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준 오빠, 우리 언제 출발해?”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추경은이 옆에서 물었다.“9시 후에.”박민정에게 알린 시간은 9시 30분이었다.확실한 답을 듣고 난 추경은은 마침내 마음이 놓이게 되었다.속으로는 기뻐해 마지 못하고 있으나 겉으로는 위하는 척하면서 물었다.“근데 이혼이 무슨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영란 이모한테 알려야 하는 거 아니야?”“이혼하고 나서.”유남준은 당연히 유씨 가문 모든 사람에게 알리려는 생각이었다.아니면 그 누구도 모르게 되니 말이다.더욱더 확실한 답을 얻게 되자, 추경은은 두 사람의 ‘인연’이 정말로 끝을 맺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하긴, 오빠가 이혼하든 결혼을 하든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등을 의자에 기대고 앉은 유남준은 추경은이 계속 옆에서 중얼거리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입 아프지 않아?”그 말에 추경은은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뻘쭘하기 그지없었다.한쪽에 있던 가정부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하여 바로 손으로 입을 막았다.그 누가 보더라도 추경은에 대한 유남준의 마음은 뻔했다.엄청나게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하지만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뻔뻔한 것인지 추경은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남자보다는 여자가 마음에 드는 상대를 추구할 때 더 쉽다면서.언젠가는 넘어오게 되어 있다면서.마침내 9시가 되었고 추경은 바로 유남준 따라서 차에 올랐다.부 좌석에 앉아 있던 서다희는 차에 오른 추경은을 보고서 마냥 이상하기만 했다.“추경은 씨는...”하지만 서다희가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유남준이 말을 끊어버렸다.“내가 같이 가자고 했어.”서다희는 그 말을 듣고서 더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시는지...’9시 20여 분쯤, 차는 가정 법원 앞에 이르렀다.이미 가정 법원에서 유남준을 기다리고 있었던 박민정이 보였다.서다희는 박민정의 뒷모습을 보고서 유남준에게 알려주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이미 도착하셨습니다.”“응.”
이혼 서류 전담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세 사람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물론 추경은은 바로 유남준의 옆자리에 뻔뻔하게 보란 듯이 앉았다.사무실 직원은 유남준과 추경은의 모습을 보고서 그동안 봐왔었던 모든 막장 드라마 속의 장면을 떠올렸다.심지어 일부러 추경은에게 뼈 때리는 말까지 했다.“남의 가정 파탄 내고 자기 행복 챙기려는 사람들 결말이 다 좋지는 않았어요. 그동안 봐 온 것에 따르면 해피 엔딩이 아니라 하나같이 새드엔딩을 맞이했었고요.”추경은은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제가 남의 가정을 파탄 내기라도 했다는 거예요?”직원은 그런 추경은의 말에 상대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오랫동안, 이 직업에 종사해오면서 직원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누가 본처이고 누가 제3인지를 말이다.유남준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추경은에게 말했다.“밖에서 기다려.”“근데 오빠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민정 씨가 무슨 꼼수라도 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추경은은 유남준의 모든 재산이 박민정에게 넘어갈까 봐 두려웠다.벌컥 화를 내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유남준은 추경은을 타일렀다.“여기 직원분들도 계시잖아. 그래도 걱정되면 너 나가고 서 비서 들어오라고 해.”“알았어.”추경은은 그제야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추경은이 나가고 나서야 직원은 본격적으로 이혼 서류를 준비해주기 시작했다.절차대로 일단은 두 사람의 재산에 대해서 알아보았다.그때 유남준은 미리 작성해 놓은 이혼 합의서를 꺼내 들었다.“이거 한 번 봐봐. 괜찮으면 이걸로 하자.”이혼 합의서를 건네받은 박민정은 바로 확인해 보았다.두원 별장을 비롯한 자동차 소유권까지 모두 박민정에게로 넘긴다고 적혀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이혼 위자료로 2조를 덧붙여 준다고 했다.이혼 위자료로 2조나 내놓는다는 것은 아마 진주시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을 것이다.박민정은 본래 유남준이 몇억만 주면서 자기를 내보내려고 하는 줄 알았었다
유남우가 입을 열었다.“민정아.”유남준과 똑같은 얼굴을 하는 유남우를 보게 된 순간 박민정은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되어버렸다.“네.”대답만 한 박민정, 유남우와 더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비 오고 있어. 얼른 차에 타. 감기 걸려.”발걸음을 멈추려고 하지 않는 박민정을 보고서 유남우는 다급히 덧붙였다.그 말에 박민정은 약간 멈칫거렸지만, 유남우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보슬비라 괜찮아요. 천천히 걸어가면 되니 그만 가 봐요.”이윽고 박민정은 계속 앞으로 걸었다.이때 유남우는 차에서 내려 바로 박민정을 향해 걸어가 팔을 확 잡아당겼다.“이런 식으로 너 아프게 하지 마.”박민정은 유남우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유남우는 더욱 꼭 움켜쥐곤 했다.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민정아, 그 사람 때문에 널 이렇게까지 망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박민정은 더는 발버둥을 치지 않고 비를 맞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여기서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얼마 걸리지 않아요. 비도 뭐 펑펑 쏟아지는 게 아니라 괜찮아요.”“타!”유남우는 다시 한번 어세를 높여 말했다.하지만 박민정은 이를 악물고 제자리에 서서 버텼다.그 모습을 보고서 유남우는 두말하지 않고 바로 박민정을 들어 안아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순간 박민정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이렇게까지 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말이다.“남우 씨!”“출발하세요.”유남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그렇게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강제로 차에 오르게 된 박민정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게다가 자기도 모르게 자꾸 곁눈으로 유남준과 똑같이 생긴 유남우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모든 것이 언짢아 박민정은 아예 눈을 감아 버리고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유남우는 박민정이 아픈 줄 알고 손등으로 이마 온도를 체크해 보았는데, 열은 나지 않았
그 말을 듣게 된 순간 유남준은 복잡한 감정이 북받쳐 오면서 눈빛마저 어두워졌다.하지만 그 또한 잠시 유남준은 바로 덤덤한 모습을 보였다.“알았어. 앞으로 그런 일은 보고하지 않아도 돼.”유남우와 박민정이야말로 진정한 죽마고우이니 말이다.그뿐만 아니라 박민정이 어렸을 때부터 좋아한 사람은 유남준이 아니라 유남우였다.처음부터 박민정과는 거리가 멀었던 유남준이었다.만약 수술에 실패하게 된다면 박민정이 의지할 만한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그 사람이 유남우이든 연지석이든 박민정에게 잘해주기만 하면 되는 유남준이다.서다희는 유남준의 말을 듣고 난 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유남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만약 유남준과 마찬가지로 수술을 받게 되는 상황이 닥치게 된다면 서다희 역시 우선 민수아와 헤어질 것으로 생각했다.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이 서다희는 단언할 수 없었다.민수아가 변함없이 자기를 사랑해 줄 수 있는지 말이다.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떠나 민수아가 힘들고 아파하는 것을 볼 수 없었을 것 같았다.어느새 회사에 도착한 두 사람.유남준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회사의 남은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전에 YN그룹을 박민정에게 넘긴다고 했었는데, YN그룹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많고 앞으로도 여러 상황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지금 바로 넘기기에는 적합한 시기가 아니다.하는 수 없이 유남준은 모든 걸 서다희에게 맡겨 처리하도록 했다.“난 다음 주 월요일에 수술받으러 가야 해. 앞으로 IM 그룹의 모든 걸 서 비서한테 맡길게.”서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제가 잘 책임지고 열심히 하겠습니다.”서다희 역시 이미 생각을 마친 상황이다.유남준이 바보가 되든 아니든 끝까지 유남준의 비서로 남겠다면서.“그래.”다들 바삐 돌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한 통이 걸려 들어왔다.전화를 받자마자 고영란의 책문이 들려왔다.“너 민정이랑 이혼했어?”“네, 오늘 저녁에 알려드리려고 했는데, 저보다 먼저
‘내 편?’고영란의 말을 듣고 있던 박민정은 고영란이 결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해가 섭섭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필경 유씨 가문의 핏줄이고 친손자이니 말이다.“네, 알고 있어요. 그렇게 할게요.”박민정은 고영란의 말대로 일단 남기로 했다.그러나 결코 고영란의 말 때문이 아니라 유남준 때문이었다.대체 무슨 이유로 꼭 이혼하려고 했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만약 정말로 자기가 싫어지고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면 그땐 먼저 떠날 것이라고 마음도 먹고 있었다.‘정말로 사랑하지 않아서 이혼하자고 한 거라면 나 절대 너한테 질척이지 않을 거야.’시원시원하게 대답한 박민정에게 고영란은 바로 계좌로 돈을 보내주었다.“얼마 되지는 않지만, 용돈으로 쓰도록 해.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바로 먹고. 부족하면 나한테 전화해.”그 돈 역시 박민정은 거절하지 않았다.고영란은 아이들이 할머니이고 할머니가 손자한테 주는 돈이니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예전과 같았더라면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쓴소리를 듣게 되었고 구박을 당하게 되었는데 말이다.“네, 고맙습니다.”“그래. 몸 잘 챙기고 있어.”고영란은 그렇게 한참이나 박민정을 다독이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고 나서 계좌를 확인해 보니 100억이 입금되어 있었다.용돈으로 자그마치 100억이나 준 고영란이다.그리고 박민정은 용돈 100억을 따로 저축해 두었다.지금 박씨 가문 본가에는 박민정 혼자뿐이다.민수아는 출근하러 갔고 박윤우는 유치원에 갔다.홀로 남은 박민정은 테라스에 있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지그시 두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에서 때때로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도저히 잠이 오지 않은 박민정은 도착한 메시지들을 확인해 보았는데, 마케팅 5팀 채팅방에서 열띤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박 팀장님, 저 오늘 두건이나 해냈어요.][축하드려요. 저 오늘 한 건밖에 못 했는데
마케팅 1팀에서.박민정이 채팅방에서 쿠폰을 뿌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 최현아는 개의치 않아 하면서 웃었다.“그깟 쿠폰 4만 원밖에 안 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겨우 4만 원에 좋아죽다니... 어이가 없어.”최현아는 박민정의 이러한 수단에 무척이나 언짢았다.상사가 되어서 직원에게 ‘아첨’이나 떠는 모습이 싫었다.그때 최현아의 지시에 따라 마케팅 5팀으로 염탐을 하러 갔었던 부하 직원은 박민정이 뿌린 쿠폰의 금액이 결코 4만 원뿐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었다.하물며 직원으로서 가끔 이러한 식으로 격려를 받게 되면 기분이 엄청 좋기도 한데 말이다.결국은 최현아 스스로 통이 크지 않고 고작 4만 원짜리 쿠폰도 주기 아까워하면서 다른 사람이 주는 걸 비웃고 있다.비서가 가려고 하자 최현아가 말했다.“1팀 전체 직원들에게 똑똑히 전해. 이번 달 실적은 무조건 5팀보다 많아야 하고 만약 5팀보다 낮게 된다면 인센티브는 절반밖에 받게 되지 못할 거야.” “네, 알겠습니다.”비서는 바로 그 소식을 마케팅 1팀에 전했고 순간 야유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겉으로는 뭐라고 할 방법이 있지만 뒷담화로 갖은 불만을 토해냈다.“둘 사이의 경쟁에 왜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릴 끌어당기지?”“그러게 말이야. 5팀을 초과해야 한다면서 만약 초과하지 못하면 인센티브를 절반 밖에 안 준다고 하잖아. 근데 반대로 우리가 5팀을 초과하게 되면 뭘 준다는 건데? 아무런 소리도 없잖아.”“주긴 뭘 주겠어. 그냥 꿈 깨! 5팀은 본래 마케팅 부서를 통틀어서 1등을 했었던 팀이야. 최현아가 들어가면서 실적이 점점 바닥나게 된 거라고.”마케팅 1팀 팀원들은 남자 화장실에서 몰래 푸념하고 있었다.마케팅 5팀의 팀원도 마침 화장실에 있었고 그 모든 걸 듣고 난 뒤 그만 참지 못하고 박민정에게 알려주었다.한편, 박민정은 회사로 오고 있었다.상황이 어찌 됐든 유남준과 이혼했다고 하여 자기 계획을 망칠 수는 없으니 말이다.호산 그룹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인맥을 쌓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자기에게 떠맡길 줄리라고 미처 생각지도 못한 진서연은 한숨만 내쉬었다.“보스... 저도 이제는 혼기가 가득 찼단 말이에요. 근데 아직 남자친구 하나 없어요. 일찍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싶은데...”그 말에 박민정은 피식 웃고 말았다.“그래? 그럼, 돌아오지 않을래? 내가 남자친구 소개해줄게.”“제가 돌아가면 우리 회사는요?”“온라인으로 업무 봐도 되잖아. 여기서 지사 하나 만들어서 넌 이쪽에서 책임지고 믿음직한 사람 찾아서 본사 책임지게 하면 돼.”박민정이 말했다.그 말에 진서연은 바로 마음이 쏠리게 되었다.홀로 해외에서 회사의 모든 것을 책임지다 보니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고 박민정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좋아요! 저 갈래요!”이윽고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머뭇거리면서 물었다.“그... 보스님 곁에 있는 경호원 있잖아요... 정민기 씨라고. 그분은 여자친구 있으신가요?”전에 정민기를 몇 번 본적이 있는 진서연이다.싸움도 잘하고 듬직한 것이 자기도 모르게 호감이 가는 남자로 내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진서연 입에서 정민기 이름이 나오자 박민정은 적지 않게 놀라고 당황해했다.하지만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려주었다.“전에 약혼녀가 있었는데, 약혼이 취소되었다고 들은 바가 있어. 그래서 지금은 아마 여자친구가 없을 거야.”“정말이죠? 너무 잘 됐어요!”“그럼, 저 갈 때까지 다른 여자들이 채 가지 못하게 보스님이 좀 수고해주세요.”다른 책임자와 인수인계를 해야 하므로 당분간 바로 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그래. 걱정하지 마.”두 사람은 다른 일로 한참이나 수다를 떨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회사 일로 반나절을 보내고 진서연과 이런저런 일로 수다를 떨다 보니 박민정은 어느새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심지어 민수아와 박윤우를 위해 직접 저녁까지 챙겨주려고 나섰다.그렇게 한창 저녁 준비를 하던 중에 두원 별장의 가정부와 주방장이 집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게 되었다.“사모님.”가정부가 박민정을 불렀다.
유남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밀려왔다.한편, 해운 별장으로 이미 이사를 간 유남준.머릿속은 온통 오늘 이혼한 일로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익숙한 벨 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유남준은 흠칫거리고 망설이기 시작했다.박민정에게만 다른 벨 소리로 설정해 둔 것이라 듣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발신자가 박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받을까? 그냥 무시해?’길어지는 연결음에 박민정은 점점 불안해졌다.‘제발... 좀 받아...’연결음이 끝나려고 하던 그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마침내 들려왔다.“무슨 일이야?”차갑지 짝이 없는 목소리였지만 반갑기 그지없었다.이로써 긴장이 약간 풀린 박민정은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입을 열었다.“별일 아니에요. 그냥 자는지 아닌지 궁금해서 전화한 거예요.”겨우 이성의 끊을 부여잡고 있는 유남준이다.“네 전화만 아니었다면 잘 자고 있었을 거야.”말 한마디에 화가 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박민정은 핸드폰을 움켜쥐고서 아무런 말도 더는 하지 않았다.한참의 침묵을 뒤로하고서 박민정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이윽고 이불속으로 몸을 꼭꼭 숨긴 채 어떻게든 잠자리에 들려고 아등바등했다.‘멀쩡한 사람을 괜히 걱정했어!’화가 잔뜩 난, 이 상황에서 잠자리에 들 수 있다면 기적이나 다른 없는 일이었다.한편, 유남준은 박민정의 목소리가 한참이나 들리지 않자, 끊긴 것을 알게 되었다.핸드폰을 손에 한참 쥐고 나서야 유남준은 정신을 차리면서 제자리에 올려놓았다.다음날.유남준의 몸 상황을 체크해주면서 김인우는 턱 밑으로 내려온 다크서클을 보게 되었다.“잠을 설친 거야?”부인하지 않고 유남준은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응.”“걱정하지 마. 수술 꼭 성공할 거야.”어떻게 위안을 주어야 하는지 많이 서투른 김인우이다.실은 수술이 걱정되어서 잠을 설친 것이 아닌데 말이다.김인우는 본격적으로 수술 전 검사를 하기 시작했고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나왔으며 수술 조건에 맞았다.“오늘 바로 입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