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기 그지없는 두 눈으로 박민정을 바라보며 고영란이 말했다.“우리 유씨 가문은 결코 보잘것없는 집안이 아니야. 지금 당장 무릎 꿇어!”생각지 못한 말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박민정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잘못한 것도 없는데 제가 왜 무릎을 꿇어야 하는 거죠?”“아이까지 내팽개치고 해외로 남자를 만나러 간 네가 잘못한 게 없다고?”윤소현이 옆에서 계속 부채질했다.어처구니가 없는 박민정은 두 눈을 부릅뜨고 윤소현을 노려보며 물었다.“열녀문이 내려진 것도 아니고 곁에 남성 친구조차 두면 안 된다는 소리예요?”“남녀 사이에 순수한 우정 따위는 없어. 있을 것 같아?”윤소현은 계속 비아냥거렸다.흔들림 없이 공격하는 윤소현의 모습에 박민정은 더 이상 그 어떠한 체면도 봐주지 않으리라 결심했다.“제가 알기로는 윤소현 씨 남자 파트너 자주 바꾸기로 소문이 자자한 것 같은데... 여러 스킨십까지 자주 하고 말이에요. 저보다는 윤소현 씨가 더 더러운 게 아닌가요?”“내가 하는 건 일이고 네가 하는 건 사랑이잖아.”“순수한 우정 따위가 없다면 순수한 일 따위도 없는 거 아니에요?”박민정은 계속 맞받아쳤다.이렇게 날카롭고 예리하게 대응할 줄은 몰랐던 윤소현은 당황하면서도 짜증이 났다.다행히도 고영란이 자기편을 들어주면서 기분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무릎 꿇어! 다시 말하고 싶지 않다.”박민정은 허리를 더욱 꼿꼿하게 세웠다.그때 소파에 앉아 있던 고영란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들어와.”무릎을 꿇으라고 명령을 내리게 되면 상대가 누구든지 반드시 꿇어야 한다는 게 고영란의 ‘신념’이다.시어머니로서의 위엄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해도 좋다.얼마 지나지 않아 제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우르르 들어와 박민정에게 말했다.“사모님, 큰 사모님 말씀대로 하시기 바랍니다.”윤소현은 옆에서 좋은 구경이라도 난듯한 얼굴이었다.하지만 박민정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는 채 덤덤하기 그지없는 두 눈으로 고영란을 바라보며 말했다.“무릎 꿇지 않을 겁니다.”경
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문 앞에 서 있는 유남준과 서다희가 보였다.유남준의 안색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그가 돌아올 것으로 생각지도 못한 박민정은 다소 의외였다.“무슨 일이야?”그리고 생각할 것도 없이 고영란의 편을 들 것이라고 여겼다.하지만 전혀 다른 말을 뱉어버리고 만다.“아무나 집으로 들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아무나?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윤소현보다 고영란은 거의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남준아,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아무라니! 난 네 엄마야!”조용히 듣고 있던 유남준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어머니, 저와 민정이 사이의 일은 사적인 일이니 앞으로 상관하지 마세요.”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유남준이 기억을 되찾은 줄 알았다.아들에게 한바탕 쓴소리를 듣고 난 고영란은 목이 메었다.“알았어. 앞으로 싸우든 말든 어떻게 지내든 절대 상관하지 않을게.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이윽고 유남준을 자세히 훑어보았는데, 크게 다친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윤소현에게 말했다.“가자.”윤소현 역시 유남준을 살펴보았는데, 유남우가 말한 것처럼 엄중해 보이지 않았다. “네.”윤소현은 고영란 따라 밖으로 나왔다.고영란은 박민정에게 미처 풀지 못한 화를 윤소현에게 풀 작정이었다.“남준이 크게 다쳤다면서! 멀쩡하잖아!”“저도 남우 씨한테 들은 말이라 속사정은 잘 몰라요.”윤소현의 설명에 고영란은 콧방귀를 뀌었다.“우리 남우한테 뒤집어씌울 생각하지 마.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예고 없이 돌아온 쓴소리에 윤소현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유남우와 약혼하고 나서 고영란은 줄곤 자상하게 예를 지키며 윤소현과 소통했었다.이런 적은 거의 처음이라고 볼 수 있다.하지만 집안 배경을 버팀목으로 하고 있는 윤소현은 이지원과 달라 바로바로 대꾸할 수 있었다.“어머님, 저한테 생각이 없다고 쳐요. 그럼, 어머님께도 생각이 없는 건가요? 제가 어머님을 이곳까지 억지로 끌고 왔어요?”밖에 도착하자 윤소현은 바로 자기
갑자기 유남준이 그녀의 손을 잡고는 말했다.“얘기해 봐, 왜 돌아왔어?”지금의 유남준에게 있어서 그는 박민정이 왜 돌아왔는지, 그리고 자기가 기억을 잃은 사실마저 모두 잊었다.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자기가 돌아온 이유를 유남준에게 다시 말했다.“그러니까 내 아이를 데리고 5년 사라졌다는 거야?”똑같은 말이라 박민정은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전에 이미 얘기했던 문제잖아요. 더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유남준은 여전히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박민정.”박민정은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이거 놔요.”유남준은 놓아주지 않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더니 들어 올렸다.“뭐 하는 거예요? 나 내려줘요.”그녀는 무서운 듯 유남준의 팔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조심히 걸어요. 앞에 테이블이 있으니 부딪치지 말고요.”유남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침실로 가려고 하는데 왼쪽으로 가? 아니면 오른쪽으로 가?”‘침실로 간다고?’박민정은 바로 어젯밤 유남준이 한 행동을 떠올리며 그의 어깨를 꽉 눌렀다.“나 내려놔요!”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유남준은 그녀를 놓지 않고 기억을 더듬으며 계단을 올랐다.“조심해요, 기둥 있어요.”기억이 완전히 정확한 건 아니었다. 박민정이 귀띔했기 때문에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방에 도착하자 유남준은 박민정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그녀를 안은 손은 놓지 않고 꽉 잡았다.“왜 이 꿈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까?”“왜 또 꿈이라고 하는 거예요? 꿈 아니라고 했잖아요.”박민정은 어이가 없었다.유남준은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박민정, 나 머리 너무 아파. 자고 싶어.”박민정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지금 바로 의사 부를게요.”그녀는 일어나려고 했지만 유남준이 그녀를 꽉 안아서 움직일 수 없었다.“가면 다시 안 올 거지?”박민정은 그에게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어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
유남준이 사라졌다. 어디로 갔을까?박민정은 별장 사용인과 가정부들에게 유남준을 찾아보라고 했다.10분 후, 한 사용인이 마침내 유남준을 발견하고 곧바로 박민정에게 전화했다.“사모님, 유 대표님 정원 옆의 연못가에 계십니다.”“알겠어요, 지금 갈게요.”박민정은 전화를 끊은 후 급히 달려갔더니 연못가의 큰 나무 아래 서 있는 유남준을 발견했다.그녀는 한숨을 돌리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말했다.“남준 씨.”유남준의 기억이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확신이 없어 그녀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남자의 눈빛은 초점이 없었지만 여전히 맑아 보였다.“무슨 일이야?”“나... 나 누군지는 기억하죠?”“걱정 마. 어제랑 똑같으니까.”그 말에 박민정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럼 다행이네요. 그런데 왜 여기에 있어요?”“그냥. 좀 조용히 있으려고.”유남준이 말하고는 박민정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서 비서는?”박민정은 시간을 체크하며 말했다.“지금 오고 있을 거예요.”서다희는 오늘 아침 8시에 오겠다고 말했었다.“가서 쉬어. 나 신경 쓰지 말고.”유남준은 서다희에게서 박민정이 지금 임신 중이라 힘들게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었다.말을 마친 후 그는 거실로 걸어갔다.박민정은 그를 따라갔다.유남준이 거실에 도착하고 옆에 서다희도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박민정은 윤우를 깨우 세수하고 아침을 먹게 했다.윤우는 침대에서 겨우 일어났다.아빠가 또 변했다는 걸 알고 세수를 마친 후 바로 유남준을 만나러 갔다.“쓰레기 아빠.”귀여운 아이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듣기 좋았지만 유남준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그는 서다희에게서 박민정이 진주를 떠난 후 쌍둥이를 낳았다는 말을 들었었다.“응.”윤우는 달려가 그의 다리를 꽉 끌어안았다.유남준의 다리가 갑자기 저렸다.“아빠, 윤우 기억났어요?”윤우는 다시 호칭을 바꿔 물었다.“기억이 나.”지금의 유남준은 윤우가 상처받을까 봐 거짓말을 했다.윤우는 그의 거짓말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일부러
유남준은 놀란 듯 물었다.“내가 네 선생님을 본 적 없어?”윤우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엄마랑 아빠는 항상 일 때문에 바빴잖아요. 전에 계속 정 아저씨가 저를 학교에 데려다줬어요.”정 아저씨?유남준은 단지 일부 기억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다.서다희가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 줘도 빠뜨린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정민기가 바로 그 빠뜨린 부분이었다.“왜 정 아저씨가 널 데려다줘?”유남준이 물었다.윤우는 일이 더 커지는 걸 전혀 두렵지 않은 듯했다.“정 아저씨가 정말 멋진 사람이라서요. 엄마도 정 아저씨만이 저를 보호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정 아저씨는 우리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인기가 정말 많아요. 그래서 아빠가 가면 친구나 선생님들이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 상처받지 말아요.”윤우는 일부러 유남준을 자극했다.유남준은 실눈을 뜨더니 휴대폰을 들어 서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서다희는 뒤따르던 차 안에서 무슨 일인지 몰라 바로 전화를 받았다.“대표님.”“정민기가 누구야?”유남준이 목소리를 낮췄다.“보디가드요. 사모님의 개인 보디가드입니다.”서다희가 대답했다.보디가드라는 말을 듣고 유남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알겠어.”유남준은 전화를 끊었다.보디가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유치원에 도착한 후.유치원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입구에 나와 있었다. 그녀들은 오늘도 정민기를 보고 싶어 했다.정민기는 잘생긴 데다가 얼마 전에 아이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범인을 바로 제압했었다.그 이후로 유치원 모든 사람들은 정민기를 우상으로 삼았다.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윤우를 태운 벤틀리가 몇 대의 고급 차로 바뀌었다.차 문이 열리자 정민기가 아닌 차가운 얼굴, 완벽한 이목구비에 훤칠한 키의 남자가 내렸다.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유치원 선생님들은 눈을 반짝이며 유남준을 뚫어지게 바라봤다.“윤우야, 누구셔?”윤우의 담임 선생님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윤우에게 달려왔다.“우리 아빠
“민정아, 법원에서 한수민의 모든 재산을 동결했지만 계좌에 20억도 없대.”아침 식사를 마치고 박민정은 변호사 장명철에게서 전화를 받았다.사실 이 소식은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박민정은 한수민을 계속 감시해 왔기 때문에 그녀가 돈을 모두 윤소현에게 보낸 것을 알고 있었다.“이상한 건 YN그룹 계좌에도 돈이 별로 없대. 400억밖에 찾지 못했다는데?”장명철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YN그룹 같은 큰 회사에 유동 자금이 그렇게 적다니.“미리 빼돌린 건 아닐까요?”박민정이 물었다.“그건 아닐 거야. 우리가 계속 감시해 왔고, YN그룹 내부에도 우리 사람이 있잖아.”장명철이 말했다.“그럼 YN그룹에 문제가 있는 거겠죠.”박민정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괜찮아요. 얼마가 있든 모두 받아야죠.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요.”“그렇지.”장명철이 전화를 끊었다.박민정은 한 주 가까이 한수민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의 상황이 어떤지 궁금했다.병원에서.오늘 한수민은 VIP 병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그녀는 화가 잔뜩 난 채 간병인에게 말했다.“누가 내 병실을 바꾸라고 했어? 이렇게 좁고 낡은 곳에서 어떻게 지내라고?”간병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사모님, 병실을 옮긴 건 제 결정이 아니라 가족분들의 지시입니다.”한수민은 머리가 띵해졌다.“말도 안 돼. 우리 윤씨 가문이 돈 없는 것도 아니고 왜 나를 일반 병실로 옮겼겠어?”“그럼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시면 되잖아요.”간병인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거만한 한수민에게서 호감이 떨어졌다.한수민은 휴대폰을 들어 윤소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거는 동안에도 간병인을 계속 꾸짖었다.“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 소현이에게 널 해고하라고 할 거야.”간병인은 그녀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한참 후에야 전화가 연결되었다.이어서 윤소현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무슨 일이세요?”한수민은 윤소현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하며 말했다.“소현아, 간병인이 나를 일반 병실
아줌마는 그 말을 듣고 간병인이 왜 그녀를 조롱했는지 금방 알게 되었다.“말은 가려서 해야죠.”한수민은 코웃음을 치고는 더 이상 아줌마를 신경 쓰지 않았다.하층 계급의 사람들이 자신과 말을 섞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아줌마는 한수민이 자기 말에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흥미를 잃어 더 얘기하지 않았다.점심때 간병인이 다시 와서 한수민에게 밥을 주었다.집이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면 그녀는 절대 거듭 무례를 범한 한수민을 돌보지 않을 것이다.“밥 먹어요.”간병인은 음식을 각각 놓아주었다.한수민은 음식을 한 번 보더니 예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젓가락을 들었다.옆 침대 환자 아줌마는 아직 밥을 받지 못했다. 그걸 본 한수민은 비꼬듯이 말했다.“간병인도 없나 보네.”아줌마는 화도 내지 않고 그저 휴대폰을 들여다봤다.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 문이 열렸다.“엄마, 늦어서 죄송해요. 오늘 야근해서 늦었어요.”스무 살 정도의 젊은 여자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아줌마의 옆으로 왔다.아줌마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엄마 배고프지 않아.”어린아이는 귀여운 목소리로 불렀다.“할머니.”“우리 손주. 오늘 엄마 말 잘 들었어?”“그럼요?”젊은 여자는 어린아이를 의자에 앉힌 후 아줌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할머니, 빨리 나으세요.”“알겠어. 할머니 빨리 나아서 우리 착한 손주를 유치원 데려다줘야지.”“좋아요.”어린아이가 대답했다.그 광경을 보던 한수민은 다시 밥을 먹으려 했지만 갑자기 식욕이 뚝 떨어졌다.아줌마의 딸은 직접 끓인 미역국을 가져왔다.일 때문에 온 가족이 이곳에서 함께 식사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오늘 금요일이라 아이의 유치원에서는 점심을 제공하지 않았다.젊은 여자는 빠르게 밥을 먹고 나서 어머니에게 마사지를 한 후 아이를 집에 데려가야 했다.떠날 때 여자는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엄마, 잘 지내고 계세요. 저녁에 다시 올게요.”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천천히 운전하고
한수민은 휴대폰을 들어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박민정은 저녁을 먹고 한수민의 상태가 궁금해서 찾아가 보려고 했는데 한수민에게서 전화가 올 줄은 몰랐다.“무슨 일이에요?”박민정이 전화를 받았다.“돈 좀 보내줘. 지금 병원비가 없어서. 넌 내 딸이잖아. 내가 널 고소하는 걸 바라는 건 아니겠지?”한수민은 박민정이 돈을 주지 않으면 그녀를 고소할 생각이었다.박민정도 고소하는 걸 즐기지 않는가?친모에게 고소당하는 기분은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한수민은 박민정이 가족에게 배신당하는 것을 가장 견디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박민정은 거절하지 않고 말했다.“이따가 여사님 보러 갈게요. 만약 여사님이 정말 치료비가 없다는 게 사실이라면 여사님이 말한 대로 친딸로서 돈을 드리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한수민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전화를 끊었다.병원에서.간병인이 한수민에게 물었다.“뭐래요? 설마 그 아가씨도 돈 안 주겠대요?”그럼 너무 불쌍하잖아.옆자리 아줌마도 한수민을 비웃듯이 말했다.“돈이 많으면 뭐 해. 사람이 곧 죽는데 가족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그 말을 들은 한수민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간병인과 아줌마는 박민정이 돈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한수민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유는 박민정이 다시 한번 그녀의 예상을 벗어났기 때문이었다.복부의 통증이 시작되어 한수민은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통증을 완화하려면 자거나 약을 먹는 방법밖에 없었다.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잠이 오지 않았다.눈만 감으면 박민정의 어린 시절 얌전히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아니야!’윤소현이 태어나자마자 윤석후가 데려가서 정수미와 함께 지냈지만 그래도 윤소현은 한수민의 친딸이었다.게다가 한수민은 몰래 윤소현을 찾아가 잘 대해 주었다. 다른 여자아이들이 가진 것은 윤소현도 무조건 가지게 해주었다.통증 때문에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한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