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이른 아침, 김예훈은 CY그룹에 도착했다. 그가 김세자의 운전기사라는 것이 드러나고 그는 회사에 자주 나타났다. 그래서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알 정도였다.하지만 그 중 핵심 임원들만 그가 전설속의 김세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다른 임원들과 직원들은 그저 그가 김세자의 운전기사인 줄 알고 있다.회사에 도착하자 많은 직원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김예훈을 훑어보았다. 평소에 그와 사이가 좋은 경호팀 팀장 이혁이 김예훈 앞으로 걸어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예훈 형, 혹시 누구한테 밉보였어요? 오늘 누가 이런 영상을 회사 직원들이 있는 채팅방에 올리던데.”말하면서 이혁은 걱정하는 표정으로 영상을 김예훈에게 보내주었다. 김예훈은 영상을 한번 보았다. 영상 속에는 데릴사위, 기생오라비 등 자극적인 단어들이 많이 등장했다. 영상은 김예훈이 했던 말을 편집했는데 당연히 악의적인 편집이었다.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영상만 보면 김예훈이 남의 등골을 빨아먹고 사는 기생오라비인 줄 알 것이다. 이혁처럼 중립을 지키는 이성적인 사람은 적었다.김예훈은 칭찬이라도 하듯 이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사람은 좀 괜찮으니 나중에 함께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하지만 이혁이 이성적으로 중립을 지킬 수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많은 직원들은 더럽다는 듯 경멸의 시선으로 김예훈을 보고 있었다.김세자를 보필하는 운전기사라는 것에 평소에도 부러움의 시선을 받던 그였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김예훈, 출근하러 나오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 네까짓 게 김세자의 운전기사야?”“매일 김세자의 이름으로 떵떵거리고 살더니 지금은 김세자와 우리 CY그룹의 망신을 줬잖아!”“그래, 우리 CY그룹은 경기도에서 가장 큰 기업인데 너 같은 쓰레기는 필요 없어.”부러워하는 사람, 질투하는 사람, 그저 시비를 걸고 싶었던 사람. 모두 김예훈을 손가락질하고 있었다....대표 사무실. 송준과 하은혜는 머리가 아팠다.김예훈의 신분은 비밀이기에 탄로나면 안
그런 일에 신경 쓸 새도 없이, 김예훈은 성남 컨벤션 센터에 도착했다. 때가 되면 투자회가 이곳에서 열릴 것이니 미리 현장에 와서 준비해야 했다.이곳의 직원들은 거의 다 성남시 기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중 몇 명은 김예훈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었다.김예훈이 시찰 나온 것을 본 그들은 하나같이 정신을 차렸다. “김예훈 고문님, 지금까지 국내외를 합쳐서 약 100개 정도의 기업과 재단이 투자회에 참가하겠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지금 더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건 참가자 명단 리스트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십쇼.”김예훈은 리스트를 대충 훑어보았다. 이번에 성남에서 투자하는 대부분이 기술 연구 프로젝트여서 기관에서 주는 보조금도 있었기에 재단과 기업뿐만이 아니라 국내외의 유명한 학자들도 동아줄을 잡아보기 위해 왔다.”“아, 그리고 김예훈 고문님. 부산대학교를 포함한 여러 대학교에서 책임자들을 보내 투자회 전에 이 몇 기술 연구 프로젝트에 관해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합니다. 내정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프로젝트가 외국의 손에 들어가면 우리 성남 기관의 통제를 받지 않으니까요.”현장의 책임자가 그에게 보고했다.“그래요. 국내 많은 대학교의 연구원들이 전념할 프로젝트가 없을 뿐이지 연구 실력은 뒤처지지 않으니까. 먼저 우리를 만나보겠다고 했으니 기회를 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고민하던 김예훈이 입을 열었다.이런 기술 연구 프로젝트는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기에 누구나 손에 넣고 싶어 한다. 하지만 김예훈은 내심 이런 프로젝트가 국내의 대학교 손에 들어갔으면 했다.한 편으로는 국내의 과학기술에 경쟁이 붙게 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의 연구원들이 해외로 나가지 않게 할 수 있었다.이런 일거양득의 일을, 김예훈은 막지 않았다. “그럼 부산대학교 쪽의 책임자는 누구입니까?”김예훈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물었다.자료를 훑어보던 현장 책임자가 얘기했다.“김예훈 고문님, 이 책임자는 생각보다 젊군요. 임윤서라고 하는 선생님입니다.
김예훈 이 쓰레기가 드디어 CY그룹에서 해고되었다.진짜로 해고되었다니. 임윤서는 그저 편집한 영상을 CY그룹 임원에게 보내 회사 내부 채팅방에 보내달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진짜로 소용 있을 줄은 몰랐다.지금 이 순간, 임윤서의 기분은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창밖은 먹구름이 가득했지만 그녀의 눈에는 환하고 밝은 날이었다.CY그룹 방향을 보던 임윤서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김예훈... 이건 그냥 시작일 뿐이야... 앞으로는 더 비참해질 테니까. 그때가 되면 돈을 벌 수도 없어서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거야. 하하하!”그 생각에 임윤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임윤서 선생님, 왜 그러세요?”“좋은 일이라도 있어요?”다른 학교의 대표들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몇몇 젊은 남자 대표들은 임윤서에게 호감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며 물었다.임윤서의 외모와 기품이 꽤 괜찮으니 이 남자들이 호감을 느끼는 것도 정상이었다.“좋은 일은 아니고, 그저 전에 절 좋아하던 남자가 있는데 제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내고 다녔거든요. 근데 오늘 드디어 처벌받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아서 기뻤어요!”눈치가 있는 임윤서는 당연히 곧이곧대로 얘기하지 않고 사실을 조금 날조해서 얘기했다.“그런 남자는 진짜 가서 죽어도 싸다니까요!”“임윤서 선생님, 이런 게 바로 좋은 일이죠. 축하 파티라도 열어야겠어요.”“그럼 오늘 일이 끝나고 같이 밥이나 먹을까요?”남자들이 기회를 틈타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그들의 말을 들은 임윤서는 기분이 좋아 웃으며 얘기했다.“그렇다면 모든 일이 끝나고 제가 밥을 살게요.”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남자 대표들은 서로를 경계하기도 했다.다들 임윤서의 뜻을 알아차렸다. 이건 바로 그들에게 공평하게 경쟁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그들이 얘기를 나누던 도중, 컨벤션 센터의 직원이 걸어 나왔다.“저희 이제 들어갈 수 있나요?”직원을 본 대표들은 다 일하는 마음으로 태
그 말을 들은 임윤서의 눈이 반짝였다. 숨길 수 없는 야릇한 표정이 드러났다. 이게 바로 부교장이 그녀에게 준 임무가 아닌가. 지위가 대단히 높은 고문을 그녀의 것으로 만드는 일. 투자회 현장에서 그를 보게 될 줄 알았는데 오늘에 기회가 있다니. 임윤서는 크게 심호흡하며 진정하려고 애썼다. 오늘 어떻게든 이 고문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만약 두 사람 사이에 그렇고 그런 일이 생긴다면 더욱 좋은 일이었다. 이제 20대인 사람이라니.젊고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이런 사람의 첩이라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어느새 사람들은 안의 응접실로 들어갔다. 다른 학교 대표들은 이렇게 지위가 높은 사람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 긴장 해하고 있었다.임윤서는 꽤 마인드 컨트롤을 잘했다. 들어오기 전에 이미 감정을 최대한 꾹 내리누르고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5분 정도가 지나가 응접실의 다른 문이 열렸다.멀리서부터 직원들이 한 남자를 둘러싸고 걸어왔다.이 남자는 캐주얼하게 입었는데 그런데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품이 있었다.임윤서는 눈이 번쩍 띄었다. 흐릿한 그림자뿐이지만 그녀는 저게 바로 말로만 듣던 김 고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은 저런 기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또 의문스럽기도 했다. 어딘가 익숙한 이 그림자를 보며 어디서 만난 적이 있나 골똘히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설렘과 긴장으로 내심 흥분한 상태였다. 남자의 그림자가 눈에 익숙하다는 것은, 어쩌면 클럽에서 관계를 가졌던 남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은가. 이미 관계까지 가졌던 사이이니 앞으로의 일도 쉽게 풀릴 것이었다.모든 대표들이 일어나 김 고문을 만나 뵈려고 하던 찰나였다.입구까지 걸어온 김 고문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현장의 책임자에게 몇 마디 하고는 돌아갔다.“어?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대표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분이 입구까지 왔다가 다시 몸을 돌려 돌아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이때 그 직원이 걸어와 현장의 대표들을 훑어보며 담담하
“다들 내일 다시 오죠. 김 고문님이 그저 장난을 치신 거일 수도 있잖아요.”임윤서는 뛰어난 임기응변 능력으로 분위기를 띄우려 애썼다. 그리고 모든 대표들과 내일 다 같이 오자고 약속하고 먼저 떠났다.임윤서는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분명 대표들 중 누군가가 그녀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내일은 혼자 와서 그 전설 중의 김 고문을 찾아뵐 것이다....성남 호텔에 돌아온 임연수는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냈다.프로젝트의 일 때문에 바삐 돌아다녀 김예훈의 일에 신경 쓰지 못했다.기분이 상한 그녀는 그녀를 재밌게 만들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나긋나긋한 말투로 통화를 몇 번 한 임윤서는 그제야 차갑게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예훈의 일이 성남 시민들의 채팅방과 매체들을 통해 하나둘 폭로되기 시작했다.김예훈이 기생오라비라는 것뿐만 아니라 김예훈이 어떻게 자기 아내인 정민아를 이용해 신분 상승의 꿈을 꿨는지, 정민아와 김세자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러한 내용들이 신속하게 퍼졌다.원래는 성남의 상류 사회 사람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던 유언비어였지만 임윤서가 열심히 소문을 나르는 덕분에 아예 사실이 되어버렸다.그러자 로열 가든 그룹도 이 일로 궁지에 몰렸다.많은 사람들이 로열 가든 그룹 불매 운동에 나서며 로열 가든 그룹의 집은 사면 안 된다고 했다. 심지어 이미 산 집을 환불해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하룻밤 사이에, 로열 가든 그룹은 이런 유언비어 때문에 손해가 엄청났다.정민아는 로열 가든 그룹의 자금을 빼내어 부산대학교에 교육 기금으로 지원하려고 했지만 지금 집을 환불해달라는 사람들 때문에 현금이 거의 바닥나 돈이 없었다.까딱 잘못하다가는 로열 가든 그룹이 파산할 수도 있었다.그저 작은 일이 이렇게까지 번질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프리미엄 가든. 정군은 휴대폰 속의 기사를 보며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자기가 벌인 일은 자기가 해결하겠다며. 김예훈이 이런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야?
정민아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쌓인 불만을 꾹 참고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임 선생님, 우리 집안에 기회를 한 번만 주세요. 저희가 부산대학교에 교육 기금을 지원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 점을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우리를 향한 공격을 멈춰주세요. 그리고 예훈이를 더는 힘들게 하지 말아주세요. 이번 일 때문에 겨우 찾은 직업까지 잃었으니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무서워요. 제발, 우리가 이렇게까지 비참해졌는데 자비를 베풀어서 용서해 주세요!”“비참해요?”임윤서가 웃음을 흘렸다.“김예훈 씨가 비참한 게 뭐 어때서요? 애초에 다른 사람 인생을 망칠 때는 그 사람이 얼마나 비참해질지 생각 못 했어요? 정 대표님, 인과응보가 무슨 뜻인지 아시죠? 복수가 얼마나 짜릿한데요. 그리고 정 대표님, 오지랖이긴 한데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면서 왜 김예훈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거예요? 이 지경까지 됐는데 얼른 차버리고 이혼하세요. 다른 사람들도 뭐라고 욕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당신네 가족은 오히려 저한테 고마워해야 해요!”정민아가 한숨을 내쉬었다.“임윤서 선생님, 어찌 되었든 김예훈은 제 남편입니다. 전의 일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제발 예훈이를 용서해 주세요. 어떤 조건이든 말해주시면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임윤서는 자세히 생각하다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그만두는 것도 안 될 건 없죠. 듣자 하니 CY그룹의 김세자랑 연이 있다고 했죠? 저랑 김세자를 만나게 해주면 김예훈의 일은 없었던 걸로 해줄 수 있어요. 더는 당신의 집안을 건드리지 않을게요. 어때요?”“네, 해보겠습니다!”정민아는 이제 더 물러설 곳도 없었다.전화를 끊은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하은혜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하 비서님, 정말 죄송한데... 부탁드릴 일이 있어요...”하은혜는 자초지종을 다 들은 후 얘기했다.“정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그 여자한테 CY그룹으로 오라고 해요. 우리가 처리하겠습니다.”정민아는 그 말을
“송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대학교의 임윤서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임윤서는 미소를 지으며 희고 고운 자신의 손을 내밀며 송준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송준은 손을 내밀지 않고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비서님, 이따위 여자가 온갖 수단을 써서 김세자를 만나려고 하는 거예요? 왜 이렇게 사리 분별을 못 해요? 몸을 온갖 늙은 남자들에게 갖다 바치는 년이 무슨 자격이 있어서 김세자 님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당장 꺼지라고 하세요!”송준은 말을 마치고는 손을 휙휙 저으며 임윤서보고 나가라고 했다.임윤서는 흠칫 놀라더니 믿을 수 없는 얼굴을 보였다.그녀는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해 오면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이 남자는 그녀의 얼굴에 홀리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그녀를 쓰레기 취급했다.하지만 특별히 놀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임윤서의 얼굴과 인맥으로는 진정한 상류사회를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상류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남몰래 갖고 놀거나 집으로 데려가겠지, 공식 석상에서 같이 다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상류사회에서 웃음거리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임윤서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는 얼굴과 몸매로 이익을 취득하려는 그 순간부터 이미 그녀가 바라고 바라던 상류사회로 들어설 수 없게 되었다.이때, 한참 멍을 때리고 있던 임윤서는 겨우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송 대표님, 비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제 이미 얘기가 된 거 아니었어요? 오늘 김세자를 만나게 해준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겨우 부대표직에 앉은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저를 쫓아내나요? 이것만은 기억해 주세요. 저는 정민아 씨의 소개를 받고 온 거예요. 오늘 김세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아마 월급쟁이인 두 분이 감당할 수 없는 결과가 일어날 거예요!”송준이 무자비하게 그녀를 내쫓았으니 임윤서도 더는 예의를 지킬 필요가 없었다.그 말을 들은 송준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는 임윤서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코웃음을 치고는
김예훈은 리스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한국의 10대 명문가 중에서 서열 7위의 금릉 권씨 가문, 서열 9위의 부산 견씨 가문, 서열 10위의 서울 하씨 가문, 세 개의 가문이 리스트에 올랐다.그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의 대기업도 많이 와 있었다.그리고 라벤더 재단을 비롯한 해외 세력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상업 비자를 들고 왔기 때문에 제출한 서류를 보면 아마 진지하게 사업을 할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김예훈은 한참 살펴보더니 결국 그 세력들의 명단을 취소하지 않았다.어쨌든 성남시에 투자하러 온다면 그는 환영할 것이니 말이다.물론 그 세력들이 성남시를 어지럽히러 왔다면 김예훈은 손쉽게 그들을 박살 낼 수 있었다.김예훈이 잠깐 쉬는 사이, 어떤 직원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물었다.“고문님, 부산대학교의 대표가 오셨습니다. 고문님을 만나 연구개발 사업에 관해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김예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대표 이름이 임윤서 맞죠?”“어, 고문님 어떻게 아셨어요?”이 직원은 방금 임윤서의 전화번호를 추가했고, 또 그녀에게 호감이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섰다. 김예훈의 승낙을 받으면 임윤서에게 뭘 더 요구할 생각이었다.하지만 김예훈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않았기 때문에 직원은 조바심이 났다.이때, 또 다른 직원이 달려오더니 말했다.“고문님, 성남대학교의 대표도 오셨는데 연구개발 사업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답니다. 그리고 경기대학교의 대표도 도착했습니다.”분명 사람들은 어제 문전박대를 겪은 후 이를 경험으로 오늘 직접 올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겹쳤고, 오늘 모두 김예훈을 찾아왔다.김예훈은 잠깐 고민에 빠지더니 말했다.“경기대학교랑 성남대학교의 실력은 잘 알고 있어요. 두 학교의 대표들에게 전하세요, 절차대로 하면 된다고요. 능력이 되는 범위 내에서 분명 그들을 우선시할 거예요. 그리고 부산대학교의 대표인 임윤서는 그냥 기다리라고 하세요.”...곧이어 스태프는 김예훈의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