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 천미는 못마땅하게 눈을 부릅뜨고 밤에도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설전룡을 쳐다보았다. ‘동혁이와 늘 붙어 다니던 놈 아니야?’ ‘건들건들하기는.’ ‘딱 봐도 별로 좋은 인간은 아니야.’ “이 계집애가? 형님 앞에서 괜히 시비 걸지 마라. 형님 체면 봐서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확 그 주둥이를 어떻게 하는 수가 있어.” 설전룡이 동혁에게 손짓을 했다. “형님, 차에 타요.” “내가 보니까 너하고 꽤 잘 어울리는데? 네가 천미 씨 버릇을 한번 고쳐보든지.” “됐어요. 저런 성질 더럽고, 안하무인으로 잘난 체하는 여자는 딱 질색이에요.” 차가 출발하기 전 동혁과 설전룡의 대화가 들려왔다. 천미는 그것을 듣고 화가 나서 하마터면 부하들에게 차로 박아버리라고 지시할 뻔했다. H시 정형외과병원. 제원화는 그날 밤 다리가 부러진 양정석을 찾아왔다. “이동혁, 그 개X식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 얼굴을 때리고 제 다리를 걷어차서 부러뜨릴 줄 몰랐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다고 이렇게 무시를 당하네요.” “막내 회장님, 부디 제 이 억울함을 갚아주세요.” 제원화를 보자마자 양정석은 울부짖기 시작했다. 제원화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양 집사, 걱정 마. 양 집사는 수십 년 동안 우리 제씨 가문에서 일하면서 아버지와 내게 충성을 다했지. 난 양 집사의 억울함을 절대 모른척하지 않을 거야.” 양정석은 제원화의 말에 크게 기뻐했다. 그는 제원화가 시킨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거기다 하원종을 놓쳤다. 그래서 그 속을 알 수 없는 제원화가 자신을 벌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야 안심하며 한숨을 돌렸다. “막내 회장님, 이동혁, 그놈이 얼마나 건방을 떨었는지 아십니까?” “제씨 가문은 별거 아니라며, H시에 와서 정당하게 사업을 하겠다면 환영하겠지만, 또다시 진세화를 노리고 H시에서 위세를 부리면 3대 가문처럼 될 거라고 했습니다.” 양정석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동혁의 말을 전했다. 심
“J시 교도소로 가서 쌍살을 데려와.” 제원화가 무표정한 얼굴로 현병운에게 지시했다. 양정석과 뒤에 있던 부하들이 그의 말에 모두 어리둥절해했다. “네? 회장님. 쌍살을 쓰시려고 그러십니까? 쌍살이 나서면 그게 어디든 걷잡을 수 없이 피바람이 불것입니다.” 양정석이 놀라며 외쳤다. 그의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고, 이마의 핏줄은 마구 뛰었다. 마치 이미 끔찍한 일을 본 것만 같았다. “내 호의를 무시하고, 강오그룹이 나와 맞서 세화 가족을 지키겠다고 한다면 피바람이 좀 불어도 상관없지 않겠어?” 제원화는 뒷짐을 지고 서서 뒤에 있는 현병운에게 손짓을 했다. “출발해.” “예, 회장님.” 현병운은 몸을 굽혀 인사를 하고서 즉시 병실을 떠나 J시로 떠났다. J시 교도소. 따로 떨어진 감방 안에 두 명의 범죄자가 수감되어 있었다. 감방 안 사방 벽. 겉벽이 부서져내려 쑥대밭이 되었다. 어떤 부분에는 움푹 파인 구멍이 가득했다. 누군가 주먹으로 빠르게 두드린 것 같았다. 작은 구멍들도 여럿 있었는데 여러 개의 구멍이 한 번에 뚫린 듯 보였다. 이것은 누군가 다섯 손가락으로 단번에 지른 것 같았다. 벽에는 핏자국도 가득했다. 일부는 오래된 듯 검게 변했고 일부는 방금 만들어진 듯 새빨갛다. 지금 두 명의 범죄자는 모두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고, 감방 입구에 나타난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바로 제원화가 보낸 현병운이었다. “아시지요? 회장님께서 요 몇 년 동안 특별히 보살펴주시지 않았다면 두 분은 암흑가의 원수들에게 이미 죽임을 당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회장님께서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현병운이 철문 밖에 서서 안을 향해 말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다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암흑가의 쓸모없는 놈들이 우리를 죽이러 사람들을 보냈어도 그놈들은 모두 죽었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모두 회장님께서 손을 쓰지 않았다면 두 분이 안에 있는 동안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밖에 있는
제원화의 지시가 떨어졌다. 초대장이 한 장 한 장 밤새 각 사람에게 보내졌다. 곧 H시 각계각층의 모든 거물들이 그 초대장을 받았다. “제원화가 내일 오전 청운각에서 차를 마시자고 우리를 초대한다는데? 이게 무슨 속셈일까?” 지존유원지. 김대이와 박용구는 손에 든 초대장을 들고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은 예전에 동혁을 위해 일했을 때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일 처리가 좋지 않아 동혁이 천미를 사용한 후. 두 사람은 깊은 실의에 빠졌다. 거기다 김대이는 동혁의 말 한마디에 은퇴해야 했다. 그는 모처럼 자신의 본거지에서 박용구와 술을 마시며 울적한 기분을 달래던 참이었다. “그의 속셈이 무엇이든 명문가이니 체면을 봐서라도 참석해야 하지 않을까?” 박용구가 고민하며 말했다. “우리 3대 가문이 망한 지가 언제인데 제원화가 차를 대접하겠다니.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초라해진 3대 가문의 가주들도 초대장을 받고 즉시 작은 카페에 모였다. 그들은 얼마 전 동혁에게 호되게 혼난 터라 행동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같은 시간. 소씨, 오씨, 정씨 등 일류 가문의 가주들도 초대장을 받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제원화의 딸이 이 선생에게 채찍질을 당해 죽을 지경인데 지금 차를 대접할 여유가 어디 있지?” 시청, 하세량 역시 초대장을 받아 골치가 아팠다. ‘이제 막 위세를 부리던 3대 가문이 무너졌는데, 이씨와 제씨 같은 명문가가 또 H시에 오다니.’ 하세량은 시장으로서 여전히 곤란을 겪었다. 그는 제원화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H시의 많은 명망 있는 거물들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모두 어찌할 바를 몰라 불안에 떨었다. ‘유서 깊은 명문가 제씨 가문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초대를 한다는 것은 반드시 뭔가 큰일이 있다는 뜻이야.’ 초대장을 받은 사람은 도저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막내 회장님, 가볍게 다과회를 열어서 H시의 모든 세력들을 압박해 이동혁 그 잡종 놈을 견제하게 할
제원화가 보낸 초대장이 곧바로 항난그룹에 도착했다. 이 초대장은 매우 특이했다. 그 안에 단 한마디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튀어와서 사죄해라!” 초대장을 보낸 사람은 동혁이 직접 초대장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수소야는 이 초대장을 받고서 놀라서 낯빛이 어두워졌다. ‘동혁 씨와 제씨 가문 사이에 벌어진 최근의 충돌들은 모두 나와 마리 때문에 일어난 거야.’ ‘지금 제원화가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걸 보니 내일 분명 동혁 씨를 겨냥해 뭔가를 하려는 게 틀림없어.’ “수 사장님, 초대장을 회장님께 전달할까요?” 항난그룹 수소야 사장의 비서인 송소빈이 물었다. “아뇨, 내가 대신 갈 거예요. 이런 사소한 일까지 회장님께 전할 필요 없어요.” 수소야는 이를 악물며 마음속으로 이미 결심을 했다. 하늘 거울 저택. 세화는 전화를 받고 걱정스러워하며 동혁에게 말했다. “동혁 씨, 내 친구가 방금 전화를 해서 알려줬어. 제씨 가문에서 H시의 유력 인사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대. 청운각에서 차를 대접하겠다고 하던데 어쩐지 우리를 상대하려고 일을 꾸미는 것 같아.” 동혁은 제설희를 반죽을 정도로 때렸다. 세화는 그 때문에 제원화가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마음속으로 줄곧 걱정을 했다. 동혁은 자신에게도 제원화가 초대장을 보낸 지 모르고 태연하게 말했다. “여보 걱정 마. 제원화가 뭘 어쩌겠어?” 세화는 여전히 걱정이 많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하늘 거울 저택 밖으로도 감히 나가지 못했다. “천미 언니도 방금 전 나한테 소식을 전했는데 R시에 일이 생겼대. 전에 하 선생님을 납치한 그 이정산 부자가 죽었다는데? 그래서 밤새 그곳으로 달려갔어.” 동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정산 부자가 죽었다고?’ ‘암흑가의 원수에게 당했나?’.동혁은 그렇게 추측했다. 그는 이정산 부자의 처지를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정산의 일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H강변의 청운각. 거물들이 많이
“오늘 여러분들에게 가볍게 차 한잔 대접하려고 마련한 자리입니다. 모두들 격식 차릴 필요 없이 편하게 즐기세요.” 제원화가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두 손을 들어 아래로 내리며 편하게 앉을 것을 권했다. “회장님, 어젯밤에 R시의 최고 고수 이정산 부자가 죽었는데 J시 쌍살이라는 형제의 소행이라고 합니다. 그 두 사람이 제씨 가문과 관련이 있나요?” 일류 가문의 한 가주가 물었다.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매우 당돌하게 보일 순 있지만 그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제원화의 대답을 주시했다. 제원화가 웃으며 차분히 대답했다. “아는 사이긴 합니다.” 그의 대답은 의미심장했다. 순간 그 자리에 있던 거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제 회장도 자기 패를 완전히 드러내고 싶지는 않겠지. 그래서 자기가 시킨 일이라고 직접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 ‘하지만 아는 사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이야.’ 금세 두려움에 표정이 어두워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오그룹이 대동사채 사람들을 몰살시키자마자 제 회장이 R시 최고 고수 이정산의 사람들을 몰살시키다니.’ ‘그 이정산은 은퇴한 후에 천미가 R시를 장악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잖아?’ ‘강오그룹이 R시에서 자리를 잡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졌어.’ ‘목표가 너무 뚜렷하고 기세가 아주 강해.’ ‘거기다 일을 벌인 사람은 단 두 명, J시 쌍살.’ ‘제 회장이 만약 그 두 명의 살인기계를 H시로 보낸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안돼.’ 모인 사람들 중 특히 암흑가에서 온 거물들이 제원화를 바라보는 눈빛에 경외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H시 친구들 아닙니까? R시의 일을 얘기해서 뭐 합니까?” 제원화는 모두에게 의미 가득한 미소를 날렸다. 그러면서 물었다. “아, 항난그룹에서는 어느 분이 오셨나요?” 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청운
수소야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준기가 내 아들이야. 우리 별라그룹도 어쨌든 J시에서 손꼽히는 큰 그룹이지. 그런데 이동혁, 그 자식이 그런 내 아들을 여러 번 모욕하며 아랫사람 취급하다니, 그 잘못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각진 얼굴의 유진세는 너무 흥분하지 않으면서 위엄 있는 말투로 말했다. 다른 몇몇 중년들도 연이서 나서며 수소야에게 호통을 쳤다. 모두 J시의 손꼽히는 그룹 회장들이었고 그들의 자녀들 역시 제설희와 함께 화를 입었다. 그래서 그들 역시 그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모든 일이 당신 모녀 때문에 일어난다고 들었는데, 맞지?” 안우평이 무뚝뚝하게 물었다. “맞아요.” 수소야는 안우평 등의 말에 놀라서 얼굴이 많이 창백해진 상태였다. 안우평이 소리쳤다. “무릎 꿇고 당장 우리에게 사과해.” 풀썩! 수소야는 주저 없이 무릎을 꿇었다. ‘동혁 씨는 우리 가족에게 언제나 잘해 줬어. 오늘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그런 동혁 씨를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돼.’ “항난그룹이 전에는 그렇게 거만하게 굴며 제씨 가문과 맞서더니 결국 지금 그룹 사장님이 여기에서 무릎을 꿇게 됐구만.” 안우평이 천천히 수소야에게 다가갔다. 짝! 그는 갑자기 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수소야의 얼굴을 세게 때렸다. 수소야의 하얀 뺨에 금세 붉은 손바닥 자국이 생겼다. 그녀의 입가에서는 핏물이 한줄기 흘러나왔다. “수 사장님.”비서인 송소빈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놀라는 소리에 파묻혔다. 그녀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참는 수소야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터뜨렸다. “여보세요? 회장님, 수 사장님이 지금 청운각에서 뺨을 맞았어요.” 송소빈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동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동혁은 차를 몰고 세화와 함께 장해조가 있는 숙소로 가고 있었다. 그들이 방금 새로운 소식을 듣고 놀랐기 때문이다. 천미가 R시에서 쫓겨 죽을 뻔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보호
휴대폰 스피커로 증폭된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청운각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그 음성을 똑똑히 들었다. 순간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동공이 흔들렸다. ‘이 사람 누구야?’ ‘감히 안우평 등을 쓸모없는 놈들이라고 하다니.’ ‘여기 몇 사람은 각각 한 그룹의 회장님이야.’ ‘모두 명문가 제씨 가문의 조력을 받고 성장한 그룹들.’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아.’ ‘설사 소씨, 오씨, 정씨 등 일류 가문의 가주라도 이 사람들 앞에서 감히 뻣뻣하게 굴며 무시할 수 없다고.’ ‘그런데 지금 감히 어떤 놈이 저런 큰 그룹의 회장님들을 쓸모없는 놈들이라고 매도하는 거지?’ “누구야? 당장 나와!” 안우평은 격노해 이를 악물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그들은 괜한 불똥을 맞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안우평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서기까지 했다. 모두들 너무 놀라 아연실색했다. 일어선 사람이 어린 여자였기 때문이다. 바로 송소빈이었다. “이봐? 감히 날 도발한 게 새파랗게 어린 너야?” 안우평은 분노로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송소빈은 휴대폰을 꽉 쥐고 더욱 긴장했다. [겁내지 말고 가까이 가서 저놈들이 내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게 하세요.] 휴대폰에서 동혁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우평이라고? 역시 그룹의 회장이라는 아버지가 이렇게 입이 더러우니까, 그 딸도 너처럼 입이 더러운 거겠지? 그렇다면 좀 맞아야 하지 않겠어? ]송소빈은 용감하게 홀 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동혁의 목소리가 점점 더 분명해졌다. 안우평은 즉시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아챘다. “이동혁, 개X식, 네놈이구나.” 안우평은 분노로 이를 갈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당장 튀어와서 우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지 않고?” “야 이 개X식아 거기 숨어서 뭐 하고 있냐? 배짱이
“으어, 너무 아파.” 안우평은 바닥에 주저앉아 아파서 울며 소리쳤다. 방금까지 자신만만했던 그가 연약한 모습을 보이자 많은 사람들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안우평을 경멸했다. ‘방금 수 사장은 그렇게 뺨을 많이 맞아도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는데.’ ‘저 안우평은 고작 한 대 맞고 여자보다도 못하게 울부짖는 꼴이라니.’ 하지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박용구가 정말 동혁의 말을 듣고서 안우평의 뺨을 때릴 줄은 몰랐다. 제원화 역시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는 차갑게 박용구를 쳐다보았다. “박 회장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안우평은 제원화가 J시에서 데려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박용구가 안우평을 때린 것은 마치 제원화의 뺨을 때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참을 수가 없어서요. 회장님 앞에서 실례 좀 했습니다.” 박용구가 먼저 양해를 구했다. 제원화는 표정을 굳히며 낮은 음조로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인지 잘 해명해야 할 겁니다.” “그러지요.” 박용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안우평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상대의 배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박용구는 안우평을 자신 앞에 무릎 꿇게 했다. 그는 다시 손바닥을 치켜들더니 좌우로 휘두르며 반복적으로 세게 안우평의 뺨을 때렸다. 안우평은 비명을 연발했다. 얼마나 뺨을 많이 때렸는지 곧 안우평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게 되었다. 박용구는 그래도 멈추지 않고 이어서 안우평의 얼굴을 발로 찼다. 그렇게 안우평은 개처럼 반죽을 때까지 맞아서 박용구에 의해 땅에 내던져졌다. 이 무자비한 모습을 보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그제야 박용구가 제원화를 올려다보며 씩 웃으며 말했다. “굳이 해명하자면, 이건 형님이 제게 이놈 얼굴을 후려갈겨 주라고 하셔서 그런 겁니다.” 제원화는 분노해 눈이 가느다랗게 변했다. 그의 칼날 같은 눈빛이 박용구를 주시했다. 속이 깊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조차 지금 박용구의 도발적인 행동에 화가 나 속눈썹이
“결혼을 했으면 이혼하면 되지.” “저 이동혁이라는 사람은 보기에도 그저 아주 평범해. 거기다 데릴사위이니 평소에는 구박이나 받고 살 거야.” “솔직히 골키퍼라고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 양도형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결정한 듯 말했다. “그래, 이제부터 저 진 회장은 내 여자야.” 양도형의 넘치는 자신감을 보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은 또 누구지. 누군데 이리 자신만만해?’ 하지만 모두는 양도형이 단지 말뿐이 아니라 동혁과 세화 쪽으로 곧장 걸어가자 흥미로운 눈빛을 번쩍였다. ‘재미있는 볼거리가 생겼네.’ 한편,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이 모두 세화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비록 사람들이 두 배로 늘었지만 세화는 아래층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여유롭게 사람들을 대했다. 동혁은 눈으로 그 모습을 보며 약간 흐뭇해했다. ‘세방그룹과 혜성그룹을 경영하면서 세화가 두 그룹의 회장이 되더니 이제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아주 익숙해졌어.’ ‘이렇게 계속 성장하면 언젠가 우리 H국 재계 전체에서 세화가 한 자리를 차지할 거야.’ 동혁은 세화의 뒤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며 사람들의 주의를 빼앗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그저 묵묵히 세화를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때 하필 양도형이 다가와서 문제를 일으키려 했다. “이봐요. 친구. 제가 그쪽과 좀 상의할 게 있는데.” 그는 앉아서 동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동혁은 멍해져서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남자를 쳐다보았다. 30살 안팎의 나이, 깔끔한 정장차림에 기세도 좋고, 눈썹에 힘이 있으며 온몸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한눈에 봐도 젊고 유능한 의기양양한 젊은 인재였다. “무슨 일이죠?” 동혁은 양도형의 의도를 알지 못해 그저 웃었다. 양도형도 웃더니 천천히 카드 한 장을 꺼내 동혁의 품에 건넸다. “이 카드에는 2억이 들어 있어요. 제가 지금 이걸 드릴 테니, 우리 거래하죠.” 동혁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
동혁은 아무런 상관없었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화를 참는 것처럼 보였다. “하하, 진 회장님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회장님의 데릴사위 남편이 재주가 없는 건사실이잖아요. 그래도 보아하니 적어도 화를 참는 건 우리보다 낫네요.” “그러게요. 우리 같았으면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면 못 참았을 텐데요.” “진 회장님 남편은 독립투사 같은 기개가 있어요. 외세의 굴욕을 견디고 마침내 나라의 독립을 이뤄낸 사람들 말이에요. 욕을 잘 참는 건 아주 꼭 닮았어요. 그래서 대단하게 생각해요.” “하하하.” 한 무리의 사람들 사이가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세화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희고 청순한 얼굴에서 분노를 드러냈다. 류성중은 세화의 명성을 빌려 이번 연회에서 자신을 더 빛내려고 했다. ‘이렇게 세화를 계속 화나게 하다간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거야.’ “그만하시죠. 어쨌든 동혁이는 제 조카사위예요. 농담들이 너무 지나치세요.” “다들 이러지 말고, 곧 연회가 곧 시작되니 들어들 가시죠.” “세화야, 너도 동혁이를 데리고 들어가자. 이따가 또 큰 어른들이 오실 거야. 너도 인사해 두면 나중에 좋을 거야.” 류성중은 일부러 정색을 하고 동혁을 감싸듯이 말했다. 그러나 동혁을 비꼬던 사람들은 류성중의 말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을 뿐이지, 류성중이 동혁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적어도 세화에게 상황을 벗어날 기회는 주었다. 그녀는 화를 참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위로하듯이 동혁의 손을 잡아 쥐었다. “동혁 씨, 방금 전 일은 신경 쓰지 말고 같이 들어가자.” 동혁은 아무렇지 않게 세화를 따라 호텔로 들어갔고 뒤에 있는 사람들의 조롱 섞인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말 완벽히 쓸모없는 놈이네.” 류성중도 콧방귀를 뀌며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은 3층의 연회장으로 향했다.그 안에 이미 모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역시 H시 의료보건시스템의 크고 작
류성중의 설교 같은 말투에 세화는 조금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 류혜진과 류혜연의 당부로 인해 세화는 류성중의 태도에 대해 어느 정도 각오를 해서 참을 수 있었다. 세화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외삼촌. 제가 외삼촌의 말씀을 잘 명심할게요.” 류성중이 세화를 자신의 아랫사람이라 여겨 대놓고 훈계하는 모습을 보이자 현장의 사람들의 시선에 류성중에 대한 존경이 깊어졌다. 류성중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효과였다. 그는 아직 40대 초반으로 조직 안에서 확실히 젊은 편에 속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 특히 의료보건시스템과 병원에서 일하는 선배들의 경우 겉으로는 류성중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적으로는 다를 수 있었다.그러나 지금 류성중이 세화를 훈계함으로 바로 이런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의 권위를 바로 세우게 됐다. 이때 세화가 고개를 돌려 동혁에게 눈짓을 하자 동혁이 류성중에게 다가갔다. “외삼촌, 안녕하세요.” 류성중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는 동혁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그대로 고개를 돌려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세화에게 말했다. “왜 동혁이를 여기로 데려온 거야?” 이 말을 듣고 동혁은 몸을 돌려 그대로 돌아가려고 했다. 세화는 동혁의 성격을 알고서 얼른 그를 잡아당겼다. ‘동혁 씨가 이렇게 그냥 가버리면 외삼촌이 더 화를 낼 거야.’ ‘외삼촌이 화를 내든 말든 상관없지만 나중에 엄마가 알면 큰일이니까, 말려야지.’ 동혁도 세화의 생각과 같아 잠시 참기로 했다. “외삼촌, 저희 어머니께 전화로 동혁 씨를 만나야겠다고 하셨잖아요.” 세화가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류성중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건 나중에 개인적으로 보면 되지. 내가 언제 이곳으로 동혁이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 대체 이놈이 이런 자리에 가당키나 해?”류성중은 말속에서 동혁에 대한 경멸과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동혁의 참석에 불만을 품은 일부 사람들도 류성중의 태도를 보자마자 따라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진 회장님, 여기
류성중을 둘러싸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고 바로 달려들었다. “혜성그룹의 진 회장 아니십니까? 회장님도 오늘 연회에 참석하신 건가요?” “진 회장님, 혜성그룹이 최근 아주 잘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하 선생님까지 태백산장의 홍보대사를 맡기로 하셨다지요?” 세방그룹과 혜성그룹을 경영하는 세화는 H시의 재계에서 이제는 위치가 달라졌다. 현장에 있는 여러 의료보건시스템의 리더들조차도 그녀 앞에서 감히 거만하게 굴지 못했다. 병원의 원장이나 제약회사의 사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사람들은 최근 H시에서 두각을 보이는 세화와 어떻게든 관계를 맺어 협업할 수 있기를 바랐다. “네. 감사합니다.” 세화는 의젓하게 모여든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절도 있게 행동했다. 사실 그녀는 대부분의 사람들 이름도 몰랐다. “쾅!” 사람들이 계속 세화에게 아부를 하려고 할 때 뒤에서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정장 차림의 동혁이 차 뒤편에서 돌아 나왔다. 사람들이 그를 보자 소란스러웠던 현장이 곧바로 조용해졌다. 동혁도 분명 H시에서 만큼은 유명인사에 속했다. 그래서 현장에는 동혁을 아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설사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이 조금만 귀띔해 주면 동혁이 진씨 가문의 그 소문난 데릴사위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세화가 자신의 남편인 데릴사위를 함께 데려왔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동혁 같은 사람은 근본적으로 오늘 밤과 같은 수준 높은 모임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세화의 신분 때문에 아무도 나서서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세화가 있음에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다소 동혁을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표정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이 좀 불편했다. 세화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류성중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먼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준비해 온 이청백의 서예 작품을 선물로 내밀었다. “외삼촌 안녕하세요. 이건 제가 준비한 작은 선물이에요
“세화야, 지금은 네 외삼촌이 가문에서 힘이 있으니 되도록 좋은 말 많이 하고 기분 좀 맞춰드려.” 이모인 류혜연도 세화와 동혁에게 당부했다. 그녀는 류성중이 류씨 형제자매 중 막내라 해도 가문에서 그의 지위가 자신보다 높다고도 알려주었다. 류씨 가문의 류호천은 옛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막내아들인 류성중을 가장 좋아했다. “이모, 알았어요.” 세화는 류혜진과 류혜연의 말을 듣고는 동혁을 데리고 문을 나섰다. 그녀는 먼저 동혁과 혜성그룹에 가서 류성중에게 줄 선물을 고르려고 했다. 세화의 사무실에는 협업에 대해 이야기하러 온 회사 사장님들이 두고 간 좋은 선물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다지 비싸지도 않았고 성의로 생각해서 세화는 그 선물들을 그냥 받았었다. 세화는 그중 N도 서예의 대가인 이청백의 서예 작품을 골라서 동혁과 함께 명성호텔로 향했다. 류성중은 이번에 H시에 와서 이씨 가문을 대신해 동혁에게 이천성을 돌려보낼 것을 전하려고 했다. 그는 N도 의료공단의 부이사장으로 이번에 H시를 방문한 김에 여러 의료 기관에 대한 감독과 지도를 수행했다. 마치 감찰관과 같은 위치라 아랫사람들은 당연히 깍듯이 그를 대우했다. 그래서 오늘 밤에 H시의 의료 관련 시설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그를 명성호텔에 초대해 연회를 열기로 했다. 그중에는 병원의 대표도 있었고 의료 관련 회사 사장들도 많았다. 류성중이 아우디 A6를 타고 명성호텔에 도착하자 호텔 입구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와서 차 문을 당겨 열었고 다른 손으로는 그의 정수리를 보호했다. “류 부이사장님, 부딪히지 않게 조심히 내리세요.” “부이사장님은 의료공단에서도 전문적이면서 기술까지 뛰어난 리더 아니십니까? 만약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우리 N도 의료보건 시스템에 큰 손실이지요.” 문을 여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류성중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류씨 가문은 의학 가문으로 가족들이 대대로 의학을 연구했다. 그도 원래는 의학을 공부했지만 졸
“외삼촌이 H시에 왔는데, 동혁 씨를 만나고 싶다고 한다고요?” 세화가 얼굴을 찡그리며 의아하게 동혁을 바라보았다. 외가 쪽 친척에 대해서 별로 호감이 없는 세화였다. 애초에 류씨 가문에서는 류혜진이 진씨 가문에 시집가는 것을 그다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가문의 왕래가 적었고, 그로 인해 세화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류씨 가문의 친척들을 만난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세화가 동혁과 결혼하기로 하자 류씨 가문은 잠시 진씨 가문과 왕래가 잦아졌다. 그러다 나중에 동혁이 사고를 당했고, 류혜진은 의료사고로 해고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때세화의 외할아버지인 류호천은 류혜진이 류씨 가문의 명성을 망쳤다는 이유로 그녀를 다시는 류씨 가문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사실상 가문에 류혜진을 쫓아낸 셈이었다. 그 일은 류혜진의 가슴에 영원한 상처로 남았다. 이후 세화의 가족과 류씨 가문 사이의 왕래는 완전히 끊어졌다. 오로지 막내 이모인 류혜연의 가족과 몰래 연락을 주고받는 게 다였다. 세화의 외삼촌 이름은 류성중이다. 세화는 류성중이 N도 의료보건시스템의 리더라는 것만 알고 그 외 나머지는 잘 몰랐다. “여보,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도 무슨 이유인지 모르니까.” 동혁 역시 의아하게 생각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류혜진이 바로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모른 척하지 마. 이것도 다 너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세화야, 외삼촌이 그러는데 자기는 N도 이씨 가문의 부탁을 받고 밤새 H시에 와서 사람을 치료했다고 하더라고.” “네 외삼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너도 동혁이가 몰래 뒤에다 얼마나 많은 일을 숨겼는지 몰랐을 거야.” 류혜진이 화를 내며 동혁을 가리켰다. “지난번에 이 놈이 도지사 어른께 선물을 보내 드렸었잖아. 그래서 사람들이 이놈을 따라 했는데 그때 이씨 가문에 이천성이 붙잡혔어.” “이씨 가문이 하세량 시장에게 가서 이천성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는데, 글쎄 이놈이 시장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동혁이가 풀어주라고 해
동혁은 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몰랐지만 재빨리 현소 남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해 보니 집안의 분위기가 좀 무거웠다. 세화의 막내 이모인 류혜연이 류혜진에게 무언가를 말하며 싱글벙글 웃다가 고개를 돌려 동혁과 현소 남매를 보고 일순간 표정이 굳었다. “아이고, 우리 현수, 잠깐 나갔다 온다더니, 왜 이래? 넘어진 거야? 아니면 누구한테 맞았어?” 류혜연이 달려들어 현수를 살폈다. 가까이 가자 현수의 양쪽 뺨이 모두 새빨갛고 입가에는 피가 묻은 것이 보였다. 몸에는 지저분한 발자국이 나 있었는데 밖에서 얻어맞았다면 가볍게 볼 수 일이 아니었다. “아이고, 이런, 우리 아들 어떻게 하면 좋아?” 류혜연은 현수를 껴안고 한바탕 울부짖었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려 동혁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동혁이 이 죽일 놈, 우리 현수가 너랑 같이 나가서 이렇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넌 매형이 되어서 그걸 그냥 보고만 있었어?” “이 쓸모없는 놈, 대체 생각이 있어?” “우리 현수에게 만일 무슨 큰 일이라도 생겼다면 난 너하고 아주 끝장을 봤을 거야.” 동혁은 혼자 물을 따라 마시며 변명하기 귀찮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현수 매형이라고 하는 거야?’ ‘그럼 진작에 현수에게 매형인 내 말을 잘 들으라고 가르치던지?’ 사실 류혜연은 현수가 얼굴을 맞고 발로 차인 것을 보고 아무 이유 없이 동혁에게 화부터 낸 것이었다. 현소가 나서서 동혁을 대신해 변명했다. “엄마, 다짜고짜 형부에게 욕부터 하지 마요. 현수가 아는 그 스승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그래요?” “용비무술학교교장 아들인데, 아주 제멋대로 날뛰는 못된 놈이에요.” “강제로 절 추행한 것도 모자라, 현수가 화를 내니 그놈이 때렸다고요.” “오늘 밤 형부가 나서서 상대방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이렇게 집에도 못 왔을걸요?”현소의 말에 류혜연과 류혜진은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다. ‘동혁이가 정말 그 정도로 대단해?’ 그녀들은 믿을 수 없었다. 류혜진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청년도 일어나 동혁을 노려보았다. “네가 반석 도련님이 말한 그 쓸모없는 데릴사위 놈이지?” “흥, 감히 기습을 하고 내 뺨까지 때려?” “당장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어. 그렇지 않으면 반석 도련님이 나와서 네놈을 죽일 거야.” 청년은 독기 가득하게 동혁을 향해 소리쳤다. 동혁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두말없이 다시 뺨을 날렸다. “짝!” 청년은 이번에 맞아서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짝! 짝!” 동혁은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남녀를 막론하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사람들의 뺨을 때려서 날렸고 맞은 사람들은 비명소리를 질렀다. “한 번만 더 앞을 막으면 이번엔 손바닥으로 때리지 않을 거야.” 동혁은 차갑게 한마디 하고 현소를 데리고 갔다. 현수가 그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매형, 오반석은요?” 현수는 방금 나오기 전 동혁이 왕범현을 시켜 오반석을 때리는 것을 보았다. 현수의 눈에 동혁은 이번에 큰일을 저질렀다. ‘어쨌든 그 오반석의 아버지는 리성투자회사의 부사장님이야. 분명 가만있지 않고 매형에게 미친 듯이 복수하려 할 거야.’ ‘그런데 잠깐, 매형이 이렇게 멀쩡히 걸어 나왔는데 오반석의 모습은 왜 보이지 않는 거지?’ ‘뭔가 이상한데?’ “그래, 반석 도련님 어디 계시지?” “도련님만 나오셔봐. 데릴사위 네놈을 죽여서 우리 복수를 해 주실 거야.” 뺨을 맞은 남녀들이 일어나며 뺨을 가린 채 원망스럽게 소리쳤다. “잠시 비켜주세요. 길 막지 마세요.” 바로 그때 연이은 고함소리와 함께 골드스타필드 입구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양쪽으로 갈라졌다.사람들이 보니 무술학교 학생 몇 명이 피투성이가 된 사람의 팔과 다리를 각각 잡아 들고 뛰쳐나와 길가에 던졌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사람은 고통으로 여전히 계속 비명을 질렀다. “뭐지? 이 목소리가 왜 도련님 같지?” 오반석의 불량스러운 남녀 친구들은 완전히 어리둥절해졌다. “반석 도련님이 맞아.” “도련님, 괜찮으세요? 이건? 두
고통으로 기절할 것 같은 오반석을 보고 왕범현은 잠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와 동시에 다시는 남 앞에서 함부로 허세를 부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동혁 삼촌처럼 실력을 감추고 나서지 않는 사람을 또 만난다면 다음번에는 내가 오반석 같은 운이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어.’ “끌고 나가. 구급차 불러서 데려가라고 하고 리성투자회사에 이 사실을 알려주고.” 왕범현이 손짓을 하자 무술학교 학생들이 오반석을 들어 올렸다. 몸을 억지로 움직이자 오반석은 큰 고통에 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 한편 동혁은 아무런 미련 없이 골드스타필드를 나섰다.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아까 전 용비무술학교에서 온 거의 1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클럽 안으로 들어왔을 때 손님들은 폭력사태라도 일어나 불똥이라도 튈까 봐 모두 겁에 질려 뛰쳐나왔다. 사람들은 모두 무슨 일인지 궁금하며 안을 두리번거리면서 서로 의견이 분분했다. 다행히 일은 2층에서 벌어져서 동혁이 나오는 모습을 사람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동혁이 오늘 밤의 유혈사태를 일으킨 장본인 줄도 몰랐다. 동혁은 눈썰미 좋게 길가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현소, 현수 남매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둘 남매에게 문제 생겼다. 한 무리의 젊은 남녀들이 두 사람을 둘러싸 못 가게 막고 현소를 보며 웃고 있었다. 동혁이 나오기 전부터 서로 실랑이가 벌어졌던 듯 현수의 몸에는 이미 더러운 발자국이 나 있었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비켜요. 왜 우리를 막고 내 동생까지 때리는 건데요?” 현소는 날카롭게 소리치며 분노한 큰 눈으로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현소의 이런 반응은 상대에게 위압감보다는 귀엽다는 인상을 더 많이 줄 뿐이었다. 한 무리의 젊은 남녀들은 여전히 웃으며 그녀가 소리쳐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네가 바로 그 현소지? 반석 도련님이 네 사진을 보여주며 오늘 밤 호텔로 데려간다고 자랑하던데?”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