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영은 겨우 달래주더니 다시 오준수에게 물었다.“어떻게 됐어? 서연이 는 아직도 용서해 줄 마음이 없대?”오준수는 오늘 일을 사실대로 말할 용기가 없어 그저 한숨을 쉬며 답했다.“나한테 돌아올 마음도 없고 이대로 계속 밀고 나갈 건가 봐요.”“엄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금방 갈게요.”“그래.”그러나 전화를 끊자마자 또다시 빚 독촉 전화에, 회사 직원이 갑자기 난동을 부린다는 보고에, 갑자기 단체로 사직서를 내겠다는 등등 별의별 일들로 전화가 몰려오기 시작했다.오준수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여태껏 이런 위기는 맞아본 적도, 처리해 본 적도 없어 순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손만 바들바들 떨고 있다가 갑자기 큰소리를 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이천애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설마 이대로 오씨 가문이 망하는 건가?’‘그러면 그동안 열심히 일했던 사업들도 다 물거품이 된다는 소리잖아?’이천애는 오준수가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이란걸 진작에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순간 너무 후회스러웠다.그렇게 차는 어느덧 오씨 가문 별장에 도착했다.그리고 멀리서부터 오준수는 자기 어머니가 사람들을 가로막고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우리 물건에 손대지 말라고요!”그러나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계속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 때문에 오성훈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이건 다 제 물건이라고요! 당장 내려놔요!”오준수는 재빨리 차에서 내린 뒤 그들한테 달려갔다.“무슨 짓이에요? 왜 갑자기 통보도 없이 압류에 들어간다는 거죠?”“오준수 씨 맞습니까?”맨 앞에 서 있던 사람이 그에게 걸어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은행에 갚아야 할 돈이 지금 두 달이나 연체되어 은행에서 강제 집행 신청을 했습니다.”“하여 이 집도 경매로 넘어갈 겁니다.”오준수는 그제야 얼마 전 회사 계좌가 적자가 나는 바람에 급하게 은행에서 큰돈을 빌렸던 일이 떠올랐다.하여 이번 지엔 그룹과의 계약이 잘 이루어지면 그 빚은 금방 갚을 수 있을
이튿날, 오준수는 아침 일찍 차현영을 깨워 그 장신구들을 달라고 했다.그러나 두 사람이 보석함을 열어보니 안은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다, 다 어디 갔지?”차현영은 순간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한껏 기대했던 오준수도 실망감에 그녀에게 되물었다.“엄마, 혹시 다른 곳에 보관해 두고 잊어버리신 거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차현영은 다급하게 다른 곳도 뒤져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고 온 집안을 다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문득 차현영이 고개를 돌리고 오준수에게 물었다.“천애는? 아직도 자고 있어?”그러자 오준수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몰라요. 저더러 편하게 자라고 어제는 성훈이랑 둘이 잤거든요.”순간 차현영은 뭐가 생각났는지 급히 이천애의 방으로 달려갔다.그러나 방안에는 오성훈만 곤히 자고 있을 뿐, 이천애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준수야, 천애가 내 보석을 갖고 도망갔어!”오준수도 달려와서 확인해 보더니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그리고 곧바로 이천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핸드폰은 꺼져있었다.“어떻게 이런 식으로 내 뒤통수를 쳐?”오준수는 여태껏 이천애가 자기 직업이나 모든 명예마저 버릴 만큼 자신만 바라볼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의 곁에 붙어 있었던 이유가 오직 돈 때문이었다.그리고 지금은 자기 친아들도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차현영은 이 상황을 보고 그를 나무라지 않을 수 없었다.“네가 데려온 여자가 어떤지 똑똑히 봐. 그 애는 우리 집 돈만 보고 들어온 여자라고 내가 말했는데도 넌 믿지 않았잖아. 이제 어떡할래? 그건 내가 평생 모아온 재산이란 말이야!”오준수는 대답 대신 빠르게 경찰서에 도난신고부터 했다.그러나 이천애는 이미 멀리 도망간 상태라 한동안 찾아내기는 힘들어 보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 쪽 사람들은 또다시 차현영 집으로 찾아와 빚 독촉을 했고 불과 며칠 만에 오준수는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한편.손연서는 박민정과 정수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그러나 정수미는 길연서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런데 행복하지 않잖아. 엄마라는 사람은 지금 보살펴주지도 않지, 친아버지는 누구인지도 모르지.”“그렇네요...”길연서도 어느새 정수미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그 어린아이는 지금 병실 침대에 혼자 외롭게 누워있는데 윤소현은 아이를 이용하고 싶을 때만 입 밖에 꺼냈다.정수미는 얼마 전, 윤소현이 동정표를 얻어 석방되기 위해 아이가 아픈 사실을 공개했다고 들었다.이때, 손연서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더니 호기심에 물었다.“누구네 집 아이예요?”박민정이 유다혜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자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그러면 다혜는 유씨 가문의 아이가 아닌 건가요?”윤소현이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유씨 가문에서는 아이를 계속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러자 박민정이 고개를 저었다.“유남우 씨의 친딸이 아니랬어요.”박민정조차 아이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고 애초에 이런 일을 버린 사람이 유남우라는 사실은 더욱 알지 못했다.“아이만 불쌍하네요.”손연서는 안타까워하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대뜸 정수미에게 물었다.“정 대표님, 혹시 제가 그 아이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그러자 정수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왜요?”손연서는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제가 올해 서른이 되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최근 들어 계속 딸아이 하나 입양하고 싶었습니다.”정수미는 그제야 그녀의 말뜻을 깨닫고는 재빨리 길연서에게 말했다.“길 비서, 지금 바로 다혜한테 데려다줘.”만약 손연서가 유다혜를 입양하게 되면 이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그러자 손연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가보겠습니다.”마침 유다혜도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기에 만나보는 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그래요.”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마자 정수미가 박민정에게 말했다.“네 친구 사람도 괜찮은 것 같은데 만약 다혜도 따라가겠다고 하면 애한테는 너무 잘된 일이야.”“그러게요.”박민정도 손
한편, 손연서는 유다혜 병실로 오게 되었다.다혜는 현재 상황이 호전되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그러나 그녀의 병실에는 오직 간호사뿐이었다.일찍 철이 든 유다혜는 아빠 엄마가 아무리 자신을 보러 오지 않아도 울거나 떼쓰지 않고 그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창밖에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길연서가 말했다.“다혜는 참 용감한 아이예요. 간호사가 와서 주사를 놔줘도 아프다고 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손연서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한 발짝 다가가 낮은 소리로 유다혜를 불러보았다.“다혜야.”손연서의 목소리에 유다혜의 몸이 살짝 반응하듯 꿈틀거리더니 천천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을 보자마자 손연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겨우 한 살밖에 안 된 아이의 눈빛이 너무 허망해 보였기 때문이다.순간 손연서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다시 몇 발짝 유다혜에게 다가갔다.“다혜야, 이모랑 같이 살지 않을래?”알아듣지 못하는 걸 당연히 알고 있지만 손연서는 계속 말을 이었다.“이모가 우리 다혜 엄마가 되어줄게, 어때?”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길연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살짝 놀랐다.아무리 유다혜의 병은 많이 호전되었다고 해도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고 또 친엄마라는 사람도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손연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의 눈빛이 반짝거리더니 알아들은 듯 아닌 듯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이때, 길연서가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다혜야, 이 이모 어때? 이모랑 이제부터 같이 살까?” 사실 다혜 보러 올 때마다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기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여주길 간절히 바랐다.아주 가끔 유남우도 다혜 보러 왔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아이를 안아준 적이 없었고 계속 무뚝뚝한 얼굴로 보고만 있다가 가곤 했었다.이때, 유다혜는 손연서와 눈을 맞추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에 손연서는 활짝 웃더니 아이를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다혜야, 이제부터 너는 내 딸이야.”사막처럼 고요하던
그러자 정수미는 다혜를 대신해서 너무 기뻐했다.“연서 씨가 입양해 주면 아이한테는 큰 복이지.”사실 유씨 가문에서도 다혜가 필요 없다고 하면 정수미가 데려오려 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오래 살지 못한다.하여 손연서가 먼저 입양하겠다고 나서니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저한테도 복인걸요.” 손연서는 마치 자기 친자식인 것처럼 애틋하게 다혜를 바라보았다.정수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요. 그런데 입양 절차는 어떤지, 어렵지는 않은지 걱정되네요.”윤소현이 만약 판결을 받게 되면 자동으로 양육권을 잃게 된다.하여 지금 상황에서는 유남우 쪽이 관건이다.어쨌든 지금 명목상으로는 유다혜의 친아빠이기도 했다.손연서가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오늘 제가 윤소현 씨한테 찾아가서 물어보려고요. 만약 허락받으면 바로 유남우 씨한테도 가볼게요.” “그래요.”정수미가 고개를 끄덕였다.박민정은 지금 퇴원이 가능했기에 손연서를 보며 말했다.“어려운 일이 있으면 바로 말씀 주세요.”왠지 다혜를 입양하는 게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알겠어요.”손연서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유다혜를 보고 말을 이었다.“다혜야, 며칠만 병원에서 지내고 있어. 다 나으면 내가 꼭 우리 집으로 데려갈게.”순간 유다혜는 자신을 버리고 가는 줄 알고 안아달라고 양팔을 벌렸다.그 모습을 본 손연서는 단번에 그녀를 안아 올려 살살 달래주기 시작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최대한 빨리 입양 신청을 끝내고 너 데리러 올게. 그리고 나랑 영원히 같이 살자.”다혜는 울지도 보채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그녀의 품에 안겨있었다.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해도 누가 진심으로 자신을 대하는지 구분할 줄 안다.손연서는 다혜를 다시 병실로 데려다준 뒤 그길로 윤소현을 찾아갔다.그러나 그녀를 보자마자 놀랐던 게 예전의 그 한 마리의 백조처럼 아름답게 춤을 추던 윤소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지금은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변해있었다.이미 익히 윤소현의 만행을 들었기에 손연서
최근에 윤소현은 정윤아한테서 받은 충격 때문에 매일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잘 자지 못했다.“할 말이 뭔데요?”“민정이한테만 말하고 싶으니까 먼저 데려오기나 해요.”윤소현은 혼자만 이런 곳에 갇힌 게 너무 억울했다.그러자 손연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답했다.“말은 해볼 텐데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네요.”말을 마친 뒤 곧바로 자리를 떴다.그리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박민정에게 알렸다.사실 박민정도 윤소현이 순순히 양육권을 포기할 사람이 아니란 걸 예상하고 있었다.“어쩔 수 없이 유남우 씨한테 가야겠네요.”박민정의 말에 손연서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답했다.“알겠어요. 그런데 윤소현 씨가 지금 민정 씨한테 꼭 할 말이 있다던데요?”“무슨 할 말요?”“저도 물어봤는데 무조건 민정 씨한테만 말하겠대요.”수화기 너머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자 손연서가 다시 말을 이었다.“좋은 일로 오라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혹시나 오게 되면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네, 걱정하지 말아요.”손연서와의 전화 통화를 마친 뒤 박민정은 방금 들은 내용을 정수미에게 알려줬다.그러자 정수미도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왜 갑자기 널 보자고 하는 거지? 고소를 취소해달라고?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그러자 박민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저도 잘 모르겠는데 지금 갇힌 마당에 설마 저한테 해코지하겠어요?”“하긴, 그러면 엄마랑 같이 가자.”그러나 박민정은 단칼에 거절했다.“지금 몸도 안 좋은데 의사 말대로 엄마는 그냥 어디도 가지 말고 병원에만 있어요.”“그래도...”여전히 걱정하는 정수미를 보고 박민정이 활짝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정 걱정되면 제가 남준 씨를 데리고 갈게요, 됐죠?”박민정의 말에 정수미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그래. 그러면 남준이더러 같이 가자고 해. 그래야 내가 마음이 놓여.”“네, 내일 같이 가볼게요.”그러다가 정수미는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다시 박민정의 손을 꼭 잡았다.“민정아, 넌 이제 그
청명,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병원 문 앞에서.박민정은 가녀린 몸에 수척한 손으로 병원 임신 테스트 보고서를 들고 있었는데 보고서에는 임신이 아니라는 문구가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결혼한 지 3년인데 아직도 임신 못 했어? 왜 이렇게 쓸모가 없니? 너 계속 임신 안 되면 유씨 일가에서 쫓겨나는 수가 있어. 그땐 우리 집안더러 어떡하라는 거야?”한수민은 하이힐을 신고 화려한 옷차림에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삿대질했다.박민정은 두 눈이 퀭하고 가슴에 꽉 막혔던 그 말들이 결국 한 마디로 함축되었다.“미안해요.”“엄마는 미안하단 말을 원하는 게 아니야. 얼른 남준의 아이를 낳으란 말이야. 알겠니?”박민정은 목이 확 메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결혼한 3년 동안 남편 유남준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곁을 안 주는데 어떻게 아이가 생길까?한수민은 약해빠진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왜 저를 닮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그녀는 차가운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남준이한테 여자 한 명 찾아줘. 걔도 그럼 너한테 고마워할 거 아니야.”박민정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떠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친엄마란 자가 딸에게 지금 남편을 위해 여자를 찾아주란 말이나 내뱉고 있다니.그녀의 마음에 순간 찬바람이 휘몰아쳤다....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박민정의 머릿속엔 온통 엄마의 마지막 말만 감돌았다.문득 귓가에 굉음이 한바탕 울렸다.그녀는 자신의 병이 더 심해진 걸 알고 있다.이때 문득 휴대폰 문자 벨 소리가 울렸다.유남준의 3년을 하루 같이 보낸 문자였다.“오늘 밤 집에 안 가.”결혼한 이 3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집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없다.아내인 그녀를 터치한 적은 더더욱 없고.3년 전 신혼 첫날밤에 유남준이 했던 말을 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너희 집안에서 감히 사기 결혼을 감행했으니 넌 인제 평생 고독하게 살 각오해.”평생 고독하게 살라고...3년 전 박씨 일가와
「남준 오빠, 그동안 잘 못 지냈죠? 그 여자 안 사랑하는 거 알아요. 우리 오늘 밤 만나요. 오빠 너무 보고 싶어요.」휴대폰 화면이 어두워질 때까지 박민정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택시 타고 유남준의 회사로 가는 길에서 박민정은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봤다. 비는 그칠 새도 없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유남준은 그녀가 회사로 찾아오는 걸 별로 반기지 않는다. 올 때마다 박민정은 뒷문에 있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니까.유남준의 전담 비서 서다희도 그녀를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오셨어요, 민정 씨.”유남준의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사모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그녀는 항상 떳떳하지 못한 존재니까.박민정이 휴대폰 주러 회사까지 찾아오자 유남준은 미간이 확 구겨졌다.그녀는 늘 이런 식이다. 점심 도시락, 서류, 옷, 우산까지 유남준이 놓친 걸 전부 회사로 보내온다.“말했잖아, 일부러 내 물건 주러 회사 안 와도 된다고.”박민정은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미안해요, 깜빡했어요.”언제 기억력이 이렇게 나빠졌지?아마도 이지원이 보낸 문자를 보고 덜컥 겁이 나서 그랬나 보다.유남준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떠나기 전 박민정은 고개 돌려 유남준을 바라보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남준 씨, 아직도 이지원 씨 좋아해요?”유남준은 요즘 들어 박민정이 참 이상했다.자꾸 뭘 까먹지 않나, 이상한 질문만 해대질 않나, 그의 아내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모습이었다.유남준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그렇게 심심하면 뭐라도 할 일 좀 찾아.”박민정은 결국 정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그녀도 전에 일자리를 구해봤지만 유씨 일가 어르신들이 그녀가 얼굴을 내비치면 가문의 체면만 깎는다고 단호하게 차단해 버렸다.유남준의 어머니 고영란은 그녀에게 거리낌 없이 쏘아붙였다.“너 정녕 온 세상에 알릴 생각이니? 우리 남준이가 청력에 문제 있는 장애인 아내를 찾았다고?”장애인 아내라...집에 돌아온 후 박민정은 최대한 바삐 돌아쳤다.먼지 하나 안
최근에 윤소현은 정윤아한테서 받은 충격 때문에 매일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잘 자지 못했다.“할 말이 뭔데요?”“민정이한테만 말하고 싶으니까 먼저 데려오기나 해요.”윤소현은 혼자만 이런 곳에 갇힌 게 너무 억울했다.그러자 손연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답했다.“말은 해볼 텐데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네요.”말을 마친 뒤 곧바로 자리를 떴다.그리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박민정에게 알렸다.사실 박민정도 윤소현이 순순히 양육권을 포기할 사람이 아니란 걸 예상하고 있었다.“어쩔 수 없이 유남우 씨한테 가야겠네요.”박민정의 말에 손연서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답했다.“알겠어요. 그런데 윤소현 씨가 지금 민정 씨한테 꼭 할 말이 있다던데요?”“무슨 할 말요?”“저도 물어봤는데 무조건 민정 씨한테만 말하겠대요.”수화기 너머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자 손연서가 다시 말을 이었다.“좋은 일로 오라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혹시나 오게 되면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네, 걱정하지 말아요.”손연서와의 전화 통화를 마친 뒤 박민정은 방금 들은 내용을 정수미에게 알려줬다.그러자 정수미도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왜 갑자기 널 보자고 하는 거지? 고소를 취소해달라고?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그러자 박민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저도 잘 모르겠는데 지금 갇힌 마당에 설마 저한테 해코지하겠어요?”“하긴, 그러면 엄마랑 같이 가자.”그러나 박민정은 단칼에 거절했다.“지금 몸도 안 좋은데 의사 말대로 엄마는 그냥 어디도 가지 말고 병원에만 있어요.”“그래도...”여전히 걱정하는 정수미를 보고 박민정이 활짝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정 걱정되면 제가 남준 씨를 데리고 갈게요, 됐죠?”박민정의 말에 정수미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그래. 그러면 남준이더러 같이 가자고 해. 그래야 내가 마음이 놓여.”“네, 내일 같이 가볼게요.”그러다가 정수미는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다시 박민정의 손을 꼭 잡았다.“민정아, 넌 이제 그
그러자 정수미는 다혜를 대신해서 너무 기뻐했다.“연서 씨가 입양해 주면 아이한테는 큰 복이지.”사실 유씨 가문에서도 다혜가 필요 없다고 하면 정수미가 데려오려 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오래 살지 못한다.하여 손연서가 먼저 입양하겠다고 나서니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저한테도 복인걸요.” 손연서는 마치 자기 친자식인 것처럼 애틋하게 다혜를 바라보았다.정수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요. 그런데 입양 절차는 어떤지, 어렵지는 않은지 걱정되네요.”윤소현이 만약 판결을 받게 되면 자동으로 양육권을 잃게 된다.하여 지금 상황에서는 유남우 쪽이 관건이다.어쨌든 지금 명목상으로는 유다혜의 친아빠이기도 했다.손연서가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오늘 제가 윤소현 씨한테 찾아가서 물어보려고요. 만약 허락받으면 바로 유남우 씨한테도 가볼게요.” “그래요.”정수미가 고개를 끄덕였다.박민정은 지금 퇴원이 가능했기에 손연서를 보며 말했다.“어려운 일이 있으면 바로 말씀 주세요.”왠지 다혜를 입양하는 게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알겠어요.”손연서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유다혜를 보고 말을 이었다.“다혜야, 며칠만 병원에서 지내고 있어. 다 나으면 내가 꼭 우리 집으로 데려갈게.”순간 유다혜는 자신을 버리고 가는 줄 알고 안아달라고 양팔을 벌렸다.그 모습을 본 손연서는 단번에 그녀를 안아 올려 살살 달래주기 시작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최대한 빨리 입양 신청을 끝내고 너 데리러 올게. 그리고 나랑 영원히 같이 살자.”다혜는 울지도 보채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그녀의 품에 안겨있었다.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해도 누가 진심으로 자신을 대하는지 구분할 줄 안다.손연서는 다혜를 다시 병실로 데려다준 뒤 그길로 윤소현을 찾아갔다.그러나 그녀를 보자마자 놀랐던 게 예전의 그 한 마리의 백조처럼 아름답게 춤을 추던 윤소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지금은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변해있었다.이미 익히 윤소현의 만행을 들었기에 손연서
한편, 손연서는 유다혜 병실로 오게 되었다.다혜는 현재 상황이 호전되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그러나 그녀의 병실에는 오직 간호사뿐이었다.일찍 철이 든 유다혜는 아빠 엄마가 아무리 자신을 보러 오지 않아도 울거나 떼쓰지 않고 그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창밖에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길연서가 말했다.“다혜는 참 용감한 아이예요. 간호사가 와서 주사를 놔줘도 아프다고 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손연서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한 발짝 다가가 낮은 소리로 유다혜를 불러보았다.“다혜야.”손연서의 목소리에 유다혜의 몸이 살짝 반응하듯 꿈틀거리더니 천천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는데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을 보자마자 손연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겨우 한 살밖에 안 된 아이의 눈빛이 너무 허망해 보였기 때문이다.순간 손연서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다시 몇 발짝 유다혜에게 다가갔다.“다혜야, 이모랑 같이 살지 않을래?”알아듣지 못하는 걸 당연히 알고 있지만 손연서는 계속 말을 이었다.“이모가 우리 다혜 엄마가 되어줄게, 어때?”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길연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살짝 놀랐다.아무리 유다혜의 병은 많이 호전되었다고 해도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고 또 친엄마라는 사람도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손연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의 눈빛이 반짝거리더니 알아들은 듯 아닌 듯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이때, 길연서가 다시 아이에게 물었다.“다혜야, 이 이모 어때? 이모랑 이제부터 같이 살까?” 사실 다혜 보러 올 때마다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기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여주길 간절히 바랐다.아주 가끔 유남우도 다혜 보러 왔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아이를 안아준 적이 없었고 계속 무뚝뚝한 얼굴로 보고만 있다가 가곤 했었다.이때, 유다혜는 손연서와 눈을 맞추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에 손연서는 활짝 웃더니 아이를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다혜야, 이제부터 너는 내 딸이야.”사막처럼 고요하던
그러나 정수미는 길연서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런데 행복하지 않잖아. 엄마라는 사람은 지금 보살펴주지도 않지, 친아버지는 누구인지도 모르지.”“그렇네요...”길연서도 어느새 정수미 따라 한숨을 내쉬었다.그 어린아이는 지금 병실 침대에 혼자 외롭게 누워있는데 윤소현은 아이를 이용하고 싶을 때만 입 밖에 꺼냈다.정수미는 얼마 전, 윤소현이 동정표를 얻어 석방되기 위해 아이가 아픈 사실을 공개했다고 들었다.이때, 손연서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더니 호기심에 물었다.“누구네 집 아이예요?”박민정이 유다혜의 일을 간단하게 말해주자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그러면 다혜는 유씨 가문의 아이가 아닌 건가요?”윤소현이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유씨 가문에서는 아이를 계속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러자 박민정이 고개를 저었다.“유남우 씨의 친딸이 아니랬어요.”박민정조차 아이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고 애초에 이런 일을 버린 사람이 유남우라는 사실은 더욱 알지 못했다.“아이만 불쌍하네요.”손연서는 안타까워하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대뜸 정수미에게 물었다.“정 대표님, 혹시 제가 그 아이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그러자 정수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왜요?”손연서는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제가 올해 서른이 되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최근 들어 계속 딸아이 하나 입양하고 싶었습니다.”정수미는 그제야 그녀의 말뜻을 깨닫고는 재빨리 길연서에게 말했다.“길 비서, 지금 바로 다혜한테 데려다줘.”만약 손연서가 유다혜를 입양하게 되면 이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그러자 손연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가보겠습니다.”마침 유다혜도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기에 만나보는 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그래요.”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를 뜨자마자 정수미가 박민정에게 말했다.“네 친구 사람도 괜찮은 것 같은데 만약 다혜도 따라가겠다고 하면 애한테는 너무 잘된 일이야.”“그러게요.”박민정도 손
이튿날, 오준수는 아침 일찍 차현영을 깨워 그 장신구들을 달라고 했다.그러나 두 사람이 보석함을 열어보니 안은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다, 다 어디 갔지?”차현영은 순간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한껏 기대했던 오준수도 실망감에 그녀에게 되물었다.“엄마, 혹시 다른 곳에 보관해 두고 잊어버리신 거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차현영은 다급하게 다른 곳도 뒤져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고 온 집안을 다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문득 차현영이 고개를 돌리고 오준수에게 물었다.“천애는? 아직도 자고 있어?”그러자 오준수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몰라요. 저더러 편하게 자라고 어제는 성훈이랑 둘이 잤거든요.”순간 차현영은 뭐가 생각났는지 급히 이천애의 방으로 달려갔다.그러나 방안에는 오성훈만 곤히 자고 있을 뿐, 이천애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준수야, 천애가 내 보석을 갖고 도망갔어!”오준수도 달려와서 확인해 보더니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그리고 곧바로 이천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핸드폰은 꺼져있었다.“어떻게 이런 식으로 내 뒤통수를 쳐?”오준수는 여태껏 이천애가 자기 직업이나 모든 명예마저 버릴 만큼 자신만 바라볼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의 곁에 붙어 있었던 이유가 오직 돈 때문이었다.그리고 지금은 자기 친아들도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차현영은 이 상황을 보고 그를 나무라지 않을 수 없었다.“네가 데려온 여자가 어떤지 똑똑히 봐. 그 애는 우리 집 돈만 보고 들어온 여자라고 내가 말했는데도 넌 믿지 않았잖아. 이제 어떡할래? 그건 내가 평생 모아온 재산이란 말이야!”오준수는 대답 대신 빠르게 경찰서에 도난신고부터 했다.그러나 이천애는 이미 멀리 도망간 상태라 한동안 찾아내기는 힘들어 보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 쪽 사람들은 또다시 차현영 집으로 찾아와 빚 독촉을 했고 불과 며칠 만에 오준수는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한편.손연서는 박민정과 정수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차현영은 겨우 달래주더니 다시 오준수에게 물었다.“어떻게 됐어? 서연이 는 아직도 용서해 줄 마음이 없대?”오준수는 오늘 일을 사실대로 말할 용기가 없어 그저 한숨을 쉬며 답했다.“나한테 돌아올 마음도 없고 이대로 계속 밀고 나갈 건가 봐요.”“엄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금방 갈게요.”“그래.”그러나 전화를 끊자마자 또다시 빚 독촉 전화에, 회사 직원이 갑자기 난동을 부린다는 보고에, 갑자기 단체로 사직서를 내겠다는 등등 별의별 일들로 전화가 몰려오기 시작했다.오준수는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여태껏 이런 위기는 맞아본 적도, 처리해 본 적도 없어 순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손만 바들바들 떨고 있다가 갑자기 큰소리를 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이천애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설마 이대로 오씨 가문이 망하는 건가?’‘그러면 그동안 열심히 일했던 사업들도 다 물거품이 된다는 소리잖아?’이천애는 오준수가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이란걸 진작에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순간 너무 후회스러웠다.그렇게 차는 어느덧 오씨 가문 별장에 도착했다.그리고 멀리서부터 오준수는 자기 어머니가 사람들을 가로막고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우리 물건에 손대지 말라고요!”그러나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계속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 때문에 오성훈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이건 다 제 물건이라고요! 당장 내려놔요!”오준수는 재빨리 차에서 내린 뒤 그들한테 달려갔다.“무슨 짓이에요? 왜 갑자기 통보도 없이 압류에 들어간다는 거죠?”“오준수 씨 맞습니까?”맨 앞에 서 있던 사람이 그에게 걸어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은행에 갚아야 할 돈이 지금 두 달이나 연체되어 은행에서 강제 집행 신청을 했습니다.”“하여 이 집도 경매로 넘어갈 겁니다.”오준수는 그제야 얼마 전 회사 계좌가 적자가 나는 바람에 급하게 은행에서 큰돈을 빌렸던 일이 떠올랐다.하여 이번 지엔 그룹과의 계약이 잘 이루어지면 그 빚은 금방 갚을 수 있을
그러자 오준수가 빠르게 해명했다.“연서야, 이런 헛소리는 그냥 무시해. 나 이번에 진짜 많이 반성했고 내가 진심으로 사랑한 여자는 너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어.”“퉤! 어제까지만 해도 나한테 연서 씨 험담을 했었으면서.”이천애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은 또다시 욕설을 주고받으며 싸우기 시작했다.손연서는 그저 옆에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가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박민정에게 보내줬다.“민정 씨, 제가 재밌는 거 보여줄게요.”박민정은 영상 속 두 사람이 서로 욕설을 퍼부으며 싸우는 모습이 너무 웃겨 정수미에게도 보여줬다.그러자 정수미도 깔깔거리며 웃었다.“쌤통이다.”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손연서는 이제 좀 지루해진 것 같아 두 사람에게 말했다.“준수 씨, 그만해. 그리고 내 앞에서 이렇게 서로 헐뜯을 필요 없어. 솔직하게 말하면 난 내가 결정한 일은 계속 밀고 나갈 생각이고 재혼도 안 할거야.”오준수의 얼굴은 이미 이천애의 손톱에 긁힌 자국으로 가득했고 이천애의 얼굴과 머리도 엉망진창이었다.두 사람은 손연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제야 손연서에게 놀아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때 이천애가 한껏 코웃음을 치며 오준수에게 말했다.“오빠, 들었어? 연서 씨는 그저 오빠를 갖고 놀았을 뿐이지 재혼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는데?”오준수는 순간 끓어오르는 화를 더는 참지 못하고 단번에 손연서 쪽으로 달려갔다.“손연서, 내가 오냐오냐해주니까 만만해 보여?”애석하게도 손연서는 미리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알고 경호원을 문밖에 배치해 뒀는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은 빠르게 달려와 오준수와 이천애를 단번에 제압했다.“뭐 하는 짓이야, 이거 안 놔?”허구한 날 매일 술만 마셨던 사람이라 경호원의 힘을 감당해 내기는 여간 쉽지 않았다.그리고 이천애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손쉽게 끌려갔다.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손연서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가 이상하게 기분이 점점 씁쓸해졌다.한때는 자기 전남편이자 자신이 사
오준수는 말을 마치자마자 이천애에게 눈치를 줬다.“빨리 연서에게 사과하고 우리 두 사람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설명해.”이천애는 내키지 않았지만 오씨 가문과 자기 아들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연서 씨, 정말 미안해요. 일부러 나쁜 마음을 먹고 연서 씨한테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오빠랑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두 분 다시 재혼해 주시면 안 될까요? 오빠 마음속에는 여전히 연서 씨뿐이에요.”손연서는 이천애의 말을 듣자마자 하마터면 입안의 물을 뿜어낼뻔했다.‘내가 저딴 말을 믿을 만큼 바보로 보이나?’“아, 괜찮습니다. 그러면 그쪽 아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손연서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두 사람을 제대로 골탕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이때, 이천애의 얼굴이 삽시에 어두워졌다.“다 지나간 일이잖아요.” 그러자 오준수도 빠르게 답했다.“맞아, 다 지나간 일이야. 그리고 너도 성훈이를 엄청 예뻐했잖아. 이제부터 네가 성훈이 엄마로 되는데 내가 나중에 꼭 너한테 효도하라고 할게.”효도라...사실 손연서도 오성훈이 여태껏 키워준 정을 봐서 그녀에게 고마워할 줄 알았다.그러나 고마워하기는커녕, 자기 친엄마 편만 들고 음식에 약까지 타서 먹인 바람에 손연서는 평생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었다.저런 아들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나을 것이다.“미안한데 난 다른 사람의 자식까지 키워줄 만큼 마음이 너그럽지 못해. 그리고 그 두 사람 때문에 내가 지금 아이를 못 낳고 있잖아?”손연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오준수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랑 재혼하고 싶다고? 좋아, 그전에 저 두 모자를 집에서 내보내.”순간 이천애의 얼굴이 삽시에 어두워졌다.“연서 씨, 너무한 거 아니에요? 제가 오늘 이렇게 직접 와서 사과도 했잖아요. 그리고 성훈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인데 애가 무슨 죄가 있겠어요?”손연서는 뻔뻔스러운 그녀의 말에 순간 참지 못하고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방금 사과했었어요? 몰랐네요.”그리고 다시 오준수를 바라보았다.“준수
그렇게 밤을 꼬박 새웠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오준수의 엄마, 차현영이 그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울먹거리며 물었다.“준수야, 대체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왜 업체들이 갑자기 우리더러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건데?”오준수는 하룻밤 사이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상태로 겨우 말을 내뱉었다.“엄마, 우리 이제 끝난 것 같아요.”두 사람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이천애도 마음이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아무리 눈치 없다고 해도 오씨 집안이 진짜 큰일 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차현영이 아침 댓바람부터 이렇게 찾아와 울부짖지도 않았을 것이다.집에는 오직 오성훈만 아무 걱정도 없이 쿨쿨 자고 있었다.차현영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어떻게 된 건지 빨리 말해. 누구한테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거야?”오준수는 어쩔 수 없이 모든 일에 대해 차현영에게 말해줬다.그러자 그녀는 대뜸 오준수를 꾸짖기 시작했다.“이 멍청한 놈, 그때 그렇게 이혼하지 말라고 뜯어말렸는데도 내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내더니. 손씨 가문 딸이면 우리 가문에도 얼마나 득이 되고 좋아? 하필이면 아무 쓸모도 없는 모델을 데려와서는.”“이천애는 그냥 우리 집안이랑 안 맞는 여자야.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회사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는 것 좀 봐, 이제 어떡하면 좋지?”“지금 당장 연서한테 가서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사과해!”말을 마치자마자 고개를 돌려보니 이천애가 구석에서 몰래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여우 같은 계집애, 우리 집에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당장 꺼지지 못해?”이천애는 오랜만에 집에 온 거라 이대로 순순히 돌아가기 싫었다.“어머님, 아무리 그래도 제가 성훈이 친엄마인데 아이 앞에서 굳이 이런 식으로 저를 대해야겠어요?”“그나마 성훈이가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진작에 널 밖으로 끌어냈어.”그러다가 차현영은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는지 다시 오준수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따 사과하러 갈 때 천애도 같이 데려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