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우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응, 알고 있어.”모든 걸 떠나서 자기 엄마만큼은 그 어떠한 상처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그런 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박민정은 이마에 뽀뽀하면서 진심으로 사과했다.“윤우야, 미안해. 아까 두원 별장에서 엄마가 이유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너한테 소리 질러서 미안해. 엄마가 진심으로 사과할게.”그러자 박윤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엄마, 사과할 필요 없어. 지금까지 엄마한테 화 난 적도 없었고 앞으로 화가 날 일도 절대 없을 거야.”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포근한 봄바람이 스쳐 가듯이 마음은 이내 따뜻하고 흐뭇하기만 했다.두 아들을 낳은 것이야말로 이번 생에서 가장 잘한 일인 것 같았다.두 아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버텼고 더 열심히 살아가게 할 동력이기도 하니 말이다.때로는 든든한 아들로 때로는 다정한 ‘딸’로 곁을 지켜주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침실로 박윤우를 보내고 나서 박민정 역시 자기 침실로 돌아왔다.어찌 됐든 안정적인 숙면을 유지해야 하는 시기이니 말이다.임신한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파동이 너무 심해도 안 된다.유남준이 이상한 행동을 하고 미친 소리를 하더라도 절대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한편, 방안에서.민수아는 그만 참지 못하고 약혼자 서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민정이랑 너희 대표님 혹시 싸웠어?”다짜고짜 들려오는 질문에 서다희는 의아하기만 했다.“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오늘 윤우까지 데리고 박씨 가문 본가로 왔거든. 보통 여자가 애를 데리고 친정으로 오는 건 백이면 백 남편이랑 싸워서 오는 거야.”민수아는 결코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박민정에게 다른 속사정이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계속 캐묻기에는 실례인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던 것이었다.서다희는 민수아의 말을 듣고서 답을 하기보다는 당부부터 했다.“임신한 상황에 윤우까지 챙기랴 사모님께서 매우 힘드실 거야. 그러니 수아 네가 시간 되면 옆에서 좀 잘 챙겨드려. 절대 그
“남준 오빠, 우리 언제 출발해?”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추경은이 옆에서 물었다.“9시 후에.”박민정에게 알린 시간은 9시 30분이었다.확실한 답을 듣고 난 추경은은 마침내 마음이 놓이게 되었다.속으로는 기뻐해 마지 못하고 있으나 겉으로는 위하는 척하면서 물었다.“근데 이혼이 무슨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영란 이모한테 알려야 하는 거 아니야?”“이혼하고 나서.”유남준은 당연히 유씨 가문 모든 사람에게 알리려는 생각이었다.아니면 그 누구도 모르게 되니 말이다.더욱더 확실한 답을 얻게 되자, 추경은은 두 사람의 ‘인연’이 정말로 끝을 맺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하긴, 오빠가 이혼하든 결혼을 하든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등을 의자에 기대고 앉은 유남준은 추경은이 계속 옆에서 중얼거리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입 아프지 않아?”그 말에 추경은은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뻘쭘하기 그지없었다.한쪽에 있던 가정부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하여 바로 손으로 입을 막았다.그 누가 보더라도 추경은에 대한 유남준의 마음은 뻔했다.엄청나게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하지만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뻔뻔한 것인지 추경은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남자보다는 여자가 마음에 드는 상대를 추구할 때 더 쉽다면서.언젠가는 넘어오게 되어 있다면서.마침내 9시가 되었고 추경은 바로 유남준 따라서 차에 올랐다.부 좌석에 앉아 있던 서다희는 차에 오른 추경은을 보고서 마냥 이상하기만 했다.“추경은 씨는...”하지만 서다희가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유남준이 말을 끊어버렸다.“내가 같이 가자고 했어.”서다희는 그 말을 듣고서 더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시는지...’9시 20여 분쯤, 차는 가정 법원 앞에 이르렀다.이미 가정 법원에서 유남준을 기다리고 있었던 박민정이 보였다.서다희는 박민정의 뒷모습을 보고서 유남준에게 알려주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이미 도착하셨습니다.”“응.”
이혼 서류 전담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세 사람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물론 추경은은 바로 유남준의 옆자리에 뻔뻔하게 보란 듯이 앉았다.사무실 직원은 유남준과 추경은의 모습을 보고서 그동안 봐왔었던 모든 막장 드라마 속의 장면을 떠올렸다.심지어 일부러 추경은에게 뼈 때리는 말까지 했다.“남의 가정 파탄 내고 자기 행복 챙기려는 사람들 결말이 다 좋지는 않았어요. 그동안 봐 온 것에 따르면 해피 엔딩이 아니라 하나같이 새드엔딩을 맞이했었고요.”추경은은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제가 남의 가정을 파탄 내기라도 했다는 거예요?”직원은 그런 추경은의 말에 상대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오랫동안, 이 직업에 종사해오면서 직원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누가 본처이고 누가 제3인지를 말이다.유남준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추경은에게 말했다.“밖에서 기다려.”“근데 오빠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민정 씨가 무슨 꼼수라도 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추경은은 유남준의 모든 재산이 박민정에게 넘어갈까 봐 두려웠다.벌컥 화를 내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유남준은 추경은을 타일렀다.“여기 직원분들도 계시잖아. 그래도 걱정되면 너 나가고 서 비서 들어오라고 해.”“알았어.”추경은은 그제야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추경은이 나가고 나서야 직원은 본격적으로 이혼 서류를 준비해주기 시작했다.절차대로 일단은 두 사람의 재산에 대해서 알아보았다.그때 유남준은 미리 작성해 놓은 이혼 합의서를 꺼내 들었다.“이거 한 번 봐봐. 괜찮으면 이걸로 하자.”이혼 합의서를 건네받은 박민정은 바로 확인해 보았다.두원 별장을 비롯한 자동차 소유권까지 모두 박민정에게로 넘긴다고 적혀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이혼 위자료로 2조를 덧붙여 준다고 했다.이혼 위자료로 2조나 내놓는다는 것은 아마 진주시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을 것이다.박민정은 본래 유남준이 몇억만 주면서 자기를 내보내려고 하는 줄 알았었다
유남우가 입을 열었다.“민정아.”유남준과 똑같은 얼굴을 하는 유남우를 보게 된 순간 박민정은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되어버렸다.“네.”대답만 한 박민정, 유남우와 더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비 오고 있어. 얼른 차에 타. 감기 걸려.”발걸음을 멈추려고 하지 않는 박민정을 보고서 유남우는 다급히 덧붙였다.그 말에 박민정은 약간 멈칫거렸지만, 유남우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보슬비라 괜찮아요. 천천히 걸어가면 되니 그만 가 봐요.”이윽고 박민정은 계속 앞으로 걸었다.이때 유남우는 차에서 내려 바로 박민정을 향해 걸어가 팔을 확 잡아당겼다.“이런 식으로 너 아프게 하지 마.”박민정은 유남우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유남우는 더욱 꼭 움켜쥐곤 했다.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민정아, 그 사람 때문에 널 이렇게까지 망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박민정은 더는 발버둥을 치지 않고 비를 맞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여기서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얼마 걸리지 않아요. 비도 뭐 펑펑 쏟아지는 게 아니라 괜찮아요.”“타!”유남우는 다시 한번 어세를 높여 말했다.하지만 박민정은 이를 악물고 제자리에 서서 버텼다.그 모습을 보고서 유남우는 두말하지 않고 바로 박민정을 들어 안아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순간 박민정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이렇게까지 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말이다.“남우 씨!”“출발하세요.”유남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그렇게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강제로 차에 오르게 된 박민정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게다가 자기도 모르게 자꾸 곁눈으로 유남준과 똑같이 생긴 유남우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모든 것이 언짢아 박민정은 아예 눈을 감아 버리고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유남우는 박민정이 아픈 줄 알고 손등으로 이마 온도를 체크해 보았는데, 열은 나지 않았
청명,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병원 문 앞에서.박민정은 가녀린 몸에 수척한 손으로 병원 임신 테스트 보고서를 들고 있었는데 보고서에는 임신이 아니라는 문구가 뚜렷하게 적혀 있었다!“결혼한 지 3년인데 아직도 임신 못 했어? 왜 이렇게 쓸모가 없니? 너 계속 임신 안 되면 유씨 일가에서 쫓겨나는 수가 있어. 그땐 우리 집안더러 어떡하라는 거야?”한수민은 하이힐을 신고 화려한 옷차림에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삿대질했다.박민정은 두 눈이 퀭하고 가슴에 꽉 막혔던 그 말들이 결국 한 마디로 함축되었다.“미안해요.”“엄마는 미안하단 말을 원하는 게 아니야. 얼른 남준의 아이를 낳으란 말이야. 알겠니?”박민정은 목이 확 메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결혼한 3년 동안 남편 유남준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 곁을 안 주는데 어떻게 아이가 생길까?한수민은 약해빠진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왜 저를 닮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그녀는 차가운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남준이한테 여자 한 명 찾아줘. 걔도 그럼 너한테 고마워할 거 아니야.”박민정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떠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친엄마란 자가 딸에게 지금 남편을 위해 여자를 찾아주란 말이나 내뱉고 있다니.그녀의 마음에 순간 찬바람이 휘몰아쳤다....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박민정의 머릿속엔 온통 엄마의 마지막 말만 감돌았다.문득 귓가에 굉음이 한바탕 울렸다.그녀는 자신의 병이 더 심해진 걸 알고 있다.이때 문득 휴대폰 문자 벨 소리가 울렸다.유남준의 3년을 하루 같이 보낸 문자였다.“오늘 밤 집에 안 가.”결혼한 이 3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집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없다.아내인 그녀를 터치한 적은 더더욱 없고.3년 전 신혼 첫날밤에 유남준이 했던 말을 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너희 집안에서 감히 사기 결혼을 감행했으니 넌 인제 평생 고독하게 살 각오해.”평생 고독하게 살라고...3년 전 박씨 일가와
「남준 오빠, 그동안 잘 못 지냈죠? 그 여자 안 사랑하는 거 알아요. 우리 오늘 밤 만나요. 오빠 너무 보고 싶어요.」휴대폰 화면이 어두워질 때까지 박민정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택시 타고 유남준의 회사로 가는 길에서 박민정은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봤다. 비는 그칠 새도 없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유남준은 그녀가 회사로 찾아오는 걸 별로 반기지 않는다. 올 때마다 박민정은 뒷문에 있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니까.유남준의 전담 비서 서다희도 그녀를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오셨어요, 민정 씨.”유남준의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사모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그녀는 항상 떳떳하지 못한 존재니까.박민정이 휴대폰 주러 회사까지 찾아오자 유남준은 미간이 확 구겨졌다.그녀는 늘 이런 식이다. 점심 도시락, 서류, 옷, 우산까지 유남준이 놓친 걸 전부 회사로 보내온다.“말했잖아, 일부러 내 물건 주러 회사 안 와도 된다고.”박민정은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미안해요, 깜빡했어요.”언제 기억력이 이렇게 나빠졌지?아마도 이지원이 보낸 문자를 보고 덜컥 겁이 나서 그랬나 보다.유남준이 갑자기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떠나기 전 박민정은 고개 돌려 유남준을 바라보더니 끝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남준 씨, 아직도 이지원 씨 좋아해요?”유남준은 요즘 들어 박민정이 참 이상했다.자꾸 뭘 까먹지 않나, 이상한 질문만 해대질 않나, 그의 아내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모습이었다.유남준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그렇게 심심하면 뭐라도 할 일 좀 찾아.”박민정은 결국 정확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그녀도 전에 일자리를 구해봤지만 유씨 일가 어르신들이 그녀가 얼굴을 내비치면 가문의 체면만 깎는다고 단호하게 차단해 버렸다.유남준의 어머니 고영란은 그녀에게 거리낌 없이 쏘아붙였다.“너 정녕 온 세상에 알릴 생각이니? 우리 남준이가 청력에 문제 있는 장애인 아내를 찾았다고?”장애인 아내라...집에 돌아온 후 박민정은 최대한 바삐 돌아쳤다.먼지 하나 안
“아직 제대로 된 사랑도 못 해봤죠? 남준 오빠는 나랑 있을 때 밥도 직접 차리고 또 내가 아플 땐 제일 먼저 달려왔어요. 나한테 했던 가장 달콤한 말은 바로 ‘지원아, 난 네가 영원히 행복하길 바라’ 이 말이었어요... 오빠가 민정 씨한테는 사랑한다는 말 한 적 있어요? 전에 나한테 엄청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오빠 유치하다고 항상 틱틱거렸거든요...”박민정은 묵묵히 들으며 이 3년 동안 유남준과 함께한 나날들을 되새겨보았다.그는 단 한 번도 음식을 차려본 적이 없다.그녀가 아플 때 관심의 말 한마디조차 없다.사랑한다는 말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박민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물었다.“할 얘기 다 했어요?”이지원은 흠칫 놀랐다. 그녀가 너무 차분해서인지 아니면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사람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볼 것만 같아서인지 이유는 알지 못했다.그렇게 박민정이 떠난 후에야 정신을 가다듬었다.왠지 모르게 이지원은 지금 이 순간 꼭 마치 박씨 일가의 후원을 받던 가난한 고아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박씨 일가의 귀한 따님 뒤에서 이지원은 영원히 웃음 팔이 피에로 역할이었다....박민정이라고 그녀의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을까?12년이나 좋아했던 남자인데, 한때 그녀도 아이처럼 누군가를 좋아했었는데,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했었는데...박민정은 문득 또다시 두 귀가 아파서 보청기를 빼내더니 그제야 선홍빛 핏물이 고인 걸 발견했다.그녀는 습관처럼 보청기에 묻은 핏자국을 깨끗이 닦고는 옆에 내려놓았다.잠이 오질 않아 휴대폰을 가져와 인스타그램을 열었는데 상단 스토리에 이지원 계정이 보란 듯이 초록색 테두리로 되어 있었다.클릭해 보니 박민정을 ‘친한 친구 리스트’에 넣어 오직 그녀에게만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첫 장은 대학교 때 이지원과 유남준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둘은 나란히 서 있었고 유남준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다.두 번째 장은 둘의 카톡 대화 내용을 캡처한 사진이었다. 유남준은 너무나도 상냥한 말투로 이
인제 보니 아빠는 유남준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걸 진작 알아챘나 보다.하지만 딸의 행복을 위해 유씨 일가와 계약을 체결했고 박민정도 소원대로 유남준에게 시집갈 수 있었다.그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두 사람이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아빠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만약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남동생과 엄마도 계약을 위반하지 않을 텐데...박민정은 재산 양도 수속을 전부 장 변호사에게 건넨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길옆에서 이지원의 홍보 포스터들을 보게 됐다.포스터 속 그녀는 더없이 눈부시고 아름답고 해맑은 모습이었다.‘이젠 놓아줄 때가 됐어. 남준 씨도 나도 자유를 되찾아야지.’두원 별장에 도착한 그녀는 짐 정리를 마쳤다.결혼한 3년 동안 그녀의 짐이라곤 고작 캐리어 하나에 다 들어갔다.이혼합의서는 작년에 이미 장 변호사에게 부탁해 작성해달라고 했다.유남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고 자괴감이 들고 마음이 약해진다.그녀는 진작 알아챘다. 둘 사이의 감정은 조만간 끝이 닿는다는 걸, 그래서 일찌감치 떠날 채비를 했다...저녁 시간, 유남준의 문자는 없었다.박민정은 용기 내어 그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오늘 밤 시간 돼요? 당신한테 할 얘기 있어요.」상대는 한참 동안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박민정은 어두운 얼굴로 생각했다.‘이젠 문자로 답장하는 것조차 싫은가 보네. 내일 아침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어쩌겠어.’그 시각 유앤케이 그룹 대표이사 사무실 안.유남준은 문자를 확인하곤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았다.절친 김인우가 소파에 앉아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끝내 못 참고 물었다.“민정 씨 문자야?”유남준이 묵인했고 김인우는 거리낌 없이 비난해 댔다.“이 귀머거리가 진짜! 제가 정말 유씨 가문의 사모님이라도 된 줄 아나? 어딜 감히 남편을 감시해? 남준아, 너 설마 걔랑 평생 시간 끌려는 건 아니지? 박씨 일가는 인제 아무것도 아니야. 걔 남동생 박민호는 회사도 운영할 줄 모르는 바보 멍청이라고. 얼마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