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박민정은 이미 해운 별장으로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유남준이 박윤우를 빼앗아 가려는 줄 알고 무척이나 다급해 보였다.박윤우의 기분은 박민정 못지않게 나빴다.그 역시 조급한 모습으로 유남준 곁에 서 있다.‘아들인 내가 있는데 그러고 싶으실까?’“아빠, 경은 이모한테 이렇게 일찍 씻으라고 하신 거예요? 이따가 같이 자려는 건 아니죠?”그 말에 유남준은 얼굴이 순간 어두워지고 말았다.하지만 대답하지 않고 도려 물었다.“대체 그런 건 어디에서 배운 거야?”어린 나이에 좋은 건 배우지 않고 일찍 어른들 세계에 눈을 떴으니 말이다.박윤우는 텔레비전에서 본 것만 알고 화면이 어두워지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잘 모른다.“배울 필요 없어요. 형이 그랬는데, 이 나이가 되면 다 알게 된다고 했었어요.유남준은 안색이 더더욱 어두워졌다.‘박민정은 대체 집에서 애들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서다희 입에서 알다시피 큰아들 박예찬은 선생님 따라 해외로 여행을 가서 당장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다.박예찬은 돌아오고 나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김씨 가문에서 보내고 김훈은 이미 박예찬을 증손자로 맞이했다고 했다.“어린아이들이 알 건 아니야. 밥 먹고 집으로 돌아가.”유남준이 차갑게 말했다.박윤우는 가만히 듣기는 했지만 달갑지 않았다.“그래서 같이 자냐고요.”텔레비전에서는 일단 아이를 속여서 밖으로 보내고 나서 나쁜 일을 했었기 때문이다.유남준이 대답하려고 할 때 추경은이 샤워 가운을 입고 나왔다.“남준 오빠, 욕실에 샴푸가 없던데 오빠 샴푸 써도 돼?”박윤우는 바로 추경은을 바라보았는데,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가운만 걸치고 나온 그 몸매는 무척이나 이기적이었다.흔히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악녀의 모습이 따로 없었다.유남준의 얼굴에 한기가 가득했다.“없으면 쓰지 마.”‘하여간 여자들이란 귀찮아.’추씨 가문 어르신 추재훈만 아니었더라면 유남준은 이미 추경은을 내쫓아 버렸을 것이다.추경은은 본래 매혹적인 모습으로 나와 유남
대략 8년 전, 박민정과 유남준이 결혼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던 그때였다.고영란이 추경은을 데리고 두원 별장으로 왔었는데, 그때의 추경은은 흠 하나 없이 맑았고 말솜씨도 제법 뛰어난 소녀였다.모든 것에 낯설어하고 있는 박민정을 보고서 추경은은 먼저 선뜻 다가가 이야기도 하고 했었다.박민정은 지금껏 추경은이 했었던 그 역겨운 말을 기억하고 있다.두 사람만 있을 때 했었던 말을.“새언니, 전에 남준 오빠가 만났던 그 새언니가 훨씬 더 예쁜 것 같아요.”“우리 남준 오빠가 그 새언니한테 얼마나 잘해 주었는지 모르죠? 새언니네 조건이 좀 그러해서 두 사람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결혼했을지도 몰라요.”“전에 커플 프로필 사진까지 찍고 그랬었는데...”추경은은 쉴 새 없이 중얼거렸고 17, 18살 되는 소녀가 아니라 아직 철이 들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보였다.박민정은 그때 유남준을 끔찍이 사랑하여 추경은 입에서 유남준과 이진원의 좋았던 순간들 그리고 자꾸 자기와 이지원을 비교하는 말에 마음이 언짢았다.하지만 결국 끝까지 참을 수밖에 없었다.가기 전까지 추경은은 계속 성숙하지 못한 말과 행동을 했었다.“새언니, 제가 조금 전에 한 말들은 우리 남준 오빠한테 알려주지 마세요. 남준 오빠 엄청 화 낼 거예요. 지원 언니에 대해서 언급하는 거 남준 오빠가 싫어하거든요.”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추악하기 그지없는 추경은이었다.박민정은 평생 그녀와 마주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지내왔는데, 또 이렇게 나타나게 되어 순간 짜증이 났다.하지만 지금의 박민정 역시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추경은은 자기가 이곳에서 샤워한 것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박민정의 모습을 보고서 바로 쪼르르 달려가 박민정의 손을 잡았다.“새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박민정은 바로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가식적인 그 모습을 받아주지 않았다.아예 무시해 버리고 단도직입적으로 유남준에게 물었다.“윤우는 왜 데리고 온 거예요?”유남준이 지금 추경은이랑 어떤 사이인지 전
추경은의 예쁜 얼굴은 순간 화끈 달아오르고 말았다.“윤우야, 함부로 말하지 마. 이모 조금 전에 깨끗하게 씻었어.”“우리 형이 더러운 것 만지고 나면 아무리 씻어도 손에 남아 있어서 고온으로 소독하고 살균해야 한다고 했어요.”추경은은 그 말에 의아하기만 했다.“고온으로 어떻게 소독하고 살균한다는 말이야?”“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아마도 기름통에 손을 넣고 한번 튀겨야 하지 않겠어요?”“...”박민정은 늘 추경은이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겨왔었다.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윤우야,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박윤우는 조금 전에 추경은이 화장실에서 청소한 일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듣자마자 박민정은 자기 아들이 일부러 추경은을 놀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박윤우는 2살이 거의 되었을 때부터 스스로 엉덩이를 닦았고 위생에도 엄청 신경 썼다.바지에 묻히고 다니는 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그렇게 행동한 박윤우의 사정을 알 수 없었지만, 아들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기로 했다.“그랬구나.”“경은 씨, 좀 더 씻어야 할 거예요.”추경은은 조금 전 욕실에서 샤워할 때 손에 껍질이 일어날 정도로 씻었다.지금 그녀는 멋쩍고 화가 난 상황이다.“네, 알아요. 수도 없이 씻었어요.”더 이상 유남준에게 밥을 덜어주기도 민망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실은 그녀가 직접 나서서 할 필요도 없었고 부하들이 음식을 가져올 때 책임지는 아주머니께서 먹기 좋게 모두 세팅하여 보내오곤 한다.즉, 추경은의 조금 전 모든 행동은 부질없었다는 것이다.“엄마, 아빠 밥 드시는 거 좀 도와줘. 혼자 드시기에 좀 힘드실 거야.”박윤우는 추경은이 나서서 또 ‘공로’를 가로챌까 봐 박민정을 재촉하기 시작했다.유남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박민정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했다.하지만 박민정은 여전히 그러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윤우야, 아빠 지금 앞이 안 보이시는 것뿐이지
과일을 먹으면서 박윤우와 책을 보고 있던 박민정은 추경은이 갑자기 화제를 자기 쪽으로 돌리자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남준 씨한테 내가 뭘 말했다고?’그 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간 건 말할 것도 없고 추경은이 했었던 그 말들을 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알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유남준에게 말한다고 한들 절대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쓴다며 쓴소리를 들을 게 그때는 분명했으니 말이다.“무슨 말을 했었다는 거죠?”박민정은 금시초문인 것처럼 덤덤하게 물었다.생각지도 못한 박민정의 반응에 추경은은 목이 메고 만다.“그...”유남준 앞에서 그때 했었던 그 말들을 하려고 하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이때 박민정은 하품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참 이상하네요. 경은 씨도 자기가 했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저한테 남준 씨한테 말한 거 아니냐고 따지는 거 참 웃기지 않아요?”“적어도 어느 방면에 관한 내용인지 힌트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야 제가 말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기억할 거 아니에요.”추경은은 순간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양쪽에 늘어진 손을 꼭 움켜잡고서 다시 입을 열기는 했지만.“새언니, 저 그냥 여기 있게 해주세요. 언니도 오빠도 제가 옆에서 잘 챙겨 드릴게요.”“참, 윤우까지 제가 알아서 다들 엄청 잘 챙겨 드릴게요. 절대 그 어느 하인보다 뒤떨어지지 않게 잘할게요.”박민정은 하인이 되고 싶다며 하인보다 더 잘할 수 있다며 자기 자신을 선전하는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이 일에 관해서는 남준 씨한테 물어보시죠. 저도 우리 윤우도 하인 필요 없거든요.”박윤우도 바로 말을 가로채버렸다.“맞아요. 경은 이모, 저 필요 없어요.”추경은은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는데, 박민정이 다시 문제를 유남준에게 돌릴 줄은 몰랐다.박민정에게 부탁하면 자기 뜻을 받아줄 줄 알았는데 말이다.“남준 오빠, 나 여기 있게 할 거지?”추경은은 울먹이며 덧붙였다.“나, 이대로 돌아가면 할아버지한테
박윤우는 어리둥절한 채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유남준은 손 세정제를 이리저리 흩뿌려 놓으면서 손을 씻고 있었다.박민정은 엉망이 된 세면대를 닦으며 불평을 쏟아냈다.“서 비서님에게 먼저 물건들을 어떻게 쓰는지, 어디에 두는지 설명해 달라고 하지 그랬어요?”박민정은 유남준이 중요한 일이 있어 자기를 부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자존심을 세우느라 서다희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달라고 하지 않은 것이었다.그래서 그는 지금 손 세정제나 클렌징폼, 그리고 다른 물품들이 어디 있는지 모른 채 혼자 더듬거리고 있었다.유남준은 어젯밤에 세면대의 물건들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모자라 지금은 뻔뻔하게 박민정을 불러 수습하게 만들었다.“왜 경은 씨보고 대신 정리해 달라고 하지 않아요?”박민정의 불평이 유남준의 귀에 쏙쏙 들어왔다.과거에는 시키는 대로 얌전히 일하던 박민정이 이제는 자기를 나무라기 시작했으니 유남준은 믿기지 않았다.“박민정, 그동안 내가 너무 잘해줬지?”“어떻게 생각해요?”박민정은 마지막 물건을 정리하고 유남준의 손을 잡았다.유남준은 본능적으로 손을 뺐고 눈에는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그 모습을 본 박민정은 더욱 화가 났다.“남준 씨가 손 내밀어 만져봐야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 거 아니에요?”유남준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그의 마지못한 태도에 박민정은 그를 골탕 먹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치밀어 올랐다.박민정은 유남준의 손을 잡는 대신 방금 씻고 아직 마르지 않은 손을 그의 얼굴에 철썩 내리쳤다.유남준은 즉시 화를 냈다.“뭐 하는 거야?”“별거 아니에요. 남준 씨 얼굴이 건조해 보여서 수분을 좀 보충해 주려고요.”말을 마친 후 박민정은 다른 손을 내밀어 유남준의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이상하게도 유남준은 평소 얼굴 관리를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의 얼굴은 매우 희고 피부도 부드러웠다.모공도 거의 보이지 않아 가까이서 보면 마치 그림 속의 캐릭터 같았다.그래서인지 어떤
박민정은 유남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윤우를 내 곁에서 데려가려고 하는 거예요?”조금 전까지 묻지 않았다고 해서 그 생각이 잊혀진 건 아니었다.유남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딜 봐서 내가 윤우를 데려가려 한다고 생각한 거야?”박민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내가 오해한 건가?’“그럼 내일 윤우를 데리고 돌아갈게요.”“맘대로 해.”유남준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런 그의 태도를 보고 박민정은 그가 윤우를 뺏으려 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했다.박민정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아래층으로 가서 윤우를 데려와 객실에서 함께 자려고 했다.그때 유남준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앞으로 애한테 엉뚱한 걸 가르치지 마.”“내가 엉뚱한 걸 가르쳤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박민정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유남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윤우와 예찬이는 너무 조숙해. 어린애들이 가지지 않아도 될 생각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이상한 생각들보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걸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해.”엉덩이를 닦는 것도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니.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면 분명 비웃음을 당할 것이다.유남준은 가능한 한 말을 돌려서 표현했기 때문에 박민정은 어리둥절했다.지금 박민정은 피곤해 자고 싶어졌기에 대충 대답했다.“알았어요.”그리고 박민정은 윤우를 찾으러 갔다.윤우는 혼자 거실에서 기다리다가 엄마와 아빠가 계속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박민정은 곤히 잠든 윤우를 보고 조심스럽게 그를 안아 침실로 데려갔다.박윤우는 원래 깔끔한 걸 좋아해서 추경은을 괴롭히기 전에 이미 몸을 깨끗이 씻어두었다.그래서 박민정은 그를 씻겨줄 필요가 없었다.박민정은 간단히 씻은 후 그를 안고 곧바로 잠들었다.다음 날.알람 소리에 박민정 모자가 깨어났다.박윤우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엄마...”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다.“엄마가 왜 나랑 같이 자고 있어?”이 말을 하자마자,
박윤우는 흠칫했다.‘경은 이모가 간 줄 알았는데 지금 문 앞에서 불쌍한 척 동정을 사려고 해?’유남준은 표정이 바뀌지 않은 채로 말했다.“그냥 내버려둬요.”“알겠습니다.”가정부는 자리를 떴다.박민정도 추경은이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릴 줄은 몰랐다.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아침 식사를 마저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아침을 먹은 후, 박민정은 윤우를 데리고 유치원으로 향했다.별장 밖에는 빗방울이 가볍게 내리고 있었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다.이따금 더 큰 비가 내릴 듯한 분위기였다.가정부가 우산을 들어줬는데 박민정은 바로 문 앞에서 비에 젖어 초라해진 추경은을 발견했다.추경은도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녀는 온몸이 다 젖어 있었다.지금은 4월이라 비가 오면 겨울 못지않은 추위를 느낄 수 있었다.추경은은 추워서 입술이 새파래졌는데 박민정을 보자 구세주를 찾은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새언니, 제발 저를 여기에 있게 해주세요. 저는 뭐든지 할게요. 여기 떠나면 갈 곳이 없어요. 제가 이대로 돌아가면 할아버지는 제 다리를 부러뜨릴 거예요.”박민정의 맑은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그녀는 그저 윤우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가자.”추경은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박민정이 도와주지 않자 무릎 꿇은 채로 그녀에게 다가가고는 옷자락을 덥석 잡았다.“새언니, 정말 제가 죽는 걸 눈 뜨고 지켜보실 건가요? 무릎 꿇고 이렇게 빌게요. 제발 여기에 있게 해주세요.”추경은은 마치 박민정이 그녀를 여기에 있게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애원했다.분명 그녀를 여기서 쫓아내려고 한 사람은 유남준인데 추경은은 마치 박민정이 잘못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이를 보고 있던 가정부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사모님이 너무 속이 좁다고 생각했다.사촌동생이 와서 도와주겠다는 데도 허락하지 않는다니, 집이 가난하거나 지낼 곳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이거 놔요!”박민정은 이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추경은은 그녀를
추경은 천천히 박민정의 바지에서 손을 놓으며 말했다.“그럼 새언니가 대신 오빠에게 전해주세요.”박민정은 그녀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경은 씨 머리가 이상한 거예요? 아니면 내 머리가 이상한 거예요? 아까는 나한테 여기에 머물 수 있게 해달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러라고 했죠. 그런데 이제는 남준 씨에게 전해달라고요? 그러면 처음부터 남준 씨에게 여기 머물 수 있게 부탁하지 그랬어요?”추경은은 박민정이 이렇게 말 잘하는 줄은 몰랐기에 잠시 당황했다.가정부들도 이제야 상황을 이해한 듯 보였다.박민정이 속이 좁은 사람이라서 외면한 게 아니라 추경은의 의도가 너무 불순해 보였기 때문이었다.“경은 씨를 여기에 머물게 못 하게 한 건 남준 씨인데 마치 내가 경은 씨를 못 머물게 하는 것처럼 행동하네요. 내 말이 효과가 있었다면 경은 씨는 나더러 다시 남준 씨에게 전해달라고 하지도 않았겠죠?”박민정이 덧붙였다.추경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새언니, 저를 오해했네요.”“그만해요, 난 그 수작에 넘어가지 않아요. 나도 할 일이 많아서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을 거예요.”박민정이 말을 마친 후 가정부의 우산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운전기사는 그녀를 두원 별장으로 데려갔다.박민정은 최근 새 앨범 작업과 에리와의 협업으로 바빴기 때문에 추경은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그러나 추경은은 여전히 문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떠나지 않으려 했다.그녀는 유남준이 그렇게 냉정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곧 큰 비가 쏟아져 내렸고 굵은 빗방울이 그녀의 몸에 내리쳤다.추경은은 추위에 몸을 떨었다.서다희가 유남준을 찾아왔을 때, 추경은이 문 앞에서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추경은 씨 아닌가요?”서다희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추경은은 달콤한 외모와 활발한 성격 덕에 사람과의 교제에 능했다.예전에 유남준의 집에 올 때마다 추경은은 항상 서다희를 '다희 오빠'라고 불렀다.추경은은 그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다희 오빠...”서다희는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