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수미는 비즈니스를 하러 다시 진주에 왔다.윤소현은 지금 그녀와 함께 식사 중이었다.그녀에게 음식을 집어주고 물을 따라주고는 말했다.“엄마, 많이 드세요.”“그래.”정수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이 평화로운 순간에 전화벨 소리로부터 방해를 받게 되었다.윤소현은 전화를 받으려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한수민인 걸 발견하고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하지만 윤소현은 실수로 전화를 끊는 대신 통화 버튼을 눌러버렸다.가방에 넣어둔 상태라 한수민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누구야?”정수미가 물었다.“왜 안 받아?”“스팸 전화예요.”윤소현이 대답했다.윤소현이 계속 대답하지 않자 한수민은 전화를 끊고 다시 걸려다가 정수미와 윤소현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스팸 전화?’윤소현이 버튼을 잘못 누른 걸 깨달은 한수민은 두 사람의 대화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정수미와 있을 때 윤소현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엄마, 푸아그라 엄청 맛있어요. 제가 미리 주문해서 공수해 온 거예요.”“그래.”정수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한 입 먹었다.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소현아, 한수민이 암에 걸렸다면서?”“네, 자궁경부암 말기예요. 의사가 2년도 못 살 거라고 했어요.”윤소현이 바로 대답했다.정수미가 한수민을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윤소현은 이어서 말했다.“자업자득이죠. 예전에 엄마에게서 아빠를 빼앗아 갔으니 이렇게 암에 걸린 거 아니에요.”윤소현은 한수민이 자기가 한 말을 똑똑히 듣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정수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소현아, 기억해. 한수민이 내게서 윤석후를 빼앗은 게 아니라, 한수민이 내가 쓰다 버린 윤석후를 찾아간 거야. 알겠어?”정수미는 정씨 가문 사람들을 대충 속이기 위해 윤석후와 결혼한 것이었다. 게다가 윤석후는 다루기 쉬웠다.그들 사이에는 사랑이 없었지만 정수미는 여전히 윤석후의 배신을 증오했다.“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엄마, 한수민 같은 여자가 엄마
“소현아, 엄마가 그렇게도 싫어?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어?”이불 속으로 몸을 숨긴 한수민이 행여나 남에게도 들릴까 봐 소리를 한껏 낮춘 채 물었다.그 소리는 유난히 무거웠고 한없이 가라앉았다.늘 자랑으로 생각하면서 애지중지 여겼던 딸이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마지노선을 잃은 채 생모의 기분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양모에게 그러한 심한 말을 했으니 말이다.생모가 싫다면서, 생모가 역겹다면서, 생모가 죽었으면 좋겠다면서.어쩌면 그 심한 말을 직접 듣고 나서야 한수민은 전에 박민정에게 했었던 그 말들이 얼마나 고약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엄마, 오해마세요.”윤소현은 다급히 이리저리 둘러대기 시작했다.“조금 전에는 정수미가 여기에 있어서 그런 거예요. 엄마도 아시잖아요, 정수미가 엄마가 싫어한다는 것 말이에요.”“그냥 정수미한테 좀 잘 보이고 싶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고요.”“제가 조금 전에 한 말들은 그냥 잊으세요. 정수미가 아니라 엄마야말로 제 친엄마인데, 당연히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거짓말을 합리화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윤소현의 말에 한수민은 믿지도 않았다.한수민은 눈빛이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했다.“내가 정말로 정수미보다 중요한 거 맞지?”“그럼요.”“그럼, 정수미한테 가서 내가 네 친엄마라고 내가 널 낳은 거라고 말해.”한수민이 말했다.그 말에 눈동자가 크게 일렁인 윤소현은 속으로 한수민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미친 거 아니야?’“엄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엄마 친딸이라는 사실을 정수미가 알게 된다면 정씨 가문의 모든 유산을 저한테 물려주겠어요?”한수민은 핸드폰을 꼭 움켜쥐었다.“그 재산이 중요한 거야 아니면 네 엄마인 내가 더 중요한 거야?”“그럼, 이렇게 하면 안 될까요? 정수미 유언 남기고 거의 죽어갈 때쯤에 사실을 말해주면 안 될까요?”“걔가 죽기 전에 나부터 죽을 것 같아서 그래!”윤소현에게 실망한 대로 한 한수민이다.“정수미한테 말할 용기가 없으면 내가 직접 할게.”그러나 그
“유언 상속을 무효로 만든다고 한들 큰 의미 없어요. 아빠가 이미 윤씨 가문의 재산을 따로 옮겨 버렸잖아요. 박민정이 상속하게 될 재산도 얼마 되지 않을 거예요.”한소민의 말을 듣고서 윤소현은 순간 흥미를 잃어버렸다.계속 자기 생각을 내뱉으려고 했던 한수민은 윤소현의 반응을 보고서 덩달아 흥미를 잃게 되었다.“그러네. 정씨 가문에 비하면 그 돈은 새 발의 피나 다름없는 거였네.”“엄마, 특별한 일 없으시면 앞으로 저 찾지 말아 주세요.”말믈 마치고 윤소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다른 이들에게 욕을 먹게 될까 봐 걱정되어서인지 아니면 한수민을 찾아온 사실을 정수미가 알게 될까 봐 두려웠는지 다급해 보였다.윤소현은 수표 한 장을 옆에 있는 간병인에게 주면서 말했다.“이거 받으세요. 이번 달 식사 비용, 병원 비용 그리고 아주머니 월급이에요.”돈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간병인은 바로 수표를 건네받았지만 윤소현이 떠나고 나서야 금액을 확인했다.600만 원이 적혀 있는 수표를 보고서 간병인은 혀를 내둘렀다.“600만 원밖에 없는데요? 사모님 병원 비용으로 모두 지급한다고 하더라도 부족할 거예요.”한수민은 이곳에 하루라도 입원해 있으면 몇십만 원이 들기 일쑤이다.여러 가지 약물치료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600만 원?”한수민 역시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간병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제가 보기엔 전번에 왔었던 그 따님이 훨씬 나은 것 같아요.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듣지 않으시더니 인제 알겠어요?”간병인은 요즘 도도하기 그지없었던 한수민의 모습이 예전과 달리 많이 사라짐을 발견하게 되었다.생사 앞에서 그 누구든 이처럼 약한 법이다.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결국 자연의 법칙을 어길 수 없으니 말이다.간병인은 문득 궁금하기도 했다.“사모님, 조금 전에 따님과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 그랬어요?”그 질문을 듣게 된 한수민은 어차피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아 눈 한번 딱 감기로 결정했다.“다
박민정은 간병인이 보내준 주소대로 차를 몰고 목적지로 향했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민기에게 함께 따라와 달라고 부탁도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도착할 때쯤, 박민정은 환자복을 입은 한수민이 엉클어진 머리를 한 채 초췌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부잣집 사모님의 도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많이 아파 보였다.박민정은 주위를 살펴보았는데, 이곳은 정씨 가문의 계열 회사였다.‘왜 여기로 오신 걸까?’박민정은 간병인에게 도착했다고 알리지 않고 핸드폰 네트워크도 잠시 꺼두었다.그렇게 하면 한쪽 곁에 있는 간병인은 박민정의 위치를 알 수 없게 된다.모든 걸 마치고 박민정은 차에서 내려 제법 은밀한 곳으로 몸을 숨겼다.한수민은 여기 이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회사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비원에게 가로막혀 버렸다.자기 앞길을 막고 있는 경비원에게 한수민은 언성을 높였다.“정수미보고 당장 나오라고 해!”경비원은 자기 회사 대표의 이름 석 자를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큰 소리로 부르고 있는 한수민을 보고서 자기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렸다.“누구십니까? 누구시길래 감히 우리 정 대표님 이름 석 자를 부르시면서 언성을 높이시는 거죠?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꺼지시기 바랍니다.”밀려드는 통증으로 이마에 땀이 흥건해진 한수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회사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정수미한테 한수민이 찾아왔다고 전해. 내 이름을 듣게 되면 무조건 나오게 되어 있어.”하지만 경비원은 그 말을 전해주려고 하지 않았다.“당장 꺼져! 확 밖으로 던져버리기 전에!”간병인 역시 한수민을 말리기 시작했다.“사모님, 그만 하세요. 왜 여기까지 찾아오셔서 이러시는 거예요.”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경비원들도 하나둘씩 다가와 한수민을 둘러싸기 시작했다.간병인은 슬슬 두렵기 시작했지만, 한수민은 전혀 그러하지 않았다.“나한테 손대도 상관없어. 근데 그거 알아? 나 암 말기 환자야. 앞으로 콩밥 먹고 살고 싶으면 얼마든지 덤벼.”그 말에 경비원들은
“정수미 씨, 다름이 아니라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서요. 실은 그동안 자기 딸로 키워왔던 소현이는 내...”“아주머니, 헛소리하지 마시죠.”윤소현은 바로 나서서 한수민의 말을 끊어버렸다.‘아주머니?’남다른 호칭에 한수민은 순간 굳어버리고 말았다.하지만 구미가 당긴 정수미는 윤소현을 말리면서 계속 물었다.“소현아, 괜찮아. 무엇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지 들어나 보자.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저 사람이 너에 대해서 뭐라고 하든 엄마는 우리 소현이 믿어.”윤소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네.”자기가 배 아파 낳은 딸이 다른 여자에게 엄마라고 부르면서 다정하게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그토록 아이러니할 수가 없었다.한수민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사실을 털어놓기로 했다.“정수미 씨, 잘 들어요. 윤소현, 우리 소현이 내 친딸이에요.”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정수미는 귀신이라도 본 듯했다.윤소현에 관해 결코 좋지 않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이토록 어안이 벙벙해지는 사실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겠다고 생각지도 못했다.“한수민 씨, 장난도 정도껏 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 소현이는 나랑 소현이 아빠가 복지센터로 가서 직접 데리고 온 아이라고요. 근데 어떻게 우리 소현이가 그쪽 딸이란 말이죠?”늘 한수민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정수미는 그녀와 두 눈을 마주하고 얘기를 해 본 적도 없다.그러나 지금 한수민이 자기를 속인 거라고 이 모든 것이 가짜라고 자신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해줬으면 했다.윤소현 역시 한수민에게 눈짓을 보내며 얼른 다른 거짓말로 둘러대기를 바라고 있었다.하지만 한수민은 눈치를 채지 못한 듯 차갑게 웃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흥! 비즈니스 여왕이라고 불리던 정수미 씨, 설마 그동안 애지중지 키워온 자식이 누구 배에서 나왔는지도 모르고 키운 거예요?”“소현이는 나랑 석후 사이에서 생긴 아이예요.”“석후랑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요.”충격적인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수미는 그 어떠한 표정 변화도 없었다.그러나 그
정수미의 질문에 윤소현은 순간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몰랐다.한수민 역시 윤소현을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다.사실 그대로 말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하지만 윤소현은 붉어진 눈시울로 한수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주머니, 어떻게 저를 그렇게 모함할 수 있어요?”“제 엄마는 제 친엄마이고 저를 지금까지 키워주신 분이에요. 저를 낳아주신 분이 누구든 저에게는 지금 이 엄마가 전부예요.”그 말에 정수미는 가슴이 따뜻해졌고 한수민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어릴 적부터 옆에서 챙겨주지 못하고 있어 주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말한다면 한수민은 그 어떠한 발언권도 없는 게 사실이다.하지만 한수민은 매년 자기 능력대로 윤소현을 만나러 갔었고 최선을 다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줬었다.몇 해 전 윤석후와 결혼을 했을 때도 전남편 집안에서 받은 폐백을 들고서 윤씨 가문으로 들어갔었다.다름이 아니라 바로 어릴 적부터 옆에 있어 주지 못했던 윤소현에게 보상하고 싶어서였다.“소현아, 사람 그러면 못 써. 내가 널 낳아준 엄마인데, 어떻게 엄마 앞에서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어?”박민정에게 했었던 그 말들을 그대로 돌려받고 있는 한수민이다.하지만 윤소현은 그 어떠한 표정변 화도 없었다.“아주머니, 제발 거짓말 좀 그만하세요.”“우리 아빠한테 다른 아주머니가 생겨서 아주머니께서 지금 충격을 받으시고 이러시는 거 알아요. 하지만 잘못을 한 사람은 우리 아빠이지 제가 아니잖아요. 그러니 저 좀 그만 괴롭히시면 안 돼요?”윤소현은 몹시나 억울한 모습으로 애원했다.“너! 너...”화가 치밀어 오른 한수민은 아랫배가 아프기 시작했다.하얀색 환자복을 입은 한수민, 어느새 새빨간 피가 그녀의 하얀 바지를 물들어 버렸다.간병인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사모님, 괜찮으세요? 얼른 병원으로 돌아가요.”윤소현 역시 그 모습을 보고서 살짝 두려웠다.하지만 정수미는 그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뿌린 대로 거둔다더니.”한수민은 간병인의 옷을 꼭 잡고서
박민정을 보게 된 순간 정수미는 그녀가 홀로 칼을 들고서 자기한테 했었던 말들이 떠 올랐다.만약 윤소현만 아니었다면 정수미는 박민정이라는 사람을 마음에 들어 했을 것이다.“너 역시 구경하려고 온 거야?”정수미는 말하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구경 온 사람들은 회사 직원들이 아니라 회사 앞을 지나가고 있던 행인들이었다.“당연히 아니죠.”박민정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서 무엇인가 찾는 듯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면서 덧붙였다.“아까 저기서 듣자 하니 증거가 필요하다면서요? 한수민 여사님이 윤소현 씨 생모라는 것에 관한 증거 말이에요.”윤소현은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야.”하지만 박민정은 그녀를 무시해 버리고 핸드폰에서 친자확인 보고서를 찾아 정수미에게 건네주었다.정수미는 지금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했지만, 일단은 건네받았다.보고서에는 한수민과 윤소현이 모녀 관계가 확실하면서 적혀 있었다.윤소현 역시 다가와 들여다보았는데 믿어지지 않았다.“엄마, 이거 가짜일 거예요.”“제가 어떻게 저 사람 딸일 수 있단 말이에요.”할리우드 배우도 울고 갈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윤소현이다.옆에서 지켜보던 간병인은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윤소현 씨, 지난번에 사모님 뵈러 왔을 때, 직접 말하시는 거 제가 다 들었어요. 사모님이 윤소현 씨 친엄마라면서 돈을 요구하셨잖아요.”간병인은 원래 남의 집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자기 생모를 외면하고 오히려 짓밟고 있는 윤소현의 행동에 그럴 수 없었다.간병인까지 나서자 윤소현은 제대로 터지고 말았다.“간병인 따위가 뭘 안다고 그러는 거야! 서로 짜고 치면서 나 엿 먹이려고 하는 거 아니야? 너희들 다 명예 훼손죄로 감방에 처넣을 수도 있어.”그 말을 듣고서 간병인은 흠칫 놀라며 입을 꾹 다물었다.옆에 서 있던 정수미는 딸이 노발대발하는 모습을 보고서 어느 정도 답이 생겼다.어릴 적부터 윤소현을 직접 챙겨온 정수미는 그녀의 성격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멀리 서서 지켜보던 박민정은 한수민의 말을 듣고서 그 어떠한 동정심도 느끼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그때 간병인이 박민정을 불러세웠다.“민정 씨 덕분에 이 정도로 끝낼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박민정이 아니었다면 한수민이 강제로 회사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것이라며 생각하고 있는 간병인이다.고마움을 표시하고 나서 간병인은 한수민의 옷깃을 당기며 그녀 역시 박민정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했으면 했다.한수민은 고개를 들어 박민정은 바라보았는데, 따뜻한 말이 아니라 심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나 이 꼴 된 거 보려고 온 거야? 직접 보니 어때? 마음에 들어?”박민정은 유난히 덤덤한 모습으로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네, 그러려고 온 거 맞는데, 이것만으로 성에 차지 않네요.”한수민은 바로 발버둥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박민정을 때리려고 했다.하지만 얼마 걷지도 못해 뒤로 넘어가려고 했고 간병인이 옆에서 간신히 잡았다.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한수민을 의사는 간신히 그녀를 염라대왕 손에서 빼앗아 왔다.“암세포 확산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보호자 분께서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의사가 말했다.그 말을 듣게 된 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덤덤했던 눈빛은 마침내 흔들리기 시작했다.“얼마나 더 버틸 수 있나요?”의사는 박민정의 그 질문을 듣고 한수민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러한 질문을 한 줄 알았다.하지만 박민정은 지금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아직 얼마나 더 고통 속에서 발버둥 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말이다.“한 석 달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석 달... 그건 너무 빨리 죽는 건데...’한수민이 한 짓에 비하면 석 달 살고 죽는 건 그녀에게 있어서 너무 행복한 일이다.의사가 떠나고 나서 한수민은 다시 병실로 옮겨졌지만 깨어나지 않았다.아주 긴 시간 동안 혼수 상태에 빠져 있었고 깨어날 수 없는 꿈까지 꾸었다.꿈에 박형식이 찾아와서 그녀가 한 짓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