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나 윤석후한테 소송 걸었어.”박민정에게 칭찬을 들으려는 듯 박민호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박민정은 지금까지 이 일을 잊은 적이 없었다.전에는 윤씨 가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박씨 가문의 재산을 도로 되찾아오려는 생각뿐이었다..하지만 필경 박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니 만약 윤씨 가문에서 그 사실을 알고 걸고넘어지면 지금 박민정 손에 있는 유언장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박형식은 생전까지 늘 박민정을 친딸로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소송 걸었으면 됐어. 내가 가지고 있는 증거들 모두 줄 테니 앞으로 남은 일은 네가 알아서 해야 할 거야.”박민정이 말했다.지금 박민정이 할 수 있는 일은 박형식이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는 것뿐이다.박형식 대신 응당 박형식의 모든 것을 도로 찾아오는 것.“그렇게 할게.”“누나, 역시 누나밖에 없어.”자기한테 대신 소송을 걸어 달라고 하고 돈에 증거까지 서슴지 않게 준다는 박민정의 모습에 박민호는 진심을 다해 말했던 것이다.“그래. 앞으로 열심히 일만 해. 내가 뒤에서 지지해 줄게.”박민정은 진심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박민호는 대답하고 나서 말머리를 돌려 물었다.“엄마는? 요즘도 연락해?”한수민 얘기가 나오자 박민정은 순간 안색이 달라졌다.“아니... 근데 왜?”“그냥 물어보는 거야. 어제 나한테 전화 왔었는데 앞으로 누나한테 잘하라고 신신당부하셨어. 그리고 이상한 말도 엄청 많이 했었어.”박민호는 등을 의자에 기댄 채 두 다리를 사무실 책상 위에 ‘탁’ 걸치고 어제 한수민이 전화에서 했었던 말들을 다시 떠올렸다.한수민은 말끝마다 박민정을 감싸고 있었으니 말이다.갑자기 달라진 한수민이 마냥 이상하기만 한 박민호였다.“다른 건? 다른 말은 하지 않았어?”박민정은 다소 긴장해지기 시작했다.행여나 박민호에게 자기의 신분을 알렸을까 봐.“아니, 다른 말은 하지 않았어.”박민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난 뒤 덧붙였다.“누나, 걱정하지 마. 나 더 이상 엄마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게 된 순간 한수민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유... 남준?”유남준과 똑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보다 눈빛이 훨씬 선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바로 그때 뒤에 있던 박민호가 고개를 빼곡 내밀고 소리를 냈다.“엄마, 이분은 매형이 아니라 유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셔.”유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란 바로 유남우를 가리킨다.전에 박민정이 착각할 만할 정도로 너무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다.박민호의 말을 듣고 난 뒤 한수민은 바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았다.“어머, 미안해요. 하도 닮아서 실수했네요.”간병인은 눈짓 하나 동작 하나에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유남우를 보자마자 그의 신분과 지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사모님과 무슨 사이지?’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유남우의 정체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다.행동거지가 겸손하고 단정한 느낌을 주고 유남우는 우러러봐야 할 것 같은 느낌도 안겨다 주고 있었다.그런 그와 간병인은 감히 눈빛조차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유남우가 병실로 들어오자, 박민호도 잇달아 들어왔다.박민호 역시 못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유남우라는 대조 물이 바로 옆에 있으므로 그 기질이 평범하기 그지없었다.“나가세요.”유남우는 간병인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을 듣고서 간병인은 마지못해 자리를 비켜주었다.간병인이 병실에서 나가자마자 박민호는 ‘펑’하고 문을 확 닫아버렸다.병실 안은 온통 소독수 냄새로 진동을 했고 박민호는 유남우의 요구만 아니었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한수민을 찾으려고 오겠다고 한 유남우의 의도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박민정과 통화하는 것을 듣고 오자고 박민호에게 ‘부탁’을 했었다.“어서 앉으세요.”한수민이 말했다.유남우는 의자에 앉아서 입을 열었다.“몸은 좀 어떠세요?”갑작스러운 그의 관심에 한수민은 살짝 흠칫거렸다.“괜찮아요. 고맙습니다.”괜찮아 보아야 마지막 그날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한수민은 잘 알고 있다.유
“저 말고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모든 것을 듣고 난 유남우가 한수민에게 물었다.한수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 질문의 답을 주었다.“간병인이랑 민정이한테만 얘기했어요. 우리 간병인 좋은 사람이라 여기저기 흘리고 다닐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요.”유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죽을 때가 되니 제 편이 누군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후회하고 있어요.”나지막한 소리로 한수민이 말했다.하지만 유남우는 그 어떠한 동정심도 없었다.“어릴 적부터 민정이한테서 그런 얘기 종종 들었었어요. 엄마가 기뻐했으면 좋겠는데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요.”그 말을 듣게 되는 순간 한수민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만 같았다.“그럴 자격이 없는 엄마인데...”“조금이라도 잘해 주셨으면 적어도 저렇게 자격지심이 강하지 않고 구박도 당하지 않았을 거예요. 이제서야 자기 인생을 살고 있는 민정이가 안쓰러운 건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유남우는 덤덤하게 덧붙였다.“엄마 사랑을 받지 못한 채 허구한 날 쓴소리만 들었던 민정이가 어떻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겠어요.”한수민은 뼈만 남은 손으로 이불을 꼭 움켜쥐었다.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도 하염없이 흘러 내려왔다.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얘기를 듣게 되는 순간 또다시 눈물이 흘리게 될 줄은 몰랐다.“제가 죽고 나면 저 대신 우리 민정이 좀 잘 챙겨주시면 안 될까요? 더 이상 민정이를 볼 자격이 없다는 거 저도 잘 알고 있어요...”유남우는 그 말에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앞으로 시간 되면 뵈러 오겠습니다. 민정이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시고 싶으시면 아직 시간이 있을 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네.”감격해 마지 못하는 모습으로 한수민이 말했다.박민호가 과일을 들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 유남우가 이미 떠난 뒤였다.그는 곧바로 과일을 병실에 두고 한수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바로 뒤따라갔다.무정하기 짝이 없는 아들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한수민은 한심하기 그지
“알아보지 마. 앞으로 이 일에 대해서 더 이상 간여도 하지 마.”유남준은 말을 마치고 난 뒤,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폭풍우가 휘몰아친 곳에 서다희 혼자만 덩그러니 남긴 채로 말이다.사업을 빼앗아 간 사람이 자기 쪽 사람이고 무엇보다도 박민정이라는 사실에 간여하고 싶어도 간여할 수 없는 노릇이다.그리고 유남준은 절대 박민정에게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을 것이다.침실 안에서.베란다에서 침실로 돌아온 박민정은 침대에 누워 그만 자려고 했으나 주체할 수 없이 들떠 있었다.오늘 자기가 해낸 거사를 내일 회사 동료들에게 알리면서 최현아의 체면을 아주 제대로 짓밟을 생각으로 말이다.그때 씻고 들어온 유남준은 이불을 젖히고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박민정을 품속으로 끌어안았다.유남준이 묻기도 전에 박민정은 흥분에 겨워 먼저 입을 열었다.“남준 씨, 나 요즘 기분 너무 좋아요.”이내 기분이 좋아 보이는 박민정의 모습을 유남준 역시 느끼고 있었다.자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기분이 좋아진 것으로 생각을 했으나 그게 아니었다.유남준의 프로젝트를 빼앗아 간 것으로 기분이 좋은 것이었으니 말이다.물론 당사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유남준은 정확한 답을 듣고 싶었다.모든 일을 마치고 난 박민정은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았다.“그게 실은 얼마 전에 형님이랑 내기했어요. IM 그룹의 프로젝트를 내가 직접 빼앗아 올 것으로 말이에요. 그 누구도 날 믿지 않았는데, 내가 이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은 거예요.”유남준은 눈살을 약간 찌푸리면서 고개를 들었다.‘정말이었어?’‘내가 아주 훌륭한 아내를 만났네...’‘너한테 직접 듣기 전까지 절대 믿을 수 없었는데...’박민정의 말을 듣게 되는 순간 갖은 생각이 밀려 들어왔다.하지만 그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은 채 박민정의 말을 계속 들었다.“날 하찮게 여겼던 사람들한테 아주 제대로 ‘복수’할 수 있어서 속이 다 시원해요. 실은 다들 담이 없어서 방어하는 데만 시간을 두고 먼저 공
오전 10시 10분.고위직 직원들로 가득 찬 호산 그룹 회의실 안이다.날이 날인만큼 유명훈과 고영란도 오늘 회사로 오게 되었다.주위를 둘러보던 고영란은 박민정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추경은에게 물었다.“민정이는?”추경은은 고개를 저었다.“저도 잘 몰라요. 새언니 아직 출근 전인 것 같아요.”“모른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 민정 옆에 붙어 있지 않았어? 옆에서 민정이 챙겨줘라고 너 여기에서 출근하게끔 내가 해준거잖아.”고영란은 단도직입적으로 그 어떠한 체면도 돌보지 않은 채 말했다.그 말을 듣고서 추경은은 순간 서러움이 밀려왔다.“남준 오빠도 새언니도 모두 저를 싫어해요... 앞으로 두원 별장에서 지낼 생각하지 말라면서 단호하게 말까지 했고요. 그래서 저 요금 회사 근처에서 월세맡고 살고 있어요. 낮에는 회사에서 새언니 챙겨주고 있고요.”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포장하면서 유남준에게 약을 탄 사실에 대해서는 토씨 하나 꺼내지 않았다.고영란은 추경은의 대답을 듣고 난 뒤 더는 따지지 않았다.“근데 왜 민정이는 아직도 안 오는 거야?”10시 30분에 회의를 연다고 알고 있던 박민정과 달리 최현아는 다른 사람들에게 10시에 회의를 연다고 알렸던 것이었다.“혹시 새언니 부끄러워서 안 오는 거 아니에요? IM 그룹의 프로젝트를 빼앗아 오지 못했나 봐요.”추경은이 걱정하는 척하면서 물었다.그 말이 나오는 순간 고영란은 추경은을 째려보았다.“헛소리하지 마!”지금 이 자리에 고위직 직원들도 심지어 유명훈도 있었으니 말이다.만약 박민정이 최현아에게 지게 된다면 ‘첩’의 후손은 영원히 ‘처’의 후손 보다 못났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고영란의 호통에 추경은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고영란은 답답한 마음에 프런트 직원에게 박민정의 행방에 관해 물어보러 갔으나 아직 출근 전이라는 답을 듣게 되었다.어찌 된 영문인지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으나 바로 그때 최현아가 다가왔다.“숙모님, 이제 곧 회의 시작할 거예요. 어르신께서도 부르시
고영란의 말을 듣고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계약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과연 고영란의 말대로 IM 그룹에서 빼앗아 간 공급업체를 도로 빼앗아 온 것이었다.“정말이네요!”“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 어려운 걸 해냈네요.”다들 아첨을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실은 바보가 아닌 이상 고영란이 박민정을 도와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도로 빼앗아 온 공급업체는 그리 중요한 편도 아니었다.IM 그룹을 상대로 그 어떠한 바람도 일으킬 수 없는 미미한 존재였다는 것이다.옆에서 듣고 있던 최현아는 떨떠름하기만 했다.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최현아는 본격적으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숙모님, 며느리한테 너무 잘해주시는 거 아니에요? 무려 100억이나 들여서 그 고객 다시 찾아온 거잖아요. 따지고 보면 호산 그룹에 뭔가를 안겨다 준 것 같지 않은데요.”최현아의 말에 회의실은 순간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지금 가장 당황스러운 사람은 고영란이다.‘어떻게 알았지? 내가 100억으로 다시 빼앗아 왔다는 거?’유명훈은 마침내 터지고 말았다.“그게 사실이냐! 이렇게까지 민정이 편을 들어주는 것이었냐! 설마 보잘것없는 고객 하나를 빼앗아 왔다고 현아 자리에 민정이를 앉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유명훈은 회의가 정식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최현아를 통해 알게 되었었다.이번 일에 고영란이 끼어들어서 커닝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유명훈의 호통 소리에 고영란은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애꿎은 두 손만 꼭 움켜쥐고서 최현아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하지만 그 또한 잠시 바로 아무런 소리로 하지 않은 채 시선을 거두었다.‘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민정이 때문에 나까지! 가만히 회사나 다닐 것이니 내기는 왜 해서 이 난리야!’고영란은 모든 분노를 박민정에게 돌렸다.하지만 오늘 박민정은 고영란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오히려 체면을 세워주게 된다.“그럼, 계속...”최현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회의실 문이 밖에서 열렸다.순간 문
자기가 빼앗아온 프로젝트에 대해서 박민정은 자신감이 넘쳤다.IM 그룹에도 호산 그룹에도 극히 중요한 프로젝트이니 말이다.“이거 도시 중심에 있는 그 땅 아니에요? IM 그룹이 진주시에 오자마자 계약한 그 땅이잖아요.”이 땅은 IM 그룹이 호산 그룹의 프로젝트를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IM 그룹에서 직접 맺은 프로젝트였다.박민정은 처음부터 IM 그룹에서 빼앗아 간 프로젝트를 다시 빼앗아 올 생각이 없었다.여러 번 반복되는 과정에서 모든 게 변해 있을 것이라고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IM 그룹의 프로젝트를 빼앗아오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던 박민정이었다.“도시 중심의 그 땅이 맞습니다! 박 비서님께서 정말로 해내셨네요!”“설마요. IM 그룹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IM 그룹에서도 알고 있습니까?”조금 전까지 박민정을 무시하던 호산 그룹의 에이스 직원들은 계약서를 훑어보면서 감격해 마지 못했다.순간 박민정에 대한 모든 색안경이 벗겨지게 되었다.고영란은 지금, 이 상황이 마냥 이상할 따름이었다.“도시 중심의 땅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2달 전에 허가를 받게 된 땅인데, IM 그룹에서 엄청난 돈으로 그 땅을 살 수 있게 됐다고 들은 바가 있어요. 본사에서도 나서고 싶었지만, 그땐 유 대표님께서 임직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럴 만한 시간도 정력도 없으셨거든요.”어느 한 고위직 직원이 고영란에게 설명해주었다.순간 고영란은 의문이 탁 트이면서 그동안 내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봐 왔었던 박민정이 자기 체면을 살려준 것이라며 웃음꽃이 활짝 피게 되었다.유명훈과 최현아 역시 지금 믿어지지 않아 입이 떡 벌어져 있다.“계약서라니 설마 위조한 거 아니죠? 나도 좀 봐봐요.”최현아는 손을 내밀었고 어느 한 고위직이 계약서를 건네주면서 일깨워주었다.“위조한 거 아니에요. 회사 인장도 박혀 있고 절대 틀림없을 거예요.”최현아는 그 말에 상대하지 않고 바로 계약서를 훑어보았다.그 결과
오늘 고영란과 박민정은 같은 라인에서 ‘적’과 맞서고 있다.최현아는 고영란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고 어느새 얼굴도 화끈 달아올랐다.“제가 아무리 그래도 마케팅 총 팀...”하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영란이 바로 공격을 날렸다.“근데 지금은 단지 마케팅 5팀의 팀장이잖아.”“...”“그 자리에 걸맞은 실력이든 아니든 난 너야말로 가장 바닥에서 천천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 남준이랑 남우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서 천천히 일떠선 거야.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어떤 사람은 타고난 천재이고 어떤 사람은 가장 기초부터 닦을 수 없어. 아니면 평생 기초만 닦으면서 살든가 말이야.”고영란의 말에 최현아는 더더욱 얼굴을 들 수 없었다.갈 길을 잃은 최현아는 유명훈을 바라보면서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유명훈은 지금, 이 상황에서 최현아의 편을 들어주기가 그러했다.“현아야, 계약서까지 체결한 이상 그냥 계약서에 적힌 대로 하여라.”순간 최현아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네...”회의 내내 최현아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회의가 끝나고 나서도 고위직들은 박민정을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대단하다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도전했다면서...밖에 듣고 있던 추경은은 박민정이 이번 내기에서 이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리기도 했다.“난 또 얼마나 대단한 줄 알았네! 박민정 하나도 이기지 못하는 주제에 참!”한편, 고영란은 박민정을 사무실에 남겨두었다.처음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박민정을 탄복하고 있는 고영란이다.“이번 일은 아주 완벽히 잘했어. 근데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는 건 사실이야. 만약 최현아한테 지게 되었다면 호산 그룹에 발 들여놓기 힘들었을 거야.”고영란은 마침내 어른다운 모습으로 말했다.박민정도 그제야 고영란이 자기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하지만 오늘 너무 잘했어. 아주 최고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