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 그룹 마케팅 5팀의 팀원들은 당분간 모두 박민정을 도와주게 되었다.박민정 밑으로 들어가기 전에 최현아는 마케팅 5팀의 책임자로서 회의도 열었었다.“당분간 같이 일하는 것뿐이니 너무 밭들이지 않아도 돼. 그리고 어디까지나 비서밖에 되지 않으니 너무 기어들어 가지도 마. 알았어?”팀원들은 당연히 최현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분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지는 말고.”최현아는 웃으면서 말했다.‘어디 감히 내 자리를 넘봐! 자기 주제도 모르고!’“네, 알겠습니다.”팀원들은 당분간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생각에 좋기는 했지만 걱정도 들었다.“근데 언제까지 놀아줘야 하는 겁니까? 책임져야 할 식솔이 한둘이가 아니라 인셉티브가 필요해서 그럽니다. 한 달 임금으로는 턱 없이 부족한 세상이잖아요.”최현아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했다.박민정과 체결한 계약서에 계약 기간이 빠졌다는 것을 말이다.이윽고 최현아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박 비서님, 우리 팀 팀원들이 묻고 있어서 그래요.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팀원들이 허구한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따라다닐 수 없다고 하네요. 다들 마케팅으로 먹고 사는데 실적이 있어야 받는 돈도 많아지는 거잖아요.”팀원들 앞이라 최현아는 팀장다운 모습으로 존댓말까지 써가면서 물었다.박민정은 한창 땅의 주인과 주위의 각종 시설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었다.어느 정도 계획이 생긴 박민정은 바로 ‘계약 기간’을 정해주었다.“보름이요.”‘보름? 겨우 보름?’‘설마 IM 그룹 공급업체랑 아는 사이인가?’“안 됩니다. 보름은 너무 길고 딱 10일만 드립니다.”“10일이요?”‘그건 좀 너무 급한데...’“우리 팀에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데... 그 모든 팀원이 모여서 공급업체 하나 빼앗는데 정신을 몰두해야겠어요? 10일이면 충분하지 않아요?”박민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러기로 했다.“그래요.”속도만 좀 높이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최현아는 그제야 전화를
“앞으로 계속 그렇게 빈대처럼 지낼 것입니까?”박민정은 팀원들의 출근 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조금 전까지 박민정을 반박하던 팀원들은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돈은 자기 주머니에 넣으려고 버는 것입니다. 전 지금부터 10일 내로 반드시 마케팅 5팀의 책임자가 될 것입니다. 꼭 그렇게 약속드리겠습니다. 이번 달부터 돈을 벌고 싶으시면 열심히 일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어떠한 도움도 필요 없으니 그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만 하면 됩니다. 귀찮게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입니다.”말을 마치고 박민정은 바로 그 사무실에서 나왔다.두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는 ‘팀원’들을 뒤로 한 채로 말이다.‘이게 다야?’‘도움이 필요 없다고?’‘10일 내로 팀장이 된다고? 허풍은...’‘보나 마나 유씨 가문 며느리 신분을 이용하려는 속셈인 것 같네.’마케팅 5팀의 사람들은 각자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박민정은 팀원들을 더 이상 엮지 않고 회사에서 딱 3시간만 일하고 퇴근했다.퇴근하려는 박민정을 보고서 추경은은 마냥 의문이 들었다.“새언니, 벌써 가려고요?”“네. 일찍 가려고요. 오늘 윤우랑 같이 저녁 먹기로 했거든요.”“근데 이제 4시밖에 되지 않았는데요?”“그래서요? 윤우한테 직접 저녁 해 주려고요.”박민정은 추경은을 흘겨보면서 말했다.순간 추경은은 말 문이 턱 막혀 버렸다.박민정이 공급업체를 찾으러 갈까 봐 바로 박민정 따라서 최근을 했다.그러나 유남준이 마중하러 왔고 두 사람은 과연 퇴근했던 것이었다.그 뒤로 이틀 동안 박민정은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갔다.음악 작업실에서 곡을 쓰지 않으면 박윤우의 저녁을 직접 챙기고 했었다.10일 밖에 시간이 없는데도 전혀 서두르지 않고 말이다.심지어 주말에는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추경은은 집에서 박민정네 일가족을 지키고 있었는데, 부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엄마, 지난번 캠핑한 뒤로 우리 나들이 간 지 오래됐어.”박윤우는 박민정이 말한 대로 물었다.“형도 함께 공원으로
박예찬이 당황해 마지 못할 때 박민정은 이미 만족한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하랑아, 오늘 윤우도 좀 봐줘.”조하랑은 마냥 이상하기만 했다.“급한 일 있다고 하더니 그게 뭔데? 뭐길래 이렇게까지 숨기는 거야?”“그냥 일이야. 주말에 해야 할 일.”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 조하랑에게 아직 말하기 난감했다.비록 궁금해 미칠 것 같았지만 조하랑은 더 이상 깊이 묻지 않았다.“너 임신한 몸이야. 그게 뭐든 꼭 조심하고.”박민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이윽고 박민정은 박윤우에게 말했다.“윤우야, 오늘 하랑 이모랑 형이랑 재밌게 놀고 있어. 말 잘 듣고.”박윤우 역시 의문이 들기는 매한가지였다.‘일 있으면 나 그냥 집에 놔주고 와도 되는데...’‘집에 있으면 하랑 이모 귀찮게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야?’실은 박윤우를 집에 놔두면 추경은이 무엇인가를 느끼고 자기와 함께 나오려고 할까 봐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말썽 피워도 형이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자기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박윤우는 잘 알고 있다.평소에 박예찬을 괴롭힐 수 있으나 큰 일 앞에서는 반드시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이때 박예찬도 덧붙였다.“엄마, 얼른 가서 일 봐. 내가 윤우 잘 지키고 있을게.”순간 조하랑은 약간 민망하기도 했다.자기보다 더 어른답고 성숙한 박세찬의 언행에 말이다.하물며 심씨 가문과 유씨 가문에서 보낸 경호원도 모두 근처에 있으니 아이들의 안전 문제는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다.“얼른 가.”조하랑이 말했다.“알았어.”박민정은 그제야 공원에서 나왔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민기에게 뒤따라오라고 했다.정민기가 있는 한 어디로 가든 그리 두렵지 않았다.박민정은 정민기에게 시간이 되면 무술도 배우고 경호원도 하라고 했었다.앞으로 언젠가는 그 역할을 발휘하게 될 날이 생길 것 같아서 말이다.정민기가 운전한 차를 타고서 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개간하지 않은 땅에 이르게 되었다.이곳은
“이건 뭐지?”가정부는 의문이 가득했다.집안에는 가정부 말고도 다른 도우미들도 적지 않다.결벽증이 다소 심한 유남준을 주인으로 모시면서 그 어느 곳에서도 먼지 하나 만져낼 수 없게 청소하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다.그러한 환경 속에서 갑자기 하얀 가루가 나타나니 당황하고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가장부는 티슈로 그 하얀 가루를 깨끗이 닦아서 휴지통에 버렸다.한편, 추경은은 물 한 잔을 이미 유남준에게 건네주었다.“남준 오빠, 물 마셔.”물잔을 건네받은 유남준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바로 마셨다.꿀꺽꿀꺽 거침없이 물을 들이마시고 있는 유남준을 바라보면서 추경은은 심장이 두근거렸다.거의 다 마시자 추경은은 바로 물잔을 도로 손에 넣었다.“컵 좀 씻고 올게. 물 더 마시고 싶으면 나한테 말해.”물잔에 증거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추경은은 바로 증거를 인멸하려고 했다.깨끗이 여러 번이나 씻고 또 씻고 나서야 원래 자리에 도로 올려 놓았다.가정부는 암암리의 추경은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았는데, 의문은 점점 더 짙어지게 되었다.전과 같았더라면 추경은은 손에 물을 대자마자 바로 가정부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었다.지금처럼 저렇게 세심하게 잔을 씻을 리가 없단 말이다.추경은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또다시 가정부와 눈이 마주치면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요. 근데 오늘따라 왜 그렇게 깜짝깜짝 놀라는 거죠?”해서는 안 될 일을 한 사람처럼 말이다.추경은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오늘 별일 없으면 나가서 좀 쉬세요. 여긴 내가 알아서 하면 돼요.”가정부가 계속 집 안에 있으면 유남준에게 손을 쓸 틈이 없게 되니 말이다.“아니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사모님께서 오늘 꼭 집에 있으라고 당부하셨어.’같은 여자로서 가정부는 박민정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비록 유남준은 세상 까칠하고 범접할 수 없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명하고 돈도 많으니 많은 여자들이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얻
옷을 야하게 입고 있는 추경은.지금 추경은은 유난히 낭패한 모습으로 유남준의 다리를 붙잡고 있다.“남준 오빠, 나 좋아하지 않아? 조금이라도.”가정부와 도우미들은 추경은의 말을 모두 똑똑히 듣게 되었다.그리고 가정부는 그제야 추경은이야말로 유남준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유남준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여자에게 손을 댄 적이 없는데, 이번 일로 그 원칙이 무너지고 말았다.한방에 추경은을 멀리 차 버렸으니 말이다.“꺼져!”이윽고 문 앞에서 구경하고 있던 그들에게 말했다.“의사 불러와.”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남준 역시 자기가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었다....두원 별장 안은 그렇게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박민정은 지금 한창 땅 주인과 계약서를 체결하고 있었다.“IM 그룹에서 정말로 계약을 엎을까요?”“IM 그룹에서 얼마나 많은 회사를 합병하고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를 빼앗아 갔는지 아세요? 빌딩이나 세우고 랜드마크를 세울 돈이 남아있을 것 같아요?”박민정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저 호산 그룹에서 온 거예요. 호산 그룹이 진주시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모릅니까?”남자 사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호산 그룹이야 당연히 믿죠. 다만 전에 IM 그룹과 계약하기로 이미 약속을 했었는데, 땅을 그쪽에게 넘기면 IM 그룹에서 보복이라도 하면 어떡하죠?”“이쪽 바닥은 원래 그래요.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앞으로 사장님 뒤에는 저희 회사가 지지하고 있을 거예요. 하물며 복수한다고 한들 그건 불법이잖아요.”“네! 그럼, 사인할게요.”그렇게 박민정은 IM 그룹의 프로젝트를 빼앗아 왔다.박민정은 꽤 운이 좋았던 편에 속한다.왜냐하면 오늘 이 사장은 IM 그룹과 최종 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따라서 오늘 IM 그룹에서 하지 못한 서류까지 모두 받아내면서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게끔 한발 앞서게 되었다.정민기 역시 박민정의 모습에 속으로
“사모님.”가정 의사였다.‘의사까지 왔단 말이야?’박민정은 슬슬 두려움이 밀려왔다.‘남준 씨가 또다시 기억을 잃은 걸까?’가정 의사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서 박민정은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서 있는 가정부와 도우미들, 소파에 앉아 있는 유남준, 그리고 야한 옷차림으로 처량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추경은이 보였다.그리고 추경은 앞에는 가정부가 모아둔 하얀 가루가 있었다.박민정이 온 것을 보고 추9경은은 울먹이면서 말했다.“새언니, 나랑 남준 오빠 사랑하게 해주세요.”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박민정이다.‘뭐? 뭘 해달라고?’비록 두 사람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대사가 영... 그러했다.‘제삼자는 넌데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가정부와 도우미들 역시 당황해 마지 못했다.추경은은 박민정을 향해 벌벌 기어가면서 말했다.“새언니, 저 어릴 적부터 남준 오빠 좋아했었어요. 남준 오빠가 너무 좋아요... 좋아서 죽을 것 같다고요! 새언니가 이해하지 못할 사랑을 하고 있다고요!”“새언니랑 남준 오빠 사이는 사랑이 아니라 그냥 가족 간의 정이라는 거 잘 알고 있어요. 아이가 있어서 할 수 없어 같이 살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고요.”“새언니만 괜찮다고 하면 앞으로 윤우랑 세찬이한테 정말 잘할게요. 절대 구박도 하지 않고 새엄마 노릇 잘하면서 살게요.”“믿지 못하겠으면 앞으로 평생 아이를 낳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절대 아이들의 상속권도 빼앗아 가지 않을게요.”박민정은 추경은이 뭐라고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뒤범벅이 되었다.한편, 옆에서 듣고 있던 박윤우는 분노가 극으로 달했다.“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우리 엄마랑 아빠 엄청 사랑하거든요! 사랑못 받는 쪽은...”박민정은 박윤우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윤우야, 그만하고 먼저 방에 들어가 있어. 어디 아파서 그러는 걸 거야. 이모랑 방에서 놀고 있어.”이윽고 가정부는 바로 박윤우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박윤우가 가자마자 추경은은 엉엉
추경은은 이마에 피가 뚝뚝 떨어지면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싫... 싫어... 가기 싫어...”진심이었다. 만약 이래도 가게 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된다.박민정은 추경은이 이 정도까지 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하지만 자기한테 이렇게 독한 사람은 남에게도 더 독하게 굴 것이다.경호원은 다소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유 대표님, 추경은 씨께서 많이 다치셨습니다.”“병원으로 데리고 가.”유남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인명피해까지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실은 그동안 추경은을 보내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네.”경호원 여러 명이 바로 다가가서 추경은을 데리고 나갔다.가는 내내 추경은은 달갑지 않아 하면서 중얼거렸다.“내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두원 별장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멀리 가고 나서야 두원 별장은 다시 조용해졌다.박민정은 자리를 찾아 앉아 유남준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괜찮아요? 병원에 갈래요?”혹시라도 그 약에 문제가 있을까 봐 걱정이된 것이었다.“아니야. 이미 확인해 보았고 별문제 없어.”박민정은 그제야 한시름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럼, 됐어요. 어디 아프면 바로 말해줘요.”자기를 관심하고 있는 박민정의 말과 태도에 유남준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려 바로 품으로 끌어안았다.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고서 다른 사람들은 바로 자리를 내주었다.거실에는 그렇게 박민정과 유남준 단둘이만 남게 되었다.유남준은 박민정의 귓가에 약간 불만한 어투로 중얼거렸다.“오늘 왜 나 혼자만 집에 남겨둔 거야?”박민정은 추경은이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만히 두고 간 건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말이다.“하랑이랑 만난다고 했었잖아요. 여자 둘만 만나는데 남준 씨가 따라가면 불편하잖아요.”박민정은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하지만 유남준은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오늘 나랑 추경은 사이에 무슨 일
무척이나 불쌍해 보이는 추경은을 마주하면서도 박민정은 눈빛이 더없이 차가웠다.“네? 경은 씨, 대체 내가 이상한 거예요. 아니면 경은 씨가 이상한 거예요? 감히 내 남편을 넘본 것으로 부족하여 어쩜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죠?”추경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저 남준 오빠 진심으로 좋아한단 말이에요.”그 말에 박민정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 말은 왠지 내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 같네요.”“그리고 가장 관건은 남준 씨가 경은 씨 싫어하잖아요. 남자한테 사랑해달라고 강요하고 협박하는 건 좀 별로지 않아요?”추경은은 주먹을 움켜쥐었다.“난...”박민정은 지금 추경은을 상대할 틈이 없었다.“별일 없으면 그만 가보시죠.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러는 데 좀 비켜줄래요?”박민정에게 도움을 청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추경은은 바로 가면을 벗어던졌다.“참 인간이 어쩜 그렇게도 융통성이 없어? 하루빨리 회사에서 쫓겨 나가길 바랄게! 그땐 나한테 도와달라고 말 꺼내지도 마.”이윽고 문을 ‘쾅’ 닫으면서 나갔다.‘참 곱게 볼 수가 없는 사람이야.’‘어디 아픈 거 아니야? 뇌 구조가 궁금할 정도야.’박민정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난 뒤 더 이상 이에 집중하지 않으려고 했다.추경은 때문에 자기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추경은은 사무실에서 나가자마자 바로 최현아에게 알렸다.“박민정이 지금 회사에 있어요.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하는 게 없어 보였어요.”“확실해요?”최현아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네! 직접 확인해 보았는데, 호산 그룹 회의 자료 그 외에 IM 그룹에 관한 서류는 없었어요.”추경은은 순간 눈빛이 싸늘해졌다.“일부러 관심 얻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만한 실려도 없으면서 말이에요.”최현아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알았어요. 계속 지켜보고 있어요.”회사 안에서 최현아와 박민정이 내기한 일은 어느새 유씨 가문 고영란 귀에까지 흘러 들어갔다.고영란은 소식을 듣자마자 다소 놀란 모
문밖에 갇힌 채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유남준의 눈에는 어쩔 수 없는 무력감이 서렸다.그는 대체 언제쯤 아내와 제대로 함께 지낼 수 있을까?두 사람은 이미 오래된 부부나 다름없건만 정작 함께하는 모습은 연애 초기보다도 못했다.오전 아홉 시가 넘어서야 윤소현은 정수미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곧장 병실로 향했다.그곳에서 정수미가 의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그녀의 마음은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엄마, 깨어나셨어요? 왜 비서에게 미리 연락하라고 하지 않으셨어요?”정수미는 차가운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리더니 먼저 의사에게 나가달라고 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비서에게 들었어. 너랑 민정이가 밤새 나를 지켰다고. 괜히 너희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긴장된 마음으로 한 걸음씩 다가서며 윤소현이 말했다.“엄마, 전 엄마 딸이에요. 그런 걸 신경 쓸 필요가 어디 있어요?”이어서 그녀는 걱정스럽게 물었다.“지금 몸은 좀 어떠세요? 의사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많이 나아졌어.”정수미가 잠시 말을 멈춘 뒤 덧붙였다.“의사 말로는 아마도 상한 음식을 먹은 탓일 거라고 하더구나.”“어제 저희가 요리사에게 같은 음식을 다시 만들게 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무언가 찾아내셨나요?” 윤소현은 다급히 물었는데 혹여 정수미가 진실을 알게 될까 두려웠다.그러나 정수미는 고개를 저었다.“의사는 음식에서 아무런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어. 아마도 고객과 외식하는 자리에서 뭔가 잘못된 걸 먹었을 거라고 하더구나.”그 말을 듣고서야 윤소현은 긴장했던 마음을 살짝 놓을 수 있었다. 다행히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모양이었다.“앞으로는 꼭 조심하셔야 해요.”“그래야겠지.” 정수미가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녀가 윤소현을 바라보는 눈빛은 묘하게 의미심장했다.“엄마, 민정이는 어디 갔어요?”주위를 둘러보던 윤소현은 박민정이 보이지 않자 자연스레 물었다.“이제 난 괜찮으니 민정이에게 돌아가 쉬라고 했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만약 엄마께
박민정도 이번만큼은 그녀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그렇게 정수미는 드디어 박민정의 얼굴을 만져볼 수 있었고 뜨거운 촉감은 그녀가 지금 꿈꾸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해줬다.그리고 어느새 누가가 빨개진 채 계속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민정아, 민정아...”“네, 저 여기 있어요.”“내가 지금 꿈꾸는 게 아니라 진짜 우리 민정이구나. 난 네가 또, 또 사라지는 줄 알았어.”정수미는 아주 기나긴 악몽을 꾸게 되었는데 꿈속에서 누군가가 자기 딸을 데려갔고, 또 나중에 박민정을 만났는데 꿈속의 그녀는 절대 정수미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차갑게 말했다.박민정은 그런 정수미의 모습을 보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유남준이 마침 마실 물을 가져왔고 박민정은 조심스레 그녀에게 먹여줬다.의사도 와서 다시 한번 정밀 검사를 해줬다.모든 검사가 끝난 뒤 의사는 병실 밖에서 그들에게 결과를 말해줬다.길연서도 인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깼다.“정 대표님께서 혹시 깨어나셨나요?” 그녀가 묻자 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방금 깨어나셨어요.”길연서는 빠르게 핸드폰을 꺼냈다.“지금 당장 큰 아가씨한테 알릴게요.”막 통화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데 의사가 길연서 더러 먼저 병실 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전했다.그리고 침대에 누워있던 정수미는 그녀를 보자마자 귓가에 무언가 말해줬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길연서는 다시 핸드폰을 끄더니 이후에도 윤소현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박민정과 유남준은 밖에서 기다리다가 길연서의 부름에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정수미가 한껏 기운 없는 목소리로 박민정을 불렀고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갔다.그러자 정수미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민정아, 괜히 나 때문에 온 밤 고생했어. 이제 괜찮으니까 너도 빨리 돌아가서 쉬어.”“네.”박민정은 가볍게 대답만 했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그녀가 깨어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그렇게 두 사람을 떠나보내자마자 정수미는 갑자기 침대에 털썩하고 쓰러지더니
기다린 지 벌써 세 시간이 넘었으나 정수미는 여전히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길연서는 야식을 배달시켰다. “두 분은 이것 좀 드시고 가서 쉬어요. 여기는 제가 있을게요.”윤소현은 진작에 졸려서 죽을 것 같았는데 그녀의 말에 음식을 힐끗 보더니 손을 저으며 답했다.“저는 안 먹을래요. 시간도 늦었고 지금 먹으면 살도 찌고 건강에도 안 좋아요.”말을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서며 기지개를 켰다.“그럼 전 이만 쉬러 갈 테니까 제 동생이랑 지키고 있어요. 혼자서 지키면 제가 마음이 안 놓여서요.”사실 윤소현은 다른 계획이 있었다.그러나 박민정은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졸리지도 않았고 이따 유남준이 오기에 그를 기다려야 했다.윤소현이 떠나가자마자 길연서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20년 넘게 키운 수양딸이라고 해도 어떻게 지금껏 헤어져 있었던 친딸보다 더 정이 없는지, 길연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둘째 아가씨, 아니면 저기 간병인 침대에서 잠깐만이라도 눈 좀 붙이세요.”그러나 박민정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아직 안 졸려요.”“그럼 뭐라도 좀 드세요.”박민정은 그녀의 말대로 음식을 조금 가져와서 먹은 뒤 계속 앉아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유남준이 찾아왔는데 가녀린 몸으로 정수미 곁을 지키고 있는 박미정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팠다.“민정아.”박민정은 지금 유남준을 보기만 해도 무섭고 떨렸다.“왔어요?”원래 유남준에게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기어코 아이들을 재우고 이쪽으로 달려왔다.길연서는 정수미의 사위가 온 모습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인사했다.“유 대표님.”“안녕하세요.”“그럼 말씀 나누세요.”굳이 부부 사이에 끼기 싫어 길연서는 재빨리 자리를 떴다.박민정은 원래 그녀를 불러세우려고 했으나 한발 늦은 것 같았다.그렇게 병실 안에는 유남준과 박민정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이때, 박민정이 어색함을 깨려고 먼저 말을 걸었다.“이만 돌아가서 쉬어요. 시간도 늦었고 내일 출근해야 하
어쨌든 정수미는 박민정의 친엄마다.길연서는 박민정의 말을 듣고나서야 안심되었다.그러나 윤소현은 계획이 틀어지자 박민정에게 한껏 비꼬는 말투로 물었다.“민정아, 설마 엄마 유산을 네가 못 받을까 봐 걱정돼서 여기 남겠다는 건 아니지?”박민정은 원래 그녀와 입씨름하기 싫어 그냥 무시하려고 했는데 자꾸 자극하는 윤소현을 더는 봐주기 힘들어 이참에 깔끔하게 인정하기로 했다.“맞아요. 정 대표님은 제 친엄마인데 당연히 제가 유산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요? 더구나 유언장에도 제가 유산 절반을 상속받는다고 되어있고요.”박민정이 살짝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만약 정 대표님께서 진짜 돌아가셨는데 제가 없는 틈에 누군가가 유언장에 손을 대면 어떡해요?”“너!”윤소현이 박민정의 뺨을 때리려고 손을 높게 들자 옆에 서 있던 정민기가 단번에 그녀의 팔목을 잡고 내팽개쳤다.그러다가 윤소현은 뒤로 몇 발짝 휘청거리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박민정, 엄마가 죽길 바라는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윤소현이 불같은 화를 냈지만 박민정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수술실 문 쪽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오래 기다린 끝에 마침내 수술실 문이 열리면서 정수미가 밀려 나오자 윤소현이 빠르게 달려가 의사한테 물었다.“의사 선생님, 저희 엄마는 괜찮나요?”그러자 의사가 대뜸 엄숙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혹시 환자분께서 어제저녁이랑 오늘 아침에 뭘 드셨을까요?”순간 윤소현은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늘 드시던 음식이었어요.”자신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녀는 한껏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한 분이 대표로 가서 혹시 환자분이 먹다 남은 음식이 있으면 싸 오세요.”의사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길연서는 곧바로 집안 도우미에게 전화하려고 했지만 윤소현이 그녀를 말렸다.“매일 먹다 남긴 음식은 모두 음식물 쓰레기 통에 버리는데 그걸 어떻게 갖고 와요? 의사 선생님, 우리 엄마는 대체 왜 저렇게 된 걸까요?”“일단 응급처치해서 맥박은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여
그렇더라도 이상하게 이번이랑 지난번이랑 느낌이 다른 것 같았다. 지난번에는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아무 미련없이 돌아섰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자꾸만 머릿속에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이게 한 사람에게 감정이 있는 거랑 없는 것 차이일 것이다.오후가 되어서야 박민정은 진서연과 에리가 가짜 연인 연기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두 사람은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야?”그녀의 물음에 진서연이 답했다.“에리 씨 아버님이랑 어머님께서 크게 실망하실까 봐요.”“이러다가 나중에 들통나면 오히려 더 불쾌해하실 거야. 그때 가서 했던 말들을 주워 담기에는 이미 늦었고.”“에리 씨가 요 며칠 시간을 이용해서 최대한 빨리 여자 친구를 찾겠대요. 그러면 저는 슬쩍 빠지면 되거든요.”“그래.”박민정은 더 이상 말하기도 뭐했다.저녁 퇴근길에 그녀는 정민기의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급정거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는데 하마터면 앞에 차를 들이받을 뻔했다.정민기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며 그녀에게 연신 사과했다.“정말 죄송합니다.”여태껏 운전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실수를 범했는데 한눈에 봐도 정민기는 지금 온통 진서연과의 일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민기 씨, 혹시 서연이랑 무슨 오해가 생긴 건가요?”박민정의 물음에 정민기는 자기도 모르게 핸들을 꽉 쥐었다.“아니요.”그가 부정하는 모습에 박민정은 원래 진서연과 에리 사이의 일을 솔직하게 말해주려 하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을 보니 정수미 비서인 길연서였다.“여보세요? 무슨 일이시죠?”“둘째 아가씨,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병원에 한 번 와주실 수 있을까요? 정 대표님께서 지금 응급실에 실려 왔거든요.”울먹이면서 말하는 비서의 목소리에 박민정도 순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네, 바로 가겠습니다.”정민기는 그길로 박민정을 병원까지 데려다줬다.도착해보니 응급실 복도에서 윤소현이 안정부절못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사실 그녀는 어제 정수미와 이모 정주보가 통화하는 걸 우연히
에리는 그런 그녀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하늘 아래에 널린 게 남잔데 왜 하필 정민기 씨에요?”그도 정민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아우라를 보고는 분명 평범한 보디가드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에리 씨는 아마 모를 거예요. 저 같은 여자가 그런 남자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건 하늘에 별 따기라는 사실을요.”진서연은 자신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정민기는 마치 드라마 속의 여느 멋진 남주처럼 느껴지면서 더욱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에리는 반지를 다시 그녀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아니에요. 이건 제가 드리는 위로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받아요.”에리는 항상 씀씀이가 컸고 더구나 아직 여자 친구가 없는 그로서는 반지를 다시 돌려받는다고 해도 줄 사람이 없었다.진서연은 원래 기뻐해야 할 상황이지만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다.“싫어요. 이런 반지는 나중에 진짜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한테서 받을래요.”에리는 난생처음으로 여자에게 준 선물을 거절당했는데 순간 자신이 저따위 보디가드보다 매력이 없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그럼 이렇게 합시다. 어차피 지금 헤어진 마당에 그냥 제 가짜 여자 친구가 되는 건 어때요? 당연히 이에 따르는 보상도 있고요.”에리는 잠깐 뭔가를 고민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아직 그 사람이 신경 쓰이잖아요. 그러면 정민기 씨도 서연 씨가 신경 쓰이게 저를 이용해서 한번 자극해 보는 건 어때요?”“정민기 씨는 자기랑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는데 바로 저 같은 대스타랑 연애한다고 생각하면 분명 배 아파할 겁니다.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잖아요? 많은 여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남자들한테 자신이 매우 인기가 있다는 걸 느끼게 만들잖아요.”진서연은 어느새 눈물콧물 범벅이 된 채 그에게 물었다.“그래도 될까요?”“어차피 헤어졌는데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죠.”그렇게 두 바보는 이상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민수아가 지나가다가 두 사람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어 박민정의 사무실로 돌
박민정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왜?”그러자 진서연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저도 모르겠어요.”어제 집에 돌아간 뒤, 진서연이 막 자려고 누웠는데 정민기가 갑자기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하여 진서연은 두 사람 사이에 드디어 진전이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건 정민기의 이별 선고였다.그리고 그녀는 지금까지 멍한 상태였다.낮에는 별말이 없었다가 왜 저녁에 갑자기 헤어지자고 했는지 알 수 없었다.“이유가 뭔지 물어봤어?”“우리 두 사람은 안 어울린대요.”진서연은 어느새 눈가가 빨개져서는 겨우 말을 이었다.“그러면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말했어야지 왜 이제 와서 안 어울린다고 할까요? 설마 밖에 다른 여자가 생긴 건 아니겠죠?”“설마.”박민정은 정민기가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러면 왜 그럴까요? 갑자기 저한테 흥미가 떨어졌을까요?”진서연은 박민정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다시 중얼거렸다.“내가 못 생겨서 질렸나?”진서연은 진심으로 정민기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니 자꾸 이상한 생각만 들면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분명 무슨 오해가 있다고 생각해. 일단 조급해하지 말고 내가 기회를 봐서 민기 씨한테 물어볼게.”“네.”진서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걱정스레 말했다.“혹시 물어보실 때 절대 제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가볍게 원인만 물어봐 주시면 돼요. 네?”비록 헤어졌지만 자존감은 지키고 싶었고 정민기한테 집착하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그래, 알겠어.”박민정은 먼저 진서연을 회사로 보낸 뒤 곧바로 씻으러 갔다.“민정아, 왜 날 피해?”유남준이 언제부터 화장실 문 어구에 서 있었는지 박민정은 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하마터면 양치하던 물을 삼킬 뻔했다.“설마요. 제가 왜 남준 씨를 피하겠어요?”유남준은 그녀가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진짜 일부러 피한 게 아니라고?”그가 들어오면서 순간 화장실이 좁아졌는데 박민정은 숨을 한번 깊게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진서연은 볼록해진 배와 트림까지 하더니 대뜸 감탄하기 시작했다.“에리 씨는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자랐을 텐데 너무 행복했겠어요.”“서연 씨는 식성이 좋아서 뭐든 다 맛있다고 하는 것 같은데요?”그녀의 말대로 에리는 어렸을 때부터 산해진미를 먹고 자라서 오늘 요리에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그게 복인 줄도 모르고.”진서연은 투덜거리다가 아까 받았던 돈봉투를 에리에게 돌려줬다.“자, 이건 돌려줄게요.”어차피 가짜 여자 친구인데 밥 한 끼 정도는 먹어줄 수 있어도 이 돈은 받을 수 없었다.그러자 에리가 덤덤하게 답했다.“하루 일당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받아요.”“맛있는 밥도 얻어먹었는데 돈은 당연히 돌려줘야죠.”“제가 그 돈이 아쉬운 사람처럼 보여요?”에리의 물음에 진서연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저 사람한테는 이깟 돈이 아무것도 아니다.“그럼 사양하지 않고 받을게요. 고마워요.”비록 봉투 안에 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께를 만져보니 적지 않은 돈인 것 같은데 문득 출근하는 것보다 수입이 짭짤하다고 생각되었다.“별말씀을요. 저희는 친구잖아요.”에리는 그길로 진서연을 박씨 가문 옛 저택까지 데려다줬다.도착해보니 저택 밖은 이미 어둠이 내려져 있었다.진서연은 차에서 내린 뒤 에리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그러나 누군가가 어두운 곳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진서연은 집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봉투를 열어보았는데 역시나 5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들어 있었다.이때 갑자기 봉투에서 무언가가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는데 줍고 나서야 그게 커다란 다이아몬드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대박, 너무 예뻐!”진서연은 그들이 여기에 다이아몬드까지 넣어줄 줄은 몰랐다.이렇게 큰 사이즈면 분명 몇천만 원도 넘을 것이다.첫 만남에 50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겠지만 이런 다이아몬드는 당연히 받을 수 없었다.하여 진서연은 내일 아침 일찍 회사에 가자마자 에
결국 진서연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의 말을 들어줬다.그리고 자기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정민기에게 오늘은 안 될 것 같으니 내일 같이 밥 먹자고 문자를 보냈다.이 시각, 정민기는 문자를 보자마자 혹시나 진서연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걱정되기 시작했다.그러나 원래 많이 물어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는 비록 궁금하긴 하지만 애써 참고 메시지에 답장했다.“네.”저녁때쯤, 에리는 진서연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정민기가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따라오던 그의 부하가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보스, 오늘 형수님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요?”“일 있대.”“헐, 저거 엄청 비싼 차인데!”그의 말에 정민기가 고개를 돌려보니 두 사람은 값비싼 슈퍼 카를 타고 자리를 떴다.부하들은 원래 정민기를 무서워했지만 같이 지낸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이제는 많이 편해진 것 같았다.“보스, 형수님은 왜 갑자기 저런 차를 타고 갈까요?”정민기는 원래 몇십억짜리 자동차 따위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했지만 부하가 대놓고 물어보니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나도 몰라.”그리고 퉁명스럽게 대답한 뒤 다시 자기 차에 올라탔다.지금 그가 타고 다는 차는 고작 몇천만짜리였고 길거리에 몰고 나가도 눈길 한 번을 안 줄 그런 차였다.그저 박민정의 보디가드로서 너무 좋은 차를 끌고 다녀 굳이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정민기가 말없이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본 부하들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설마 형수님이랑 다툰 건가?” “아까 그 차는 한눈에 봐도 엄청 비싼 차일 것 같은데 설마 형수님께서 마음을 바꾼 건 아니겠지? 우리 보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어떻게...”“대단하면 뭐 해? 지금 시대는 돈이 제일 쓸모가 있단 걸 몰라?”“하긴 요즘 사람들은 너무 현실적이야.”부하들의 말을 정민기는 차 안에서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핸들을 꽉 쥐었다.그러나 지금은 퇴근한 박민정을 박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