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은 이제는 유남준을 상대하고 싶지도 않아 음식에 온갖 정신을 몰두하기 시작했다.어느덧 아이를 품은 지 4개월이 넘다 보니 식욕이 폭증하고 뭐나 먹고 싶고 뭐나 맛있게 먹게 되었다.오늘 저녁은 밖에서 먹고 들어간다고 이미 박윤우에게도 알린 박민정이다.외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각자 바삐 돌았다.박민정이 아이랑 놀아주고 있을 때 유남준은 결심이라도 한 듯이 밖으로 나와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수술시간 좀 알아봐 줘.”“진심이야?”“응.”“형수한테는 말했어?”보통 일도 아니고 박민정이 알고 있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한 김인우이다.“아니, 우리 둘만 알고 있어. 그냥 아무도 모르게 수술하자.”유남준의 말을 듣고서 김인우는 걱정이 밀려왔다.“그건 좀 아니지 않아? 혹시라도... 어떻게 하려고 그래?”“민정이랑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제대로 준비하고 난 뒤에 수술받을 거야. 그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유남준은 거듭 당부했다.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김인우는 더는 말리지 않았다.한번 결정한 일을 절대 바꿀 리가 없는 유남준이니 말이다.“알았어.”김인우는 시간을 한번 체크하고 나서 유남준의 차트를 확인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보름 뒤에 하자.”“그래.”더는 물어보지 않고 유남준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다음 날.유남준은 서다희에게 연락해서 변호사인 강연우와 연락이 닿았다.강연우의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믿을 만한 사람이고 본성은 악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유남준은 보통 박민정 때문에 이성을 잃어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외에 다른 사람을 상대로 하면 아주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그 사람이 믿음직한 사람인지 아닌지 말이다.“강 변호사, 저 유언장 좀 작성하려고요.”그 한마디에 서다희와 강연우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지금 가장 당황하고 놀란 사람은 서다희이다.“대표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대표님 나이에 유언장을 작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서다희는 유남준을
서다희는 유남준의 뜻을 알아들었다.“사모님은 알고 계십니까?”“아니, 모르게 진행할 거야.”박민정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그뿐만 아니라 유남준은 수술로 바보가 된다면 박민정이 자기를 포기하고 버리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아직 유남준의 의식 속에는 못난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여자인 박민정에게 모든 걸 맡기고 기대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네.”...호산 그룹.오늘 박민정은 마케팅 5팀 팀장의 신분으로 출근하게 될 것이다.박민정이 오기 전부터 마케팅 5팀의 팀원들은 삼삼오오 수군거리고 있었다.“진짜 해낼 줄은 몰랐어!”“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최현아 그 사람이랑 다 똑같을 거야.”“난 그렇지 않다고 봐. 최현아랑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았어.”다들 의견이 분분했다.마케팅 부서는 본래 남자가 많고 여자가 적은 편이다.대부분이 박민정 역시 최현아와 비슷한 실력으로 관리 따위를 일절 모르고 오로지 배경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박민정은 출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마케팅 5팀 팀원들에게 최현아가 오기 전의 모든 제도를 회복할 것이라고 알렸다.순간 마케팅 5팀 팀원들은 멍하니 있다가 환호하면서 박수까지 미친 듯이 쳤다.최현아의 제도에 비하면 그 전의 제도가 얼마나 좋았는지 팀원들은 제대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전의 제도하에 마케팅 5팀은 분기마다 마케팅 부서 전체를 통틀어서 일등을 차지하곤 했었으니 말이다.이윽고 박민정은 부팀장까지 임명하여 그에게 다시 마케팅 5팀의 명예를 회복하게끔 격려했다.박민정의 결정에 반대의 소리를 내거나 언짢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오히려 전과 다른 눈빛으로 박민정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박 팀장님, 앞으로 저희 팀을 이끌고 가실 텐데 오늘 저녁에 저희끼리 환영식이라도 할까요?”“맞아요. 저희가 준비할게요.”“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번 달에 열심히 달리셔서 매출액을 올리시기 바랍니다. 그럼, 전 그것으로 여러분의 환영을 받았다고 간주할 것입니다.”“네!
자기 전까지만 해도 박민정은 유남준이 자기랑 장난삼아 그런 소리를 하는 줄 알았었다.그러나 잠들기 직전에 유남준은 서류 하나를 꺼내 들었다.“읽어봐봐.”박민정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믿어지지도 않았다.“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잘 거예요.”“예전에 있었던 일을 하도 많이 잊어버려서 그래. 이른 시일 내로 모든 걸 알아야 하니 네가 좀 읽어줘.”너무 몰아붙이면 박민정이 의심할 수도 있으니 유남준은 다른 식으로 말머리를 돌렸다.과연 박민정은 성화에 못 이겨 읽기 시작했다.그렇게 한참을 읽다가 졸음이 밀려와서 그만 잠들고 말았다.소리가 끊기자 유남준은 박민정의 손에서 서류를 빼내서 잘 눕힌 뒤 품속으로 끌어안았다.그 뒤로 남은 시간 동안 유남준은 마치 엄숙한 선생님처럼 박민정을 스파르타 하게 가르쳤다.직원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비즈니스 자리에서는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는지 등 여러모로 말이다.가장 이른 시일 안에 박민정에게 모든 걸 가르쳐주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했다.처음에 박민정은 그리 열심히 배우지 않았었다.그러던 어느 날 최현아가 호산 그룹으로 다시 오게 된 걸 보게 되었다.최현아는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박민정에게 말했다.“내가 다시 복귀할 줄은 몰랐지? 나 앞으로 실적이 가장 좋은 마케팅팀에서 팀장으로 일해.”“...”박민정은 어이가 없었다.유명훈이 아무리 본처의 편을 든다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대로 나가다가 호산 그룹이 망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최현아는 가기 전에 일부러 박민정에게 귀띔까지 해주었다.“참, 마케팅 부서 전체에 규칙 하나가 있어. 실적에서 꼴찌 한 팀은 바로 탈락이라는 규칙 말이야. 만약 앞으로 마케팅 5팀의 실적이 바닥이라면 너희 팀 전체가 회사에서 잘리게 될 거야. 그리고 회사에서는 호산 그룹 이미지와 능력에 알맞은 신인을 다시 뽑을 거야.”마케팅 5팀의 현재 팀장으로서 박민정 역시 잘리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서 겁에 질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기가 발
지금 박세찬이 너무 그리운 박윤우이다.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은 갖추고 있지만, 공부랑은 그리 친한 편이 아니었다.숫자가 점점 커지자 박윤우는 양손을 총동원하여 계산하기 시작했다.만약 박예찬이었다면 아마 이미 암산해 냈을 것인데 말이다.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가정부는 어린 박윤우가 벌써 학업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속으로 지금 학부모들의 교육 방식이 너무 무서울 정도라면서 혀도 차고 말이다.머리를 긁적이는 박윤우를 보고서 박민정은 다가가서 도와주려고 했다.그러나 겨우 두 발자국밖에 옮기지 못했는데 유남준의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민정아, 네 임무는 완성했어?”박민정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자기 코부터 닦았다.유남준이 이렇게까지 엄숙하게 나올 줄은 몰랐던 박민정이다.학교 다닐 때와 별반 다름이 없는 지금이니 말이다.“아직이요... 생각하고 있었어요.”박민정은 우물쭈물하면서 대답했다.“그래.”유남준은 대답하고 나서 계속 자기 업무를 처리하였다. 집에 가만히 있기엔 너무 화창한 날씨라 일가족은 정원에서 각자 공부를 하고 있었다.김인우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정원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조하랑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민정아, 윤우야.”그 소리에 박민정과 박윤우는 바로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순간 암담했던 자기 세상에 빛 한 줄기가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드디어! 구세주가 나타났어!’박윤우는 기뻐해 마지 못했다.김인우와 박예찬은 차분한 모습으로 차에서 내렸고 경비실에서 문을 열어주자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아빠, 인우 아저씨랑 하랑 이모가 형 데리고 왔어요.”박윤우는 유남준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아직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나이인데 산수라니... 학대가 따로 없다고 느꼈으니 말이다.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두 사람이 무척이나 언짢은 유남준이다.“계속해.”순간
수술에 실패할 확률도 높고 김인우는 꼭 성공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행여나 유남준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게 된다면 앞으로 박민정을 볼 면목이 없을 것이다.게다가 김인우와 유남준은 어릴 적부터 함께 한 친구 사이이다.“수술하지 않으면 나 지금처럼 이렇게 살 수 있어? 평범한 사람처럼 정상적으로 살 수 있냐고?”유남준이 물었다.그 말을 듣고서 김인우는 순간 말 문이 턱하고 막혔다.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억에 혼돈이 온 유남준이었다.만약 유리 파편을 꺼내지 않는다면 수시로 위험해질 수도 있다.다만 그 상황이 언제 펼쳐질지 모른다는 것이다.“내내 걱정하고 있을 바에는 차라리 한 번 눈 딱 감고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유남준이 말했다.김인우는 이제는 말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나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기게 되면 우리 민정이랑 아이들 네가 책임져줄 거지?”“그럼! 당연하지!”김인우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책임질 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면의 지출을 자기가 낸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박민정에게 목숨을 빚지기도 했고 그동안 유남준에게 받아온 것에 빚을 가득 진 김인우이기 때문이다.“그럼 됐어. 이제는 걱정할 것도 없어.”김인우의 약속을 받아낸 유남준은 마침내 한시름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필경 진주시에서 김씨 가문도 손에 꼽힐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감히 함부로 김씨 가문을 건드릴 수 있는 사람도 없다.두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동안 박민정과 조하랑은 요즘 호산 그룹에서 있었던 일에 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조하랑은 자기 친구인 박민정을 진심으로 탄복하면서 대신 기뻐해 마지 못했다.“너 진짜 대박이야! 최현아 완전 꼭지 돌았겠는데?”“처음에는 그랬는데 얼마 전에 마케팅 1팀의 팀장으로 다시 돌아왔어. 실적이 가장 좋은 팀인데...”“그건 반칙이지!”하지만 조하랑 역시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공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공평을 추구하려면 남
책임성이 강했던 유남준은 주말 내내 박민정과 박윤우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종일 문제 풀이를 하게 하고 서류를 보게 하였으니 말이다.잠자리에 든 박윤우는 심지어 꿈속에서까지 문제 풀이를 하고 있었다.“흑흑흑... 열심히 할게요. 아빠 화내지 마세요...”잠꼬대도 하면서 이내 시달리고 있었던 박윤우였다.마침 박윤우의 침실을 지나가고 있던 유남준은 그 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손을 들어 박윤우의 팔을 다치자 인기척에 박윤우는 바로 깨어났다.어두운 불빛 아래 비친 유남준의 얼굴을 보고서 박윤우는 귀신이라도 본 듯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저 졸려요. 내일 일어나서 계속하면 안 돼요?”유남준은 앳된 박윤우의 소리를 듣고서 가슴이 약간 미어졌다.“완성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워낙 몸도 남보다 좋지 않은데 다른 면에서까지 뒤처지면 안 된다. 아니면 어떻게 엄마를 지켜줄 수 있겠어... 앞으로 먼저 다가가서 배우는 법을 익히고 건강을 핑계 삼아 남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 알았어?”갑작스러운 훈계에 박윤우는 어리둥절하기만 했으나 유남준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네, 꼭 그렇게 할게요.”“계속 자.”유남준은 침실에서 나가면서 문을 꼭 닫아주었다.잠이 깬 박윤우는 유남준의 말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아 박예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형, 요즘 아빠 좀 이상한 것 같아.]이제 막 자려고 하던 박예찬은 그 메시지를 보고서 약간 귀찮아했다.[어디가?][콕 집어서 얘기할 수는 없는데, 뭔가 이상해.][그럼, 하지 마.]박예찬은 본래 유남준에 관해서 관심도 없었다.[알았어.]박예찬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자, 박윤우는 약간 기분이 가라앉았다.그런 박윤우의 모습이 상상되었기에 박예찬은 다시 물었다.[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박윤우는 요즘에 있었던 일을 모두 알리면서 유남준이 박민정과 자기한테 이런저런 일을 시켰다는 것까지 알렸다.[드라마에서 보면 시한부 판정을 받은
유지훈은 바로 스마트 워치로 유명훈에게 전화를 걸었다.“할아버지, 애들이 다 저만 괴롭혀요.”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기 증손자가 유치원에서 괴로움을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유명훈은 바로 유치원으로 달려갔다.유치원에 도착하자마자 유지훈은 박예찬이 다른 애들한테 자기랑 놀지 못하게끔 으름장을 놓았다고 거짓말을 했다.“예찬이가 그랬다는 말이냐? 어쩜 그럴 수 있어!”유지훈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덧붙였다.“할아버지, 저 언제쯤이면 엄마랑 아빠 만날 수 있어요? 보고 싶단 말이에요. 엄마 아빠가 곁에 없으니 다들 저만 괴롭히잖아요.”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억울해하는 유지훈의 모습에 유명훈은 가슴이 미어졌다.“지훈이 너 엄마 아빠는 잘못한 일이 있어서 당분간 오기 힘들단다. 앞으로 할아버지가 옆에서 널 지켜줄 테니 감히 그 누구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예찬이한테 사과받아낼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박예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로 불려갔다.유명훈은 그를 보자마자 호통부터 치기 시작했다.“어쩜 그런 짓을 꾸밀 수 있냐 말이다! 다 같은 유씨 성을 가진 형제인데, 어찌 너부터 나서서 우리 지훈이를 괴롭힐 수 있느냐?!”깊이 따져들 그것도 없이 박예찬은 유지훈이 또다시 자기한테 검탱이를 씌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제가요? 제가 어떻게 괴롭혔는데요?”“다른 애들한테 우리 지훈이랑 놀지 말라고 그랬다면서.”박예찬은 순간 어이가 없어서 말 문이 막혔다.“한쪽 말만 듣고 이러시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다른 친구들한테 왜 유지훈이랑 놀려고 하지 않는지 물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이치가 있는 그 말에 유명훈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자기에게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반박하는 박예찬의 모습에 놀라울 따름이었다.“얘가 어디 어른 앞에서 버릇없이...”말을 채 하기도 전에 전화 한 통이 걸려 들어왔다.핸드폰을 꺼내 들어 확인해 보니 김훈이었다.하는 수 없이 잠시 화를 억누르고서 전화를 받았다.“김 회장,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하고.”“그딴 소리
추경은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이 세상에서 추경은보다 유남우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실은 어릴 적에 유남우를 처음 봤을 때 전혀 두렵지 않았었고 심지어 갖은 장난도 쳤었다.큰 병을 앓았었던 유남우는 대부분 시간을 방에서만 보냈었다.추경은은 그런 병약한 그가 싫어서 한동안 몰래 사적으로 뒤를 따라다니면서 돌로 때리고 했었다.유남우는 그때 돌에 맞았다고 하더라도 전혀 화를 내지 않았었다.그 뒤로 추경은은 더욱더 심한 장난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비가 펑펑 쏟아지던 밤이었다.추경은은 비를 쫄딱 맞은 채 몰래 들어오는 유남우를 보고서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비아냥거렸었다.“쯧쯧, 어디 갔다 오는 거야? 할아버님한테 고자질한다? 너 몰래 나갔다고.”그러나 얼마 가지도 못한 상황에서 유남우가 바로 앞으로 다가왔었다.그때 자기를 바라보던 유남우의 시선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추경은이다.그 눈빛은 그토록 차갑고 냉혹하며 무서울 수가 없었다.마치 지옥에서 도망쳐 나온 악귀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그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유남우는 추경은의 머리카락을 덥석 잡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못으로 끌고 가서 바로 담가버렸었다.1분을 간격으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차라리 죽기만 못하는 고통을 느끼게 했었다.자그마치 30분 동안 지속하였었고 유남우는 그 과정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다.그 뒤로 추경은은 감히 이제는 유남우에게 도발을 할 수 없었고 심지어 볼 때마다 벌벌 떨게 되었다.대표이사실에서 나온 추경은은 아직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마케팅 부서로 내려온 추경은을 보게 된 최현아는 넋이 나간 듯한 그녀를 보고서 물었다.“위층에는 무슨 일로 간 거예요?”“별거 아니에요. 새언니한테 서류 좀 전해달라고 둘째 오빠가 불러서 간 거예요.”추경은이 대답했다.그러자 최현아는 바로 추경은의 손에 있는 서류를 빼앗아 오면서 훑어보더니 별문제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려주었다.“꼭 명심해야 해요. 우린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