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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4화

Penulis: 윤지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유남준은 그 자리에 목석처럼 굳어졌다.

“잉꼬부부도 7년째의 권태기에 접어들어 갈 수 있다고 해요. 당신과 나는 결혼한 지 7년이 되지만 진정으로 같이 생활한 지는 일 년조차 넘기지 않았어요. 근데, 벌써 무미건조하나요?”

박민정의 입김이 유남준의 가슴에 뜨겁게 닿았다.

유남준은 간지러움을 억지로 참으면서 말했다.

“이러지 마.”

유남준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거칠어졌다.

박민정은 턱을 위로 살며시 들고 귀 방울까지 빨개진 유남준의 얼굴을 그윽하게 지켜보았다.

그가 입으로는 어떤 거짓말을 하더라도 몸은 성실하다.

“당신 진짜 저랑 이혼 할 샘인가요?”

“음.”

유남준이 둣걸음 치면서 그녀를 몸에서 밀어내려고 했다.

박민정은 일부러 ‘앗!’ 하며 뒤로 넘어지는 시늉을 마치기 바쁘게 유남준은 잽싸게 그녀를 도로 안아 당기였다.

그러다 당황해서 또다시 밀어냈다. 그리고 또 안아 당기였다.

이에 재미를 본 박민정은 또다시 앞으로 달려가 유남준을 꼭 안았다.

“더 이상 나를 밀어내지 말아요. 전 당신의 아기를 가진 임신부예요. 당신이 밀어서 아기가 잘못되면 저를 원망하지 말아요.”

유남준은 지금처럼 속수무책 인적이 없었다.

“말 좀 들어. 이 상황에서 이혼이 우리에게 제일 좋은 선택이야.”

비로소 박민정은 유민준이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걸 확인 했다.

지금 그녀는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박민정은 유남준을 꼭 안은 채 말했다.

“유남준 씨, 지금 내 말을 잘 들어요. 오늘 당신이 나랑 이혼하면 다시는 되돌리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깐 잘 생각해 보고 말해요.”

‘절대로 후회 안 해!’

유남준은 자신이 수술을 받은 후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 꼭 다시 박민정을 되찾아올 타산이었다

“그래.”

유남준은 속에 없는 말을 해버렸다

박민정은 곧 돌아버릴 직전이었다.

“여봐요, 남준 씨! 당신은 대체 나한테 뭘 숨기고 있어요? 당신이 앞을 못 봐도 상관없는데 또 뭘 나한테 숨기려 해요?”

박민정은 지금 왕짜증이 났다. 이런 유남준이 진짜 얄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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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005화

    이튿날아침 일찍 일어난 박윤우는 따끈한 온수 팩을 안고 이불속에 드러누웠다.박민정이 박윤우를 깨워 주려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걸 발견했다.“윤우야…”박민정이 부드럽게 불렀다.박윤우가 살며시 눈을 뜨더니 허약하게 말했다.“엄마…”“아들, 어데 아파?”박민정이 걱정되어 물었다.“엄마, 나 어지러워요…”“얼른 일어나, 엄마가 옷 입혀줄게, 병원에 가자.”애가 어지럽다고 하자, 놀란 박민정은 다급히 서두르기 시작했다.박윤우는 어릴 때부터 백혈병으로 앓고 있었기에 설사 작은 병이더라도 끌면 안 되기 때문이다.“엄마, 나 병원에 가기 싫어요. 그냥 집에서 누워 쉬면 안 돼요?”“안되지, 윤우의 이마에 장국 끓일 수 있겠네…”“나 어제 비 맞아서 그래요. 좀 누워 있으면 금방 나을 것 같아요.”박윤우가 변명했다.유남준이 말소리에 깨어나 방에서 나오면서 물었다.“무슨 일이야?”지금은 아들이 일 순위이다. 박민정은 어제저녁의 불쾌한 일로 유남준을 무시하지 않았다.“윤우 지금 열이 많이 나고 있어요. ““엄마 출근 안 해요? 아빠랑 병원 가게 해줘요.”박윤우가 유남준을 훔쳐보면서 말했다.“윤우가 아픈데 엄마가 어떻게 출근해? 오늘 휴가 내면 되지.”“근데 엄마 어제도 휴가 냈잖아요. 어차피 아빠는 한가하신데…”그러는 박윤우는 문 입구 편에 서 있는 유남준을 올려보면서 말을 이었다.“아빠가 윤우를 병원에 데리고 가줄 수 있지요? 네? ”유남준은 당연히 거절할 리가 없었다.“그래, 민정 씨는 출근해, 윤우는 내가 병원에 데려가면 되지.”유남준이 병원에 데려다주는 것을 원하는 박윤우를 보고 박민정은 묵묵히 옷을 입혀 유남준에게 안겨 주었다.두 사람이 차에 오르기까지 배웅했다.차에 앉은 유남준은 또 박민정을 보면서 신신당부했다.“어제저녁에 한 얘기, 서둘러 결정해.”박윤우만 이 자리에 없었더라면 당장 유준우를 한 대 갈기고 싶은 심정이다.“어제 무슨 일 인데요?”박윤우가 능청스럽게 물었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006화

    주치의가 박윤우의 전면 검진 보고서를 보니 백혈병 외 감기로 인한 발열 증상은 없었다.“수치가 정상입니다.”‘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박윤우가 다급히 변명했다.“의사 선생님, 혹시 제가 병원에 오니 병균이 자동으로 죽은 건 아닐까요?”이에 주치의는 껄껄 웃었다. 따라서 얼마간 짐작이 갔다.병실 밖을 나온 주치의는 유남준에게 말했다.“대표님,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도련님이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 꾀병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침에 급히 깨어나면 어지럼증을 나타나는 애들도 가끔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면 정상으로 돌아올 겁니다.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유남준은 당연히 두 번째로 추측했다.“괜찮다니 다행입니다.”병실로 돌아온 유남준은 박윤우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아빠, 윤우는 유치원도 가기 싫고, 집에도 가기 싫어요. 아빠가 일하는 곳에 가고 싶어요.”박윤우는 오늘 유남준 뒤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면서 숨겨진 여자가 누군가 꼭 밝혀낼 타산으로 여태껏 연기 했는데 이대로 순순히 돌아갈 리 없었다.“안 돼! 유치원 가든지, 집으로 가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해!”유남준은 오늘 애를 데리고 놀 여유가 없다.“싫어, 아빠~ 윤우 버리지 말고 데리고 가줘요. 난 아빠 따라서 갈래요. 아빠 윤우 말고 딴 아기 생겼나요?”박윤우가 유남준의 넓적다리를 껴안고 눌러앉아서 응석 부렸다.오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찬 시선을 던져왔다.이에 박윤우는 더 신나서 외쳐댔다.“윤우를 싫어하면서 왜 낳았어요?”“지금 저를 버리려고요? 형이랑, 저는 진짜 불쌍한 애들이에요…”박윤우가 눈물 콧물 쥐어짜서 유남준의 바지에 뿌려 놓았다.‘아빠, 진짜 나빠. 우리를 버리려고 하다니.’유남준은 이런 응석둥이 박윤우를 대치하기 제일 힘들어한다. 애가 또 아프지, 손찌검도 할 수 없고.“알았어, 알았어. 그럼 아빠 따라 회사 가되, 절대 까불면 않되. 조용하게 앉아 있어야 해, 알았지?”“네!”박윤우는 언제 울었냐 싶은 듯 뚝 하고 그쳤다.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007화

    “대표님이 분부하신 이혼 협의서입니다.”강연우가 이혼 협의 서류를 유남준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유남준은 강연우에게 협의 내용을 읽어 달라고 했다.강연우가 협의서 내용을 또박또박 읽어 주었다.“벌써 이혼 서류까지 다 작성했어! 흥!”박윤우가 노기등등하여 ‘탕!’문을 박차고 들어갔다.문소리에 깜짝 놀란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누구야?”유남준이 양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박윤우를 보는 순간 강연우가 거침없이 대답했다.“작은 도련님입니다.”왜냐하면 박윤우가 작은 치수의 유남준 마냥 똑 닮았으니 말이다.“아빠! 진짜로 엄마랑 이혼 하려고요?”박윤우는 두 볼이 볼록해서 화를 냈다.유남준은 강연우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손 저었다.“어린이가 어른들의 일에 참견하고 그러면 못써.”강연우가 나간 뒤, 유준우는 화가 나서 팔짝 뛰는 인형 같은 애를 보면서 말했다.”박윤우는 지금 화가 나서 어쩔 바를 몰라 하면서 생각했다.‘형 말이 맞아, 아빠는 바람둥이야!’“윤우는 아빠를 여태껏 믿었는데, 어떻게 우리 엄마를 배신할 수가 있어요! 내가 크면 꼭 복수할 거야!”박윤우의 자그마한 몸은 분노에 못 이겨 바르르 떨고 있었다.이에 유남준은 화를 낼 대신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진짜지? 그럼 얼른 커서 아빠한테 복수해야 해?”유남준은 자기가 그때까지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태연자약하게 대답하는 유남준을 본 박윤우는 화가 상투 밑까지 치밀어 오르는 참,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짜고짜 컵을 들어 유남준을 향해 힘껏 던졌다.‘잘그랑!’컵이 유남준의 어깨를 명중하고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났다.컵 부서지는 소리에 서다희가 뛰어 들어왔다. 박윤우가 또다시 ‘흉기’를 찾으려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말렸다.“도련님! 그만해요!”“도련님이라 부르지 말아요! 난 당신들의 도련님이 아니에요! 난 박 씨지 유 씨가 아니에요!”박윤우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화가 동했다.자신이 그토록 믿어오던 유남준이 엄마를 배신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008화

    서다희의 차에 실려 별장에 도착한 박윤우는 박예찬한테 전화를 걸어 고자질했다.“형, 바람둥이 아빠 있잖아, 엄마랑 이혼 하려 해.“뭐라고?”동생의 말을 들은 박예찬은 믿어지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박윤우는 훌쩍거리면서 말했다.“어제저녁에 엄마랑 다투는 소리를 들은 듯했는데 안 믿었어. 근데 오늘 회사에서 이혼 협의서까지 작성했어.”유치원에 있는 박예찬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람이 없는 구석을 찾아서 말했다.“대체 무슨 일인지 똑똑히 말해봐.”박윤우는 요즘 발생한 일들을 자초지종 얘기해 주었다.“형, 나 지금 무척 후회하고 있어. 형 말을 들었을 건데. 아빠는 나쁜 사람이야.”“그래 내가 뭐랬어? 누구도 믿지 말고 형만 믿고 따라와!”박예찬도 화가 부쩍 동해서 말했다.“알았어, 형.”박윤우가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형, 아빠는 지금 앞을 못 보는 봉사야. 우리 복수 안 할래? 아빠 돈 깡그리 빼앗을까?”“않되.”박예찬이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왜?”박예찬은 자기가 유남준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말했다.“만일 아빠가 돈 없는 빈털터리라도 되면 또 우리 엄마한테 빌붙을 꺼야. 그니깐 이혼 후 다시 봐.”박윤우가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알았어, 이혼 후에 다시 보지 뭐.”박윤우가 손으로 턱을 고이고 또 말했다.“형, 나 인터넷에 올려서 아빠의 죄행을 다 까밝힐까 봐.“안 돼! 절대 안 돼!”박예찬이 명령하는 어투로 외쳤다.“왜? 왜 안 되는 건데?”박윤우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럼, 바람둥이 아빠를 그대로 둬?“인터넷에 올리면 엄마까지 당할 수 있으니깐 절대 않되. 알았지?”박예찬이 차근차근 타일렀다.“알았어, 형.”형의 말에 일리는 있지만 그대로 참고만 있으려니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였다.무슨 수를 쓰더라도 유남준을 괴롭힐 예정이다.통화를 마친 뒤 박예찬은 은근히 박민정이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다.호산 그룹.박민정은 일에 몰두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온통 유남준과 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009화

    두원 별장박민정이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기 바쁘게 별장 안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윤우 도련님, 이건 던지면 안 돼요. 이건 사장님이 제일 좋아하는 골동품인데…”‘쟁그랑!’또 하나의 비싼 도자기가 박살 났다. 조각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이를 본 박민정이 쏜살같이 달려갔다.박민정이 돌아온 걸 본 가정부들은 구세주를 본 것처럼 기뻐했다.“사모님, 드디어 돌아오셨네요. 윤우 도련님이 한창 화를 내고 있어요. 아무리 말려도 안 돼요.”‘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무슨 일이지?’박민정은 다급히 안쪽으로 들어갔다.박민정의 뒤를 이어 추경은이 따라 들어왔다.경비원한테 박민정과 함께 온 거라고 뻥 치면서 들어왔다.지금 거실은 물론, 주방, 서재까지 온통 수라장이 되었다.“도련님, 노트북은 물로 씻으면 안 돼요!”가정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박민정이 소리에 따라 뛰어갔을 무렵 노트북이 이미 세면대 물속에 빠져있었다.“박윤우!”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신나게 집안 물건들을 작살내고 있던 박윤우는 박민정의 고함에 깜짝 놀라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박민정을 올려다보았다.“엄마, 왔어요?”박윤우는 엉거주춤하면서 자그마한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박민정의 두 눈은 노여움으로 이글거렸다.박윤우는 태어나서부터 몸이 늘 안 좋아 박민정이 애지중지 길러왔다.“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박민정이 돌아오면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저지른 일이었지만, 막상 닥치니 부쩍 당황했다.거짓말하고 싶었지만, 박민정의 두 눈과 마주치는 순간 김빠진 공처럼 풀이 죽어 서 있었다.박민정은 스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가가서 물었다.“왜 행패 부려?”박윤우는 머리를 떨구고 아무런 변명도 안 했다.이런 박윤우를 지켜보는 박민정은 가슴이 짜릿하게 아팠다.하지만 행패 부리는 애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얘기해 봐. 대체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그제야 박윤우는 말문을 열었다.“엄마, 윤우는 알고 있어요, 저 사람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010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알콩달콩하더니 벌써 이혼하다니?’추경은은 유남준이 박민정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니 언젠가는 이혼으로 끝날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웃음이 흘렀다.윤우의 손목을 잡고 서재에서 뛰쳐나오던 박민정은 추경은과 마주쳤다.그녀는 너랑 할 말이 없다는 듯 윤우의 손을 잡고 두원 별장을 떠나려 했다.“어머, 새언니. 이렇게 늦은 밤에 어딜 가려고요?”추경은이 가식을 떨었다.“저리 비켜!”박민정이 쌀쌀하게 쏘아붙였다.“부부싸움에 툭 하면 가출하는 건 애한테 안 좋아요.”추경은의 심보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박민정은 상대도 하기 싫어서 외면했다.박민정은 정민기에게 바로 전화해서 박씨 가문 옛 저택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박민정이 떠난 후 추경은의 입꼬리는 잔뜩 올라갔다.추경은은 컵을 가져와 더운물을 받았다.이를 본 가정부가 말했다.“제가 사장님한테 가져다드릴게요.”가정부는 추경은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종래로 가사 도우미를 사람으로 취급한 적이 없었다.사모님과 윤우 도련님이 집을 비웠으니 대신 특별히 이 여자를 방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추경은은 두 눈을 부릅뜨며 욕설을 퍼부어 댔다.“넌 뭐야? 꺼져! 이 집에 여주인이 바뀐 거 안 보이냐?”가정부는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얼굴이 두꺼워도 분수가 있어야지요. 사모님과 사장님은 아직 이혼 안 했어요. 그들 사이엔 애들도 있고요.”이에 추경은은 픽 웃었다.“방금 못 들었어? 둘이 내일 당장 이혼 한다고 말했잖아! 어디서 오지랖은! 내가 이 집 여주인이 되면 너부터 해고 할 거야.”말이 끝나기 바쁘게 막아선 가정부를 확 밀쳐내고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그러고는 서재의 문 앞에 서서 노크했다.“누구야?”“오빠, 저예요”그녀는 목청을 가다듬어 말했다.“오빠, 물 좀 마셔요.”지난번의 일을 겪고 난 유남준은 추경은이 준 물을 마실 리가 없었다.“저리 비켜!”말하면서 추경은의 손을 화다닥 밀쳐냈다.더운물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011화

    박윤우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응, 알고 있어.”모든 걸 떠나서 자기 엄마만큼은 그 어떠한 상처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그런 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박민정은 이마에 뽀뽀하면서 진심으로 사과했다.“윤우야, 미안해. 아까 두원 별장에서 엄마가 이유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너한테 소리 질러서 미안해. 엄마가 진심으로 사과할게.”그러자 박윤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엄마, 사과할 필요 없어. 지금까지 엄마한테 화 난 적도 없었고 앞으로 화가 날 일도 절대 없을 거야.”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포근한 봄바람이 스쳐 가듯이 마음은 이내 따뜻하고 흐뭇하기만 했다.두 아들을 낳은 것이야말로 이번 생에서 가장 잘한 일인 것 같았다.두 아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버텼고 더 열심히 살아가게 할 동력이기도 하니 말이다.때로는 든든한 아들로 때로는 다정한 ‘딸’로 곁을 지켜주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침실로 박윤우를 보내고 나서 박민정 역시 자기 침실로 돌아왔다.어찌 됐든 안정적인 숙면을 유지해야 하는 시기이니 말이다.임신한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파동이 너무 심해도 안 된다.유남준이 이상한 행동을 하고 미친 소리를 하더라도 절대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한편, 방안에서.민수아는 그만 참지 못하고 약혼자 서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민정이랑 너희 대표님 혹시 싸웠어?”다짜고짜 들려오는 질문에 서다희는 의아하기만 했다.“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오늘 윤우까지 데리고 박씨 가문 본가로 왔거든. 보통 여자가 애를 데리고 친정으로 오는 건 백이면 백 남편이랑 싸워서 오는 거야.”민수아는 결코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박민정에게 다른 속사정이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계속 캐묻기에는 실례인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던 것이었다.서다희는 민수아의 말을 듣고서 답을 하기보다는 당부부터 했다.“임신한 상황에 윤우까지 챙기랴 사모님께서 매우 힘드실 거야. 그러니 수아 네가 시간 되면 옆에서 좀 잘 챙겨드려. 절대 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012화

    “남준 오빠, 우리 언제 출발해?”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추경은이 옆에서 물었다.“9시 후에.”박민정에게 알린 시간은 9시 30분이었다.확실한 답을 듣고 난 추경은은 마침내 마음이 놓이게 되었다.속으로는 기뻐해 마지 못하고 있으나 겉으로는 위하는 척하면서 물었다.“근데 이혼이 무슨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영란 이모한테 알려야 하는 거 아니야?”“이혼하고 나서.”유남준은 당연히 유씨 가문 모든 사람에게 알리려는 생각이었다.아니면 그 누구도 모르게 되니 말이다.더욱더 확실한 답을 얻게 되자, 추경은은 두 사람의 ‘인연’이 정말로 끝을 맺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하긴, 오빠가 이혼하든 결혼을 하든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등을 의자에 기대고 앉은 유남준은 추경은이 계속 옆에서 중얼거리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입 아프지 않아?”그 말에 추경은은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뻘쭘하기 그지없었다.한쪽에 있던 가정부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하여 바로 손으로 입을 막았다.그 누가 보더라도 추경은에 대한 유남준의 마음은 뻔했다.엄청나게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하지만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뻔뻔한 것인지 추경은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남자보다는 여자가 마음에 드는 상대를 추구할 때 더 쉽다면서.언젠가는 넘어오게 되어 있다면서.마침내 9시가 되었고 추경은 바로 유남준 따라서 차에 올랐다.부 좌석에 앉아 있던 서다희는 차에 오른 추경은을 보고서 마냥 이상하기만 했다.“추경은 씨는...”하지만 서다희가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유남준이 말을 끊어버렸다.“내가 같이 가자고 했어.”서다희는 그 말을 듣고서 더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시는지...’9시 20여 분쯤, 차는 가정 법원 앞에 이르렀다.이미 가정 법원에서 유남준을 기다리고 있었던 박민정이 보였다.서다희는 박민정의 뒷모습을 보고서 유남준에게 알려주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이미 도착하셨습니다.”“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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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8화

    조하랑은 요즘 집에서 태교에만 전념하고 있었다.그녀는 요 며칠 김인우가 어쩐 일인지 늦게야 귀가하는 게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어디를 다녀오는 건지 궁금해져 하녀에게 슬쩍 물었지만 하녀는 말끝을 흐릴 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그걸 본 김훈은 손자를 거론하며 말했다.“하랑아, 인우는 네 남편이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넘어갈 거냐? 궁금하면 직접 전화해서 확인해. 딱 잡아봐야 정신 차리지.”그리고는 단단히 이죽였다.“만약 귀찮다느니, 피하려 든다느니 하면 내게 말해. 그놈 등짝 몇 대는 내가 책임진다.”조하랑은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거나 집착하듯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임신한 이후로는 자꾸만 불안해졌다.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그가 밖에서 사고를 당하진 않을까, 예상치 못한 위험에 휘말리진 않을까 하고.아무래도 몸 안에 김인우의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걱정도 따라온 모양이었다.“...알겠어요.”조하랑은 김훈이 자신 편을 들어준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한 듯 더는 망설이지 않고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김인우는 아직 클럽을 떠나지도 않은 상태였다.“하랑 씨, 무슨 일이에요?”전화가 오자 그는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며 다정하게 받았다.“지금 어디예요?”조하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김인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녀가 괜한 오해를 할까 싶어 거짓말을 꺼냈다.“아, 지금? 돌아가는 길이죠.”돌아가는 길이라고?그런데 조하랑의 귀에는 전화기 너머로 분명 남녀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누가 들어도 외부 소음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나는 소리였다.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정말이에요?”“당연하죠. 내가 왜 하랑 씨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김인우는 그녀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필 그때, 뒤편에서 이지원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오빠,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오빠?그 말을 듣자마자 김인우는 재빨리 경호원에게 시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7화

    바로 그때였다.차가운 눈빛 하나가 이지원을 향해 날카롭게 꽂혔다.이지원도 그 시선을 느꼈고 본능적으로 그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짙은 먹빛처럼 어두운 김인우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오늘 김인우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바이어 몇 명을 데리고 식사를 하러 온 참이었다. 그런데 그가 본 것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이지원의 처참한 몰골이었다.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냉담했다.하지만 이지원은 그 눈빛마저도 한 줄기 희망처럼 여긴 듯 허겁지겁 바닥에서 일어나 울먹이며 소리쳤다.“인우 오빠! 오빠!”그녀는 그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김인우의 곁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즉시 그녀를 막아섰다.이지원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오빠, 제발... 날 좀 살려줘요. 나 좀 살려줘...”김인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이때 곁에 있던 바이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이사님, 혹시 아는 분입니까?”김인우는 천천히 시선을 거두며 냉정히 답했다.“제가 어떻게 저런 여자를 알겠습니까.”“그렇죠, 그렇죠.”바이어는 머쓱한 듯 웃으며 연신 사과했다.“제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네요. 딱 봐도 저런 여자는 별로 좋은 사람 같지가 않더군요. 아마 이사님께 잘 보이려고 들러붙은 거겠죠.”진주시에서 김인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바이어는 이지원에게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며 옆의 경호원에게 명령했다.“저 미친 여자 좀 치워. 여기서 체면 깎지 말고.”“네, 알겠습니다.”경호원들은 말도 없이 이지원을 들쳐 업듯 끌어내어 도로가 쪽으로 내던졌다.끌려가면서도 이지원은 계속해서 외쳤다.“오빠, 왜 그래... 왜 나를 모른 척해?”“놔, 이 사람들아! 인우 오빠는 내 친구야! 그 사람이 이 일 알면 절대 너희들 가만 안 둘 거야!”그녀는 말끝마다 이를 악물며 말했다.지금의 이지원은 확실히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그녀는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과거의 자신이 잘나가던 시절의 기억 뿐이었고 김인우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6화

    “민정 씨,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제발 나 좀 도와줘요.”이지원은 박민정의 손을 덥석 붙잡고 애원했는데 눈빛엔 간절함이 가득했다.“이제는 정말 부탁할 사람이 민정 씨밖에 없어요. 내가 한창 잘 나갈 때 일도 너무 많이 벌였고 지금은 완전히 매장돼서 진 빚이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만큼이에요.”박민정은 조용히, 그러나 아주 냉정하게 그녀를 바라봤다.“왜 내가 당신을 위해 돈을 갚아줄 거라 생각하죠?”이지원은 순간 멍해졌다.요즘 들어 그녀는 자꾸 옛날 꿈을 꾼다. 박민정과 친구로 지내며 가까웠던 그 시절, 박민정은 늘 그녀를 감싸고 누가 괴롭히려 하면 앞장서서 막아줬고 어떤 일이든 조건 없이 도와줬다.그뿐만이 아니었다. 박민정의 아버지 역시 그녀를 친딸처럼 잘해줬고 학비도 지원해주며 박민정과 같은 학교를 다니게 해줬다.가끔 꿈에서 깨면 지금의 현실이 너무 낯설어 스스로가 믿기지 않을 때도 있었다.“민정아, 나 정말 후회하고 있어. 너한테 그런 짓을 한 내가 미쳤었어, 정말이야...”이지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박민정은 아무런 감정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손을 그녀의 손에서 빼냈다.“이지원,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이지원이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자 박민정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네가 지금처럼 망가지지 않았다면 넌 후회했을까?”이지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생각해봐. 네가 아직도 잘나가는 톱스타였다면, 남준 씨랑 인우 씨가 아직도 진실을 모른 채 널 감싸고 있었다면 넌 지금처럼 후회하며 내 앞에 이렇게 무릎을 꿇었을까?”박민정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이지원은 아마 자신을 더 깊이 짓밟고 더 높은 곳에서 비웃었을 것이다.이지원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입술만 달싹였다.박민정의 눈은 깊고도 고요했는데 마치 파동조차 없는 죽은 물처럼 어떤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예전엔 널 정말 내 가장 소중한 친구라 생각했어. 하지만 내가 사람을 잘못 봤더라. 이젠 너에게 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5화

    윤소현의 일이 터지자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중에는 한동안 집에 틀어박혀 지내던 이지원도 있었다.요즘 이지원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빚쟁이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와중에 박민정과 유남준이 자신을 찾아올까 봐 늘 초조한 심정으로 지내고 있었다.하지만 이지원은 몰랐다.그 불안감 자체가 박민정이 의도한 것이란 걸.박민정은 윤소현의 문제를 매듭짓자마자 곧장 정민기에게 물었다.“요즘 이지원은 어떻게 지내요?”정민기는 그녀가 어느 허름한 월셋집에 숨어 살며 배달이나 택배를 받을 때만 문을 열고 그 외엔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그 말을 들은 박민정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보아하니 아직도 제정신으로 살고는 있나 보네요.”이지원은 자신뿐만 아니라 조하랑까지 위기에 몰아넣을 뻔했다. 그런 그녀를 그냥 둘 수 없었다.“이젠 그 평온한 삶에도 금이 좀 가야겠죠.”박민정은 조용히 말했다.정민기는 그 말뜻을 곧바로 알아차리고 지시를 내렸다....그날도 이지원은 언제나처럼 문 앞에 도착한 택배를 가지러 나섰다. 하지만 그 순간, 서너 명의 남자들이 그녀를 둘러쌌다.그중 선두에 선 남자가 비웃듯 말했다.“우리 대스타님, 어디 가시나?”이지원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아무 데도 안 가요. 정말이에요.”“그래서 돈은 언제 갚을 건데? 당신 같은 사람 믿고 우리 사장님이 그 딜 들어갔다가 결국 손해만 봤잖아. 안 그래?”남자는 거칠게 그녀의 팔을 움켜잡았다.“제발요. 진짜 돈이 없어요... 제발 한번만 봐주세요…”이지원은 애걸했다.“돈이 없으면 일이라도 해야지, 그렇게 방구석에 처박혀서 빚만 미루고 있으면 되겠어?”사방을 둘러싼 이들은 이지원을 완전히 포위했다.이지원은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지만 몸을 뺄 수가 없었다. 결국 일해서 갚겠다는 조건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이미 업계에서 퇴출당한 몸, 일자리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결국, 이지원은 다시 ‘제우스 클럽’으로 돌아왔다.예전에 그녀는 정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4화

    이미 손연서의 번호는 더는 연결되지 않았다.오준수가 다급하게 물었다.“어때요? 뭐래요?”차현영의 눈빛에는 짙은 분노가 어려 있었다.“손연서 저년은 아예 우리랑 인연을 끊고 살 작정이야.”그 말을 들은 옆자리의 오성훈이 발끈했다.“아빠, 할머니! 나 집에 갈래요! 나 비행기 갖고 놀고 싶단 말이에요! 도대체 언제 집에 가요?”오준수는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조용히 해! 지금 집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라?”하지만 오성훈은 그런 사정쯤엔 관심이 없었다.“나 금희 아줌마가 만든 대추떡 먹고 싶어요! 아줌마 불러와요! 당장!”허금희는 오씨 가문이 파산한 이후, 오준수가 내쫓아버린 가사도우미였다.차현영은 손자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렸다.“그래그래, 우리 착한 성훈이. 조금만 있으면 아줌마 다시 부를게. 그때 대추떡 많이 해달라 하자, 응?”“싫어요! 지금 당장 먹고 싶단 말이에요! 지금!”오성훈은 철없이 키워진 탓에 떼를 쓰기 시작했다.“먹을 거, 먹을 거! 입만 열면 먹을 거냐? 계속 이러면 진짜 혼난다?”오준수는 참다못해 고함을 질렀다.태어나서 처음 아버지에게 소리를 들은 오성훈은 놀란 눈으로 울음을 멈췄지만 그 잠깐의 정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내 방 안은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찼고, 그 어떤 달램도 통하지 않았다.그렇게 오씨 가문 식구들 모두는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채권자들은 이들의 사정을 봐줄 만큼 착하지 않았다.그 다음 날 아침, 오씨 가문의 저택이 압류되었다.오준수는 하룻밤 새 작은 사업가에서 무일푼의 노숙자가 되었고 차현영은 분노와 스트레스로 결국 병이 나 병원에 입원했다.그리고 오성훈은 계속 울기만 하며 ‘집에 갈래’를 외쳤다.“연서 엄마 불러줘요. 연서 엄마 보고 싶어요!”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손연서가 곁에 있을 때 자신이 얼마나 좋은 대접을 받았는지를. 하지만 모든 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손연서는 부하에게서 이 소식을 전해 듣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그들이 과거 자신에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3화

    손연서가 전화를 끊고 막 눈을 붙이려던 참에 또다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화면을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조금 의아한 마음에 전화를 받자 익숙하면서도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손연서? 연서 맞니?”차현영이었다.예전, 오준수가 그녀와 이혼한 직후 차현영은 그녀의 연락처를 아예 차단했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사람의 전화기를 빌려 걸고 있었다.바로 옆엔 오준수가 서 있었다. 손연서가 전화를 곧장 끊을까 염려해, 그나마 그녀와 연락이 닿을 가능성이 있는 차현영이 전화를 맡은 것이다.손연서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저 맞아요.”“아이고, 다행이다. 드디어 네 목소리를 듣는구나. 언제 시간 좀 내서 집에 한 번 들르지 않겠니?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 연서야.”차현영은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손연서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오 여사님. 그쪽 아들과 저는 이미 이혼했어요. 그러니 그쪽도 제 어머니가 아니죠.”차갑고 또렷한 그 말에 차현영의 얼굴빛이 순간 어두워졌다.하지만 지금은 사정해야 할 입장이니 차현영은 억지로 분노를 눌러가며 상냥한 척 말을 이었다.“연서야, 그땐 준수가 철이 없었어. 나도 정말 많이 후회하고 있어. 왜 그때 너희를 막지 못했을까 싶어서...”“내가 준수 야단도 쳤어. 전처럼 이천애 같은 여우한테 절대 다시 안 휘둘릴 거야. 그러니까 너도 다시 돌아오면 안 되겠니?”그녀는 말을 마치고 옆에 있던 오성훈을 툭툭 건드렸다.“성훈아, 어서 엄마라고 부르렴.”오성훈은 귀찮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말은 잘 들었다.“엄마... 엄마, 돌아와 줘요. 저 엄마밖에 없어요. 엄마, 제발 돌아와 줘요.”아이의 목소리에 손연서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저려왔다.하지만 그건 오성훈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 아이에게 쏟았던 과거의 마음과 시간, 그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었다.전에 차현영은 손연서에게 오성훈의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했고 오성훈 역시 그렇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2화

    차현영은 그래도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았다. 이천애가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자 급히 아들을 말렸다.“준수야, 그만해. 죽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오준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손에 힘을 풀며 그녀를 밀쳐냈다.이천애는 힘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거칠게 기침을 쏟아냈다. 그녀를 향한 오준수의 눈에는 단 한 치의 연민도 없었다. 그는 그대로 다가가 발로 그녀의 배를 걷어찼다.“마지막으로 한번 묻는다. 물건 어디 있냐?”이천애는 기침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정말이야. 켁켁... 도, 도둑맞았어.”오준수는 더는 말 섞을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는지 곧장 어머니를 불러들여 방 안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였다.하지만 방을 반 이상 뒤지고 나서도 끝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이천애는 그제야 정신을 좀 차렸는지 얼굴 가득 눈물 자국을 남긴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정말이야. 나 거짓말 안 했어. 도둑맞지 않았으면 벌써 출국했겠지.”“닥쳐!”오준수는 또다시 그녀의 몸을 걷어찼고 차현영은 참담한 얼굴로 그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너 우리 준수 생각은 안 해도, 네 아들 생각은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니? 그게 우리가 가진 마지막 돈이었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이천애는 고개를 숙이고 두 주먹을 꼭 쥐었다.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이었다.“오빠, 제발... 제발 이번 한 번만 날 용서해 줘. 그래도 나, 성훈이 엄마잖아. 성훈이가 엄마 없이 자라게 하고 싶어?”오준수는 그녀를 향해 침을 뱉었다.“너 같은 게 무슨 엄마야. 내가 눈이 멀었지, 너 같은 걸 좋아했던 내가 미친 거였어.”솔직히 그는 지금 누구보다 후회하고 있었다. 당시, 한낱 모델이었던 이천애에게 빠져 손연서와 아이를 저버렸던 그 선택이 뼛속까지 원망스러웠다.차현영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내가 그때 널 말렸어야 했는데... 연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1화

    홍주영은 하민재가 자신을 위해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지만 머릿속에선 박민정이 오늘 했던 말들이 자꾸만 맴돌았다.유남우는 정말 겉모습처럼 좋은 사람일까?예전엔 그녀가 유남우에게 너무 마음을 줬던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외국에 있을 당시, 병을 앓고 있던 그를 안쓰럽게 여겼던 것일 수도 있다.그녀는 유남우의 좋은 면만을 보며 그를 받아들였지만 지금 점점 그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됐어요, 그 얘기는 그만해요.”하민재는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어두운 기색을 보고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홍주영도 더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한편, 손연서도 박민정 쪽 상황이 잘 풀리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약간은 실망스러운 기색이었지만 입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다혜를 입양하지 못하더라도 전 종종 찾아가 볼 생각이에요.”박민정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할 때 손연서가 말을 이었다.“맞다, 민정 씨. 저 이천애 찾았어요.”“이렇게 빨리요?”박민정이 놀라서 되물었다.“전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는걸요.”손연서는 이천애의 얄미운 얼굴을 떠올리면 지금도 분이 치밀었다.“그럼 이제 찾았으니 어떻게 할 건데요?” 박민정의 물음에 손연서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깊이 고민하지도 않고 대답했다.“일단 이천애 주소를 오준수에게 흘려뒀어요. 둘이 알아서 치고받게 두는 거죠.”그녀는 이천애를 감시하라고 사람을 붙여두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곧바로 손연서 쪽에 영상이나 소식이 들어왔다.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곧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이천애는 오준수의 어머니가 아끼던 액세서리를 훔쳐 출국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도망치듯 허름한 여관에 숨어 있었다.오준수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그곳까지 찾아가 문을 박차고 들어갔는데 차현영도 함께였다.모자는 마치 원수를 만난 듯 이천애를 노려봤다.“이 죽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70화

    잠시 후, 홍주영은 병원에 도착했다.병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문 너머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몰래 엿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 안에서 ‘유남우’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녀의 발걸음이 저절로 멈췄다.결국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그 유남우란 사람, 설마 자기 형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그럴 리 없어. 유남우랑 유남준 사이 엄청 안 좋았어.”하민재가 친구에게 단언하듯 말했다.“이번 일은 내가 졌다고 인정해야지. 세상에, 이렇게까지 음험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 나를 해치려고 일부러 교통사고를 꾸미다니.”그 말에 홍주영은 그 자리에 굳은 듯 멈춰 섰다.유남우가 하민재를 해치려고 사람을 시켜 교통사고를 냈다고? 그게 정말 사실일까?하지만 왜? 이유가 뭐지?“난 이만 간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대화를 나누던 하민재의 친구가 자리를 뜨려는 기색이었다.홍주영은 재빨리 복도 모퉁이로 몸을 숨겼다. 사람이 완전히 떠난 뒤에도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음을 다잡고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주영 씨, 안 오는 줄 알았어요.”하민재는 그녀를 보자 두 눈이 반짝였는데 정말 기뻐하는 게 느껴졌다.홍주영은 조용히 다가가 그의 곁에 앉았다.“밥은 먹었어요?”하민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주영 씨가 시켜준 음식 진짜 맛있었어요.”“그래요?”홍주영은 속으로 좀 민망했다. 배달 음식이 맛있을 게 뭐가 있다고...그녀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고 조심스레 물으며 분위기를 살폈다.“근데 말이에요, 이번 교통사고에서 혹시 다른 사람은 안 다쳤어요?”하민재는 그녀가 건넨 물을 한 모금 마시곤 그대로 숨기기로 마음먹었다.“아니요, 나만 다쳤어요. 내가 좀 재수가 없었죠.”그는 알고 있었다. 유남우가 홍주영에게 어떤 존재인지. 혹여 진실을 말하면 그녀는 자신을 도와주기는커녕 화를 낼지도 몰랐다.하지만 홍주영은 감정에는 조금 둔할지 몰라도 바보는 아니었다. 하민재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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