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요? 도지사님께서 이런 작은 일에 관심이 있으시다고요?” 하동해는 이해가 안 됐다. 나건호가 말했다. “지사께서 관심만 가지고 계신 게 아니라 이동혁의 이름까지 언급하시며 비서 실장에게 자세히 알아보라고 하셨답니다.” “예? 혹시 이동혁이 도지사님에게까지 줄을 대서 도와달라고 한건 아니겠죠?” 하동해는 놀라면서 불안했다. 그는 원래 마음속에 다른 계획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 도지사까지 개입하게 돼서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이동혁, 그놈이 확실히 연줄이 있어서 도지사님에게 연락을 한 거 같기는 해요. 하지만 도지사께서는 그놈을 도와주려고 하시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나건호가 살짝 웃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하동해가 물었다. “이동혁이 무슨 멍청한 짓을 했는지 아십니까?” 나건호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 쓸모없는 놈이 뜻밖에도 사람을 통해 부동산과 자동차를 도청에 보내서 공개적으로 뇌물을 지사님에게 드렸답니다. 그 일로 도지사께서 노발대발하신 거고요. 하하하, 정말 웃기지 않습니까?” 나건호는 도청에 있는 그의 측근으로부터 그 일을 들어 알게 되었다. “그런 바보 멍청이 짓을 했다고요? 하하하...”하동해가 어리둥절해하더니 배꼽을 잡고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그가 부하 직원을 불러들여 악랄하게 말했다. “그 쓸모없는 놈에게 찜질을 계속해. 죽지 않게만 괴롭혀 주는 거야.” 동혁이 도지사에게 뇌물을 바친 일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하동해는 지금 동혁을 대하는 일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곧 동혁이 도지사에게 선물을 보낸 일이 시청에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완전히 어이가 없네.’ ‘새 시장에게 공격을 당했으니, 이동혁이 도지사께 도움을 구하려고 선물을 보내려고 한 건 그렇다 쳐.’ ‘그런데 그걸 저렇게 대놓고 도청으로 선물을 보냈다고?’ ‘게다가 부동산과 자동차라니? 도지사가 돈을 밝힌다고 완전히 광고하는 거
‘도지사께서 H시에 오셨냐고?’ 하동해와 나건호는 모두 어리둥절했다. ‘사안이 그 정도로 심각한 거야? 도지사께서 직접 H시에 와서 이동혁에게 죄를 물을 정도로?’ “이동혁, 넌 이제 끝났어. 감히 도지사님을 모욕하다니. 이번에는 아무도 너를 구할 수 없어. 네 잘난 아내도 마찬가지고.” 하동해가 흥분하여 말했다. “이 바보 같은 놈하고 말 섞지 말고 어서 지사님이나 맞이하러 갑시다.” 나건호는 동혁을 무시하며 하동해와 함께 심문실을 나갔다. 시청 입구에 차 두 대가 도착했다. 하동해는 그것이 도지사의 전용차라는 것을 알았다. 차가 두 대뿐이라 그리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도지사님 오셨습니까?” 곽원산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하동해와 나건호는 앞으로 나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이동혁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곽원산이 상기된 얼굴로 물었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곧장 시청 안으로 들어갔다. “지사님,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동혁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제대로 심문에 응하지 않아 아직 심문실에 남겨 놓았습니다.” 하동해는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앞에서 안내를 했고 심문실 밖에 도착하자 시청의 직원에게 지시했다. “들어가서 이동혁을 데리고 나와.” “이동혁 씨, 도지사님께서 오셨습니다.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하시니 우리와 함께 나가시죠.” 두 명의 직원이 심문실로 들어가며 차갑게 말했다. “곽원산이 날 만나고 싶다고요? 그럼 혼자 이리로 들어오라고 하세요.” 의자에 앉아있는 동혁은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건방지게, 당신이 뭔데? 빨리 안 일어납니까?” 두 명의 직원이 화를 터뜨리며 다짜고짜 동혁을 강제로 끌어내려고 했다. 퍽! 퍽!동혁이 두 발로 이 두 사람을 걷어찼고 그대로 곽원산 발 밑으로 날아가 넘어졌다. “이동혁, 네놈이 간도 크구나. 감히 도지사님 앞에서 사람을 때려?” 놀란 하동해가 화를 냈다. 나건호가 이때를 틈타 곽원산을 자극했다. “지사님, 이거 보세요. 이동혁, 이놈이 이렇게 계속 건방
하동해와 나건호 둘 모두 어리둥절했다. ‘도지사님이 왜 우리에게 화를 내시는 거지?’ 그들은 동혁에 대한 곽원산의 태도가 의아했지만 별일 아닐 것이라 여겼다. 나건호가 재빨리 말했다. “지사님, 이동혁이 공개적으로 지사님께 선물을 보내고도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 시장도 지사님의 명예를 지켜드리려고 부득이하게 극단적인 수단을 쓴 겁니다.” 나건호는 자신의 말을 들고 곽원산이 동혁에 대해 분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지사님께서는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H시에 오셨으니 이동혁을 가만 두실리가 없으실 거야.’ “내게 선물을 보냈다고요? 그게 다 당신들 두 사람이 H시에서 죄 없는 사람들을 괴롭혀 내 얼굴에 먹칠을 했기 때문에 두고 볼 수 없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곽원산이 나건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말해보세요. 이번에 H시에서 저 하동해가 대체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줬습니까?” 이 말이 나오자. 나건호뿐만 아니라 하동해의 안색이 변했다. ‘그럼 도지사님이 이동혁이 아니라 우리 둘을 처리하려고 오신 거야?’ 나건호는 창백해진 얼굴로 핑계를 생각하며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도지사님, 전 받은 게 없습니다. 그저 제씨와 이씨 가문에서 찾아와 하동해를 시장으로 임명하라고 했습니다. 지사님께서 이곳 명문가들과 관계를 잘 맺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제가 승낙한 거고요.” 나건호는 조심스럽게 곽원산의 눈치를 살폈지만 상대방의 얼굴에는 냉소가 가득했다. 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다. ‘난 이제 끝이야.’ “나 부장, 당신 누굴 바보로 알아?” 곽원산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두 명문가와 결탁하여 이 전신을 모함한 것이 모두 나를 위해서였단 말입니까?” ‘이 전신은 또 모야?’ 나건호는 어리둥절했고 당황하여 몸을 부들부들 덜며 말했다. “지사님, 제가 아무리 간이 부었어도 어떻게 감히 이 전신을 모함할 수 있겠어요? 두 명문 가는 단지 이동혁을 상대하라고만 했습니다.”여기까지 말한 나건호가 갑자기
나건호는 동혁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친 듯이 머리를 바닥에 박았고 몇 번 만에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그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지금 자신이 무슨 변명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자신의 운명이 모두 동혁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 선생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씨와 이씨 두 가문이 제게 선생님의 가족을 공격하라고 했습니다. 만약 제가 선생님께서 이 전신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동해 역시 나건호를 따라 동혁 앞에 무릎을 꿇고 다리를 붙잡으며 울부짖었다. 아까까지 H시에서 군림하던 시장이 지금 개처럼 바닥에서 기면서 미친 듯이 애원했다. 퍽! 동혁은 역겨워하며 발로 그를 걷어찼다. 그러나 하동해가 일어나 다시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다. “이 선생님, 용서해 주십시오. 제 아들도 선생님에 의해 위층에서 떨어져 지금도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습니다. 저도 나름 대가를 치르지 않았습니까?” 퍽! 동혁은 다시 그를 차버리고 냉소했다. “마치 꼭 내가 당신에게 빚진 것처럼 말하네요. 그거 압니까? 내가 만약 한 발 늦게 그곳에 갔더라면 지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내 아내였을 겁니다.” “그럼 이 시장직만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앞으로 선생님의 말씀이라면 제가 물불을 가리지 않겠습니다.” 하동해가 울부짖으며 동혁에게 매달리려고 했다. 그때 곽원산이 냉정하게 말했다. “지금 네놈이 아직 시장직을 가지고 조건을 제시할 면목이 있어? 이제부터 당신은 H시 시장이 아니야. 밖에 누구 있습니까?” “예, 지사님.” 곽원산의 부하 직원들이 들어왔다. 곽원산이 나건호와 하동해를 가리켰다. “이 두 사람을 즉시 보직에서 해임하고 끌고 가서 조사하세요. 대충 하지 말고 아주 철저히 해요.”곽원산은 나건호와 하동해 두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 생각이 없었다. 나건호와 하동해는 완전히 절망했다. “왜 내가 쓸데없이 나서서 제씨와 이씨 가문에게 빌붙었지?
시청 앞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해졌다. 이미 잡혀간 동혁이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거들먹거리며 시청에서 걸어 나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반면 시장인 하동해가 붙잡히게 되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갑을 찬 채 풀이 죽은 채로 경찰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이동혁의 곁에서 왜 N도 도지사인 곽원산이 저렇게 함께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지?” “도대체 왜? 곽 도지사께서 H시에 와서 이동혁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하동해 시장을 붙잡은 거야?” “혹시 이동혁이 부동산과 자동차를 선물로 준 게 효과가 있었다는 건가? 도지사가 정말 그걸 받은 거라고?” 사람들은 실망했고 이 상황을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전에 그들은 동혁이 공개적으로 곽원산에게 선물을 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바보같이 자기 무덤을 팠다고 비웃었었다. 그런데 동혁이 선물을 준 것이 정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선물로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하동해 시장까지 처리하다니.’ 곽원산은 직접 동혁을 시청에서 배웅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용차를 사용해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했다. 사람들은 동혁의 진짜 신분을 몰랐다. 그래서 동혁에 대한 곽원산의 태도를 보고 곽원산이 뇌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그 높으신 한 도의 도지사 양반이 이동혁의 선물을 받았다고 이렇게 대우할 줄이야.’ “전신님, 이번 일은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 부하 직원인 나건호가 이렇게 부패했을 줄 몰랐습니다. 아까 전에 심문실에서 그놈이 설명한 것을 들었는데 제씨와 이씨 가문이 진 회장님의 회사를 빼앗으려고 하는 거 같더군요. 제가 이번에 기회를 봐서 그 두 가문을 혼 좀 내줄까요?” 동혁을 차에 태우기 전에 곽원산은 그에게 사과를 하고 자신이 도와 일을 처리해 주겠다며 저자세를 보였다. 그 대단한 이 전신이 자신의 아랫사람들에게 잡혀서 고문까지 당하면서 자백을 강요받은 일
“이 선생님, 제게 제발 기회를 주세요. 흑흑...” 왕양건이 강제로 끌려갔다. 조동래도 함께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 그 후 동혁은 천천히 저택 안으로 걸어갔다. “세화야, 제발 그냥 얌전히 네 주식을 제씨 가문에 넘겨. 더 이상 이렇게 제원화와 맞서지 말고. 그놈은 모질고 악랄해서 넌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어.” 제한영이 와서 세화에게 주식을 넘기라며 강권하고 있었다. 제태휘 등은 고소해하며 옆에 서서 그 모습을 구경했다. 세화는 벌겋게 부어오른 눈을 하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지분이야 제씨 가문에 맡겨도 되지만, 우선 동혁 씨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해야 해요.” “아휴, 지금 네가 조건을 걸 자격이 있어?” 제한영이 한숨을 쉬었다. “만약 그 바보 놈이 네가 제원화와 맞서게 꼬드기지만 않았어도 네가 이 지경까지 몰리지도 않았을 거야. 좀 더 일찍 회사를 넘겼을 거고 제씨 가문의 중용돼서 상황이 더 좋았을 거라고.” “감정이 다 상한 지금에 와서 네가 주식을 양도해도 제원화는 네게 감사하지도 않을 거야.” 어쨌든 세화는 제한영, 자신의 친손녀였다. 세화 가족의 상황이 이 지경까지 몰린 것을 보고 제한영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러나 동혁에 대해서는 여전히 진심으로 미워하고 있었다. “만약 동혁 씨를 건드리겠다면 전 차라리 제 주식을 공짜로 다른 사람에게 기부할 망정 제원화에게는 절대로 줄 수 없어요. 저도 이판사판이에요.” 세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제한영이 말했다. “세화야, 지금 제원화가 동혁이를 그냥 둘지 말지가 문제가 아니야.” “그놈이 뜻밖에 도지사께 공개적으로 선물을 보내는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어. 그 일로 도지사께서 진노하셔서 직접 H시에 오셨고. 이번에는 아무도 그놈을 구할 수 없어.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거야.” 이 말을 듣고 세화 역시 절망했다. “흑흑, 동혁 씨, 왜 일을 하기 전에 나와 상의조차 하지 않은 거야?” 세화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그녀의 눈물이 미친 듯이 흘러 손가락 사
“여보, 걱정 안 해도 돼. 그 두 가문도 곧 엄청난 대가를 치를 테니까.” 동혁은 곽원산이 두 가문을 혼내주겠다고 한 일을 다시 이야기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온 가족이 놀랐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동혁이가 공개적으로 곽 도지사에게 선물을 보냈는데 뜻밖에도 동혁이의 죄를 묻지 않고 오히려 두 가문을 혼낸다고?’ “곽 도지사의 부하 직원들이 이유 없이 제게 누명을 씌웠잖아요. 그래서 아마 저에게 인정을 베푼 거겠죠.” 동혁은 간단히 설명하고 선우설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우 사장, 지금 외부 소문이 어때?” [예, 회장님. 모두 곽원산이 회장님께 큰 선물을 받고서 회장님을 위해 일을 처리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곽원산에게 줄을 대기 위해 선물을 보내거나 만려고 해요. 비교적 신중한 사람들은 그룹 직원들에게 연락해서 곽원산이 우리를 도와준 것이 정말 선물을 받아서인지 확인 요청을 했어요.] 동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인정도 부인도 하지 말고 그냥 둬. 그러나 알아서 자기 무덤을 파게 될 테니.” [하지만 회장님 그렇게 하면 곽 도지사의 평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선우설리는 혹시라도 곽원산의 불만이 커질까 봐 걱정했다. “괜찮을 거야. 그의 직원들은 내게 누명을 씌워서 고문까지 했는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동혁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도지사인데 이런 일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겠어?’ 전화를 끊은 동혁은 세화에게 말했다. “여보, 앞으로 좋은 구경거리가 생길 거야. 그 멍청이들이 내가 죽을 거라며 비웃었었지? 대체 누가 죽는지 한번 봐봐.” 청운각. 제원화와 이심은 시청의 소식을 받았다.두 사람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젠장, 곽원산이 원래 이렇게 탐욕스러운 인간이었나? 부동산과 차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받는다고?” 기뻐도 내색 하나 드러내지 않던 제원화가 이번에는 화가 나서 거칠게 욕을 하며 앞에 있던
‘5개 그룹의 자산이 1000억뿐이겠어?’ ‘1조는 족히 넘지.’ 이심은 매우 흥분했다. 곽원산이 공개적으로 선물을 받은 이상 그들도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바로 계열사 사장을 시켜 곽원산을 만나보라고 지시했다. 한편 곽원산은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한 제철소를 둘러보고 있었다. 동혁이 신분 노출을 꺼려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만약 동혁 때문에 일부러 H시에 왔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H시에 온 핑계를 만들기 위해 명목상 제철소에 답사를 하러 왔다. 공장을 둘러본 후 곽원산은 공장 식당에 가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바로 그때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들어와서 그와의 면담을 청했다. “무슨 일인가요?” 곽원산은 식사를 하며 물었다. 한 중년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도지사님, 전 화옥주식회사 사장으로 있는 장정진이라고 합니다. 도지사님께서 저희 H시 시민들에게 항상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제가 보잘것없는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가지고 있던 계약서 몇 장을 건네주었다. 일부 지분에 대한 양도서였다. “아? 화옥주식회사, 장 사장님이요? 제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곽원산은 계약서를 받아 잠깐 살펴보고는 한쪽에 두었다.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다른 분들은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나요?” 곽원산이 주식 양도서를 받은 것을 보고 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크게 기뻐했다. “도지사님, 전 미래주식회사의 나현범 사장입니다. 이건 저희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저희는 하나그룹인데...” 사람들이 하나둘씩 관원산에게 선물을 건넸다. 한 남녀가 그 모습을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의 이름은 양수경,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이다. 이름만 들어도 투자회사의 소유주가 제원화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이번에 H시에 진출하기 위해 특별히 설립한 회사인데 제원화, 안우평, 유진세 등이 공동으로 출자했다. 남자의 이름은 이천성, 이심의 조카이자 N도 이씨 가문
명성호텔에 온 동혁과 세화는 직원들의 환대를 받았다.지난번 동혁이 이곳에서 Y국 영사 해리슨을 무릎 꿇고 사과하게 만든 일은 직원들에게 깊은 이미지를 남겼기 때문이었다.“안녕하세요, 사해상공회의소의 대표에게 통보해 주세요. 세방그룹 회장 진세화 씨가 회견을 요청한다고요...”세화는 친절하게 직접 접대하러 온 매니저에게 말했다.이번에 온 사해상공회의소는 대표단은 모두 명성호텔에 묵고 있다. 그리고 호텔 한 층의 객실을 전부 사용하는데 이는 그들의 재력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그럼 진 회장님, 잠시만 기다리세요.”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인 매니저는 곧바로 통보했다.현재 9층의 회의실.사해상공회의소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이상하게 조용한 분위기였다.“무슨 소리야, 사정우가 체포되다니?”“H시 경찰국 사람들이 뭘 잘못 먹은 거야? 감히 사정우를 잡아넣다니!”비쩍 마른 남자가 펄쩍 뛰면서 화를 냈다.이 사람은 바로 이번 사해상공회의소가 세화를 살펴보기 위해서 H시에 파견한 대표단의 강경영 대표였다.지금 강경영은 섬뜩할 정도로 굳은 표정이었다.사정우는 이번에 대표단의 일원으로, 자신과 함께 H시로 관광 겸해서 왔다.이런 명문가의 도련님은 당연히 대표단에 얌전하게 붙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H시에 도착하자마자 불량배 친구 한 패거리를 불러서 나가서 한밤중까지 쏘다녔다.강경영은 관여하지 않았고 감히 관여할 수도 없었다.사정우의 부친 사세준은 명문 사씨 가문의 중요 인물일 뿐만 아니라, 사해상공회의소의 이사이자 강경영의 자신의 은인이기 때문이다.강경영 자신은 기껏해야 사세준이 기르는 애완견에 불과할 뿐이다.그래서 사정우가 H시에서 누군가와 추돌사고가 났는데, 사고를 낸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 반면에 오히려 사정우가 잡혀서 유치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강경영은 당연히 크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도대체 누가 사정우 도련님을 잡아넣으라고 명령했는지 당장 조사하고 손을 써!”강경영은 사해상공회의소의 직원에게 지시했다.명령을
“너, 너 공직자가 감히 나를 때려! 너 이건 폭력적인 법 집행이야. 너 죽고 싶어?”나태성은 얼굴을 감싼 채 뒤로 물러선 나태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조동래를 바라보았다.“네 따귀를 때린 건 그나마 가벼운 거야.”무표정한 표정의 조동래가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이 사람은 법 집행에 저항하면서 공직자를 위협했기에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 데다가 계속 행패를 부렸기에 체포합니다.”구경하던 시민들이 다시 한번 환호성을 질렀다.아무도 조동래가 뺨을 때린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저 나태성이란 놈은 정말 사람을 열받게 만들었는데. 조 국장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때린 거야.’‘졸졸 따라다니면서 앞잡이 노릇이나 하는 졸개 놈이 감히 노골적으로 한 시의 경찰국장을 위협했지.’ ‘만약 저 놈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면, H시정부의 위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어?’‘조동래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명문 사씨 가문을 앞세운 나태성의 따귀를 때렸어.’사정우의 표정은 극도로 어두웠다.그는 마침내 상대방이 명문 사씨 가문을 들먹여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더 이상 눈치 없이 굴다가는, 조동래의 성질대로라면 나도 뺨을 맞게 될 거야.’이렇게 생각한 사정우는 계속 상대방과 다투려는 생각을 접었다.그러나 두 명의 경찰관에게 끌려가게 되자, 사정우는 참지 못하고 동혁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이동혁, 맞지, 오늘 이 일은 내가 기억해 두겠어.”“이게 끝이라고 생각해? 허허, 나는 곧바로 나와.”“그렇게 되면 너와 네 마누라에게 하나씩 천천히 이 빚을 계산하겠어...”사정우가 소란을 부리는 모습을 웃으면서 보고 있던 동혁이, 갑자기 앞으로 나가더니 맥라렌의 차문을 맹렬하게 걷어찼다.쾅!큰 소리와 함께 차문 전체가 납작해졌다.“이 이가 놈, 너 지금 죽고 싶다는 거지!”분노가 극에 달한 사정우는 핏줄이 솟을 정도로 분노의 고함을 쳤다.‘내가 이 부서진 차를 다시 운전할 생각은 없다 해도, 이동혁은 모든 사람들의 면전
경찰의 현장 답사는 아주 빨리 진행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과가 나왔다.조동래가 부하들에게 그 자리에서 교통사고 경위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하는 걸 본 사정우는 웃음을 터뜨렸다.‘보아하니 조동래는 적당히 구슬려서 화해시킬 생각도 없고, 바로 이 자리에서 내게 줄을 대려는 모양이네.’“이동혁, 내가 말했지, H시라는 이 촌동네에서는 아무도 감히 나 사정우를 건드리지 못해.”“이제 너는 내가 즐길 수 있게 순순히 네 마누라를 내놓으면 돼!”사정우는 아주 유쾌한 듯이 웃으면서도 탐욕스러운 눈빛은 줄곧 세화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벌써부터 조금 뒤에 어떻게 이 여자를 시중들게 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동혁이 생각을 바꾸는 것 따위는 전혀 두려워하지도 않았다.동혁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지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감사해야 해. 사람들만 없다면 너는 정말 비참하게 박살이 났을 거야.”‘어쨌든 지금 내가 H시의 시장이니까 영향이 미치지 않게 주의해야 해.’‘아직은 내 신원을 아는 사람이 얼마 없지만,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겠지.’바로 이 점 때문에 동혁은 사정우에게 손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조동래에게 전화할 필요도 없었다. 동혁 자신이 해결하면 될 것이다.“계속 주둥이를 놀려봐.”조동래가 다가오는 걸 보면서도 사정우는 킥킥대며 물었다.“조 국장, 교통사고 경위서는 나왔겠지요?”“이 추돌사고에서 우리 진회장님의 백 퍼센트 과실인가요?”조동래가 천천히 말했다.“사 선생님, 그렇습니다. 우리가 현장 조사를 해 본 결과 당신이 악의적으로 차선을 바꾸고 경쟁을 부추겨서 일어난 추돌사고입니다.”“그래서 이번 사고는 당신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동시에 당신은 난폭운전과 무고한 시민에게 행패를 부린 공갈 협박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나중에 경찰에서 당신에게 상응하는 처벌을 내릴 것입니다...”조동래의 싸늘한 말에 사정우의 표정이 굳어졌다.“조 국장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그 말을 들
눈썹을 찌푸린 사정우가 도발적인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좋아, 그럼 지켜보도록 해!”그렇게 말해도 사정우는 여전히 전혀 동혁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비록 상대방이 돈도 백도 없는 서민은 아니지만 항난그룹 회장이라도 그들 명문가 사람들의 앞에서는 여전히 상대조차 될 수 없었다. 사정우는 설사 H시의 시장이 직접 오더라도, 명문가 사씨 가문의 신분만 앞세운다면, 감히 자신에게 손을 댈 수 없다고 믿었다.“이동혁, 내가 지금 너한테 자유롭게 실력을 발휘할 공간을 줄게. 네 마음대로 전화해서 인맥을 찾아봐. H시 시장을 데리고 와도 괜찮아.”“하지만 감히 나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내가 추잡한 말을 앞세웠다고 탓하지 마. 너는 돈을 배상해야 할 뿐만 아니라, 네 아내를 내 놀잇감으로 바쳐야 해!”“나중에 내가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딴소리하지 마...”사정우는 세화의 아름다운 몸매를 쳐다보면서 사악한 표정으로 말했다.이 말을 들은 세화는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더 이상 사정우 따위의 질 낮은 인간과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동혁을 잡아끌었다.“동혁 씨, 차라리 우리가 손해를 보고 말자...”사정우를 흘겨보던 동혁의 눈빛에서 번뜩이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여보, 날 믿어, 여긴 H시야.”세화를 달랜 동혁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조 서장님, 저하고 제 아내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자가 졸개들을 동원해서 길을 막고 있는데, 서장님이 직접 오셔서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전화를 받은 사람은 바로 H시 경찰국장 조동래였다.동혁의 말을 듣자, 조동래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감히 어떤 놈이 졸개들을 보내서 시장님을 막다니, 살고 싶지 않은 거야!’벌떡 일어난 조동래는 놀란 간부들을 내팽개친 채 회의실에서 뛰쳐나갔다.삐용삐용-10분도 안 되어 사이렌 소리를 울이면서 경찰차들이 잇달아 도착했다.조동래가 직접 온 데다가 H시 경찰국에서 교통업무를 담당하는 도영수 부국장도 함께 왔다.세화는 깜짝 놀랐다.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사정우는 뻔뻔하게도 동혁의 면전에서 네 아내를 데리고 놀 테니 아내를 내게 넘기라고 요구했다.구경하던 시민들조차도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느낄 지경이었다.“더러운 돈 좀 있다고 아주 대단하네 정말. 저 진 회장은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지만 너처럼 그렇게 멋대로 날뛰지는 않아!”“어디서 더러운 외지인이 굴러 들어와서 설치는 거야? H시가 네가 멋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야!”“벼락부자 티나 내면서 정말 무법천지인 줄 아는 모양인데...”격분한 사람들이 잇달아 사정우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그러나 사정우는 이런 비난하는 시민들은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오히려 씩 웃으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너희 같은 교활한 인간들은 말을 좀 아껴야 해.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짖는다고 내 털끝이라도 건드릴 수 있겠어?”“너희 같은 버러지들이 내 신분을 안다 해도 전혀 두렵지 않아. 성도의 명문 가문 사씨 가문은 들어본 적이 있을 거야.” “아이고, 여기 H시가 코딱지 만한 촌동네라는 걸 잊어버렸네. 너희 촌것들은 사씨 가문을 들어본 적도 없겠지.”“아무튼 이 작은 H시에서는 아무도 감히 나 사정우를 건드리지 못해. 나 사정우의 일에 관여하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지!”“못 믿겠으면 좀 봐 봐. 사건이 터지고 나서 지금까지 수습하러 온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사정우는 입만 열면 교활한 인간에 촌것들이라며 사람들을 멸시했다.뼛속까지 드러나는 사정우의 우월 의식에 시민들은 치를 떨어야 했다.그러나 사정우의 말은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섬뜩하게 만들었다.‘확실히 사정우의 말대로 이 일대는 H시의 번화가야.’‘평소라면 관련 부서의 출동 속도는 엄청 빨라. 주차 위반 차량도 3분도 채 안 되어 딱지를 붙이지. 하물며 교통사고는 더 말할 것도 없어.’‘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경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설마 이 사정우의 말대로 H시 경찰조차도 개입을 꺼리는 걸
‘이렇게 변태 같은 인간의 손에 떨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세화는 그런 모욕을 절대 참을 수 없었다!“자기야, 어떻게 사고가 난 거야? 괜찮아?”바로 그때, 세화에게 천상의 목소리처럼 동혁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고개를 들어 보면서 그 순간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동혁은 얼른 세화를 붙잡았다. “여보, 왜 울어? 다친 거야?”방금 전에 세화의 전화를 받았던 동혁은 명성호텔로 차를 몰고 달려왔다.호텔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도로가 꽉 막혀 있었다. 차에서 내려 교통을 정리할 수 있을까 싶어 보던 중에 사람들 틈에 갇힌 세화를 발견한 것이다.“다친 거 아니야, 동혁씨, 진짜 잘 왔어.”바로 마음이 놓이면서 자신감이 치솟은 세화는 동혁을 꽉 붙잡은 채 사정우를 가리켰다.“저 사람이 나를 뒤에서 오게하고는 일부러 사고를 일으켰어. 게다가 나한테 돈을 갚으라고 했어!”“저 사람이 이동혁이야, 진씨 가문의 쓸모없는 데릴사위지.”“쓸모가 없다니? 그건 다 옛날 얘기지. 최근에 항난그룹의 회장이자 원화투자회사의 회장이라는 게 드러났잖아...”구경하는 사람들도 동혁을 알아봤고 세화의 남편이 왔다는 걸 알았다.세화를 도와주러 온 사람이 있자 구경하던 사람들도 용기가 생겼다.“이 회장님, 이 사람들이 고의로 당신 아내를 괴롭히고 있어요. 아내 분이 차를 잘 몰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계속 경적을 울리며 따라가더니, 결국 고의로 차를 중간에 끼우고 추돌사고룰 일으켰어요!”“저 자들 보스는 사람 목숨을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너무 지나쳐요!”“또 진세화 씨에게 잠자리를 강요했어요. 권력과 힘을 믿고 완전히 무법천지로 행동했어요...”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동혁은 상황을 금세 파악했다.동혁의 얼굴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사정우를을 쳐다보았다. “네가 사정우야? 일부러 내 아내의 차를 끼워서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니, 정말 엄청 설치네.”“너는 운이 좋았어. 다행히 내 아
“보상만 하면 이 고물 차를 다시 몰고 가도 돼.” 대충 내뱉듯이 사정우가 말했다. ‘내가 아까 했던 말은 소 귀에 경읽기였어?’ ‘분명히 이 인간은 자기가 고의로 추돌사고를 냈다고 인정했으면서도, 뻔뻔하게 내게 보상을 요구한다고?’ 세화는 치미는 분노에 헛웃음이 나오면서 더 이상 말로 따질 필요도 못 느꼈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세화가 말했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네요. 누가 보상해야 하는지 경찰이 판단하게 해야겠네요.” 하지만 그 순간 나태성이 다가와서 세화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리고 다른 차에서 내린 양아치들도 슬그머니 세화를 둘러싸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휴대폰 돌려줘!” 세화는 화를 내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백주 대낮에 대놓고 핸드폰을 강탈할 줄은 몰랐기에 마음속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시민들도 이 광경을 보고 기가 찼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사정우의 패거리는 척 봐도 대단한 기세라서 평범한 시민들은 감히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세화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감히 나설 수가 없었다. “예쁜 아가씨, 그렇게 긴장할 거 없잖아. 핸드폰이 얼마나 하겠어. 보상이 끝나면 돌려줄게.” 사정우는 세화의 휴대폰을 가지고 놀면서 심지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기도 했다. 마치 세화의 체취이라도 배어 있는 것처럼. “웃기지 마. 당신이 내게 배상해야 돼.” 세화는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자 사정우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쁜 아가씨,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당연한 이치를 모르진 않겠지?” 사정우의 시선이 세화의 몸을 훑어내렸다. “배상할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아도 돼. 나하고 같이 자면 돼.” “흠... 오늘이 내가 이 H시에 온 첫날이니까, 특별히 이렇게 하자.” “내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 당신은 내 여자가 되
세화는 조금 놀랐다. H시의 사씨 가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곳의 이씨 가문과 같은 급의 명문 가문이다. 사정우의 아버지가 사해상공회의소의 이사라는 점도 놀라웠다. 그리고 마침 자신도 사해상공회의소 가입을 앞두고 있기에, 참으로 기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같은 편이 될 텐데 다투지는 않겠지.’ 하지만 세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세화가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관계 때문에 방금 있었던 일을 묵인할 생각은 없었다. “방금 일부러 차선을 바꿔 제 차를 들이받게 한 거 맞죠?” 세화는 사정우의 의도를 꿰뚫어 보았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근하려는 수작이라는 걸 알아차린 세화는 손을 내밀지도 않은 채, 표면적으로는 예의를 지키며 정중하게 질문했다. 사정우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좋아요. 난 그저 당신하고 좀 친해지고 싶었을 뿐이에요.” “사고를 계기로 인연이 시작된다면 낭만적인 드라마 같지 않겠어요?” “낭만적인 드라마?” 세화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그건 낭만이 아니라 교통 법규를 무시하는 행위이고,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예요.” “당신의 행동에서 차가움과 무감각만 느꼈을 뿐이에요. 전혀 낭만적이지 않아요.” 세화의 단호한 태도에도 사정우는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이 세화를 바라봤다. 그동안 자신이 만난 여자들은 아무리 새침한 척해도 그의 신분과 재력을 알고 나면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화는 달랐다.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로 자신을 가르치려고 들었다. ‘이런 여자를 정복하는 건 아주 성취감이 있겠어.’ 사정우는 웃으며 말했다. “너무 진지하시군요. 사람 목숨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래요?” “난 예전에도 사람을 친 적이 있어요. 하지만 보상하고 합의서 받으면 끝나는 일이지.” “물론 돈을 거절하고 내 목숨을 요구하는 바보
“내려! 내려!” 차 안에 앉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세화를 본 꼬붕 놈이 차문을 더욱 세게 발로 찼다. 마세라티의 차문에는 순식간에 움푹 패인 자국들이 생겼다. 그 와중에도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미동도 없이 서서 이 모든 사태를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세화는 가슴이 아팠다. 이 차는 바로 동혁이 자신에게 사 준 첫 번째 차였기 때문이다.세화가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행인들이 많이 몰려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이 무리들이 험악해 보이긴 하지만,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거야.’ 그래서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그만 발로 차, 내리면 되잖아.” 나태성이라는 꼬붕놈은 코웃음을 치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세화는 천천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 “와, 이 여자 진짜 예쁜데? 게다가 2억 원이 넘는 마세라티를 타고 다니는 거 보니 완전 재벌이네.” “이 여자도 몰라? 혜성그룹의 회장, 진세화 씨야! 교통사고를 난 사람이 이 여자일 줄은 몰랐네...” 세화는 H시에서 너무나도 유명했다. 최근에는 주다정이 퍼뜨린 유언비어로 인해서, 더욱 사람들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 덕분인지, 세화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역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함부로 못하겠지.’‘혜성그룹 회장 진세화라고?’ 그 순간, 무표정이던 선글라스 남자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쳤다. “당신 운전을 어떻게 한 거야? 운전할 줄 모르면 아예 도로에 나오질 말든가! 김 여사가 바로 당신 같은 여자 운전자를 두고 하는 말이야.” 거들먹거리면서 세화에게 쏘아붙인 나태성은 세화가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였다. “말해봐. 어떻게 책임질 거야?” “아니, 애초에 당신들이 불법으로 차선 변경을 해서 사고가 난 건데, 내가 왜 책임져야 해?” 세화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내 실수로 일어난 사고였다면, 주저하지 않고 피해를 보상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