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민은 윤씨 저택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참 기다려 겨우 택시를 잡았다.도착했을 때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저택은 오늘 유난히 조용했다. 경비원을 제외한 사용인들은 아직 깨지 않았다.한수민은 돌아온 후 지문을 사용해 집 안으로 들어왔다.침실로 가서 윤석후를 찾으려 했지만 그 방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윤 대표님, 아침부터 뭐 하는 거예요? 정말 못 말려.”매혹적인 여자의 목소리를 들은 한수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윤 대표님, 사모님이 정말 암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하나요?”여자가 물었다.“그럼.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너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겠어?”윤석후가 대답했다.한수민은 자신의 첫사랑인 윤석후가, 박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희생하면서까지 함께 했던 윤석후가 가장 힘든 시기에 자신을 배신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더는 참을 수 없어 문을 세게 밀치고 들어갔다.방 안의 두 사람은 이 시간에 누가 들어올 거라 생각하지 않아 문을 닫지 않았었다.쿵!그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어두운 조명 아래 한수민은 윤석후와 그의 비서가 침대에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의 눈은 금세 붉어졌다.“윤석후,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윤석후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한수민! 왜 병원에 있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거야?”한수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몸의 통증을 참으며 비서의 머리카락을 잡더니 그녀를 때리려고 했다.비서는 스무 살 넘은 젊은 여자라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이 할망구가, 빨리 놔!”윤석후도 비서를 도우려 했다.“여보, 이러지 말고 빨리 손 놔.”“이 여우 년 편을 들어? 잊었어? 지금 당신이 가진 모든 건 내가 준 거야. 내가 준 건 내 손으로 망칠 수도 있다고!”한수민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짝!윤석후는 그녀의 뺨을 세게 때렸다.한수민은 그 충격에 귀가 울렸다.비서도 그녀를 세게 밀쳤다.한수민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결국 바닥에 쓰러졌다.“나 때렸어? 잊었나
보통 딸은 엄마의 편을 들곤 한다.하지만 윤소현은 윤석후가 바람피웠다는 말을 듣고 별로 놀라지 않았다.“엄마, 이 일로 저를 부른 거예요?”한수민은 전혀 놀라지 않는 딸의 반응을 보며 물었다.“설마 이미 알고 있었어?”윤소현은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았다.“아빠 같은 사람이 밖에 여자가 있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죠. 잊었어요? 예전에 아빠가 정수미랑 있을 때도 엄마를 몰래 만났잖아요.”윤소현의 말은 한수민에게 큰 충격이었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 내 딸 맞아?”한수민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윤소현은 아직 그녀와 갈라서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저 당연히 엄마 딸 맞죠. 그러니까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감히 이런 말 못 하죠.”한수민은 약간 진정하며 말했다.“그러면 네 아빠가 나를 배신하는 걸 그냥 이렇게 두고만 볼 거야?”“걱정 마세요. 아빠에게 조심하라고 말할게요.”말을 마친 후 윤소현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엄마, 지금은 병원에서 푹 쉬고 안정을 취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한수민은 미간을 구겼다.“나 VIP 병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잖아. 내가 어떻게 안정을 취할 수 있겠어?”“YN그룹이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그 위기를 해결하려고 모든 자산을 아빠에게 줬어요. VIP 병실로 옮길 돈, 정말 없거든요.”“그럼 내가 전에 준 돈은?”“그것도 아빠한테 빌려줬죠.”한수민은 상황을 믿기 힘들었지만 더 이상 반박할 힘이 없었다.“소현아, 네 아빠가 재산을 다 빼돌렸다고 했어. 넌 절대 속지 마.”“그럴 리가요?”윤소현은 믿지 않는 척하며 말했다.“지금 가서 잘 물어볼게요. 엄마는 먼저 병원으로 돌아가세요.”윤소현이 떠난 후.한수민은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가 택시를 타고 서교에 있는 박민정 아버지의 묘지로 갔다....두원 별장에서.“지금 묘지로 갔다고요?”“네.”한수민을 감시하는 사람의 말을 들은 박민정은 주먹을
유남준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들어와.”서다희가 걸어 들어오며 물었다.“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 지금 거의 다섯 시가 되었어요. 윤우 도련님을 학교에서 데려오기로 하셨잖아요.”“윤우?”유남준은 의아해했다.“그게 누군데?”서다희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대표님 또 윤우를 잊으신 거야?’“대표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지금이 몇 년도죠?”유남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서 비서, 요즘 너무 한가했지? 두바이행 비행기 표는 준비됐어? 초급 칩셋 프로젝트에 대해 협상하러 가야 하잖아.”그는 눈을 뜨고 일어나려 했지만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왜 아무것도 안 보이지?”‘초급 칩셋이라... 대표님과 사모님이 결혼한 지 1년째 되던 해에 있었던 일인데? 이걸 어떻게 하지? 그때면 유앤케이가 제일 힘들 때이기도 하고, 대표님이 온갖 비웃음을 받던 시기인데.’“대표님, 할 얘기가 있어요.”“말해.”서다희는 녹음기를 꺼냈다.이 녹음기에는 그가 매번 해명할 때마다 하는 말들이 꼼꼼하게 녹음되어 있었다.약 한 시간 후.유남준은 두원 별장으로 돌아왔다.윤우는 그의 다리에 매달리며 말했다.“아빠, 오늘 학교에서 저 데려오기로 했잖아요. 왜 약속 안 지키셨어요?”유남준은 얼굴색이 어두워지더니 자기도 모르게 윤우를 들어 옆으로 던졌다.“다른 데 가서 놀아.”윤우는 의아해하며 서다희를 쳐다봤다.서다희가 눈짓을 하자 윤우는 바로 상황을 깨달았다.윤우는 유남준의 병이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거의 이틀마다 한 번씩 바뀌었으니 말이다.그는 위층으로 올라가 박민정에게 알렸다.“엄마, 우리 이 기회에 떠날까?”박민정은 이해하지 못했다.윤우는 유남준을 좋아하지 않았던가? 매일 ‘아빠’와 ‘쓰레기 아빠’를 번갈아 부르면서 말이다.“왜 가려고 해?”“지금 아빠는 상태가 안 좋아서 그래. 우리 새로운 아빠 찾자.”박민정은 황당했다.“아빠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거니?”그리고 허리 숙여 아이에게 설명했다
방금은 그가 너무 충동적이었다.엄마가 아픈 아빠를 두고 가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런 제안을 했다.“미안해, 엄마. 잘못했어.”“그래, 잘못을 알면 됐어.”박민정이 그의 등을 토닥였다.윤우의 눈빛이 깊어졌다.그는 박민정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있어서 박민정은 유남준보다 백 배는 더 중요했다.“엄마, 밥 먹으러 가자.”“그래.”식탁에서 유남준은 꼿꼿하게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박민정과 윤우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몇 숟가락 대충 뜨고는 일어섰다.“나 일이 있어서 오늘 밤엔 안 돌아올 거야.”박민정은 잠시 멈칫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알겠어요.”같은 대답이었다.유남준은 자신이 진짜로 기억을 잃은 건지 믿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다희에게 제호 클럽에 가자고 했고 김인우와 방성원도 불러냈다.유남준이 자리에 앉았고 김인우와 방성원이 차례로 도착했다.김인우는 유남준 옆에 앉으며 말했다.“남준아,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니? 네가 우리를 술 마시자고 부르다니. 몸은 괜찮아?”6년 전 박민정이 실종된 후 유남준은 점점 그들과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박민정이 진주에 돌아온 이후로는 그들과 거의 약속을 잡지 않았었다.“농담하지 말고, 나 물어볼 게 있어.”김인우는 즉시 진지해졌다.“뭐 물어보려고 하는데?”“나 정말 박민정 좋아해?”김인우는 물론, 머릿속에 온통 임신한 아내 생각뿐인 방성원도 옆에서 그 말을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남준아, 너 우리 놀리는 거야?”방성원이 술을 한 모금 마셨다.김인우도 어이가 없는 듯이 말했다.“난 또 무슨 심각한 문제라고. 이걸 물어볼 줄은 몰랐네. 박민정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유남준은 이마를 주무르며 말했다.“나 또 기억을 잃었어.”김인우는 멈칫했다.“그럼 우리는 기억해?”“그냥 몇 년간의 기억만 없어.”유남준이 대답했다.김인우는 곧바로 진지하게 말했다.“남준아, 너 계속 이러면 안 되잖아. 얼른 병원에 가
박민정은 김인우가 말이 없자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다른 일 없으면 끊을게요.”그때 김인우가 다급하게 말했다.“잠시만. 한 번 와주는 게 좋겠어. 그래도 남준이가 형수 말을 들을 것 같은데?”그도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는 잘 몰랐다.박민정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알겠어요. 하지만 임신 중이라 남준 씨 취했으면 제가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걸 미리 말해둘게요.”“걱정 마. 나랑 성원이도 도울 거야. 그냥 남준이가 술을 더 안 마시도록 설득해 주면 돼.”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운전기사는 박민정은 제호 클럽에 데려다줬다.도착한 후, 그녀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VIP 룸으로 들어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유남준은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고 양쪽에는 김인우와 방성원이 앉아 있었다.두 사람은 유남준을 말릴 수 없었고, 더욱이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들은 박민정을 보더니 마치 구세주를 본 것처럼 두 눈을 반짝였다.“형수.”아직 취하지 않은 유남준은 김인우의 호칭을 듣더니 눈살을 찌푸렸다.박민정은 유남준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그만 마시고 돌아가요.”유남준은 술잔을 들고 있는 손을 무의식적으로 더 꽉 쥐었다.그는 대답하지 않고 옆에 있는 김인우에게 물었다.“네가 불렀어?”김인우는 어물쩍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남준아, 더 마시면 안 돼. 형수 말 듣고 돌아가.”유남준이 웃음을 터뜨렸다.“형수가 어디 있다고 그래?”김인우는 말문이 막혔다.그리고 박민정이 화낼까 봐 걱정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를 부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하지만 지금의 박민정은 정신적으로 매우 강했다.그녀는 김인우와 방성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몸을 구부려 유남준의 손에서 술잔을 빼앗았다.“그만 마시라고 했잖아요. 못 들었어요?”유남준은 제자리에 얼어붙었다.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술잔을 내려놓았다.박민정은 손에 든 술잔을 쓰레기통에 버린 다음 테이블 위의 술병을 하나씩 모두 쓰레기통에
“도대체 술 얼마나 마신 거예요?”박민정은 유남준에게서 풍기는 강한 술 냄새에 이마를 찡그렸다.유남준은 대답하지 않고 긴 손으로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나 집에 데려간다며?”박민정은 잠깐 멈칫했다.유남준이 그녀를 추궁하려고 남긴 줄 알았는데 말이다.박민정은 마지못해 손을 내밀어 유남준의 손목을 잡았다.“가요.”유남준은 더 말을 하지 않고 순순히 일어서 그녀와 함께 걸어 나갔다.박민정은 유남준을 데리고 나가면서 클럽에 온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누구야? 왜 이렇게 잘생겼어?”“가게에 새로 온 직원 아니야? 몸매 대박이네.”몇몇 여자들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런데 앞에 있는 여자는 얼굴이 예쁜 것 말고 돈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그중 한 명은 박민정과 유남준을 단번에 알아봤다.이지원의 친구인 하예솔은 술잔을 잡은 손을 꽉 쥐며 두 사람을 빤히 쳐다봤다.그녀의 친구가 농담하며 말했다.“예솔아, 너 곧 결혼하잖아. 우리와 남자 뺏지 마.”상류층 사회에는 부잣집 도련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부잣집 아가씨들은 보통 사람들이 평생을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돈을 이미 타고났다.그래서 그들은 남자 친구를 만나 결혼하는 평범한 삶을 원하지 않았다.하예솔의 한 친구가 유남준 쪽으로 다가갔다.“잘생긴 오빠!”사실 상류층 사회 사람들은 대부분 유남준을 알고 있었다.다만 클럽 1층은 조명이 어두웠고, 그들은 유남준을 직접 본 적이 없기에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여자는 유남준의 어깨를 툭툭 쳤다.유남준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말했다.“꺼져.”박민정은 멈춰서 뒤돌아 여자를 바라봤다.여자는 약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다시 평정심을 찾고는 박민정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웃었다.“오빠, 눈이 멀었어? 저 여자 얼굴에 큰 흉터가 있는 거 안 보여?”박민정은 그녀의 말에 화가 나지 않았지만 유남준은 분명히 화를 낼 것이다.그는 정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여기 시끄럽네.”유남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자가
박민정은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TV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에리였다.구릿빛 피부의 그는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아프리카 아이들과 함께 봉사를 하고 있었다.유남준의 건강 상태 때문에 에리는 그다지 제약을 받지 않아 꽤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었다.지금의 그는 비행기를 타고 몰래 진주로 돌아오고 있었다.막 공항에 도착한 에리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바로 박민정에게 연락했다.“민정 선배, 지금 뭐 하고 있어?”전화가 연결되자 그는 장난스럽게 물었다.박민정은 경험 많은 작곡가로서 많은 방면에서 에리를 이끌었다. 게다가 그보다 나이도 많아 에리는 가끔 박민정을 선배라고 부르곤 했다.박민정은 그의 뉴스 영상을 보고 있던 중인데 마침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마침 네가 봉사하는 영상을 보고 있었어.”박민정이 대답했다.“내 영상을 보고 있었다고?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농담 그만해. 거긴 잘 적응하고 있어?”박민정이 물었다.에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잘 지내고 있지. 그런데 너무 지루해서 회사에서 신경 안 쓰는 틈을 타 몰래 돌아왔어.”“돌아왔다고?”“응, 이제 막 공항에 도착했어. 나 데리러 올래?”박민정은 한숨을 푹 쉬었다.“미안. 요즘 집안일이 좀 바빠서.”“알겠어.”에리는 약간 실망했다.매니저는 그에게 빨리 가자며 눈짓했다.공항에는 사람이 많아 그를 알아보는 팬이 있으면 일이 많이 복잡해질 것이다.“민정 선배, 다음에 꼭 나에게 곡 하나 써줘. 여기 너무 시끄러우니까 이만 끊을게.”에리는 아쉬움을 감추며 전화를 끊었다.“나 전화 오래 하지도 못했단 말이야.”“회사에 들키고 싶어?”매니저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들은 바보가 아닌 이상 회사에서 에리를 키우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곤경에 빠뜨리려 한다는 걸 당연히 눈치챌 수 있었다.하지만 최근 한동안 IM 그룹 경영진은 에리를 잊었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그래서 그들은 몰래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아프리카에서 최고 대우를 받았지만 여전히 국내
유남준이 두원 별장에서 나가리라고 생각지도 못한 박민정이다.그것만으로 부족하여 가기 전에 서다희에게 은행 카드 한 장까지 던져 주었으니 말이다.“그 안에 들어 있는 돈으로 너랑 아이가 생활하기에 충분할 거야. 중요한 일 아니면 나한테 절대 연락하지 마.”유남준은 차갑게 한마디만 남기고 차에 올랐다.쓴소리는 유남준이 했는데 서다희가 오히려 더 미안해했다.“사모님, 노여움 푸세요. 아시다시피 대표님 좀 편찮으시잖아요.”“지금 대표님의 일거족일거수에 대해 저 역시 이해가 되지 않은 편이에요.”박민정은 노여워할 리가 없다.6, 7년 전에 모든 억울함을 감수했던 그 여린 여인이 아니기에, 오로지 유남준을 바라보며 좋은 아내로 살아가려고 했던 그 어리석은 여인이 아니기에 말이다.지금의 박민정은 그 어느 순간보다도 마음이 굳건하다.유남준이 오른 검은색 마이바흐에 대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할 수 있을 만큼.“잘 가요.”서다희가 뭐라고 더 하고 싶었으나 마이바흐 차창이 내리더니 안에 있던 유남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서 비서, 안 가고 뭐 해!”그 소리에 서다희는 박민정에게 멋쩍게 인사를 하고서 바로 차에 올랐다.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면서 박민정은 전혀 슬프지 않았다.유남준이 병으로 요 몇 년간의 기억을 잃었기에 슬프지 않았고 유남준에 대한 감정이 몇 년 전부터 바닥을 보이고 있었기에 슬프지 않았다.지금 유남준을 마주하고 있는 박민정의 감정에는 사랑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이질 않을 미미한 정도이다.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던 박윤우는 슬퍼하기는커녕 무척이나 홀가분해하는 박민정을 보고서 약간 마음이 놓였다.‘신경 쓰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다행이야.’“엄마.”박윤우는 박민정을 나지막이 불렀다.박민정이 홀가분해하는 이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더 이상 유남준에게 일일이 보고할 필요도 없이 말이다.하물며 유남준에게 카드 한 장까지 받았으니 더더욱.“윤우야,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