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769화

작가: 윤지
추경은의 예쁜 얼굴은 순간 화끈 달아오르고 말았다.

“윤우야, 함부로 말하지 마. 이모 조금 전에 깨끗하게 씻었어.”

“우리 형이 더러운 것 만지고 나면 아무리 씻어도 손에 남아 있어서 고온으로 소독하고 살균해야 한다고 했어요.”

추경은은 그 말에 의아하기만 했다.

“고온으로 어떻게 소독하고 살균한다는 말이야?”

“저도 잘은 모르겠는데, 아마도 기름통에 손을 넣고 한번 튀겨야 하지 않겠어요?”

“...”

박민정은 늘 추경은이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겨왔었다.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윤우야,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박윤우는 조금 전에 추경은이 화장실에서 청소한 일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듣자마자 박민정은 자기 아들이 일부러 추경은을 놀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박윤우는 2살이 거의 되었을 때부터 스스로 엉덩이를 닦았고 위생에도 엄청 신경 썼다.

바지에 묻히고 다니는 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행동한 박윤우의 사정을 알 수 없었지만, 아들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기로 했다.

“그랬구나.”

“경은 씨, 좀 더 씻어야 할 거예요.”

추경은은 조금 전 욕실에서 샤워할 때 손에 껍질이 일어날 정도로 씻었다.

지금 그녀는 멋쩍고 화가 난 상황이다.

“네, 알아요. 수도 없이 씻었어요.”

더 이상 유남준에게 밥을 덜어주기도 민망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실은 그녀가 직접 나서서 할 필요도 없었고 부하들이 음식을 가져올 때 책임지는 아주머니께서 먹기 좋게 모두 세팅하여 보내오곤 한다.

즉, 추경은의 조금 전 모든 행동은 부질없었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 밥 드시는 거 좀 도와줘. 혼자 드시기에 좀 힘드실 거야.”

박윤우는 추경은이 나서서 또 ‘공로’를 가로챌까 봐 박민정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유남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박민정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민정은 여전히 그러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윤우야, 아빠 지금 앞이 안 보이시는 것뿐이지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770화

    과일을 먹으면서 박윤우와 책을 보고 있던 박민정은 추경은이 갑자기 화제를 자기 쪽으로 돌리자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남준 씨한테 내가 뭘 말했다고?’그 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간 건 말할 것도 없고 추경은이 했었던 그 말들을 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알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유남준에게 말한다고 한들 절대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쓴다며 쓴소리를 들을 게 그때는 분명했으니 말이다.“무슨 말을 했었다는 거죠?”박민정은 금시초문인 것처럼 덤덤하게 물었다.생각지도 못한 박민정의 반응에 추경은은 목이 메고 만다.“그...”유남준 앞에서 그때 했었던 그 말들을 하려고 하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이때 박민정은 하품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참 이상하네요. 경은 씨도 자기가 했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저한테 남준 씨한테 말한 거 아니냐고 따지는 거 참 웃기지 않아요?”“적어도 어느 방면에 관한 내용인지 힌트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야 제가 말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기억할 거 아니에요.”추경은은 순간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양쪽에 늘어진 손을 꼭 움켜잡고서 다시 입을 열기는 했지만.“새언니, 저 그냥 여기 있게 해주세요. 언니도 오빠도 제가 옆에서 잘 챙겨 드릴게요.”“참, 윤우까지 제가 알아서 다들 엄청 잘 챙겨 드릴게요. 절대 그 어느 하인보다 뒤떨어지지 않게 잘할게요.”박민정은 하인이 되고 싶다며 하인보다 더 잘할 수 있다며 자기 자신을 선전하는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이 일에 관해서는 남준 씨한테 물어보시죠. 저도 우리 윤우도 하인 필요 없거든요.”박윤우도 바로 말을 가로채버렸다.“맞아요. 경은 이모, 저 필요 없어요.”추경은은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는데, 박민정이 다시 문제를 유남준에게 돌릴 줄은 몰랐다.박민정에게 부탁하면 자기 뜻을 받아줄 줄 알았는데 말이다.“남준 오빠, 나 여기 있게 할 거지?”추경은은 울먹이며 덧붙였다.“나, 이대로 돌아가면 할아버지한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771화

    박윤우는 어리둥절한 채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유남준은 손 세정제를 이리저리 흩뿌려 놓으면서 손을 씻고 있었다.박민정은 엉망이 된 세면대를 닦으며 불평을 쏟아냈다.“서 비서님에게 먼저 물건들을 어떻게 쓰는지, 어디에 두는지 설명해 달라고 하지 그랬어요?”박민정은 유남준이 중요한 일이 있어 자기를 부른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자존심을 세우느라 서다희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달라고 하지 않은 것이었다.그래서 그는 지금 손 세정제나 클렌징폼, 그리고 다른 물품들이 어디 있는지 모른 채 혼자 더듬거리고 있었다.유남준은 어젯밤에 세면대의 물건들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모자라 지금은 뻔뻔하게 박민정을 불러 수습하게 만들었다.“왜 경은 씨보고 대신 정리해 달라고 하지 않아요?”박민정의 불평이 유남준의 귀에 쏙쏙 들어왔다.과거에는 시키는 대로 얌전히 일하던 박민정이 이제는 자기를 나무라기 시작했으니 유남준은 믿기지 않았다.“박민정, 그동안 내가 너무 잘해줬지?”“어떻게 생각해요?”박민정은 마지막 물건을 정리하고 유남준의 손을 잡았다.유남준은 본능적으로 손을 뺐고 눈에는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그 모습을 본 박민정은 더욱 화가 났다.“남준 씨가 손 내밀어 만져봐야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 거 아니에요?”유남준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그의 마지못한 태도에 박민정은 그를 골탕 먹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치밀어 올랐다.박민정은 유남준의 손을 잡는 대신 방금 씻고 아직 마르지 않은 손을 그의 얼굴에 철썩 내리쳤다.유남준은 즉시 화를 냈다.“뭐 하는 거야?”“별거 아니에요. 남준 씨 얼굴이 건조해 보여서 수분을 좀 보충해 주려고요.”말을 마친 후 박민정은 다른 손을 내밀어 유남준의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이상하게도 유남준은 평소 얼굴 관리를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의 얼굴은 매우 희고 피부도 부드러웠다.모공도 거의 보이지 않아 가까이서 보면 마치 그림 속의 캐릭터 같았다.그래서인지 어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772화

    박민정은 유남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윤우를 내 곁에서 데려가려고 하는 거예요?”조금 전까지 묻지 않았다고 해서 그 생각이 잊혀진 건 아니었다.유남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딜 봐서 내가 윤우를 데려가려 한다고 생각한 거야?”박민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내가 오해한 건가?’“그럼 내일 윤우를 데리고 돌아갈게요.”“맘대로 해.”유남준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런 그의 태도를 보고 박민정은 그가 윤우를 뺏으려 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했다.박민정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아래층으로 가서 윤우를 데려와 객실에서 함께 자려고 했다.그때 유남준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앞으로 애한테 엉뚱한 걸 가르치지 마.”“내가 엉뚱한 걸 가르쳤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박민정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유남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윤우와 예찬이는 너무 조숙해. 어린애들이 가지지 않아도 될 생각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이상한 생각들보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걸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해.”엉덩이를 닦는 것도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니.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면 분명 비웃음을 당할 것이다.유남준은 가능한 한 말을 돌려서 표현했기 때문에 박민정은 어리둥절했다.지금 박민정은 피곤해 자고 싶어졌기에 대충 대답했다.“알았어요.”그리고 박민정은 윤우를 찾으러 갔다.윤우는 혼자 거실에서 기다리다가 엄마와 아빠가 계속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박민정은 곤히 잠든 윤우를 보고 조심스럽게 그를 안아 침실로 데려갔다.박윤우는 원래 깔끔한 걸 좋아해서 추경은을 괴롭히기 전에 이미 몸을 깨끗이 씻어두었다.그래서 박민정은 그를 씻겨줄 필요가 없었다.박민정은 간단히 씻은 후 그를 안고 곧바로 잠들었다.다음 날.알람 소리에 박민정 모자가 깨어났다.박윤우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엄마...”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다.“엄마가 왜 나랑 같이 자고 있어?”이 말을 하자마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773화

    박윤우는 흠칫했다.‘경은 이모가 간 줄 알았는데 지금 문 앞에서 불쌍한 척 동정을 사려고 해?’유남준은 표정이 바뀌지 않은 채로 말했다.“그냥 내버려둬요.”“알겠습니다.”가정부는 자리를 떴다.박민정도 추경은이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릴 줄은 몰랐다.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아침 식사를 마저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아침을 먹은 후, 박민정은 윤우를 데리고 유치원으로 향했다.별장 밖에는 빗방울이 가볍게 내리고 있었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다.이따금 더 큰 비가 내릴 듯한 분위기였다.가정부가 우산을 들어줬는데 박민정은 바로 문 앞에서 비에 젖어 초라해진 추경은을 발견했다.추경은도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녀는 온몸이 다 젖어 있었다.지금은 4월이라 비가 오면 겨울 못지않은 추위를 느낄 수 있었다.추경은은 추워서 입술이 새파래졌는데 박민정을 보자 구세주를 찾은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새언니, 제발 저를 여기에 있게 해주세요. 저는 뭐든지 할게요. 여기 떠나면 갈 곳이 없어요. 제가 이대로 돌아가면 할아버지는 제 다리를 부러뜨릴 거예요.”박민정의 맑은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그녀는 그저 윤우의 눈을 가리며 말했다.“가자.”추경은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박민정이 도와주지 않자 무릎 꿇은 채로 그녀에게 다가가고는 옷자락을 덥석 잡았다.“새언니, 정말 제가 죽는 걸 눈 뜨고 지켜보실 건가요? 무릎 꿇고 이렇게 빌게요. 제발 여기에 있게 해주세요.”추경은은 마치 박민정이 그녀를 여기에 있게 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애원했다.분명 그녀를 여기서 쫓아내려고 한 사람은 유남준인데 추경은은 마치 박민정이 잘못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이를 보고 있던 가정부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사모님이 너무 속이 좁다고 생각했다.사촌동생이 와서 도와주겠다는 데도 허락하지 않는다니, 집이 가난하거나 지낼 곳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이거 놔요!”박민정은 이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추경은은 그녀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774화

    추경은 천천히 박민정의 바지에서 손을 놓으며 말했다.“그럼 새언니가 대신 오빠에게 전해주세요.”박민정은 그녀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경은 씨 머리가 이상한 거예요? 아니면 내 머리가 이상한 거예요? 아까는 나한테 여기에 머물 수 있게 해달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러라고 했죠. 그런데 이제는 남준 씨에게 전해달라고요? 그러면 처음부터 남준 씨에게 여기 머물 수 있게 부탁하지 그랬어요?”추경은은 박민정이 이렇게 말 잘하는 줄은 몰랐기에 잠시 당황했다.가정부들도 이제야 상황을 이해한 듯 보였다.박민정이 속이 좁은 사람이라서 외면한 게 아니라 추경은의 의도가 너무 불순해 보였기 때문이었다.“경은 씨를 여기에 머물게 못 하게 한 건 남준 씨인데 마치 내가 경은 씨를 못 머물게 하는 것처럼 행동하네요. 내 말이 효과가 있었다면 경은 씨는 나더러 다시 남준 씨에게 전해달라고 하지도 않았겠죠?”박민정이 덧붙였다.추경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새언니, 저를 오해했네요.”“그만해요, 난 그 수작에 넘어가지 않아요. 나도 할 일이 많아서 여기서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을 거예요.”박민정이 말을 마친 후 가정부의 우산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갔다.운전기사는 그녀를 두원 별장으로 데려갔다.박민정은 최근 새 앨범 작업과 에리와의 협업으로 바빴기 때문에 추경은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그러나 추경은은 여전히 문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떠나지 않으려 했다.그녀는 유남준이 그렇게 냉정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곧 큰 비가 쏟아져 내렸고 굵은 빗방울이 그녀의 몸에 내리쳤다.추경은은 추위에 몸을 떨었다.서다희가 유남준을 찾아왔을 때, 추경은이 문 앞에서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추경은 씨 아닌가요?”서다희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추경은은 달콤한 외모와 활발한 성격 덕에 사람과의 교제에 능했다.예전에 유남준의 집에 올 때마다 추경은은 항상 서다희를 '다희 오빠'라고 불렀다.추경은은 그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다희 오빠...”서다희는 바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775화

    유남준은 표정이 어두워졌다.“너보고 남으라고 한 건 박민정이니 두원 별장에 가서 박민정 도와.”박민정이 함부로 그의 일에 참견한 게 유남준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추경은은 멍해 있더니 저도 모르게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말을 내뱉기도 전에 박민정과 함께 지내면 유남준과도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말을 삼켰다.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알겠어. 지금 바로 두원 별장에 갈게.”추경은 이 모든 게 이렇게 쉽게 풀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그녀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다른 한편.박민정은 유남준이 그 귀찮은 일을 다시 자신에게 떠넘겼다는 사실을 모른 채 전날 집에 돌아온 후 수정한 곡을 챙겨 출근했다.추경은이 두원 별장에 도착했을 때 박민정은 없었다.두원 별장의 가정부들은 추경은을 알지 못했다.가정부는 박윤우에게 추경은을 아는지 물었지만 박윤우는 바로 부정하며 대답했다.“그게 뭐예요? 먹는 거예요?”가정부는 그 말을 듣고 문밖 경비에게 말했다.“대표님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이거나 대표님을 유혹하려는 사람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내쫓아요.”가정부는 항상 박윤우와 박민정의 편이었다.그녀 역시 여자로서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유남준은 항상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잘생긴 데다가 돈이 많았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하지만 집까지 찾아온 사람은 처음이었다.“이모, 잘하셨어요! 엄마가 돌아오면 이 얘기 전할게요. 엄마도 이모를 칭찬할 거예요.”박윤우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칭찬은 필요 없고 월급이나 올려주면 돼.”가정부의 소망은 단순했다.박윤우는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그렇게 전할게요.”“그래.”가정부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그녀는 박윤우를 돌보는 좋은 일자리를 찾은 후 지난 1년 동안 모은 월급으로 진주에 집 한 채의 계약금을 낼 수 있게 되었다.진주에서 가장 저렴한 지역의 집도 평당 5, 600만 원은 했다.그녀가 지금 받는 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776화

    추경은 또 다른 걸 물었다.그 사이 경비원은 그녀에게 옷을 찾아 걸쳐 주었다.추경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오빠 진짜 좋은 사람이네요.”경비는 얼굴이 빨개지며 쑥스러워했다.추경은은 또 말했다.“진짜예요, 거짓말이 아니라고요. 앞으로 저는 이곳에 살 거예요. 잘 부탁드려요.”“정말요? 그럼 잘됐네요. 경은 씨,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도와드릴게요.”추경은은 자신의 외모와 말솜씨로 경비원을 단숨에 매료시켰다.오늘.박민정과 에리가 일을 마쳤을 때 시간은 이미 늦었다.박민정은 집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에리는 그녀를 붙잡으며 무조건 데려다주겠다고 했다.“민정 씨, 곡 작업에 대해 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이번엔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걱정 마. 밖은 확인했어. 기자들 없었어.”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어차피 둘은 단순히 곡 얘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선을 넘은 것도 아니었다.두원 별장에 도착했을 때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에리는 직접 내려 박민정에게 우산을 씌워 주었다.“고마워.”박민정은 손에 곡 작업을 위한 여러 가지 자료와 가방을 들고 있었기에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둘이 입구로 걸어가고 있을 때 추경은이 경비실에서 나왔다.그녀는 경비원의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박민정과 에리가 함께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새언니!”추경은이 큰 목소리로 박민정을 불렀다.박민정은 흠칫 놀랐다.‘추경은이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추경은은 일부러 우산을 쓰지 않고 박민정과 에리 쪽으로 달려왔다.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추경은은 앞에 있는 남자 연예인을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어머, 에리 씨 아니에요?”에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가 귀국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안 되었기 때문에 아직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죄송합니다. 잘못 보셨네요.”그는 마스크를 쓰고는 우산을 박민정에게 건넸다.“이만 가볼게.”“그래.”박민정도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에리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777화

    “새언니, 고마워요.”추경은은 순간 미소를 짓고는 박민정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외투를 경비원에게 돌려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이렇게 친절하게 사람을 대하는 상류층의 아가씨는 상류 사회든 일반 대중이든 누구에게나 좋은 첫인상을 남기곤 했다.추경은 그렇게 박민정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조금씩 자기편으로 만들고 있었다.두원 별장에 도착한 추경은은 가방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새언니, 저 잠깐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네.”박윤우와 가정부는 깜짝 놀랐다.가정부는 이 사람이 진짜 사장님의 친척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자신이 하루 종일 못 들어오게 했기 때문에 나중에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박윤우는 엄마가 이렇게 위험한 사람을 집으로 들인 것에 대해 놀라워하고 있었다.추경은은 옷을 갈아입고 나와 박윤우에게 인사를 한 뒤 주방으로 갔다.“아저씨, 제가 도와드릴까요? 예전에 유명 셰프에게 요리 좀 배운 적이 있어요.”추경은은 주방의 메인 셰프에게 말을 걸었다.셰프는 두 명의 보조를 데리고 있었다. 두 청년은 추경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추경은 이런 분위기를 즐겼다.메인 셰프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곧바로 한 청년을 도와 채소를 씻기 시작했다.박윤우는 이 상황을 보고 박민정의 손을 잡아당겼다.“엄마, 왜 저 사람을 여기로 데려왔어요?”박민정은 윤우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해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경은 이모가 갈 데가 없어서 잠시 여기서 지내기로 했어.”박윤우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엄마는 너무 순진하네. 추경은이 아빠를 뺏으려고 왔다는 걸 모르는 걸까?’박민정은 추경은의 속셈을 모르는 게 아니라 신경 쓰지 않은 것이었다.아직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여우처럼 약은 추경은은 나중에 천천히 처리해도 되었다.식사 준비를 다 한 추경은은 미소를 지으며 가정부들을 도와 음식을 날랐고, 또 박윤우를 돌보는 가정부에게도 인사를 건넸다.“윤우를 돌봐주신 분이시죠? 윤우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건 다 선생님 덕분이에

최신 챕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50화

    “왜요?” 주영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주연 무용수를 다시 맡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썼는데 이제 와서 필요 없다니.“더 잘 추는 사람을 찾았거든.” 무용 선생님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사실 선생님은 박민정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이 말이 주영리의 분노를 더욱 부추겨 이후 박민정이 큰일을 당할 뻔한 계기가 되고 말았다.“그 사람이 누구인데요?” 주영리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잠시 후 무대에 오를 거야. 보면 알겠지만 정말 주 비서가 따라갈 수 없는 실력이더라.” 무용 선생님은 담담하게 말했다.주영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지금껏 동료들에게 자신이 주연 무용수로 공연한다고 떠벌렸는데 이게 모두 헛소리가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도대체 누가 그녀를 대신하게 됐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호텔 밖에서는 고급 차들이 하나둘씩 도착하며 적지 않은 기업인들이 차에서 내렸다.박민정의 회사 사장인 제임스는 특별히 중요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때 은은한 고급스러움을 자랑하는 한 대의 링컨 차량이 천천히 호텔로 들어섰다.이를 본 제임스의 눈이 반짝였고 그는 직접 차량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유 대표님.”차에서 내린 사람은 유남준이었다. 그는 제임스와 간단히 악수를 나눴다.“유 대표님, 조용히 대화 나눌 수 있는 전용 룸을 준비해뒀습니다. 함께 가시죠.”“좋습니다.”제임스는 유남준을 모시고 2층의 특별실로 향했다.이를 지켜본 회사 직원들은 사장이 젊은 외국 남성에게 이렇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의아했다.“저 사람 누구야? 사장님이 저렇게 친절한 건 처음 보는데?”“몇 년 전 협력 파트너라고 하던데, 엄청난 실력을 가진 사람이래.” 누군가가 대답했다.“외모도 멋지네. 설마 대기업 대표일 줄이야.”직원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말이 오갔다.그때 박민정이 그들 앞을 지나며 대화 내용을 듣게 되었고 무심코 유남준이 사라져간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은 어딘가 익숙했지만 곧 시야에서 사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49화

    박민정은 주영리가 이렇게 서두를 줄 몰랐지만 더 숨길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설명했다.“그럼 공연 당일에는 무용이 가능하다는 말이지?”“네, 당일에는 문제없을 것 같아요. 다만, 그전까지는 연습이 힘들 것 같아요.”무용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 한숨 돌렸다.“그럼 괜찮아. 공연만 잘하면 돼. 민정 씨 연습 수준이라면 당일엔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야.”그녀는 확신했다. 몇 날 며칠을 연습하지 않아도 박민정의 실력은 주영리보다 월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알겠습니다. 그럼 이틀간만 쉬겠습니다.”“그래, 푹 쉬어.”박민정은 문득 떠오른 듯 말을 덧붙였다.“하지만 부탁 하나만 드릴게요. 주 비서님에겐 다른 무용수를 섭외했다고만 말해주세요.”무용 선생님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왜?”박민정은 자신의 부상 이유와 병원에 가게 된 사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뭐? 주영리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이야? 아까 와서 주연 무용수 자리를 달라고 하더니, 민정 씨가 오후에 넘어졌다길래 이상하다 싶었어. 주영리의 품성이 이렇게 바닥일 줄은 몰랐네!”선생님은 화가 나면서도 박민정의 부탁을 이해했다. 그녀 역시 주영리가 또 다른 수를 쓰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그 후, 박민정은 온라인으로 이틀간의 휴가를 신청했다.주영리는 박민정이 부상을 당했으니 굳이 더 괴롭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휴가를 승인하고는 집으로 돌아가 춤 연습에 몰두했다.그녀는 반드시 공연 당일 모두를 놀라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회사의 중요한 인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무용 선생님은 그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정의감이 강한 그녀는 주영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주 비서, 민정 씨가 부상으로 무대에 오를 수 없게 됐어. 주 비서가 주연 무용수를 맡을 수 있을까?”주영리는 일부러 망설이는 척했다.“저요? 선생님, 예전에 제가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나섰다가 공연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48화

    병원에서 의사는 박민정의 다리를 엑스레이로 찍고 정밀 검사를 진행했다.“다리 관절 부상이 꽤 심합니다. 최소 일주일은 쉬셔야 하고 되도록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어요.”“그 정도로 심각한가요?”박민정은 단순히 넘어져서 조금 아플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놀라며 물었다.“네, 관찰 결과 그렇습니다.”“하지만 며칠 후에 무용 공연이 있는데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조급한 표정으로 묻는 그녀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묻어났다.무용 선생님이 자신을 회사에 추천한 만큼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더구나 오랜 시간 연습한 공연을 이렇게 포기하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안 됩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근육과 뼈에 무리가 갔습니다. 집에서 잘 쉬셔야 해요. 움직임은 최소화하셔야 하고 춤은 절대 안 됩니다.”의사는 약을 처방하며 그녀에게 집에서 충분히 쉬라고 당부했다.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박민정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다리 관절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그때 주영리가 전화를 걸어왔다.“민정 씨, 병원에서는 뭐래요? 많이 다친 건 아니죠? 보니까 꽤 심하게 넘어졌던데. 상태가 심각하면 며칠 휴가 내고 푹 쉬어요.”주영리의 목소리는 겉으론 걱정하는 듯했지만 속내를 들킨 듯한 뻔뻔함이 느껴졌다.박민정은 손을 꽉 쥐며 차분히 대답했다.“좀 심각하긴 해요. 의사가 될 수 있으면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도 출근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어머, 큰일이네! 다리를 다쳤는데 그럼 주연 무용수는 어쩌죠?”주영리는 놀란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이제 박민정이 빠지면 자신이 주연으로 무대에 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저도 모르겠네요.”박민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마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 할 것 같아요.”주영리는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며 더욱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요, 이런 기회는 또 있을 테니까요! 내가 선생님께 잘 얘기해볼게요. 민정 씨는 푹 쉬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47화

    해외.지난번 박민정이 회사 직원들에게 한 방 먹인 후, 직원들은 더 이상 자신의 일을 그녀에게 떠넘기지 않았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박민정은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철저히 고립되었다.모두가 그녀를 외면했으며 주영리는 그녀에게 가장 어려운 업무만 할당했다.“민정 씨, 당신 능력 좋잖아요? 능력 있는 사람이 더 일하는 게 당연하죠. 설마 이번에도 사장님께 가서 이건 내 일이 아니라고 할 거예요?”주영리는 비꼬는 어투로 말했다.다른 인턴이었다면 벌써 그녀의 이런 태도에 못 이겨 회사를 떠났을 것이다.하지만 박민정은 달랐다. 주영리가 아무리 어려운 업무를 맡겨도 그녀는 끝내 방법을 찾아 일을 완벽히 마무리했다.사내 동료들은 그녀를 외면했지만 아래층에서 오후에 진행되는 댄스 연습에서는 다른 부서 직원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다들 박민정의 성격을 좋아했고 그녀와도 꽤 좋은 관계를 맺었다.주영리는 이런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그녀는 그저 박민정이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박민정은 오히려 더욱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사장은 그녀를 몇 차례나 칭찬했다.“실제로 민정 씨는 인턴 같지 않아. 정직원보다 훨씬 뛰어나니까.”그 말을 들을 때마다 주영리의 마음은 질투로 불타올랐다.이제 곧 국내 손님들을 맞이할 행사를 준비해야 했고 직원들의 업무도 점점 바빠졌다.주영리는 박민정이 참여하는 댄스 연습을 보러 갔다가 그녀가 주연 무용수로 가장 앞에서 춤추는 모습을 목격했다.백조처럼 눈에 띄는 그녀의 모습에 주영리는 속이 끓어올랐다.만약 박민정이 이번에 주연으로 나서고 국내 사장들에게 눈에 띄게 된다면 그녀는 단숨에 회사에서 입지를 다질 것이 분명했다.사실 주영리는 주연 자리에 별다른 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박민정이 자신을 대신하게 된 걸 깨닫자 깊은 후회와 함께 분노가 치밀었다.“원래 이 자리는 내 거였어!”주영리는 무용 선생님을 찾아가 따졌다.“분명 예전에 제가 주연 하기로 했잖아요. 그런데 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46화

    유남준은 잠든 아들이 꿈속에서조차 자신을 두려워하며 박민정을 그리워한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그는 박윤우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힌 뒤 다시 서재로 향했다.여전히 찾아내지 못한 박민정의 행방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그녀 없이 다른 일에 집중하기 힘들었고 피곤함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침대에 누워도 그의 눈은 감기지 않았다.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그녀를 찾을 수 없던 걸까?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설마 정말 죽었단 말인가?‘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칠 때마다 그는 단호히 부정했다.‘아니야. 민정이는 절대 죽지 않았어. 만약 민정이가 정말 죽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그렇게 새벽까지 뒤척이다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이고 아침이 되자 전화벨 소리가 그의 짧은 잠을 깨웠다.전화를 보니 서다희의 이름이 떠 있었다.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민정이에 대한 소식이라도 있어?”서다희는 상사의 질문에 솔직히 답했다.“아직 없습니다.”“그럼 무슨 일이야?”“제임스 씨 기억하시죠? 다음 주 해외에서 대표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네요. 해외 무역 관련해서 논의하고 싶답니다.”“좋아. 일정 잡아.”전화를 끊기 전 유남준은 다시 물었다.“아직 조사하지 않은 곳은 얼마나 남았지?”세상은 참 크다고 하면 작다고 하면 작았다.서다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전 고민했다. 모든 곳을 다 찾으려면 평생이 걸릴지도 몰랐다.“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미 확인했지만 이번에 제임스 씨 고향은 아직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겸사겸사 그쪽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좋아. 그리고 다른 지역도 인력을 더 투입해.”“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뒤 더 이상 잠들 수 없었던 그는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바로 움직였다.그의 얼굴은 한 해 동안 한층 늙어 보였고 깔끔하게 정리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박윤우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그는 보모에게 아이를 잘 돌봐달라고 당부한 뒤 집을 나섰다.그가 향한 곳은 IM이 아닌 박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45화

    고영란은 그 말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도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이미 두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윤우까지 맡으라니! 너야말로 아이들의 아빠잖아!”유남준은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알겠어요. 그럼 윤우는 여기 두고 가세요.”어차피 집에는 가정부와 집사가 있었기에 그가 굳이 박윤우를 직접 돌볼 필요는 없었다.“그래야지. 윤우는 너한테 맡길게. 난 이제 가보마.”고영란은 단호하게 말했다.거실에 앉아 있던 박윤우는 이 모든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떨궜다. 사실 그는 집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엄마를 아직 찾지 못한 지금, 유남준과 단둘이 있는 시간은 그에게 끔찍한 고역이었다.하루 종일 숙제나 문제 풀이를 강요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고영란이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본 박윤우는 간절한 눈빛으로 물었다.“할머니, 이제 가시는 거예요?”그는 속으로 외쳤다. ‘할머니, 제발 저도 데려가 주세요!’하지만 고영란은 그의 진심을 알아채지 못한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래, 난 이제 가야 해. 너는 아빠랑 잘 지내도록 해. 네 아빠는 지금 온몸에 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잖니.”고영란은 말끝을 흐리며 한숨을 내쉬었다.박윤우는 할머니의 상황을 이해했기에 마지못해 그녀를 현관까지 배웅했다.고영란이 떠난 뒤 그는 방으로 들어가 게임이라도 하려는 찰나였다.그때 위층에서 유남준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박윤우.”그는 순간 긴장하며 움찔했다. 그리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2층 복도에 서 있는 아빠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위로 올라와.”박윤우는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아빠, 또 뭔데요?”그는 투덜거리며 물었다.“숙제 검사.” 유남준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본가에 가기 전에 준 두 장의 문제지 어디 있지?”박윤우는 땅속으로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그게... 깜빡하고 안 가져왔어요.”그는 더듬거리며 변명했다.하지만 유남준은 화내지 않고 무표정하게 말했다.“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44화

    박민정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유남우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직장은 어때?]그녀는 짧게 답했다.[괜찮아요.]하지만 유남우는 그녀의 대답에 묘한 걱정이 들었다.그는 박민정이 직장에서 오래 일하며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다 보면 혹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까 두려웠다.[만약 힘들거나 맞지 않는다면 그만둬도 돼.]그는 다정하게 말했다.[네, 알겠어요.]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조금도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오히려 지금 직장은 그녀에게 도전 의식을 심어주고 있었다.무엇보다 그녀는 집에만 갇혀 있던 지난 1년 동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며 지루함에 지쳐 있었다.이제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며 머리도 한층 더 빠릿빠릿해진 기분이었다.유남우와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눈 후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향했다.비록 유남우가 그녀를 위해 가사 도우미를 고용했지만 그녀는 스스로 일하는 게 더 편했다.별다른 일이 없을 때는 직접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진주시 유씨 집안의 오래된 저택에서.유남우는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었지만 한동안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그때 윤소현이 위층으로 올라왔다.유남우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일부러 휴대폰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욕실로 들어갔다.역시나 그가 자리를 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윤소현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마침 그때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발신자는 어제 본 것과 동일한 프로필 사진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내용은 평범했다.“정말 감사해요. 당신 덕분에 이 직장을 구할 수 있었어요.”윤소현은 의아해하며 메시지를 유심히 읽었다.그때 욕실에서 유남우가 조용히 걸어나왔다.“뭘 보고 있어?”그의 목소리에 윤소현은 깜짝 놀라 황급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아까 누가 메시지를 보낸 걸 봤어요. 당신이 직장을 구해줬다면서 감사하다고 하던데요.”유남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아, 별거 아니야. 예전에 한 고객의 딸이 해외에서 공부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43화

    회사 직원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박민정이 어떻게 그들의 업무를 제쳐두고 사장에게 이런 상황을 고발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사장은 박민정의 말을 듣고 문서들을 다시 살펴보았다.그 양은 분명 인턴 한 명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그는 고개를 들어 주영리를 바라보며 물었다.“주 비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왜 주 비서랑 다른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를 인턴에게 맡기는 거지?”“만약 이런 식이라면 내가 아예 새로운 직원을 뽑는 게 낫지 않나?”“아니면 당신들이 직접 이 인턴에게 급여를 주고 있는 건가?”주영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장님, 제 말을 들어보세요. 저는 단지 동료들에게 일이 너무 많으면 우선 민정 씨에게 맡기라고 말했을 뿐입니다.”그러나 사장은 더욱 화가 난 듯 말했다.“우리 회사의 업무는 이미 적절히 분배되어 있어. 이 인턴이 오전 동안 두 건의 번역을 끝낼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하다면, 왜 당신들은 자신의 업무조차 제시간에 끝내지 못하는 건가? 이건 당신들의 업무 능력을 재검토해야 할 문제로 보이네.”사장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려 하자 주영리는 억울한 듯 한 발 앞으로 나섰다.“사장님, 민정 씨가 번역을 그렇게 빨리 끝낸 건 분명 번역 소프트웨어를 사용했기 때문일 겁니다.”평소 이런 전문 문서는 번역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며 보통 오전 동안 한 건을 완성하기도 어려웠다.사장은 그녀의 말을 듣고 박민정이 제출한번역 문서를 들어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잠시 후, 그는 문서를 주영리에게 건넸다.“직접 확인해 봐.”주영리는 서둘러 문서를 받아 살펴보았다.문법은 물론 표현까지 완벽하게 번역되어 있었고 소프트웨어로 번역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믿기지 않아 다른 문서를 다시 살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사장은 이제 모든 상황을 파악한 듯 말했다.“주 비서는 회사에서 2년 동안 일했지만 번역된 문서들에서 종종 실수가 발견되곤 했어. 그런데 민정 씨는 아직 인턴이야. 민정 씨가 뒷문으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442화

    박민정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예전에 학교 다닐 때 배운 적이 있어요.”“역시! 내가 어쩐지 민정 씨 기본기가 너무 좋다 했지. 정말 귀한 인재를 만났네!” 무용 선생님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매년 직원들에게 춤을 연습시키며 몇몇 주요 인사들에게 잘 보이려 했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몸이 굳어 안무를 익히는 데 애를 먹곤 했다.그러나 박민정은 빠르게 연습을 마치고 위층으로 올라가 퇴근 준비를 하러 갔다.하지만 사무실에 도착하자 모든 동료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그 시선들에는 구경거리 보듯 즐기는 눈빛도, 적대적인 눈빛도, 안쓰러운 눈빛도 섞여 있었다.박민정은 의아한 마음으로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막 앉으려는 순간 주영리가 사장실에서 나오며 그녀를 불러 세웠다.“민정 씨, 아까 작업을 다 끝냈다고 했죠? 서랍을 열어서 그 문서들 좀 가져와요. 사장님께 보여 드리게.”박민정은 주저하지 않고 열쇠를 꺼내 서랍을 열고 문서들을 꺼냈다.주영리는 그것들을 받아 펼쳐 보더니 눈에 띄게 동공이 흔들렸다.잠시 후, 주영리는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하! 이렇게 많은 문서 중에서 민정 씨가 번역한 건 고작 몇 장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빈칸이잖아? 이래놓고 일을 다 끝냈다고?”“내가 말했잖아요. 뒷문으로 들어온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고. 무능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거짓말까지 하네!”하지만 박민정은 그녀의 비난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주영리는 계속 몰아붙였다.“좋아요, 사장님 만나러 가요. 민정 씨가 얼마나 일을 대충 했는지 직접 보여 드리자고!”그녀는 박민정의 팔을 붙잡고 사장실로 향했다. 이미 사장에게 상황을 미리 고발해 둔 터라, 문도 두드리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사장은 외국인이었다.그는 일하기 싫어하는 태도나 무책임한 행동을 싫어했다.박민정과 주영리가 들어오는 것을 본 사장은 의자에 기대앉아 외국어로 물었다.“영리 씨, 민정 씨가 정말 일을 다 안 끝냈나?”그는 원래 이런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주영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