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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Author: 윤지
과거에는 크고 작은 명절이 되면 박민정은 유남준과 함께 유씨 가문 저택에 다녀와야 했다.

새해 첫날은 당연히 가야 했지만 이번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전 바빠서 못 가요. 남준 씨가 가고 싶다고 하면 데려가세요.”

박민정은 바로 전화를 끊었고 반대편에서 고영란은 끊어진 전화를 보며 분노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것. 남준이가 기억상실증만 아니었어도 어딜 감히 네까짓 게!”

옆에 있던 비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도련님 모시러 갈까요?”

“가. 박민정은 오기 싫어도 남준이는 꼭 와야 해, 유씨 집안 장남이니까.”

고영란도 사실 유남준이 오늘 행사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앞을 못 보는 데다 기억상실증까지 걸렸으니 체면을 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명훈은 콕 집어 유남준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다.

유명훈은 오랫동안 업무에 개입하지 않았어도 회사에 심복이 꽤 많았기 때문에 유남우와 그녀가 감히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도련님이 오기 싫다고 하면요?”

비서가 다시 물었다.

“그럼 묶어서라도 데려와. 앞을 못 보는 사람 하나 감당 못 해?”

고영란은 화를 내며 말했고 비서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

신림현.

박민정은 유남준에게 고영란이 전화해 오라고 한 것에 대해 말했다.

“엄마, 아저씨 고아라고 하지 않았어요?”

박윤우가 바로 묻자 박민정은 흠칫하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맞아, 아저씨는 버려졌어.”

“아, 이제야 아저씨 엄마가 집에 오길 원하시는 거예요?”

“그런 셈이지.”

박민정은 유남준을 힐끗 쳐다봤고 이때 박윤우가 유남준에게 말했다.

“아저씨, 그럼 엄마한테 돌아가지 그래요? 우리랑 엄마 뺏지 말고요.”

아이는 가장 순수한 말로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입 밖으로 꺼냈다.

유남준은 화를 내지 않고 박윤우에게 말했다.

“어린애들만 엄마를 찾는 거지.”

박윤우는 곧바로 작은 입을 삐죽거리며 불쾌함에 반박하려 했지만 박민정은 두 사람이 또다시 말싸움을 벌이려는 것을 보고 서둘러 말렸다.

“됐어, 윤우는 형이랑 옷 갈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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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남준이 나와보니 텐트와 얼마 멀지 않은 곳에 큰 바위가 굴러떨어져 있었고 산사태도 발생한 흔적이 있었다.“위험할뻔했네.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사전에 점검하지 않았나?”분명 일부러 이런 짓을 벌인 게 아니라면 절대로 발생할 수 없는 일이다.박민정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살짝 겁을 먹었다.“세상에. 만약 어제 비가 조금만 더 세게 내렸다면 우리 텐트도 분명 물에 잠기거나 바위에 깔렸을 것 같네요.”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는데 유남준은 겁에 질린 그녀를 보고 재빨리 다가와 안심시켰다.“우린 하느님이 도와줄 테니까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박민정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네.”학교 선생님들도 눈앞의 상황에 매우 놀랐다.지금은 비가 그쳤고 아무런 사고도 없었기에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이곳은 분명 최현아가 사전에 사람을 보내서 확인 후에 결정했던 곳인데 어떻게 이렇게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만약 이 거대한 바위들과 흙들이 비에 씻겨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면 적어도 몇 집은 이미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선생님들도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르는 게 무리인 것 같아 모두가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도록 오늘 저녁에는 민박집을 예약했다.“너무 좋아요. 이곳에서 자는 것보다 민박집에서 자는 게 훨씬 안전할 것 같네요.”학부모들도 선생님의 아이디어에 저마다 찬성하면서 하나둘씩 짐을 싸기 시작했다.이 시각, 최현아는 진작에 산에서 내려와 혹시나 산사태로 인한 인명피해 뉴스가 뜬 게 없는지 계속 핸드폰으로 확인했다.그러나 아침 9시가 넘었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다.이때, 유지훈도 진작에 잠에서 깼다가 문득 최현아에게 물었다.“엄마, 저희는 왜 계속 산에 있지 않고 내려왔나요? 저는 배도 안 아픈데.”그의 말에 최현아는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아무 말도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선생님께서 오늘에는 더 높은 산에 올라갈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저도 산에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24화

    저녁이 되더니 약간의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점차 빗방울이 굵어졌다.원래 유남준은 오늘 이불을 덮고 자려고 했으나 비가 오니 어쩔 수 없이 다시 침낭에서 자야 했다.박민정은 밖에서 요란하게 들리는 천둥소리가 무서워 이불 안으로 꼭꼭 숨었다.옆에 자기 아들이 누워있어 티는 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박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예찬이 손을 뻗어 그녀의 침낭을 가볍게 두드리며 물었다.“엄마, 나랑 같이 자자.”“응? 왜?”박민정은 갑작스러운 그의 제안에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아니면 나랑 같이 잘까? 나 천둥소리가 너무 무서운데.”이때, 유남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박예찬은 원래 자신이 하려던 말을 그에게 뺏긴 게 너무 괘씸해서 그를 도끼눈으로 째려봤다.박민정은 그의 말을 듣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천둥소리를 무서워한다고요?”“응. 좀 무섭네?”유남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는데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박민정은 사람마다 약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유남준같이 돈이나 권력이 있는 사람도 분명 약점이나 두려워하는 게 있을 텐데 저 사람한테는 그게 천둥소리인가 싶었다.“괜찮아요. 잠들면 금방 안 들릴 테니까.”박민정은 아까까지 너무 무서웠지만 같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좀 괜찮아진 것 같았다.그러나 유남준은 약간 진정된 그녀를 보고는 자신이 세워둔 작전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 같아 의기소침해졌다가 용기를 내서 다시 물었다.“이쪽으로 좀 오지 않을래?”그의 말에 박민정은 침낭 안에서 몸을 이리저리 구르다가 마침 박예찬의 침낭에 딱 붙게 되었다. 박예찬이 흐뭇해하던 찰나에 또다시 유남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예찬이는 천둥소리가 안 무섭지?”박예찬은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빠르게 답했다.“당연하죠. 남자로서 어떻게 천둥소리 따위를 무서워하겠어요? 제가 보호해 줄 테니까 안심하세요.”“그럼 네가 침낭 끝에 자면서 우리를 보호해 줄래?”유남준의 말에 박예찬은 그제야 그의 꾀에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박민정의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23화

    박민정은 뜬금없이 자기 앞으로 내미는 음식을 보고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뭐예요?”“형수가 담아줬는데 안에 고기도 있더라고. 아까 잘 못 먹던데 이거라도 먹어.”최현아는 마침 그의 뒤를 따라왔다가 마지막 한마디를 똑똑히 듣게 되었는데 순간 뜨겁게 불타올랐던 마음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차갑게 식었다.유남준이 자기한테 마음이 있어서 호의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자기 마음을 이용해서 박민정에게 애정 공세 할 줄은 몰랐다.“남준 씨는 참 다정한 남편이네요. 제가 가져다준 음식을 그대로 민정 씨에게 줄 만큼.”말속에 가시가 돋혀 있었다.솔직히 저녁 식사가 부실했던 건 사실이었고 양도 적은 데다가 온통 채소뿐이라 박민정은 진작에 허기져 있었다.그가 건네준 음식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다시 최현아를 보고는 막 거절하려는데 유남준이 다시 말을 이었다.“빨리 먹어. 너무 늦게 먹으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박민정은 그의 닦달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최현아에게도 인사를 건넸다.“형님, 그럼 감사히 먹을게요.”최현아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겨우 답했다.“많이 먹어요.”그리고 한껏 어두워진 얼굴로 뒤돌아서더니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둬.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잖아!”최현아는 원래 유남준이 자기 마음을 받아주면 이따가 이 남자만 살려주려고 마음먹었다.그러나 이제 보니 그럴 필요 없이 그냥 세 가족을 모두 죽여버리면 될 것 같았다.그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박민정은 도시락에 담긴 다양한 음식을 보고는 순식간에 식욕이 올라왔다.“와, 너무 맛있겠다.”그리고 다시 반찬들을 가지런히 모으더니 두 사람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예찬아, 남우 씨, 너무 많아서 저 혼자는 다 못 먹을 것 같은데 우리 같이 먹어요.”뜬금없이 자신을 남우라고 부르는 모습에 살짝 언짢아졌지만 그래도 티를 낼 수 없었다.“그래.”그렇게 세 사람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맛있는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22화

    오늘 저녁은 학교에서 준비해 줬다.사실 물고기를 잡아서 점심 식사를 해결해야 했는데 다들 많이 잡지 못한 바람에 식사가 조금 부실했다.하여 저녁 식사 시간이 돌아오니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 탓에 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게 되었다.유지훈은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박예찬을 신경 썼다.그리고 내심 박예찬 주변에 친구가 많은 게 부러웠지만 이제 와서 그에게 붙는 건 자존심이 상했다.한편, 최현아는 오늘 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너무 긴장되어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박민정 쪽을 바라보았는데 세 가족이 화기애애해 보이는 모습에 또다시 질투심이 마구 피어올랐다.저녁 식사가 다 끝난 뒤 각자 돌아가서 쉬고 있는데 최현아가 어느새 유남준의 곁에 다가오더니 그에게 말을 걸었다.“남준 씨, 음식은 입에 잘 맞았나요? 제가 음식을 따로 싸 왔는데 괜찮으시면 좀 드실래요?”그러나 유남준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괜찮습니다.”어제랑 다르게 차가운 그의 태도 때문에 최현아는 순간 멍해졌다.분명 어제 자신이 땀을 닦아줘도 가만히 있던 사람인데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나 싶었다.“그래도 제가 남준 씨 형수인데 너무 체면 차릴 필요 없어요. 제가 금방 가지고 올게요.”최현아는 유남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재빨리 음식 가지러 달려갔다.그저 유남준이 혹시나 주변 사람들이 보고 오해할까 봐 철벽친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박예찬과 무료함을 달래려 잡초를 뽑고 있다가 무심결에 최현아와 유남준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박예찬에게 물었다.“저 두 사람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박예찬은 박민정이 풀 뽑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열심히 같이 뽑다가 문득 그녀의 뜬금없는 물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유남준이 또 다른 여자랑 시시덕거리고 있었다.“엄마, 내가 가서 물어보고 올게.”“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하나는 유남준의 좋은 시간을 방해할 것 같아서였고 다른 하나는 괜히 박예찬이 가서 물어보면 마치 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21화

    오후가 되니 날씨가 약간 흐려지기 시작했다.박민정네는 산언덕에 앉아 바람도 쐬고 구운 생선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박예찬은 특별히 물고기 한 마리를 남기더니 조동민에게 주며 말했다.“아마 오래 살지는 못할 거야.”그의 말에 조동민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예찬아, 고마워. 넌 참 착한 아이야.”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자기 아들이 너무 따뜻한 사람이라 앞으로도 친구 사귀는 건 문제없겠다고 생각되었다.“고작 고기 한 마리 가지고 뭘.”박예찬은 아직 칭찬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 듯 쑥스러워했다.조동민은 고맙기는 한데 오늘 발생했던 일 때문에 계속 마음이 불안했다.“민정 이모, 혹시 오늘 일은 진짜로 제가 잘못한 걸까요?”어린아이의 세계는 그저 흑과 백으로 단조롭게 나뉘어져 있을 것이다.하여 당연히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자기더러 사과하라던 아버지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다.박민정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그에게 말했다.“이모는 동민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넌 단지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고 있었을 뿐, 유지훈이 먼저 잘못한 거지.”그녀의 말에 조동민은 더욱 억울한 얼굴로 되물었다.“그런데 저희 아빠는 왜 저더러 사과하라고 했을까요?”“그건 어른들의 세계에는 옳고 그름만이 있는 게 아니거든. 이건 네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다 이해가 될 거야.”조동민은 그제야 뭔가 깨달은 듯 그녀에게 답했다.“저도 알 건 알아요. 저희 아빠는 지훈이네 엄마가 무서웠던 거예요. 저희 부모님은 항상 저에게 유지훈에게 잘 보여야 우리 집안 사업도 잘되고 나중에 돈도 많이 벌 거라고 습관처럼 말하셨어요.”그의 말에 박민정은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이렇게 어린아이가 그런 말 때문에 얼마나 부담감을 느꼈을까?’그녀는 어떻게 조동민을 위로했으면 좋을지 몰라 그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그러나 조동민은 고개를 들고 박민정을 빤히 바라보며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이모, 저 오늘부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20화

    한가영은 한껏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박민정을 힐끔 바라보았다.그리고 박민정이 한마디 하자마자 장연수도 빠르게 거들었다.“최 회장님, 다 아이들 일이고 누구도 피해 본 사람이 없는데 이쯤 하시죠.”몇몇 학부모들도 최현아를 말리기 시작했다.“아이가 이 정도로 우는 걸 보면 분명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을 겁니다.”“맞아요.”최현아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어두운 얼굴로 가만히 서서 생각해 보았는데 보는 눈이 이리도 많은데 계속 아이를 혼내기도 뭐한 것 같았다.“그럼 오늘 일은 여기서 끝내겠는데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이 없어야 할 겁니다.”조민혁은 심장이 다 타들어 갔다가 겨우 입을 열어 인사를 건넸다.“역시나 최 회장님은 아량이 깊으십니다.”한가영은 일이 이대로 마무리되자 단번에 조민혁을 옆으로 밀쳤다.“어떻게 여동생보다도 간이 작아요? 이런 사람이랑 결혼한 제가 멍청이네요.”부모님이 자기 앞에서 다투기 시작하자 조동민은 더욱 마음이 불편했다.자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박민정 덕분에 사건이 종료된 뒤 조동민은 박예찬과 놀기 시작했다. 두 아이는 박민정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가 박민정은 조하랑에게 전화를 걸어 조동민과 잠깐 통화하게 했다.조동민은 화면 속의 조하랑을 보자마자 갑자기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터졌고 조하랑은 겨우 그를 달래서 울음이 그쳤다.“민정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아직 아이라 표현 능력이 제한되어 있어서 조하랑은 자기 조카가 뭔가 억울함을 당했다고는 느꼈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하여 박민정은 오늘 있었던 일을 그대로 조하랑에게 알려줬고 그녀는 듣자마자 불같은 화를 냈다.“최현아라는 사람 진짜 너무하네! 이렇게 어린아이더러 동급생 아이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시켰다고? 제정신으로 한 말인가 싶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그 여자 가면을 벗겨버리는 건데!”조하랑은 씩씩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우리 오빠는 진짜 쓸모없는 인간이라니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19화

    “지훈아, 우리 동민이가 먼저 때린 건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무릎을 꿇리는 건 아니라고 봐.”조동민의 아버지 조민혁이 말했다.그리고 어머니 한가영도 다시 최현아에게 애원했다.“최 회장님, 작은 오해로 아이에게 무릎 꿇고 사과시키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최현아는 고작 조 씨 가문 따위가 자신에게 반항하는 모습이 너무 기분이 언짢았다.또한 두 사람은 박민정의 친구이자 조하랑의 친척이라는 사실에 더욱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만약 사과할 수 없다면 법원에 고소해야겠네요.”말이 고소지, 분명 다른 방법으로 조씨 가문을 괴롭힐 게 뻔했다.그래도 한가영은 자기 아들이 이런 수모를 겪게 내버려둘 수 없어 재빨리 조동민을 품에 안았다.이 시각, 조동민은 아주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분명 잘못한 사람은 유지훈인데 왜 자신이 무릎을 당연하게 꿇어야 하는지, 왜 어른끼리 저런 대화를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엄마, 저는 잘못하게 없어요.”순간 목이 메어왔다.한가영도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그저 조민혁만 바라보았다.그러나 조민혁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씨 가문의 세력으로는 최씨 가문이나 유씨 가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다.“동민아, 미안하다!”괜히 아이 하나 때문에 큰 집안을 말아먹을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기 아들을 무릎 꿇리게 해야 했다.한가영은 순간 마음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자기 남편이 아무리 무능력하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 이렇게까지 무례하게 구는 데도 가만히 있을 줄은 몰랐다.그러다가 문득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박민정에게로 향했다.“민정 씨, 제발 저희를 좀 도와줘요. 민정 씨는 하랑 씨 친구잖아요. 하랑이는 동민이 고모예요.”조동민은 어렸을 적부터 조하랑을 이모라고 불렀는데 그러면 여태껏 잘못 부른 것이다.느닷없는 부탁에 박민정은 순간 눈앞의 아이가 조하랑의 조카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었다.조동민도 어느새 한껏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때 최현아의 떨떠름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618화

    온갖 잡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던 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을 확인해 보니 시아버지인 유석진이었고 재빨리 구석 쪽으로 가서 통화버튼을 눌렀다.“오늘 저녁에 호우주의보가 떴던데 남준이랑 민정이 모두 거기에 있어?”“네.”“그러면 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주 자연스럽겠지?”유석진이 묻는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최현아는 다급히 그에게 설명했다.“여기에는 다른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도 계세요.”“난 그저 유남준이랑 박민정만 사라진다면 다른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아무 관심이 없어.”유석진의 말대로 그는 다른 사람이 죽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최현아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쥐더니 눈길은 자기도 모르게 유남준에게로 향했다.“알겠어요. 그럼 준비되면 알려주세요.”“그래. 너랑 지훈이는 꼭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네.”말을 마치자마자 최현아는 전화를 끊었다.그러다가 머릿속에서는 진짜로 유남준과 박민정이 사고 나는 걸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지 온갖 잡생각으로 뒤엉켜있었다.박민정은 그다지 걱정되지 않지만 몰래 마음을 두고 있는 유남준이 이대로 죽는 건 아쉬웠다.두통이 몰려오던 이때,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마치 싸우고 있는 듯했다.이때 여교사 한 명이 최현아에게 다급히 달려왔다.“지훈이 어머님, 빨리 가보셔야겠어요. 지훈이가 다른 아이랑 지금 싸움 났거든요.”이건 선생님들이 관여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워낙 유지훈의 부모님이 극성이라는 소문이 있어 감히 먼저 말리지 못했다.또한 유씨 가문의 세력만 봐도 선생님들 쪽에서 밉보이는 행동을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처지였다.“누가 감히 내 아들을 때려?”최현아가 빠르게 싸움 현장에 달려와 보니 유지훈과 조하랑의 조카인 조동민이 한창 주먹다짐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지훈은 조동민보다 덩치가 한참 작았기에 전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내 물고기 당장 물어내! 우리 아빠가 직접 잡은 물고기인데 물어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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