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은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TV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에리였다.구릿빛 피부의 그는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아프리카 아이들과 함께 봉사를 하고 있었다.유남준의 건강 상태 때문에 에리는 그다지 제약을 받지 않아 꽤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었다.지금의 그는 비행기를 타고 몰래 진주로 돌아오고 있었다.막 공항에 도착한 에리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바로 박민정에게 연락했다.“민정 선배, 지금 뭐 하고 있어?”전화가 연결되자 그는 장난스럽게 물었다.박민정은 경험 많은 작곡가로서 많은 방면에서 에리를 이끌었다. 게다가 그보다 나이도 많아 에리는 가끔 박민정을 선배라고 부르곤 했다.박민정은 그의 뉴스 영상을 보고 있던 중인데 마침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마침 네가 봉사하는 영상을 보고 있었어.”박민정이 대답했다.“내 영상을 보고 있었다고?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농담 그만해. 거긴 잘 적응하고 있어?”박민정이 물었다.에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잘 지내고 있지. 그런데 너무 지루해서 회사에서 신경 안 쓰는 틈을 타 몰래 돌아왔어.”“돌아왔다고?”“응, 이제 막 공항에 도착했어. 나 데리러 올래?”박민정은 한숨을 푹 쉬었다.“미안. 요즘 집안일이 좀 바빠서.”“알겠어.”에리는 약간 실망했다.매니저는 그에게 빨리 가자며 눈짓했다.공항에는 사람이 많아 그를 알아보는 팬이 있으면 일이 많이 복잡해질 것이다.“민정 선배, 다음에 꼭 나에게 곡 하나 써줘. 여기 너무 시끄러우니까 이만 끊을게.”에리는 아쉬움을 감추며 전화를 끊었다.“나 전화 오래 하지도 못했단 말이야.”“회사에 들키고 싶어?”매니저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들은 바보가 아닌 이상 회사에서 에리를 키우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곤경에 빠뜨리려 한다는 걸 당연히 눈치챌 수 있었다.하지만 최근 한동안 IM 그룹 경영진은 에리를 잊었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그래서 그들은 몰래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아프리카에서 최고 대우를 받았지만 여전히 국내
유남준이 두원 별장에서 나가리라고 생각지도 못한 박민정이다.그것만으로 부족하여 가기 전에 서다희에게 은행 카드 한 장까지 던져 주었으니 말이다.“그 안에 들어 있는 돈으로 너랑 아이가 생활하기에 충분할 거야. 중요한 일 아니면 나한테 절대 연락하지 마.”유남준은 차갑게 한마디만 남기고 차에 올랐다.쓴소리는 유남준이 했는데 서다희가 오히려 더 미안해했다.“사모님, 노여움 푸세요. 아시다시피 대표님 좀 편찮으시잖아요.”“지금 대표님의 일거족일거수에 대해 저 역시 이해가 되지 않은 편이에요.”박민정은 노여워할 리가 없다.6, 7년 전에 모든 억울함을 감수했던 그 여린 여인이 아니기에, 오로지 유남준을 바라보며 좋은 아내로 살아가려고 했던 그 어리석은 여인이 아니기에 말이다.지금의 박민정은 그 어느 순간보다도 마음이 굳건하다.유남준이 오른 검은색 마이바흐에 대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할 수 있을 만큼.“잘 가요.”서다희가 뭐라고 더 하고 싶었으나 마이바흐 차창이 내리더니 안에 있던 유남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서 비서, 안 가고 뭐 해!”그 소리에 서다희는 박민정에게 멋쩍게 인사를 하고서 바로 차에 올랐다.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면서 박민정은 전혀 슬프지 않았다.유남준이 병으로 요 몇 년간의 기억을 잃었기에 슬프지 않았고 유남준에 대한 감정이 몇 년 전부터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에 슬프지 않았다.지금 유남준을 마주하고 있는 박민정의 감정에는 사랑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이질 않을 미미한 정도이다.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던 박윤우는 슬퍼하기는커녕 무척이나 홀가분해하는 박민정을 보고서 약간 마음이 놓였다.‘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다행이야.’“엄마.”박윤우는 박민정을 나지막이 불렀다.박민정이 홀가분해하는 이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더 이상 유남준에게 일일이 보고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하물며 유남준에게 카드 한 장까지 받았으니 더더욱.“윤우야,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싶지 않아?”
순간 방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고 한겨울의 칼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그 칼바람은 그대로 유남준의 얼굴을 덮쳐갔다.서다희는 눈치껏 바로 전화를 끊었다.“대표님, 계속 얘기 나누십시오.”때가 이러하니 바로바로 빠지는 게 살길이 아닐 수 없었다.김인우는 지금 당장 서다희에게 하이킥을 날릴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의리 없이 화를 잔뜩 돋우고 나서 홀로 도망치려고 하니 말이다.“남준아, 내가 바래다줄까?”김인우가 개인 별장으로 온 이유는 허구한 날 결혼을 재촉하고 계시는 어르신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함이다.조하랑과 일 년간 만나보면서 결혼하겠다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으나 어르신은 모든 걸 간파하기라도 한 듯했다.결혼하고 나서 연애를 해도 된다면서.하지만 김인우는 아직 결혼으로 한 여인을 잡아둘 만큼 어리석은 남자가 아니다.“아니.”유남준은 왠지 모르게 경호원에게 박민정이 즐겁게 잘 놀고 있다는 소리에 가슴이 답답해졌다.예상한 대답에 김인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말과 행동이 다른 유남준을 자기가 나서서 타일러 줘야 할 것 같다면서.“남준아, 너 그냥 돌아가는 건 어때? 형수도 분명 기분 나빠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고 싶어서 나가 걸 거야.”유남준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의 말에 살짝 녹아든 느낌이었다.“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그래 그럼.”김인우는 더 이상 타이르지 않았다.계속 이에 대해 말하게 되면 불꽃이 자기에게로 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진주시 도시 중심.박민정과 도한 엄마는 밥을 먹고 나서 아이 옷들을 엄청 많이 샀다.박윤우와 정민기는 입구 벤치 쪽에 앉아 멍하니 있기만 했다.여자들이 왜 이토록 쇼핑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박윤우의 모습이다.“아저씨, 저 심심해요.”반듯하게 앉아 있는 정민기 역시 심심하기 그지없는 모습읻다.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러 가기 언정 여자와 쇼핑을 하고 싶지 않았다.너무 힘들고 지루한 과정이기 때문이다.“나도 심심해.”정민기가 말했다.“6층에 오락실 있지 않아요?
지원이는 울고불고 난리 치며 엄마에게 유치원으로 다시 보내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박예찬과 함께 유치원을 다니고 싶다고 하면서 말이다.지원 엄마는 박민정과 도한 엄마가 모두 앞에 있는 것을 보고서 더 이상 그 어떠한 체면도 차리지 않은 채 몸을 쪼그리고 앉아 지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이윽고 덩달아 울먹이며 말했다.“엄마가 분명히 말했었지! 너 퇴학당한 거야. 앞으로 유치원에 갈 수 없어.”“계속 이렇게 말 안 들으면 엄마 너 때릴 거야.”미치고 날뛰는 자기 엄마의 모습을 보고서 지원은 놀라움에 울음을 터뜨렸다.옆에서 보고 있던 박민정과 도한 엄마는 같은 엄마로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하지만 지원이가 퇴학당한 이유가 모두 지원 엄마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박민정에게 아부를 떨다가 최현아에게 꼬리를 흔들다 보니 양쪽에 모두 외면을 당하게 된 것이다.지원이가 울고불고 난리를 치자 지원 엄마는 아이를 때리려고 했다.이에 지원이는 전보다 더욱 세게 울기 시작했다.“울지 말라고! 왜 울고 난리야!”하지만 이 모든 게 보여주기식으로 느껴졌다.박민정과 도한 엄마는 더 이상 그 ‘쇼’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 없었다.도한 엄마가 먼저 나서서 말렸다.“지원 엄마, 아이가 철이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그만 화 좀 풀어요.”자기에게 이목이 쏠리자, 지원 엄마는 마침내 ‘다음 씬’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우리 지원이 유치원에서 엄청 착했는데 퇴학하고 난 뒤로 예찬이를 입에 달고 있었지 뭐예요. 보고 싶다면서 하루가 멀다고 울먹이며 애간장을 태워서 제가 아주 피 말라죽을 것 같아요.”지원이는 울면서 말했다.“예찬 오빠가 좋단 말이에요.”지원 엄마는 연기일지 모르겠지만 지원이는 진심이었다.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박민정은 그제야 소리를 냈다.“지원이는 왜 갑자기 퇴학당한 거죠?”지원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운을 떼기 시작했다.“최현아 씨 눈엣가시가 돼서 그래요. 최현아 씨 말 한마디에 바로 퇴학당하게 된 거예요.”최현아는 자기
도한 엄마와 함께 돌아가는 길에 도한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예찬 엄마, 조금 전에 엄청 잘하셨어요. 그렇게 앞뒤가 다른 사람은 동정할 가치조차 없거든요.”“단물만 쏙 빼 먹고 바로 버리는 사람을 친구로 둘 필요도 없고요.”박민정이 덧붙였다.도한 엄마는 그 말에 무척이나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집으로 돌아온 박민정은 씻고 나서 쉬려고 했다.침대에 눕자마자 지원 엄마로부터 메시지가 보내왔다.[예찬 엄마, 저한테 원생 엄마들에 관한 스캔들이 엄청 많아요. 그중에 최현아 씨 스캔들도 포함되어 있는데.]박민정은 순간 구미가 당겼지만, 믿어지지 않았다.[그런 게 있었다면 바로 최현아 씨한테 말하지 그랬어요? 그럼, 지원 엄마한테 어찌할 수도 없었을 거잖아요. 아니에요?]얼마 지나지 않자 지원 엄마의 답장이 도착했다.[우리 심씨 가문과 유씨 가문은 서로 적으로 상대하고 있는데, 만약 최현아 씨가 제 손에 약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저를 죽이려고 들 거예요.][그럼, 제 편을 들겠다는 거죠? 그렇다면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박민정은 지원 엄마를 바로 믿기로 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 엄마는 최현아에 관한 스캔들을 보내왔다.이를 열어본 박민정은 저절로 동공이 움츠러들고 말았다.[정말이에요?][그럼요. 최현아 씨 집으로 우연히 갔을 때 제가 몰래 본 거예요.]지원 엄마는 재벌 집 사모님들과 모임을 가질 때 손에 쥐고 있는 권력도 예쁜 외모도 없어 늘 공기 취급을 당하는 편이었다.바로 그러한 이유로 몰래 많은 비밀을 염탐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박민정은 마침내 지원 엄마는 아주 큰 쓸모가 있는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다.지원 엄마가 지난번에 준 학부모회 구성원이 적힌 자료에서 많은 재벌가 사모님을 발견하게 되었었다.만약 그 사모님들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된다면 아마 앞으로 바움 그룹을 다시 설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박민정은 지원 엄마에게 답장을 보냈는데, 흥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민정은 살짝 멋쩍어했다.“예찬이랑 윤우 아빠야.”그 소리에 에리는 더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하지만 더는 말하지도 묻지도 않고 밀크티를 손에 쥐고 하염없이 마셨다.남자 연예인으로 몸매 유지를 해야 하나 박민정이 건네준 밀크티였기에 주저 없이 마셨다.두 사람은 간단하게 밥을 먹고 나서 바로 녹음실로 향했다.박민정은 프로다운 모습으로 에리 신곡 녹음을 지도해 주었다.일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은 유난히 빨리 지나갔다.모든 걸 마치고 나오자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파파라치에게 찍혀 에리에게 폐를 주고 싶지 않아 박민정은 운전기사에게 마중을 오라고 했다.에리는 그녀가 떠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매니저가 오고 나서 그에게 물었다.“오늘 녹음 엄청 잘했더라?”에리는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그럼, 민정이가 옆에서 도와줬잖아.”매니저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아쉬울 따름이야. 듣는 쪽이 아니라 부른 쪽이라면 너보다 훨씬 유명해졌을 건데 말이야.”에리는 웃으며 말했다.“만약 가수로 데뷔한다면 나, 민정이 일호 팬으로 영원히 남을 거야.”“하도 겸손해서 말이지. 지금 잘나가고 있는 곡들도 모두 민정이가 만든 건데.”에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음 곡에 조금만 더 힘을 실으면 안 돼? 한 곡 더 터지면 그때 박민정 씨에 관해 언급해도 되는 거잖아.”매니저의 제안에 에리는 고개를 저었다.“지금껏 나랑 다니면서 민정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몰라? 겸손하고 조용하게 사는 게 민정이잖아.”“하긴.”매니저는 그렇게 뛰어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 왜 배후에만 머물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박민정은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박윤우부터 챙기고 바로 박예찬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애어른인 박예찬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시름이 놓이는 편이다.이번에 해외에서도 선생님이 해내지 못한 것도 기특하게 해냈으니 말이다.하지만 박민정에게 있어서 박에찬은 어린아이일 뿐이다.“엄마, 나 잘 지내고 있어. 모레면 귀국할 건데 엄
“아빠, 저 지금 몰래 전화하고 있는 거예요.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박윤우는 말을 하고서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이고 수화기 너머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유심했다.다행히 다른 여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유남준은 박민정이 뒤에서 시켜서 전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실망했다.예전과 같았다면 박민정은 겨우 3일 정도 버티고 바로 전화를 걸어왔었다.하지만 지금은 3일이 코 앞임에도 불과하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무슨 일이야?”박윤우에게 말하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부하에게 묻고 있는 것처럼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보고 싶어서 전화한 거예요. 내일 아빠 만나러 가면 안 돼요?”박윤우는 직접 쓰레기 아빠가 있는 곳으로 확인하러 가고 싶었다.어떠한 여우가 틈을 공략하고 들어왔을 수도 있다면서.“안 돼.”유남준은 더없이 차갑게 거절해 버렸다.순간 박윤우는 말 문이 막혔지만 바로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아빠, 예쁜 윤우 이젠...”하지만 애교를 채 부리기도 전에 전화가 끊겨 버렸다.박윤우는 어안이 벙벙해졌고 유남준의 무정함에 한 방 맞은 것만 같았다.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유남준에게 비밀이 있다는 의심이 커졌다.오지 말라고 하는 걸 봐서는 더더욱.박윤우는 내일 금요일에 홀로 유남준을 찾아가 보겠다고 다짐했다.유남준의 거처를 모르고 있으나 전화로 서다희에게 물을 수 있다.이튿날 아침, 박윤우는 화장실을 본다는 명의로 서다희에게 몰래 전화하여 유남준의 거처를 알아냈다.서다희는 겉으로 보기에 세상 딱딱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어린아이에게 그 어떠한 항마력도 없는 사람이다.특히 박윤우의 애교를 마주하게 되면 사르르 녹아버리고 만다.서다희는 바로 유남준의 현재 거처를 술술 알려주었다.박민정은 박윤우의 계획을 모르고 있었고 오늘 두 시간 늦게 하교한다는 소식만 듣게 되었다.“알았어. 그럼, 정민 아저씨보고 좀 늦게 데리러 가라고 할게.”“좋아.”박윤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두 시간이면 유남
박윤우는 그 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렸는데, 낯설지만 청순하기 그지없는 얼굴이 보였다.여자는 츄레이닝복에 포니테일을 하고서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윤우는 다시 고개를 돌려 번지수를 확인했는데, 틀림없었다.‘뭐지? 쓰레기 아빠 찾아온 여우인가?’“아줌마, 혹시 여기 집주인이세요?”박윤우는 떠보면서 물었다.추경은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여긴 우리 사촌 오빠 집이야. 오빠 찾으러 온 거야.”말을 마치고 추경은은 박윤우를 자세히 훑어보았다.“너 설마 우리 남준 오빠 아들 아니지?”먼 친척임을 확인하고 박윤우는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딩동댕이에요.”“와, 이렇게 다 만나는구나. 난 또 잘못 찾아온 줄 알았잖아. 난 추경은이라고 하고 앞으로 경은 이모라고 부르면 돼.”추경은?왠지 모르게 익숙한 이름이었다.박윤우는 추경은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를 맡고서 약간 어지러웠다.“경은 이모, 저 좀 내려주세요.”하지만 추경은은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았다.“이모 좀만 더 안고 있자.”추경은이 그러면 그럴수록 박윤우는 혐오감이 들어 발버둥을 치기까지 했다.하는 수 없이 추경은은 그를 내려놓아 주고서 벨을 눌렀다.“누구시죠?”“남준 오빠, 나 경은이야. 오빠 보려고 온 거야.”추경은은 유남준이 혹시나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봐 한마디 덧붙였다.“여기 윤우도 있어.”박윤우는 마냥 의아하기만 했다.“경은 이모,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너랑 네 형에 대해서 할아버지께서 가족 단톡방에 이미 올리셨어. 지난 명절 때도 찾아갔었고. 그대 너랑 네 형 모두 본 적 있어.”박윤우는 그제야 익숙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하지만 박예찬처럼 뛰어난 기억력이 없어 단번에 알아볼 수 없었다.두 사람은 입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이때 경비원이 다가와 말했다.“죄송합니다만 대표님께서 두 분 모두 뵙고 싶지 않다고 전해달라고 하십니다.”추경은은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갖은 곡절을 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