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정은 어리둥절해서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축하해요.”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유남우는 목이 메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방에 있었던 박윤우는 엄마가 돌아오지 않아서 밖으로 걸어 나왔는데 박민정이 자기가 좀 무서워하는 유남우와 같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엄마.”박윤우가 급히 소리쳤다.유남우가 그를 구해준 적이 있지만 그는 여전히 유남우가 무서웠고 박민정한테 무슨 피해라도 줄까 봐 무서웠다.박윤우의 외침 덕분에 박민정은 곧장 손에 든 우산을 유남우에게 건넸다.“먼저 돌아갈게요.”유남우는 아직 온도가 남아 있는 우산을 들고 박민정이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홍주영도 우산을 들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다만 박민정이 우산을 건네는 것을 보고 우산을 거두었다.유남우가 민망해할까 봐 홍주영은 아무것도 못 본 척하고 돌아갔다.사랑은 정말 이상하다. 사랑해야 하는 두 사람을 그냥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홍주영은 연애를 별로 해본 적이 없다. 그녀는 계속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싶어 한다.하지만 지금은 그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유남우의 마음속에는 줄곧 박민정이 있었다. 심지어 전에 해외에서 치료받을 때, 혼수상태에 있는데도 박민정의 이름을 불렀다. 한결같이 말이다.안타깝게도 그가 줄곧 좋아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세상일은 참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다. 홍주영은 우산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비를 맞으며 돌아갔다.모레가 유남우와 윤소현의 결혼식 날이다.윤소현은 급히 유남우를 찾아 그와 한방을 쓰려고 했는데 홍주영도 여기에 있는 것을 보았다.“홍 비서님,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은 남우 씨의 비서일 뿐, 사적인 자리에는 끼지 말라고 말이에요.”홍주영은 비를 맞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가 허리를 굽혀 말했다. “요 며칠 결혼 준비하는 게 바빠서 도련님께서 저한테 와서 도우라고 하셨어요.”그녀의 말을 듣고 나
“알아. 빨리 병원에 가.”“네.”홍주영이 떠나자 유남우는 피곤한 듯 소파에 앉아 미간 마사지를 했다.윤소현은 그가 돌아온 것을 알고 바로 그를 찾아왔다. “남우 씨, 우리 엄마와 동생이 유씨 가문으로 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죠? 근데 남우 씨는 한 번도 인사하러 간 적이 없어요.”이 말을 듣고 유남준이 말했다. “네가 있잖아. 네가 나 대신 장모님과 처제를 잘 돌봐줘.”그가 호칭을 바꾼 것을 듣고 윤소현은 기뻐하며 그의 팔을 껴안았다.“저랑 남우 씨는 다르죠. 당연히 사위가 직접 인사하러 가는 게 더 좋죠. 엄마도 남우 씨가 가면 좋아하실 거에요.”“알았어, 내일 갈게.”유남우가 말했다.윤소현은 자기 뜻대로 다 해주는 그를 보고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의 셔츠 단추를 풀려고 했다.두 사람은 오래 사귀었지만 그녀는 아직 유남우를 제대로 만져본 적이 없다.딱 한 번 있었는데, 그에게 약을 먹였다가 들켰다.막 단추 하나를 풀었는데 유남우가 윤소현의 손을 꽉 잡았다.“이러지 마, 임신 중이잖아.”“벌써 석 달이 다 돼가잖아요. 괜찮아요.”윤소현이 말했다.그러자 유남우가 말했다. “아이 일에 대해서는 신중해지자.”그는 말을 마치고 윤소현의 손을 헤치고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윤소현의 손은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그녀는 계속 거절당해서 지금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남우 씨, 혹시 심리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는 거예요?”심리적 문제가 아니면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유남우는 계속 몸이 안 좋아서 해외에서 치료받고 있으니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윤소현은 유남우를 좋아하지만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남자한테 시집가기는 싫었다. 유남우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뭐라고?”윤소현은 주먹을 쥔 채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이제 결혼할 사이인데 무슨 문제가 있으면 솔직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하긴, 유석진이 오면 호산 그룹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겠죠. 그러면 우리 IM 그룹이 호산 그룹을 대체하는 게 더 쉬워질 거예요.”서다희가 말했다. 유남준은 큰아버지에 관한 일을 더 묻지 않고 윤석후에 관해 물었다.“그냥 잘 먹고 잘 놀고 있던데요? 그리고 박민호와의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서다희가 말했다.“무슨 방법을 생각해서 박민호가 이기도록 해.”“네.”사실 유남준이 어떻게 하지 않아도 박민호가 이길 수 있다고 서다희는 생각했다.서다희가 박민호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유남우였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유남우는 줄곧 박민호를 응원했다. 윤소현한테 비밀로 하면서 말이다.입구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우남준은 전화를 끊고 누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는데 박민정이었다.박민정은 걸어 들어와서는 조금 피곤한 듯이 앉았다. “피곤해요.”그녀는 지금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찼다. 전에 임신했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그러자 유남준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좀 주물러 줄까?”그는 막 손을 뻗었는데 박민정이 바로 막았다.“됐어요.”박민정은 얼굴을 붉히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안 해도 돼요. 오늘은 그냥 남준 씨 보러 온 거예요. 바로 갈 거예요.”그녀도 자기가 왜 유남준을 볼 때마다 쑥스러워하는지 몰랐다.유남준은 허공에 손을 뻗은 채 한참 있다가 손을 내렸다. “벌써 가려고? 무슨 일 있어?”박민정은 잠시 생각하다 둘러댔다. “유남우 씨가 곧 결혼하잖아요. 어머님께서 저보고 많이 봐달라고 하셨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바로 떠났다.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남준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복잡했다....모레면 유남우의 결혼식인데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다. 비가 계속 내렸다.아침부터 동하는 윤우를 찾아 놀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함미현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정수미는 보다못해 말했다. “아이들은 다 친구랑 놀기 좋아하잖아. 가고 싶다면 가게 보내.”“근데...”함미현은 머뭇거
최현아는 그의 말을 듣고 뭔가 깨달았다.“알겠어요, 아버님. 앞으로 성혁 씨와 잘 살게요. 하지만 아버님께서 빨리 성혁 씨를 찾아서 그 사람한테도 주의를 시키세요.”상류사회에서의 결혼은 모두 비즈니스다. 진실성을 논하기에는 말이 안 된다.유석진은 본처가 있지만 밖에 다른 여자도 있었다. 유성혁이 바로 신분 배경이 없는 여자가 낳은 아이다. 그 여자는 고영란과 비교할 수가 없다. “그래. 그럼 됐어. 난 이미 사람을 보내서 성혁이를 찾으라 했어.”두 사람은 지금 유성혁의 처지가 얼마나 안 좋은지 모른다.늦은 밤, 외진 교외 지역에서 유남준은 검은 비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서다희는 그의 뒤를 따랐다.오늘 밤, 유남준은 특별히 유성혁을 보러 왔다.“유성혁이 개를 그렇게 많이 키워 뭘 하는지 모르겠네.”서다희는 혼잣말했다.이렇게 많은 개가 지금쯤은 유성혁의 악몽이겠지 하고 생각했다.유성혁은 지금 위험한 개 무리 속에 있는데 온몸이 물린 상처였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몽둥이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더없이 불쌍해 보였다.어디선가 빛이 밝았을 때, 그는 개 짖는 소리를 따라 보았는데 유남준을 보았다. 그는 순간 다리가 풀려 무릎을 꿇었다.“남준아, 제발 나 좀 풀어줘. 내가 정말 잘못했어. 미안해. 제발 날 풀어줘.”유성혁은 콧물과 눈물로 얼굴을 가렸다. 도련님의 느낌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유남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지금 풀어주면 또 나와서 사람을 괴롭힐 거잖아.”“아니야. 정말 다시는 안 그럴게.”유성혁은 정말 무서웠다. 그는 이 개들과 함께 깜깜한 곳에 갇혀서 매일매일을 고통스럽게 보내고 있다.그는 지금 자기가 왜 얌전히 도련님 삶을 살지 않고 유남준을 건드렸는지 매우 후회하고 있다.“네 아버지가 돌아오셨어.”유남준은 잠시 멈칫하다가 또 말했다. “지금 너를 찾고 있어.”그 말을 들은 유성혁은 뭔가 희망이 보였다. “나를 풀어준다면 절대로 아버지에게 이 일을 말하지 않
유남준은 침실 안 침대에 누워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유석진은 안으로 들어가 유남준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자신의 무서운 조카가 지금 바보가 되어 눈까지 안 보이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그는 손을 뻗어 유남준을 세게 흔들었다. “일어나.”유남준은 시끄러워서 잠에서 깬 듯 눈을 비볐다.“누구야?”그가 눈을 떴는데 눈빛은 흐렸다. 마치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남준아, 큰아버지야. 큰아버지 목소리 기억 안 나니?”“큰아버지?”유남준은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까지 꼭 뒤집어썼다. “모르겠는데요.”어린아이 같은 그의 행동에 유석진은 유남준이 정말 소문대로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그가 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유석진은 방금의 부드러운 표정을 더는 하지 않았다. 이불을 꼭 덮고 있는 유남준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남준아, 계속 바보로 있어. 그게 우리 모두를 위한 거야.”유남준이 바보가 되지 않았어도 그는 돌아오려고 준비했었다.요 몇 년 동안 외국에서 쌓은 경험으로 분명히 유남준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유석진이 모르는 것은 자기가 금방 떠났는데 서다희가 한쪽 구석에서 나왔다.“이 늙은이가 외국에 가만히 있지 않고 돌아왔네요.”유남준도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어떻게든 해외에 있는 저 사람의 회사를 다 조사해. 이젠 회수해야 할 때가 됐어.”“알겠습니다.”“요즘 호산 그룹은 어때?”유남준이 물었다.서다희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다들 유남우의 결혼식에 정신이 팔렸어요. 우리는 이미 호산 그룹의 많은 사업을 따냈어요. 유남우가 결혼하는 날 비슷하게 알게 될 것 같아요.”유남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업을 다 빼앗겼으니 아무리 정수미가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호산 그룹 대표의 자리는 내놓아야 할 것이에요.”서다희가 또 말했다.“호산 그룹에 오래된 주주들에게 연락해. 내일 그들을 만나야겠어.”“네.”...다음날, 박민정과 진서연은 통화 중이었다.진서연은 방은정을 보여주며 말했다.
“서연 씨, 민정 씨 전남편의 집은 어디에요?”설인하가 물었다.진서연은 박민정의 과거를 잘 모른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겠어요.”설인하는 좀 안타까웠다.민수아가 걸어왔다. “유씨 가문 옛 저택 알아요? 바로 우리 진수에서 가장 비싼 땅에 있죠.”“유씨 가문이요?”설인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네, 맞아요.”민수아는 그녀가 왜 그렇게 놀라는지 안다.유씨 가문은 진수에서 권력과 세력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설인하가 놀란 건 유씨 가문이 권세 있어서가 아니라 남편인 방성원과 유씨 가문의 유남준이 친구이기 때문이다.“수아 씨, 민정 씨 남편이 우씨 가문 누구예요?”설인하는 설마 그런 우연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유남준이요.”이 말을 듣고 그녀는 순간 멍해졌다. 믿어지지 않았다.“그럴 리가.”설인하가 혼잣말했다.민수아는 좀 이상했다. “왜 그래요, 난 진작 알고 있는 줄 알았어요.”박민정이 유남준 아내라는 것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설인하는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는데 머릿속이 복잡했다.“잠깐 나갔다 올게요.”설인하는 분유를 놓고 도우미의 품에 안긴 아이를 받아 안고서는 밖으로 나갔다.진서연과 민수아는 바로 따라 나갔다. “어디 가는 거예요?”“산책 좀 하고 올게요.”설인하는 거짓말을 했다.“같이 가요. 아이를 안는 게 힘들 거예요. 우리가 도와줄게요.”민수아가 말했다.그러나 지금의 설인하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아니에요. 제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고 싶어요.”그녀의 차가운 말투에 민수아와 진서연은 더는 말할 게 없어서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설인하는 밖에 가서 산책만 하려는 것이 아니다.그녀는 차를 잡아서 운전기사보고 이곳을 떠나라고 했다.가는 길에 설인하는 불안했다. 박민정이 유남준의 전 부인이라면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심지어 자신이 방성원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을 집에 있으라고 한 것이
한참을 조사하다가 설인하가 차를 타고 옆 도시로 갔다는 것을 운전사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그녀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서 기사보고 자기를 그쪽까지 데리고 가달라고 했다.진서연은 그녀를 따라 차에 올랐다. “보스, 저도 같이 가요.”“그래.”둘이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민수아는 집에서 그녀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밖에 비가 주룩주룩 흐르고 그 시각 박민정과 진서연은 매우 불안했다.한편, 설인하는 또 준비가 안 돼 있었다. 그녀는 지금 돈이 별로 없는데 심지어 그것도 박민정이 준 것이다. 차비와 방값을 내면 그녀는 돈이 없을 것이다.품에 안긴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설인하는 아이를 두고 갈 수도 없어서 아이를 데리고 각종 필요한 것을 사러 갔다.“아가야, 울지 마. 울지 마...”설인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남을 돌보는 일을 한 적이 없다. 아이를 어떻게 돌보고 살림을 어떻게 꾸리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그녀는 얼마 안 가서 돈을 다 썼다. 호텔 방에 틀어박혀 아이를 봐야 했다.그녀도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드시 내일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그런데 아직 백일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가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설인하는 머리가 아파 났다. 왜 전에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는지 후회했다. 으르렁. 천둥소리가 났다.설인하는 깜짝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본능적으로 품에 안긴 아이를 꼭 껴안았다.박민정이 설인하를 찾았을 때는 이미 밤 9시였다.그녀가 노크하자 설인하는 무방비로 문을 열었는데 박민정이 온 것을 보고 바로 문을 닫으려 했다.진서연이 먼저 막았다. “인하 씨, 무슨 일이에요? 아무 말 없이 여기에 왜 온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그녀는 이렇게 배은망덕한 사람을 처음 보았다.박민정과 진서연은 설인하랑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최선을 다해서 그녀를 찾아냈다. 진서연은 설인하를 보면
“우리가 사귄 것은 옳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그 사람은 우리 가문의 모든 사람을 죽였어요. 저는 그 사람에게 시집가고 싶지 않았고 줄곧 그 사람을 떠나고 싶었어요. 설인하가 말했다.진서연은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입을 크게 벌렸다.이건 그야말로 소설의 줄거리 같았다. 방성원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다른 가문의 온 가족을 죽일 수 있는 건지 생각했다. 설인하는 과거를 언급하기 꺼리는 듯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민정 씨, 이 정도밖에 말해줄 수 없어요. 미안해요. 오늘 수아 씨가 민정 씨 전남편이 유남준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난 민정 씨가 진작에 내가 방성원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 그 사람이 시켜서 나를 감시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도망친 거예요.”박민정은 그제야 이유를 알았다. “우리가 잘 왔네요. 이 오해를 풀지 않았으면 제가 나쁜 사람이 될뻔했어요.” 그러자 설인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당신이 방성원과 같은 편이었어도 난 당신이 정말 고마운걸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와 은정이는 이미 살아있는 목숨이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설인하는 좀 머뭇거리다가 계속 말했다. “난 다시는 박성원한테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도망간 거예요. 제가 능력이 있게 되면 아이를 데리고 가서 감사 인사를 하려고 했어요.”박민정은 이 말을 듣고 자신의 호의가 헛되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조금 위안을 느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설인하는 잠시 침묵했다. “내일 일자리를 찾으러 나가려고요.”“산후조리도 잘 안 됐고 아이까지 데리고 있는데 어떻게 일자리를 구해요?”진서연이 물었다.설인하는 진지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설거지하든 바닥을 닦든 다 할 수 있어요. 아이도 이제 곧 백일이니까 아이를 업고 일할 수 있어요.”그녀의 말을 듣고 박민정과 진서연은 모두 방성원이 그녀한테 잘 못 대해준다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산후조리도 못 한 여자가 아이를 업고 힘든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나랑 같이 가요. 이제 좀 지나서 서
박민정은 물컵을 챙긴 뒤 보안실로 향해 CCTV 영상을 확인했다.그녀는 경비에게 적지 않은 돈을 건넸고 곧바로 어제 퇴근 후의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영상 속에서 주영리가 자신의 물컵에 뭔가를 넣는 모습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좋아, 아주 좋아.’증거는 충분했다.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박민정은 일부러 화장실에 간 척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물컵 속 남은 물을 감식 의뢰하기 위해서였다.컵에 남아 있는 물에 약물이 들어 있는지 확실히 알아야 했으니까.병원을 다녀오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고 회사 내에서는 이를 두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생겼다.“보란 듯이 대놓고 결근이네. 뭐, 이제는 최 사장님 같은 백이 있으니까 다 무시하나 봐. 화장실 간다더니 한 시간은 넘게 있었을걸?”질투 어린 목소리가 사방에서 속삭였지만 박민정은 이런 말을 신경 쓸 리 없었다.한편, 주영리는 책상 한쪽에 앉아 있었지만 마냥 긴장을 풀지 못했다.직속 상사인 제임스가 아까 말하기를, 곧 최 사장님이 회사를 방문한다고 했고 게다가 이번에는 자신을 직접 찾겠다고도 했다.주영리는 두려움에 휩싸였다.설마 최 사장이 박민정의 말을 듣고 그녀의 편을 들어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건 아닐까?그녀는 불안에 휩싸여 일조차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다.결국, 최 사장이 들어왔다.그러나 그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주 비서, 당장 이리 와!”최 사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주영리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휴게실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불안한 마음에 손이 떨렸다.밖에서는 사람들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모두 최 사장이 박민정을 위해 직접 나선 거라고 생각하며 조금 전까지 박민정을 험담하던 사람들도 입을 꾹 다물었다.박민정 역시 이 상황을 지켜보며 속으로 비웃었다.‘참 간사하네.’휴게실.최 사장은 들어오자마자 주영리에게 일방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너, 네가 어제 나를 죽일 뻔한 거 알아?”주영리는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최 사장님, 무슨 말씀이
주영리는 우유를 마시며 비웃듯 고개를 끄덕였다.“참나, 그때 밥 먹을 때는 얼마나 고상한 척하던데. 뒤에서는 그렇게 더러운 짓을 하고 있었네요.”옆에 있던 동료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그렇게 말하지 마요. 어쩌면 이제 최 사모님이 됐을지도 모르잖아요. 괜히 건드렸다가 큰일 난다고요.”주영리는 조롱하듯 덧붙였다.“흥, 그 여자가 사모님 자리랑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예쁜 여자는 넘쳐나는데 고작 그런 애가? 겁낼 거 없어요.”다른 여직원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맞아요. 겨우 그런 걸로 뭐가 무섭다고. 하!”주영리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그때 누군가 외쳤다.“어? 저거 봐, 한정판 벤틀리잖아! 혹시 회사에 또 대형 고객이 온 거야?”그 말을 듣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그 차로 향했다.그리고 곧이어 그 차에서 내리는 박민정을 보고는 다들 말을 잃었다.주영리는 한순간 멍해졌지만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봤죠? 저거 분명 최 사장님 차일 거예요.”곁에 있던 동료가 주영리를 치켜세우듯 말했다.“주 비서님, 진짜 대단하네요.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있어요. 저 여자 진짜 못됐네요.”박민정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 사이에 있는 주영리를 발견했다.그녀는 손을 꽉 쥐며 숨을 고르려 애썼다.주영리는 원래 박민정이 자신에게 보복할까 봐 걱정했지만 지금 박민정이 고급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 같은 부류라고 착각했다.뻔뻔하게도 주영리는 박민정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민정 씨, 어제 재미있었어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맙다고요?”박민정의 손이 번개처럼 빠르게 올라가더니 주영리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팍! 소리가 울리며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렸다.주영리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아파서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박민정을 바라보았다.“날 쳤어요? 내가 아니었으면 오늘 민정 씨가 그 고급 차 타고 출근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천한 주제에 겉으로만 고상한 척하려고?”주변 동료들이 이 장면을 지켜
유남우의 온화한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그래? 정말 우연이네.”그는 여태껏 박민정을 잘 감춰왔지만 예상치 못한 우연으로 두 사람이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다.이게 유남준에게 행운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어쨌든 형의 겉모습에 속아선 안 돼. 그리고 회사에서 누군가 너를 노리고 있다면 진작에 나에게 말했어야지.”유남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박민정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뭐든 오빠한테 의지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도 제힘으로 해내고 싶어요.”그러면서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유남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전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제발 그대로 둘 수 없어요? 회사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주영리가 감히 자신을 함부로 대하다니, 그녀는 반드시 주영리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부탁이에요.” 박민정은 손을 뻗어 유남우의 팔을 붙잡았다.“제발, 도와줘요. 네?”박민정의 간절한 애원이었지만 유남우는 난감한 얼굴로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안 돼. 난 네가 걱정돼서 안심할 수가 없어.”박민정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졌다.“하지만 저는 이 일이 정말 필요해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왜 꼭 떠나야 하는 거예요? 그냥 오빠 형 문제잖아요. 그걸 가지고 저를 강요할 순 없잖아요?”유남우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그만하자. 알겠어. 회사 문제는 정리할 시간을 줄게. 하지만 그 뒤엔 같이 떠날 거야.”박민정의 눈빛은 실망으로 가득 찼다.지난 1년간 그녀는 모든 걸 유남우에게 맞춰왔다.그를 사랑했으니까.하지만 겨우 이 작은 부탁조차 들어주지 않다니.박민정이 말을 잃고 침묵하자 유남우는 그녀가 화가 난 것을 눈치채고 달래듯 말했다.“화내지 마. 다른 곳으로 가도 네가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줄게.”그렇게 말한 뒤 그는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박민정이 원래는 그를 무시하려 했지만 기침 소리에 마음이 약해졌다.“왜 이렇게 심하게 기침해요? 혹시 병이 재발한 거 아니에요?”유남우는 그
박민정은 처음으로 유남우에게 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유남우를 부축하며 유남준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저기요, 형이라는 사람은 원래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오빠가 몸이 약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 어떻게 오빠를 때릴 수 있어요? 게다가 외부인이 있는 자리에서 체면 하나 세워주지 않고요.”박민정은 이렇게 지나치게 차가운 형을 본 적이 없었다.그녀의 꾸짖음에 유남준은 마치 목이 막힌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오빠, 우리 그냥 가요.”박민정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유남우에게 말했다.“그래.”두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유남준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그는 순간적으로 막는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예전에 자신만을 사랑하던 그녀가 이제는 다른 남자를 이렇게 따뜻하게 대하고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한편 최 사장의 정보를 모두 조사한 서다희는 돌아오는 길에 사모님과 대표님이 함께 나가는 장면을 보았다.그는 막 부르려던 찰나, 대표님이 방에서 지친 모습으로 나오는 걸 보고 멈췄다.“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서다희는 한 걸음씩 유남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어젯밤 그 뚱뚱한 남자에 대해 알아냈습니다. 성은 최씨라고 하더군요. 본토에서 활동하는 무역상입니다.”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남준이 고개를 들었다.“뭐 해야 할지는 알겠지?”“네.” 서다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사람을 붙여서 민정이와 유남우를 따라가게 해.”“유... 유남우 도련님이요?”서다희는 놀랐고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되었다. 아까 대표님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대표님 동생이었다.하지만 박민정이 왜 유남우와 함께 떠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는 더는 묻지 않고 명령을 받고 자리를 떠났다.박민정은 유남우와 함께 돌아오는 길 내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많이 아프죠?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의 입가에는 아직도 피가 묻어 있었다.그러나 유남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
유남준은 유남우가 방에 들어오는 걸 보고 모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그의 눈엔 차가운 분노가 서렸다.“유남우, 나한테 설명할 건 없나?”유남우는 여기에 유남준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러니 어젯밤, 박민정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 유남준이란 말인가?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박민정은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두 사람의 외모가 이렇게 똑같은데, 왜 유남우는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던 걸까?“민정아, 먼저 가서 쉬어. 내가 조금 있다가 갈게.”“알겠어요.” 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남준은 단호히 말했다.“안 돼. 민정이는 아무데도 못 가.”겨우 다시 찾은 박민정을 그냥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이 말을 들은 유남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럼 옆 방에서 잠깐 쉬고 있어.”“좋아요.” 박민정은 유남우의 말대로 옆 방으로 이동했다.그녀가 떠난 후,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유남준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민정이가 실종된 게 네가 한 짓이었어?”이젠 부정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는지 유남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민정이는 원래부터 내 사람이었어.”이 뻔뻔스러운 말에 유남준은 주먹을 쥐었지만 간신히 참으며 물었다.“그런데 왜 나를 못 알아보는 거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그 질문에 유남우는 오히려 비웃으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기억에서 지우는 법이지.”이어 그는 도발하듯 말했다.“형, 충고 하나 할게. 형 것이 아닌 건 억지로 붙잡아봤자 아무 소용없어.”그 말을 들은 유남준은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다.“그 말을 너 자신에게 하는 게 맞겠지. 민정이는 내 아내야. 우리에겐 네 명의 아이도 있어. 그리고 너는 이미 결혼한 몸이잖아. 네 자리로 돌아가서 네 인생이나 책임져!”그러나 유남우는 비웃으며 대꾸했다.“나랑 윤소현은 애초에 결혼한 사이가 아니야. 우린 결혼증명서도 없어. 그리고 그 애? 하하, 그건 내
박민정은 오늘의 유남우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뭐가 문제인지 명확히 알 수 없었다.“남... 남우 오빠...”그녀는 다시 한 번 그를 불렀다.“왜 그래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그녀는 말하면서 손을 들어 그의 이마에 손등을 댔다.유남준의 깊은 눈동자 속엔 격렬한 감정의 파도가 일었다. 그의 목구멍은 마치 날카로운 가시가 걸린 것처럼 답답하고 쓰렸다.박민정이 손을 내리려는 순간, 그는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너 지금 뭐라고 불렀어? 남우 오빠?”그의 눈가는 점점 더 붉어졌다.지난 1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박민정은 그의 강렬한 눈빛에 놀라 움찔했다.그리고 며칠 전 꾼 꿈이 문득 떠올랐다. 꿈속에서 유남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도 지금처럼 이상한 분위기를 풍겼다.“오빠,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그녀는 어쩐지 마음이 불안해졌다.유남준은 그녀의 손을 더욱 세게 쥐며 말했다.“난 유남우가 아니야. 난 유남준이야!”“너... 날 잊어버린 거야?”그의 목소리는 거칠고 쉰 듯했다.박민정은 그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뭐라고요?”유남우가 아니라고?그렇다면 어째서 두 사람이 똑같이 생겼단 말인가?박민정의 머릿속은 완전히 혼란스러웠다.유남준은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당기며 다시 물었다.“말해봐, 지난 1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왜 나를 잊었어? 왜 유남우만 기억하는 거지?’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도 황당했다.박민정은 그의 말투와 분위기를 보니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그가 진짜로 유남우가 아니라면...그녀는 황급히 그의 손에서 벗어나며 말했다.“그럼 제가 사람을 잘못 봤나 봐요. 죄송합니다.”그리고 덧붙였다.“어젯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박민정은 몇 걸음 물러나더니 어쩔 줄 몰라하며 말을 이었다.“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 저...”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남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길게 뻗은 다리로 그녀 앞으
“여보세요, 혹시 민정 씨 남자친구 되세요?” 주영리는 일부러 친절한 척하며 물었다.유남우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에 의심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민정이의 핸드폰이 왜 당신에게 있죠? 누구시죠?”“아, 저는 민정 씨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예요. 오늘 야근하다가 핸드폰 벨소리가 들려 혹시 무슨 급한 일인가 해서 받았습니다.”주영리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이어갔다.“무슨 용건이라도 있으세요? 혹시 민정 씨가 부탁해서 전화하신 건가요?”“민정이가 집에 오지 않았어요.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유남우의 이마에는 주름이 깊게 패였다.박민정은 밤늦게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자신에게 먼저 연락을 했을 것이다.그는 불길한 느낌에 휩싸였다.“집에 안 갔다고요? 혹시 최 사장님이랑 놀러 간 거 아니에요?”주영리는 의미심장하게 말을 흐렸다.“오늘 퇴근 후에도 우리 회사 고객인 최 사장님과 함께 있던데요. 제가 두 사람이 같이 나가는 걸 봤거든요.”그녀는 이리저리 돌려 말했는데 박민정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속셈이었다.“민정 씨가 말하지 않았나요? 전 다 얘기한 줄 알았는데요. 그래도 남녀가 단둘이 밤늦게까지 같이 있다니... 혹시...”주영리는 일부러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아니겠죠? 그래도 민정 씨는 그런 사람 같진 않은데요.”유남우는 그녀의 말을 듣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주영리가 노리는 속셈을 정확히 간파했기 때문이다.그는 박민정을 믿었다.“그 최 사장이라는 분 연락처를 알려주실 수 있어요?”그의 단호한 목소리에 주영리는 잠시 당황했지만 여전히 빈정거리는 태도로 대답했다.“저 같은 작은 직원이 고객님의 연락처를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민정 씨는 워낙 예쁘고 사교적이니 아마 알고 있을 거예요.”이어 그녀는 비아냥거리듯 말했다.“전에 민정 씨가 최 사장님이 자기에게 얼마나 잘해주는지 자랑하는 걸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아마 별일 없을 겁니다.”유남우는 더는 말을 섞지 않고 전화를 끊
박민정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최 사장의 손에서 벗어나 유남준에게 몸을 던졌다.그녀의 온기가 그의 품에 닿는 순간, 유남준은 깊은 충격 속에 얼어붙었다.온 몸에 힘이 풀린 박민정은 그의 품에 기대며 안도감을 느꼈다. 마치 자신을 지켜줄 안전한 성채를 찾은 기분이었다.“두 분, 아는 사이인가요?”최 사장은 눈앞의 큰 키에 잘생긴 남자를 바라보며 주춤했다. 그의 강렬한 아우라에 기가 눌려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유남준은 품에 안긴 박민정을 다시 한번 꼭 안으며 현실임을 확인했다. 그런 뒤에야 차가운 눈빛으로 최 사장을 노려보며 낮게 말했다.“꺼져.”최 사장은 그의 압도적인 기세에 겁을 먹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떠나며 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변명했다.“오해입니다, 정말 오해였어요.”비록 유남준이 누군지 몰랐지만 이 호텔의 최고급 스위트룸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의 격을 알고 있던 최 사장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대임을 깨달았다.‘박민정 같은 평범한 직원이 이런 남자와 인연이 있을 줄이야...’ 그는 뒷모습이 초라하게 사라졌다.최 사장이 떠난 후, 유남준은 자신의 품에서 안도하며 깊이 잠든 박민정을 보았다. 그는 그녀를 소중히 들어올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침대에 그녀를 조심스럽게 눕힌 그는 그녀가 혹시라도 깰까 봐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그런 다음 침대 옆에 앉아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1년이었다.그는 드디어 그녀를 찾았다.박민정은 전혀 변한 게 없었고 여전히 예전 그대로였다.유남준은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혹시라도 이 모든 게 꿈일까 봐, 아니면 또다시 그녀가 환영처럼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다행히 그녀의 체온이 그의 손끝에 또렷이 전해졌다. 그녀는 환상이 아니었고 진짜로 그의 앞에 있었다.그러나 여전히 긴장을 놓을 수 없던 그는 핸드폰을 꺼내 서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어서 이리로 와.”서다희는 전화를 받자마자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급히 달려왔다. 방
지난번 춤을 추었을 때 박민정은 두꺼운 화장을 해서 얼굴의 흉터를 가렸다.하지만 오늘은 화장기 하나 없는 상태였다. 그녀의 얼굴에 선명히 드러난 흉터를 보고 최 사장은 그녀의 턱을 거칠게 잡아들며 혀를 찼다.“참 안타깝네. 이렇게 예쁜 얼굴이 어떻게 이렇게 망가질 수가 있지?”그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덧붙였다.“완벽한 여자인 줄 알았더니 흠이 있네! 알았더라면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텐데.”최 사장은 미모에 대한 기준이 높았다. 그는 수많은 미녀와 유명 인사들을 상대하며 자신만의 까다로운 기준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그의 말이 들려오는 동안 박민정은 오히려 얼굴의 흉터에 안도했다. ‘이 흉터 때문에 나를 포기해줬으면...’ 그녀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그러나 그녀의 바람은 너무나도 순진한 희망이었다.“하지만...” 최 사장의 시선이 그녀의 몸으로 내려가며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몸매는 정말 훌륭하군.”그는 탐욕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를 만지려 했다.순간 박민정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절대 이런 사람에게 내 몸을 내줄 순 없어!’그녀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어렵게 입을 벌린 그녀는 자신의 혀를 세게 깨물었다.순간적인 통증과 입 안에 퍼지는 쇠 맛이 그녀를 강하게 자극했다.통증 덕분에 여태 흐릿했던 그녀의 시야가 또렷해졌다. 마침내 눈을 떠낸 박민정은 모든 의지를 쏟아 최 사장을 힘껏 밀쳐냈다.최 사장은 그녀가 깨어난 걸 보고 놀라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가씨, 어떻게 이렇게 빨리 깼지?”박민정의 눈은 차갑게 빛났다.“꺼져! 아니면 내가 당신 가만두지 않을 거야!”최 사장은 그녀의 말에 비웃으며 더욱 대담하게 행동했다.“하하하, 네가 뭘 어쩔 건데?”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박민정은 그가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역겨움을 느끼고 몸을 재빨리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그러자 최 사장은 그녀의 팔을 거칠게 붙잡고 강제로 끌어당겼다.그녀는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