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이름 없는 산꼭대기에서.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뒷짐을 쥔 채 벼랑 끝에 서 있었다. 그는 연세와 달리 맑은 정신을 갖고 있었는데 도를 닦는 사람처럼 보였다.그리고 이 노인의 몸에는 신기한 기운이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주위로 알 수 없는 기운이 맴돌았는데 그가 숨을 쉴 때 따라 같이 움직이는 듯했다.기와 함께 어우러진다는 것이 이런 장면일까 싶었다.이때 그의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태권도 도복을 입은 남자가 나는 듯이 달려와 황공한 표정으로 얘기했다.“어르신, 큰일 났습니다. 어르신의 제자 이형택이 한국에서 살해당했다고 합니다!”“뭐?!”노인이 손을 홱 젓자 주변의 연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무형의 폭탄이 그의 뒤에서 터진 것만 같았다.주위의 새들도 놀라서 바로 바닥에 떨어졌고 수많은 나뭇잎이 바르르 떨렸다.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박용진은 이미 세속을 벗어난 사람이다. “이대정 씨께서 연락이 오셨습니다. 어르신과 함께 한국으로 가서 대의를 함께 하고 싶답니다. 첫째로는 우리 인도를 위해 길을 열어놓는 것이고 둘째로는 이형택 씨를 위해 복수하는 것입니다.”박용진 뒤에 꿇어있던 사람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털썩.그 뒤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산의 중간쯤까지 덮은 채 꿇어앉아 있었다.“청별 그룹이 박용진 어르신께 부탁드립니다! 한국으로 가서 이 혼란을 해결해 주십쇼!”“어르신은 만 명도 쓰러뜨릴 수 있고 한국을 바로 발아래에 밟을 수 있습니다!”주위에서 퍼지는 소리의 울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꿇어앉아 머리를 박고 있었다.박용진은 인도 태권도의 일인자이자 인도 국방부의 총사령관이었다.하지만 수년 전, 유라시아 전쟁에서 전설 속의 그 사람에게 패배한 후, 그는 계속 폐관 수련을 했다.박용진의 눈이 반짝이더니 한참 후에 한숨을 뱉고 얘기했다.“저는 나이를 먹었으니 이제 세상에 나서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도의 일이니 그럼 저는 그 총사령관의 고향으
박용진이 산에서 내려와 한국에 온다는 소식은 청별 그룹 임원들에 의해 은폐되었다.이는 청별 그룹의 의견이 아니라 박용진 자신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오직 유라시아의 전쟁에 참전한 자들만이 한국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에게는 한국에 전설 속 그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곳은 아마 모든 군사의 금지 구역이기에 만약 들어가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죽음을 자초한 일일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5대 강국들의 연합군도 그 한 사람의 힘으로 모두 제압된 적이 있었다! 그러니 박용진은 더더욱 한국에 오는 일을 대대적으로 떠벌리고 싶지 않았다. 만에 하나 총사령관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그땐 더 큰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을 졸이고 있던 박용진은 무사히 한국에 입국하고 나서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입국 심사에서 그의 출입을 막지 않은 걸 보니 아마 그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더욱이 그가 다음 장소로 이동할 곳은 서울, 부산, 금릉 등 곳이 아닌 경기도 성남이기에 총사령관과 마주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생각에 잠긴 것도 잠시, 박용진의 얼굴에는 한순간 씁쓸함이 묻어났다. ...북쪽 강릉 국제공항.이대정의 지시하에 공항 절반이 봉쇄되었다. 공항 전체가 알록달록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태권도 도복을 입은 수천 명의 인도 사람들이 옴짝달싹 못 하고 서 있었다.공항 밖에는 같은 계열의 롤스로이스가 일렬로 줄지어져 있었는데 이 광경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VIP 통로로 나온 박용진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너무 으리으리해!’‘너무 거창하다고!’박용진은 최대한 조용히 입국하려 했건만 이대정의 이런 행동들은 오히려 자신을 불판 위에 올려놓는 격이 아닌가!“어르신,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현장에 있던 인도 사람들은 박용진의 숨고 싶은 심정도 모른 채 큰 목소리로 환호했다.그들의 마음속에 박용진은 태권도계의 일인자로서 무적의 존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그런 그가 한국에 왔다는 것은 청별
“오, 그럼 세 가지 모두 보내주세요. 특히 병부는 꼭 손에 넣어야겠어요.”박용진은 강한 흥미를 보였다.“이 물건들을 순조롭게 손에 넣기만 한다면 당신이 한국에서의 모든 어려움은 제가 직접 해결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염려 마세요. 어르신. 이번 일은 제게 맡겨만 주세요.”이대정은 박용진의 이 말만을 기다려 왔다.더욱이 아들을 위해 복수할 수만 있다면 이번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쉬운 일이었다. “성남, 곽씨 경매회...”이대정의 표정은 한껏 차가워졌다. 이대정처럼 많은 일이 엮여있는 인물은 함부로 북쪽을 벗어나 남쪽으로 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와 연결된 크고 작은 일들이 너무 많았고 그의 작은 움직임은 큰 여론을 불러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용진은 이번 행차에 그의 직속 제자인 안재석을 이대정의 조력자로 함께 데려왔다. 이대정은 곧바로 안재석에게 한국지사 청별 그룹의 부사장 자리를 내어주었다. ...성남.선우재현이 공손한 자세로 김예훈 앞에 서 있었는데 사뭇 정중해 보였다.“김 대표님, 한가지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김예훈은 궁금해하며 되물었다.“무슨 일이지?”“지난번 곽씨 골동품 가게에서 있었던 일 기억 나시죠. 대표님과의 일로 곽씨 골동품 가게가 성남에서는 평판이 나빠져 바닥을 쳤습니다.”“그럼 좋은 일 아닌가?”김예훈이 물었다.“평판은 나빠도 골동품 가게의 배후인 성남 곽씨 가문의 곽씨 도련님께서 이대로는 물러서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이기에 하여 내일 저녁, 경매회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번 경매회에는 저희 가문 아무도 참여하지 않는 걸로 되어있지만 곽씨 도련님께서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진귀한 보물 세 점을 경매에 내놓는다고 하십니다. 할아버지께서 도감을 보고서 꼭 대표님에게 보고하라 하셨습니다. 왜냐면 이번 경매회에서 곽 씨 골동품 가게가 수많은 해외 유명 인사들을 초대했습니다. 만약 이번 보물들이 낙찰되어 해외로 나간다면 국보를 잃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진주 곽씨 도련님. 도가 지나치군
“여기서 대형 국제 경매회를 진행하려나 봐. 오늘 지인이 나에게도 초대장을 주던데, 당신도 여기서 뭘 사려고?”정민아는 김예훈이 보물 감정에 안목이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호기심이 생겼다.“그저 구경하러 온 거야. 견문도 넓힐 겸.”김예훈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만약 곽씨 골동품 가게의 전설 속 인물인 곽씨 도련님께서 국보를 해외로 팔아넘길 의향이라면 김예훈은 기필코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려고 다짐했다. 경매장 내부.이 시각 곽연우는 전화를 붙잡고 공손하게 서 있었다. 전화 건너편에서는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저녁, 청별 그룹의 이대정 사장이 그 세 가지 경매품에 큰 관심이 있다고 나에게 친히 전화를 주셨네. 대면 선물로 경매품들을 청별 그룹에 선물하고 싶은데 준비해 주게.”곽연우는 식은땀을 훔치며 말했다. “영현 도련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런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죠. 오늘 경매장에 참석하는 인원들은 제가 직접 엄선하여 세 가지 경매품을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미리 언질을 주었습니다! 만약 청별 그룹에서 충분한 돈이 준비돼 있다면, 세 가지 경매품은 무조건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어쩌면 이번 경매회 목적은 곽씨 골동품 가게의 명성을 날리고 일전에 김예훈이 불러온 영향을 제거함과 더불어 곽씨 골동품 가게에는 진귀한 보물이 많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다. 이 기세를 몰아 청별 그룹에 인심을 산다면 곽영현한테는 일석이조였다.설령 그것이 국보든 아니든 곽영현은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는 체면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성남에서 누군가 그의 체면을 깎아내렸으니 기필코 돌려놓아야만 했다. ...그 시각, 김예훈과 정민아는 순조롭게 경매장에 들어섰다. 이번 경매장에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해외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김예훈과 정민아의 초대장 좌석은 상대적으로 뒤쪽 편이었는데 느낌상 인수를 채우기 위함인 것 같았다. 심지어 오늘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도 비슷해 보였다. 입찰자는 미리 정해져 있었고 곽씨
이때, 곽연우가 일어나서 주위 사람들에게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여러분 정숙하세요.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오늘 저녁 저희 곽씨 골동품 가게에서 주최하는 경매회에는 단 세 점의 진귀한 보물을 선보일 예정인데 그것은 각각 당인의 친필 그림과 청자기, 그리고 전설 속 병부입니다. 곽도련님의 말에 따르면 세 점의 보물은 곽씨 골동품가게의 명물이기에 각기 흩어진다면 가치가 없다 하셨습니다! 하여 오늘 밤, 이 세 점의 보물을 세트로 경매에 내놓으면 어떨까요!?”곽연우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짜고 치는 판에 그는 단지 안재석이 세 점의 진귀한 보물을 순조롭게 손안에 넣게 하면 되었다. “그건...”경매장안의 많은 이들은 의아해했다. 그것도 잠시, 곽연우가 미리 심어놨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곽씨 골동품 가게 주인의 말씀이니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이 세 점의 진귀한 보물에 대해 저도 들어본 적 있습니다. 보물들은 곽씨 골동품 가게의 명물로 만약 세 점의 보물들이 흩어지기라도 한다면 안타깝지 않겠습니까!”“세 점의 보물을 함께 소유해야만이 그 가치가 더 올라가죠!”“돈이 많은 사람이 보물의 임자지요!”다수의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던 안재석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한국지사 청별 그룹 부사장인 그가 아랫사람들과 하찮은 경매 게임이나 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한방에 손안에 넣으면 얼마나 통쾌할까?“좋은 생각이오!”마침 한점씩 경매에 임하기 귀찮았던지라 김예훈은 두 손을 번쩍 들며 적극 찬성했다. 한꺼번에 세트로 가져갈 수만 있다면 오히려 많은 시간을 절약한다.김예훈의 이런 모습을 본 정민아는 한숨을 푹 내뱉으며 말했다.“눈치 못 챘어? 오늘의 이 경매는 이미 입찰자가 있었던 거야, 우리는 그저 머릿수를 채우러 온 것뿐이라고.”“곽씨 골동품 가게에서는 애초부터 보물을 다른 이들에게 판매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 그들의 목표는 오직 청별 그룹에 팔아넘기는 거였어!”“이곳은 진주도, 북쪽도, 인도도 아닌 성남이
청별 그룹과 맞서다니? 그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아닌가?경매장에 심어놓은 사람들이 금액을 외치는 소리가 막바지에 이르자 안재석은 침착하게 자신의 패들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희 인도지사 청별 그룹에서는 2,200억을 내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경매장 안의 모든 사람이 흠칫 놀랐다. 예전의 청별 그룹은 경기도에서 실적이 부진했는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았다. 대부분 성남 지역의 사람들만이 알 수 있었다. 더욱이 강력한 청별 그룹에 세력 때문에 감히 그 누구도 떠벌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니 이 일은 더 이상 소문 나지 않았다. 이 순간 들려 온 강력한 청별 그룹의 목소리로 인해 경매에 응찰하는 경쟁자는 당연히 없었다. 경매장에 심어 놓은 사람들도 목적을 달성했기에 이제는 깔끔하게 퇴장했다!경매장 안 각 지역의 사장들은 안재석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알아보겠네, 저 사람은 한국지사 청별 그룹에 새로 부임한 부사장, 안재석이군!”“듣자 하니 그는 인도에서 태권도 일인자인 박용진의 직속 제자라지!”“인도에서 안씨 가문은 제일의 명문가라네!”누군가 안재석의 신분을 알아차리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한국지사 청별 그룹의 부사장이라니!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라운 그의 신분에 모두가 경악했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재석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곽연우는 빠르게 현장을 한번 훑어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2,200억 한번!”“두 번!”곽연우가 세 번을 외치려던 찰나, 경매장 안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제가 3,000억을 내겠습니다.”그 소리에 곽연우는 멍해졌다. 안재석을 포함한 모든 사람도 함께 멍해 있었다. 이 장소에서 안재석과 청별 그룹에 맞서는 사람이 있다니?순간 경매장 안의 모든 시선이 뒤쪽을 향했다. 정민아 역시 멍해 있었다. 왜냐하면 금액을 부른 사람이 김예훈이라니!“뭐? 당신은!”곽연우는 한눈에 김예훈을 알아보았다. 그는 이런 장소에서 김예훈을 만날 거라고는 꿈에서
“헉!”경매장 전체에는 놀라운 감탄사와 함께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놀라웠다!감히 이런 장소에서 청별 그룹과 맞서다니?이건 물건을 뺏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청별 그룹과 끝까지 대적하는 격이기에 그가 정말로 겁이 없는 사람 같았다!과연 오늘 그가 살아서 경매장을 나갈 수 있을까?“이런 X! 이게 죽으려고!”화가 끝까지 치밀어 오른 안재석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그는 인도에서 말 한마디면 모든 일을 해결할 정도의 큰 인물이라 그 누구도 그를 거역할 사람이 없었기에 이는 그가 제멋대로 날뛰는 오만한 성격을 가지는 데 한몫을 했다고 할 수 있다.그런데 감히 오늘 이 작은 경매회에서 한두 번도 아니고 그와 맞선다고?지금 이 순간 안재석은 김예훈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원래 계획대로라면 2,200억 원에 세 점의 진귀한 보물을 손에 넣어야 했다. 그러나 갑자기 튀어나온 녀석이 원래 계획의 3배나 넘는 돈을 부르다니!비록 안재석의 돈은 아니었지만, 핵심은 이번 경매가 그가 부사장으로 임명되고 나서의 첫 미션이었다.첫 미션에 3배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니, 이후에 그가 어떻게 청별 그룹과 인도에서 머리를 들고 다닐 수 있겠는가?“5,200억!”안재석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버린 채로 멀리 있는 김예훈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6,000억!”담담하게 금액을 부른 김예훈은 말을 이어갔다.“너희 인도 사람들은 다 똑같아. 허세만 가득했지, 소심하다고. 이런 장소에서 호가를 조 단위도 부르지 못할 거면서 감히 날 상대하겠다고?”훅.늘 인도 사람임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안재석이기에 김예훈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도 맞는 것이 김예훈의 호가는 1,000억 단위인데 안재석은 200억 단위였으니 당연히 소인배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만약 그가 홧김에 호가를 7,000억, 8,000억으로 불렀을 때 이 녀석이 따라와 주지 않는다면? 곽씨 골동품 가게에서 절
정민아는 곽연우의 설명을 듣고는 순간 얼굴이 ‘싹’ 바뀌었다.그녀는 곽씨 골동품 가게가 청별 그룹과 협의하여 입찰자를 정해놓고 경매를 진행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었다. 아무리 김예훈이 경매 도중에 물품을 낚아챘다고 한들 곽씨 골동품 가게에서 이렇게 비겁하게 나올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 ‘경매품을 낙찰했는데 갑자기 달러로 지불하라고?’그러나 김예훈은 오히려 담담했다.오늘 밤의 주최는 진주의 곽씨 가문이고 그들의 대상은 청별 그룹인데 감히 누가 상대할 수 있겠는가?“누가 그래? 경매가 단위가 달러라고?”김예훈은 침착하게 말했다. “내가 말했어. 곽씨 골동품 가게가 내 소유인데 최종결정권은 나한테 있지. 내가 어떻다고 하면 어떤 거지. 맘에 들지 않으면 어디 한번 덤벼보시던가?”이때, 마른 체구에 하얀색 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경매장 뒤편에서 유유히 걸어 나왔다. 미소를 머금은 듯한 그의 시선은 곧장 김예훈에게로 향했다.그를 보자마자 곽연우는 움찔해서 빠른 보폭으로 그를 향해 걸어갔다. “곽 도련님!”김예훈은 그를 자세히 바라보고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곽 도련님? 진주 곽씨 가문의 곽영현?”곽영현은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접니다. 이분은 아마도 얼마 전 저희 곽 씨 골동품 가게를 파산시킬 뻔한 김예훈씨 김 고문님이시죠? 김 고문님, 오늘 밤 저희가 주최한다는 것을 당신은 분명 알고 있었겠죠. 그럼에도 소란을 일으키다니, 그 용기가 대단하네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딴 곳에 오면서 용기가 왜 필요해요?”“확실히 필요하진 않죠. 그러나 모든 건 경매 규정에 근거하여 진행됩니다. 당신이 물건을 낙찰했으니, 돈을 지불하셔야겠죠? 만약 돈을 지불하지 못한다면 저희 쪽에서 홧김에 다리라도 부러뜨린다 해도 아마 그 누구도 대신해 나서줄 사람이 없겠죠?”곽영현의 부드러운 웃음 사이로 검은 속내가 비쳤다. 김예훈은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수법도 남다른 것이 역시나 진주의 큰 도련님이시네요! 아마도 제가 금액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