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원 별장박민정이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기 바쁘게 별장 안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윤우 도련님, 이건 던지면 안 돼요. 이건 사장님이 제일 좋아하는 골동품인데…”‘쟁그랑!’또 하나의 비싼 도자기가 박살 났다. 조각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이를 본 박민정이 쏜살같이 달려갔다.박민정이 돌아온 걸 본 가정부들은 구세주를 본 것처럼 기뻐했다.“사모님, 드디어 돌아오셨네요. 윤우 도련님이 한창 화를 내고 있어요. 아무리 말려도 안 돼요.”‘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무슨 일이지?’박민정은 다급히 안쪽으로 들어갔다.박민정의 뒤를 이어 추경은이 따라 들어왔다.경비원한테 박민정과 함께 온 거라고 뻥 치면서 들어왔다.지금 거실은 물론, 주방, 서재까지 온통 수라장이 되었다.“도련님, 노트북은 물로 씻으면 안 돼요!”가정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박민정이 소리에 따라 뛰어갔을 무렵 노트북이 이미 세면대 물속에 빠져있었다.“박윤우!”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신나게 집안 물건들을 작살내고 있던 박윤우는 박민정의 고함에 깜짝 놀라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박민정을 올려다보았다.“엄마, 왔어요?”박윤우는 엉거주춤하면서 자그마한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박민정의 두 눈은 노여움으로 이글거렸다.박윤우는 태어나서부터 몸이 늘 안 좋아 박민정이 애지중지 길러왔다.“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박민정이 돌아오면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저지른 일이었지만, 막상 닥치니 부쩍 당황했다.거짓말하고 싶었지만, 박민정의 두 눈과 마주치는 순간 김빠진 공처럼 풀이 죽어 서 있었다.박민정은 스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가가서 물었다.“왜 행패 부려?”박윤우는 머리를 떨구고 아무런 변명도 안 했다.이런 박윤우를 지켜보는 박민정은 가슴이 짜릿하게 아팠다.하지만 행패 부리는 애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얘기해 봐. 대체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그제야 박윤우는 말문을 열었다.“엄마, 윤우는 알고 있어요, 저 사람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알콩달콩하더니 벌써 이혼하다니?’추경은은 유남준이 박민정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니 언젠가는 이혼으로 끝날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웃음이 흘렀다.윤우의 손목을 잡고 서재에서 뛰쳐나오던 박민정은 추경은과 마주쳤다.그녀는 너랑 할 말이 없다는 듯 윤우의 손을 잡고 두원 별장을 떠나려 했다.“어머, 새언니. 이렇게 늦은 밤에 어딜 가려고요?”추경은이 가식을 떨었다.“저리 비켜!”박민정이 쌀쌀하게 쏘아붙였다.“부부싸움에 툭 하면 가출하는 건 애한테 안 좋아요.”추경은의 심보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박민정은 상대도 하기 싫어서 외면했다.박민정은 정민기에게 바로 전화해서 박씨 가문 옛 저택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박민정이 떠난 후 추경은의 입꼬리는 잔뜩 올라갔다.추경은은 컵을 가져와 더운물을 받았다.이를 본 가정부가 말했다.“제가 사장님한테 가져다드릴게요.”가정부는 추경은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종래로 가사 도우미를 사람으로 취급한 적이 없었다.사모님과 윤우 도련님이 집을 비웠으니 대신 특별히 이 여자를 방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추경은은 두 눈을 부릅뜨며 욕설을 퍼부어 댔다.“넌 뭐야? 꺼져! 이 집에 여주인이 바뀐 거 안 보이냐?”가정부는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얼굴이 두꺼워도 분수가 있어야지요. 사모님과 사장님은 아직 이혼 안 했어요. 그들 사이엔 애들도 있고요.”이에 추경은은 픽 웃었다.“방금 못 들었어? 둘이 내일 당장 이혼 한다고 말했잖아! 어디서 오지랖은! 내가 이 집 여주인이 되면 너부터 해고 할 거야.”말이 끝나기 바쁘게 막아선 가정부를 확 밀쳐내고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그러고는 서재의 문 앞에 서서 노크했다.“누구야?”“오빠, 저예요”그녀는 목청을 가다듬어 말했다.“오빠, 물 좀 마셔요.”지난번의 일을 겪고 난 유남준은 추경은이 준 물을 마실 리가 없었다.“저리 비켜!”말하면서 추경은의 손을 화다닥 밀쳐냈다.더운물이
박윤우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응, 알고 있어.”모든 걸 떠나서 자기 엄마만큼은 그 어떠한 상처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그런 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박민정은 이마에 뽀뽀하면서 진심으로 사과했다.“윤우야, 미안해. 아까 두원 별장에서 엄마가 이유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너한테 소리 질러서 미안해. 엄마가 진심으로 사과할게.”그러자 박윤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엄마, 사과할 필요 없어. 지금까지 엄마한테 화 난 적도 없었고 앞으로 화가 날 일도 절대 없을 거야.”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포근한 봄바람이 스쳐 가듯이 마음은 이내 따뜻하고 흐뭇하기만 했다.두 아들을 낳은 것이야말로 이번 생에서 가장 잘한 일인 것 같았다.두 아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버텼고 더 열심히 살아가게 할 동력이기도 하니 말이다.때로는 든든한 아들로 때로는 다정한 ‘딸’로 곁을 지켜주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침실로 박윤우를 보내고 나서 박민정 역시 자기 침실로 돌아왔다.어찌 됐든 안정적인 숙면을 유지해야 하는 시기이니 말이다.임신한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파동이 너무 심해도 안 된다.유남준이 이상한 행동을 하고 미친 소리를 하더라도 절대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한편, 방안에서.민수아는 그만 참지 못하고 약혼자 서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민정이랑 너희 대표님 혹시 싸웠어?”다짜고짜 들려오는 질문에 서다희는 의아하기만 했다.“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오늘 윤우까지 데리고 박씨 가문 본가로 왔거든. 보통 여자가 애를 데리고 친정으로 오는 건 백이면 백 남편이랑 싸워서 오는 거야.”민수아는 결코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박민정에게 다른 속사정이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계속 캐묻기에는 실례인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던 것이었다.서다희는 민수아의 말을 듣고서 답을 하기보다는 당부부터 했다.“임신한 상황에 윤우까지 챙기랴 사모님께서 매우 힘드실 거야. 그러니 수아 네가 시간 되면 옆에서 좀 잘 챙겨드려. 절대 그
“남준 오빠, 우리 언제 출발해?”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추경은이 옆에서 물었다.“9시 후에.”박민정에게 알린 시간은 9시 30분이었다.확실한 답을 듣고 난 추경은은 마침내 마음이 놓이게 되었다.속으로는 기뻐해 마지 못하고 있으나 겉으로는 위하는 척하면서 물었다.“근데 이혼이 무슨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영란 이모한테 알려야 하는 거 아니야?”“이혼하고 나서.”유남준은 당연히 유씨 가문 모든 사람에게 알리려는 생각이었다.아니면 그 누구도 모르게 되니 말이다.더욱더 확실한 답을 얻게 되자, 추경은은 두 사람의 ‘인연’이 정말로 끝을 맺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하긴, 오빠가 이혼하든 결혼을 하든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등을 의자에 기대고 앉은 유남준은 추경은이 계속 옆에서 중얼거리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입 아프지 않아?”그 말에 추경은은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뻘쭘하기 그지없었다.한쪽에 있던 가정부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하여 바로 손으로 입을 막았다.그 누가 보더라도 추경은에 대한 유남준의 마음은 뻔했다.엄청나게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하지만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뻔뻔한 것인지 추경은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남자보다는 여자가 마음에 드는 상대를 추구할 때 더 쉽다면서.언젠가는 넘어오게 되어 있다면서.마침내 9시가 되었고 추경은 바로 유남준 따라서 차에 올랐다.부 좌석에 앉아 있던 서다희는 차에 오른 추경은을 보고서 마냥 이상하기만 했다.“추경은 씨는...”하지만 서다희가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유남준이 말을 끊어버렸다.“내가 같이 가자고 했어.”서다희는 그 말을 듣고서 더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시는지...’9시 20여 분쯤, 차는 가정 법원 앞에 이르렀다.이미 가정 법원에서 유남준을 기다리고 있었던 박민정이 보였다.서다희는 박민정의 뒷모습을 보고서 유남준에게 알려주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이미 도착하셨습니다.”“응.”
이혼 서류 전담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세 사람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물론 추경은은 바로 유남준의 옆자리에 뻔뻔하게 보란 듯이 앉았다.사무실 직원은 유남준과 추경은의 모습을 보고서 그동안 봐왔었던 모든 막장 드라마 속의 장면을 떠올렸다.심지어 일부러 추경은에게 뼈 때리는 말까지 했다.“남의 가정 파탄 내고 자기 행복 챙기려는 사람들 결말이 다 좋지는 않았어요. 그동안 봐 온 것에 따르면 해피 엔딩이 아니라 하나같이 새드엔딩을 맞이했었고요.”추경은은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제가 남의 가정을 파탄 내기라도 했다는 거예요?”직원은 그런 추경은의 말에 상대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오랫동안, 이 직업에 종사해오면서 직원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누가 본처이고 누가 제3인지를 말이다.유남준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추경은에게 말했다.“밖에서 기다려.”“근데 오빠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민정 씨가 무슨 꼼수라도 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추경은은 유남준의 모든 재산이 박민정에게 넘어갈까 봐 두려웠다.벌컥 화를 내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유남준은 추경은을 타일렀다.“여기 직원분들도 계시잖아. 그래도 걱정되면 너 나가고 서 비서 들어오라고 해.”“알았어.”추경은은 그제야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추경은이 나가고 나서야 직원은 본격적으로 이혼 서류를 준비해주기 시작했다.절차대로 일단은 두 사람의 재산에 대해서 알아보았다.그때 유남준은 미리 작성해 놓은 이혼 합의서를 꺼내 들었다.“이거 한 번 봐봐. 괜찮으면 이걸로 하자.”이혼 합의서를 건네받은 박민정은 바로 확인해 보았다.두원 별장을 비롯한 자동차 소유권까지 모두 박민정에게로 넘긴다고 적혀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이혼 위자료로 2조를 덧붙여 준다고 했다.이혼 위자료로 2조나 내놓는다는 것은 아마 진주시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을 것이다.박민정은 본래 유남준이 몇억만 주면서 자기를 내보내려고 하는 줄 알았었다
유남우가 입을 열었다.“민정아.”유남준과 똑같은 얼굴을 하는 유남우를 보게 된 순간 박민정은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되어버렸다.“네.”대답만 한 박민정, 유남우와 더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비 오고 있어. 얼른 차에 타. 감기 걸려.”발걸음을 멈추려고 하지 않는 박민정을 보고서 유남우는 다급히 덧붙였다.그 말에 박민정은 약간 멈칫거렸지만, 유남우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보슬비라 괜찮아요. 천천히 걸어가면 되니 그만 가 봐요.”이윽고 박민정은 계속 앞으로 걸었다.이때 유남우는 차에서 내려 바로 박민정을 향해 걸어가 팔을 확 잡아당겼다.“이런 식으로 너 아프게 하지 마.”박민정은 유남우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유남우는 더욱 꼭 움켜쥐곤 했다.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민정아, 그 사람 때문에 널 이렇게까지 망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박민정은 더는 발버둥을 치지 않고 비를 맞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여기서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얼마 걸리지 않아요. 비도 뭐 펑펑 쏟아지는 게 아니라 괜찮아요.”“타!”유남우는 다시 한번 어세를 높여 말했다.하지만 박민정은 이를 악물고 제자리에 서서 버텼다.그 모습을 보고서 유남우는 두말하지 않고 바로 박민정을 들어 안아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순간 박민정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이렇게까지 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말이다.“남우 씨!”“출발하세요.”유남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그렇게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강제로 차에 오르게 된 박민정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게다가 자기도 모르게 자꾸 곁눈으로 유남준과 똑같이 생긴 유남우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모든 것이 언짢아 박민정은 아예 눈을 감아 버리고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유남우는 박민정이 아픈 줄 알고 손등으로 이마 온도를 체크해 보았는데, 열은 나지 않았
그 말을 듣게 된 순간 유남준은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 오면서 눈빛마저 어두워졌다.하지만 그 또한 잠시 유남준은 바로 덤덤한 모습을 보였다.“알았어. 앞으로 그런 일은 보고하지 않아도 돼.”유남우와 박민정이야말로 진정한 죽마고우이니 말이다.그뿐만 아니라 박민정이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사람은 유남준이 아니라 유남우였다.처음부터 박민정과는 거리가 멀었던 유남준이었다.만약 수술에 실패하게 된다면 박민정이 의지할 만한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그 사람이 유남우이든 연지석이든 박민정에게 잘해주기만 하면 되는 유남준이다.서다희는 유남준의 말을 듣고 난 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유남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만약 유남준과 마찬가지로 수술을 받게 되는 상황이 닥치게 된다면 서다희 역시 우선 민수아와 헤어질 것으로 생각했다.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이 서다희는 단언할 수 없었다.민수아가 변함없이 자기를 사랑해 줄 수 있는지 말이다.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떠나 민수아가 힘들고 아파하는 것을 볼 수 없었을 것 같았다.어느새 회사에 도착한 두 사람.유남준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회사의 남은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전에 YN그룹을 박민정에게 넘긴다고 했었는데, YN그룹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많고 앞으로도 여러 상황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지금 바로 넘기기에는 적합한 시기가 아니다.하는 수 없이 유남준은 모든 걸 서다희에게 맡겨 처리하도록 했다.“난 다음 주 월요일에 수술받으러 가야 해. 앞으로 IM 그룹의 모든 걸 서 비서한테 맡길게.”서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제가 잘 책임지고 열심히 하겠습니다.”서다희 역시 이미 생각을 마친 상황이다.유남준이 바보가 되든 아니든 끝까지 유남준의 비서로 남겠다면서.“그래.”다들 바삐 돌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한 통이 걸려 들어왔다.전화를 받자마자 고영란의 책문이 들려왔다.“너 민정이랑 이혼했어?”“네, 오늘 저녁에 알려드리려고 했는데, 저보다 먼저
‘내 편?’고영란의 말을 듣고 있던 박민정은 고영란이 결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해가 섭섭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필경 유씨 가문의 핏줄이고 친손자이니 말이다.“네, 알고 있어요. 그렇게 할게요.”박민정은 고영란의 말대로 일단 남기로 했다.그러나 결코 고영란의 말 때문이 아니라 유남준 때문이었다.대체 무슨 이유로 꼭 이혼하려고 했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만약 정말로 자기가 싫어지고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면 그땐 먼저 떠날 것이라고 마음도 먹고 있었다.‘정말로 사랑하지 않아서 이혼하자고 한 거라면 나 절대 너한테 질척이지 않을 거야.’시원시원하게 대답한 박민정에게 고영란은 바로 계좌로 돈을 보내주었다.“얼마 되지는 않지만, 용돈으로 쓰도록 해.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바로 먹고. 부족하면 나한테 전화해.”그 돈 역시 박민정은 거절하지 않았다.고영란은 아이들이 할머니이고 할머니가 손자한테 주는 돈이니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예전과 같았더라면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쓴소리를 듣게 되었고 구박을 당하게 되었는데 말이다.“네, 고맙습니다.”“그래. 몸 잘 챙기고 있어.”고영란은 그렇게 한참이나 박민정을 다독이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고 나서 계좌를 확인해 보니 100억이 입금되어 있었다.용돈으로 자그마치 100억이나 준 고영란이다.그리고 박민정은 용돈 100억을 따로 저축해 두었다.지금 박씨 가문 본가에는 박민정 혼자뿐이다.민수아는 출근하러 갔고 박윤우는 유치원에 갔다.홀로 남은 박민정은 테라스에 있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지그시 두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에서 때때로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도저히 잠이 오지 않은 박민정은 도착한 메시지들을 확인해 보았는데, 마케팅 5팀 채팅방에서 열띤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박 팀장님, 저 오늘 두건이나 해냈어요.][축하드려요. 저 오늘 한 건밖에 못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