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란의 말을 듣고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계약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과연 고영란의 말대로 IM 그룹에서 빼앗아 간 공급업체를 도로 빼앗아 온 것이었다.“정말이네요!”“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 어려운 걸 해냈네요.”다들 아첨을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실은 바보가 아닌 이상 고영란이 박민정을 도와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도로 빼앗아 온 공급업체는 그리 중요한 편도 아니었다.IM 그룹을 상대로 그 어떠한 바람도 일으킬 수 없는 미미한 존재였다는 것이다.옆에서 듣고 있던 최현아는 떨떠름하기만 했다.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난 뒤 최현아는 본격적으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숙모님, 며느리한테 너무 잘해주시는 거 아니에요? 무려 100억이나 들여서 그 고객 다시 찾아온 거잖아요. 따지고 보면 호산 그룹에 뭔가를 안겨다 준 것 같지 않은데요.”최현아의 말에 회의실은 순간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지금 가장 당황스러운 사람은 고영란이다.‘어떻게 알았지? 내가 100억으로 다시 빼앗아 왔다는 거?’유명훈은 마침내 터지고 말았다.“그게 사실이냐! 이렇게까지 민정이 편을 들어주는 것이었냐! 설마 보잘것없는 고객 하나를 빼앗아 왔다고 현아 자리에 민정이를 앉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유명훈은 회의가 정식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최현아를 통해 알게 되었었다.이번 일에 고영란이 끼어들어서 커닝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유명훈의 호통 소리에 고영란은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애꿎은 두 손만 꼭 움켜쥐고서 최현아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하지만 그 또한 잠시 바로 아무런 소리로 하지 않은 채 시선을 거두었다.‘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민정이 때문에 나까지! 가만히 회사나 다닐 것이니 내기는 왜 해서 이 난리야!’고영란은 모든 분노를 박민정에게 돌렸다.하지만 오늘 박민정은 고영란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로 오히려 체면을 세워주게 된다.“그럼, 계속...”최현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회의실 문이 밖에서 열렸다.순간 문
자기가 빼앗아온 프로젝트에 대해서 박민정은 자신감이 넘쳤다.IM 그룹에도 호산 그룹에도 극히 중요한 프로젝트이니 말이다.“이거 도시 중심에 있는 그 땅 아니에요? IM 그룹이 진주시에 오자마자 계약한 그 땅이잖아요.”이 땅은 IM 그룹이 호산 그룹의 프로젝트를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IM 그룹에서 직접 맺은 프로젝트였다.박민정은 처음부터 IM 그룹에서 빼앗아 간 프로젝트를 다시 빼앗아 올 생각이 없었다.여러 번 반복되는 과정에서 모든 게 변해 있을 것이라고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IM 그룹의 프로젝트를 빼앗아오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던 박민정이었다.“도시 중심의 그 땅이 맞습니다! 박 비서님께서 정말로 해내셨네요!”“설마요. IM 그룹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은데요?”“IM 그룹에서도 알고 있습니까?”조금 전까지 박민정을 무시하던 호산 그룹의 에이스 직원들은 계약서를 훑어보면서 감격해 마지 못했다.순간 박민정에 대한 모든 색안경이 벗겨지게 되었다.고영란은 지금, 이 상황이 마냥 이상할 따름이었다.“도시 중심의 땅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2달 전에 허가를 받게 된 땅인데, IM 그룹에서 엄청난 돈으로 그 땅을 살 수 있게 됐다고 들은 바가 있어요. 본사에서도 나서고 싶었지만, 그땐 유 대표님께서 임직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럴 만한 시간도 정력도 없으셨거든요.”어느 한 고위직 직원이 고영란에게 설명해주었다.순간 고영란은 의문이 탁 트이면서 그동안 내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봐 왔었던 박민정이 자기 체면을 살려준 것이라며 웃음꽃이 활짝 피게 되었다.유명훈과 최현아 역시 지금 믿어지지 않아 입이 떡 벌어져 있다.“계약서라니 설마 위조한 거 아니죠? 나도 좀 봐봐요.”최현아는 손을 내밀었고 어느 한 고위직이 계약서를 건네주면서 일깨워주었다.“위조한 거 아니에요. 회사 인장도 박혀 있고 절대 틀림없을 거예요.”최현아는 그 말에 상대하지 않고 바로 계약서를 훑어보았다.그 결과
오늘 고영란과 박민정은 같은 라인에서 ‘적’과 맞서고 있다.최현아는 고영란의 말에 말문이 턱 막혔고 어느새 얼굴도 화끈 달아올랐다.“제가 아무리 그래도 마케팅 총 팀...”하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영란이 바로 공격을 날렸다.“근데 지금은 단지 마케팅 5팀의 팀장이잖아.”“...”“그 자리에 걸맞은 실력이든 아니든 난 너야말로 가장 바닥에서 천천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 남준이랑 남우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서 천천히 일떠선 거야.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어떤 사람은 타고난 천재이고 어떤 사람은 가장 기초부터 닦을 수 없어. 아니면 평생 기초만 닦으면서 살든가 말이야.”고영란의 말에 최현아는 더더욱 얼굴을 들 수 없었다.갈 길을 잃은 최현아는 유명훈을 바라보면서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유명훈은 지금, 이 상황에서 최현아의 편을 들어주기가 그러했다.“현아야, 계약서까지 체결한 이상 그냥 계약서에 적힌 대로 하여라.”순간 최현아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네...”회의 내내 최현아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회의가 끝나고 나서도 고위직들은 박민정을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대단하다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도전했다면서...밖에 듣고 있던 추경은은 박민정이 이번 내기에서 이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리기도 했다.“난 또 얼마나 대단한 줄 알았네! 박민정 하나도 이기지 못하는 주제에 참!”한편, 고영란은 박민정을 사무실에 남겨두었다.처음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박민정을 탄복하고 있는 고영란이다.“이번 일은 아주 완벽히 잘했어. 근데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는 건 사실이야. 만약 최현아한테 지게 되었다면 호산 그룹에 발 들여놓기 힘들었을 거야.”고영란은 마침내 어른다운 모습으로 말했다.박민정도 그제야 고영란이 자기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하지만 오늘 너무 잘했어. 아주 최고였어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는 유남준의 모습에 서다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대표님 아주 사랑에 푹 빠지셨구나.’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유남준은 박민정에게 달려가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문을 나서려고 할 때 그만 어느 한 의자에 부딪히고 말았다.서다희는 부랴부랴 의자를 옮기면서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조금 전에 손님이 오셔서 내놓은 의자였는데, 원래 자리로 옮긴다는 것을 깜빡했습니다.”유남준은 화를 내지 않고 김인우의 말이 떠올랐다.가능한 한 수술을 이른 시일 안에 받아야 한다는 것.만약 계속 지체하게 되면 머릿속의 유리 파편을 빼내기도 어려울 것이고 뺀다고 하더라도 시력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말이다.앞으로 어쩌면 평생 캄캄한 세상에서 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남준은 급 기분이 가라앉았다.“괜찮아. 가자.”“네.”...호산 그룹.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민정은 유남준의 차를 보고서 바로 달려가서 차에 올랐다.“남준 씨, 나 왔어요. 저녁에 뭐 먹고 싶어요?”소리만 들어도 무척이나 흥분하여 있다는 것을 유남준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그 예쁜 얼굴을 볼 수 없었다.“난 뭐든 좋아. 네가 추천하는 대로 가자.”유남준의 정서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박민정은 근처에 있는 맛집을 찾기 시작했다.이윽고 어느 한식당의 리뷰가 눈에 들어왔다.“이 한식당으로 가요.”“그래.”한식당의 음식들은 보통 정갈하고 맛도 좋으며 건강하기까지 하다.목적지에 이른 뒤 박민정은 유남준의 손을 꼭 잡고 부축해 주었다.“계단 조심해요.”왠지 모르게 유남준은 속이 점점 답답해졌다.만약 실명된 게 아니었다면 ‘계단 조심해’라는 말은 유남준이 박민정에게 했었을 것이니 말이다.먼저 앞장서서 박민정을 보호하고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그렇게 서로 다른 감정으로 어렵게 자리에 앉게 되었다.여러 가지 음식을 주문하고 난 뒤, 유남준은 그만 참지 못하고 박민정에게 물었다.“뭐 하나만 물어볼게.”박민정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물었다.“뭔데요?”“만약
박민정은 이제는 유남준을 상대하고 싶지도 않아 음식에 온갖 정신을 몰두하기 시작했다.어느덧 아이를 품은 지 4개월이 넘다 보니 식욕이 폭증하고 뭐나 먹고 싶고 뭐나 맛있게 먹게 되었다.오늘 저녁은 밖에서 먹고 들어간다고 이미 박윤우에게도 알린 박민정이다.외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각자 바삐 돌았다.박민정이 아이랑 놀아주고 있을 때 유남준은 결심이라도 한 듯이 밖으로 나와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수술시간 좀 알아봐 줘.”“진심이야?”“응.”“형수한테는 말했어?”보통 일도 아니고 박민정이 알고 있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한 김인우이다.“아니, 우리 둘만 알고 있어. 그냥 아무도 모르게 수술하자.”유남준의 말을 듣고서 김인우는 걱정이 밀려왔다.“그건 좀 아니지 않아? 혹시라도... 어떻게 하려고 그래?”“민정이랑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제대로 준비하고 난 뒤에 수술받을 거야.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유남준은 거듭 당부했다.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김인우는 더는 말리지 않았다.한번 결정한 일을 절대 바꿀 리가 없는 유남준이니 말이다.“알았어.”김인우는 시간을 한번 체크하고 나서 유남준의 차트를 확인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보름 뒤에 하자.”“그래.”더는 물어보지 않고 유남준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다음 날.유남준은 서다희에게 연락해서 변호사인 강연우와 연락이 닿았다.강연우의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믿을 만한 사람이고 본성은 악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유남준은 보통 박민정 때문에 이성을 잃어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외에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하면 아주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그 사람이 믿음직한 사람인지 아닌지 말이다.“강 변호사, 저 유언장 좀 작성하려고요.”그 한마디에 서다희와 강연우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지금 가장 당황하고 놀란 사람은 서다희이다.“대표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대표님 나이에 유언장을 작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서다희는 유남준을
서다희는 유남준의 뜻을 알아들었다.“사모님은 알고 계십니까?”“아니, 모르게 진행할 거야.”박민정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그뿐만 아니라 유남준은 수술로 바보가 된다면 박민정이 자기를 포기하고 버리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아직 유남준의 의식 속에는 못난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여자인 박민정에게 모든 걸 맡기고 기대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네.”...호산 그룹.오늘 박민정은 마케팅 5팀 팀장의 신분으로 출근하게 될 것이다.박민정이 오기 전부터 마케팅 5팀의 팀원들은 삼삼오오 수군거리고 있었다.“진짜 해낼 줄은 몰랐어!”“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최현아 그 사람이랑 다 똑같을 거야.”“난 그렇지 않다고 봐. 최현아랑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았어.”다들 의견이 분분했다.마케팅 부서는 본래 남자가 많고 여자가 적은 편이다.대부분이 박민정 역시 최현아와 비슷한 실력으로 관리 따위를 일절 모르고 오로지 배경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박민정은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마케팅 5팀 팀원들에게 최현아가 오기 전의 모든 제도를 회복할 것이라고 알렸다.순간 마케팅 5팀 팀원들은 멍하니 있다가 환호하면서 박수까지 미친 듯이 쳤다.최현아의 제도에 비하면 그 전의 제도가 얼마나 좋았는지 팀원들은 제대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전의 제도하에 마케팅 5팀은 분기마다 마케팅 부서 전체를 통틀어서 일등을 차지하곤 했었으니 말이다.이윽고 박민정은 부팀장까지 임명하여 그에게 다시 마케팅 5팀의 명예를 회복하게끔 격려했다.박민정의 결정에 반대의 소리를 내거나 언짢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오히려 전과 다른 눈빛으로 박민정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박 팀장님, 앞으로 저희 팀을 이끌고 가실 텐데 오늘 저녁에 저희끼리 환영식이라도 할까요?”“맞아요. 저희가 준비할게요.”“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번 달에 열심히 달리셔서 매출액을 올리시기 바랍니다. 그럼, 전 그것으로 여러분의 환영을 받았다고 간주할 것입니다.”“네!
자기 전까지만 해도 박민정은 유남준이 자기랑 장난삼아 그런 소리를 하는 줄 알았었다.그러나 잠들기 직전에 유남준은 서류 하나를 꺼내 들었다.“읽어봐봐.”박민정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믿어지지도 않았다.“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잘 거예요.”“예전에 있었던 일을 하도 많이 잊어버려서 그래. 이른 시일 내로 모든 걸 알아야 하니 네가 좀 읽어줘.”너무 몰아붙이면 박민정이 의심할 수도 있으니 유남준은 다른 식으로 말머리를 돌렸다.과연 박민정은 성화에 못 이겨 읽기 시작했다.그렇게 한참을 읽다가 졸음이 밀려와서 그만 잠들고 말았다.소리가 끊기자 유남준은 박민정의 손에서 서류를 빼내서 잘 눕힌 뒤 품속으로 끌어안았다.그 뒤로 남은 시간 동안 유남준은 마치 엄숙한 선생님처럼 박민정을 스파르타 하게 가르쳤다.직원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비즈니스 자리에서는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는지 등 여러모로 말이다.가장 이른 시일 안에 박민정에게 모든 걸 가르쳐주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했다.처음에 박민정은 그리 열심히 배우지 않았었다.그러던 어느 날 최현아가 호산 그룹으로 다시 오게 된 걸 보게 되었다.최현아는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박민정에게 말했다.“내가 다시 복귀할 줄은 몰랐지? 나 앞으로 실적이 가장 좋은 마케팅팀에서 팀장으로 일해.”“...”박민정은 어이가 없었다.유명훈이 아무리 본처의 편을 든다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대로 나가다가 호산 그룹이 망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최현아는 가기 전에 일부러 박민정에게 귀띔까지 해주었다.“참, 마케팅 부서 전체에 규칙 하나가 있어. 실적에서 꼴찌 한 팀은 바로 탈락이라는 규칙 말이야. 만약 앞으로 마케팅 5팀의 실적이 바닥이라면 너희 팀 전체가 회사에서 잘리게 될 거야. 그리고 회사에서는 호산 그룹 이미지와 능력에 알맞은 신인을 다시 뽑을 거야.”마케팅 5팀의 현재 팀장으로서 박민정 역시 잘리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서 겁에 질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기가 발
지금 박세찬이 너무 그리운 박윤우이다.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갖추고 있지만, 공부랑은 그리 친한 편이 아니었다.숫자가 점점 커지자 박윤우는 양손을 총동원하여 계산하기 시작했다.만약 박예찬이었다면 아마 이미 암산해 냈을 것인데 말이다.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가정부는 어린 박윤우가 벌써 학업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속으로 지금 학부모들의 교육 방식이 너무 무서울 정도라면서 혀도 차고 말이다.머리를 긁적이는 박윤우를 보고서 박민정은 다가가서 도와주려고 했다.그러나 겨우 두 발자국밖에 옮기지 못했는데 유남준의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민정아, 네 임무는 완성했어?”박민정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자기 코부터 닦았다.유남준이 이렇게까지 엄숙하게 나올 줄은 몰랐던 박민정이다.학교 다닐 때와 별반 다름이 없는 지금이니 말이다.“아직이요... 생각하고 있었어요.”박민정은 우물쭈물하면서 대답했다.“그래.”유남준은 대답하고 나서 계속 자기 업무를 처리하였다. 집에 가만히 있기엔 너무 화창한 날씨라 일가족은 정원에서 각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김인우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정원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조하랑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민정아, 윤우야.”그 소리에 박민정과 박윤우는 바로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순간 암담했던 자기 세상에 빛 한 줄기가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드디어! 구세주가 나타났어!’박윤우는 기뻐해 마지 못했다.김인우와 박예찬은 차분한 모습으로 차에서 내렸고 경비실에서 문을 열어주자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아빠, 인우 아저씨랑 하랑 이모가 형 데리고 왔어요.”박윤우는 유남준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아직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나이인데 산수라니... 학대가 따로 없다고 느꼈으니 말이다.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두 사람이 무척이나 언짢은 유남준이다.“계속해.”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