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은은 박민정의 질문에 대해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임산부는 배고프면 안 되는 건가요?”그녀는 어리둥절해하며 사과했다.“죄송해요, 잘 몰랐어요.”박민정은 그녀가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렇지 않게 계속 식사를 했다.고영란이 올지, 안 올지는 그녀의 마음이었다.하지만 얼마 전에 진행했던 태아 검사는 결과가 조금 안 좋았다.의사도 규칙적인 식사가 필요하다고 경고했었다. 굶으면 태아 발육이 멈출 수 있으니 말이다.게다가 박민정은 원래도 위가 좋지 않았다.박윤우는 추경은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엄마, 경은 이모 나무라지 마세요.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모를 거 아니에요.”그는 추경은을 바라보며 또 말했다.“경은 이모, 혹시 결혼할 사람이 없어요?”추경은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뭐라고?”“서른 넘으셨죠? 엄마보다 더 나이 많아 보이는데.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결혼하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죠?”추경은은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그녀는 겨우 화를 참으며 말했다.“윤우야, 이모는 이제 스물네 살이야. 너희 엄마보다 몇 살 어리다고.”“네?”윤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런데 엄마보다 더 나이 많아 보이는데요? 혹시 관리를 잘 안 해서 그런 건가요? 엄마한테 가르쳐달라고 해요. TV에서 자주 그러잖아요. 세상에 못생긴 여자는 없고 게으른 여자만 있다고. 관리 좀 해요. 결혼 못 하는 상황을 피하는 게 좋겠죠.”주위 사람들은 박윤우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추경은은 이렇게까지 창피를 당한 적이 없었다.‘저 녀석이 감히 나한테 창피를 줘? 나를 따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다고 그래. 외국까지 줄 설 수 있는데 결혼할 사람이 없다는 건 무슨 소리야?’“윤우야, 이모는 결혼하고 싶지 않아. 여기서 너랑 네 엄마, 아빠를 돌보는 게 좋아.”추경은은 머리가 똑똑하지 않았지만 웬만한 재벌가 아가씨들보다 인내심이 있었다.박민정은 윤우에게 여러 번 놀림을 당하면
고영란은 들어오자마자 비서에게 들고 있던 선물을 내려놓게 한 뒤, 바로 윤우를 찾으러 갔다.윤우는 아직 씻고 있었다.주방에 들어선 고영란은 추경은이 음식을 먹고 있는 걸 발견했다.추경은도 고영란을 보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이모, 어떻게 오셨어요?”추경은 곧바로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내려놓았다.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고영란의 눈빛에는 추경은에 대한 불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여기 남준이 집이야. 내가 왜 못 와? 너는 왜 이러고 있어? 왜 주방에서 먹고 있는데?”고영란의 눈에는 이러한 행동이 매우 무례해 보였다.추경은도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억울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죄송해요, 이모. 어제 이모를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요. 오늘 아침 너무 배가 고팠어요."“그래도 앞으로는 조심해야지.”고영란은 추씨 가문의 상황에 물어보려고 했는데 뒤에서 윤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할머니.”고영란은 환하게 웃으며 돌아서서 웅크려 앉아 말했다.“아이고, 우리 귀여운 윤우구나. 할머니가 안아보자.”고영란이 윤우를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추경은은 어제 윤우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그리고 윤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윤우야, 일어났어? 아침 곧 준비될 거야.”추경은은 윤우에게 다가가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또 위층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는 안 깨셨어? 8시 반이 다 되어 가는데.”고영란이 예전처럼 박민정을 나무랄 줄 알았지만 고영란은 예상 밖의 답변을 내놓았다.“임신했잖아. 잠 많이 자야지.”오랜만에 만난 고영란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박민정의 편을 드는 그녀를 보고 추경은 조금 놀랐다.하지만 추경은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제가 해외에서 배운 간호학 지식에 따르면 임산부는 하루에 8시간만 자면 충분하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오래 자면 태아의 뇌 발달에 좋지 않다고 해요.”고영란은 이 말을 듣고 추경은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박민정은 뜬금없이 소리를 지르는 추경은 때문에 다소 당황스러웠다.‘나를 돌봐주러 왔다고 하더니 이제는 내가 언제 일어나야 하는지까지 간섭하는 거야?’“네, 왜요?”박민정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이모 오셨어요. 새언니 빨리 내려오라고 하셨으니 저한테 화내지 마세요.”추경은의 말은 일부러 크게 해서 아래층에 있는 고영란까지 들리게 했다.고영란은 이 말을 듣고 약간 불쾌해졌다.‘이 시간까지 잤으면서 뭐가 불만인 거야?’고영란은 윤우 앞이라 박민정에게 화를 내지 않았지만 내심 불쾌한 기색을 억누르며 박민정이 내려온 후에 말했다.“앞으로는 일찍 일어나. 너무 오래 자면 태아에게 좋지 않아.”이 말을 들은 박민정은 추경은이 분명히 고영란에게 무언가를 말했을 거라고 직감했다.자세히 설명해 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한 박민정은 그냥 대충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어차피 고영란은 한 달에 몇 번 오지도 않는다. 고영란이 떠나고 나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테니 이런 사소한 문제로 논쟁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아니나 다를까, 박민정이 순순히 응하자 고영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추경은은 옆에서 괜히 나서며 말했다.“이모, 걱정 마세요. 제가 새언니를 잘 감시할게요.”박민정은 그 말을 듣고 추경은을 당장 내쫓고 싶었다.추경은은 일부러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박민정을 보고 말했다.“새언니, 제가 도와드릴 테니 이제 일찍 일어나실 수 있을 거예요.”“정말 고맙네요.”“천만에요.”고영란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눈치채지 못하고 윤우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윤우야, 오늘 할머니가 널 데리고 놀러 나갈까?”박윤우는 요즘 박민정이 바쁘다는 걸 알고 있었고, 집에 남아있으면 오히려 박민정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좋아요.”추경은도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이모, 저도 함께 가면 안 될까요? 혹시 윤우와 이모께서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물건을
차가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유남우는 두원 별장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린 유남우는 멀리서 박민정이 정원에 누워 있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햇빛을 온몸에 받으며 누워 있었고, 그녀의 하얀 손등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대표님.”경비원은 유남우를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보통 사람들은 유남우와 유남준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거의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유남우는 그대로 박민정 앞에 다가갔다.박민정은 깊은 잠에 빠져 있어 유남우가 온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유남우도 그녀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빛이 가려져서인지 따뜻함이 덜해졌다.박민정은 그걸 느끼고 몸을 뒤척이며 얼굴에 덮인 책을 내려놓고 눈을 떴다.눈앞에 점점 빛이 보이더니 그제야 박민정은 눈앞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고개를 들어보니 남자의 깊은 눈동자와 마주쳐 버렸다.“남준 씨, 왜 왔어요?”유남우의 목울대는 살짝 울렁였다.“민정아.”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또 눈에 초점이 맞춰지자 박민정은 눈앞의 사람이 유남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남우 씨는 여기 어떻게 왔어요?”박민정은 당황해하더니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형이 외국에서 돌아온 후 바로 나가서 지낸다고 들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왔어.”박민정은 유남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래도 지금 유남준의 상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남준 씨가 외국에서 약간의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그곳에서 요양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간 거예요.”유남준이 현재 몇 년 전의 기억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그랬구나. 난 또 너와 싸운 줄 알았어.”유남우는 중얼거렸다.그가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박민정은 형식적으로 물었다.“좀 앉을래요?”“그래.”유남우는 대답한 후 바로 옆에 있던 벤치에 앉았다.박민정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잠시 후 가정부는 과일과 다과를 가져왔다.유남우
“오랜만이야.”추경은의 미소는 약간 어색해 보였다.그녀는 몇 걸음 물러서면서 고영란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이런 추경은의 모습은 박민정도 처음 본 것이었다.유남준을 본 추경은은 항상 달려들어 애교를 부리지 않았던가?그런데 유남우에게는 왜 이렇게 거리를 두는 것일까?“남우야, 네가 왜 왔어?”고영란이 다가오며 의아해했다.“형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와봤어요.”“아, 남준이는 여기 없고 해운 별장에 있어.”고영란은 또 박윤우에게 말했다.“윤우야, 빨리 삼촌께 인사드려야지.”박윤우는 유남우를 몇 번 본 적 있지만 왠지 이 남자가 무겁게 느껴졌다.“삼촌, 안녕하세요”박윤우는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건넸다.“그래.”유남우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숙이더니 사탕을 꺼내 박윤우에게 건넸다.“삼촌이 윤우에게 줄 선물이 없네. 오늘 밥 먹고 챙긴 사탕밖에 없어.”분명 유남우는 그렇게 온화하고 부드러워 보였지만 박윤우의 눈에는 그의 주위에 검은 안개가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박윤우은 단순히 직감이 예리한 정도가 아니라 정신을 집중하기만 하면 모든 사람의 주위에 엷은 빛이 감도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핑크색이나 금색의 빛이 맴돌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박민정과 고영란처럼 말이다.반대로 추경은처럼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들 주위에는 차가운 파란색이나 청록색 빛이 맴돌고 있었다.하지만 박윤우는 평소처럼 집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남우 주위에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퍼져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박윤우는 약간 두려운 마음으로 사탕을 받아 들고 고영란 옆에 섰다.그는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예전에 박예찬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박예찬은 여러 서적들을 통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발견했다.어릴 때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박윤우는 방으로 달려가 박예찬에게 전화를 걸었다.“형, 오늘 어떤 사람의 몸에서 검은빛이 나는 걸 봤어. 너무 무서웠어.”박윤
전에 박윤우는 유남우와 가까이 있은 적이 거의 없었다.가까이 있었다고 해도 그에게서 검은 안개를 느끼지 못했지만 오늘은 확실히 보였다.“집에서 조심하고 있어. 나 지금 비행기 타야 하니까 이따가 다시 얘기하자.”“알겠어.”박윤우는 아쉬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창밖을 보니 유남우가 여전히 밖에서 박윤정, 고영란과 이야기하고 있었다.멀리서도 유남우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보이는 것 같아 무섭게 느껴졌다.밖에서.고영란은 유남우를 보더니 박윤우가 방송을 했던 일을 떠올렸다.어떻게 어린아이를 돈을 벌게 할 수 있지?“민정아, 너 요즘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남우를 따라 회사에서 경험 좀 쌓아보는 게 어때? 그래야 수입도 좀 늘어나지 않겠어? 하루에 3, 4시간만 일해도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마. 애들한테도 무리 안 갈 거야.”박민정과 유남준이 해외로 떠난 후로 고영란은 이미 이 일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박민정은 조금 놀랐다.전에 고영란은 그녀가 밖에서 일하는 걸 항상 반대했었다.귀도 잘 안 들리는 며느리가 나가서 일하면 유씨 가문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며 말이다.그런데 지금은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거지?“어머님, 전 가끔 작곡을 하기도 해요.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에요.”박민정이 대답했다.사람은 변하는 법이다.박민정이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 고영란은 그녀가 밖에서 일하는 걸 싫어했다.하지만 지금은 직업이 없다고 하니 편히 집에서 쉬고 있는 그녀가 꼴 보기 싫은 모양이다.“작곡?”고영란의 눈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네가 작곡을 한다고?”일반 사람에게도 작곡은 쉽지 않은 법이다. 더구나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 작곡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냥 취미로 하는 거지, 전문가는 아니에요.”“그럼 회사 다니는 게 낫겠다.”고영란은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남준이도 회사로 보낼 생각이야. 잘 보이지 않으니까 네가 옆에서 도와주는 게 좋지 않겠어? 남준이한테 그렇게 하라고 연락할게..”박민정이 돌아온 이후, 그녀가 예전처럼
추경은은 꿍꿍이가 많았지만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은 아니었다.그걸 알아챈 박민정은 추경은이 생각보다 상대하기 훨씬 수월한 존재라는 걸 느꼈다.“나 좀 쉬어야겠어요.”“그래요, 방해하지 않을게요.”추경은은 원래 박민정에게 많이 자면 안 된다고 말할 생각이었지만 유앤케이로 데려가겠다는 그녀의 말에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았다.박민정은 정원에서 잠시 산책한 후 다시 앉아 휴식을 취했다.멀리서 추경은이 어디선가 큰 가방을 가져와 별장에 있는 가정부와 경비원들에게 뭔가를 나누어주고 있었다.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하는 추경은을 박민정은 그저 조용히 지켜봤다.몇 개의 선물로 매수될 수 있다면 그만큼 더 많은 선물로도 쉽게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박민정은 추경은의 행동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책을 보며 악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추경은은 가끔 박민정을 쳐다봤다.그녀가 자신의 행동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더욱 대담하게 행동했다. 심지어 별장 사람들과 함께 나가서 식사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그녀는 서다희에게도 메시지를 보내 함께 식사하자고 했다.스케줄을 확인한 서다희는 모레 저녁 9시 이후에 시간이 된다고 알려주었다.추경은은 곧바로 서다희와 모레 저녁 9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서다희는 별장 사람들과는 달리 유남준의 최측근이었다. 유남준과 오랜 시간을 함께 일한 사람으로 박민정보다 유남준 옆에 더 오래 있었을 것이다.서다희를 사로잡으면 분명 유남준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저녁 식사 시간에 추경은은 무심코 휴대폰을 식탁에 올려놓았다.박민정은 자리에 앉자마자 문자 알림 소리를 들었다.무의식적으로 추경은의 휴대폰 화면을 보게 되었는데 ‘다희 오빠’로부터 온 메시지였다.[알겠어요. 그럼 모레 9시 반에 시즌 레스토랑에서 봐요.]박민정은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의 문자를 훔쳐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추경은이 서다희를 저장한 호칭, 그리고 모레 9시 시즌 레스토랑에서 보기로 한 문자를 보며 박민정은 고개
최근 정수미는 비즈니스를 하러 다시 진주에 왔다.윤소현은 지금 그녀와 함께 식사 중이었다.그녀에게 음식을 집어주고 물을 따라주고는 말했다.“엄마, 많이 드세요.”“그래.”정수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 평화로운 순간에 전화벨 소리로부터 방해를 받게 되었다.윤소현은 전화를 받으려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한수민인 걸 발견하고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하지만 윤소현은 실수로 전화를 끊는 대신 통화 버튼을 눌러버렸다.가방에 넣어둔 상태라 한수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누구야?”정수미가 물었다.“왜 안 받아?”“스팸 전화예요.”윤소현이 대답했다.윤소현이 계속 대답하지 않자 한수민은 전화를 끊고 다시 걸려다가 정수미와 윤소현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스팸 전화?’윤소현이 버튼을 잘못 누른 걸 깨달은 한수민은 두 사람의 대화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정수미와 있을 때 윤소현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엄마, 푸아그라 엄청 맛있어요. 제가 미리 주문해서 공수해 온 거예요.”“그래.”정수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한 입 먹었다.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소현아, 한수민이 암에 걸렸다면서?”“네, 자궁경부암 말기예요. 의사가 2년도 못 살 거라고 했어요.”윤소현이 바로 대답했다.정수미가 한수민을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윤소현은 이어서 말했다.“자업자득이죠. 예전에 엄마에게서 아빠를 빼앗아 갔으니 이렇게 암에 걸린 거 아니에요.”윤소현은 한수민이 자기가 한 말을 똑똑히 듣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정수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소현아, 기억해. 한수민이 내게서 윤석후를 빼앗은 게 아니라, 한수민이 내가 쓰다 버린 윤석후를 찾아간 거야. 알겠어?”정수미는 정씨 가문 사람들을 대충 속이기 위해 윤석후와 결혼한 것이었다. 게다가 윤석후는 다루기 쉬웠다.그들 사이에는 사랑이 없었지만 정수미는 여전히 윤석후의 배신을 증오했다.“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엄마, 한수민 같은 여자가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