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미현은 그 말을 듣고서 탄복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언니,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윤소현은 남에게 추앙받는 기분을 몹시나 즐기는 사람이다.“너도 정씨 가문의 딸로서 앞으로 우리 회사에도 네 몫이 있게 될 거야.”함미현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그런 거 필요 없어요. 전 그냥 우리 동하만 회복하면 되고 우리 모자가 살 곳만 있으면 돼요.”그 말을 듣고서 윤소현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말로만 싫다고 하지 속으로는 얼마나 욕심내고 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돈을 마다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그래?’‘그렇지 않고서야 박민정 대신 들어올 리도 없잖아.’“가자. 내려.”“네.”함미현은 차에서 내려 윤소현의 뒤를 따라서 호산 그룹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호화롭기 그지없는 실내장식에 함미현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약혼자가 이렇게 큰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니... 정씨 가문도 돈이 엄청 많은 것 같던데... 팔찌 하나에 몇십억이 될 만큼.’‘안타깝게도 우리 남편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직장인일 뿐이네.’함미현은 팔찌를 만지면서 자기가 정말로 정씨 가문의 천금이었으면 했다.“전에는 무슨 일 했었어?”윤소현이 물었다.“아주 작은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했었어요.”함미현이 대답했다.일반 대학을 나온 함미현이라 그런 직업이 전부였다.윤소현은 정수미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함미현을 곁에 두면서 앞으로 가족 회사를 관리할 수 있게끔 배우라고 말이다.“그럼, 앞으로 나랑 같이 일하자. 임금은 네가 원하는 대로 줄게.”“정말이에요?”“그럼! 일단은 부사장으로 일하면 어때?”윤소현은 마음속으로 다 계획이 있었다.부사장이라고 한들 유명무실이니 말이다.정수미에게 자기가 얼마나 잘했는지 말할 것도 있게 되니 더할 나위 없는 계획이었다.“부 사장이요? 저 이제 막 일하기 시작했고 아는 것도 없는데...”함미현은 무척이나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괜찮아. 어차피 다 같이 배우면서 일하는 처지라 괜찮아.”윤소현은 이내 부드러운 모습
오후, 회의 시간.박민정도 함미현을 보게 되었는데 익숙하다는 느낌만 들었을 뿐, 간병인의 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박 팀장님, 여긴 제 친동생 함미현이라고 해요. 앞으로 우리가 하는 얘기를 미현이도 옆에서 들을 거예요. 제가 회사에 없다면 미현이한테 직접 얘기하시면 되고요.”윤소현은 아주 공손한 모습으로 말했다.정수미에게 있어서 함미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는 윤소현이다.따라서 만약 함미현이 박민정 때문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게 된다면 정수미가 절대 박민정을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생각했다.“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회의를 마치고 나서 박민정은 함미현과 정씨 가문의 사이를 알아보라고 했다.그리고 그제야 정수미가 오랫동안 찾아다닌 친딸이 바로 함미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사실을 알게 된 박민정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팀장님, 조금 전에 온 함미현 씨말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팀원이 노크하고 들어왔다.박민정은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윤 대표님은요?”“윤 대표님은 산모에게 있어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면서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비즈니스상으로 무슨 문제라도 있으면 함미현 씨에게 물으시라고 했습니다.”팀원은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맡긴 행위에 어이가 없었다.“그럼, 일단은 우리 회사 규칙대로 해요.”“네.”한편, 함미현 사무실에서.함미현은 어느새 녹초가 되어 있었다.줄지어 들어오는 직원들의 질문 공세에 말이다.“뭐가 이렇게 일이 많은 거야!”부사장으로 일하면 엄청 한가한 줄 알았는데 말이다.그렇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최현아가 또각또각 다가와서 문을 두드렸다.“부 사장님.”함미현은 의혹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누구시죠?”“안녕하세요. 최현아라고 합니다. 윤 대표님과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고요.”“윤 대표님께서 몸이 좀 무거우셔서 먼저 가셨는데, 혹시나 홀로 감당하기엔 버거우실까 봐 저를 보내신 거예요. 좀 도와드리라고요.”최현아는 웃
“박 팀장님?”정수미는 의혹이 들었다.“누군데?”호산 그룹에서 책임성이 없는 사람을 보냈을 리가 없다면서 말이다.“박민정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박민정의 이름 석 자를 듣게 되는 순간 정수미는 바로 안색이 달라졌다.“또 박민정이야?”함미현은 갑자기 일그러진 정수미의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왜... 왜 그러세요?”“박민정이라는 여자가 예전부터 네 언니 자주 괴롭혔었거든. 네 언니만으로 모자라서 이제는 너까지 괴롭히다니! 자기가 무슨 아직도 유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인 줄 아나!”정수미는 유난히 화난 모습을 보였다.옆에서 묵묵히 모든 걸 보고 있던 윤소현은 기다렸다는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엄마, 저 오늘 검사받으러 가느라고 먼저 일어났었거든요. 저도 없고 하여 박민정이 우리 미현이를 부하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막...”“우리 미현이가 부하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딸인데! 미현이가 내 딸이라고 말하지 않았어?”정수미는 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이때 윤소현은 다급히 해석하기 시작했다.“처음 소개할 때부터 제 친동생이라고 했었어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냥 제 말을 무시한 것 같아요.”“널 무시한 게 아니라 우리 정씨 가문을 무시한 거야.”정수미는 본래 잠자코 있으려고 했으나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내일 호산 그룹에 같이 가야겠어! 대체 얼마나 기어오르는지 똑똑히 봐야겠어!”“네, 엄마.”‘박민정, 너 이제 끝이야!’한편, 박민정은 저택에서 유남준을 돌보면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전에 최현아에게 준 프로젝트를 제외하고 나서 또다시 프로젝트 몇 개를 가지고 왔는데, 유성혁은 그 모든 걸 최현아에게 주었다.그 프로젝트들은 모두 박민정이 해외에 있는 고객들과 체결한 것이다.“보스, 최현아가 거의 성공할 때 그분들께 프로젝트에서 빠져나오라고 할게요.”진서연이 전화로 말했다.“그래. 막대한 손실을 보게 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래야 최현아가 기어오르지 않을 거야.”“네!”내일 정수미가 회사로 찾아와
하물며 방성원에게는 이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보배 딸이 있다.유남준은 그런 방성원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알았어.”방성원은 유남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그동안 방성원은 아이의 출산으로 유남준, 김인우와 연락이 뜸해졌었다.바로 그러한 이유로 유남우의 주의력은 방성원 쪽으로 향하지 않은 것이었다.이윽고 방성원은 소중한 보물을 조심스레 내놓듯이 자기 딸을 유남준에게 보여주었다.“남준아, 우리 딸 좀 봐봐. 엄청 예쁘지 않아?”두 뺨만 한 크기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딸의 모습에 사르르 녹아내린 방성원이다.그전까지 유남준처럼 아들만 생기게 될까 봐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예쁜 딸이었다.유남준은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예쁘네.”“그래도 딸이 좋아. 딸이 아빠한테는 최고야. 남준아, 너 앞으로 네 아들 교육 잘해야 할 거야. 남우처럼 저렇게 되게 하지 말고.”방성원은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말했다.앞으로 자기 딸은 무조건 자기한테 효도를 다 할 것이라면서.방성원은 딸에게 뽀뽀하고 싶었지만, 어른에게 있는 세균이 아이한테 옮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딸바보나 다름없는 방성원의 모습에 유남준은 참지 못해 말했다.“나한테도 딸이 있을 거야. 민정이 지금 배 속에 아이가 둘이거든.”“또 아들만 둘이면 어떻게 하려고?”“그럴 리 없어.”“단언하기 힘든 일이야.”방성원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유남준은 점점 안색이 일그러지게 되었다.더는 아들을 안고 싶지 않았고 첫 아이로 딸을 안게 된 방성원이 무척이나 부러웠다.“나 좀 쉬고 싶어. 넌 제수씨한테 가 봐.”‘제수씨’ 석 자에 방성원은 바로 안색이 달라졌다.“알았어.”방성원은 딸을 가정부에게 맡기고서 침실로 돌아갔다.커다란 침대 위에 피부가 하얗고 머리카락은 새까만 여자가 누워있었다.여자는 방성원이 들어오는 것을 들었음도 눈을 뜨지도 않은 채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방성원은 이불을 젖히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이때
“팀장님, 대표이사실의 홍 비서님께서 조금 전에 오셨습니다.”“팀장님 출근하시자마자 바로 대표이사실로 오시라고 하셨습니다.”팀원이 박민정에게 보고를 올렸다.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바로 대표이사실로 가려고 했으나 팀원이 주저하면서 덧붙였다.“지엔 그룹 정 대표님께서 오셨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팀장님께 책임을 물으려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정수미?’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려줘서 고마워요.”이윽고 박민정은 화장실로 가서 어디론가 전화하고 난 뒤 대표이사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사무실 밖에서 몇몇 비서들은 좋은 구경이라도 난 듯이 박민정을 바라보았다.그때 홍주영이 다가와서 귀띔을 해주었다.“정 대표님께서 지금 엄청 화가 나신 것 같은데, 아마 작은딸 때문일 거예요.”박민정은 홍주영이 먼저 다가와서 알려주리라고 생각지 못한 모습이었다.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홍주영에게 인사를 하고서 대표이사실 문을 두드렸다.“들어오세요.”유남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박민정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가장자리에 앉은 유남우가 먼저 보였다.이윽고 소파에 앉아 있는 정수미 모녀 세 사람을 보게 되었다.함미현은 자기가 박민정에게 미안한 일을 한 것으로 죄책감에 시달려 감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그러한 함미현의 모습을 보고서 정수미는 자기 딸이 박민정에게 하도 괴롭힘을 심하게 당하여 무서워서 못 보는 줄로 착각했다.“벌써 10시가 지났네? 호산 그룹 직원들의 복지가 이리도 좋은 건가?”정수미는 늦게 온 박민정을 겨냥하면서 말했다.유남우는 박민정을 한 번 보고서 그 말에 대답했다.“아니요. 박 팀장님은 다른 직원들과 다른 근무 조건으로 보통 3, 4시간만 출근하고 바로 퇴근하거든요.”“역시나 빽이 좋아서 그러한지 참 여러모로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네.”“그러나 우린 지금 비즈니스 관계고 우리 지엔 그룹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거든.”정수미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서류를 가득 꺼내 들었다.“지금까지 해냈다는 게 겨우 이거야?”말하
두 손을 꼭 움켜쥔 박민정은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물었다.“사과하기 싫다면요?”정수미는 고개를 돌려 유남우를 바라보았다.“남우야, 이런 직원을 굳이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하는 수 없이 유남우는 박민정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했다.“박 팀장님, 얼른 사과해요.”박민정은 고사하고 유남우마저 정수미에게 미움을 살 수 없는 처지다. 호산 그룹에 있어서 정씨 가문의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이니 말이다.그리고 정수미의 실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유남우는 잘 알고 있다.마찬가지로 자기의 실력 역시 잘 알고 있기에 정수미로부터 박민정을 지킬 수 없었다.박민정도 그 모든 걸 모를 리가 없어 이를 악물고 윤소현과 함미현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윤소현은 마지못해 사과하는 박민정의 모습을 보고서 득의양양하기 그지없었다.그러나 이대로 박민정을 순순히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듣자 하니 어제 우리 미현이한테 이것저것 엄청나게 시켰다면서? 겨우 사과 한마디에 우리 미현이가 받았던 상처가 사라질 것 같아?”“제가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리시겠습니까?”윤소현은 바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적어도 무릎은 꿇고 사과해야 성의가 보이지 않겠어?”그 한마디에 옆에서 듣고 있던 함미현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윤소현의 옷깃을 당겼다.“언니, 그만해도 돼.”“우리 미현이 이렇게 착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 엄마가 이렇게 나서주지 않았더라면 너 오늘도 쟤한테 당하고 있었을 거야.”함미현에게 말하고 나서 윤소현은 박민정에게 덧붙였다.“지금 무릎 꿇으면 어제 있었던 일은 눈 감아 줄게.”박민정은 그제야 정수미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게 되었다.하지만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내가 언제 시켰다고 그러는 거지?’박민정은 얼렁뚱땅 ‘죄’를 뒤집어쓸 수 없어 무릎을 꿇지 않았다.이윽고 직접 함미현에게 물었다.“미현 씨, 제가 어제 어떻게 괴롭혔는지 또 어떻게 이것저것 시켰는지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순간 들이닥친 질문
“젊은이니까 실수를 하기 마련이에요. 정 대표님, 우리 며느리를 대신해 제가 당신과 당신 딸에게 사과드립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한 가족이잖아요. 게다가 제 며느리는 임신 중이에요.”고영란이 자기와 같은 나이의 여자에게 이렇게 공손하게 대하는 것은 처음이다. 정수미는 고영란이 박민정 대신 사과하는 것을 보고 안색이 많이 좋아졌다.고영란은 또 박민정한테 말했다. “어서 정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사과해. 그러면 정 대표님은 너 같은 철없는 계집애와 따지지 않을 거야.”고영란은 박민정보다 훨씬 원활했다.박민정이 말했다. “미현 씨, 죄송합니다. 분명 오해일 거예요. 정말 죄송합니다.”이렇게 된 이상, 정수미와 함미현은 어쩔 수 없이 사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계속 이 일에 집착한다면 그녀들은 너그럽지 못한 사람이 되는 셈이다. 게다가 정수미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박민정이 진짜 함미현을 괴롭혔다면 감히 함미현에게 대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가서 일해. 정 대표님과 할 말이 있어.”“네.”박민정이 자리를 떠났다.그녀는 대표이사실에 오기 전에 고영란에게 전화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오늘 일은 쉽게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윤소현은 박민정이 아무 일 없는 것을 보고 달갑지 않아 했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박민정의 뱃속에 두 아이가 없었더라면 고영란은 박민정의 편을 들지 않았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소현아, 동생 데리고 회사 구경 많이 해. 네 엄마랑 얘기 좀 할게.”고영란이 말했다.윤소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일어섰다. “네.”그녀는 함미현을 데리고 떠났다.한미현은 윤소현의 뒤를 따르며 민망해서 말했다. “언니, 오늘 저 때문에 고생했어요.”윤소현은 눈을 희번덕이며 말했다. “아니야. 하지만 앞으로는 네가 알아서 처리해야 해. 남들이 너를 그렇게 괴롭히는데 가만있으면 어떡해?”“알겠어요.”함미현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윤소현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조금의 경계심도 없었다.
최현아는 말을 마치고 앞으로 다가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계약서를 뺏으려 했다.계약서를 빼앗은 최현아는 5팀 직원들에게 말했다. “이런 팀장을 따르려니 빨리 나가는 게 좋겠어.”최현아는 득의양양해서 떠났다.5팀 직원들은 매우 화가 났다. 박민정이 어렵게 해낸 해외 프로젝트를 최현아가 뺏었으니 말이다. 직원들은 잇달아 단톡방에서 박민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팀장님, 우리 같이 사직서 내요. 이런 회사는 다닐 필요가 없어요.][맞아요, 너무 불공평해요.][호산 그룹은 대기업이라서 경영을 잘할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가족 사업이네요.][대표님이 바뀌어서 그런가 봐요. 전에 유남준 대표님이 있을 때 이런 일이 전혀 없었잖아요.]그들은 단톡방에서 불만을 호소했다. 박민정은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먼저 참으세요. 시간을 좀 주면 제가 꼭 잘 처리할게요. 절대로 내 팀원들이 헛되이 괴롭힘을 당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박민정은 지금의 유남우는 유남준과 아주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유남준은 스스로 노력해서 대표의 자리에 올랐고 그 후에도 온갖 수단을 써서 가까스로 자리를 지켰다.유남우가 호산 그룹의 대표로 된 것은 순전히 그가 유남준의 동생이고 잘생긴 얼굴 때문이다.그는 지금 그룹을 맡고 있긴 하지만 아직 불안정한 상태라 유씨 가문의 사람들을 움직일 수 없다. 특히 유명훈 말이다. [팀장님께서 이렇게 말하니 우리는 말을 들어야죠.]한 사람이 말했다.다른 사람들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팀장님 말을 듣자고요.][자, 계속 일합시다. 이번 달에도 마케팅부 실적 1위를 따내야 해요.”박민정은 팀원들이 이렇게 빨리 의욕을 되찾는 것을 보고 덩달아 기뻐했다.하지만 그녀는 부서에 스파이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박민정은 누가 스파이인지 알고 있다.최현아는 역시 단톡방에서의 채팅 메시지를 보았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직원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는지 봐야겠다.”유성혁은 최현아의
정수미는 동하의 당뇨병이 유전이라는 말에 깊은 혼란에 빠졌다.‘동하가 미현이에게서 유전된 거라면 미현이 역시 윗세대에서 유전된 거 아닌가? 하지만 나랑 그 사람 가족 중 당뇨병은 없는데...’표정이 굳어진 정수미는 이내 마음을 다잡으며 겉으로나마 함미현을 위로했다.“미현아, 너무 자책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어떤 엄마든 자기 자식이 건강하기를 바라지 그렇지 않은 엄마는 없단다.”함미현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삼켰다.“네.”정수미는 함미현의 슬픈 눈빛을 바라보며 죄책감을 느꼈다.‘내가 어떻게 우리 딸을 의심할 수 있지? 미현이는 분명 내 딸이야.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나 겨우 찾은 딸인데 다시 잃을 순 없어.’“선생님. 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습니다. 제 손자의 건강만 찾아주신다면 선생님과 이 병원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톡톡히 보상해 드리겠습니다.”“걱정하지 마세요. 정 대표님. 저희는 최선을 다해 도련님의 건강을 찾아드릴 것입니다.”정수미가 고개를 끄덕였다.윤서현은 아무 말 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그녀는 이곳에 있는 게 지겨웠다.‘내가 왜 남의 아이를 위해 여기 있어야 하지? 남우 씨 혼자 회사에서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 박민정이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남우 씨에게 접근하지는 않겠지?’“엄마, 미현이도 많이 지쳤을 테니 얼른 가서 쉬세요. 의사도 동하 꼭 낳게 해주겠다고 했잖아요.”정수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함미현을 걱정했다.“가자, 미현아. 동하는 병원에 맡기고 우리도 밥 먹으면서 조금 쉬자.”“네.”두 사람은 나란히 병원을 나섰다.윤소현은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모녀 같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저도 모르게 질투심이 솟은 그녀는 함미현을 바로 폭로해 버리고 싶었다.만약 함미현의 정체를 폭로한다면 정수미는 끝없이 친딸을 찾으려 할 것이다.‘안돼. 이제 와서 폭로할 수는 없어. 계속 친딸을 찾다가 정말 박민정까지 조사하면 어떻게 해?’지금 정수미가 함미현에게 보이는 태도로 보았을 때, 박민정이
박민정도 유성혁의 일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크게 궁금한 건 없었다.다만 어젯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차로 그들을 치려고 했던 사람이 누군지 궁금할 뿐이었다.‘남준 씨가 조사하고 있겠지.’예상대로 유남준은 이미 병원에 있었다.유성혁 병문안을 왔다는 명목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그 가족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방문이었다.겁에 질린 최현아는 다리마저 후들거렸다.유석진도 내심 두려움을 느끼면서 겉으로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안부를 건넸다.“남준아, 우리는 한 가족 아니냐. 내가 너를 해칠 리가 있겠느냐?”“맞아요. 우리 가족 모두가 남준 씨가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만을 바라고 있어요.”유남준은 그들의 비굴한 모습에 지겨운 표정을 지으며 단호히 말했다.“다음은 없어요.”말을 마친 유남준이 병실을 나섰지만 병실에는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맴돌았다.유성혁은 아버지의 손을 꽉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저 너무 무서워요.”“두려워하지 마. 아빠가 있잖니. 그 녀석이 너를 해치지는 못할 거다.”유석진은 아들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그조차도 자신이 없었다.유남준이 돌아온 후, 그가 어떤 존재인지 유석진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한편 최현아는 이들 부자의 나약한 모습에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그녀는 핑계를 대고 병실을 나섰다.핸드폰을 꺼내자 윤소현이 보낸 문자가 있었다.[회사에 계세요?][아니. 병원에서 남편 돌보고 있어. 무슨 일이야?][그냥 물어본 거예요.][요즘 회사에서 잘 안 보이던데 임신이 힘들어서 그래? 아무리 그래도 조심해. 우리 남편도 박민정 그년 때문에 큰 피해를 봤잖아.]최현아가 일부러 불을 지폈다.윤소현도 최현아의 뜻을 알았지만 모른 척 차분하게 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남우 씨는 아주버님이랑 달라요. 저는 그 사람 믿어요.]윤소현이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지만 최현아는 담담한 척하는 윤소현을 속으로 조롱하며 문자를 이어갔다.[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하지. 박민정
에리는 지금 자신감이 넘쳐흘렀다.그는 사지가 멀쩡하고 아무런 장애도 없으며 외모와 집안까지 훌륭했기에 유남준보다 못할 리 없다고 믿고 있었다.매니저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직접 부딪혀봐야 포기하겠지.’...두원 별장.박민정은 기분을 가라앉힌 후 침대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자신이 왜 울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거실로 나오자 유남준이 이미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그가 고개를 들어 박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어서 와서 아침 먹자.”“안 먹을래요. 출근할게요.”말을 마친 박민정이 나가려 했지만 유남준이 그녀를 막아섰다.“아침은 먹고 가.”그의 태도를 보니 자신이 먹지 않으면 보내줄 것 같지 않자 박민정은 마지못해 식탁에 앉아 대충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계속 박민정을 지켜보던 유남준은 그녀의 눈가가 여전히 붉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말실수를 자책했다.의사가 임산부가 화내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했다.“많이 먹어. 앞으로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유남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박민정은 자신을 낮추는 유남준의 태도에도 여전히 쌀쌀맞게 대꾸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알아서 사면 돼요.”그녀는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다 먹었으니 출근할게요.”유남준은 그녀가 또 화낼까 봐 두려워 차마 다시 막아서지 못했다.그는 멀어지는 박민정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그 시각, 서다희도 두원 별장에 유남준을 데리러 왔다.그는 불편한 심기로 별장에서 나오는 박민정을 바로 마주했다.“사모님, 좋은 아침입니다.”서다희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박민정은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서다희를 바라보았다.“서 비서님, 저는 이미 대표님과 이혼했어요. 그러니 앞으로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민정 씨라고 불러주세요.”서다희는 순간 당황했다.‘왜 이렇게 화가 나신 거지? 어젯밤까지만 해도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잘 설득해서 성공적으로 별장에 머물게 했다고 하지 않으셨
“그 사람은 널 가지고 놀고 싶은 마음뿐일 수도 있어! 책임지지 않아도 되잖아.”유남준의 한 마디가 마치 마법처럼 박민정의 귀에 맴돌았다.그녀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절 그렇게 보고 있었군요... 왜 재결합은 안 하냐고 계속 물었었죠? 이제 그 이유를 알겠어요? 남준 씨가 생각하는 저는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감정을 농락당하는 여자일 뿐이죠. 유남우, 에리, 연지석... 주위에 남자가 셋이나 있어서 속으로는 절 천한 여자로 생각하고 있죠? 아이도 있으면서 그 남자들이랑 얽힌다고 말이에요.”박민정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당시 유남준은 박민정과 연지석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고 오해하고 있었다.다른 건 몰라도 해외에서 지낸 5년 동안 박민정은 연지석과 손도 잡은 적 없이 친구로만 지냈었다.유남준은 박민정의 붉어진 눈가를 보고 나서야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았다.그는 바로 박민정을 품에 안으려고 했다.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어쩌면 억울해서일지도 몰랐다.‘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남자는 남준 씨뿐이었는데... 하지만 남준 씨는 마음속으로 내가 다른 남자와 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네.’“됐어요. 그냥 그런 걸로 해요. 놔 주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유남준의 어깨는 박민정의 눈물로 젖어 있었다.그는 당황한 채 조심스럽게 박민정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울지 마. 내가 말실수했어.”그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박민정을 달래려 했다.임신 중이라 그런지 안 그래도 감정 기복이 심했던 박민정은 그의 말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비켜요. 집 가고 싶어요.”그녀는 유남준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이런 상황에서 유남준이 순순히 그녀를 보낼 리가 없었다.“조금만 진정하고 밥부터 먹자. 일단 밥 먹고 다시 얘기해.”유남준은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후회하고 있었다.사실 유남준은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떠나 다른 사람과 함께 할까 봐 두려웠다.유남준은 다시 그릇을 가져와 박민정에게 죽을 먹이려 했다.박민
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안겨 있었기에 그의 깊고 어두운 눈빛이 변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당연히 너는 나와 함께 있어야 해. 내가 죽기 전까지는 말이야.”유남준은 단호하게 한 마디씩 끊어서 말했다.유남준이 과거에 이혼을 결심했던 이유가 자신이 시력을 잃고 박민정의 인생에 지장이 될까 봐서였다. 그 당시 그는 장애를 가진 자신과 죽은 자신은 다를 바 없다고 여겼었다. 박민정은 유남준의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유남준의 어깨를 힘껏 내리쳤다.“내가 누구랑 함께하든 그건 내 마음이에요. 남준 씨는 이제 내 남편도 아니잖아요. 상관하지 말라고요!”물론 박민정도 그 말이 진심이 아니었다.아이 둘을 키우고 배 속에 셋째를 품고 있는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나 아이들에게 새아빠를 만들어줄 수는 없었다.더군다나 박민정은 자신의 현재 상황으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박민정은 굳이 남자에게 기대지 않고 자신도 아이들을 충분히 잘 키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단순히 유남준을 약 올리려 했을 뿐인데 유남준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는 갑자기 그녀를 안아 올리고는 침실 쪽으로 걸어갔다.박민정은 안간힘을 다해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화를 내며 발버둥 쳤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박민정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전 10시가 넘었다.어젯밤 너무 피곤했고 유남준은 정말 미친 사람 같았다.‘내가 임신 중인데도... 정말 미쳤어.’ 박민정은 이불을 끌어안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유남준은 박민정을 위해 아침을 준비한다며 자리를 비운 지 한참이나 지났다.30분쯤 지나자 유남준이 커다란 밥그릇에 담긴 뜨거운 죽을 들고 나타났다.“배고플 테니까 먼저 죽부터 좀 먹어.”그 죽은 새벽에 유남준이 특별히 요리사에게 전화해서 준비한 것이었다.박민정은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유남준은 이러는 박민정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
박민정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급히 수건을 집어 자신의 몸을 가리며 말했다.“미안해요...”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유남준을 때려버렸다.갑자기 뺨을 맞은 유남준은 약간 얼어붙은 듯 멍해졌다.“괜찮아. 방금 다친 데는 없지?”그의 물음에 박민정은 더욱 미안해졌다.“아니요. 다치진 않았어요. 그냥 실수로 샤워 젤을 떨어뜨렸어요.”유남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안심했지만 곧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앞으로 샤워할 때 내가 곁에 있어 줄게.”“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박민정은 얼굴이 빨개지며 수건을 단단히 잡고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유남준을 바라보았다. 유남준은 마치 도둑놈을 경계하듯 자신을 경계하는 듯한 박민정의 모습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누가 봐도 두 사람은 이미 두 번째 아이를 함께 가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역시 처음에 날 유혹한 건 아이 때문이었겠지.’박민정은 수건을 정리한 후 재빨리 잠옷을 꺼내 입었다.“됐어요. 이제 자러 가요.”“응.”유남준은 박민정을 따라 움직였다.박민정은 휴대 전화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유남준도 자연스럽게 그녀와 같은 방으로 들어섰다.“남준 씨는 다른 방에 가서 자요.”박민정이 단호하게 말했다.“여긴 밤에 도와줄 보모도 없잖아. 내가 너랑 같이 자면 혹시 네가 배고프거나 뭐 먹고 싶으면 바로 해줄게.”유남준의 말을 들은 박민정은 그의 요리 실력을 떠올리며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됐어요. 차라리 배고픈 게 나아요.”박민정은 임신 중이라 자주 배가 고팠다.특히 여느 때처럼 밤에 갑자기 먹고 싶어지면 곧바로 먹을 걸 준비해야 했다.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참기로 마음먹었다.유남준은 박민정의 반응에 목이 메는 듯 답답함을 느꼈다.“그렇게까지 나랑 같이 있기 싫어?”유남준은 깊은 눈빛으로 박민정을 바라보면서 물었다.박민정은 그의 시선에 약간 흔들렸다. “말했잖아요. 우리 이미 이혼했고 앞으로는 아이들 때문에 가족 같은 친구로 지내면...”박민정이
욕실 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속으로 유남준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그의 훤칠한 몸매가 한눈에 들어오자 박민정은 무심코 한 번 보고 말려다 그만 몇 번 더 훔쳐보고 말았다.그녀가 넋을 놓고 있던 그때 유남준이 재빠르게 수건을 집어 들고 욕실에서 나왔다. 박민정은 급히 시선을 돌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유남준은 그녀의 시선을 이미 느꼈는지 다가오면서 말했다. “다 봤어?”박민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뭘 봤다고 그래요? 난 남준 씨를 안 훔쳐봤다고요.”“난 휴대 전화 본 거 물어본 건데.”유남준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근데 언제 날 훔쳐본 거야? 조금 전에?” 박민정은 고개를 푹 숙이며 그제야 자신이 자백해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그냥... 욕실 문이 열려 있어서 몇 번 본 것뿐이에요.”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뭐 어차피 예전에 다 봤던 거잖아요. 딱히 볼 것도 없고.”“그래? 근데 왜 날 똑바로 못 쳐다보는 거야?”유남준의 목소리는 낮게 울렸고 그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박민정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방금 샤워를 마친 그의 짧은 머리카락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눈빛은 사람을 빨아들일 듯 강렬했다.박민정은 그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유남준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고 단단한 상체가 한눈에 안겨 왔다.“뭐가 못 볼 게 있다고? 보면 또 어때요...”박민정은 말하면서도 손을 들어 그의 복근을 슬쩍 만졌다.“촉감 괜찮네요. 별로 변한 것도 없네요.”말을 마친 박민정은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걸 느끼며 급히 욕실로 걸어갔다.“나 씻을 거니까 방해하지 마요!”유남준은 그녀가 빠르게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만졌던 복부가 간질간질했다.그는 소파로 돌아와 앉으며 박민정의 휴대 전화를 집어 들었다.화면에는 막 도착한 메시지가 떠 있었다.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에리였다.[에리:
유남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박민정은 휴대 전화를 들고 곧장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그녀는 박윤우에게 다시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친구들 단체 채팅방이 난리가 났다.[민수아: 민정아, 지금 유남준이랑 같이 있는 거야? 너희 화해한 거야?][진서연: 보스, 임신 중이니까 조심해야 해요. 제 듣기로는 임신 중에는... 그게... 그러니까... 알잖아요.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대요.][설인하: 민정 씨, 절대 남자의 잘생긴 얼굴이나 달콤한 말에 넘어가면 안 돼요. 처음에 왜 이혼했는지 생각해 봐요.][설인하: 결혼이라는 무덤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다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면 안 돼요.][민수아: 인하 씨 말이 맞아. 만약 다시 유남준을 받아들일 거라면 신중하게 결정해.][진서연: 맞아요. 너무 빨리 모든 걸 줘버려서는 안 돼요.]박민정은 쏟아지는 메시지를 보고 울지도 웃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친구들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 걸 알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박민정: 걱정하지 마. 나 다 알고 있어. 절대 억울한 일 당하지 않을게.]하지만 친구들은 여전히 안심하지 못했다. 특히 설인하는 한 번 더 당부했다. [설인하: 오늘 밤 꼭 혼자 자야 해요.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박민정: 알았어요.]박민정이 답장을 보냈다.두원 별장 1층.유남준은 박민정이 내려오길 계속 기다렸지만 그녀는 한참 동안 내려오지 않았다.박민정은 위층에서 친구들을 안심시키고 박윤우도 달래고 나서야 침실 문을 열고 나왔다.박민정이 나왔을 때 유남준은 막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화면에는 서다희와의 대화가 떠 있었다.[대표님, 잘하셨어요. 계속 밀고 나가세요. 그리고 남자는 얼굴이 좀 두꺼워야 해요.][알았어.]서다희는 또 다른 메시지를 보냈다.[참, 조금 전에 제가 수아랑 얘기했는데 민정 씨가 대표님과 지금 같이 있다고 들었어. 민정 씨를 얻으려면 민정 씨의 친구들도 챙겨야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민정 씨의 친구들이 옆에서 대표
유남준은 박민정의 고집스러운 뒷모습을 보고 몇 걸음에 그녀를 따라잡고 망설임 없이 들어 올렸다.박민정은 자신이 갑작스럽게 허공에 떠오르자 본능적으로 한 손으로 그의 팔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배를 감싸안았다.“뭐 하는 거예요? 빨리 내려놔요!”박민정은 깜짝 놀랐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돌아가고 싶다며? 내가 안고 데려다줄게.”유남준의 태도에 박민정은 황당했다.“뭐라는 거예요? 이러고 돌아가려면 몇 시간은 걸리겠어요!”“장난 아니야. 안고 가면 적어도 멀미는 안 하잖아.”유남준은 그녀를 안고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박민정은 처음엔 그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그러나 그가 두원 별장을 벗어나 다른 별장 구역까지 걸어가자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박민정은 얼굴이 화끈거려 어디든 숨고 싶었다.“그... 그냥 차를 부르죠. 참을 수 있어요.”“안 돼. 네가 참을 수 있어도 우리 아이는 못 참아. 괜찮아. 이렇게 걸어서 가면 딱 잘 시간이야.”유남준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고 박민정은 정말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얼굴을 그의 가슴에 묻으며 말했다. “계속 이러면 정말 화낼 거예요.”유남준은 그제야 걸음을 멈췄다. “그럼 집으로 갈까? 오늘 밤만 여기 있고 내일은 꼭 데려다줄게.”박민정은 유남준의 태도를 보니 오늘은 보내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어차피 하룻밤뿐이니 괜찮을 거야.’박민정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하지만 다음에는 이러지 마세요.”그러자 유남준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서다희가 한 말이 맞았다.‘역시 남자는 얼굴이 두꺼워야 해.’그는 서둘러 발걸음을 돌려 두원 별장으로 돌아왔다.박민정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사람들이 보는 게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두원 별장에 도착하자 박민정은 유남준에게 자신을 내려놓으라고 했다.그리고 박민정은 꽃밭을 바라보며 물었다.“이 꽃들은 언제 심은 거예요?”“이틀 전에.”박민정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장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