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야하게 입고 있는 추경은.지금 추경은은 유난히 낭패한 모습으로 유남준의 다리를 붙잡고 있다.“남준 오빠, 나 좋아하지 않아? 조금이라도.”가정부와 도우미들은 추경은의 말을 모두 똑똑히 듣게 되었다.그리고 가정부는 그제야 추경은이야말로 유남준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유남준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여자에게 손을 댄 적이 없는데, 이번 일로 그 원칙이 무너지고 말았다.한방에 추경은을 멀리 차 버렸으니 말이다.“꺼져!”이윽고 문 앞에서 구경하고 있던 그들에게 말했다.“의사 불러와.”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남준 역시 자기가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었다....두원 별장 안은 그렇게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박민정은 지금 한창 땅 주인과 계약서를 체결하고 있었다.“IM 그룹에서 정말로 계약을 엎을까요?”“IM 그룹에서 얼마나 많은 회사를 합병하고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를 빼앗아 갔는지 아세요? 빌딩이나 세우고 랜드마크를 세울 돈이 남아있을 것 같아요?”박민정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저 호산 그룹에서 온 거예요. 호산 그룹이 진주시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모릅니까?”남자 사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호산 그룹이야 당연히 믿죠. 다만 전에 IM 그룹과 계약하기로 이미 약속을 했었는데, 땅을 그쪽에게 넘기면 IM 그룹에서 보복이라도 하면 어떡하죠?”“이쪽 바닥은 원래 그래요.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앞으로 사장님 뒤에는 저희 회사가 지지하고 있을 거예요. 하물며 복수한다고 한들 그건 불법이잖아요.”“네! 그럼, 사인할게요.”그렇게 박민정은 IM 그룹의 프로젝트를 빼앗아 왔다.박민정은 꽤 운이 좋았던 편에 속한다.왜냐하면 오늘 이 사장은 IM 그룹과 최종 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따라서 오늘 IM 그룹에서 하지 못한 서류까지 모두 받아내면서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게끔 한발 앞서게 되었다.정민기 역시 박민정의 모습에 속으로
“사모님.”가정 의사였다.‘의사까지 왔단 말이야?’박민정은 슬슬 두려움이 밀려왔다.‘남준 씨가 또다시 기억을 잃은 걸까?’가정 의사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서 박민정은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서 있는 가정부와 도우미들, 소파에 앉아 있는 유남준, 그리고 야한 옷차림으로 처량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추경은이 보였다.그리고 추경은 앞에는 가정부가 모아둔 하얀 가루가 있었다.박민정이 온 것을 보고 추9경은은 울먹이면서 말했다.“새언니, 나랑 남준 오빠 사랑하게 해주세요.”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박민정이다.‘뭐? 뭘 해달라고?’비록 두 사람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대사가 영... 그러했다.‘제삼자는 넌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가정부와 도우미들 역시 당황해 마지 못했다.추경은은 박민정을 향해 벌벌 기어가면서 말했다.“새언니, 저 어릴 적부터 남준 오빠 좋아했었어요. 남준 오빠가 너무 좋아요... 좋아서 죽을 것 같다고요! 새언니가 이해하지 못할 사랑을 하고 있다고요!”“새언니랑 남준 오빠 사이는 사랑이 아니라 그냥 가족 간의 정이라는 거 잘 알고 있어요. 아이가 있어서 할 수 없어 같이 살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고요.”“새언니만 괜찮다고 하면 앞으로 윤우랑 세찬이한테 정말 잘할게요. 절대 구박도 하지 않고 새엄마 노릇 잘하면서 살게요.”“믿지 못하겠으면 앞으로 평생 아이를 낳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절대 아이들의 상속권도 빼앗아 가지 않을게요.”박민정은 추경은이 뭐라고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뒤범벅이 되었다.한편, 옆에서 듣고 있던 박윤우는 분노가 극으로 달했다.“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우리 엄마랑 아빠 엄청 사랑하거든요! 사랑못 받는 쪽은...”박민정은 박윤우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윤우야, 그만하고 먼저 방에 들어가 있어. 어디 아파서 그러는 걸 거야. 이모랑 방에서 놀고 있어.”이윽고 가정부는 바로 박윤우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박윤우가 가자마자 추경은은 엉엉
추경은은 이마에 피가 뚝뚝 떨어지면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싫... 싫어... 가기 싫어...”진심이었다. 만약 이래도 가게 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된다.박민정은 추경은이 이 정도까지 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하지만 자기한테 이렇게 독한 사람은 남에게도 더 독하게 굴 것이다.경호원은 다소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유 대표님, 추경은 씨께서 많이 다치셨습니다.”“병원으로 데리고 가.”유남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인명피해까지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실은 그동안 추경은을 보내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네.”경호원 여러 명이 바로 다가가서 추경은을 데리고 나갔다.가는 내내 추경은은 달갑지 않아 하면서 중얼거렸다.“내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두원 별장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멀리 가고 나서야 두원 별장은 다시 조용해졌다.박민정은 자리를 찾아 앉아 유남준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괜찮아요? 병원에 갈래요?”혹시라도 그 약에 문제가 있을까 봐 걱정이된 것이었다.“아니야. 이미 확인해 보았고 별문제 없어.”박민정은 그제야 한시름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럼, 됐어요. 어디 아프면 바로 말해줘요.”자기를 관심하고 있는 박민정의 말과 태도에 유남준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려 바로 품으로 끌어안았다.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고서 다른 사람들은 바로 자리를 내주었다.거실에는 그렇게 박민정과 유남준 단둘이만 남게 되었다.유남준은 박민정의 귓가에 약간 불만한 어투로 중얼거렸다.“오늘 왜 나 혼자만 집에 남겨둔 거야?”박민정은 추경은이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만히 두고 간 건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말이다.“하랑이랑 만난다고 했었잖아요. 여자 둘만 만나는데 남준 씨가 따라가면 불편하잖아요.”박민정은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하지만 유남준은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오늘 나랑 추경은 사이에 무슨 일
무척이나 불쌍해 보이는 추경은을 마주하면서도 박민정은 눈빛이 더없이 차가웠다.“네? 경은 씨, 대체 내가 이상한 거예요. 아니면 경은 씨가 이상한 거예요? 감히 내 남편을 넘본 것으로 부족하여 어쩜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죠?”추경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저 남준 오빠 진심으로 좋아한단 말이에요.”그 말에 박민정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 말은 왠지 내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 같네요.”“그리고 가장 관건은 남준 씨가 경은 씨 싫어하잖아요. 남자한테 사랑해달라고 강요하고 협박하는 건 좀 별로지 않아요?”추경은은 주먹을 움켜쥐었다.“난...”박민정은 지금 추경은을 상대할 틈이 없었다.“별일 없으면 그만 가보시죠.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러는 데 좀 비켜줄래요?”박민정에게 도움을 청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추경은은 바로 가면을 벗어던졌다.“참 인간이 어쩜 그렇게도 융통성이 없어? 하루빨리 회사에서 쫓겨 나가길 바랄게! 그땐 나한테 도와달라고 말 꺼내지도 마.”이윽고 문을 ‘쾅’ 닫으면서 나갔다.‘참 곱게 볼 수가 없는 사람이야.’‘어디 아픈 거 아니야? 뇌 구조가 궁금할 정도야.’박민정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난 뒤 더 이상 이에 집중하지 않으려고 했다.추경은 때문에 자기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추경은은 사무실에서 나가자마자 바로 최현아에게 알렸다.“박민정이 지금 회사에 있어요.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하는 게 없어 보였어요.”“확실해요?”최현아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네! 직접 확인해 보았는데, 호산 그룹 회의 자료 그 외에 IM 그룹에 관한 서류는 없었어요.”추경은은 순간 눈빛이 싸늘해졌다.“일부러 관심 얻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만한 실려도 없으면서 말이에요.”최현아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알았어요. 계속 지켜보고 있어요.”회사 안에서 최현아와 박민정이 내기한 일은 어느새 유씨 가문 고영란 귀에까지 흘러 들어갔다.고영란은 소식을 듣자마자 다소 놀란 모
“어머님, 무슨 일이세요?”갑자기 걸려 온 고영란의 전화에 박민정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이때 고영란은 몹시나 언짢아하면서 운을 떼기 시작했다.“현아랑 내기했다면서? 어떻게 함부로 그런 내기를 할 수 있어? 네가 회사로 들어간지 이제 얼마나 됐다고 그러는 거야? 현아 걔가 회사에 몇 년이나 있었는지 알기나 해? 넌 호산 그룹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IM 그룹에 대해서는 더더욱 백지상태잖아.”“현아가 지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 며칠 뒤에 나도 네 할아버지도 모두 회사로 불러들여서 대놓고 널 무참하게 굴 생각이래.”고영란은 박민정을 좋아하는 축이 아니지만 결국 자기 가족이니 팔을 안으로 굽히고 있는 것이다.여하튼 박민정은 자기 며느리이니 절대 최현아에게 당하는 꼴을 볼 수 없다는 말이다.“그래요? 처음 듣는 말이긴 하네요.”최현아가 이미 유명훈과 고영란까지 찾아갔었다는 말을 박민정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그렇게 한 이유는 얼추 두 가지로 예측된다.첫째, 혹시나 박민정이 계약을 무를까 봐.둘째,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박민정을 호되게 모욕하려고.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박민정의 대답에 고영란은 순간 더 짜증이 났다.“회사 경영은 네가 하는 작곡이란 전혀 다른 개념이야. 하물며 넌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우리 남준이 아내잖아. 만약 이대로 현아한테 지게 된다면 우리 남준이 체면은 어떻게 할 건데?”한바탕 야단을 치고 난 뒤 고영란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IM 그룹 공급업체를 빼앗아 올 생각이라면서? 너한테 돈 줄 테니 가서 돈으로 해결하도록 해.”그 말인즉슨, 밑지는 장사라고 하더라도 체면부터 챙기라는 것이다.공급업체에 거액의 돈을 건네면서 호산 그룹과의 합작 관계를 유지하라는 말이기도 하다.“아니에요. 어머님, 저한테 다 계획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남준 씨 체면도 어머님 체면도 제가 지켜드릴 거예요.”박민정은 잠시 멈칫거리다가 다시 덧붙였다.“그래도 고마워요. 마음만 받고 별일 없으시면 그만 일 보러 갈게요.”말을
“누나, 나 윤석후한테 소송 걸었어.”박민정에게 칭찬을 들으려는 듯 박민호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박민정은 지금까지 이 일을 잊은 적이 없었다.전에는 윤씨 가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박씨 가문의 재산을 도로 되찾아오려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필경 박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니 만약 윤씨 가문에서 그 사실을 알고 걸고넘어지면 지금 박민정 손에 있는 유언장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박형식은 생전까지 늘 박민정을 친딸로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소송 걸었으면 됐어. 내가 가지고 있는 증거들 모두 줄 테니 앞으로 남은 일은 네가 알아서 해야 할 거야.”박민정이 말했다.지금 박민정이 할 수 있는 일은 박형식이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는 것뿐이다.박형식 대신 응당 박형식의 모든 것을 도로 찾아오는 것.“그렇게 할게.”“누나, 역시 누나밖에 없어.”자기한테 대신 소송을 걸어 달라고 하고 돈에 증거까지 서슴지 않게 준다는 박민정의 모습에 박민호는 진심을 다해 말했던 것이다.“그래. 앞으로 열심히 일만 해. 내가 뒤에서 지지해 줄게.”박민정은 진심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박민호는 대답하고 나서 말머리를 돌려 물었다.“엄마는? 요즘도 연락해?”한수민 얘기가 나오자 박민정은 순간 안색이 달라졌다.“아니... 근데 왜?”“그냥 물어보는 거야. 어제 나한테 전화 왔었는데 앞으로 누나한테 잘하라고 신신당부하셨어. 그리고 이상한 말도 엄청 많이 했었어.”박민호는 등을 의자에 기댄 채 두 다리를 사무실 책상 위에 ‘탁’ 걸치고 어제 한수민이 전화에서 했었던 말들을 다시 떠올렸다.한수민은 말끝마다 박민정을 감싸고 있었으니 말이다.갑자기 달라진 한수민이 마냥 이상하기만 한 박민호였다.“다른 건? 다른 말은 하지 않았어?”박민정은 다소 긴장해지기 시작했다.행여나 박민호에게 자기의 신분을 알렸을까 봐.“아니, 다른 말은 하지 않았어.”박민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난 뒤 덧붙였다.“누나, 걱정하지 마. 나 더 이상 엄마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게 된 순간 한수민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유... 남준?”유남준과 똑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보다 눈빛이 훨씬 선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바로 그때 뒤에 있던 박민호가 고개를 빼곡 내밀고 소리를 냈다.“엄마, 이분은 매형이 아니라 유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셔.”유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란 바로 유남우를 가리킨다.전에 박민정이 착각할 만할 정도로 너무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다.박민호의 말을 듣고 난 뒤 한수민은 바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았다.“어머, 미안해요. 하도 닮아서 실수했네요.”간병인은 눈짓 하나 동작 하나에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유남우를 보자마자 그의 신분과 지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사모님과 무슨 사이지?’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유남우의 정체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다.행동거지가 겸손하고 단정한 느낌을 주고 유남우는 우러러봐야 할 것 같은 느낌도 안겨다 주고 있었다.그런 그와 간병인은 감히 눈빛조차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유남우가 병실로 들어오자, 박민호도 잇달아 들어왔다.박민호 역시 못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유남우라는 대조 물이 바로 옆에 있으므로 그 기질이 평범하기 그지없었다.“나가세요.”유남우는 간병인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을 듣고서 간병인은 마지못해 자리를 비켜주었다.간병인이 병실에서 나가자마자 박민호는 ‘펑’하고 문을 확 닫아버렸다.병실 안은 온통 소독수 냄새로 진동을 했고 박민호는 유남우의 요구만 아니었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한수민을 찾으려고 오겠다고 한 유남우의 의도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박민정과 통화하는 것을 듣고 오자고 박민호에게 ‘부탁’을 했었다.“어서 앉으세요.”한수민이 말했다.유남우는 의자에 앉아서 입을 열었다.“몸은 좀 어떠세요?”갑작스러운 그의 관심에 한수민은 살짝 흠칫거렸다.“괜찮아요. 고맙습니다.”괜찮아 보아야 마지막 그날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한수민은 잘 알고 있다.유
“저 말고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모든 것을 듣고 난 유남우가 한수민에게 물었다.한수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 질문의 답을 주었다.“간병인이랑 민정이한테만 얘기했어요. 우리 간병인 좋은 사람이라 여기저기 흘리고 다닐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요.”유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죽을 때가 되니 제 편이 누군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후회하고 있어요.”나지막한 소리로 한수민이 말했다.하지만 유남우는 그 어떠한 동정심도 없었다.“어릴 적부터 민정이한테서 그런 얘기 종종 들었었어요. 엄마가 기뻐했으면 좋겠는데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요.”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한수민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만 같았다.“그럴 자격이 없는 엄마인데...”“조금이라도 잘해 주셨으면 적어도 저렇게 자격지심이 강하지 않고 구박도 당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제서야 자기 인생을 살고 있는 민정이가 안쓰러운 건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유남우는 덤덤하게 덧붙였다.“엄마 사랑을 받지 못한 채 허구한 날 쓴소리만 들었던 민정이가 어떻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겠어요.”한수민은 뼈만 남은 손으로 이불을 꼭 움켜쥐었다.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도 하염없이 흘러 내려왔다.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얘기를 듣게 되는 순간 또다시 눈물이 흘리게 될 줄은 몰랐다.“제가 죽고 나면 저 대신 우리 민정이 좀 잘 챙겨주시면 안 될까요? 더 이상 민정이를 볼 자격이 없다는 거 저도 잘 알고 있어요...”유남우는 그 말에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앞으로 시간 되면 뵈러 오겠습니다. 민정이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시고 싶으시면 아직 시간이 있을 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네.”감격해 마지 못하는 모습으로 한수민이 말했다.박민호가 과일을 들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 유남우가 이미 떠난 뒤였다.그는 곧바로 과일을 병실에 두고 한수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바로 뒤따라갔다.무정하기 짝이 없는 아들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한수민은 한심하기 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