손 한 번 들었을 뿐인데, 어찌 이렇게 고꾸라질 수가 있단 말이지?이런 힘이 있었다니!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닐까?사람들은 그저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박동훈이 재수가 없어서 김예훈이 휘두른 손에 자빠진 것이라고 말이다.“김……김예훈……딱 기다려…….”박동훈은 부들부들 떨며 온 힘을 다해 자리에서 일어섰다.“반드시 널 죽여 버리겠어…….”사람들은 코피가 흐르고 있는 박동훈을 바라보다 불쌍한 얼굴로 김예훈을 쳐다봤다.저 데릴사위가 무슨 능력이 있단 말인가? 박동훈은 YE 투자 회사의 중간관리자다. 그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식은 죽 먹기처럼 김예훈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김예훈은 박동훈을 상대하기 싫다는 듯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주웠다. 이내 김연철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예훈아. 무슨 일 있느냐?”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김연철의 목소리는 한없이 따뜻했다.김예훈은 바닥에 엎어져 있는 박동훈을 쳐다보며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YE 투자 회사에 박동훈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회사 이름을 팔며 사기 치고 다니네요. 처리 좀 해주시겠어요?”“별 것 아니구나. 어떻게 처리하면 되겠니?”“모든 것을 잃게끔요.”말을 마친 김예훈은 전화를 끊었다.“개자식, 감히 이 몸을 때려? 아직 안 끝났어!”박동훈이 소리쳤다.“이 몸이 누군지 알아? 난 YE 투자 회사 사람이야. 내 뒤에는 YE 가문이 있다고! 내 말 한 마디면 뼈도 못 추릴 거야!”박동훈 역시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화가 치밀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그러고는 모두 보란 듯이 스피커폰을 켰다.잠시 후, 위엄이 느껴지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동훈아, 무슨 일이냐?”“범이 형님, 누가 절 때렸어요! 여기 킹덤주택단지 5동 펜션이에요. 사람 좀 데려와서 이 개자식 좀 처리해 주세요!”“알겠다. 마침 그 근처에 있으니 10분 안에 도착하마.”박동훈의 외침에 ‘범이 형님’이
‘오정범’이라는 이름에 정 씨 일가는 모두 찬 공기를 들이마셨다.오정범은 남해시에서 무섭기로 이름난 사람이 아닌가! 수많은 가문에서도 그를 찾을 정도다.그런 사람을 박동훈이 데려올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정동철 역시도 만족스럽다는 듯 환한 얼굴로 손녀사위가 될 박동훈을 바라봤다.“’내일의 태양을 볼 수 없다’라……좋아요. 곧 모든 걸 잃고 파산하게 될 당신이 어떻게 대비할지 참 궁금해지네요.”김예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하하하! 머리가 정말 어떻게 되었나보네? 수표 20억원 어치도 쉽게 여기는자산가에게 모든 걸 잃게 된다니, 파산하게 된다니! ‘파산’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인가?”“에휴, 매일 TV 보지도 않고 소설만 보면서, 책은 며칠 읽지도 않더니 몇 마디 배웠다고 함부로 입을 놀리네!”“내가 김예훈이라면 벌써 도망갔을 거야. 오정범이 오면 정말 나에게 내일은 없을 테니까!”“신고라도 해야하나?”“멍청하긴, 무슨 신고야. 구급차를 불러야지! 불길하게 저 녀석을 우리 집에서 죽게 둘 순 없지 않겠어?”이때, 박동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바로 그의 직속상관, YE 투자 회사 부대표에게서 온 전화였다. “박동훈, 너 이 자식! 밖에서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1분 전에 하 비서에게서 전화가 왔어. 예전에 네가 회사 프로젝트 자금 유용한 일이 까발려졌다고! 넌 이미 해고야. 네 모든 자산도 동결되고 청산 중이니까, 법원 소환장이나 기다리고 있어!”“내가 경고하는데, 잡혀 간 이후에 해도 되고, 하면 안 되는 말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야 할 거야!”“저는…….”박동훈이 말문을 열었지만 이미 전화가 끊기고 난 후였다.자신이 왜 갑자기 파산을 한 건지 전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이 데릴사위의 말이 사실이라니.방정맞은 주둥이 같으니라고!하지만 똑똑한 사람답게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이 일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니 인맥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해결하지 않으면 이 소식이 내일 금방 알려지게 될 것이다.
"박 대표님, 무슨 일이시죠?" 옆에 있던 정지용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박동훈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둘러댔다:"아니에요, 부회장님이 술 한잔 같이하자고 하시는데 제가 그럴 여유가 없지 않습니까? 다음에 하기로 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정씨 일가의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YE 투자 회사의 부회장이 박동훈에게 술자리를 제안했다고?근데 박동훈이 그걸 거절하고 다음으로 약속을 미뤘단 말인가?정말 지위가 있는 사람이구나, 큰 인물이 틀림없군!정씨 일가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박동훈 옆에서 가서 그의 비위를 맞췄다.바로 이때, 별장 입구에서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고 검은색 승합차 몇 대가 급하게 멈춰 섰다.곧바로, 차 문이 열리고 십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손에 칼과 야구 방망이를 든 채 차에서 내렸다.십여 명의 사내 중, 하얀 셔츠를 입고 있는 흉악한 남자의 모습이 보이는데 바로 말로만 듣던 오정범이다.그는 담배 한가비를 입에 물고는 흥미진진하게 눈앞의 별장을 쳐다보았다."정범 형님!"박동훈이 헐레벌떡 달려가서 오정범을 향해 허리를 굽히더니 조심스럽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오정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으면서 말했다:"누가 우리 동훈 동생을 업신여긴 건가?""바로 저놈입니다, 정범 형님, 저놈 혼내주십시오! 숨만 붙어있으면 됩니다!" 박동훈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이 순간, 정씨 일가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박동훈은 쳐다보았다.오정범!박동훈이 정말 지하 세계의 큰 인물 오정범을 불러오다니!이건 장난이 아니다!오정범, 남해 지하 세계에서는 쟁쟁한 인물이다, 듣기로는 당시에 칼 두 자루로 이 바닥을 평정한 사람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인물을 절대 움직일 수 없다!큰 가문은 아니지만 정씨 일가도 보안요원을 몇몇 두고는 있다. 하지만 오정범, 이런 사람과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오정범이라는 사람은 독하기로 소문났다, 듣기로는 내로라하는 집안에서도 그의 체면을
김예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정민아를 쳐다보았다, 늘 아내가 자기한테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이 순간 자신을 걱정해주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하지만 정민아는 자신의 심경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이게 누구인가? 오정범이다, 지하 세계의 큰 인물, 비록 만난 적은 없지만 이 사람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다.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정범은 그저 그런 건달에 불과했다. 훗날 어떤 큰 인물의 눈에 들어서 도움을 받게 되었고, 오정범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남해에서 자신의 영역을 개척했다.1, 2년 전부터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 기세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그 명성이 어디 가겠는가, 남해에서 그 누구라도 그의 체면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이런 사람 앞에서 데릴사위인 김예훈이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빨리 가라고! 좀 있으면 가지도 못해!" 정민아는 정말 조급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일어서서 김예훈을 끌어당기려 하자 옆에 있던 정소현이 그녀를 막아섰다.정소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 언니가 오늘 왜 이러는 건지?뭘 잘못 먹은 거야?능력 없는 데릴사위를 제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사람은 언니 아니었던가?근데 왜 지금은 김예훈의 편을 들지?정소현뿐만 아니라, 다른 정씨 일가의 사람들도 정민아를 모두 말렸다.오늘 밤, 김예훈은 정씨 일가의 예비 사위인 박동훈의 미움을 샀고, 박동훈의 배경은 봐도 뻔한 일, 오늘 밤 누군가 김예훈의 편을 들어준다면 기필코 화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게다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김예훈을 못마땅해하고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를 위해 나설 생각은 없다. 이 재미난 구경거리를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는가?특히 정지용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정민아, 너 미쳤어? 저런 못난 놈을 뭐 하러 챙겨? 이젠 우리 가문과 관계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 줄 알아? 아니면 오늘 밤 우리 가문도 무사하지 못해! 병신 같은 놈이 박 대표를 건드리
“나오키가 너를 죽일 수 있었는데 네가 용문당 이름으로 압박하는 바람에 생각에 잠겨있는 틈을 타 습격해서 죽였다는 것도 알아. 김예훈, 너는 정말 얼굴이 너무 두꺼운 거 아니야? 왜 그렇게 염치가 없는 거냐고.”용현성은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화가 잔뜩 나 있었다.김예훈은 멈칫하더니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류서우를 힐끔 쳐다보았다.류서우 뒤에 서 있던 집법 부대 제자들은 김예훈의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에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했다.이로써 류서우가 용현성을 데려오기 위해 일부 진실을 숨겼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예를 들어 김예훈이 혼자서 타케이 가문을 모조리 때려눕혔다는 사실을 숨긴 채 김예훈이 용문당을 이용해 타케이 가문을 압박했다고 말했다.만약 용현성이 김예훈이 직접 나오키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감히 올 용기도 없었을 것이다.“부 당주님, 한 번만 더 설명해 드릴게요. 타케이 가문은 자결한 것이 맞아요. 용기가 대단해 일본 천황이 큰 상을 내리기로 했다니까요?”김예훈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이미 진주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에요. 일본대사관 측에서도 이 주장을 받아들였고요. 부당주님께서 만약 불만이 있으시면 그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도 좋아요. 소송에서 이기면 다시 이야기해 볼까요?”“너!”용현성은 화가 나서 할 말을 잃었다.‘김예훈 이 자식, 실력 있는 것도 모자라 말솜씨도 대단해.’김예훈이 일본대사관까지 거들먹거려 한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바로 이때, 장현준이 웃으면서 말했다.“김 회장, 어떻게 자결했는지는 김 회장이 나보다 더 잘 알잖아. 동씨 가문이 이 사건에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아부었는지 김 회장도 모를 리가 없잖아. 굳이 밝혀봤자 재미도 없을 것 같고. 실력이 뛰어난 데다 동씨 가문이 뒤를 봐주고 있어서 자신감이 넘치는 거 알아. 하지만 김 회장도 알겠지만, 이 세상에서 많은 일은 단순히 싸우고 죽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아. 이 바닥에서는 예의를 갖춰야 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데 당주님과 맞서
장현준이 봤을 때 자기가 진주에서 가지고있는 능력과 배경에 용현성의 세력까지 더하면 김예훈을 짓밟아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어쨌든 본때를 보여주기 전에 중요한 일부터 처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이때 동하임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러게요. 어르신들, 싸우려고 저희 동씨 가문에 사람을 불러달라고 한 건 아니죠? 먼저 일부터 해결하는 거 어떨까요?”용현성은 그제야 분노가 가라앉는 듯싶었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면서 삿대질했다.“김예훈, 장현준 어르신과 동씨 가문이 네 편을 들어줘서 오늘 운이 좋은 줄 알아. 아니면 내가 뺨 한 대로 너같이 무례한 인생 후배를 죽여버렸을 거야. 그동안 내 손에 죽은 젊은이가 아마도 천명은 안 되어도 팔백 명은 될 거야.”용현성은 오른손 손바닥을 드러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허세 그만 부리시고.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면 될까요?”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할 말이 있으면 하시고, 없으면 이만 가볼게요. 저는 아직 배가 고파서 야식 먹으러 가려고요.”“너!”한 무리의 집법 부대 제자들은 하나같이 화를 냈다.거만한 사람은 얼마든지 봤어도 이 정도로 거만한 사람은 처음이었다.‘용현성 어르신 체면을 전혀 지켜주지 않네!’“그래. 본론으로 들어가지.”용현성은 이번에는 화를 억누르고 류서우 등을 말리면서 김예훈을 냉랭하게 쳐다보았다.“김예훈, 네가 부산 용문당 회장인 점을 이용해서 진주·밀양에서 함부로 행동하고 사람을 괴롭혔다면서? 심지어 일본 야마구치파도 모자라 타케이 가문까지 죽였다지? 야마구치파에서 이미 연락이 왔어. 용문당에서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네가 상대방과 어떤 원한을 가지고 있든, 야마구치파에서 책임을 따지기 시작한 이상 네가 반드시 책임져야 해.”용현성은 위엄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명령하는데 회장 패쪽을 넘기고 야마구치파에 사과하도록 해! 우리 용문당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런
“류서우, 우리 회장님한테 무례하면 안 되지.”장현준이 말했다.김예훈과 동하임을 발견했을 때 멈칫하더니 곧바로 이 두 사람을 알아보았다.비록 첫 만남이었지만 용현성을 응원하러 오는 것이었기에 김예훈의 자료를 미리 확인했었다.장현준은 배시시 웃으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류서우, 이분은 전설 속의 김예훈 회장이라고 해. 경기도 김 세자라고도 불리는데 신분이 어마어마할 정도라니까. 이런 분은 집법 부대에서 감히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장현준이 류서우를 꾸짖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비난의 뜻은 없고 오히려 비꼬는 듯했다.김예훈의 신분을 알고는 있었지만 별로 존중의 뜻은 없었다.진주 사람이 봤을 때 경기도 김세자든 부산 용문당 회장이든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도 않았다.진주에서는 바짝 엎드려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이번에 상대해야 할 사람이 눈앞에 서있는 사람인 것을 확인한 용현성은 자연스레 시선을 김예훈에게 돌렸다.류서우의 눈물겨운 호소를 듣고, 사진도 보고, 자료도 확인했지만, 실물을 보니 평범하디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옷차림이나 분위기, 모두 다 평범했다.김현민과 비교하면 정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용현성은 김예훈이 류서우 앞에서 어떻게 타케이 가문을 죽였는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이때 용현성이 담담하게 말했다.“류서우, 얼른 우리 김예훈 회장에게 사과해. 이따 시작되기도 전에 회장님이 홧김에 너를 죽여도 난 너를 지켜줄 수 없어.”“하긴, 김 회장님이 막무가내의 사람이라 당주님 앞에서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죠.”류서우는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저 류서우, 회장님께 사과를 드릴게요. 죄송해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부디 저를 죽이지 말아주세요. 저 죽기 싫어요.”말 속에 가시가 있고, 비꼬는 말투를 보니 전혀 진심이 담겨있지 않았다.류서우의 말에 집법 부대 제자들도 김예훈을 흘겨보았다.‘이 모양 이 꼴을 하고서 왜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지? 정말 염치가 없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영국 황실에서 일했다고요? 황실 공주도 제 앞에서 체면을 세우지 못하는데 하인 주제에 내 앞에서 나이가 많다고 꼰대 짓을 하다니. 저는 절대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거예요.”김예훈은 말을 마치고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이 둘은 곧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꼭대기에 있는 공중 화원에 도착했다.150평 정도 되는 이곳에는 사방이 푸르른 식물로 둘러싸여 있었다.가장 가운데는 60평 정도의 회의실이 있었는데 벽에는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도 걸려있었고, 주위에는 온통 고급 목재로 만들어진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우아하게 꾸며진 이곳은 꽤 정교하여 보기 드문 곳이었다.하지만 그렇게 정교하던 회의실이 지금은 엉망이었다.비싼 소파와 테이블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유리 조각들도 널려있었다.그 중심에는 두 명의 노인이 앉아있었다.한 명은 삼베옷을 입고, 수염과 머리가 하얗고, 네모난 얼굴에 위엄이 가득한 용현성이었다.다른 한 명은 외국인으로 턱시도를 입고 눈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살짝 술에 취한 것 같은데 그래도 기품은 좋았다.이 사람은 바로 총독을 하기도 하고 영국 황실에서 일했던 장현준이었다.그들의 뒤에는 열몇 명의 사람이 서 있었는데 가장 앞에 서있는 사람은 류서우였다.보아하니 모두 집법 부대의 사람들인 것 같았다.하나같이 태도가 거만하고 콧대가 높은 것이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다.특히 류서우는 용현성이 뒤를 봐주자, 모든 사람을 무시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런 제기랄. 김예훈이랑 동하임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이때 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장현준은 동씨 가문 하인인 줄 알고 욕설을 퍼부었다.“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거야? 우리를 십몇 분이나 기다리게 해놓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장현준은 진주 1인자 포스를 풍기면서 차가운 표정으로 질문했다.“동씨 가문 사람들은 예의를 모르나? 그리고 김예훈이라는 놈은 자기 분수도 모르나 봐. 내가 오는 줄 알았으면 미리 와서 기다렸어야
김예훈이 놀라며 말했다.“대한민국 전국 10대 명문가 중의 하나인 용씨 가문의 사람이라고요?”동하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좀 복잡하다는 거예요. 용씨 성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용문당 당주님과 같은 연배라 심지어 당주님이 형이라고 부른다고 했어요.”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재밌네요. 당주님의 형님이 집법 부대 부당주님이라니. 관계가 복잡하긴 하네요.”“그런데 류서우 씨가 그분을 총알받이로 이용하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집법 부대의 체면을 세워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평화를 위해서 가장 먼저 깃발부터 내려고 소란을 멈춰야 했지만 순진한 사람이더라고요. 용현성 같은 사람이 짓밟을 수 있었다면 저는 이미 몇 번이고 죽었을 거예요.”김예훈이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보아하니 류서우 씨 아직 수준이 낮은 것 같네요. 용문당 류씨 가문도 별거 없네요.”동하임이 한숨을 내쉬었다.“말은 이렇게 해도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류서우 씨는 무시해도 용현성 씨는 젊은 시절에 진주를 휩쓸고 다니면서 인맥이 아주 넓거든요. 용문당 권력자들도 깍듯이 대할 정도라니까요. 진주·밀양 용문당 수장도 겸손한 것 같아 보여도 진주·밀양 지리적 위치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용현성 씨가 체면을 차리지 않고 진주·밀양 용문당 수장의 인력을 직접 끌어와서 도련님을 상대하는 것도 아주 복잡한 일이에요.”동하임은 계속해서 말했다.“그런데 도련님께서는 안심하셔도 돼요. 저희 동씨 가문은 어떻게든 도련님 편에 서 있을 거니까요.”김예훈은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하임 씨, 걱정하지 마세요. 삼촌인 저만 믿으세요.”동하임은 흰자를 뒤집긴 해도 그의 자신감에 정신이 황홀해지는 느낌이었다.유럽 여자들은 감정에 있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동하임도 반쯤 유럽인이라 그런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하지만 이전에 김예훈의 자료를 본 적 있는데 이미 그에게 아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늘 감정에 있어서 적극적이던 동하임은 아쉬울 따름이다.‘이런 사람은 김현민도
저녁 8시, 진주 시내 중심에 있는 한 건물.동씨 가문의 이 건물은 매년 임대료만 해도 엄청났다.건물 꼭대기에는 공중 화원도 있었는데 사계절 푸르른 이곳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이곳은 동씨 가문의 에너지가 가장 강한 곳이었기에 갑작스러운 만남 장소를 이곳으로 정했다.상대방이 어떤 수단을 쓰든, 이 자리에서 얼굴을 붉히든 제대로 맞설 자신이 있었다.세단을 타고 건물에 도착한 김예훈은 무심하게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비록 밤이었지만 도로에는 차도 그렇고 사람도 많이 다녔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하임 씨, 여기가 풍수지리가 좋아 재물을 모으기 딱 좋은 곳이네요!”“이런 누추한 곳을 좋게 봐줘서 감사해요. 저희 동씨 가문은 여기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 뿐이에요.”검은 드레스를 입고있는 동하임은 지나가기만 해도 수많은 남자의 시선을 끌었다.이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빨개져서 짐승처럼 덮칠 것만 같았다.하지만 동하임 주위의 만만찮은 기세에 이들은 마음을 완전히 꺾어버렸다.동하임이 공손하게 김예훈을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도련님, 가시죠. 류서우 씨 일행과 8시에 만나기로 했어요. 지각해도 상관없으니까 서두를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쇼핑을 좋아하시면 아래층에 있는 면세점에 가서 한 바퀴 돌아도 되고요.”동하임은 자연스럽게 김예훈의 팔짱을 감싸고 연약한 여인의 모습을 하면서 건물로 들어갔다.이에 많은 동씨 가문 자제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우리 아가씨가 언제부터 이렇게 공손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던 거지?’“면세점은 됐어요. 쇼핑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김예훈은 건물로 들어가면서 호기심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류서우 씨도 오는 거예요? 제 앞에 나타날 용기는 있대요?”“못 올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동하임은 콧방귀를 뀌었다.“도련님께서 하루 종일 쉬는 동안 류서우 씨가 용문당 내세우면서 얼마나 많은 일을 처리했는데요. 김현민도 만나고, 집법 부대 부당주님도 모셔 왔잖아요. 무슨 꿍꿍이인지는 만나
김예훈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는데 이미 저녁 6시였다.휴식하고 싶어서 무음 모드로 해놓은 바람에 오늘 오후 동하임의 전화를 열몇 통이나 받지 못했다. 직접 찾아온 걸 보니 급한 일이 있는 듯했다.동하림이 호텔 주소를 찾아낸 것도 아주 정상적인 일이었다.동하임의 신분과 능력으로 김예훈 하나 찾지 못한다면 동씨 가문도 진주에서 살아남을 이유가 없었다.김예훈은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동하임은 어느샌가 검은색 샤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여전히 단발머리였지만 이 드레스는 마침 날씬하고 섹시한 이국적인 매력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이 모습에 김예훈조차도 눈앞이 밝아지는 느낌에 속으로 감탄했다.“하임 씨, 마침 룸서비스를 시켜볼까, 했는데 같이 식사하실래요?”김예훈은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해서 먹으면서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인데요?”동하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도련님, 하루 종일 주무시느라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르죠? 오늘 아침에 용문당 부당주님이 집법 부대를 이끌고 찾아왔어요. 진주 지위가 특별한 것 때문에 오늘 오후에 부당주님께서 김예훈 도련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공식적으로 진주 기관에 요청을 보내왔어요.”김예훈이 흥미롭게 말했다.“제가 용문당 회장인데 저한테 직접 연락하지 않고 동씨 가문에 연락했다고요? 재밌네요. 동씨 가문에 자기 정체성을 알고,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지 말해주려는 거예요?”동하임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용전, 용문당, 용의 부대, 용연옥에도 공식적으로 서신을 보냈으니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닌 거죠. 이 각도에서 보면 저희 동씨 가문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것 같아요. 이 서신으로 이미 용문당의 의지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으니까요.”“용문당의 의지요?”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용인주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신호가 없는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부재중 음성뿐이었다.김예훈의 행동에 동하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저한테 전해달라고 하던데 용문당 당주님이 지금 무송에서 폐관 수련 중이니 찾을
류서우 등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김예훈이 항복하거나, 끝까지 저항하거나, 더 대단한 사람을 불러와 집법 부대와 맞설 줄 알았는데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 몰랐다.집법 부대가 이 상황을 휘어잡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나오키의 목숨을 살려서 이 증인들을 데리고 간다면 어떻게든 김예훈을 죽여버릴 방법이 많았다.그런데 김예훈이 이 증인들을 직접 황천길로 보내버릴 줄 몰랐다.증인이 없으면 김예훈의 죄를 증명할 수 없고, 또 그를 감옥에 보낼 수도 없으며 그를 회장 자리에서 끌어내릴 핑계도 없었다.김예훈의 이 한 수에 현장에 있던 용문당 집법 부대 자제들은 넋을 잃고 말았다.이 순간 바람이 불어오자, 류서우를 포함한 사람들은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김예훈의 실력을 봐서는 이들을 죽이려고 해도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김예훈은 앞으로 다가 진세은을 발로 걷어차 넘어뜨리고는 웃으면서 말했다.“진세은, 타케이 일가가 지은 죄가 두려워 알아서 복부를 찌른 모습을 보았지? 나의 증인이 되어줄 건가?”진세은은 힘겹게 침을 삼키며 웃고 있는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증인 할게.”“타케이 가문은 홍성파에서 직접 초대한 귀한 손님인데... 홍성파의 귀한 따님께서 타케이 가문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시면 그 죄목들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거지?”김예훈은 앞으로 다가가 류서우의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문당 회장이 법을 어기지만 않았다면 집법 부대 제자보다는 위치가 높은 거 아니겠어?”김예훈의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에 류서우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어떻게 하실 건데요?”“어떻게 할 거냐고?”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용문당 집법 부대 사람들인데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 이따 시체를 잘 치우고 바닥을 깨끗이 닦으면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가 줄게. 이깟 일도 처리하지 못하면 교훈을 주기 위해 손쓸 수밖에 없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손쓰지 않게 해주길 바라.”김예훈이 태연하게 떠나는 모습을 보던 용문당 집법 부대 제자들은 눈앞이 어두워지는 느낌
류서우의 편파적인 말투를 들은 나오키가 말했다.“류서우 씨, 제가 증언해 드릴게요. 저 자식이 바로 제 아들딸을 죽이고 한일 관계를 파괴한 놈이에요. 그리고 여기 쓰러져있는 일본인들도 전부 다 저 자식이 죽였어요. 살인마나 다름없는데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해요! 저런 사람이 죽지 않으면 한일 관계도 다시 호전될 수 없다고요.”나오키는 일본의 신성한 사무라이 정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어쩌면 비열한 것이 본모습이라 사무라이 정신은 그저 보여주기식일지도 몰랐다.남들이 믿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절대 믿지 않는 그런 거짓말처럼 말이다.나오키의 진심 어린 호소에 류서우가 웃으면서 말했다.“나오키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집법 부대에서는 법에 따라 이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할 거예요. 자기 사람도 다스리지 못한다면 용문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겠죠.”류서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 회장님, 정말로 반항할 준비가 되셨어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피식 웃었다.“반항? 만약 시비를 가리지 않고, 선과 악도 구분하지 못해 악당을 도와주는 것이 집법 부대의 스타일이라면 반드시 반항해야 하겠는데?”“이런 젠장! 어디서 이런 무례한 말을 하는 거예요! 용문당 집법 부대를 모욕한 죄로 더 큰 벌을 받아야 할 거예요!”류서우는 뒷짐을 쥔채 거만하게 김예훈을 쳐다보고 있었다.“지금 아셔야 할 것은 당신은 이미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거예요. 규칙이든 법도든 하나도 빠짐없이 위반했다고요! 그런데도 저희가 나서지 않으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 같아요?”‘하찮은 회장 주제에 공손하게 대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도전장을 내밀어?’류서우의 마음속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과거의 회장들은 류서우를 보면 바로 굽신거렸는데 처음 보는 태도에 더욱 분노를 샀다.이 순간, 류서우는 허리춤에서 활을 꺼내 김예훈의 머리를 겨냥하면서 차갑게 말했다.“손 머리 위로, 무릎 꿇으세요!”“정말 구제 불능이네.”김예훈은 한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