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은 그가 너무 충동적이었다.엄마가 아픈 아빠를 두고 가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런 제안을 했다.“미안해, 엄마. 잘못했어.”“그래, 잘못을 알면 됐어.”박민정이 그의 등을 토닥였다.윤우의 눈빛이 깊어졌다.그는 박민정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있어서 박민정은 유남준보다 백 배는 더 중요했다.“엄마, 밥 먹으러 가자.”“그래.”식탁에서 유남준은 꼿꼿하게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박민정과 윤우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몇 숟가락 대충 뜨고는 일어섰다.“나 일이 있어서 오늘 밤엔 안 돌아올 거야.”박민정은 잠시 멈칫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알겠어요.”같은 대답이었다.유남준은 자신이 진짜로 기억을 잃은 건지 믿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다희에게 제호 클럽에 가자고 했고 김인우와 방성원도 불러냈다.유남준이 자리에 앉았고 김인우와 방성원이 차례로 도착했다.김인우는 유남준 옆에 앉으며 말했다.“남준아,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니? 네가 우리를 술 마시자고 부르다니. 몸은 괜찮아?”6년 전 박민정이 실종된 후 유남준은 점점 그들과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박민정이 진주에 돌아온 이후로는 그들과 거의 약속을 잡지 않았었다.“농담하지 말고, 나 물어볼 게 있어.”김인우는 즉시 진지해졌다.“뭐 물어보려고 하는데?”“나 정말 박민정 좋아해?”김인우는 물론, 머릿속에 온통 임신한 아내 생각뿐인 방성원도 옆에서 그 말을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남준아, 너 우리 놀리는 거야?”방성원이 술을 한 모금 마셨다.김인우도 어이가 없는 듯이 말했다.“난 또 무슨 심각한 문제라고. 이걸 물어볼 줄은 몰랐네. 박민정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유남준은 이마를 주무르며 말했다.“나 또 기억을 잃었어.”김인우는 멈칫했다.“그럼 우리는 기억해?”“그냥 몇 년간의 기억만 없어.”유남준이 대답했다.김인우는 곧바로 진지하게 말했다.“남준아, 너 계속 이러면 안 되잖아. 얼른 병원에 가
박민정은 김인우가 말이 없자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다른 일 없으면 끊을게요.”그때 김인우가 다급하게 말했다.“잠시만. 한 번 와주는 게 좋겠어. 그래도 남준이가 형수 말을 들을 것 같은데?”그도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는 잘 몰랐다.박민정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알겠어요. 하지만 임신 중이라 남준 씨 취했으면 제가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걸 미리 말해둘게요.”“걱정 마. 나랑 성원이도 도울 거야. 그냥 남준이가 술을 더 안 마시도록 설득해 주면 돼.”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운전기사는 박민정은 제호 클럽에 데려다줬다.도착한 후, 그녀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VIP 룸으로 들어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유남준은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고 양쪽에는 김인우와 방성원이 앉아 있었다.두 사람은 유남준을 말릴 수 없었고, 더욱이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들은 박민정을 보더니 마치 구세주를 본 것처럼 두 눈을 반짝였다.“형수.”아직 취하지 않은 유남준은 김인우의 호칭을 듣더니 눈살을 찌푸렸다.박민정은 유남준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그만 마시고 돌아가요.”유남준은 술잔을 들고 있는 손을 무의식적으로 더 꽉 쥐었다.그는 대답하지 않고 옆에 있는 김인우에게 물었다.“네가 불렀어?”김인우는 어물쩍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남준아, 더 마시면 안 돼. 형수 말 듣고 돌아가.”유남준이 웃음을 터뜨렸다.“형수가 어디 있다고 그래?”김인우는 말문이 막혔다.그리고 박민정이 화낼까 봐 걱정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를 부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하지만 지금의 박민정은 정신적으로 매우 강했다.그녀는 김인우와 방성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몸을 구부려 유남준의 손에서 술잔을 빼앗았다.“그만 마시라고 했잖아요. 못 들었어요?”유남준은 제자리에 얼어붙었다.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술잔을 내려놓았다.박민정은 손에 든 술잔을 쓰레기통에 버린 다음 테이블 위의 술병을 하나씩 모두 쓰레기통에
“도대체 술 얼마나 마신 거예요?”박민정은 유남준에게서 풍기는 강한 술 냄새에 이마를 찡그렸다.유남준은 대답하지 않고 긴 손으로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나 집에 데려간다며?”박민정은 잠깐 멈칫했다.유남준이 그녀를 추궁하려고 남긴 줄 알았는데 말이다.박민정은 마지못해 손을 내밀어 유남준의 손목을 잡았다.“가요.”유남준은 더 말을 하지 않고 순순히 일어서 그녀와 함께 걸어 나갔다.박민정은 유남준을 데리고 나가면서 클럽에 온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누구야? 왜 이렇게 잘생겼어?”“가게에 새로 온 직원 아니야? 몸매 대박이네.”몇몇 여자들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런데 앞에 있는 여자는 얼굴이 예쁜 것 말고 돈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그중 한 명은 박민정과 유남준을 단번에 알아봤다.이지원의 친구인 하예솔은 술잔을 잡은 손을 꽉 쥐며 두 사람을 빤히 쳐다봤다.그녀의 친구가 농담하며 말했다.“예솔아, 너 곧 결혼하잖아. 우리와 남자 뺏지 마.”상류층 사회에는 부잣집 도련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부잣집 아가씨들은 보통 사람들이 평생을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돈을 이미 타고났다.그래서 그들은 남자 친구를 만나 결혼하는 평범한 삶을 원하지 않았다.하예솔의 한 친구가 유남준 쪽으로 다가갔다.“잘생긴 오빠!”사실 상류층 사회 사람들은 대부분 유남준을 알고 있었다.다만 클럽 1층은 조명이 어두웠고, 그들은 유남준을 직접 본 적이 없기에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여자는 유남준의 어깨를 툭툭 쳤다.유남준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말했다.“꺼져.”박민정은 멈춰서 뒤돌아 여자를 바라봤다.여자는 약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다시 평정심을 찾고는 박민정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웃었다.“오빠, 눈이 멀었어? 저 여자 얼굴에 큰 흉터가 있는 거 안 보여?”박민정은 그녀의 말에 화가 나지 않았지만 유남준은 분명히 화를 낼 것이다.그는 정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여기 시끄럽네.”유남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자가
박민정은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TV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에리였다.구릿빛 피부의 그는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아프리카 아이들과 함께 봉사를 하고 있었다.유남준의 건강 상태 때문에 에리는 그다지 제약을 받지 않아 꽤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었다.지금의 그는 비행기를 타고 몰래 진주로 돌아오고 있었다.막 공항에 도착한 에리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바로 박민정에게 연락했다.“민정 선배, 지금 뭐 하고 있어?”전화가 연결되자 그는 장난스럽게 물었다.박민정은 경험 많은 작곡가로서 많은 방면에서 에리를 이끌었다. 게다가 그보다 나이도 많아 에리는 가끔 박민정을 선배라고 부르곤 했다.박민정은 그의 뉴스 영상을 보고 있던 중인데 마침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마침 네가 봉사하는 영상을 보고 있었어.”박민정이 대답했다.“내 영상을 보고 있었다고?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농담 그만해. 거긴 잘 적응하고 있어?”박민정이 물었다.에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잘 지내고 있지. 그런데 너무 지루해서 회사에서 신경 안 쓰는 틈을 타 몰래 돌아왔어.”“돌아왔다고?”“응, 이제 막 공항에 도착했어. 나 데리러 올래?”박민정은 한숨을 푹 쉬었다.“미안. 요즘 집안일이 좀 바빠서.”“알겠어.”에리는 약간 실망했다.매니저는 그에게 빨리 가자며 눈짓했다.공항에는 사람이 많아 그를 알아보는 팬이 있으면 일이 많이 복잡해질 것이다.“민정 선배, 다음에 꼭 나에게 곡 하나 써줘. 여기 너무 시끄러우니까 이만 끊을게.”에리는 아쉬움을 감추며 전화를 끊었다.“나 전화 오래 하지도 못했단 말이야.”“회사에 들키고 싶어?”매니저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들은 바보가 아닌 이상 회사에서 에리를 키우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곤경에 빠뜨리려 한다는 걸 당연히 눈치챌 수 있었다.하지만 최근 한동안 IM 그룹 경영진은 에리를 잊었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그래서 그들은 몰래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아프리카에서 최고 대우를 받았지만 여전히 국내
유남준이 두원 별장에서 나가리라고 생각지도 못한 박민정이다.그것만으로 부족하여 가기 전에 서다희에게 은행 카드 한 장까지 던져 주었으니 말이다.“그 안에 들어 있는 돈으로 너랑 아이가 생활하기에 충분할 거야. 중요한 일 아니면 나한테 절대 연락하지 마.”유남준은 차갑게 한마디만 남기고 차에 올랐다.쓴소리는 유남준이 했는데 서다희가 오히려 더 미안해했다.“사모님, 노여움 푸세요. 아시다시피 대표님 좀 편찮으시잖아요.”“지금 대표님의 일거족일거수에 대해 저 역시 이해가 되지 않은 편이에요.”박민정은 노여워할 리가 없다.6, 7년 전에 모든 억울함을 감수했던 그 여린 여인이 아니기에, 오로지 유남준을 바라보며 좋은 아내로 살아가려고 했던 그 어리석은 여인이 아니기에 말이다.지금의 박민정은 그 어느 순간보다도 마음이 굳건하다.유남준이 오른 검은색 마이바흐에 대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할 수 있을 만큼.“잘 가요.”서다희가 뭐라고 더 하고 싶었으나 마이바흐 차창이 내리더니 안에 있던 유남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서 비서, 안 가고 뭐 해!”그 소리에 서다희는 박민정에게 멋쩍게 인사를 하고서 바로 차에 올랐다.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면서 박민정은 전혀 슬프지 않았다.유남준이 병으로 요 몇 년간의 기억을 잃었기에 슬프지 않았고 유남준에 대한 감정이 몇 년 전부터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에 슬프지 않았다.지금 유남준을 마주하고 있는 박민정의 감정에는 사랑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이질 않을 미미한 정도이다.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던 박윤우는 슬퍼하기는커녕 무척이나 홀가분해하는 박민정을 보고서 약간 마음이 놓였다.‘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다행이야.’“엄마.”박윤우는 박민정을 나지막이 불렀다.박민정이 홀가분해하는 이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더 이상 유남준에게 일일이 보고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하물며 유남준에게 카드 한 장까지 받았으니 더더욱.“윤우야,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싶지 않아?”
순간 방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고 한겨울의 칼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그 칼바람은 그대로 유남준의 얼굴을 덮쳐갔다.서다희는 눈치껏 바로 전화를 끊었다.“대표님, 계속 얘기 나누십시오.”때가 이러하니 바로바로 빠지는 게 살길이 아닐 수 없었다.김인우는 지금 당장 서다희에게 하이킥을 날릴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의리 없이 화를 잔뜩 돋우고 나서 홀로 도망치려고 하니 말이다.“남준아, 내가 바래다줄까?”김인우가 개인 별장으로 온 이유는 허구한 날 결혼을 재촉하고 계시는 어르신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함이다.조하랑과 일 년간 만나보면서 결혼하겠다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으나 어르신은 모든 걸 간파하기라도 한 듯했다.결혼하고 나서 연애를 해도 된다면서.하지만 김인우는 아직 결혼으로 한 여인을 잡아둘 만큼 어리석은 남자가 아니다.“아니.”유남준은 왠지 모르게 경호원에게 박민정이 즐겁게 잘 놀고 있다는 소리에 가슴이 답답해졌다.예상한 대답에 김인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말과 행동이 다른 유남준을 자기가 나서서 타일러 줘야 할 것 같다면서.“남준아, 너 그냥 돌아가는 건 어때? 형수도 분명 기분 나빠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고 싶어서 나가 걸 거야.”유남준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의 말에 살짝 녹아든 느낌이었다.“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그래 그럼.”김인우는 더 이상 타이르지 않았다.계속 이에 대해 말하게 되면 불꽃이 자기에게로 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진주시 도시 중심.박민정과 도한 엄마는 밥을 먹고 나서 아이 옷들을 엄청 많이 샀다.박윤우와 정민기는 입구 벤치 쪽에 앉아 멍하니 있기만 했다.여자들이 왜 이토록 쇼핑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박윤우의 모습이다.“아저씨, 저 심심해요.”반듯하게 앉아 있는 정민기 역시 심심하기 그지없는 모습읻다.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러 가기 언정 여자와 쇼핑을 하고 싶지 않았다.너무 힘들고 지루한 과정이기 때문이다.“나도 심심해.”정민기가 말했다.“6층에 오락실 있지 않아요?
지원이는 울고불고 난리 치며 엄마에게 유치원으로 다시 보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박예찬과 함께 유치원을 다니고 싶다고 하면서 말이다.지원 엄마는 박민정과 도한 엄마가 모두 앞에 있는 것을 보고서 더 이상 그 어떠한 체면도 차리지 않은 채 몸을 쪼그리고 앉아 지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이윽고 덩달아 울먹이며 말했다.“엄마가 분명히 말했었지! 너 퇴학당한 거야. 앞으로 유치원에 갈 수 없어.”“계속 이렇게 말 안 들으면 엄마 너 때릴 거야.”미치고 날뛰는 자기 엄마의 모습을 보고서 지원은 놀라움에 울음을 터뜨렸다.옆에서 보고 있던 박민정과 도한 엄마는 같은 엄마로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하지만 지원이가 퇴학당한 이유가 모두 지원 엄마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박민정에게 아부를 떨다가 최현아에게 꼬리를 흔들다 보니 양쪽에 모두 외면을 당하게 된 것이다.지원이가 울고불고 난리를 치자 지원 엄마는 아이를 때리려고 했다.이에 지원이는 전보다 더욱 세게 울기 시작했다.“울지 말라고! 왜 울고 난리야!”하지만 이 모든 게 보여주기식으로 느껴졌다.박민정과 도한 엄마는 더 이상 그 ‘쇼’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 없었다.도한 엄마가 먼저 나서서 말렸다.“지원 엄마, 아이가 철이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그만 화 좀 풀어요.”자기에게 이목이 쏠리자, 지원 엄마는 마침내 ‘다음 씬’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우리 지원이 유치원에서 엄청 착했는데 퇴학하고 난 뒤로 예찬이를 입에 달고 있었지 뭐예요. 보고 싶다면서 하루가 멀다고 울먹이며 애간장을 태워서 제가 아주 피 말라죽을 것 같아요.”지원이는 울면서 말했다.“예찬 오빠가 좋단 말이에요.”지원 엄마는 연기일지 모르겠지만 지원이는 진심이었다.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박민정은 그제야 소리를 냈다.“지원이는 왜 갑자기 퇴학당한 거죠?”지원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운을 떼기 시작했다.“최현아 씨 눈엣가시가 돼서 그래요. 최현아 씨 말 한마디에 바로 퇴학당하게 된 거예요.”최현아는 자기
도한 엄마와 함께 돌아가는 길에 도한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예찬 엄마, 조금 전에 엄청 잘하셨어요. 그렇게 앞뒤가 다른 사람은 동정할 가치조차 없거든요.”“단물만 쏙 빼 먹고 바로 버리는 사람을 친구로 둘 필요도 없고요.”박민정이 덧붙였다.도한 엄마는 그 말에 무척이나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집으로 돌아온 박민정은 씻고 나서 쉬려고 했다.침대에 눕자마자 지원 엄마로부터 메시지가 보내왔다.[예찬 엄마, 저한테 원생 엄마들에 관한 스캔들이 엄청 많아요. 그중에 최현아 씨 스캔들도 포함되어 있는데.]박민정은 순간 구미가 당겼지만, 믿어지지 않았다.[그런 게 있었다면 바로 최현아 씨한테 말하지 그랬어요? 그럼, 지원 엄마한테 어찌할 수도 없었을 거잖아요. 아니에요?]얼마 지나지 않자 지원 엄마의 답장이 도착했다.[우리 심씨 가문과 유씨 가문은 서로 적으로 상대하고 있는데, 만약 최현아 씨가 제 손에 약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저를 죽이려고 들 거예요.][그럼, 제 편을 들겠다는 거죠? 그렇다면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박민정은 지원 엄마를 바로 믿기로 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 엄마는 최현아에 관한 스캔들을 보내왔다.이를 열어본 박민정은 저절로 동공이 움츠러들고 말았다.[정말이에요?][그럼요. 최현아 씨 집으로 우연히 갔을 때 제가 몰래 본 거예요.]지원 엄마는 재벌 집 사모님들과 모임을 가질 때 손에 쥐고 있는 권력도 예쁜 외모도 없어 늘 공기 취급을 당하는 편이었다.바로 그러한 이유로 몰래 많은 비밀을 염탐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박민정은 마침내 지원 엄마는 아주 큰 쓸모가 있는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다.지원 엄마가 지난번에 준 학부모회 구성원이 적힌 자료에서 많은 재벌가 사모님을 발견하게 되었었다.만약 그 사모님들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된다면 아마 앞으로 바움 그룹을 다시 설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박민정은 지원 엄마에게 답장을 보냈는데, 흥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방 안에서는 이미 유성혁이 상의를 벗은 채 박민정에게 다가가려 하고 있었다. 그때, 최현아가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여보!”“뭐야?” 유성혁은 갑작스러운 방해에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유남준이 돌아왔어요. 이쪽으로 오고 있으니까 얼른 옷부터 입어요!” 최현아가 다급하게 외쳤다.유성혁은 순간적으로 놀랐지만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서둘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어떡하지? 어떡하지? 유남준이 내가 박민정과 함께 있는 걸 알게 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지금 그런 말 할 때가 아니에요. 얼른 옷 다 입고 숨어요. 여기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요.” 최현아가 단호하게 말하자 유성혁은 허겁지겁 옷을 걸쳐 입으며 당부했다.“꼭 나랑 관련 없는 일처럼 해줘. 아직 아무것도 못 했다고!”“알았어.” 최현아는 그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그를 방에서 밀어내고 나서야 최현아는 박민정 쪽으로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동서.” 그녀는 살며시 불렀다.박민정은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최현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유남준이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하기를.그녀는 박민정의 몸을 가볍게 감싸 이불을 덮어준 후, 소파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렸다.잠시 후, 약효가 다소 풀렸는지 박민정은 흐릿한 눈빛으로 천천히 눈을 떴는데 머리가 심하게 어지러웠다.그때였다.쿵!문이 거칠게 열리며 유남준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민정이는 어디 있어요?”최현아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앞을 막아섰다.“남준 씨! 갑자기 웬일이에요? 마침 남준 씨한테 전화하려던 참이었어요.”유남준의 얼굴은 싸늘하기만 했다.“민정이는요?”“아마 술을 잘 못 마셔서 그런가 봐요. 지금 쉬고 있어요. 원래 남준 씨 방으로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전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최현아가 태연한 척 대답했다.분명 박민정은 오늘 칵테일을 한 모금 정도 마셨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그냥 음료나
박민정은 홀로 홀 대각에 앉아 있다가 어딘가 불편한 기운이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이 감각... 낯설지 않았다.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녀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최현아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동서, 벌써 가려고?”“네. 몸이 좀 안 좋아서 먼저 가볼게요.”최현아는 주변을 둘러보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내가 바래다줄까? 어차피 나도 딱히 할 일 없는데.”“아니에요, 괜찮아요.”박민정이 정중히 거절하자 최현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득 물었다.“그런데 남준 씨는? 어디 갔어?”“일이 있어서 나갔어요.”그 말을 듣자 최현아의 눈빛이 살짝 누그러졌다.“그래? 그럼 다행이네. 내가 데려다줄게, 길을 잃으면 곤란하잖아.”“괜찮아요. 길은 기억하고 있어요.”설령 잊는다 해도 하인들에게 물으면 될 일이었다.박민정은 가볍게 웃으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런데 걸음을 옮길수록 몸이 이상했는데 발이 휘청이고 머리가 묘하게 어지러웠다.최현아는 그녀의 상태를 눈치채고도 모르는 척 다가왔다. 이대로 그녀를 그냥 보낼 리 없었으니까.“괜히 사양하지 마. 우리는 한 가족이잖아.”최현아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박민정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가 따라오든 말든 지금은 어서 이곳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하지만 점점 시야가 흐릿해졌다.혹시 몸에 다시 문제가 생긴 걸까? 머릿속이 어지럽고 다리가 힘없이 풀렸다.마지막 남은 의식으로 박민정은 힘겹게 입을 뗐다.“...구급... 구급차를 불러줘요...”그러나 그녀가 완전히 쓰러지기 직전, 최현아가 그녀를 붙잡았는데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구급차? 정말 순진하기도 하지.”최현아는 비웃듯 말하며 박민정을 외딴 곳으로 끌고 갔다. 곧 어둠 속에서 몇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최현아가 지시한 대로 움직였다.박민정은 서쪽에 있는 빈집으로 실려 갔다.최현아는 남자들을 향해 싸늘하게 경고했다.“오늘 일
박민정이 고개를 들자 날카로운 기색이 어린 최현아의 시선과 마주쳤다.“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어? 저쪽에서 사촌 언니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같이 갈래?”최현아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아요, 전 혼자가 좋아서요.”박민정은 조용히 거절했다.최현아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걸었지만 그 눈빛은 싸늘했다.“그래? 알겠어.”박민정은 그녀가 이대로 물러설 줄 알았지만 예상외로 최현아는 곁에 앉았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자 최현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사실 나도 시끄러운 분위기는 별로야. 어차피 동서도 혼자고, 나도 혼잔데, 같이 있어도 괜찮잖아?”이렇게 나오니 박민정은 거절하기도 애매했다. 게다가 여기는 유씨 가문 안이었기에 자신이 뭐라고 그녀를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박민정은 시선을 돌려 멀리 있는 유씨 가문의 젊은 친척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 어울려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 사이, 최현아는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슬쩍 박민정의 잔을 힐끔거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교활한 빛이 스쳤고 이내 일부러 놀란 척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동서, 이것 좀 봐.”그녀가 화면을 내밀자 박민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화면에는 에릭에 대한 연예 뉴스가 떠 있었다.박민정이 그 기사를 읽는 사이, 최현아는 잽싸게 손을 뻗어 박민정의 잔을 건드렸다. 긴장한 듯한 그녀의 손길이 빠르게 움직였다.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에릭 씨, 동서네 회사 직원 맞지? 설마 남자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가십 뉴스잖아요. 아마 거짓일걸요.”박민정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에릭이 그런 취향이라면 연지석과 그렇게 티격태격할 리가 없었다. 연지석처럼 잘생긴 남자가 앞에 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다면 그건 정말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증거였다.“그렇지? 요즘 매체들은 자극적인 소문을 너무 많이 퍼뜨려.”최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거두었다. 그러더니 문득 박민정에게 물었다.“오늘 밤엔 안 돌아가겠네?”
“뭐?”유성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쳤고 곧이어 바닥에 침을 뱉으며 비웃었다.“그 여자, 가식 떨기는 끝내주더니. 진짜 정절을 지키는 여자인 줄 알았잖아. 그리고 유남준, 그렇게 대단하다면서? 어째서 자기 동생 하나 제대로 손보지도 못하는 거야?”유성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불쾌했다.최현아는 그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는데 그가 무슨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그러나 이제 와서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여보, 당신이 예전부터 그 여자를 원했던 거, 난 다 알고 있어요. 내가 도와줄게요.”유성혁은 깜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당신은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당신밖에 없어.”최현아는 그가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모습에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당신이 날 사랑하는 건 알지만 동시에 여전히 민정 씨를 갖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난 다른 여자들처럼 질투하고 싸우고 싶지 않아요. 그저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그녀의 눈빛에는 진심이 담긴 듯했다.유성혁은 원래부터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순간적으로 그의 흥미가 자극되었다.“당신 정말 최고야. 하지만 박민정은 너무 고고한 척하는 년이잖아. 절대 동의하지 않을걸? 그리고 유남준이 알면 난 팔다리가 부러질 거라고.”최현아는 그가 결국 겁쟁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여보, 당신은 참 어리석어요. 민정 씨가 거절하는 건 당신이 어디 가서 이 사실을 떠벌릴까 봐 그런 거죠. 내가 잘 설득하면 오늘 밤엔 당신 것이 될 거예요.”“정말이야?” 유성혁의 눈빛이 반짝였다.“당연하죠. 그러니까 깨끗하게 씻고 기다리고 있어요.” 최현아는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유성혁은 기뻐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좋아! 약속한 거다!”그는 들뜬 표정으로 손을 비비며 자리를 떠났다.최현아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이
박민정은 유남준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마치 새롭게 태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남준 씨, 도와줘서 고마워요.” 그녀가 감사 인사를 건넸다.하지만 유남준은 그녀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앞으로 나한테 고맙다는 말 하지 마.”둘은 부부였으나 박민정은 늘 그에게 예의를 차렸다.이 말에 박민정은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아, 미안해요, 깜빡했어요.”“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마.” 유남준이 덧붙이자 박민정은 말문이 막혔고 무슨 말을 해도 틀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알겠어요.” 그녀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다.그 모습을 본 유남준은 다시금 마음이 아려왔다. “가자, 좀 쉬어야지.”“네.”박민정은 그의 뒤를 따라 두 사람이 머무는 곳으로 향했다.그곳에 도착하자 유남준은 하인들을 모두 내보냈고 집 안에는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이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던 박민정은 소파에 앉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듯 말했다. “맞다, 아이들은요?”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처리하던 유남준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아이들은 본가에서 안전해. 게다가 오늘 가문의 여러 친척들도 모일 건데 아이들이 그 사람들과 친해지면 나중에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야.”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리를 비우는 게 실례가 되진 않을까요?”“아니.” 유남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필요가 없어.”그의 말에는 어떠한 허세도 섞여 있지 않았고 박민정은 그의 능력을 믿었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어젯밤 잠을 설친 탓인지 그녀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업무를 처리하던 유남준은 가끔씩 시선을 들어 그녀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목젖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예전에는 일할 때 누구도 그의 집중을 방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단지 박민정이 그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이었다.그가 얼마나 그녀를 바라보고
“아버지, 드세요. 이건 제가 직접 정성 들여 고운 탕이에요. 백세를 넘긴 한의학자의 비법을 배워 만든 거라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꽤 걸렸어요. 드시면 장수하실 거예요.”유석진이 아부하듯 말하자 유명훈의 눈이 반짝였다.“정말이냐?”“그럼요. 제가 아버지를 속이겠습니까? 제가 해외에서 돌아온 이유도 아버지를 잘 모시고 장수하시게 하려는 거죠.”유석진은 유남준의 믿음직스럽지 못한 아버지와 달리, 유명훈의 환심을 사는 데 능숙했다.그래서인지 유명훈은 늘 그쪽을 편애했다.“석진아, 우리 집에서는 네가 가장 효심이 깊구나.” 유명훈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물론 이 나이가 되면 누구나 늙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하지만 유명훈은 늙고 싶지 않았고 죽음은 더더욱 두려웠다. 그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병원에서 수혈을 받기까지 했다.“아버지, 그런 말씀 마세요. 동생과 아이들도 다 효심이 깊어요.” 유석진은 의미심장한 눈길을 유남준에게 보냈다. “그렇지, 남준아?”유남준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놓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고 말로 유명훈도 그의 성격을 아는 터라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모두에게 자리를 권했다.“다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으니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히 있어라.”그렇게 말했지만 모인 이들은 각자 복잡한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유명훈은 문득 박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민정아.”“네, 할아버지.” 박민정이 공손하게 대답하자 유명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불렀다.이제 모두의 시선이 박민정에게로 향했다.“민정아, 넌 이제 우리 유씨 가문의 중요한 일원이야. 네 건강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떠냐?”“많이 나아졌어요.” 박민정은 조용히 대답했다.“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완전히 회복되면 가정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회사 일은 남준이에게 맡기고 말이다.”유명훈은 여자는 집에서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그가 유남준과 박민정의 결혼을 허락한 것도 당시 박민정의 가문이 유씨
박민정은 그에게 안긴 채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고 가슴 한편이 알 수 없는 먹먹함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가만히 손을 들어 유남준의 등을 두드렸다. “됐어요, 이제 괜찮아요. 자요.” 유남준은 그녀를 더 꼭 끌어안더니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박민정은 저항하지 않고 그의 품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그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풀어냈다.이제는 그녀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발코니로 나가 바람을 맞으며 수많은 생각에 잠겼다.새벽 여섯 시가 되자 유남준은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자신에게 덮여 있는 담요를 내려다보며 멍하니 있었다.희미한 기억 속에서 그가 돌아왔을 때 박민정이 곁에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녀는 지금 어디로 간 걸까?혹시 꿈을 꾼 걸까 싶어 그는 2층 방으로 올라가 욕실에서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다시 잠을 청했다.박민정은 그의 움직임을 들었지만 상태가 괜찮아 보이자 조용히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아침 여덟 시, 유남준은 평소처럼 정시에 일어났고 어젯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그는 우아한 태도로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를 했는데 박민정은 그의 맞은편에서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바라보다가 놀라고 말았다.어젯밤 그렇게 술을 마셨는데 오늘은 마치 전혀 취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보였다.유남준은 그녀의 시선을 감지하고는 눈을 들어 그녀의 맑은 눈과 마주쳤다. “왜?”“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박민정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식사를 이어갔다.두 아이도 식탁 위의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결국 참지 못한 박윤우가 작은 목소리로 여름 박예찬에게 물었다. “형, 나 왜 집이 이상한 것 같지?”“조용히 하고 만두나 먹어.”“아, 응.”아침 식사를 마친 후, 가족들은 청명을 맞아 조상을 기리기 위해 본가로 향했다.차가 본가 대문 앞에 멈추자마자 고영란이 반갑게 달려 나왔다. “윤우야, 예찬아, 어서 할머니한테 오렴.”유남우도 그녀 옆에 서서 서슴없이 박민정을
유남준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택배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확인했는데 보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박민정은 다가가기가 너무 부끄러워 멀리서 그 여자 형체랑 똑같이 제작된 인형을 가리키며 말했다.“마음에 들어요? 저는 상관없긴 하거든요.”유남준은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이런 기괴한 물건에 그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박민정에게 물었다.“민정아,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되지 않아?”그의 말에 박민정은 깜짝 놀랐다.“왜요?”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 구매한 물건이었다.“오해하지 말아요. 사람마다 생리적 욕구가 있기 마련이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희는 부부잖아요. 그렇죠?”유남준은 그녀가 자기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대로 자리를 떴다.역시나 박민정은 그가 왜 화 났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의 뒤를 따라가며 다시 설명했다.“원래는 다른 여자를 찾아주려고 했는데 그래도 저희는 현재 부부잖아요. 또 제가 기억을 잃기 전에는 서로 사랑했다고 해서 그렇게 처리하는 건 아닌 것 같았거든요.”유남준은 순간 머리가 아파서 소파에 털썩하고 앉았다.“알겠으니까 그만 말해.”‘날 도대체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지?’‘그저 성욕을 못 참아서 안달 난 짐승으로 생각하나?’박민정은 그제야 입을 꾹 닫았는데 순간 거실의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진 것 같았다.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박민정이 그에게 낮은 소리로 물었다.“다른 일 없으면 전 이만 자러 갈게요. 내일 옛 저택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러나 유남준은 여전히 토라진 말투로 답했다.“응. 마음대로 해.”그러나 박민정은 그가 화 났다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기쁜 마음으로 돌아섰다.유남준은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더니 멍한 얼굴로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그냥 이대로 가는 거야?”그리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그는 소리에 어이가 없었다.제우스 클럽.방성원과 유남준은 술을 마시며
그리고 침대에 던져지고 나서야 박민정은 이게 무슨 뜻인지 깨닫고 재빨리 이불을 몸에 둘렀다.“오지 말아요!”그러나 유남준의 눈빛은 이미 초점을 잃은 채 그녀의 턱을 잡고 말했다.“민정아, 나도 남자야.”시간도 많이 흘렀고 같은 방을 쓰고 있지만 매일 그냥 잠만 자려고 하자니 그도 나름 괴로웠다.그리고 이 상태로 두 사람이 계속 지냈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병들 것 같았다.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밖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유남준은 단번에 그녀의 팔을 잡아끌고 거칠게 입을 맞췄다.그녀는 순간 호흡이 가빠지고 또다시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하여 다 포기한 채 가만히 누워 온전히 그의 손길을 느끼고 있을 무렵 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엄마.”박예찬과 박윤우가 학교에서 돌아왔는지 아래층에서 큰 소리로 박민정을 불렀다.유남준의 잘생긴 얼굴에 순식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진서연이랑 설인아, 그리고 민수아까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는 데 성공했으나 두 아이도 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렸다.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박민정은 있는 힘껏 유남준을 밀쳐냈다.하여 오늘에는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멈춰야 했다.박민정이 황급히 방에서 나오니 두 아이가 마침 문 앞에 서 있었다.“엄마, 자고 있었어? 왜 얼굴이 빨개?”박윤우의 물음에 그녀의 얼굴은 더욱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게...”겨우 설명하려고 입을 떼려는데 유남준이 갑자기 방 안에서 나오더니 한껏 어두운 얼굴로 두 아이에게 물었다.“왜 벌써 왔어?”“추석이라 수업이 일찍 끝났어요.”박예찬은 뭔가 눈치챈 듯 무뚝뚝하게 답했다.그러나 박윤우는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두 사람을 보고 물었다.“엄마, 저 쓰레기 아빠랑 같이 잔 거야?”“아니.”박민정은 단번에 그의 말을 부정했다.“그저 찾을 물건이 있어서.”“무슨 물건인데?”호기심이 많은 아이의 질문 공세에 박민정은 한참 동안 생각해 보다가 겨우 답했다.“책.”“무슨 책? 나도 같이 찾아볼게.”“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