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환은 차가운 얼굴로 떠나가 버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잠시 후 천천히 말했다.“장례식을 계속해, 아들을 보내줘야지!”“상주에게 인사를 시작하겠습니다!”“분향을 시작하겠습니다!”“영정 앞에 두 번 절을 시작하겠습니다!”“상주에게 다시 한번 맞절합니다!”...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향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장관이었다.과거의 제왕들도 이런 예우를 받진 못했을 것이다.“어르신, 지금 하관해도 되겠습니까?”여문성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급해야 할 것 없어. CY그룹 임원들이 반드시 관을 들게 할 거야! 그리고 김세자와 김예훈 두 사람도 순장해야 해! 이제 가자꾸나. 우리를 도발하는 사람이 있으니 같이 놀아줘야!”“CY그룹을 평정하자!”“김세자를 잡자!”현장에 있던 만 명의 사람들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모두 분노가 끓어올랐다.이 광경을 목격한 성남 상류층 사람들은 모두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집안의 가게를 모두 닫게 했고, 집에서 단 한 발짝도 나서지 말라며 당부했다.도발에 넘어간 임수환은 성남을 제대로 피바다로 만들 생각이었다.게다가 그는 리카 제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외교 면책특권이 있었다.그는 한국에서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조례에 따르면 그는 리카 제국에 가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리카 제국 임씨 가문은 리카 제국에서 워낙 큰 권력을 쥐고 있었기에 그는 아주 높은 가능성으로 무죄로 석방될 것이다.그래서 임수환은 두려운 것 없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그들은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의 타깃이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이 일에 얽히게 된다면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곧이어 현장에 있던 상류층 사람들은 모두 뒷산으로 빠져나갔다.그들은 장례식을 참가하러 왔지, 목숨을 바치려고 온 건 아니니까 말이다.그래서인지 임수환도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그 사람들이 모두 떠난 후, 임수환이 손을 휙 젓더니 그의 수하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이때, 계속 말이 없던 방여가 갑자기 구석에서 걸어 나오더니 묘지
김예훈은 낡은 관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 정체를 알게 되었으니까 이제 임수환 씨가 스스로 들어가서 누우면 되겠네요. 서로 힘도 아끼고 좋잖아요.”“하하하...”임수환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관을 두 개 준비했는데, 김세자가 바로 김 고문이었다니, 그럼 관 하나로도 충분하겠네. 하지만 난 당신과 생각이 달라. 당신이 스스로 들어가서 누울 필요도 없어, 내가 당신을 관에 던져버릴 테니까.”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저는 아직 젊어서 관에 들어갈 날이 아직 멀었어요. 그리고 둘 중 하나가 꼭 죽어야 한다면 임수환 씨가 죽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어쨌든 이 세상의 평화는 내가 지켜야 하니까요!”김예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당신...”임수환은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말싸움으로 그는 김예훈을 영원히 이길 수 없을 것이다.그는 깊은숨을 들이쉬더니 겨우 진정하고는 말했다.“김세자, 하나만 물을게. 내 양아들과 수하였던 3대 병장을 죽인 사람은 누구야?”박인철이 걸어 나오더니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접니다. 하지만 당신 같은 쓰레기는 내 이름을 알 자격이 없어요.”박인철은 마치 하찮은 얘기를 하는 것처럼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그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그는 당도 부대의 무신이자 경기도 4대 무신 중 서열 1위였다.임수환의 신분이 가장 높았을 때도 겨우 리카 제국 국방부의 유일한 한국인 소장이었으니 말이다.박인철이 죽인 리카 제국 국방부 소장은 최소 여덟 명은 될 것이다.그래서 임수환은 박인철의 신분은 알 자격이 없는 건 맞았다.“재밌네. 이렇게 건방진 젊은이는 오랜만이야. 용기는 대단해. 하지만 당신들이 겨우 네 사람으로 우리를 막으려 해?”임수환이 코웃음을 치며 말하자 박인철이 덤덤하게 대답했다.“미안합니다만 대표님께서 나서실 필요도 없습니다. 저 혼자면 충분하죠!”“무엄하도다!”임수환의 뒤에 있던 임윤은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그는 곁에 있는 몇 명의 홍
놀랍다!지금 이 순간, 임수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숨을 헉 들이켰다. 이 사람은 너무도 강했다. 다들 임윤이 동북의 조직 보스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실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부하들도 다 이 바닥을 휩쓸고 다닌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지금 3초 만에 쓰러졌다. 그제야 임수환은 알게 되었다. 김예훈 옆에 이런 고수가 있으니 전의 3대 장병도 순식간에 죽은 것이다. 눈앞의 이 사람은 확실히 강했다. 임수환은 이 사람이 앞으로 무신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임수환의 머릿속에서 잠깐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두 사람은 현재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박인철이 무신이 될 자격이 있다고 해도, 혹은 그가 진짜 무신이라고 해도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다. “당신이 강한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내 뒤에는 만 오천 명이 있어. 얼마나 죽일 수 있을 것 같나?”임수환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사람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 가장 강한 무신이라고 해도 얼마나 죽일 수 있겠는가. 이때 갑자기 방여가 걸어 나와 미소 지으며 얘기했다.“어르신, 제가 나서겠습니다.”사람들의 시선이 방여에게로 집중되었다. 임수환의 부하인 제1장병이 현재 하얀 옷을 입고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그의 눈빛은 마치 야수처럼 번뜩이며 빛을 내뿜고 있었다. 매우 흥분하고 격동한 기분인 것 같았다. 쿵. 무서울 정도로 무거운 기운이 그의 주변에서 쏟아졌다. 지금은 발아래의 낙엽과 먼지마저 그 진동에 밀려 나갔다. 심지어 어디선가 비릿한 피 냄새가 풍겨왔다.다들 전설 속의 죽음의 신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전쟁터에서 살아있는 죽음의 신으로 불리는 그는 이미 10여 년 동안 싸워보지 않았다.하지만 그의 실력은 나날이 늘고 있었다.제1장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실력으로 올라간 자리였다. 방여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동작은 매우 느렸지만 한 발자국에 수십 미터를 건너뛰었다.
조직의 사람들이 언제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겠는가!그들은 모두 표정이 굳은 채 이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너무도 갑작스럽게, 신비롭게 나타난 사람들이니 보통내기가 아닐 것이다.“용의 부대? 그게 어때서?”임수환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나도 특종 부대 출신이라는 것을 잊은 건가? 이 사람들이 다 장병이라고 해도 다 죽일 수 있다. 다 덤벼라! 우리는 만 오천 명이다. 저 20명이 두려운가? 숫자로 밀어붙여라!”조직의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바로 차갑게 웃음을 흘렸다. 임수환의 말이 맞았다. 고작 20명뿐이니 그들을 다 죽일 수는 없다. “덤벼!”조직의 사람들도 같이 달려 나갔다. 20명의 용의 부대 사람들이 손의 무기들을 동시에 사용했다. 쿵쿵쿵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예훈에게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바로 무기들에 몸이 분리되었다. 게다가 사면팔방에서 군복을 입은 군대가 몰려왔다. 이 군대의 군복에는 해룡이 그려져 있었다.바로 원경훈이 직접 통솔하는 해룡 부대였다. 그들이 나서기 전에 원경훈이 이미 명령을 내렸었다.어떤 일이 있어도 그 사람들이 총사령관에 가까이하게 하지 말라고. 이 임무는 해룡부대에게 쉬운 일이었다. 어느새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덩치가 큰 사람들도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조직의 사람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부대의 사람과는 차이가 엄청났다.하늘과 땅 차이였다....무덤 주변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곳곳에서 신음이 들려왔다.제일 중요한 건 박인철과 방여 두 사람이었다. 박인철과 방여, 두 사람의 10미터 이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쿵.미소를 짓던 방여가 발을 구르자마자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운동선수처럼 속도와 순발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푹. 그리고 핏빛의 비수가 방여의 손에 나타났다. 방여는 그대로 비수를 앞으로 꽂았다. 이때 비수가 빛나며 앞으로 향했다. 만약 박인철이 이 비수를 맞는다면 아무리
말을 끝낸 박인철이 검을 뽑아 들었다. 챙. 검이 흰빛을 뿜어내더니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방여의 얼굴은 순식간에 구겨졌다. 그리고 손의 비수를 몸 앞으로 휘둘렀다. 쿵.두 사람의 무기가 부딪쳤다. 그리고 바로 방여가 먼저 날아가 커다란 바위에 부딪혔다. 바위는 그대로 깨졌고 방여는 입가에 피를 흘렸다.그가 일어나려는 순간, 박인철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쿵. 그리고 군화로 바로 방여의 가슴을 밟았다. “쿨럭.”방여는 반항하고 싶었지만 박인철이 그를 더욱 짓누르자 입가에 피가 더욱 많이 고여 점점 경련을 일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1장병 방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믿기 힘든 표정으로 숨을 거두었다. 전쟁에서 죽음의 신이라고 불리던 그가 그렇게 빨리, 그렇게 쉽게, 그렇게 비참하게 죽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진정한 고수 앞에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놀랍다. 임수환과 다른 임씨 가문 사람들도 이 장면을 보고 놀라서 굳어버렸다. 방여는 전설급의 장병이었다. 하지만 그가 반항할 시간도 없이 죽었다니. 그럼 박인철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이때 임수환은 왜 김세자가 경기도의 일인자인지 알 것 같았다. 이런 고수가 곁에 있으니 일인자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 만약 임수환에게 이런 부하가 있었다면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의 세력은 리카 제국의 여러 구역을 뒤덮을 것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임수환의 사람들도 빠른 속도로 함락되고 있었다. 김예훈을 향해 돌진한 사람들은 10미터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다 쓰러졌다.시체가 계속해서 쏟아졌지만 김예훈의 10미터 반경 안에는 여전히 깨끗했다. 시체는 물론이고 핏자국도 없었다. 그러자 임수환의 사람들은 완전히 멘탈이 붕괴되었다.스무 명의 용의 부대 사람들 앞에서 그들은 무기를 들 용기도 없이 그저 도망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해룡 부대와 싸우고 있자 그제야 알았다. 그들이 진짜 고수를 만났다는 것을.해룡 부대의 군인들은 손에 아무
“실패다! 우리가 졌어!”“끝났어. 우리는 이제 끝장이야.”“어르신,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이 장면을 본 임씨 가문 방계들은 바로 절망에 빠졌다. 게다가 조직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부하가 죽어 나가는 모습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사면팔방에서 다가오는 해룡 부대의 군인을 보니 더욱 무서워졌다. 용의 부대는 20명 밖에 없었다. 해룡 부대도 500명 정도였다.고작 520명의 사람들이 만 오천 명을 해치우다니! 얼마나 강한 사람들인가! 임수환은 지금 절망에 빠져버렸다. 이때 무덤의 뒷산에서 갑자기 무장을 한 부대가 나타났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혼혈이었는데 얼굴이 임수환과 비슷하게 닮았다. 그는 바로 리카 제국 독사 부대에서 현재 지위가 가장 높은, 독사 부대 무신으로 불리는 임용국이었다. 임용국은 리카 제국 세자 후보자 중 하나였는데 그는 한국의 곳곳에 숨어서 리카 제국 독사 부대를 이끌고 한국의 일을 방해하고 다녔다. 이번에는 계획대로 무덤의 뒷산에 숨어있다가 임수환이 명령하면 등장하려고 했다. 하지만 임수환이 지고 있는 모습을 본 임용국은 참지 못하고 사람을 데리고 등장한 것이었다. 임수환은 갑자기 등장한 임용국에 놀랐지만 빠른 판단력으로 결단을 내리고 얘기했다. “용국아, 우리를 데리고 떠나라, 얼른! 날 데리고 떠난다면 앞으로 널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의 세자로 만들어 준다고 약속하마!”“드디어 메인 요리가 등장했네.”김예훈은 임용국이 나타난 것을 보고 흥미진진하다는 듯 웃었다.용의 부대를 데려오고, 해룡 부대를 데려온 이유가 고작 조직의 양아치들을 잡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몇 년간 한국에 숨어있는 리카 제국의 군대를 한 방에 잡는 것, 이게 바로 가장 큰 목표였다. 리카 제국 임씨 가문 덕분에 리카 제국이 한국에 심어놓은 군대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김예훈은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이때 아직 나서지 않은 김예훈이 앞으로 나와 임수환의 앞에 있는 임용국 옆에 섰다. 그리고 웃으
김예훈의 말을 들은 임용국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그런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예훈이 처음부터 그들을 끌어내려고 이런 수작을 부렸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임용국이 이를 갈면서 얘기했다.“김세자, 넌 나를 건드릴 수 없어! 네가 나를 건드린다면 리카 제국 국방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네가 한국 국방부를 대표해 리카 제국 국방부와 싸울 생각이냐?! 그게 아니라면 이 결과는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네가 원하지 않아도 넌 오늘 우리를 보내줘야 해!”김예훈은 그저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러더니 그가 담담하게 얘기했다. “재미있네. 내가 퇴역하고 나니 버러지 같은 게 와서 날 교육하려고 드네. 원경훈, 이리 와서 알려줘라. 내가 한국 국방부를 대표해서 싸울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그러자 해룡 부대의 사람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뒤에는 무장을 한 원경훈이 걸어 나왔다.원경훈이 등장한 순간, 임수환, 임용국 그리고 임씨 가문의 방계들과 독사 부대의 사람까지 모두 표정을 구겼다.원경훈이라니. 경기도 국방부의 일인자이자 총지휘관 원경훈이 아닌가!그가 김예훈 앞에서 부하처럼 행동하고 있었다.그럼 도대체 김예훈의 정체는 무엇인가!너무나도 놀라웠다.임수환을 포함한 사람들은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임용국은 독사 부대의 무신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 것에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독사 부대의 군인들도 무서운 인상을 하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변한 분위기를 느끼며 이상함을 감지했다.원경훈은 공손하게 김예훈을 향해 경례를 한 후 차가운 시선으로 임용국을 바라보며 얘기했다.“임용국, 지금 기회를 한번 주지. 독사 부대와 같이 투항하면 내가 경기도 국방부를 대표해서 너희를 살려주겠다. 하지만 전부 법정에 서서 심문을 받아야 한다. 리카 제국 국방부는 한국 국방부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를 말해야 할 거야!”“내가 투항하지 않으면?!”임용국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쾅.임용국의 무기도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총사령관?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니?!그는 한국을 대표해서 전쟁을 일으킬 자격이 충분했다!만약 이 일이 리카 제국 국방부에 알려지면 그 장관이 바로 임용국의 머리를 베어서 총사령관에게 사과의 의미로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임용국은 알고 있었다. 현재 그는 후회가 몰려왔다. 머리가 아파서 그대로 바보처럼 서 있었다. 임수환은 이미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져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총사령관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총사령관님이신 줄 몰랐어요! 알았다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도 한국에 오지 않았을 겁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쇼... 정말 죽고 싶지 않습니다.”김예훈은 임수환을 차갑게 내려보며 담담하게 얘기했다.“네가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한국인으로서 리카 제국 국적을 가지고 리카 제국의 개가 되었잖아! 일을 할 때도 리카 제국의 이익을 생각하고 한국은 생각도 하지 않았지. 오히려 적으로 생각하다니. 너희 리카 제국 임씨 가문은 나라를 배신하고 가족도 버렸으니 천륜을 버린 것과 같다. 그런데 내가 널 살려줄 것 같아?”임수환은 그대로 절망에 빠졌다. 분노와 복수심은 사라진 지 오래전이었다. 지금은 그저 공포심밖에 남지 않았다.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한국계 리카 제국인이라는 것이 실망스러웠다. 자기도 백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 때문에 그는 리카 제국 독사 부대에 들어서도 전쟁터에서 한국을 무찌르고 다녔다. 그렇게 신임을 얻어 리카 제국 국방부의 유일한 한국계 소장이 되었다. 임수환은 그가 이미 왕의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백인들도 그를 우러러보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와서 임재훈의 복수를 할 뿐만 아니라 리카 제국의 이익을 위해서 성남의 시장을 먼저 열어 한국 시장을 먹어 치우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비즈니스 업계부터 시작해 한국을 분해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