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은 이불을 꼭 감싸 쥐고 다급히 거절했다.“됐어요. 그만해요.”그녀는 유남준의 품에서 빠져나와 빠른 속도로 옷을 입고 몰래 방에서 나왔다.하지만 어두운 곳에 두 녀석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박윤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쓰레기 아빠가 왜 거짓말했지? 엄마 여기 있는 게 맞잖아.”좀 더 성숙한 박예찬은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했다.“짜증 나네! 그렇게 노력했는데 결국 못 막았어!”“무슨 말이야?”박윤우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하지만 사실 박예찬도 대개 어떤 일인지만 알 뿐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다.“가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드라마들을 보면 알아. 남자와 여자가 단둘이서 뭐 하겠어! 당연히 뽀뽀했겠지!”박윤우는 늘 병원에 있었고 박예찬은 은정숙과 함께 집에 있으면서 사랑 이야기에 관한 드라마를 여러 개 봤다. 은정숙은 매번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박예찬은 보고 싶지 않아도 효심 때문에 옆에서 같이 있어 줬다. 그렇게 드라마가 끝나면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는데 그중엔 연애에 관한 것도 있었다.“짜증 나!”이제 박윤우도 이해했다.“저 아저씨가 감히 엄마한테 뽀뽀를 해?!”박윤우는 화가 잔뜩 났다.흥분한 그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아직 방에 안 들어간 박민정의 귀에 들렸다.박민정이 고개를 돌리자 더는 숨기지 못할 것을 알고 박예찬과 박윤우는 걸어 나왔다.박윤우는 바로 입을 열었다.“엄마, 왜 아저씨 방에서 나왔어요?”그는 질투가 났다. 엄마는 오랫동안 자신의 볼에 뽀뽀를 안 했는데 쓰레기 아빠를 먼저 찾았다니.“나, 난...”박민정은 두 녀석의 큰 눈을 쳐다보면서 갑자기 어떻게 둘러대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하필 이때 유남준의 방문이 열렸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 나오면서 말했다.“우린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왜, 너희도 들을래?”두 녀석은 무슨 중요한 이야기를 꼭 저녁에 해야 하는지 물으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문밖에서 쿵 하고 소리가 들려왔다. 물건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딩동-집 안의 유럽식 진자시계에서 소리가 났다.은정숙은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벌써 12시야, 이제 좀 쉬어야겠다.”“네.”박민정은 약간 불룩 튀어나온 배에 손을 얹은 채 돌아서는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으로 조금 전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은정숙은 유남준에게 유난히 짜증을 냈는데, 왜 이제 와서 이렇게 빨리 변했나 싶었다.게다가 유남준과 만나도 된다고?박민정은 다시 한번 저 멀리 유남준과 아이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아니, 그녀는 예전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없었다.길가에 쌓인 나뭇가지와 쌓인 눈을 치운 유남준은 두 아이를 방으로 데려갔고, 박민정은 곧바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벽난로에 불을 붙이러 갔다.“이따가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자자.”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아이들은 유남준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을 뿐 춥지는 않았다.반대로 유남준은 늘씬한 손이 얼어서 빨개졌지만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유남준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모두 해냈어야 했다.박민정은 오늘 밤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차마 그를 바라보지 못했고, 두 꼬마가 몸을 녹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곧바로 욕실로 데려가 옷을 챙겨주었다.오랜 시간 추운 밖에 있었기 때문인지 유남준의 마음속 불도 겨우 꺼졌다....새해 첫날.박민정은 아침 일찍 일어나 두 아이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집 안을 꾸몄다.몇 년 전 해외에 머물렀을 때는 매번 크리스마스만 보냈는데 이제 드디어 설날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주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셰프와 함께 있는 유남준을 발견했다.캐주얼한 옷차림에 앞치마를 두른 남자는 유난히 집안일에 능했다.유남준은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손에 들고 있던 만두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민정아.”의문이 아닌 서술형이었다.유남준은 사람이 적을 땐 발소리만 들어도 누가 오는지 알 수 있었다.“네.”박민정은 여전히 어색한 기색이 역력했
과거에는 크고 작은 명절이 되면 박민정은 유남준과 함께 유씨 가문 저택에 다녀와야 했다.새해 첫날은 당연히 가야 했지만 이번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전 바빠서 못 가요. 남준 씨가 가고 싶다고 하면 데려가세요.”박민정은 바로 전화를 끊었고 반대편에서 고영란은 끊어진 전화를 보며 분노했다.“버르장머리 없는 것. 남준이가 기억상실증만 아니었어도 어딜 감히 네까짓 게!”옆에 있던 비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도련님 모시러 갈까요?”“가. 박민정은 오기 싫어도 남준이는 꼭 와야 해, 유씨 집안 장남이니까.”고영란도 사실 유남준이 오늘 행사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앞을 못 보는 데다 기억상실증까지 걸렸으니 체면을 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하지만 유명훈은 콕 집어 유남준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다.유명훈은 오랫동안 업무에 개입하지 않았어도 회사에 심복이 꽤 많았기 때문에 유남우와 그녀가 감히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그런데 도련님이 오기 싫다고 하면요?”비서가 다시 물었다.“그럼 묶어서라도 데려와. 앞을 못 보는 사람 하나 감당 못 해?”고영란은 화를 내며 말했고 비서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신림현.박민정은 유남준에게 고영란이 전화해 오라고 한 것에 대해 말했다.“엄마, 아저씨 고아라고 하지 않았어요?”박윤우가 바로 묻자 박민정은 흠칫하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맞아, 아저씨는 버려졌어.”“아, 이제야 아저씨 엄마가 집에 오길 원하시는 거예요?”“그런 셈이지.”박민정은 유남준을 힐끗 쳐다봤고 이때 박윤우가 유남준에게 말했다.“아저씨, 그럼 엄마한테 돌아가지 그래요? 우리랑 엄마 뺏지 말고요.”아이는 가장 순수한 말로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입 밖으로 꺼냈다.유남준은 화를 내지 않고 박윤우에게 말했다.“어린애들만 엄마를 찾는 거지.”박윤우는 곧바로 작은 입을 삐죽거리며 불쾌함에 반박하려 했지만 박민정은 두 사람이 또다시 말싸움을 벌이려는 것을 보고 서둘러 말렸다.“됐어, 윤우는 형이랑 옷 갈아입
올해 설날에는 유씨 가문에서 가족 잔치만 열었고, 유씨 가문의 1촌 친척 몇 명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택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유명훈은 상석에 앉아 증손자 유지훈을 위해 손수 과일 껍질을 벗기고 있었고, 그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맨눈으로도 훤히 보였다.유지훈은 참석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 채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증조할아버지, 저거 줘요.”유지훈은 한 중년 남성의 손에 들린 구슬 원반을 가리키며 달라고 했다.유명훈 형의 아들이었던 중년 남성은 유지훈이 자신의 원반 구슬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는 다소 꺼리는 모습으로 감췄다.“지훈아, 이건 장난감이 아니야. 네가 좋아하면 사촌 할아버지가 내일 새로 한 상자를 보내줄게, 알았지?”이 원반 구슬은 그가 8년 동안 구슬린 것인데 어떻게 어린아이에게 주겠나.“아니, 아니, 저거 주세요, 할아버지...”이를 본 유명훈은 아이의 손을 두드리기 바빴다.“그래그래.”말하며 그가 눈치를 주자 중년 남성은 네 살짜리 아이에게 원반을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유지훈은 손에 쥐자마자 몇 번 만지지도 않고 바로 바닥에 떨어뜨렸고, 구슬은 깨져 여기저기 흩어졌다.“재미없어, 이게 뭐야.”중년 남자의 마음도 함께 산산조각 났다...그러나 차마 유씨 가문의 대를 이을 유일한 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유명훈의 다른 자식들은 딸도 없었기 때문에 유지훈을 하늘처럼 받들어 모셨다.유지훈의 부모인 유성혁, 최현아는 더욱 뿌듯해했다.이때 멋지고 온화한 인상의 한 인물이 들어왔다.“할아버지.”유남준 삼촌과 똑같은 얼굴을 본 유지훈은 곧바로 바르게 앉았다.“그래, 앉아라.”유남우를 바라보는 유명훈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지난 몇 달 동안, 그는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제대로 속였다.유남우가 오고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속속 도착했지만 유남준이 보이지 않자 다소 짜증이 난 유명훈이 고영란에게 물었다.“남준이는 어딨어?”“오고 있어요.”유씨 가문 사람들은 오늘 유남준을 보고
수모?서다희의 말을 듣고도 박민정의 얼굴은 평온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그녀도 과거 유씨 가문에서 온갖 굴욕을 다 당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유남준이 언제 한번 자신을 도와주는 걸 보지 못했다.서다희는 흠칫하면서 목소리를 낮췄다.“대표님이 구해주신 걸 생각해서라도 좀 도와주세요, 네?”박민정은 그 말에 외국에 있을 때 유남준이 자신을 도와 용 사장 일을 처리해 준 것을 기억해 냈다.그녀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내가 가도 뭘 할 수 있어요. 한 명은 눈이 안 보이고 한 명은 귀가 잘 안 들리는데 내가 도와줄 수 있겠어요?”박민정은 솔직히 유씨 가문 같은 힘 있는 집안이라면 전혀 그녀의 체면 따위 봐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건...”서다희는 망설였다.이를 본 박민정은 그가 포기한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갈 준비를 했지만 서다희가 또 한 번 그녀를 붙잡았다“사모님이 계시면 제가 마음이 놓여요.”서다희는 박민정이 아주 씩씩한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녀가 곁에 있으면 적어도 저택 쪽에서는 큰 소동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윤우가 끼어들었다.“엄마, 아저씨가 불쌍하게 버려졌는데 그냥 도와주세요.”박예찬은 왜 갑자기 동생이 쓰레기 아빠를 돕는지 조금 의아해했다.“알았어요. 그럼 두 아이부터 돌려보낼게요.”박민정은 윤우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동의했고 서다희는 곧바로 계산을 마친 뒤 아이들을 차에 태워주었다.두 아이를 돌려보내고 나서야 박민정은 정민기에게 자신을 저택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집에 있던 박예찬은 참지 못하고 윤우에게 물었다.“왜 엄마보고 쓰레기 아빠를 도와주라고 했어? 엄마가 괴롭힘당하면 어떡해?”“형, 나도 저택에 가보고 싶은데 좋은 생각 있어?”박윤우가 이렇게 말하자 박예찬은 곧바로 그의 생각을 알고 즉시 거절했다.“안 돼, 너무 위험해.”“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를 잡을 수 없어. 유씨 가문을 알지
유씨 가문 저택.전화를 받으러 나간 고영란은 기분이 좋았다.평소 유난히 자신과 거리를 두던 박예찬이 먼저 그녀에게 다가오니 무척 의외였다.하지만 이때까지도 유남준은 아직 오지 않았고, 주변에서는 작은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유남준 안 오는 건 아니겠지?”“오기로 하지 않았어, 왜 안 와? 유남준은 한 번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인데.”“너희들 소문 못 들었어? 유남준 눈이 멀어서 아마 지금 오기 창피할 거야.”“어? 그럴 리가 없잖아?”모두들 유남준이 진짜로 앞이 안 보이는지 궁금해했고, 사실이라면 좋은 쇼가 될 것 같았다.드디어 유남준이 집사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왔다.모두가 현관문을 바라보자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는 날카롭던 눈이 더 이상 빛나지 않았고 집사의 안내를 받아 거실로 들어오고 있었다.유남준은 도착해서도 사람을 부르지 않았고 고영란이 다가와 유명훈에게 말했다.“아버님, 남준이가 교통사고가 나서 의사가 좀 더 회복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왔으니까 이제 좀 쉬게 놔두는 게 어때요?”유남준이 정말 앞을 못 보는 것을 확인한 유명훈은 더 이상 그를 힘들게 하지 않고 내보내려고 할 때 유성혁이 옆에서 말을 꺼냈다.“큰어머니, 남준이가 오랜만에 나와서 다들 모였는데 서둘러 돌아갈 게 뭐가 있어요.”“그래요, 우리도 남준이랑 얘기 좀 나누고 싶어요.”다른 사람들도 거들자 고영란은 다소 어두운 얼굴로 유명훈을 바라보았고 유명훈은 목발을 짚고 일어났다.“저녁 먹고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야 하니 쉬더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고영란, 넌 내 서재로 와.”“네.”고영란은 곧 질책받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그녀가 떠나자마자 망설일 게 없어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유남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유남우는 차분히 차를 마시며 모든 상황을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유성혁이 유남준에게 다가갔다.“남준아, 너한테도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네.”유남준은 그 말에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누구?”유성혁은 멈칫
유성혁은 혼자 앉아 있는 유남준을 보고도 여전히 못마땅했다.그는 사고가 나기 전 유남준이 얼마나 오만하게 굴었는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유남우를 돌아본 유성혁은 그가 유남준을 위해 나서지 않자 망설임 없이 와인 한 잔을 손에 들고 걸어왔다.“유남준, 내 손에 든 와인을 마시고 나한테 사과하면 지난 일은 다 잊어줄게.”유성혁은 손에 든 와인을 흔들며 침을 뱉어 앞으로 건넸고 유남준은 그의 말에 고개도 들지 않았다.유성혁은 그가 자신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는 것을 보자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몸을 숙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직도 네가 과거의 유남준이라고 생각해? 지금 난 널 개미처럼 짓밟을 수 있어. 눈치껏 행동하는 게 좋을 거야.”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이를 보면서도 감히 나서서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했다.유남준이 천천히 주먹을 쥐며 유성혁에게 한 방 먹이려는 순간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남준 씨, 왜 날 기다리지 않고 혼자 왔어요?”박민정이다. 박민정은 도착하자마자 구석에 앉아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유남준을 보았다.과거 유남준이 자신을 도와줬던 걸 떠올리며 기억상실증에 시각장애인인 데다 두 아이의 아빠인 그가 괴롭힘을 당하는 걸 지켜볼 수 없었다.박민정의 목소리를 들은 유남준은 곧바로 주먹을 풀고 일어나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박민정을 향해 걸어갔다.“민정아, 안 올 줄 알았어.”박민정이 갑자기 다가오자 주위의 모든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고, 한쪽에서 유유히 차를 마시던 유남준도 그들을 바라보았다.그는 목울대가 일렁거리며 손에 든 차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 같았다.박민정은 유남준의 곁으로 다가와 자연스럽게 그의 팔짱을 낀 뒤 조금은 이상해 보이는 유성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아주버님, 남준 씨가 아직 몸이 회복이 안 돼서 술을 못 마셔요. 이 술은 아주버님이 직접 마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박민정은 유성혁이 술에 침을 뱉는 것을 봤다.유씨 가문에서 정말 별꼴을 다 본다. 앞 못 보는 장님을 괴롭히는 게 소위 말
박민정은 유남준이 줄곧 참아왔다는 사실을 몰랐다.눈앞이 보이지 않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죽기를 바랐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아직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고마워요.”박민정은 자리에 앉아 그에게도 과자 한 조각을 건넸다.“당신도 먹어요.”두 사람이 함께 디저트를 먹는 장면이 유남우의 눈에 들어왔고 그의 따뜻한 눈빛이 갑자기 조금 차가워졌다.비서 홍주영이 왔을 때 그도 한눈에 박민정과 유남준이 구석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두 사람은 모욕을 당하고도 전혀 개의치 않고 둘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홍주영은 박민정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녀가 무척 아름답고 행동 하나하나에 부드러움과 당당함이 엿보이는 걸 발견했다. 특히 맑은 샘물이 가득 찬 듯한 눈빛을 보면 유남준이 이혼을 원하지 않는 게 이해가 되었다.한편 유명훈의 서재에서는 고영란이 질책을 받았다.고영란이 모두를 속이고 유남우에게 유남준을 사칭하라고 시킨 것 때문이었다.고영란은 욕을 먹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집사가 와서 시간이 되었다고 전해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지팡이를 짚고 나간 유명훈은 박민정도 온 것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밥부터 먹고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자고 했다.그때 고영란은 도우미로부터 예찬이 왔다는 말을 들었다.“이제 추우니까 애 좀 쉬게 하고 맛있는 거 준비해 줘.”도우미는 고개를 끄덕였고 박윤우는 도우미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돌아와 호화로운 집안을 둘러보았다.“할머니는 어디 계세요?”“사모님께서는 오늘 너무 바쁘시니 일단 방에서 푹 쉬고 일 끝나면 보러 오시겠다고 하셨어.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고맙습니다.”박윤우가 얌전한 얼굴로 대답했다.“참 예의 바르네.”도우미는 귀엽고 어른스러운 박윤우를 보고 순식간에 마음이 녹아버렸다.박민정은 막내아들이 몰래 택시를 타고 이곳까지 온 사실을 모른 채 유남준과 함께 식사한 뒤 조상님께 참배를 하고 돌아갈 예정이었다.그런데 저녁 식사가 끝나고 유명훈은 갑자기 두 사람을 불러세웠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