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안에는 홍주영도 함께 있었다.30분 내내 첫 페이지만 보고 있는 유남우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도련님, 눈 좀 붙이시는 건 어때요?”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유남우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야.”이윽고 책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눈앞이 희미해졌다.홍주영은 바로 다가가 유남우를 부축했다.“도련님...”걱정이 가득 묻어 있는 눈빛으로 유남우를 바라보았다.윤소현과 결혼하고 싶지 않으나 결혼해야만 하는 유남우의 상황을 그 누구보다도 똑똑히 알고 있다.눈앞이 캄캄해진 유남우는 그렇게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앞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천천히 고개를 돌린 유남우는 홍주영을 바라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놀랐지?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홍주영은 씁쓸한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다.“이미 익숙한 상황이라 괜찮아요.”어느새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홍주영은 그만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도련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결혼하고 싶지 않으시면 지금 사모님께 말씀드리세요. 도련님 뜻대로 하실 거예요.”“호산 그룹 대표 자리는 하고 싶은 사람한테 내주고요. 도련님은 집에서 일단 건강부터 챙기세요. 제발 그러시면 안 될까요?”유남우는 그 말을 듣고서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바보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하고 싶다고 하고, 하고 싶지 않다고 그만두고 가지고 싶다고 가지고, 가지고 싶지 않다고 버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하물며 나 슬프지도 않아. 결혼하는 거 좋아. 누구나 결혼하듯이 너도 언젠가는 결혼하게 될 거야.”홍주영은 코를 훌쩍이면서 말했다.“전 절대 결혼 안 해요.”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결혼할 수 없다면 이번 생은 솔로로 지내기로 마음 먹은 홍주영이다.“또 바보 같은 소리한다.”유남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더니 그만 참지 못하고 박민정에 대해 물었다.“민정이는 요즘 뭐 하고 있어?”홍주영은 언젠가는 이런 질문을 받게 될 줄 알고 미리 박민정에게 사람
박민정은 어리둥절해서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축하해요.”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유남우는 목이 메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방에 있었던 박윤우는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서 밖으로 걸어 나왔는데 박민정이 자기가 좀 무서워하는 유남우와 같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엄마.”박윤우가 급히 소리쳤다.유남우가 그를 구해준 적이 있지만 그는 여전히 유남우가 무서웠고 박민정한테 무슨 피해라도 줄까 봐 무서웠다.박윤우의 외침 덕분에 박민정은 곧장 손에 든 우산을 유남우에게 건넸다.“먼저 돌아갈게요.”유남우는 아직 온도가 남아 있는 우산을 들고 박민정이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홍주영도 우산을 들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다만 박민정이 우산을 건네는 것을 보고 우산을 거두었다.유남우가 민망해할까 봐 홍주영은 아무것도 못 본 척하고 돌아갔다.사랑은 정말 이상하다. 사랑해야 하는 두 사람을 그냥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홍주영은 연애를 별로 해본 적이 없다. 그녀는 계속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싶어 한다.하지만 지금은 그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유남우의 마음속에는 줄곧 박민정이 있었다. 심지어 전에 해외에서 치료받을 때, 혼수상태에 있는데도 박민정의 이름을 불렀다. 한결같이 말이다.안타깝게도 그가 줄곧 좋아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세상일은 참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다. 홍주영은 우산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비를 맞으며 돌아갔다.모레가 유남우와 윤소현의 결혼식 날이다.윤소현은 급히 유남우를 찾아 그와 한방을 쓰려고 했는데 홍주영도 여기에 있는 것을 보았다.“홍 비서님,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은 남우 씨의 비서일 뿐, 사적인 자리에는 끼지 말라고 말이에요.”홍주영은 비를 맞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가 허리를 굽혀 말했다. “요 며칠 결혼 준비하는 게 바빠서 도련님께서 저한테 와서 도우라고 하셨어요.”그녀의 말을 듣고 나
“알아. 빨리 병원에 가.”“네.”홍주영이 떠나자 유남우는 피곤한 듯 소파에 앉아 미간 마사지를 했다.윤소현은 그가 돌아온 것을 알고 바로 그를 찾아왔다. “남우 씨, 우리 엄마와 동생이 유씨 가문으로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죠? 근데 남우 씨는 한 번도 인사하러 간 적이 없어요.”이 말을 듣고 유남준이 말했다. “네가 있잖아. 네가 나 대신 장모님과 처제를 잘 돌봐줘.”그가 호칭을 바꾼 것을 듣고 윤소현은 기뻐하며 그의 팔을 껴안았다.“저랑 남우 씨는 다르죠. 당연히 사위가 직접 인사하러 가는 게 더 좋죠. 엄마도 남우 씨가 가면 좋아하실 거에요.”“알았어, 내일 갈게.”유남우가 말했다.윤소현은 자기 뜻대로 다 해주는 그를 보고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의 셔츠 단추를 풀려고 했다.두 사람은 오래 사귀었지만 그녀는 아직 유남우를 제대로 만져본 적이 없다.딱 한 번 있었는데, 그에게 약을 먹였다가 들켰다.막 단추 하나를 풀었는데 유남우가 윤소현의 손을 꽉 잡았다.“이러지 마, 임신 중이잖아.”“벌써 석 달이 다 돼가잖아요. 괜찮아요.”윤소현이 말했다.그러자 유남우가 말했다. “아이 일에 대해서는 신중해지자.”그는 말을 마치고 윤소현의 손을 헤치고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윤소현의 손은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그녀는 계속 거절당해서 지금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남우 씨, 혹시 심리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거예요?”심리적 문제가 아니면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유남우는 계속 몸이 안 좋아서 해외에서 치료받고 있으니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윤소현은 유남우를 좋아하지만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남자한테 시집가기는 싫었다. 유남우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뭐라고?”윤소현은 주먹을 쥔 채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이제 결혼할 사이인데 무슨 문제가 있으면 솔직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하긴, 유석진이 오면 호산 그룹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겠죠. 그러면 우리 IM 그룹이 호산 그룹을 대체하는 게 더 쉬워질 거예요.”서다희가 말했다. 유남준은 큰아버지에 관한 일을 더 묻지 않고 윤석후에 관해 물었다.“그냥 잘 먹고 잘 놀고 있던데요? 그리고 박민호와의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서다희가 말했다.“무슨 방법을 생각해서 박민호가 이기도록 해.”“네.”사실 유남준이 어떻게 하지 않아도 박민호가 이길 수 있다고 서다희는 생각했다.서다희가 박민호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유남우였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유남우는 줄곧 박민호를 응원했다. 윤소현한테 비밀로 하면서 말이다.입구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우남준은 전화를 끊고 누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는데 박민정이었다.박민정은 걸어 들어와서는 조금 피곤한 듯이 앉았다. “피곤해요.”그녀는 지금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찼다. 전에 임신했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그러자 유남준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좀 주물러 줄까?”그는 막 손을 뻗었는데 박민정이 바로 막았다.“됐어요.”박민정은 얼굴을 붉히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안 해도 돼요. 오늘은 그냥 남준 씨 보러 온 거예요. 바로 갈 거예요.”그녀도 자기가 왜 유남준을 볼 때마다 쑥스러워하는지 몰랐다.유남준은 허공에 손을 뻗은 채 한참 있다가 손을 내렸다. “벌써 가려고? 무슨 일 있어?”박민정은 잠시 생각하다 둘러댔다. “유남우 씨가 곧 결혼하잖아요. 어머님께서 저보고 많이 봐달라고 하셨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바로 떠났다.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남준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복잡했다....모레면 유남우의 결혼식인데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다. 비가 계속 내렸다.아침부터 동하는 윤우를 찾아 놀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함미현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정수미는 보다못해 말했다. “아이들은 다 친구랑 놀기 좋아하잖아. 가고 싶다면 가게 보내.”“근데...”함미현은 머뭇거
청명,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병원 문 앞에서.박민정은 가녀린 몸에 수척한 손으로 병원 임신 테스트 보고서를 들고 있었는데 보고서에는 임신이 아니라는 문구가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결혼한 지 3년인데 아직도 임신 못 했어? 왜 이렇게 쓸모가 없니? 너 계속 임신 안 되면 유씨 일가에서 쫓겨나는 수가 있어. 그땐 우리 집안더러 어떡하라는 거야?”한수민은 하이힐을 신고 화려한 옷차림에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삿대질했다.박민정은 두 눈이 퀭하고 가슴에 꽉 막혔던 그 말들이 결국 한 마디로 함축되었다.“미안해요.”“엄마는 미안하단 말을 원하는 게 아니야. 얼른 남준의 아이를 낳으란 말이야. 알겠니?”박민정은 목이 확 메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결혼한 3년 동안 남편 유남준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곁을 안 주는데 어떻게 아이가 생길까?한수민은 약해빠진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왜 저를 닮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그녀는 차가운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남준이한테 여자 한 명 찾아줘. 걔도 그럼 너한테 고마워할 거 아니야.”박민정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떠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친엄마란 자가 딸에게 지금 남편을 위해 여자를 찾아주란 말이나 내뱉고 있다니.그녀의 마음에 순간 찬바람이 휘몰아쳤다....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박민정의 머릿속엔 온통 엄마의 마지막 말만 감돌았다.문득 귓가에 굉음이 한바탕 울렸다.그녀는 자신의 병이 더 심해진 걸 알고 있다.이때 문득 휴대폰 문자 벨 소리가 울렸다.유남준의 3년을 하루 같이 보낸 문자였다.“오늘 밤 집에 안 가.”결혼한 이 3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집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없다.아내인 그녀를 터치한 적은 더더욱 없고.3년 전 신혼 첫날밤에 유남준이 했던 말을 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너희 집안에서 감히 사기 결혼을 감행했으니 넌 인제 평생 고독하게 살 각오해.”평생 고독하게 살라고...3년 전 박씨 일가와
「남준 오빠, 그동안 잘 못 지냈죠? 그 여자 안 사랑하는 거 알아요. 우리 오늘 밤 만나요. 오빠 너무 보고 싶어요.」휴대폰 화면이 어두워질 때까지 박민정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택시 타고 유남준의 회사로 가는 길에서 박민정은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봤다. 비는 그칠 새도 없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유남준은 그녀가 회사로 찾아오는 걸 별로 반기지 않는다. 올 때마다 박민정은 뒷문에 있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니까.유남준의 전담 비서 서다희도 그녀를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오셨어요, 민정 씨.”유남준의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사모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그녀는 항상 떳떳하지 못한 존재니까.박민정이 휴대폰 주러 회사까지 찾아오자 유남준은 미간이 확 구겨졌다.그녀는 늘 이런 식이다. 점심 도시락, 서류, 옷, 우산까지 유남준이 놓친 걸 전부 회사로 보내온다.“말했잖아, 일부러 내 물건 주러 회사 안 와도 된다고.”박민정은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미안해요, 깜빡했어요.”언제 기억력이 이렇게 나빠졌지?아마도 이지원이 보낸 문자를 보고 덜컥 겁이 나서 그랬나 보다.유남준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떠나기 전 박민정은 고개 돌려 유남준을 바라보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남준 씨, 아직도 이지원 씨 좋아해요?”유남준은 요즘 들어 박민정이 참 이상했다.자꾸 뭘 까먹지 않나, 이상한 질문만 해대질 않나, 그의 아내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모습이었다.유남준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그렇게 심심하면 뭐라도 할 일 좀 찾아.”박민정은 결국 정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그녀도 전에 일자리를 구해봤지만 유씨 일가 어르신들이 그녀가 얼굴을 내비치면 가문의 체면만 깎는다고 단호하게 차단해 버렸다.유남준의 어머니 고영란은 그녀에게 거리낌 없이 쏘아붙였다.“너 정녕 온 세상에 알릴 생각이니? 우리 남준이가 청력에 문제 있는 장애인 아내를 찾았다고?”장애인 아내라...집에 돌아온 후 박민정은 최대한 바삐 돌아쳤다.먼지 하나 안
“아직 제대로 된 사랑도 못 해봤죠? 남준 오빠는 나랑 있을 때 밥도 직접 차리고 또 내가 아플 땐 제일 먼저 달려왔어요. 나한테 했던 가장 달콤한 말은 바로 ‘지원아, 난 네가 영원히 행복하길 바라’ 이 말이었어요... 오빠가 민정 씨한테는 사랑한다는 말 한 적 있어요? 전에 나한테 엄청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오빠 유치하다고 항상 틱틱거렸거든요...”박민정은 묵묵히 들으며 이 3년 동안 유남준과 함께한 나날들을 되새겨보았다.그는 단 한 번도 음식을 차려본 적이 없다.그녀가 아플 때 관심의 말 한마디조차 없다.사랑한다는 말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박민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할 얘기 다 했어요?”이지원은 흠칫 놀랐다. 그녀가 너무 차분해서인지 아니면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사람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볼 것만 같아서인지 이유는 알지 못했다.그렇게 박민정이 떠난 후에야 정신을 가다듬었다.왠지 모르게 이지원은 지금 이 순간 꼭 마치 박씨 일가의 후원을 받던 가난한 고아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박씨 일가의 귀한 따님 뒤에서 이지원은 영원히 웃음 팔이 피에로 역할이었다....박민정이라고 그녀의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을까?12년이나 좋아했던 남자인데, 한때 그녀도 아이처럼 누군가를 좋아했었는데,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했었는데...박민정은 문득 또다시 두 귀가 아파서 보청기를 빼내더니 그제야 선홍빛 핏물이 고인 걸 발견했다.그녀는 습관처럼 보청기에 묻은 핏자국을 깨끗이 닦고는 옆에 내려놓았다.잠이 오질 않아 휴대폰을 가져와 인스타그램을 열었는데 상단 스토리에 이지원 계정이 보란 듯이 초록색 테두리로 되어 있었다.클릭해 보니 박민정을 ‘친한 친구 리스트’에 넣어 오직 그녀에게만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첫 장은 대학교 때 이지원과 유남준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둘은 나란히 서 있었고 유남준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두 번째 장은 둘의 카톡 대화 내용을 캡처한 사진이었다. 유남준은 너무나도 상냥한 말투로 이
인제 보니 아빠는 유남준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걸 진작 알아챘나 보다.하지만 딸의 행복을 위해 유씨 일가와 계약을 체결했고 박민정도 소원대로 유남준에게 시집갈 수 있었다.그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아빠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만약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남동생과 엄마도 계약을 위반하지 않을 텐데...박민정은 재산 양도 수속을 전부 장 변호사에게 건넨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길옆에서 이지원의 홍보 포스터들을 보게 됐다.포스터 속 그녀는 더없이 눈부시고 아름답고 해맑은 모습이었다.‘이젠 놓아줄 때가 됐어. 남준 씨도 나도 자유를 되찾아야지.’두원 별장에 도착한 그녀는 짐 정리를 마쳤다.결혼한 3년 동안 그녀의 짐이라곤 고작 캐리어 하나에 다 들어갔다.이혼합의서는 작년에 이미 장 변호사에게 부탁해 작성해달라고 했다.유남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자괴감이 들고 마음이 약해진다.그녀는 진작 알아챘다. 둘 사이의 감정은 조만간 끝이 닿는다는 걸, 그래서 일찌감치 떠날 채비를 했다...저녁 시간, 유남준의 문자는 없었다.박민정은 용기 내어 그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오늘 밤 시간 돼요? 당신한테 할 얘기 있어요.」상대는 한참 동안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박민정은 어두운 얼굴로 생각했다.‘이젠 문자로 답장하는 것조차 싫은가 보네. 내일 아침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어쩌겠어.’그 시각 유앤케이 그룹 대표이사 사무실 안.유남준은 문자를 확인하곤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았다.절친 김인우가 소파에 앉아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끝내 못 참고 물었다.“민정 씨 문자야?”유남준이 묵인했고 김인우는 거리낌 없이 비난해 댔다.“이 귀머거리가 진짜! 제가 정말 유씨 가문의 사모님이라도 된 줄 아나? 어딜 감히 남편을 감시해? 남준아, 너 설마 걔랑 평생 시간 끌려는 건 아니지? 박씨 일가는 인제 아무것도 아니야. 걔 남동생 박민호는 회사도 운영할 줄 모르는 바보 멍청이라고. 얼마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