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출근할 시간에 박민정의 전화를 받게 된 유남우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IM 그룹은 왜 물어?”“다름이 아니라 요즘 많은 회사가 IM 그룹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잖아요. 그 배후에 있는 사장이 얼마나 음흉하고 악독한지 참...”‘음흉하고 악독해? 내가?’유남준은 박민정의 말과 뉘앙스가 마냥 웃기기만 했다.정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자기한테 음흉하고 악독하다고 평가하는 그 말이.경쟁으로 이기지 못하자 별의별 평가를 다 내세운다면서 속으로 혀를 차기도 했다.하지만 유남준은 계속 모르는 척 박민정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나도 몰라. 근데 우리 회사도 IM 그룹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어.”“네? 정말이에요?”처음에는 IM 그룹에 대해서 궁금하기만 했었는데, 유남준의 말을 듣고 난 뒤 IM 그룹이 싫어지기 시작했다.“응... 근데 호산 그룹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유남준이 물었다.“호산 그룹의 고객을 IM 그룹에서 빼앗아 갔어요.”박민정은 별다른 의심 없이 바로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그 고객이 바로 천인 그룹이라는 것을 유남준은 잘 알고 있다.“그래? 안 됐네. 남우는? 대책이라도 세워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회사 쪽은 내가 이미 해결했거든.”“어떻게 해결한 거예요?”박민정은 단번에 구미가 당겼다.“알고 싶어?”“네, 알고 싶어요.”IM 그룹에 대해서 알고 난 뒤로 박민정은 작은 회사에서 도려 IM 그룹에 피해를 보게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퇴근하고 와서 나한테 다시 한번 부탁해 봐. 그럼, 내가 아주 천천히 가르쳐줄게.”유남준은 잔뜩 내려앉은 목소리로 무척이나 간드러지게 말했다.순간 그 말 뒤에 숨겨 있는 뜻을 알아차린 박민정은 바로 거부해 버렸다.“됐어요. 남준 씨 아니어도 이미 대책 방안 생각해 냈거든요.”“그게 뭔데? 어떻게 해결할 셈이야?”유남준은 무척이나 궁금했다.자기 아내가 무슨 방법으로 자기에게 공격을 할지 말이다.“나중에요. 성공하고 나면 그때 다시 얘기해줄게요. 그럼, 먼저
박민정 역시 이러한 결과를 얻게 될 줄은 몰랐다.에리와 조금 더 얘기하고 싶었으나 문 앞에 서 있는 최현아와 추경은을 보게 되었다.추경은은 최현아를 대신하여 열심히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박민정은 바로 전화를 끊고 일어나서 문 쪽으로 다가갔다.“새언니, 대낮에 사무실 문은 왜 잠그고 있는 거예요? 뭐 보면 안 될 일이라고 하고 있었던 거예요?”최현아를 등에 업고 있어서인지 추경은은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그게 아니라 지나가던 똥개라도 사무실에 들어올까 봐 잠가 놓은 거예요.”가만히 듣고만 있을 박민정이 아니었다.욕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없다.“새언니, 지금 나랑 올케언니 욕하고 있는 거예요?”추경은 역시 바로 반박했다.“그런 말 한 적 없고 함부로 덮어씌우지 마시죠. 어떻게 자신을 그렇게 폄하할 수 있죠?”박민정은 덤덤하게 대답했다.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추경은은 뭐라고 더 하고 싶었지만 최현아가 그녀를 말렸다.“동서한테 볼 일이 있어서 온 거야.”“무슨 일인데요?”“동서가 회의에서 말했던 거 기억하고 있지? IM 그룹 프로젝트를 빼앗아 오겠다고 한 것 말이야. 나도 다른 고위직 직원들은 모두 반대하는 쪽이야. 하지만 대표님께서 이미 결정 내린 일이고 하니 누군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봐. 가만히 생각해 보았는데, 의견을 꺼낸 사람이 직접 가서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최현아가 말했다.그 많은 고위직 직원을 뒤로하고 작은 비서인 자기한테 이번 일을 맡기게 될 줄은 몰랐다.하지만 박민정은 바보가 아니다.“호산 그룹에서 제 신분은 비서입니다. 비서로서 어떻게 프로젝트를 빼앗아 올 수 있단 말입니까?”“대표님께 그럴만한 권리를 달라고 하면 되잖아.”최현아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했다.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서 또다시 물었다.“제가 이번 일을 성황리에 끝마치면 제가 얻게 되는 건 뭐죠?”“얻게 되는 거?”최현아는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박민정이 마냥 우습기만 했다.“걱정하지 마. 일단 계약서만 체결하면 회사에서 인셉
최현아는 박민정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 전혀 믿지 않는다.최현아의 말에 홍주영은 바로 멀지 않은 곳에서 구경하고 있던 비서에게 조금 전 사항을 계약서로 만들어내라고 했다.이윽고 계약서에 최현아와 박민정 모두 사인하게 하라고 했다.최현아는 사인을 하기 전에 불현듯 무엇인가 떠오른 듯했다.“근데 너무 불공평한 계약서인 것 같아요. 박 비서가 이기면 마케팅 5팀 책임자 자리에 앉게 되는데, 내가 이기면 어떻게 되는 거죠? 박 비서 쪽에서 치르는 대가가 아무것도 없잖아요.”“만약 제가 프로젝트를 빼앗아 오지 못한다면 어떤 대가를 치렀으면 합니까?”“퇴사요.”최현아는 호산 그룹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민정을 눈엣가시로 여긴 지 한참 되었다.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두말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그러죠.”계약서에 새로운 조건을 첨부하고 두 사람 모두 사인을 했다.유남우를 공증인으로 모시기도 했다.대표이사실 전체가 오늘 두 사람으로 인해 떠들썩하기 그지없었다.최현아 일행이 떠나고 난 뒤 박민정은 잠깐 쉬다가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어떻게 빼앗아 올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IM 그룹은 지금 모든 회사의 프로젝트를 빼앗고 있어. 근데 정작 IM 그룹의 프로젝트를 빼앗고 있는 회사는 없어. 따라서 IM 그룹은 지금 무방비 상태일지도 몰라.’박민정은 IM 그룹에서 빼앗아 간 프로젝트를 모아서 일일이 연구하기 시작했다.어느 프로젝트를 도로 빼앗아 오면 쉬울지에 대해서 말이다.온갖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시간은 유난히 빨리 흘러갔다.모든 직원이 퇴근하고 난 뒤에도 박민정은 사무실에 앉아서 열심히 파고들고 있었다.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기 전까지.벨 소리에 정신을 차리게 된 박민정은 그제야 저녁 6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왜 아직도 퇴근 안 해?”유남준의 소리가 들려왔다.“이제 곧 해요.”박민정은 대답을 마치고 난 뒤 서둘러 짐을 챙겨 가방을 들고 퇴근했다.회사 문 앞에는 한참 동안 박민정을 기다리고 있던 유남준이 있었다.박민
유남준은 지금 바보 같은 박민정에게 말해주고 싶었다.자기가 바로 IM 그룹의 대표라고 말이다.하지만 IM 그룹은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고 그동안 원수도 많이 맺어 왔다.만약 이대로 세상에 알리게 된다면 IM 그룹의 배후에 자기가 있다고 한다면 박민정과 아이들도 타깃으로 삼을지도 모른다.“그렇게 생각하지 마. 난 오히려 IM 그룹의 대표가 훌륭한 것 같은데...”유남준은 억울한 나머지 자기를 위해 한마디 했다.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반박하지 않았다.“훌륭한 건 인정해요. 근데 인간 됨됨이가...”“그 사람 얘기 그만할래요. 좀만 눈 붙이고 있을게요. 피곤해요.”힘들만도 한 상황의 연속이었다.유남준은 바로 박민정을 품으로 끌어당기면서 자기한테 기대어서 자게 했다.그 덕분에 푹 잔 박민정은 두원 별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깨어났다.“도착한 거예요?”“좀 더 잘래? 그럼, 오늘 좀만 더 늦게 자도 되잖아.”유남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좀만 더 늦게 자?’야한 의미가 담겨 있는 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그만 자고 싶어요. 얼른 들어가요. 윤우도 왔겠어요.”박민정은 허겁지겁한 모습으로 유남준의 품속에서 빠져나왔다.행여나 지금 이곳에서 그 야한 일은 하게 될까 봐 말이다.유남준은 다소 시무룩한 모습으로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집안은 오늘따라 유난히 떠뜰석했다.한창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던 박윤우는 집안 곳곳을 소개해 주고 있었다.실시간 댓글은 거의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우리 세찬이 도련님이었구나. 집이 아주 으리으리하네.][이제 아셨어요? 심씨 가문 출신인데 당연히 으리으리하죠.][진정한 부잣집 도련님!]박윤우는 지금 실시간 순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다.하지만 번뇌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네티즌들이 박윤우를 박세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난 언제쯤 내 이름을 알릴 수 있을까?’고민하고 있던 그때 돌아온 박민정과 유남준을 보고서 바로 라이브를 종료했다
일단 저지르고 봐?추경은 역시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바이다.최현아의 말을 듣고서 추경은은 서둘러 유남준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박민정은 추경은이 이토록 대담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일찍이 침대로 누운 박민정의 머릿속에는 온통 IM 그룹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빼앗아 올까 하는 생각뿐이었다.유남준에게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으나 그대로 자기한테 기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꺼내지 않았다.“왜 아직도 안 자?”유남준은 침실로 들어서는 순간 박민정이 핸드폰을 두드리고 있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졸리지 않아서 핸드폰 보고 있었어요.”유남준은 몸을 돌려 박민정의 핸드폰을 가져왔다.“그만 보고 얼른 자.”핸드폰을 빼앗긴 박민정은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잘 수밖에 없었다.자기 전까지 박민정의 머릿속에는 온통 회사일 뿐이었다.이튿날 아침 박민정은 평소와 달리 좀 늦게 일어났다.늦잠을 잔 박민정을 깨우지도 않고 유남준은 집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평소대로 일어난 추경은은 9시가 되도록 일어나지 않은 박민정을 보고서 속으로 중얼거렸다.‘출근하지 않을 셈인가?’‘최현아랑 한 내기에서 지게 될까 봐?’다른 건 몰라도 생각 하나만큼은 깊이 하는 추경은이다.추경은은 미리 회사로 가서 박민정은 내기에서 지게 될까 봐 두려워서 오늘 회사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동료들에게 알려주었다.그 말을 듣고서 회사 직원들은 불가사의하기만 했다.“어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더니 바로 숨은 거예요?”“내가 다 뻘쭘하네요.”“IM 그룹이 지금 한창 여러 회사의 타깃으로 되고 있어서 어쩜 그 내기에서 박 비서님이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그래요. 아무리 진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회사에서 나가기나 하겠어요?”최현아 역시 그 소식을 듣고서 비아냥거렸다.“내가 너무 높이 평가했네. 딱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을.”한편.잠에서 깨어난 박민정은 시간을 확인해 보았는데, 벌써 오전 10시였다.
고집을 피우는 유남준의 모습에 박민정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알았어요. 아침 먹고 올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고 있어요.”“그래. 천천히 먹고 와.”유남준은 계속 고개를 푹 숙인 채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그의 곁으로 지나가던 박민정은 노트북 키보드에 빼곡하게 적힌 점자를 보고서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실명한 뒤로 유남준은 이어폰을 끼고 업무를 봐야만 했다.모든 서류를 음성으로 듣고 처리해야 하니 일반인들보다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박민정이 아침까지 먹고 난 뒤 유남준은 약속한 대로 회사까지 바래다주었다.호산 그룹 꼭 대기층에 이르렀을 때 거의 모든 직원의 시선이 박민정을 향해 있었다.순간 박민정은 자기 얼굴에 뭐라도 묻은 줄만 알았었다.그때 누군가가 박민정에게 물었다.“박 비서님, 혹시 퇴직 절차 밟으시려고 오신 거예요?”말을 건 사람은 바로 비서 청아였다.그 말에 박민정은 어이가 없었다.“그게 무슨 말이죠? 퇴직 절차라니 도통 무슨 뜻인지...”청아 역시 당황하긴 매한가지였다.이윽고 멀지 않은 곳에서 커피를 타고 있는 추경은을 가리키면서 말했다.“경은 씨가 그러던데요. 박 비서님 최 대표님과 한 내기에서 지게 될까 봐 회사에 오지 못하고 있다고.”박민정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그냥 늦잠 자서 좀 늦게 온 것뿐이에요.”“네?”청아는 박민정의 말을 듣고 나서야 오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이때 추경은이 다가와서 똑같이 물었다.“새언니, 퇴직하려고 온 거예요?”그런 추경은에게 박민정은 바로 따귀를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출근하러 온 거예요. 어머님께서 편한 대로 출근해도 된다고 한 거 잊었어요?”말하면서 박민정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이제 겨우 11시고 하루에 딱 서너 시간만 출근하면 되는데, 뭐가 잘못된 거죠?”추경은은 할 말이 없었다.단순히 늦잠을 자서 늦게 온 줄 모르고 추경은은 온통 박민정에게 골탕을 먹여 최현아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새언니, 실은
호산 그룹 마케팅 5팀의 팀원들은 당분간 모두 박민정을 도와주게 되었다.박민정 밑으로 들어가기 전에 최현아는 마케팅 5팀의 책임자로서 회의도 열었었다.“당분간 같이 일하는 것뿐이니 너무 밭들이지 않아도 돼. 그리고 어디까지나 비서밖에 되지 않으니 너무 기어들어 가지도 마. 알았어?”팀원들은 당연히 최현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분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지는 말고.”최현아는 웃으면서 말했다.‘어디 감히 내 자리를 넘봐! 자기 주제도 모르고!’“네, 알겠습니다.”팀원들은 당분간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생각에 좋기는 했지만 걱정도 들었다.“근데 언제까지 놀아줘야 하는 겁니까? 책임져야 할 식솔이 한둘이가 아니라 인셉티브가 필요해서 그럽니다. 한 달 임금으로는 턱 없이 부족한 세상이잖아요.”최현아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했다.박민정과 체결한 계약서에 계약 기간이 빠졌다는 것을 말이다.이윽고 최현아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어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박 비서님, 우리 팀 팀원들이 묻고 있어서 그래요.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팀원들이 허구한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따라다닐 수 없다고 하네요. 다들 마케팅으로 먹고 사는데 실적이 있어야 받는 돈도 많아지는 거잖아요.”팀원들 앞이라 최현아는 팀장다운 모습으로 존댓말까지 써가면서 물었다.박민정은 한창 땅의 주인과 주위의 각종 시설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었다.어느 정도 계획이 생긴 박민정은 바로 ‘계약 기간’을 정해주었다.“보름이요.”‘보름? 겨우 보름?’‘설마 IM 그룹 공급업체랑 아는 사이인가?’“안 됩니다. 보름은 너무 길고 딱 10일만 드립니다.”“10일이요?”‘그건 좀 너무 급한데...’“우리 팀에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데... 그 모든 팀원이 모여서 공급업체 하나 빼앗는데 정신을 몰두해야겠어요? 10일이면 충분하지 않아요?”박민정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러기로 했다.“그래요.”속도만 좀 높이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최현아는 그제야 전화를
“앞으로 계속 그렇게 빈대처럼 지낼 것입니까?”박민정은 팀원들의 출근 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조금 전까지 박민정을 반박하던 팀원들은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돈은 자기 주머니에 넣으려고 버는 것입니다. 전 지금부터 10일 내로 반드시 마케팅 5팀의 책임자가 될 것입니다. 꼭 그렇게 약속드리겠습니다. 이번 달부터 돈을 벌고 싶으시면 열심히 일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어떠한 도움도 필요 없으니 그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만 하면 됩니다. 귀찮게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입니다.”말을 마치고 박민정은 바로 그 사무실에서 나왔다.두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는 ‘팀원’들을 뒤로 한 채로 말이다.‘이게 다야?’‘도움이 필요 없다고?’‘10일 내로 팀장이 된다고? 허풍은...’‘보나 마나 유씨 가문 며느리 신분을 이용하려는 속셈인 것 같네.’마케팅 5팀의 사람들은 각자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박민정은 팀원들을 더 이상 엮지 않고 회사에서 딱 3시간만 일하고 퇴근했다.퇴근하려는 박민정을 보고서 추경은은 마냥 의문이 들었다.“새언니, 벌써 가려고요?”“네. 일찍 가려고요. 오늘 윤우랑 같이 저녁 먹기로 했거든요.”“근데 이제 4시밖에 되지 않았는데요?”“그래서요? 윤우한테 직접 저녁 해 주려고요.”박민정은 추경은을 흘겨보면서 말했다.순간 추경은은 말 문이 턱 막혀 버렸다.박민정이 공급업체를 찾으러 갈까 봐 바로 박민정 따라서 최근을 했다.그러나 유남준이 마중하러 왔고 두 사람은 과연 퇴근했던 것이었다.그 뒤로 이틀 동안 박민정은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갔다.음악 작업실에서 곡을 쓰지 않으면 박윤우의 저녁을 직접 챙기고 했었다.10일 밖에 시간이 없는데도 전혀 서두르지 않고 말이다.심지어 주말에는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추경은은 집에서 박민정네 일가족을 지키고 있었는데, 부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했다.“엄마, 지난번 캠핑한 뒤로 우리 나들이 간 지 오래됐어.”박윤우는 박민정이 말한 대로 물었다.“형도 함께 공원으로
홍주영은 오늘 유남우와 함께 회사로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가게 되었다.차에서 내리겠다는 유남우의 말에 그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가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 직접 찾아왔다.그리고 그녀가 마주한 것은 지금 이 끔찍한 장면이었다.홍주영은 여실히 박민정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급히 소리쳤다.“도련님, 빨리 민정 씨를 놓아주세요! 지금 위험해 보여요.”그제야 홍주영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유남우는 급히 박민정을 놓았다.하지만 이미 박민정은 얼굴이 창백하고 보랏빛이 돌 정도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민정아!”유남우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박민정은 숨을 헐떡이며 말할 겨를조차 없었고 홍주영이 다가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민정 씨, 천천히 숨을 고르세요.”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고르려 노력했다.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유남우의 눈빛에는 뚜렷한 죄책감이 어렸고 그는 손을 들어 그녀에게 다가가려 하며 나지막이 말했다.“괜찮아? 다친 데는 없지?”하지만 박민정은 곧바로 몇 걸음 물러나 그의 손길을 피했다.“나, 방금 거의 죽을 뻔했어요.”그녀는 아직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몸을 떨고 있었다. 만약 유남우가 조금이라도 더 심하게 했다면 그녀는 정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유남우의 손은 공중에서 멈춰버렸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홍주영이 대신 사과하며 말했다.“민정 씨, 죄송합니다. 도련님께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을 거예요.”홍주영은 누구보다도 유남우가 박민정에게 얼마나 집착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박민정은 방금 들었던 유남우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는지라 그녀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그녀는 겨우 몸을 추스르고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더는 오빠를 보고 싶지 않아요.”그녀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유남우의 머릿속에는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만이 맴돌았다.‘보고 싶지 않아요.’그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던 홍주영은 조심스레 말했다.
박민정은 손바닥을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오빠는 거짓말쟁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오빠를 믿을 수 있겠어요? 오빠가 준 그 약들, 내가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신을 아껴주던 남우 오빠가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까지 해칠 수 있는지.유남우의 눈에는 깊은 고통이 스쳐 지나갔다.“이 방법밖에 없었어!”그는 박민정을 자기 곁에 완전히 붙잡아 둘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박민정은 냉소를 흘렸다.“방법이 이것뿐이라니. 오빠는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해요. 오빠가 이런 사람이 되어버릴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박민정의 마지막 말이 유남우의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을 끊어버린 것 같았다.그는 손을 들어 박민정의 팔을 움켜쥐었고 분노와 슬픔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변했다고? 네가 그 말을 할 자격이 있어?”유남우가 박민정의 팔을 더 강하게 움켜쥐자 그녀는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외쳤다.“이거 놔요!”하지만 유남우는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그녀를 붙잡았다.“변한 건 너야! 네가 먼저 변했어! 너 어릴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나를 좋아한다고, 크면 나랑 결혼하겠다고 했잖아!”그는 목이 메었다.“너는 나랑 유남준도 구별 못 했어.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그 인간이랑 결혼하고 그 인간을 사랑할 수 있어?”유남우의 목소리가 떨렸다.“넌 원래 나만 좋아해야 했어. 네가 변하면 안 되는 거였다고.”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유남우는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내가 헛소리를 하는 건지 아닌지, 네가 제일 잘 알 거야.”그의 목소리에는 억눌린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내가 너를 1년 넘게 보살폈어. 그런데 유남준이 나타나자마자 넌 또 유남준한테 가버렸지. 너한테 사랑은 그렇게 쉬운 거야?”박민정은 그가 너무 꽉 끌어안자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그
박예찬 역시 하루빨리 박민정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병세가 계속 나아졌다 악화됐다를 반복하며 안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라 그의 마음도 놓이지 않았다.게다가 김인우와 조하랑은 여전히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 다투었고 이 끝없는 싸움이 언제쯤 끝날지 알 수 없었다.그렇게 매일 부딪히면서도 결국 두 사람이 잘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이런저런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박예찬은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박씨 가문.그날 밤, 박민정은 금세 잠에 들었다.이곳에서의 밤은 신림현에서 지낼 때와 달랐는데 전에 느끼던 두려움 없이 평온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하지만 유남준은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몇 번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민정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그녀의 휴식을 방해할까 두려워 결국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그렇게 밤새 뒤척이던 그는 다음 날 아침, 눈 밑에 푸른 기운이 남아 있을 정도로 피곤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제대로 쉬지 못한 티가 났다.유남준은 아침부터 박민정을 찾았지만 진서연에게 뜻밖의 답을 들었다.“보스는 이미 나가셨어요.”“언제 나간 거야? 어디로 갔는데?” 유남준이 다급히 묻자 진서연은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민기 씨가 따라갔으니 별일 없을 겁니다.”유남준은 그녀가 안전한지 걱정되는 한편, 어제의 감정이 풀렸는지도 알고 싶었다.한편, 박민정은 차에 앉아 어제의 불쾌한 감정을 이미 잊은 듯했다.운전기사가 차를 몰며 앞길을 달리는 동안 박민정은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정민기는 조용히 그녀를 따라가며 동행자 역할을 했다. 박민정이 묻는 질문에만 간단히 대답했을 뿐, 먼저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박민정은 그의 존재를 쉽게 잊어버릴 정도였다.얼마 후, 두 사람은 한 대학의 정문에 도착했다.이곳은 박민정이 예전에 다녔던 대학교였다.익숙하면서도 낯선 이곳에 발을 내딛으며 그녀는 말했다.“분명 여기서 학교를
저녁 식사 시간 내내 박민정은 유남준을 철저히 무시했다.유남준은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걸기로 결심했다.식사가 끝난 후 박민정이 소화를 시키기 위해 산책을 나서자 유남준은 그녀를 따라갔다.민수아와 다른 사람들은 눈치 있게 자리를 피해주었다.박민정은 걸음을 멈추고 살짝 짜증 난 표정으로 유남준을 한 번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민정아, 화 풀어.”유남준이 다가가며 말했으나 박민정은 여전히 대꾸하지 않았다.“아까는 내가 너무 성급했어.” 유남준이 다시 말을 꺼냈다.사실 박민정은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가 너무 자연스럽게 행동했던 모습이 떠올랐다.그 순간 그녀는 두 사람이 결혼 후 어떻게 지내왔는지 문득 궁금해졌다.“우리가 결혼했을 때에도 평소에 자주 내 일에 간섭했어요?”박민정이 마침내 입을 열었지만 그건 유남준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유남준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급히 대답했다.“당연히 아니지.”그가 어찌 감히 박민정을 화나게 할 수 있었겠는가.“그런데 아까는 왜 그렇게 자연스러웠는데요?”박민정은 그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유남준은 말문이 막혔다. 아직 변명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는데 박민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지금은 혼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이만 얘기 그만하죠.”“민정아...”유남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으려 했다.그러나 박민정은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피하며 경계하는 얼굴로 말했다.“유남준 씨, 자중하세요.”유남준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민수아, 설인하, 그리고 진서연은 흥미진진하게 속닥거렸다.“무슨 일이야? 부부싸움 한 건가?”“부부싸움은 개도 안 끼는 법이라더니. 우리 얼른 자러 가자.”“나도 그게 맞는 것 같아.”그들은 수군거리며 한쪽으로 사라졌다.박민정은 그들의 말은 들리지 않는 듯 더는 산책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유남준을 뒤로 하고 거실로 돌아갔다.유남준은 딱딱하게 굳은 발걸음으로 민수아와 두 사람에게
박민정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봤는데 낯선 번호였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민정아, 나야, 에리.”청량하고 활기찬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자 박민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야?”“날 완전히 잊어버렸나 봐.”에리가 과장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예전에 나한테 밥 한 끼 빚진 거 기억 안 나? 게다가 지금 난 네 회사에 소속된 배우야. 이렇게 날 방치해서 되겠어?”그는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하며 살짝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다.박민정은 이런 방식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처음 접해본 터라 당황스러웠다.“저기, 그거... 조금만 더 미뤄도 될까?”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안 돼! 벌써 1년이나 빚진 건데 또 미루겠다고?”에리는 단호하면서도 애교를 섞어 불만을 드러냈다.옆에 서 있던 유남준은 통화 내용으로 대충 누군지 짐작이 갔다. 그는 박민정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빼앗아 들었다.예상대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에리였다.“민정아, 설마 유 대표가 우리 약속을 눈치채는 게 걱정되는 거야? 안심해. 절대 비밀로 할게!”‘우리 약속’라는 말에 유남준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에리 씨, 다시 제 아내를 귀찮게 굴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그렇게 말한 뒤 그는 단숨에 전화를 끊어버렸다.박민정은 휴대폰을 빼앗기고 전화를 끊어버린 유남준의 행동에 잠시 멍해졌다가 화가 치밀어 올랐다.“남준 씨,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그녀는 분명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남의 휴대폰을 빼앗아 전화를 끊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유남준은 그녀가 화가 난 것을 보고 곧장 해명에 나섰다.“민정아, 에리는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야. 배우라는 것들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고.”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그를 올려다봤다.“그게 당신이 내 휴대폰을 빼앗고 내 전화를 끊은 이유예요?”그녀의 차가운 시선에 유남준은 순간 말을 잃었다.어쩐지 아내 앞
박민정이 회사로 복귀한 후 긴장감이 감도는 사람은 윤소현뿐만이 아니었다. 이지원 역시 초조해하고 있었다.어렵사리 다시 연예계에 복귀한 그녀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들이 박민정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드러날까 두려웠다.이지원은 종종 몰래 박민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하곤 했다.그날도 촬영을 마친 뒤 그녀의 차는 PMJ 회사 앞에 멈춰 있었다.이지원은 차 안에 앉아 박민정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드디어 박민정이 회사에서 나오는 것이 보이자 이지원은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하이힐을 신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도드라진 모습으로 걸음을 옮겼다.박민정도 그녀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누군지 알아보기 전에 이지원은 그녀 앞까지 다가와 길을 막아섰다.“민정 씨, 드디어 돌아왔네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박민정의 마음 한구석에 본능적인 반감이 피어올랐다.비록 그녀는 이지원이 저질렀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만으로도 불쾌감을 느꼈다.이때 진서연이 재빠르게 박민정 앞을 막아섰다.“당신 누구에요?”이지원은 그제야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는데 필러로 채워진 얼굴이 드러났다. 시간의 흔적과 연예계의 생존 경쟁 속에서 그녀는 온갖 방법으로 외모를 유지하려 애썼다.진서연은 그녀를 알아보자 얼굴을 찌푸렸다.“이지원 씨, 여기 왜 온 거예요? 또 우리 보스한테 해코지하려는 거 아니에요?”이지원의 눈에 차가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천한 년!'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박민정에게 말했다.“민정 씨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상태가 어떤지 보러 온 거예요.”박민정은 냉랭하게 대꾸했다.“그렇다면 고맙네요.”그녀의 말투는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이지원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박민정이 아직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혹시라도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요. 부담 갖지 말고.”이지원은 친절한 척 덧붙였다.“우리 보스가 당신 같은 사람을 찾을 일은 없으니 그만 꺼져요!”진서연
“민정아, 엄마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 말아줄래? 날 욕해도, 화를 내도 괜찮으니 제발 그렇게 차갑게만 하지 말아줘, 응?”정수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지만 박민정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저는 화낼 이유가 없어요.”박민정은 솔직하게 말했다.지금의 그녀는 예전과 달랐다. 과거에는 기억이 있었기에 정수미가 친모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에도 냉대를 받을 때마다 깊이 상처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었다.그녀는 눈앞의 정수미를 낯선 사람처럼 느꼈고 그래서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않았다.정수미는 목이 칼로 베인 듯한 고통을 느꼈다.“모두 내 잘못이야... 전부 내 잘못이야...”어떻게 해야 박민정에게 사죄하고 보상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정수미는 눈을 떨구고 등을 살짝 구부린 채 방을 떠났다.그녀가 떠난 뒤, 진서연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물었다.“보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이를 다치게 했다니, 무슨 소리죠?”박민정은 어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진서연에게 설명했고 진서연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분노를 터뜨렸다.“윤소현이 어떻게 그런 모함을 할 수 있죠? 제 생각엔 일부러 자기 아이를 다치게 한 게 틀림없어요.”그녀는 단 한마디로 진실을 꿰뚫었지만 박민정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설마. 그래도 자기 친딸인데.”“그 여자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진서연은 단호히 말한 뒤 박민정을 위로했다.“보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꼭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박민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래.”하지만 진서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여러 차례 그녀에게 당부를 했다.박민정은 기억을 잃은 후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기억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직 성과는 없었다.그녀는 오늘도 진서연과 함께 회사로 출근했다.점심시간, 박민정은 모두가 쉬고 있을 때 잠깐 밖에 나가겠다며 자리를 떴다.그녀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주
가정부가 나가고 나자 정수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어떻게 이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지?”정수미는 깊은 후회에 사로잡혔다. 왜 하필 윤소현을 입양했을까?비서도 믿기 힘든 듯 고개를 저었다.“큰아가씨의 복수심이 너무 강해요. 자신의 딸마저 이용하다니요.”비서는 윤소현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정수미가 박민정, 그녀의 친딸을 미워하게 만들려 한 것이다.“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정수미는 스스로 중얼거리며 비서에게 묻는 듯 자신에게 묻는 듯한 말을 했다.비서는 사적인 가정사에 대해 조언할 수 없었기에 침묵을 지켰다.오랜 고민 끝에 정수미는 윤소현의 방으로 향했다.윤소현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이의 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고열까지 나고 있는데도 이렇게 편안히 잠들 수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소현아!”정수미가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녀를 깨우자 윤소현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눈을 떴다.“엄마, 이 시간에 무슨 일이길래 제 방에 오신 거예요? 쉬셔야 할 시간 아니에요?”정수미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너랑 얘기할 게 있어서 왔다.”윤소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무슨 얘긴데 내일 하면 안 돼요?”“다혜와 민정이에 대한 얘기야.”정수미의 목소리는 냉랭했다.그 말을 듣자 윤소현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엄마, 박민정한테 경고할 거죠?”흥분한 그녀의 말투에 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아니, 너한테 경고하려고 왔어.”정수미의 단호한 말에 윤소현은 멍해졌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정수미는 가정부가 털어놓은 모든 진실을 이야기했고 윤소현은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멍해졌다.“엄마, 그 여자의 헛소리를 믿지 마세요! 다혜의 친엄마인 제가 어떻게 제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처음엔 나도 네 말을 믿었다. 네가 민정이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네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민정이를 경찰에 넘긴 거였어. 그런데 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정말 실망이야.”정수미는 깊이 한숨을
비서는 정수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제 생각에 둘째 아가씨는 아이에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사람 같지 않아요.”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래. 하지만 소현이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 내가 그때 민정이를 도왔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 어떤 난리를 칠지 몰랐겠지.”정수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혜 일은 빨리 조사해 봐.”“알겠습니다.” 비서가 대답했다.정수미는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외손녀를 바라보며 다짐했다.“다혜야, 걱정하지 마. 외할머니가 꼭 널 다치게 한 사람을 찾아낼게.”그녀는 윤소현을 편드는 것도, 박민정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지금은 윤소현을 달래며 조용히 진실을 파악하려 했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내기 위해.밤이 깊었을 때, 정수미는 아이를 돌보던 가정부를 불렀다.“자, 말해 봐. 오늘 왜 거짓말을 했는지. 누가 너한테 뭔가를 줬니?”가정부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대표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저는 거짓말 안 했습니다. 정말로 사모님께서 그랬어요.”정수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아직도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거야? 병원에서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민정이가 다혜를 안은 뒤로 다혜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했지. 그런데 이제 와서 대체 어떻게 그게 민정이가 했다는 걸로 바뀐 거지? 네가 직접 민정이가 아이를 해치는 걸 봤어?”가정부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얼버무렸다.“민정 아가씨가 다혜를 때리는 걸 희미하게 본 것 같아요...”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희미하게 봤다고? 그럼 왜 그 자리에서 막지 않았지?”가정부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 그게 제가 혹시 잘못 본 걸까 봐...”그녀의 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정수미는 확신했다. 이건 명백히 거짓말이었다.“분명히 말하는데 네가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하면 용서해 줄 테지만 계속 거짓말을 한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정수미의 위협에 가정부는 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