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 그룹 마케팅 5팀의 팀원들은 당분간 모두 박민정을 도와주게 되었다.박민정 밑으로 들어가기 전에 최현아는 마케팅 5팀의 책임자로서 회의도 열었었다.“당분간 같이 일하는 것뿐이니 너무 밭들이지 않아도 돼. 그리고 어디까지나 비서밖에 되지 않으니 너무 기어들어 가지도 마. 알았어?”팀원들은 당연히 최현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분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지는 말고.”최현아는 웃으면서 말했다.‘어디 감히 내 자리를 넘봐! 자기 주제도 모르고!’“네, 알겠습니다.”팀원들은 당분간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생각에 좋기는 했지만 걱정도 들었다.“근데 언제까지 놀아줘야 하는 겁니까? 책임져야 할 식솔이 한둘이가 아니라 인셉티브가 필요해서 그럽니다. 한 달 임금으로는 턱 없이 부족한 세상이잖아요.”최현아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했다.박민정과 체결한 계약서에 계약 기간이 빠졌다는 것을 말이다.이윽고 최현아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박 비서님, 우리 팀 팀원들이 묻고 있어서 그래요.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팀원들이 허구한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따라다닐 수 없다고 하네요. 다들 마케팅으로 먹고 사는데 실적이 있어야 받는 돈도 많아지는 거잖아요.”팀원들 앞이라 최현아는 팀장다운 모습으로 존댓말까지 써가면서 물었다.박민정은 한창 땅의 주인과 주위의 각종 시설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었다.어느 정도 계획이 생긴 박민정은 바로 ‘계약 기간’을 정해주었다.“보름이요.”‘보름? 겨우 보름?’‘설마 IM 그룹 공급업체랑 아는 사이인가?’“안 됩니다. 보름은 너무 길고 딱 10일만 드립니다.”“10일이요?”‘그건 좀 너무 급한데...’“우리 팀에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데... 그 모든 팀원이 모여서 공급업체 하나 빼앗는데 정신을 몰두해야겠어요? 10일이면 충분하지 않아요?”박민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러기로 했다.“그래요.”속도만 좀 높이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최현아는 그제야 전화를
“앞으로 계속 그렇게 빈대처럼 지낼 것입니까?”박민정은 팀원들의 출근 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조금 전까지 박민정을 반박하던 팀원들은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돈은 자기 주머니에 넣으려고 버는 것입니다. 전 지금부터 10일 내로 반드시 마케팅 5팀의 책임자가 될 것입니다. 꼭 그렇게 약속드리겠습니다. 이번 달부터 돈을 벌고 싶으시면 열심히 일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어떠한 도움도 필요 없으니 그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만 하면 됩니다. 귀찮게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입니다.”말을 마치고 박민정은 바로 그 사무실에서 나왔다.두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는 ‘팀원’들을 뒤로 한 채로 말이다.‘이게 다야?’‘도움이 필요 없다고?’‘10일 내로 팀장이 된다고? 허풍은...’‘보나 마나 유씨 가문 며느리 신분을 이용하려는 속셈인 것 같네.’마케팅 5팀의 사람들은 각자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박민정은 팀원들을 더 이상 엮지 않고 회사에서 딱 3시간만 일하고 퇴근했다.퇴근하려는 박민정을 보고서 추경은은 마냥 의문이 들었다.“새언니, 벌써 가려고요?”“네. 일찍 가려고요. 오늘 윤우랑 같이 저녁 먹기로 했거든요.”“근데 이제 4시밖에 되지 않았는데요?”“그래서요? 윤우한테 직접 저녁 해 주려고요.”박민정은 추경은을 흘겨보면서 말했다.순간 추경은은 말 문이 턱 막혀 버렸다.박민정이 공급업체를 찾으러 갈까 봐 바로 박민정 따라서 최근을 했다.그러나 유남준이 마중하러 왔고 두 사람은 과연 퇴근했던 것이었다.그 뒤로 이틀 동안 박민정은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갔다.음악 작업실에서 곡을 쓰지 않으면 박윤우의 저녁을 직접 챙기고 했었다.10일 밖에 시간이 없는데도 전혀 서두르지 않고 말이다.심지어 주말에는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추경은은 집에서 박민정네 일가족을 지키고 있었는데, 부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엄마, 지난번 캠핑한 뒤로 우리 나들이 간 지 오래됐어.”박윤우는 박민정이 말한 대로 물었다.“형도 함께 공원으로
박예찬이 당황해 마지 못할 때 박민정은 이미 만족한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하랑아, 오늘 윤우도 좀 봐줘.”조하랑은 마냥 이상하기만 했다.“급한 일 있다고 하더니 그게 뭔데? 뭐길래 이렇게까지 숨기는 거야?”“그냥 일이야. 주말에 해야 할 일.”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 조하랑에게 아직 말하기 난감했다.비록 궁금해 미칠 것 같았지만 조하랑은 더 이상 깊이 묻지 않았다.“너 임신한 몸이야. 그게 뭐든 꼭 조심하고.”박민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이윽고 박민정은 박윤우에게 말했다.“윤우야, 오늘 하랑 이모랑 형이랑 재밌게 놀고 있어. 말 잘 듣고.”박윤우 역시 의문이 들기는 매한가지였다.‘일 있으면 나 그냥 집에 놔주고 와도 되는데...’‘집에 있으면 하랑 이모 귀찮게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야?’실은 박윤우를 집에 놔두면 추경은이 무엇인가를 느끼고 자기와 함께 나오려고 할까 봐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말썽 피워도 형이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자기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박윤우는 잘 알고 있다.평소에 박예찬을 괴롭힐 수 있으나 큰 일 앞에서는 반드시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이때 박예찬도 덧붙였다.“엄마, 얼른 가서 일 봐. 내가 윤우 잘 지키고 있을게.”순간 조하랑은 약간 민망하기도 했다.자기보다 더 어른답고 성숙한 박세찬의 언행에 말이다.하물며 심씨 가문과 유씨 가문에서 보낸 경호원도 모두 근처에 있으니 아이들의 안전 문제는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다.“얼른 가.”조하랑이 말했다.“알았어.”박민정은 그제야 공원에서 나왔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민기에게 뒤따라오라고 했다.정민기가 있는 한 어디로 가든 그리 두렵지 않았다.박민정은 정민기에게 시간이 되면 무술도 배우고 경호원도 하라고 했었다.앞으로 언젠가는 그 역할을 발휘하게 될 날이 생길 것 같아서 말이다.정민기가 운전한 차를 타고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개간하지 않은 땅에 이르게 되었다.이곳은
“이건 뭐지?”가정부는 의문이 가득했다.집안에는 가정부 말고도 다른 도우미들도 적지 않다.결벽증이 다소 심한 유남준을 주인으로 모시면서 그 어느 곳에서도 먼지 하나 만져낼 수 없게 청소하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다.그러한 환경 속에서 갑자기 하얀 가루가 나타나니 당황하고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가장부는 티슈로 그 하얀 가루를 깨끗이 닦아서 휴지통에 버렸다.한편, 추경은은 물 한 잔을 이미 유남준에게 건네주었다.“남준 오빠, 물 마셔.”물잔을 건네받은 유남준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바로 마셨다.꿀꺽꿀꺽 거침없이 물을 들이마시고 있는 유남준을 바라보면서 추경은은 심장이 두근거렸다.거의 다 마시자 추경은은 바로 물잔을 도로 손에 넣었다.“컵 좀 씻고 올게. 물 더 마시고 싶으면 나한테 말해.”물잔에 증거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추경은은 바로 증거를 인멸하려고 했다.깨끗이 여러 번이나 씻고 또 씻고 나서야 원래 자리에 도로 올려 놓았다.가정부는 암암리의 추경은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았는데, 의문은 점점 더 짙어지게 되었다.전과 같았더라면 추경은은 손에 물을 대자마자 바로 가정부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었다.지금처럼 저렇게 세심하게 잔을 씻을 리가 없단 말이다.추경은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또다시 가정부와 눈이 마주치면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요. 근데 오늘따라 왜 그렇게 깜짝깜짝 놀라는 거죠?”해서는 안 될 일을 한 사람처럼 말이다.추경은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오늘 별일 없으면 나가서 좀 쉬세요. 여긴 내가 알아서 하면 돼요.”가정부가 계속 집 안에 있으면 유남준에게 손을 쓸 틈이 없게 되니 말이다.“아니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사모님께서 오늘 꼭 집에 있으라고 당부하셨어.’같은 여자로서 가정부는 박민정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비록 유남준은 세상 까칠하고 범접할 수 없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명하고 돈도 많으니 많은 여자들이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얻
옷을 야하게 입고 있는 추경은.지금 추경은은 유난히 낭패한 모습으로 유남준의 다리를 붙잡고 있다.“남준 오빠, 나 좋아하지 않아? 조금이라도.”가정부와 도우미들은 추경은의 말을 모두 똑똑히 듣게 되었다.그리고 가정부는 그제야 추경은이야말로 유남준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유남준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여자에게 손을 댄 적이 없는데, 이번 일로 그 원칙이 무너지고 말았다.한방에 추경은을 멀리 차 버렸으니 말이다.“꺼져!”이윽고 문 앞에서 구경하고 있던 그들에게 말했다.“의사 불러와.”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남준 역시 자기가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었다....두원 별장 안은 그렇게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박민정은 지금 한창 땅 주인과 계약서를 체결하고 있었다.“IM 그룹에서 정말로 계약을 엎을까요?”“IM 그룹에서 얼마나 많은 회사를 합병하고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를 빼앗아 갔는지 아세요? 빌딩이나 세우고 랜드마크를 세울 돈이 남아있을 것 같아요?”박민정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저 호산 그룹에서 온 거예요. 호산 그룹이 진주시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모릅니까?”남자 사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호산 그룹이야 당연히 믿죠. 다만 전에 IM 그룹과 계약하기로 이미 약속을 했었는데, 땅을 그쪽에게 넘기면 IM 그룹에서 보복이라도 하면 어떡하죠?”“이쪽 바닥은 원래 그래요.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앞으로 사장님 뒤에는 저희 회사가 지지하고 있을 거예요. 하물며 복수한다고 한들 그건 불법이잖아요.”“네! 그럼, 사인할게요.”그렇게 박민정은 IM 그룹의 프로젝트를 빼앗아 왔다.박민정은 꽤 운이 좋았던 편에 속한다.왜냐하면 오늘 이 사장은 IM 그룹과 최종 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따라서 오늘 IM 그룹에서 하지 못한 서류까지 모두 받아내면서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게끔 한발 앞서게 되었다.정민기 역시 박민정의 모습에 속으로
“사모님.”가정 의사였다.‘의사까지 왔단 말이야?’박민정은 슬슬 두려움이 밀려왔다.‘남준 씨가 또다시 기억을 잃은 걸까?’가정 의사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서 박민정은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서 있는 가정부와 도우미들, 소파에 앉아 있는 유남준, 그리고 야한 옷차림으로 처량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추경은이 보였다.그리고 추경은 앞에는 가정부가 모아둔 하얀 가루가 있었다.박민정이 온 것을 보고 추9경은은 울먹이면서 말했다.“새언니, 나랑 남준 오빠 사랑하게 해주세요.”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박민정이다.‘뭐? 뭘 해달라고?’비록 두 사람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대사가 영... 그러했다.‘제삼자는 넌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가정부와 도우미들 역시 당황해 마지 못했다.추경은은 박민정을 향해 벌벌 기어가면서 말했다.“새언니, 저 어릴 적부터 남준 오빠 좋아했었어요. 남준 오빠가 너무 좋아요... 좋아서 죽을 것 같다고요! 새언니가 이해하지 못할 사랑을 하고 있다고요!”“새언니랑 남준 오빠 사이는 사랑이 아니라 그냥 가족 간의 정이라는 거 잘 알고 있어요. 아이가 있어서 할 수 없어 같이 살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고요.”“새언니만 괜찮다고 하면 앞으로 윤우랑 세찬이한테 정말 잘할게요. 절대 구박도 하지 않고 새엄마 노릇 잘하면서 살게요.”“믿지 못하겠으면 앞으로 평생 아이를 낳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절대 아이들의 상속권도 빼앗아 가지 않을게요.”박민정은 추경은이 뭐라고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뒤범벅이 되었다.한편, 옆에서 듣고 있던 박윤우는 분노가 극으로 달했다.“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우리 엄마랑 아빠 엄청 사랑하거든요! 사랑못 받는 쪽은...”박민정은 박윤우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윤우야, 그만하고 먼저 방에 들어가 있어. 어디 아파서 그러는 걸 거야. 이모랑 방에서 놀고 있어.”이윽고 가정부는 바로 박윤우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박윤우가 가자마자 추경은은 엉엉
추경은은 이마에 피가 뚝뚝 떨어지면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싫... 싫어... 가기 싫어...”진심이었다. 만약 이래도 가게 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된다.박민정은 추경은이 이 정도까지 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하지만 자기한테 이렇게 독한 사람은 남에게도 더 독하게 굴 것이다.경호원은 다소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유 대표님, 추경은 씨께서 많이 다치셨습니다.”“병원으로 데리고 가.”유남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인명피해까지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실은 그동안 추경은을 보내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네.”경호원 여러 명이 바로 다가가서 추경은을 데리고 나갔다.가는 내내 추경은은 달갑지 않아 하면서 중얼거렸다.“내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두원 별장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멀리 가고 나서야 두원 별장은 다시 조용해졌다.박민정은 자리를 찾아 앉아 유남준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괜찮아요? 병원에 갈래요?”혹시라도 그 약에 문제가 있을까 봐 걱정이된 것이었다.“아니야. 이미 확인해 보았고 별문제 없어.”박민정은 그제야 한시름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럼, 됐어요. 어디 아프면 바로 말해줘요.”자기를 관심하고 있는 박민정의 말과 태도에 유남준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려 바로 품으로 끌어안았다.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고서 다른 사람들은 바로 자리를 내주었다.거실에는 그렇게 박민정과 유남준 단둘이만 남게 되었다.유남준은 박민정의 귓가에 약간 불만한 어투로 중얼거렸다.“오늘 왜 나 혼자만 집에 남겨둔 거야?”박민정은 추경은이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만히 두고 간 건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말이다.“하랑이랑 만난다고 했었잖아요. 여자 둘만 만나는데 남준 씨가 따라가면 불편하잖아요.”박민정은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하지만 유남준은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오늘 나랑 추경은 사이에 무슨 일
무척이나 불쌍해 보이는 추경은을 마주하면서도 박민정은 눈빛이 더없이 차가웠다.“네? 경은 씨, 대체 내가 이상한 거예요. 아니면 경은 씨가 이상한 거예요? 감히 내 남편을 넘본 것으로 부족하여 어쩜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죠?”추경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저 남준 오빠 진심으로 좋아한단 말이에요.”그 말에 박민정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 말은 왠지 내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 같네요.”“그리고 가장 관건은 남준 씨가 경은 씨 싫어하잖아요. 남자한테 사랑해달라고 강요하고 협박하는 건 좀 별로지 않아요?”추경은은 주먹을 움켜쥐었다.“난...”박민정은 지금 추경은을 상대할 틈이 없었다.“별일 없으면 그만 가보시죠.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러는 데 좀 비켜줄래요?”박민정에게 도움을 청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추경은은 바로 가면을 벗어던졌다.“참 인간이 어쩜 그렇게도 융통성이 없어? 하루빨리 회사에서 쫓겨 나가길 바랄게! 그땐 나한테 도와달라고 말 꺼내지도 마.”이윽고 문을 ‘쾅’ 닫으면서 나갔다.‘참 곱게 볼 수가 없는 사람이야.’‘어디 아픈 거 아니야? 뇌 구조가 궁금할 정도야.’박민정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난 뒤 더 이상 이에 집중하지 않으려고 했다.추경은 때문에 자기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추경은은 사무실에서 나가자마자 바로 최현아에게 알렸다.“박민정이 지금 회사에 있어요.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하는 게 없어 보였어요.”“확실해요?”최현아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네! 직접 확인해 보았는데, 호산 그룹 회의 자료 그 외에 IM 그룹에 관한 서류는 없었어요.”추경은은 순간 눈빛이 싸늘해졌다.“일부러 관심 얻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만한 실려도 없으면서 말이에요.”최현아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알았어요. 계속 지켜보고 있어요.”회사 안에서 최현아와 박민정이 내기한 일은 어느새 유씨 가문 고영란 귀에까지 흘러 들어갔다.고영란은 소식을 듣자마자 다소 놀란 모
홍주영은 오늘 유남우와 함께 회사로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가게 되었다.차에서 내리겠다는 유남우의 말에 그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가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직접 찾아왔다.그리고 그녀가 마주한 것은 지금 이 끔찍한 장면이었다.홍주영은 여실히 박민정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급히 소리쳤다.“도련님, 빨리 민정 씨를 놓아주세요! 지금 위험해 보여요.”그제야 홍주영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유남우는 급히 박민정을 놓았다.하지만 이미 박민정은 얼굴이 창백하고 보랏빛이 돌 정도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민정아!”유남우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박민정은 숨을 헐떡이며 말할 겨를조차 없었고 홍주영이 다가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민정 씨, 천천히 숨을 고르세요.”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고르려 노력했다.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유남우의 눈빛에는 뚜렷한 죄책감이 어렸고 그는 손을 들어 그녀에게 다가가려 하며 나지막이 말했다.“괜찮아? 다친 데는 없지?”하지만 박민정은 곧바로 몇 걸음 물러나 그의 손길을 피했다.“나, 방금 거의 죽을 뻔했어요.”그녀는 아직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몸을 떨고 있었다. 만약 유남우가 조금이라도 더 심하게 했다면 그녀는 정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유남우의 손은 공중에서 멈춰버렸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홍주영이 대신 사과하며 말했다.“민정 씨, 죄송합니다. 도련님께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을 거예요.”홍주영은 누구보다도 유남우가 박민정에게 얼마나 집착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박민정은 방금 들었던 유남우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는지라 그녀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그녀는 겨우 몸을 추스르고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더는 오빠를 보고 싶지 않아요.”그녀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유남우의 머릿속에는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만이 맴돌았다.‘보고 싶지 않아요.’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던 홍주영은 조심스레 말했다.
박민정은 손바닥을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오빠는 거짓말쟁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오빠를 믿을 수 있겠어요? 오빠가 준 그 약들, 내가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신을 아껴주던 남우 오빠가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까지 해칠 수 있는지.유남우의 눈에는 깊은 고통이 스쳐 지나갔다.“이 방법밖에 없었어!”그는 박민정을 자기 곁에 완전히 붙잡아 둘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박민정은 냉소를 흘렸다.“방법이 이것뿐이라니. 오빠는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해요. 오빠가 이런 사람이 되어버릴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박민정의 마지막 말이 유남우의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을 끊어버린 것 같았다.그는 손을 들어 박민정의 팔을 움켜쥐었고 분노와 슬픔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변했다고? 네가 그 말을 할 자격이 있어?”유남우가 박민정의 팔을 더 강하게 움켜쥐자 그녀는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외쳤다.“이거 놔요!”하지만 유남우는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그녀를 붙잡았다.“변한 건 너야! 네가 먼저 변했어! 너 어릴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나를 좋아한다고, 크면 나랑 결혼하겠다고 했잖아!”그는 목이 메었다.“너는 나랑 유남준도 구별 못 했어.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그 인간이랑 결혼하고 그 인간을 사랑할 수 있어?”유남우의 목소리가 떨렸다.“넌 원래 나만 좋아해야 했어. 네가 변하면 안 되는 거였다고.”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유남우는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내가 헛소리를 하는 건지 아닌지, 네가 제일 잘 알 거야.”그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내가 너를 1년 넘게 보살폈어. 그런데 유남준이 나타나자마자 넌 또 유남준한테 가버렸지. 너한테 사랑은 그렇게 쉬운 거야?”박민정은 그가 너무 꽉 끌어안자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그
박예찬 역시 하루빨리 박민정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병세가 계속 나아졌다 악화됐다를 반복하며 안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 그의 마음도 놓이지 않았다.게다가 김인우와 조하랑은 여전히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 다투었고 이 끝없는 싸움이 언제쯤 끝날지 알 수 없었다.그렇게 매일 부딪히면서도 결국 두 사람이 잘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이런저런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박예찬은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박씨 가문.그날 밤, 박민정은 금세 잠에 들었다.이곳에서의 밤은 신림현에서 지낼 때와 달랐는데 전에 느끼던 두려움 없이 평온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하지만 유남준은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몇 번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민정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그녀의 휴식을 방해할까 두려워 결국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그렇게 밤새 뒤척이던 그는 다음 날 아침, 눈 밑에 푸른 기운이 남아 있을 정도로 피곤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제대로 쉬지 못한 티가 났다.유남준은 아침부터 박민정을 찾았지만 진서연에게 뜻밖의 답을 들었다.“보스는 이미 나가셨어요.”“언제 나간 거야? 어디로 갔는데?” 유남준이 다급히 묻자 진서연은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민기 씨가 따라갔으니 별일 없을 겁니다.”유남준은 그녀가 안전한지 걱정되는 한편, 어제의 감정이 풀렸는지도 알고 싶었다.한편, 박민정은 차에 앉아 어제의 불쾌한 감정을 이미 잊은 듯했다.운전기사가 차를 몰며 앞길을 달리는 동안 박민정은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정민기는 조용히 그녀를 따라가며 동행자 역할을 했다. 박민정이 묻는 질문에만 간단히 대답했을 뿐, 먼저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박민정은 그의 존재를 쉽게 잊어버릴 정도였다.얼마 후, 두 사람은 한 대학의 정문에 도착했다.이곳은 박민정이 예전에 다녔던 대학교였다.익숙하면서도 낯선 이곳에 발을 내딛으며 그녀는 말했다.“분명 여기서 학교를
저녁 식사 시간 내내 박민정은 유남준을 철저히 무시했다.유남준은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걸기로 결심했다.식사가 끝난 후 박민정이 소화를 시키기 위해 산책을 나서자 유남준은 그녀를 따라갔다.민수아와 다른 사람들은 눈치 있게 자리를 피해주었다.박민정은 걸음을 멈추고 살짝 짜증 난 표정으로 유남준을 한 번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민정아, 화 풀어.”유남준이 다가가며 말했으나 박민정은 여전히 대꾸하지 않았다.“아까는 내가 너무 성급했어.” 유남준이 다시 말을 꺼냈다.사실 박민정은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가 너무 자연스럽게 행동했던 모습이 떠올랐다.그 순간 그녀는 두 사람이 결혼 후 어떻게 지내왔는지 문득 궁금해졌다.“우리가 결혼했을 때에도 평소에 자주 내 일에 간섭했어요?”박민정이 마침내 입을 열었지만 그건 유남준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유남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급히 대답했다.“당연히 아니지.”그가 어찌 감히 박민정을 화나게 할 수 있었겠는가.“그런데 아까는 왜 그렇게 자연스러웠는데요?”박민정은 그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유남준은 말문이 막혔다. 아직 변명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는데 박민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지금은 혼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이만 얘기 그만하죠.”“민정아...”유남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그러나 박민정은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피하며 경계하는 얼굴로 말했다.“유남준 씨, 자중하세요.”유남준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민수아, 설인하, 그리고 진서연은 흥미진진하게 속닥거렸다.“무슨 일이야? 부부싸움 한 건가?”“부부싸움은 개도 안 끼는 법이라더니. 우리 얼른 자러 가자.”“나도 그게 맞는 것 같아.”그들은 수군거리며 한쪽으로 사라졌다.박민정은 그들의 말은 들리지 않는 듯 더는 산책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유남준을 뒤로 하고 거실로 돌아갔다.유남준은 딱딱하게 굳은 발걸음으로 민수아와 두 사람에게
박민정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봤는데 낯선 번호였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민정아, 나야, 에리.”청량하고 활기찬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자 박민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야?”“날 완전히 잊어버렸나 봐.”에리가 과장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예전에 나한테 밥 한 끼 빚진 거 기억 안 나? 게다가 지금 난 네 회사에 소속된 배우야. 이렇게 날 방치해서 되겠어?”그는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하며 살짝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다.박민정은 이런 방식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처음 접해본 터라 당황스러웠다.“저기, 그거... 조금만 더 미뤄도 될까?”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안 돼! 벌써 1년이나 빚진 건데 또 미루겠다고?”에리는 단호하면서도 애교를 섞어 불만을 드러냈다.옆에 서 있던 유남준은 통화 내용으로 대충 누군지 짐작이 갔다. 그는 박민정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빼앗아 들었다.예상대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에리였다.“민정아, 설마 유 대표가 우리 약속을 눈치채는 게 걱정되는 거야? 안심해. 절대 비밀로 할게!”‘우리 약속’라는 말에 유남준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에리 씨, 다시 제 아내를 귀찮게 굴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그렇게 말한 뒤 그는 단숨에 전화를 끊어버렸다.박민정은 휴대폰을 빼앗기고 전화를 끊어버린 유남준의 행동에 잠시 멍해졌다가 화가 치밀어 올랐다.“남준 씨,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그녀는 분명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남의 휴대폰을 빼앗아 전화를 끊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유남준은 그녀가 화가 난 것을 보고 곧장 해명에 나섰다.“민정아, 에리는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야. 배우라는 것들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고.”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그를 올려다봤다.“그게 당신이 내 휴대폰을 빼앗고 내 전화를 끊은 이유예요?”그녀의 차가운 시선에 유남준은 순간 말을 잃었다.어쩐지 아내 앞
박민정이 회사로 복귀한 후 긴장감이 감도는 사람은 윤소현뿐만이 아니었다. 이지원 역시 초조해하고 있었다.어렵사리 다시 연예계에 복귀한 그녀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들이 박민정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드러날까 두려웠다.이지원은 종종 몰래 박민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하곤 했다.그날도 촬영을 마친 뒤 그녀의 차는 PMJ 회사 앞에 멈춰 있었다.이지원은 차 안에 앉아 박민정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드디어 박민정이 회사에서 나오는 것이 보이자 이지원은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하이힐을 신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도드라진 모습으로 걸음을 옮겼다.박민정도 그녀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누군지 알아보기 전에 이지원은 그녀 앞까지 다가와 길을 막아섰다.“민정 씨, 드디어 돌아왔네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박민정의 마음 한구석에 본능적인 반감이 피어올랐다.비록 그녀는 이지원이 저질렀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만으로도 불쾌감을 느꼈다.이때 진서연이 재빠르게 박민정 앞을 막아섰다.“당신 누구에요?”이지원은 그제야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는데 필러로 채워진 얼굴이 드러났다. 시간의 흔적과 연예계의 생존 경쟁 속에서 그녀는 온갖 방법으로 외모를 유지하려 애썼다.진서연은 그녀를 알아보자 얼굴을 찌푸렸다.“이지원 씨, 여기 왜 온 거예요? 또 우리 보스한테 해코지하려는 거 아니에요?”이지원의 눈에 차가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천한 년!'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박민정에게 말했다.“민정 씨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상태가 어떤지 보러 온 거예요.”박민정은 냉랭하게 대꾸했다.“그렇다면 고맙네요.”그녀의 말투는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이지원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박민정이 아직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혹시라도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요. 부담 갖지 말고.”이지원은 친절한 척 덧붙였다.“우리 보스가 당신 같은 사람을 찾을 일은 없으니 그만 꺼져요!”진서연
“민정아, 엄마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 말아줄래? 날 욕해도, 화를 내도 괜찮으니 제발 그렇게 차갑게만 하지 말아줘, 응?”정수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지만 박민정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저는 화낼 이유가 없어요.”박민정은 솔직하게 말했다.지금의 그녀는 예전과 달랐다. 과거에는 기억이 있었기에 정수미가 친모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에도 냉대를 받을 때마다 깊이 상처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었다.그녀는 눈앞의 정수미를 낯선 사람처럼 느꼈고 그래서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않았다.정수미는 목이 칼로 베인 듯한 고통을 느꼈다.“모두 내 잘못이야... 전부 내 잘못이야...”어떻게 해야 박민정에게 사죄하고 보상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정수미는 눈을 떨구고 등을 살짝 구부린 채 방을 떠났다.그녀가 떠난 뒤, 진서연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물었다.“보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이를 다치게 했다니, 무슨 소리죠?”박민정은 어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진서연에게 설명했고 진서연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분노를 터뜨렸다.“윤소현이 어떻게 그런 모함을 할 수 있죠? 제 생각엔 일부러 자기 아이를 다치게 한 게 틀림없어요.”그녀는 단 한마디로 진실을 꿰뚫었지만 박민정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설마. 그래도 자기 친딸인데.”“그 여자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진서연은 단호히 말한 뒤 박민정을 위로했다.“보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꼭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박민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래.”하지만 진서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여러 차례 그녀에게 당부를 했다.박민정은 기억을 잃은 후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기억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직 성과는 없었다.그녀는 오늘도 진서연과 함께 회사로 출근했다.점심시간, 박민정은 모두가 쉬고 있을 때 잠깐 밖에 나가겠다며 자리를 떴다.그녀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주
가정부가 나가고 나자 정수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어떻게 이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지?”정수미는 깊은 후회에 사로잡혔다. 왜 하필 윤소현을 입양했을까?비서도 믿기 힘든 듯 고개를 저었다.“큰아가씨의 복수심이 너무 강해요. 자신의 딸마저 이용하다니요.”비서는 윤소현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정수미가 박민정, 그녀의 친딸을 미워하게 만들려 한 것이다.“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정수미는 스스로 중얼거리며 비서에게 묻는 듯 자신에게 묻는 듯한 말을 했다.비서는 사적인 가정사에 대해 조언할 수 없었기에 침묵을 지켰다.오랜 고민 끝에 정수미는 윤소현의 방으로 향했다.윤소현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이의 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고열까지 나고 있는데도 이렇게 편안히 잠들 수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소현아!”정수미가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녀를 깨우자 윤소현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눈을 떴다.“엄마, 이 시간에 무슨 일이길래 제 방에 오신 거예요? 쉬셔야 할 시간 아니에요?”정수미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너랑 얘기할 게 있어서 왔다.”윤소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무슨 얘긴데 내일 하면 안 돼요?”“다혜와 민정이에 대한 얘기야.”정수미의 목소리는 냉랭했다.그 말을 듣자 윤소현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엄마, 박민정한테 경고할 거죠?”흥분한 그녀의 말투에 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아니, 너한테 경고하려고 왔어.”정수미의 단호한 말에 윤소현은 멍해졌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정수미는 가정부가 털어놓은 모든 진실을 이야기했고 윤소현은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멍해졌다.“엄마, 그 여자의 헛소리를 믿지 마세요! 다혜의 친엄마인 제가 어떻게 제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처음엔 나도 네 말을 믿었다. 네가 민정이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네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민정이를 경찰에 넘긴 거였어. 그런데 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정말 실망이야.”정수미는 깊이 한숨을
비서는 정수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제 생각에 둘째 아가씨는 아이에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사람 같지 않아요.”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래. 하지만 소현이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 내가 그때 민정이를 도왔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 어떤 난리를 칠지 몰랐겠지.”정수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혜 일은 빨리 조사해 봐.”“알겠습니다.” 비서가 대답했다.정수미는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외손녀를 바라보며 다짐했다.“다혜야, 걱정하지 마. 외할머니가 꼭 널 다치게 한 사람을 찾아낼게.”그녀는 윤소현을 편드는 것도, 박민정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지금은 윤소현을 달래며 조용히 진실을 파악하려 했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내기 위해.밤이 깊었을 때, 정수미는 아이를 돌보던 가정부를 불렀다.“자, 말해 봐. 오늘 왜 거짓말을 했는지. 누가 너한테 뭔가를 줬니?”가정부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대표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저는 거짓말 안 했습니다. 정말로 사모님께서 그랬어요.”정수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아직도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거야? 병원에서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민정이가 다혜를 안은 뒤로 다혜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했지. 그런데 이제 와서 대체 어떻게 그게 민정이가 했다는 걸로 바뀐 거지? 네가 직접 민정이가 아이를 해치는 걸 봤어?”가정부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얼버무렸다.“민정 아가씨가 다혜를 때리는 걸 희미하게 본 것 같아요...”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희미하게 봤다고? 그럼 왜 그 자리에서 막지 않았지?”가정부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 그게 제가 혹시 잘못 본 걸까 봐...”그녀의 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정수미는 확신했다. 이건 명백히 거짓말이었다.“분명히 말하는데 네가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하면 용서해 줄 테지만 계속 거짓말을 한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정수미의 위협에 가정부는 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