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아는 박민정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 전혀 믿지 않는다.최현아의 말에 홍주영은 바로 멀지 않은 곳에서 구경하고 있던 비서에게 조금 전 사항을 계약서로 만들어내라고 했다.이윽고 계약서에 최현아와 박민정 모두 사인하게 하라고 했다.최현아는 사인을 하기 전에 불현듯 무엇인가 떠오른 듯했다.“근데 너무 불공평한 계약서인 것 같아요. 박 비서가 이기면 마케팅 5팀 책임자 자리에 앉게 되는데, 내가 이기면 어떻게 되는 거죠? 박 비서 쪽에서 치르는 대가가 아무것도 없잖아요.”“만약 제가 프로젝트를 빼앗아 오지 못한다면 어떤 대가를 치렀으면 합니까?”“퇴사요.”최현아는 호산 그룹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민정을 눈엣가시로 여긴 지 한참 되었다.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두말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그러죠.”계약서에 새로운 조건을 첨부하고 두 사람 모두 사인을 했다.유남우를 공증인으로 모시기도 했다.대표이사실 전체가 오늘 두 사람으로 인해 떠들썩하기 그지없었다.최현아 일행이 떠나고 난 뒤 박민정은 잠깐 쉬다가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어떻게 빼앗아 올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IM 그룹은 지금 모든 회사의 프로젝트를 빼앗고 있어. 근데 정작 IM 그룹의 프로젝트를 빼앗고 있는 회사는 없어. 따라서 IM 그룹은 지금 무방비 상태일지도 몰라.’박민정은 IM 그룹에서 빼앗아 간 프로젝트를 모아서 일일이 연구하기 시작했다.어느 프로젝트를 도로 빼앗아 오면 쉬울지에 대해서 말이다.온갖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시간은 유난히 빨리 흘러갔다.모든 직원이 퇴근하고 난 뒤에도 박민정은 사무실에 앉아서 열심히 파고들고 있었다.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기 전까지.벨 소리에 정신을 차리게 된 박민정은 그제야 저녁 6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왜 아직도 퇴근 안 해?”유남준의 소리가 들려왔다.“이제 곧 해요.”박민정은 대답을 마치고 난 뒤 서둘러 짐을 챙겨 가방을 들고 퇴근했다.회사 문 앞에는 한참 동안 박민정을 기다리고 있던 유남준이 있었다.박민
유남준은 지금 바보 같은 박민정에게 말해주고 싶었다.자기가 바로 IM 그룹의 대표라고 말이다.하지만 IM 그룹은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고 그동안 원수도 많이 맺어 왔다.만약 이대로 세상에 알리게 된다면 IM 그룹의 배후에 자기가 있다고 한다면 박민정과 아이들도 타깃으로 삼을지도 모른다.“그렇게 생각하지 마. 난 오히려 IM 그룹의 대표가 훌륭한 것 같은데...”유남준은 억울한 나머지 자기를 위해 한마디 했다.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반박하지 않았다.“훌륭한 건 인정해요. 근데 인간 됨됨이가...”“그 사람 얘기 그만할래요. 좀만 눈 붙이고 있을게요. 피곤해요.”힘들만도 한 상황의 연속이었다.유남준은 바로 박민정을 품으로 끌어당기면서 자기한테 기대어서 자게 했다.그 덕분에 푹 잔 박민정은 두원 별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깨어났다.“도착한 거예요?”“좀 더 잘래? 그럼, 오늘 좀만 더 늦게 자도 되잖아.”유남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좀만 더 늦게 자?’야한 의미가 담겨 있는 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그만 자고 싶어요. 얼른 들어가요. 윤우도 왔겠어요.”박민정은 허겁지겁한 모습으로 유남준의 품속에서 빠져나왔다.행여나 지금 이곳에서 그 야한 일은 하게 될까 봐 말이다.유남준은 다소 시무룩한 모습으로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집안은 오늘따라 유난히 떠뜰석했다.한창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던 박윤우는 집안 곳곳을 소개해 주고 있었다.실시간 댓글은 거의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우리 세찬이 도련님이었구나. 집이 아주 으리으리하네.][이제 아셨어요? 심씨 가문 출신인데 당연히 으리으리하죠.][진정한 부잣집 도련님!]박윤우는 지금 실시간 순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다.하지만 번뇌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네티즌들이 박윤우를 박세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난 언제쯤 내 이름을 알릴 수 있을까?’고민하고 있던 그때 돌아온 박민정과 유남준을 보고서 바로 라이브를 종료했다
일단 저지르고 봐?추경은 역시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바이다.최현아의 말을 듣고서 추경은은 서둘러 유남준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박민정은 추경은이 이토록 대담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일찍이 침대로 누운 박민정의 머릿속에는 온통 IM 그룹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빼앗아 올까 하는 생각뿐이었다.유남준에게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으나 그대로 자기한테 기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꺼내지 않았다.“왜 아직도 안 자?”유남준은 침실로 들어서는 순간 박민정이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졸리지 않아서 핸드폰 보고 있었어요.”유남준은 몸을 돌려 박민정의 핸드폰을 가져왔다.“그만 보고 얼른 자.”핸드폰을 빼앗긴 박민정은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잘 수밖에 없었다.자기 전까지 박민정의 머릿속에는 온통 회사일 뿐이었다.이튿날 아침 박민정은 평소와 달리 좀 늦게 일어났다.늦잠을 잔 박민정을 깨우지도 않고 유남준은 집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평소대로 일어난 추경은은 9시가 되도록 일어나지 않은 박민정을 보고서 속으로 중얼거렸다.‘출근하지 않을 셈인가?’‘최현아랑 한 내기에서 지게 될까 봐?’다른 건 몰라도 생각 하나만큼은 깊이 하는 추경은이다.추경은은 미리 회사로 가서 박민정은 내기에서 지게 될까 봐 두려워서 오늘 회사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동료들에게 알려주었다.그 말을 듣고서 회사 직원들은 불가사의하기만 했다.“어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더니 바로 숨은 거예요?”“내가 다 뻘쭘하네요.”“IM 그룹이 지금 한창 여러 회사의 타깃으로 되고 있어서 어쩜 그 내기에서 박 비서님이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그래요. 아무리 진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회사에서 나가기나 하겠어요?”최현아 역시 그 소식을 듣고서 비아냥거렸다.“내가 너무 높이 평가했네. 딱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을.”한편.잠에서 깨어난 박민정은 시간을 확인해 보았는데, 벌써 오전 10시였다.
고집을 피우는 유남준의 모습에 박민정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알았어요. 아침 먹고 올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어요.”“그래. 천천히 먹고 와.”유남준은 계속 고개를 푹 숙인 채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그의 곁으로 지나가던 박민정은 노트북 키보드에 빼곡하게 적힌 점자를 보고서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실명한 뒤로 유남준은 이어폰을 끼고 업무를 봐야만 했다.모든 서류를 음성으로 듣고 처리해야 하니 일반인들보다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박민정이 아침까지 먹고 난 뒤 유남준은 약속한 대로 회사까지 바래다주었다.호산 그룹 꼭 대기층에 이르렀을 때 거의 모든 직원의 시선이 박민정을 향해 있었다.순간 박민정은 자기 얼굴에 뭐라도 묻은 줄만 알았었다.그때 누군가가 박민정에게 물었다.“박 비서님, 혹시 퇴직 절차 밟으시려고 오신 거예요?”말을 건 사람은 바로 비서 청아였다.그 말에 박민정은 어이가 없었다.“그게 무슨 말이죠? 퇴직 절차라니 도통 무슨 뜻인지...”청아 역시 당황하긴 매한가지였다.이윽고 멀지 않은 곳에서 커피를 타고 있는 추경은을 가리키면서 말했다.“경은 씨가 그러던데요. 박 비서님 최 대표님과 한 내기에서 지게 될까 봐 회사에 오지 못하고 있다고.”박민정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그냥 늦잠 자서 좀 늦게 온 것뿐이에요.”“네?”청아는 박민정의 말을 듣고 나서야 오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이때 추경은이 다가와서 똑같이 물었다.“새언니, 퇴직하려고 온 거예요?”그런 추경은에게 박민정은 바로 따귀를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출근하러 온 거예요. 어머님께서 편한 대로 출근해도 된다고 한 거 잊었어요?”말하면서 박민정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이제 겨우 11시고 하루에 딱 서너 시간만 출근하면 되는데, 뭐가 잘못된 거죠?”추경은은 할 말이 없었다.단순히 늦잠을 자서 늦게 온 줄 모르고 추경은은 온통 박민정에게 골탕을 먹여 최현아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새언니, 실은
호산 그룹 마케팅 5팀의 팀원들은 당분간 모두 박민정을 도와주게 되었다.박민정 밑으로 들어가기 전에 최현아는 마케팅 5팀의 책임자로서 회의도 열었었다.“당분간 같이 일하는 것뿐이니 너무 밭들이지 않아도 돼. 그리고 어디까지나 비서밖에 되지 않으니 너무 기어들어 가지도 마. 알았어?”팀원들은 당연히 최현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분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지는 말고.”최현아는 웃으면서 말했다.‘어디 감히 내 자리를 넘봐! 자기 주제도 모르고!’“네, 알겠습니다.”팀원들은 당분간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생각에 좋기는 했지만 걱정도 들었다.“근데 언제까지 놀아줘야 하는 겁니까? 책임져야 할 식솔이 한둘이가 아니라 인셉티브가 필요해서 그럽니다. 한 달 임금으로는 턱 없이 부족한 세상이잖아요.”최현아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했다.박민정과 체결한 계약서에 계약 기간이 빠졌다는 것을 말이다.이윽고 최현아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박 비서님, 우리 팀 팀원들이 묻고 있어서 그래요.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팀원들이 허구한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따라다닐 수 없다고 하네요. 다들 마케팅으로 먹고 사는데 실적이 있어야 받는 돈도 많아지는 거잖아요.”팀원들 앞이라 최현아는 팀장다운 모습으로 존댓말까지 써가면서 물었다.박민정은 한창 땅의 주인과 주위의 각종 시설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었다.어느 정도 계획이 생긴 박민정은 바로 ‘계약 기간’을 정해주었다.“보름이요.”‘보름? 겨우 보름?’‘설마 IM 그룹 공급업체랑 아는 사이인가?’“안 됩니다. 보름은 너무 길고 딱 10일만 드립니다.”“10일이요?”‘그건 좀 너무 급한데...’“우리 팀에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데... 그 모든 팀원이 모여서 공급업체 하나 빼앗는데 정신을 몰두해야겠어요? 10일이면 충분하지 않아요?”박민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러기로 했다.“그래요.”속도만 좀 높이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최현아는 그제야 전화를
“앞으로 계속 그렇게 빈대처럼 지낼 것입니까?”박민정은 팀원들의 출근 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조금 전까지 박민정을 반박하던 팀원들은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돈은 자기 주머니에 넣으려고 버는 것입니다. 전 지금부터 10일 내로 반드시 마케팅 5팀의 책임자가 될 것입니다. 꼭 그렇게 약속드리겠습니다. 이번 달부터 돈을 벌고 싶으시면 열심히 일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어떠한 도움도 필요 없으니 그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만 하면 됩니다. 귀찮게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입니다.”말을 마치고 박민정은 바로 그 사무실에서 나왔다.두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는 ‘팀원’들을 뒤로 한 채로 말이다.‘이게 다야?’‘도움이 필요 없다고?’‘10일 내로 팀장이 된다고? 허풍은...’‘보나 마나 유씨 가문 며느리 신분을 이용하려는 속셈인 것 같네.’마케팅 5팀의 사람들은 각자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박민정은 팀원들을 더 이상 엮지 않고 회사에서 딱 3시간만 일하고 퇴근했다.퇴근하려는 박민정을 보고서 추경은은 마냥 의문이 들었다.“새언니, 벌써 가려고요?”“네. 일찍 가려고요. 오늘 윤우랑 같이 저녁 먹기로 했거든요.”“근데 이제 4시밖에 되지 않았는데요?”“그래서요? 윤우한테 직접 저녁 해 주려고요.”박민정은 추경은을 흘겨보면서 말했다.순간 추경은은 말 문이 턱 막혀 버렸다.박민정이 공급업체를 찾으러 갈까 봐 바로 박민정 따라서 최근을 했다.그러나 유남준이 마중하러 왔고 두 사람은 과연 퇴근했던 것이었다.그 뒤로 이틀 동안 박민정은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갔다.음악 작업실에서 곡을 쓰지 않으면 박윤우의 저녁을 직접 챙기고 했었다.10일 밖에 시간이 없는데도 전혀 서두르지 않고 말이다.심지어 주말에는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추경은은 집에서 박민정네 일가족을 지키고 있었는데, 부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엄마, 지난번 캠핑한 뒤로 우리 나들이 간 지 오래됐어.”박윤우는 박민정이 말한 대로 물었다.“형도 함께 공원으로
박예찬이 당황해 마지 못할 때 박민정은 이미 만족한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하랑아, 오늘 윤우도 좀 봐줘.”조하랑은 마냥 이상하기만 했다.“급한 일 있다고 하더니 그게 뭔데? 뭐길래 이렇게까지 숨기는 거야?”“그냥 일이야. 주말에 해야 할 일.”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 조하랑에게 아직 말하기 난감했다.비록 궁금해 미칠 것 같았지만 조하랑은 더 이상 깊이 묻지 않았다.“너 임신한 몸이야. 그게 뭐든 꼭 조심하고.”박민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이윽고 박민정은 박윤우에게 말했다.“윤우야, 오늘 하랑 이모랑 형이랑 재밌게 놀고 있어. 말 잘 듣고.”박윤우 역시 의문이 들기는 매한가지였다.‘일 있으면 나 그냥 집에 놔주고 와도 되는데...’‘집에 있으면 하랑 이모 귀찮게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야?’실은 박윤우를 집에 놔두면 추경은이 무엇인가를 느끼고 자기와 함께 나오려고 할까 봐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말썽 피워도 형이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자기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박윤우는 잘 알고 있다.평소에 박예찬을 괴롭힐 수 있으나 큰 일 앞에서는 반드시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이때 박예찬도 덧붙였다.“엄마, 얼른 가서 일 봐. 내가 윤우 잘 지키고 있을게.”순간 조하랑은 약간 민망하기도 했다.자기보다 더 어른답고 성숙한 박세찬의 언행에 말이다.하물며 심씨 가문과 유씨 가문에서 보낸 경호원도 모두 근처에 있으니 아이들의 안전 문제는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다.“얼른 가.”조하랑이 말했다.“알았어.”박민정은 그제야 공원에서 나왔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민기에게 뒤따라오라고 했다.정민기가 있는 한 어디로 가든 그리 두렵지 않았다.박민정은 정민기에게 시간이 되면 무술도 배우고 경호원도 하라고 했었다.앞으로 언젠가는 그 역할을 발휘하게 될 날이 생길 것 같아서 말이다.정민기가 운전한 차를 타고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개간하지 않은 땅에 이르게 되었다.이곳은
“이건 뭐지?”가정부는 의문이 가득했다.집안에는 가정부 말고도 다른 도우미들도 적지 않다.결벽증이 다소 심한 유남준을 주인으로 모시면서 그 어느 곳에서도 먼지 하나 만져낼 수 없게 청소하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다.그러한 환경 속에서 갑자기 하얀 가루가 나타나니 당황하고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가장부는 티슈로 그 하얀 가루를 깨끗이 닦아서 휴지통에 버렸다.한편, 추경은은 물 한 잔을 이미 유남준에게 건네주었다.“남준 오빠, 물 마셔.”물잔을 건네받은 유남준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바로 마셨다.꿀꺽꿀꺽 거침없이 물을 들이마시고 있는 유남준을 바라보면서 추경은은 심장이 두근거렸다.거의 다 마시자 추경은은 바로 물잔을 도로 손에 넣었다.“컵 좀 씻고 올게. 물 더 마시고 싶으면 나한테 말해.”물잔에 증거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추경은은 바로 증거를 인멸하려고 했다.깨끗이 여러 번이나 씻고 또 씻고 나서야 원래 자리에 도로 올려 놓았다.가정부는 암암리의 추경은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았는데, 의문은 점점 더 짙어지게 되었다.전과 같았더라면 추경은은 손에 물을 대자마자 바로 가정부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었다.지금처럼 저렇게 세심하게 잔을 씻을 리가 없단 말이다.추경은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또다시 가정부와 눈이 마주치면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요. 근데 오늘따라 왜 그렇게 깜짝깜짝 놀라는 거죠?”해서는 안 될 일을 한 사람처럼 말이다.추경은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오늘 별일 없으면 나가서 좀 쉬세요. 여긴 내가 알아서 하면 돼요.”가정부가 계속 집 안에 있으면 유남준에게 손을 쓸 틈이 없게 되니 말이다.“아니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사모님께서 오늘 꼭 집에 있으라고 당부하셨어.’같은 여자로서 가정부는 박민정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비록 유남준은 세상 까칠하고 범접할 수 없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명하고 돈도 많으니 많은 여자들이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