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 그룹.막 업무를 끝낸 하은혜가 기지개를 켜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휴대전화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마자 하은혜는 의아해했다.조금 지난 후 하은혜는 전화를 끊고 사람을 시켜 차를 한 대 준비시키고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하은혜 혼자 탄 차가 성남 국제공항에 재빨리 도착했다.두 시간 정도가 지난 후 양복을 입고 가죽 구두를 신은 남성이 VIP 통로에서 나와 하은혜의 차에 올라탔다.그를 본 후 하은혜는 의아해했지만 빠르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나윤석 씨,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리카 제국에서 사업하던 것 아니었나요? 갑자기 왜 귀국한 건가요?”나윤석은 웃으며 하은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하은혜는 피했다.이 모습을 본 나윤석은 강제로 쓰다듬으려 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리카 제국 좋지. 하지만 어찌 됐든 난 하씨 가문 사람이야. 그리고 요 몇 년 리카 제국에서 연애도 안 하고 혼자서 너무 외로웠어. 그래서 귀국하고 싶어 온 거야. 또 혹시 몰라? 은혜, 네가 나한테 돌아오고 싶어 할지?”하은혜는 표정이 일그러지며 말했다.“나윤석 씨, 제가 지금 당신을 보러 온 것은 친구로 생각하기 때문에 온 거예요.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런 일을 얘기하면 전 더 이상 나윤석 씨를 만날 수 없어요.”나윤석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하은혜, 당시에 나 엄청나게 쫓아다녔잖아. 그때 내가 출국하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이미 하나였을 거야. 지금 너한테 기회를 주잖아. 잡아야 하지 않겠어?”하은혜는 차갑게 말했다.“필요 없네요! 제 마음속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있어요! 이번에 나윤석 씨를 만나러 온 것은 앞으로 저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이 말 하러 온 거예요!”말이 끝나자, 하은혜는 두 손을 모아 제발 그렇게 해달라는 모습을 보였다.나윤석은 잘생기고 능력이 좋은 하은혜 대학교 선배이다.하은혜가 대학교에 다닐 때 나윤석을 쫓아다닌 적이 있다.그러나 나윤석은 하은혜의 진짜 정체를 모르고 거절한 후 재벌 2세와 함께 리카 제국에 사업을 하
하은혜가 화내며 말했다.“나윤석 씨, 이 사진이 퍼지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시는 건가요? 총사령관님은 우리 한국의 수호신이에요! 그분의 정체는 일급비밀이고 만약 외국 조직들이 그분의 정체를 알게 돼 사람을 시켜 죽이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나윤석 씨도 한국의 국민이면서 어떻게 이런 걸 가지고 저를 협박하려 하세요?”“협박한다고? 하은혜 말이 너무 심하네. 만약 내가 이 사진을 리카 제국에 팔아넘기면 그들이 얼마를 줄지 알고서 그러는 거야?”나윤석은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두 개를 피고 말했다.“최소 2백억 리카 제국 달러야!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하지 않고 하은혜, 너를 찾아온 것 자체가 내가 아직 국가의 정이 남아 있다는 뜻 아니겠어? 우리 두 사람 모두 오래 알던 사이니까 나도 더 이상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만약 이 요구를 승낙하면 이 사진 필름을 너한테 넘긴다고 약속할게.”하은혜는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하은혜가 보기에 나윤석은 정말 염치가 없었다.하은혜는 차갑게 말했다.“요구가 뭔데요. 얼마를 원하데요?”나윤석은 웃으며 말했다.“하은혜, 어찌 됐든 내 여자 사람 친구인데 내가 돈에는 관심 없는 걸 아직도 모르겠어?”순간 나윤석은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나윤석은 돈이 없지 않다. 최소한 지금은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김병욱이 나윤석을 불러 이 일을 하는 대가로 이미 20억을 줬다.일만 성공 하면 CY 그룹 49%의 지분도 나윤석 손으로 간다. 이렇게 벼락부자가 될 수 있게 한 조건 때문에 나윤석이 마음을 먹은 것이다.나윤석이 바로 김병욱이 성남시에 와서 준비해 뒀다는 그 방법이다.이 사진도 김병욱이 나윤석에게 준 사진이다.이 사진을 나윤석에게 줄 때 김병운은 이 사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윤석에게 알려주지 않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당부해 줬을 뿐이다. 그러나 나윤석 같은 사람은 이 사진의 의미가 뭔지 지금 알았더라도 나윤석의 본성으로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나윤석 같은 사람은
이 말을 들은 하은혜는 깜짝 놀랐다.나윤석이 하는 말은 인수가 아니다.나윤석은 그냥 CY 그룹을 조건 없이 넘기라는 의미이다!“나윤석 씨, 미쳤어요? CY 그룹의 시가총액이 얼마인지 알고 그러세요? 20조는 훨씬 넘어요! 그런데 껌값으로 인수하겠다고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하은혜는 정신을 차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윤석은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CY 그룹을 원하는 거지 뭘 무슨 생각을 해. 그리고 나는 빈손으로 남의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껌값이라도 주는 거잖아. 하은혜, 싫어도 어쩔 수 없어! 물론 내 요구를 거절해도 돼.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것만은 확실해. 내일 이 시간에 리카 제국, 미르 제국, 일본, 미국, 중국, 이 오대 강국의 군대에서 모두 이 사진을 받게 될 거야. 그때 돼서 그들이 하는 행동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어.”이 말을 들은 하은혜의 얼굴은 창백해졌다.하은혜는 10대 명문 가문의 사람이라 김예훈의 국제적인 영향력과 억지력이 얼마나 되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일단 김예훈의 진짜 정체가 노출된다면 결과는 재앙과도 같을 것이다.이때 창백해진 얼굴을 한 하은혜가 입을 열었다.“나 선배님, 조건을 바꾸면 안 될까요? CY 그룹을 매각하는 일은 정말 할 수가 없어요! 제가 절대로 선배가 손해 보게 하지 않을게요. 예를 들면 제가 개인적으로 2천억 원을 드리는 건 어때요?”하은혜의 말을 듣고 웃음이 터진 나윤석은 차갑게 말했다.“하은혜, CY 그룹 말고 2천억에 내가 만족할 것 같아? CY 그룹의 1%도 안 되는 돈으로? 지금 푼돈 던져주고 뭐 하자는 거야? 내가 똑똑히 말해주겠는데 내가 이미 다 알아봤어. 넌 쥐도 새도 모르게 지분을 나한테 넘길 방법을 알고 있잖아!”“나윤석 씨...”나윤석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것이 확실해지자 하은혜는 얼굴이 일그러졌다.중요한 것은 지금 김예훈의 공용 인감과 사용 인감을 다 하은혜가 들고 있다.김예훈을 배신하고 지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일은 하은혜한테
재빠르게 차에 올라탄 나윤석은 성남 국제공항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굽신대며 말했다.“만태 도련님, 모든 일을 병욱 도련님의 지시대로 수행했습니다! 계획대로 3일 안에 하은혜 이 계집애가 반드시 CY 그룹을 제 이름으로 넘겨놓을 것입니다.”김만태는 담담하게 말했다.“잘했네. 일이 잘 끝나면 CY 그룹 지분에 네 것 남겨 놓고 거기에 너를 대표로 만들어 줄게. 우리 김씨 가문은 그냥 뒤에 있을 거야. 나 대표, 잘 처리하자. 앞으로 경기도의 최대 거물이나 다름이 없어.”나윤석은 흥분해서 말했다.“만태 도련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 나윤석은 반드시 어떤 위험도 감수하겠습니다!”사실 나윤석 마음에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계획대로 해 모든 지분을 얻은 뒤에 51%를 김만태에게 넘기고 나머지 49%는 자기가 가지려고 했다.그러나 오늘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는 것을 보고 나윤석은 혼자 다 꿀꺽하려고 마음을 바꿨다.‘총사령관이든 김씨 사걸이든 다 필요 없어! 지분을 손에 얻고 하은혜 이 계집애랑 잠자리하면 경기도 최대 거물은 바로 나야! 누가 감히 내 눈 밖에 나려 하겠어.’나윤석은 멍청하지 않다. 이미 여러 방법을 통해 하은혜의 정체를 알아냈다.경기도 일인자 하정민의 손녀다!나윤석은 그냥 한 번만 자고 증거를 남기면 하정민이 남편으로 인정 안 해도 상관이 없다.돈만 손에 넣고 하씨 가문이라는 뒷배도 생기면 나윤석은 자기가 최고로 지위가 높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김만태 앞에서 머리 숙여 공손하게 있지만 입꼬리는 이미 올라가 있었다.김만태는 그의 그림자를 보고 소리 없이 웃었다.한편.하은혜의 얼굴은 시퍼레졌다.하은혜는 김예훈의 최대 비밀이 나윤석같이 염치없는 놈 손에 쥐어질 줄은 생각도 못 했다.하은혜는 김예훈의 안전이 자기 목숨보다도 중요했다.어떻게 해서라도 김예훈을 보호해 이 비밀이 노출되지 않게 하고 싶었다.“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로 대표님을 배신해서 지분을 그 염치없는 멍청이한테 넘겨야 하는 건가? 아니면 대표님께 이 일을
모든 직원은 하은혜의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심지어 송준도 이를 눈치챘다.송준은 친히 김예훈한테 전화를 걸었다.“혹시 진주 이씨 가문과 강제 혼인 일 때문인가?”김예훈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이 일은 김예훈이 이미 진주 이씨 가문에 경고했었다.그러나 진주 이씨 가문은 아직 답을 하지 않은 상황이다.“하. 진주 이씨 가문이 경기도에 뻗는 힘들을 다 잘라버려야겠어.”김예훈이 중얼거리며 말했다.그러나 이 일은 급하지 않기 때문에 교대의식 후에 한 번에 해결해도 된다.한편.성남시 해변의 한 럭셔리 요트에서는 수영복을 입은 나윤석이 선실에서 양옆에 여자를 끼고 있었다.이번 귀국으로 나윤석이 승승장구해서 경기도 최대 거물이 될 가능성이 있어 나윤석은 마음이 들떴다.“윤석아, 이번에 정말 성공했네”나윤석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손희다. 손희는 범법을 저지른 형사로 형사직에서 잘린 이후 혼자 보안 회사를 운영한다. 이 회사가 성남 무법 지대에서 장사가 잘 돼 자기 밑으로 수백 명의 경호원들이 있다.나윤석은 이전부터 손희와 관계가 좋았다. 그래서 이번에 큰일을 준비하기 때문에 당연히 실력 있는 보스들을 구해 자기를 보호하고자 한다.이번에 나윤석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 않고 바로 캐리어를 하나 꺼냈다. 안에는 몇억 정도 되는 수표가 빼곡히 있었다.이를 보고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나는 손희가 재빨리 말했다.“나... 나윤석 형님! 이게 다 무슨 돈이야?”손희는 ‘돈 많으면 다 형이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돈을 보자 윤석이는 나윤석 형님이 됐다.“손희, 이 푼돈이 뭐라고. 이걸로 식구들 용돈이나 해! 앞으로 나랑 같이 사업해서 우리 식구들 다 돈방석에 앉자!”나윤석은 어떻게 보면 머리가 잘 돌아가기 때문에 작은 것들을 아껴서는 큰 걸 못 얻는 이치를 너무 잘 알고 있다.나윤석이 CY 그룹의 지분을 혼자 다 차지하려면 밑에 반드시 힘 있고 실력 있는 경호원들이 필요했다.그래서 오늘 피 같은 이 돈들을 꺼낸 것
나윤석과 다른 사람들을 럭셔리 요트에서 오후 내내 놀다가 나윤석의 계획에 따라 모두 바르게 자기가 맡은 일을 준비하러 갔다.나윤석은 차 한 대를 혼자 준비해서 CY 그룹 회사 밑으로 가 전화를 걸었다.“하은혜, 퇴근 시간 다 됐는데 내 요구 생각해봤어?”나윤석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저... 오늘 밤에 W 호텔로 나윤석 씨를 찾으러 갈게요.”하은혜는 한참을 고민한 후 결심을 내렸다.사무실에서 하은혜는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뾰족한 커터칼이 들어 있었다.하은혜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커터 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자기 가방 안에 넣고 어두운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섰다.이 모습을 본 모든 직원은 이상해했다.‘하 비서는 워커홀릭인데 오늘은 무슨 일로 일찍 퇴근하는 거지?’회사 밑에 도착한 나윤석이 환하게 웃으며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 보고 하은혜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러졌다.하지만 하은혜는 숨을 들이마신 후 차에 올라탔다.인포메이션의 여성 직원이 이를 보고 빠르게 소문을 퍼뜨렸다.“너무 이상해! 하 비서는 항상 자기가 운전하는데 오늘은 어떤 남자 차의 조수석에 앉았다니까! 그리고 표정은 얼마나 일그러졌는데. 연인 같지 않고 오히려 협박당하는 것 같았다니까! 누가 괴롭히는 건 아니겠지?”이 소식이 송준 귀에까지 빠르게 퍼지자, 송준은 곧바로 김예훈에게 보고했다.“하은혜한테 정말로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표정이 변한 김예훈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그 차가 어디로 갔는지 빨리 확인해 봐. 내가 가서 처리할게.”“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미 사람을 시켜서 찾고 있습니다.”...한편.나윤석은 이미 W 호텔 입구에 도착한 후 하은혜를 내려주며 차갑게 말했다.“먼저 로열 스위트룸에 가 있어. 깨끗이 씻고 있는 거 잊지 말고, 난 주차하고 바로 올라갈게.”하은혜는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숨만 쉬며 차 문을 열고 나왔다.하은혜의 잘빠진 몸매와 절망한 표정을 본 나윤석은
하은혜의 표정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녀는 어린아이가 아니었기에 이 사람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이때, 손희가 두 손을 비비면서 하은혜를 보며 씩 웃었다.“예쁜 동생, 무서워하지 마. 하하! 우리가 아주 소중하게 잘 다뤄줄게! 절대 무서워할 필요 없어!”모여 있던 양아치들은 옹졸하고 더러운 표정으로 하은혜를 쳐다보았고 하은혜는 나윤석을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나윤석 씨, 당신은 사람도 아니에요! 전 당신의 모든 요구를 거절할 거예요! 그냥 다 같이 죽어요!”분노에 가득 찬 하은혜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손희 등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 출구를 막은 뒤, 문을 잠가버렸고 하은혜에게 도망갈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예쁜 동생, 벌써 가려고? 오빠는 동생과 단지 대화를 좀 나누고 싶은 거야. 절대 나쁜 일을 하려는 게 아니야!”손희 일행은 나윤석의 지시가 내려지기만 기다렸고 바로 이때, 나윤석이 실실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하은혜, 다들 호의로 이러는 거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들어.”“좋은 말로 할 때 들으라고요? 나윤석 씨, 대체 뭐 하려는 거예요? 당신이 날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CY 그룹을 얻으려고 그런 거 아닌가요?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그저 날 모욕하고 싶었을 뿐, CY 그룹에는 이제 전혀 관심이 없는 건가요?”하은혜는 어쩔 수 없이 CY 그룹을 방패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고 이 말을 들은 나윤석의 얼굴이 순간 굳어버렸다. 그는 당연히 CY 그룹에 관심이 있었으며 CY 그룹만이 그를 상류층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희망이었다.“하은혜, 난 당연히 CY 그룹에 관심이 있지. 하지만 오늘 밤 네가 이곳에 온 이유도 며칠만 시간을 더 벌기 위해서 아닌가? 내 요구는 간단해. 오늘 밤 내 부하들과 잘 놀아주면 내가 삼 일의 시간을 더 줄게! 안 그러면 그 사람의 사진을 5대 강국 군대 이메일에 쫙 뿌릴 거야!”나윤석이 하은혜를 무자비하게 협박했고 그 말에 하은혜가 욕설을 퍼부었다.“나윤석 당신! 당신은 인간도 아
“악!”침대에 버려진 하은혜는 너무 아파서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흘렀으며 마음속에 절망이 가득 찼다. 그녀는 나윤석이 이 정도로 양아치인 줄은 상상도 못 했으며 이런 끔찍할 짓을 저지를 줄은 더욱 몰랐다.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된 하은혜는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며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수모를 당하고 싶지 않았다.나윤석은 이내 자기 옷을 벗어 던졌고 침대로 덮치려던 그때, 쾅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혔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깜짝 놀란 나윤석과 손희 등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자 차갑고 싸늘한 눈빛으로 서있는 김예훈을 발견했고 나윤석이 버럭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당신 뭐야? 이곳은 개인 장소라는 거 몰라?”만약 나윤석이 마약을 하지 않았다면 냉정하게 김예훈의 얼굴을 살펴봤을 텐데 약 기운이 올라온 지금, 그는 그럴 생각조차 못 했으며 격한 흥분을 풀어야 하는 지금, 감히 그를 방해하는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고 여겼다.이때, 손희가 일그러진 얼굴로 싸늘하게 말했다.“얘들아, 일단 저놈부터 처리하자! 어디서 나타난 거지 같은 놈이 드라마를 많이 봐서 영웅 놀이를 하고 싶은 거야? 쓸데없는 생각 하지도 마.”손희의 명령에 몇몇 양아치들은 빠르게 김예훈에게 달려들었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서 있던 김예훈 몸에서는 어마어마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팍!”김예훈의 발길질 한 방에 맨 앞에 있던 양아치가 수십 미터를 날아가다가 벽에 부딪쳐 바닥에 떨어진 채,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덜덜 떨고 있었다.뒤이어 김예훈은 테이블에 놓인 재떨이를 들어 양아치의 얼굴에 던지자 순간 얼굴에 구멍이 난 양아치는 몸부림칠 기운도 없어서 바닥에 뻗어 버렸다.마지막 두 양아치가 달려들자 김예훈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칼을 발로 힘껏 차버리자 두 양아치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목을 부여잡고 바닥에 스르르 쓰러졌으며 이내 손가락 사이로 빨간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너무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