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은 리스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한국의 10대 명문가 중에서 서열 7위의 금릉 권씨 가문, 서열 9위의 부산 견씨 가문, 서열 10위의 서울 하씨 가문, 세 개의 가문이 리스트에 올랐다.그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의 대기업도 많이 와 있었다.그리고 라벤더 재단을 비롯한 해외 세력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상업 비자를 들고 왔기 때문에 제출한 서류를 보면 아마 진지하게 사업을 할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김예훈은 한참 살펴보더니 결국 그 세력들의 명단을 취소하지 않았다.어쨌든 성남시에 투자하러 온다면 그는 환영할 것이니 말이다.물론 그 세력들이 성남시를 어지럽히러 왔다면 김예훈은 손쉽게 그들을 박살 낼 수 있었다.김예훈이 잠깐 쉬는 사이, 어떤 직원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물었다.“고문님, 부산대학교의 대표가 오셨습니다. 고문님을 만나 연구개발 사업에 관해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김예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대표 이름이 임윤서 맞죠?”“어, 고문님 어떻게 아셨어요?”이 직원은 방금 임윤서의 전화번호를 추가했고, 또 그녀에게 호감이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섰다. 김예훈의 승낙을 받으면 임윤서에게 뭘 더 요구할 생각이었다.하지만 김예훈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않았기 때문에 직원은 조바심이 났다.이때, 또 다른 직원이 달려오더니 말했다.“고문님, 성남대학교의 대표도 오셨는데 연구개발 사업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답니다. 그리고 경기대학교의 대표도 도착했습니다.”분명 사람들은 어제 문전박대를 겪은 후 이를 경험으로 오늘 직접 올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겹쳤고, 오늘 모두 김예훈을 찾아왔다.김예훈은 잠깐 고민에 빠지더니 말했다.“경기대학교랑 성남대학교의 실력은 잘 알고 있어요. 두 학교의 대표들에게 전하세요, 절차대로 하면 된다고요. 능력이 되는 범위 내에서 분명 그들을 우선시할 거예요. 그리고 부산대학교의 대표인 임윤서는 그냥 기다리라고 하세요.”...곧이어 스태프는 김예훈의
성남대호텔에서.임윤서는 평소에 그녀에게 구애하던 남자를 전부 불러 모았다.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어떻게 내일 미리 연구 개발 사업을 쟁취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어쨌든 고문은 그녀에게 먼지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임윤서는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윤서야, 정말 대단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리 고문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데,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잖아! 고문님이 윤서를 따로 만나주는 걸 허락했다니!”“혹시 고문님이 윤서가 마음에 든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윤서를 잘 보호해야 할 텐데 말이야!”누군가가 임윤서를 탐내려고 한다면 그들은 당장이라도 상대를 때려죽일 생각이었다.그들의 말을 들은 임윤서는 어깨가 으쓱했다.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참, 그런 말을 왜 하는 거예요? 고문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데 저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겠어요? 아마 우리 부산대학교의 교육 자본과 연구 자본이 만족스러웠던 건 아닐까요?”임윤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두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바라봤다.그들의 눈에 임윤서는 예쁘장한 얼굴에 마음이 너그러울 뿐만 아니라 능력도 좋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종종 현실로 만드는 대단한 사람이었다.임윤서는 겉으로 겸손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기뻤다.만약 이번에 성공적으로 연구개발 사업을 얻어낸다면 그녀는 입학본부 주임 교수로 될 것이다! 심지어 기세를 몰아 학교의 유일한 여자 부교장으로 될 수도 있었다!그 생각에 임윤서는 입꼬리가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부산대학교의 고위층에서는 성남시 기관의 고문이 미리 임윤서를 만나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교장 이정훈은 직접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윤서야, 이번에 네가 정말 잘해야 해. 연구개발 사업을 따내기만 한다면 네가 승진할 수 있도록 밀어줄 수 있어! 아무도 널 막지 못할 거야!”자기를 예뻐하는 그의 말을 듣고서 임윤서는 흥분에 겨웠다.이정훈이 말을 이어갔다.“윤서야, 그 고문님 아직 싱글
“참, 윤서야. 너한테 전할 좋은 소식이 또 하나 있어! 로열 가든 그룹에서 김예훈의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환불을 요구하고 있대. 현금도 많이 부족한 모양이야! 로열 가든 그룹의 고위층에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래. 정민아가 김예훈을 회사에서 내쫓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만약 김예훈과 로열 가든 그룹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파업할 거래! 어쩌면 로열 가든 그룹은 데릴사위 때문에 파산한 최초의 회사가 되는 거 아니야?”이때, 임윤서에게 잘 보이려는 다른 남자가 소식을 전했다.“그럼 겹경사네요!”임윤서는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번 성남행이 헛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우선, 성남시 기관의 고문을 알 수 있고, 또 잘하면 명문 가문에 시집갈 수 있다.게다가 김예훈을 제대로 혼냈으니 그가 자괴감에 자살이라도 한다면 임윤서는 더 기쁠 것이다.“김예훈, 이번에 제대로 알려주겠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리면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손쉽게 널 궁지에 몰아넣을 수가 있거든!”임윤서의 눈에는 살기가 어렸다.“윤서야, 손가락만 까딱해도 그런 놈은 쉽게 죽일 수 있지. 널 건드릴 생각을 했다니, 죽으려고 작정했나?”어떤 사람이 임윤서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를 떨며 말했다.바로 이때, 임윤서의 전화가 울렸다.휴대폰에 뜬 이름을 보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서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피해달라고 부탁했다.방에 아무도 없을 때까지 기다리고서야 임윤서는 전화를 받고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견후 도련님, 저 보고 싶었어요?”임윤서가 부산에 있을 때, 부산 견씨 가문의 견후와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하지만 견후 같은 사람은 임윤서 같이 흘리고 다니는 여자에게 진심을 다할 리는 없다.몇 번 갖고 놀다가 돈을 뿌려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견후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왔으니 임윤서는 마음이 설렜다.부산 견씨 가문은 뭘 의미하는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전화기 너머로 견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날.성남시 컨벤션 센터에서 사람들은 투자 유치를 위해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지금 참가 신청을 한 국내외 기업은 이미 천 개를 넘어섰다.이건 한국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 유치 대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아침 일찍, 임윤서는 동료들과 함께 컨벤션 센터에 도착했다.“윤서야, 나는 이미 성남에 도착했어. 조금 있다가 교육 계통의 일인자 주현강이랑 고문님 만나러 갈 테니까 오늘 기회 제대로 잡아야 해. 고문님의 마음을 얻는 건 물론, 연구개발 사업도 따내야 한다고!”부산대학교의 부교장인 이정훈이 특별히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꼭 잘 해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넘어오지 않을 남자는 없거든요!”정교한 화장을 한 임윤서는 기분이 좋았다. 얼굴과 몸매라면 그녀는 항상 자신 있었다.그녀에게 구애하던 사람들도 하나같이 두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바라봤다.“은서야, 너 정말 대단하네. 도대체 어떻게 해낸 거야?”“그러게, 고문님은 성깔 있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아무도 고문님에게 다가갈 수 없다고 했어.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도 없고!”“참, 고문님이 아직 미혼이라고 들었는데, 설마 윤서 누나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요?”그 말을 들은 임윤서는 의기양양했지만 겉으로는 겸손한 척 티를 내지 않았다. 오로지 조용히 기다리면서 기대하고 있었다....같은 시각, 컨벤션 센터의 백그라운드에서.회의장 배치를 지켜보고 있던 김예훈의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성남시 교육 계통의 일인자인 주현강이었다.주현강이 공손하게 말했다.“고문님, 부산대학교 부교장이신 이정훈 교수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고문님을 만나 뵙고 보고드릴 일이 있다고 하십니다.”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부산대학교요? 들어오라고 하세요.”잠시 후, 대머리에 살찐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 들어왔다.김예훈을 보더니 그는 두 눈을 반짝이며 한걸음에 달려오면서 허리를 숙였다.“이분이 바로 고문님이시겠군요. 저는 부산대학교의 부교장인 이정훈이라고 합니다. 학교의
그들이 모든 힘을 다해 먹칠하고 있던 김예훈이 아니던가?성남시 기생오라비란 별명도 그들이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그들은 김예훈이 모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 몸을 벌벌 떤 채 어느 구석에 숨어있으면서, 성남시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줄 알았다.하지만 지금 김예훈이 컨벤션 센터에 있을 줄이야? 그것도 모자라 부교장 이정훈이랑 같이 서 있을 줄이야!임윤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저도 모르게 화를 버럭 냈다.“김예훈, 이 병신 같은 놈, 여기는 왜 온 거야? 여기가 너 같은 쓰레기가 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그녀가 말을 마치자 장내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주위의 직원들은 고개를 들더니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임윤서를 바라봤다. 마치 그녀가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처럼 말이다.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임윤서는 등골이 오싹했다.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이때, 옆에 있던 직원이 빠르게 걸어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임윤서 씨,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저분은 우리가 모셔야 할 윗분이에요. 그런 분한테 지금 욕설을 퍼부은 거야? 당신 이렇게 무례하게 굴 거야?”“윗분이요?”“그럴 리가요? 저 사람이 바로 성남시 기생오라비 김예훈이잖아요!”“맞아요, 저 사람이 등골을 빼먹은 일은 성남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어요!”“저런 사람은 성남시에서 내쫓아야 해요! 어떻게 아직도 여기에 있을 수가 있죠?”임윤서와 그녀를 감싼 남자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잠시 후, 그들은 모두 입을 크게 벌렸다.“짝!”주현강은 임윤서와 모르는 사이였다.누군가가 김예훈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으니 그는 임윤서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임윤서는 놀란 마음에 가만히 서 있으면서 아무 말도 못 했다.주현강은 귀싸대기를 때린 후 분노의 얼굴로 임윤서를 노려보며 말했다.“너 뭐야? 네가 뭐라고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는 거야? 지금 여기가 어떤 자리인 줄 알아?”말을 마친 주현강은 또 이정훈을 째려보며 말했다.“이정훈,
임윤서는 걷어차여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정신을 차기고는 비참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그만 때려요. 아프니까 그만 때려요!”오빠라는 호칭을 들은 이정훈은 소름이 끼쳐 임윤서의 목을 조르면서 그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구 귀싸대기를 때리기 시작했다.“누가 네 오빠야? 응? 누가 네년의 오빠냐고? 함부로 입을 놀리면 여기서 널 때려죽일 거야!”이정훈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이때 임윤서와 얽히게 된다면 그의 인생은 끝장날 것을.그는 한참 후에야 멈추게 되었다.희고 부드럽던 임윤서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찾아볼 수 없었다.지금의 그녀는 힘없이 바닥에 누워 경련하기 시작했다. 눈가에는 피범벅이 되었다.김예훈에게 이런 신분이 있을지 그녀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면 김예훈을 건드리기는커녕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썼을 것이니 말이다.하지만 김예훈은 전혀 이정훈과 임윤서를 봐줄 생각이 없어 차갑게 말했다.“참, 임윤서 씨가 곧 승진한다고 들었는데요? 그걸 도와준 사람이 오빠인 당신 아니에요?”김예훈은 일부러 ‘오빠’ 두 글자를 강조하며 말했다.바닥에 누워있던 임윤서는 그 말을 듣더니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김예훈은 자기를 완전히 짓밟아 죽이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이정훈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극구 부인했다.“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이제 이 미친년은 우리 부산대학교에서 해고되었습니다! 그리고 임윤서가 그동안 한 일을 모두 정리해서 발표할 것이고, 다시는 이 바닥에 들어설 수 없도록 만들겠습니다.”김예훈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임윤서 앞으로 다가가고는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교사라는 사람이 남의 모범이 되어야지... 하지만 임윤서 씨는 선생님으로서 사람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는커녕 매일 얼굴과 몸매로 늙은 남자들을 꼬셔 이익을 얻을 생각이나 하고... 이정훈 씨, 임윤서 씨랑 사적으로도 친한 관계죠?”김예훈이 덤덤하게 말을 내뱉었지만 이정훈은 심장이 철렁 내려
김예훈이 명령까지 내렸으니 이 일은 이변 없이 그의 뜻대로 진행될 것이다.곧이어 부산대학교에서는 긴급 통보를 내고는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렇게 김예훈과 정민아는 드디어 결백을 증명할 수 있었다.같은 시각, 임윤서는 몸을 바쳐 부산대학교의 부교장, 소위 ‘오빠’라는 사람과 불륜을 저지른 사실도 밝혀졌다.임윤서는 부산대학교에서 잘리게 되었고, 이정훈도 마찬가지이다.두 사람은 학교 앞에서 크게 싸워 모두 다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의 명성은 이미 바닥을 쳤기 때문에 그들을 병원에 데려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바닥에 누워있었는데, 아무도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결국 초라한 모습으로 스스로 일어서더니 몸을 휘청거리며 치료받으러 병원으로 향했다.그렇게 이정훈과 임윤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소문에 의하면 두 사람 모두 처참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투자 유치 대회 준비가 한창일 때, 많은 외지의 가족, 그룹, 기업 대표들이 미리 성남시에 도착했다.그들이 성남시로 온 목적은 아주 간단했다. 한편으로는 성남시의 시장을 알아보려고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회사의 이익을 고려해 적절한 광고 모델이나 사업 파트너를 구하려고 했다.성남시에서 이름 있는 대기업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CY그룹은 그중 하나였는데 김세자 때문에 함부로 그들에게 손을 댈 사람은 없었다.그리고 선우 가문과 로열 가든 그룹이 있었는데 선우 가문은 선우건이가 굳건히 지키고 있기 때문에 모두들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하지만 로열 가든 그룹의 처지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김예훈의 일은 잠잠해졌지만 요 며칠 사이 로열 가든 그룹의 명성은 크게 영향받았고, 시가도 많이 떨어져 현금 부족의 난감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정민아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었지만, 이는 일부 외부 기업에는 절호의 기회였다.곧이어 많은 외부 기업에서는 로열 가든 그룹과 비즈니스 협력을 맺으려고 초청장을 보내왔다.외부 기업들의 저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정민아는 초청장을 모두
성남대호텔에서.부산의 몇몇 대기업 대표들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그중 앞장선 인물은 강종신이었다.그는 술상 앞에 서서 휴대폰을 향해 허리를 굽신거렸다.“견후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도련님께서 분부하신 일은 잘 기억해 뒀습니다! 오늘 밤 동영상을 제대로 찍어드릴 테니 그 여자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입니다!”강종신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들은 모두 부산의 기업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지분은 거의 모두 부산 견씨 가문에서 가지고 있었다.어젯밤 견후는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강종신 쪽 사람들은 당연히 그의 말을 따르기 마련이다.강종신이 전화를 끊은 후 다른 회사 대표들과 요구르트를 마시기 시작했다. 숙취 해소용이라 효과가 아주 아주 좋았다.반 시간 후, 로열 가든 그룹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강종신은 맨 앞에 서 있었는데 정민아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을 보고는 경계심을 높였다.“정 대표님, 이게 무슨 경우죠? 정 대표님이랑 서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지 얘기를 나눠보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려온 거예요? 우리가 계약서에 사인하도록 협박할 셈인가요?”한 로열 가든 그룹의 남자 임원이 설명했다.“대표님들,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 정 대표님께서는 술을 워낙 못하셔서요. 저희를 부르신 건 여러분들을 잘 대접하기 위해서예요. 기분이 나쁘셨다면 저희 로열 가든 그룹에서 사과하겠습니다.”강종신 쪽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다.정민아 쪽의 핑계가 완벽했기 때문이다.만약 그들은 지금 다른 남자들을 모두 따돌리려 한다면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일 것이다.그렇게 생각한 강종신은 웃으며 말했다.“그러시군요, 정 대표님의 성의가 대단하시네요. 하지만 저희는 정 대표님과 같이 술을 한잔하고 싶은데, 저희가 정 대표님과 같이 술을 한잔하는 영광을 누려도 되겠습니까?”“별말씀을요, 자리에 앉으시죠.”곧이어 쌍방은 자리에 앉아 간단히 자기소개를 시작했다.그리고 강종신은 미리 준비해 둔 협력 계약서를 내밀었다.협력 계약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