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이 분부하신 이혼 협의서입니다.”강연우가 이혼 협의 서류를 유남준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유남준은 강연우에게 협의 내용을 읽어 달라고 했다.강연우가 협의서 내용을 또박또박 읽어 주었다.“벌써 이혼 서류까지 다 작성했어! 흥!”박윤우가 노기등등하여 ‘탕!’문을 박차고 들어갔다.문소리에 깜짝 놀란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누구야?”유남준이 양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박윤우를 보는 순간 강연우가 거침없이 대답했다.“작은 도련님입니다.”왜냐하면 박윤우가 작은 치수의 유남준 마냥 똑 닮았으니 말이다.“아빠! 진짜로 엄마랑 이혼 하려고요?”박윤우는 두 볼이 볼록해서 화를 냈다.유남준은 강연우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손 저었다.“어린이가 어른들의 일에 참견하고 그러면 못써.”강연우가 나간 뒤, 유준우는 화가 나서 팔짝 뛰는 인형 같은 애를 보면서 말했다.”박윤우는 지금 화가 나서 어쩔 바를 몰라 하면서 생각했다.‘형 말이 맞아, 아빠는 바람둥이야!’“윤우는 아빠를 여태껏 믿었는데, 어떻게 우리 엄마를 배신할 수가 있어요! 내가 크면 꼭 복수할 거야!”박윤우의 자그마한 몸은 분노에 못 이겨 바르르 떨고 있었다.이에 유남준은 화를 낼 대신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진짜지? 그럼 얼른 커서 아빠한테 복수해야 해?”유남준은 자기가 그때까지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태연자약하게 대답하는 유남준을 본 박윤우는 화가 상투 밑까지 치밀어 오르는 참,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짜고짜 컵을 들어 유남준을 향해 힘껏 던졌다.‘잘그랑!’컵이 유남준의 어깨를 명중하고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났다.컵 부서지는 소리에 서다희가 뛰어 들어왔다. 박윤우가 또다시 ‘흉기’를 찾으려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말렸다.“도련님! 그만해요!”“도련님이라 부르지 말아요! 난 당신들의 도련님이 아니에요! 난 박 씨지 유 씨가 아니에요!”박윤우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화가 동했다.자신이 그토록 믿어오던 유남준이 엄마를 배신
서다희의 차에 실려 별장에 도착한 박윤우는 박예찬한테 전화를 걸어 고자질했다.“형, 바람둥이 아빠 있잖아, 엄마랑 이혼 하려 해.“뭐라고?”동생의 말을 들은 박예찬은 믿어지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박윤우는 훌쩍거리면서 말했다.“어제저녁에 엄마랑 다투는 소리를 들은 듯했는데 안 믿었어. 근데 오늘 회사에서 이혼 협의서까지 작성했어.”유치원에 있는 박예찬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람이 없는 구석을 찾아서 말했다.“대체 무슨 일인지 똑똑히 말해봐.”박윤우는 요즘 발생한 일들을 자초지종 얘기해 주었다.“형, 나 지금 무척 후회하고 있어. 형 말을 들었을 건데. 아빠는 나쁜 사람이야.”“그래 내가 뭐랬어? 누구도 믿지 말고 형만 믿고 따라와!”박예찬도 화가 부쩍 동해서 말했다.“알았어, 형.”박윤우가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형, 아빠는 지금 앞을 못 보는 봉사야. 우리 복수 안 할래? 아빠 돈 깡그리 빼앗을까?”“않되.”박예찬이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왜?”박예찬은 자기가 유남준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말했다.“만일 아빠가 돈 없는 빈털터리라도 되면 또 우리 엄마한테 빌붙을 꺼야. 그니깐 이혼 후 다시 봐.”박윤우가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알았어, 이혼 후에 다시 보지 뭐.”박윤우가 손으로 턱을 고이고 또 말했다.“형, 나 인터넷에 올려서 아빠의 죄행을 다 까밝힐까 봐.“안 돼! 절대 안 돼!”박예찬이 명령하는 어투로 외쳤다.“왜? 왜 안 되는 건데?”박윤우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럼, 바람둥이 아빠를 그대로 둬?“인터넷에 올리면 엄마까지 당할 수 있으니깐 절대 않되. 알았지?”박예찬이 차근차근 타일렀다.“알았어, 형.”형의 말에 일리는 있지만 그대로 참고만 있으려니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였다.무슨 수를 쓰더라도 유남준을 괴롭힐 예정이다.통화를 마친 뒤 박예찬은 은근히 박민정이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다.호산 그룹.박민정은 일에 몰두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온통 유남준과 이
두원 별장박민정이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기 바쁘게 별장 안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윤우 도련님, 이건 던지면 안 돼요. 이건 사장님이 제일 좋아하는 골동품인데…”‘쟁그랑!’또 하나의 비싼 도자기가 박살 났다. 조각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이를 본 박민정이 쏜살같이 달려갔다.박민정이 돌아온 걸 본 가정부들은 구세주를 본 것처럼 기뻐했다.“사모님, 드디어 돌아오셨네요. 윤우 도련님이 한창 화를 내고 있어요. 아무리 말려도 안 돼요.”‘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무슨 일이지?’박민정은 다급히 안쪽으로 들어갔다.박민정의 뒤를 이어 추경은이 따라 들어왔다.경비원한테 박민정과 함께 온 거라고 뻥 치면서 들어왔다.지금 거실은 물론, 주방, 서재까지 온통 수라장이 되었다.“도련님, 노트북은 물로 씻으면 안 돼요!”가정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박민정이 소리에 따라 뛰어갔을 무렵 노트북이 이미 세면대 물속에 빠져있었다.“박윤우!”박민정은 저도 모르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신나게 집안 물건들을 작살내고 있던 박윤우는 박민정의 고함에 깜짝 놀라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박민정을 올려다보았다.“엄마, 왔어요?”박윤우는 엉거주춤하면서 자그마한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박민정의 두 눈은 노여움으로 이글거렸다.박윤우는 태어나서부터 몸이 늘 안 좋아 박민정이 애지중지 길러왔다.“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박민정이 돌아오면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저지른 일이었지만, 막상 닥치니 부쩍 당황했다.거짓말하고 싶었지만, 박민정의 두 눈과 마주치는 순간 김빠진 공처럼 풀이 죽어 서 있었다.박민정은 스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가가서 물었다.“왜 행패 부려?”박윤우는 머리를 떨구고 아무런 변명도 안 했다.이런 박윤우를 지켜보는 박민정은 가슴이 짜릿하게 아팠다.하지만 행패 부리는 애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얘기해 봐. 대체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그제야 박윤우는 말문을 열었다.“엄마, 윤우는 알고 있어요, 저 사람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알콩달콩하더니 벌써 이혼하다니?’추경은은 유남준이 박민정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니 언젠가는 이혼으로 끝날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웃음이 흘렀다.윤우의 손목을 잡고 서재에서 뛰쳐나오던 박민정은 추경은과 마주쳤다.그녀는 너랑 할 말이 없다는 듯 윤우의 손을 잡고 두원 별장을 떠나려 했다.“어머, 새언니. 이렇게 늦은 밤에 어딜 가려고요?”추경은이 가식을 떨었다.“저리 비켜!”박민정이 쌀쌀하게 쏘아붙였다.“부부싸움에 툭 하면 가출하는 건 애한테 안 좋아요.”추경은의 심보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박민정은 상대도 하기 싫어서 외면했다.박민정은 정민기에게 바로 전화해서 박씨 가문 옛 저택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박민정이 떠난 후 추경은의 입꼬리는 잔뜩 올라갔다.추경은은 컵을 가져와 더운물을 받았다.이를 본 가정부가 말했다.“제가 사장님한테 가져다드릴게요.”가정부는 추경은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종래로 가사 도우미를 사람으로 취급한 적이 없었다.사모님과 윤우 도련님이 집을 비웠으니 대신 특별히 이 여자를 방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추경은은 두 눈을 부릅뜨며 욕설을 퍼부어 댔다.“넌 뭐야? 꺼져! 이 집에 여주인이 바뀐 거 안 보이냐?”가정부는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얼굴이 두꺼워도 분수가 있어야지요. 사모님과 사장님은 아직 이혼 안 했어요. 그들 사이엔 애들도 있고요.”이에 추경은은 픽 웃었다.“방금 못 들었어? 둘이 내일 당장 이혼 한다고 말했잖아! 어디서 오지랖은! 내가 이 집 여주인이 되면 너부터 해고 할 거야.”말이 끝나기 바쁘게 막아선 가정부를 확 밀쳐내고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그러고는 서재의 문 앞에 서서 노크했다.“누구야?”“오빠, 저예요”그녀는 목청을 가다듬어 말했다.“오빠, 물 좀 마셔요.”지난번의 일을 겪고 난 유남준은 추경은이 준 물을 마실 리가 없었다.“저리 비켜!”말하면서 추경은의 손을 화다닥 밀쳐냈다.더운물이
박윤우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응, 알고 있어.”모든 걸 떠나서 자기 엄마만큼은 그 어떠한 상처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그런 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박민정은 이마에 뽀뽀하면서 진심으로 사과했다.“윤우야, 미안해. 아까 두원 별장에서 엄마가 이유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너한테 소리 질러서 미안해. 엄마가 진심으로 사과할게.”그러자 박윤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엄마, 사과할 필요 없어. 지금까지 엄마한테 화 난 적도 없었고 앞으로 화가 날 일도 절대 없을 거야.”그 말을 듣고서 박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포근한 봄바람이 스쳐 가듯이 마음은 이내 따뜻하고 흐뭇하기만 했다.두 아들을 낳은 것이야말로 이번 생에서 가장 잘한 일인 것 같았다.두 아들이 있어서 지금까지 버텼고 더 열심히 살아가게 할 동력이기도 하니 말이다.때로는 든든한 아들로 때로는 다정한 ‘딸’로 곁을 지켜주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침실로 박윤우를 보내고 나서 박민정 역시 자기 침실로 돌아왔다.어찌 됐든 안정적인 숙면을 유지해야 하는 시기이니 말이다.임신한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파동이 너무 심해도 안 된다.유남준이 이상한 행동을 하고 미친 소리를 하더라도 절대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한편, 방안에서.민수아는 그만 참지 못하고 약혼자 서다희에게 전화를 걸었다.“민정이랑 너희 대표님 혹시 싸웠어?”다짜고짜 들려오는 질문에 서다희는 의아하기만 했다.“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오늘 윤우까지 데리고 박씨 가문 본가로 왔거든. 보통 여자가 애를 데리고 친정으로 오는 건 백이면 백 남편이랑 싸워서 오는 거야.”민수아는 결코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박민정에게 다른 속사정이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계속 캐묻기에는 실례인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던 것이었다.서다희는 민수아의 말을 듣고서 답을 하기보다는 당부부터 했다.“임신한 상황에 윤우까지 챙기랴 사모님께서 매우 힘드실 거야. 그러니 수아 네가 시간 되면 옆에서 좀 잘 챙겨드려. 절대 그
“남준 오빠, 우리 언제 출발해?”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추경은이 옆에서 물었다.“9시 후에.”박민정에게 알린 시간은 9시 30분이었다.확실한 답을 듣고 난 추경은은 마침내 마음이 놓이게 되었다.속으로는 기뻐해 마지 못하고 있으나 겉으로는 위하는 척하면서 물었다.“근데 이혼이 무슨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영란 이모한테 알려야 하는 거 아니야?”“이혼하고 나서.”유남준은 당연히 유씨 가문 모든 사람에게 알리려는 생각이었다.아니면 그 누구도 모르게 되니 말이다.더욱더 확실한 답을 얻게 되자, 추경은은 두 사람의 ‘인연’이 정말로 끝을 맺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하긴, 오빠가 이혼하든 결혼을 하든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등을 의자에 기대고 앉은 유남준은 추경은이 계속 옆에서 중얼거리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입 아프지 않아?”그 말에 추경은은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뻘쭘하기 그지없었다.한쪽에 있던 가정부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하여 바로 손으로 입을 막았다.그 누가 보더라도 추경은에 대한 유남준의 마음은 뻔했다.엄청나게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말이다.하지만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뻔뻔한 것인지 추경은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남자보다는 여자가 마음에 드는 상대를 추구할 때 더 쉽다면서.언젠가는 넘어오게 되어 있다면서.마침내 9시가 되었고 추경은 바로 유남준 따라서 차에 올랐다.부 좌석에 앉아 있던 서다희는 차에 오른 추경은을 보고서 마냥 이상하기만 했다.“추경은 씨는...”하지만 서다희가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유남준이 말을 끊어버렸다.“내가 같이 가자고 했어.”서다희는 그 말을 듣고서 더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시는지...’9시 20여 분쯤, 차는 가정 법원 앞에 이르렀다.이미 가정 법원에서 유남준을 기다리고 있었던 박민정이 보였다.서다희는 박민정의 뒷모습을 보고서 유남준에게 알려주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이미 도착하셨습니다.”“응.”
이혼 서류 전담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세 사람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물론 추경은은 바로 유남준의 옆자리에 뻔뻔하게 보란 듯이 앉았다.사무실 직원은 유남준과 추경은의 모습을 보고서 그동안 봐왔었던 모든 막장 드라마 속의 장면을 떠올렸다.심지어 일부러 추경은에게 뼈 때리는 말까지 했다.“남의 가정 파탄 내고 자기 행복 챙기려는 사람들 결말이 다 좋지는 않았어요. 그동안 봐 온 것에 따르면 해피 엔딩이 아니라 하나같이 새드엔딩을 맞이했었고요.”추경은은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제가 남의 가정을 파탄 내기라도 했다는 거예요?”직원은 그런 추경은의 말에 상대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오랫동안, 이 직업에 종사해오면서 직원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누가 본처이고 누가 제3인지를 말이다.유남준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추경은에게 말했다.“밖에서 기다려.”“근데 오빠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민정 씨가 무슨 꼼수라도 쓰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추경은은 유남준의 모든 재산이 박민정에게 넘어갈까 봐 두려웠다.벌컥 화를 내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유남준은 추경은을 타일렀다.“여기 직원분들도 계시잖아. 그래도 걱정되면 너 나가고 서 비서 들어오라고 해.”“알았어.”추경은은 그제야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추경은이 나가고 나서야 직원은 본격적으로 이혼 서류를 준비해주기 시작했다.절차대로 일단은 두 사람의 재산에 대해서 알아보았다.그때 유남준은 미리 작성해 놓은 이혼 합의서를 꺼내 들었다.“이거 한 번 봐봐. 괜찮으면 이걸로 하자.”이혼 합의서를 건네받은 박민정은 바로 확인해 보았다.두원 별장을 비롯한 자동차 소유권까지 모두 박민정에게로 넘긴다고 적혀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이혼 위자료로 2조를 덧붙여 준다고 했다.이혼 위자료로 2조나 내놓는다는 것은 아마 진주시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을 것이다.박민정은 본래 유남준이 몇억만 주면서 자기를 내보내려고 하는 줄 알았었다
유남우가 입을 열었다.“민정아.”유남준과 똑같은 얼굴을 하는 유남우를 보게 된 순간 박민정은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되어버렸다.“네.”대답만 한 박민정, 유남우와 더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비 오고 있어. 얼른 차에 타. 감기 걸려.”발걸음을 멈추려고 하지 않는 박민정을 보고서 유남우는 다급히 덧붙였다.그 말에 박민정은 약간 멈칫거렸지만, 유남우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보슬비라 괜찮아요. 천천히 걸어가면 되니 그만 가 봐요.”이윽고 박민정은 계속 앞으로 걸었다.이때 유남우는 차에서 내려 바로 박민정을 향해 걸어가 팔을 확 잡아당겼다.“이런 식으로 너 아프게 하지 마.”박민정은 유남우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유남우는 더욱 꼭 움켜쥐곤 했다.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민정아, 그 사람 때문에 널 이렇게까지 망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박민정은 더는 발버둥을 치지 않고 비를 맞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여기서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얼마 걸리지 않아요. 비도 뭐 펑펑 쏟아지는 게 아니라 괜찮아요.”“타!”유남우는 다시 한번 어세를 높여 말했다.하지만 박민정은 이를 악물고 제자리에 서서 버텼다.그 모습을 보고서 유남우는 두말하지 않고 바로 박민정을 들어 안아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순간 박민정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이렇게까지 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말이다.“남우 씨!”“출발하세요.”유남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그렇게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강제로 차에 오르게 된 박민정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게다가 자기도 모르게 자꾸 곁눈으로 유남준과 똑같이 생긴 유남우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모든 것이 언짢아 박민정은 아예 눈을 감아 버리고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유남우는 박민정이 아픈 줄 알고 손등으로 이마 온도를 체크해 보았는데, 열은 나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