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 천미는 못마땅하게 눈을 부릅뜨고 밤에도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설전룡을 쳐다보았다. ‘동혁이와 늘 붙어 다니던 놈 아니야?’ ‘건들건들하기는.’ ‘딱 봐도 별로 좋은 인간은 아니야.’ “이 계집애가? 형님 앞에서 괜히 시비 걸지 마라. 형님 체면 봐서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확 그 주둥이를 어떻게 하는 수가 있어.” 설전룡이 동혁에게 손짓을 했다. “형님, 차에 타요.” “내가 보니까 너하고 꽤 잘 어울리는데? 네가 천미 씨 버릇을 한번 고쳐보든지.” “됐어요. 저런 성질 더럽고, 안하무인으로 잘난 체하는 여자는 딱 질색이에요.” 차가 출발하기 전 동혁과 설전룡의 대화가 들려왔다. 천미는 그것을 듣고 화가 나서 하마터면 부하들에게 차로 박아버리라고 지시할 뻔했다. H시 정형외과병원. 제원화는 그날 밤 다리가 부러진 양정석을 찾아왔다. “이동혁, 그 개X식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 얼굴을 때리고 제 다리를 걷어차서 부러뜨릴 줄 몰랐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다고 이렇게 무시를 당하네요.” “막내 회장님, 부디 제 이 억울함을 갚아주세요.” 제원화를 보자마자 양정석은 울부짖기 시작했다. 제원화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양 집사, 걱정 마. 양 집사는 수십 년 동안 우리 제씨 가문에서 일하면서 아버지와 내게 충성을 다했지. 난 양 집사의 억울함을 절대 모른척하지 않을 거야.” 양정석은 제원화의 말에 크게 기뻐했다. 그는 제원화가 시킨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거기다 하원종을 놓쳤다. 그래서 그 속을 알 수 없는 제원화가 자신을 벌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야 안심하며 한숨을 돌렸다. “막내 회장님, 이동혁, 그놈이 얼마나 건방을 떨었는지 아십니까?” “제씨 가문은 별거 아니라며, H시에 와서 정당하게 사업을 하겠다면 환영하겠지만, 또다시 진세화를 노리고 H시에서 위세를 부리면 3대 가문처럼 될 거라고 했습니다.” 양정석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동혁의 말을 전했다. 심
“J시 교도소로 가서 쌍살을 데려와.” 제원화가 무표정한 얼굴로 현병운에게 지시했다. 양정석과 뒤에 있던 부하들이 그의 말에 모두 어리둥절해했다. “네? 회장님. 쌍살을 쓰시려고 그러십니까? 쌍살이 나서면 그게 어디든 걷잡을 수 없이 피바람이 불것입니다.” 양정석이 놀라며 외쳤다. 그의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고, 이마의 핏줄은 마구 뛰었다. 마치 이미 끔찍한 일을 본 것만 같았다. “내 호의를 무시하고, 강오그룹이 나와 맞서 세화 가족을 지키겠다고 한다면 피바람이 좀 불어도 상관없지 않겠어?” 제원화는 뒷짐을 지고 서서 뒤에 있는 현병운에게 손짓을 했다. “출발해.” “예, 회장님.” 현병운은 몸을 굽혀 인사를 하고서 즉시 병실을 떠나 J시로 떠났다. J시 교도소. 따로 떨어진 감방 안에 두 명의 범죄자가 수감되어 있었다. 감방 안 사방 벽. 겉벽이 부서져내려 쑥대밭이 되었다. 어떤 부분에는 움푹 파인 구멍이 가득했다. 누군가 주먹으로 빠르게 두드린 것 같았다. 작은 구멍들도 여럿 있었는데 여러 개의 구멍이 한 번에 뚫린 듯 보였다. 이것은 누군가 다섯 손가락으로 단번에 지른 것 같았다. 벽에는 핏자국도 가득했다. 일부는 오래된 듯 검게 변했고 일부는 방금 만들어진 듯 새빨갛다. 지금 두 명의 범죄자는 모두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고, 감방 입구에 나타난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바로 제원화가 보낸 현병운이었다. “아시지요? 회장님께서 요 몇 년 동안 특별히 보살펴주시지 않았다면 두 분은 암흑가의 원수들에게 이미 죽임을 당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회장님께서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현병운이 철문 밖에 서서 안을 향해 말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다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암흑가의 쓸모없는 놈들이 우리를 죽이러 사람들을 보냈어도 그놈들은 모두 죽었어.”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모두 회장님께서 손을 쓰지 않았다면 두 분이 안에 있는 동안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밖에 있는
제원화의 지시가 떨어졌다. 초대장이 한 장 한 장 밤새 각 사람에게 보내졌다. 곧 H시 각계각층의 모든 거물들이 그 초대장을 받았다. “제원화가 내일 오전 청운각에서 차를 마시자고 우리를 초대한다는데? 이게 무슨 속셈일까?” 지존유원지. 김대이와 박용구는 손에 든 초대장을 들고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은 예전에 동혁을 위해 일했을 때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일 처리가 좋지 않아 동혁이 천미를 사용한 후. 두 사람은 깊은 실의에 빠졌다. 거기다 김대이는 동혁의 말 한마디에 은퇴해야 했다. 그는 모처럼 자신의 본거지에서 박용구와 술을 마시며 울적한 기분을 달래던 참이었다. “그의 속셈이 무엇이든 명문가이니 체면을 봐서라도 참석해야 하지 않을까?” 박용구가 고민하며 말했다. “우리 3대 가문이 망한 지가 언제인데 제원화가 차를 대접하겠다니.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초라해진 3대 가문의 가주들도 초대장을 받고 즉시 작은 카페에 모였다. 그들은 얼마 전 동혁에게 호되게 혼난 터라 행동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같은 시간. 소씨, 오씨, 정씨 등 일류 가문의 가주들도 초대장을 받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제원화의 딸이 이 선생에게 채찍질을 당해 죽을 지경인데 지금 차를 대접할 여유가 어디 있지?” 시청, 하세량 역시 초대장을 받아 골치가 아팠다. ‘이제 막 위세를 부리던 3대 가문이 무너졌는데, 이씨와 제씨 같은 명문가가 또 H시에 오다니.’ 하세량은 시장으로서 여전히 곤란을 겪었다. 그는 제원화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H시의 많은 명망 있는 거물들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모두 어찌할 바를 몰라 불안에 떨었다. ‘유서 깊은 명문가 제씨 가문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초대를 한다는 것은 반드시 뭔가 큰일이 있다는 뜻이야.’ 초대장을 받은 사람은 도저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막내 회장님, 가볍게 다과회를 열어서 H시의 모든 세력들을 압박해 이동혁 그 잡종 놈을 견제하게 할
제원화가 보낸 초대장이 곧바로 항난그룹에 도착했다. 이 초대장은 매우 특이했다. 그 안에 단 한마디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튀어와서 사죄해라!” 초대장을 보낸 사람은 동혁이 직접 초대장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수소야는 이 초대장을 받고서 놀라서 낯빛이 어두워졌다. ‘동혁 씨와 제씨 가문 사이에 벌어진 최근의 충돌들은 모두 나와 마리 때문에 일어난 거야.’ ‘지금 제원화가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걸 보니 내일 분명 동혁 씨를 겨냥해 뭔가를 하려는 게 틀림없어.’ “수 사장님, 초대장을 회장님께 전달할까요?” 항난그룹 수소야 사장의 비서인 송소빈이 물었다. “아뇨, 내가 대신 갈 거예요. 이런 사소한 일까지 회장님께 전할 필요 없어요.” 수소야는 이를 악물며 마음속으로 이미 결심을 했다. 하늘 거울 저택. 세화는 전화를 받고 걱정스러워하며 동혁에게 말했다. “동혁 씨, 내 친구가 방금 전화를 해서 알려줬어. 제씨 가문에서 H시의 유력 인사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대. 청운각에서 차를 대접하겠다고 하던데 어쩐지 우리를 상대하려고 일을 꾸미는 것 같아.” 동혁은 제설희를 반죽을 정도로 때렸다. 세화는 그 때문에 제원화가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마음속으로 줄곧 걱정을 했다. 동혁은 자신에게도 제원화가 초대장을 보낸 지 모르고 태연하게 말했다. “여보 걱정 마. 제원화가 뭘 어쩌겠어?” 세화는 여전히 걱정이 많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하늘 거울 저택 밖으로도 감히 나가지 못했다. “천미 언니도 방금 전 나한테 소식을 전했는데 R시에 일이 생겼대. 전에 하 선생님을 납치한 그 이정산 부자가 죽었다는데? 그래서 밤새 그곳으로 달려갔어.” 동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정산 부자가 죽었다고?’ ‘암흑가의 원수에게 당했나?’.동혁은 그렇게 추측했다. 그는 이정산 부자의 처지를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정산의 일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H강변의 청운각. 거물들이 많이
“오늘 여러분들에게 가볍게 차 한잔 대접하려고 마련한 자리입니다. 모두들 격식 차릴 필요 없이 편하게 즐기세요.” 제원화가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두 손을 들어 아래로 내리며 편하게 앉을 것을 권했다. “회장님, 어젯밤에 R시의 최고 고수 이정산 부자가 죽었는데 J시 쌍살이라는 형제의 소행이라고 합니다. 그 두 사람이 제씨 가문과 관련이 있나요?” 일류 가문의 한 가주가 물었다. 이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매우 당돌하게 보일 순 있지만 그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제원화의 대답을 주시했다. 제원화가 웃으며 차분히 대답했다. “아는 사이긴 합니다.” 그의 대답은 의미심장했다. 순간 그 자리에 있던 거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제 회장도 자기 패를 완전히 드러내고 싶지는 않겠지. 그래서 자기가 시킨 일이라고 직접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 ‘하지만 아는 사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이야.’ 금세 두려움에 표정이 어두워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오그룹이 대동사채 사람들을 몰살시키자마자 제 회장이 R시 최고 고수 이정산의 사람들을 몰살시키다니.’ ‘그 이정산은 은퇴한 후에 천미가 R시를 장악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잖아?’ ‘강오그룹이 R시에서 자리를 잡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졌어.’ ‘목표가 너무 뚜렷하고 기세가 아주 강해.’ ‘거기다 일을 벌인 사람은 단 두 명, J시 쌍살.’ ‘제 회장이 만약 그 두 명의 살인기계를 H시로 보낸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안돼.’ 모인 사람들 중 특히 암흑가에서 온 거물들이 제원화를 바라보는 눈빛에 경외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H시 친구들 아닙니까? R시의 일을 얘기해서 뭐 합니까?” 제원화는 모두에게 의미 가득한 미소를 날렸다. 그러면서 물었다. “아, 항난그룹에서는 어느 분이 오셨나요?” 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청운
수소야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준기가 내 아들이야. 우리 별라그룹도 어쨌든 J시에서 손꼽히는 큰 그룹이지. 그런데 이동혁, 그 자식이 그런 내 아들을 여러 번 모욕하며 아랫사람 취급하다니, 그 잘못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각진 얼굴의 유진세는 너무 흥분하지 않으면서 위엄 있는 말투로 말했다. 다른 몇몇 중년들도 연이서 나서며 수소야에게 호통을 쳤다. 모두 J시의 손꼽히는 그룹 회장들이었고 그들의 자녀들 역시 제설희와 함께 화를 입었다. 그래서 그들 역시 그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모든 일이 당신 모녀 때문에 일어난다고 들었는데, 맞지?” 안우평이 무뚝뚝하게 물었다. “맞아요.” 수소야는 안우평 등의 말에 놀라서 얼굴이 많이 창백해진 상태였다. 안우평이 소리쳤다. “무릎 꿇고 당장 우리에게 사과해.” 풀썩! 수소야는 주저 없이 무릎을 꿇었다. ‘동혁 씨는 우리 가족에게 언제나 잘해 줬어. 오늘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그런 동혁 씨를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돼.’ “항난그룹이 전에는 그렇게 거만하게 굴며 제씨 가문과 맞서더니 결국 지금 그룹 사장님이 여기에서 무릎을 꿇게 됐구만.” 안우평이 천천히 수소야에게 다가갔다. 짝! 그는 갑자기 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수소야의 얼굴을 세게 때렸다. 수소야의 하얀 뺨에 금세 붉은 손바닥 자국이 생겼다. 그녀의 입가에서는 핏물이 한줄기 흘러나왔다. “수 사장님.”비서인 송소빈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놀라는 소리에 파묻혔다. 그녀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참는 수소야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터뜨렸다. “여보세요? 회장님, 수 사장님이 지금 청운각에서 뺨을 맞았어요.” 송소빈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동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동혁은 차를 몰고 세화와 함께 장해조가 있는 숙소로 가고 있었다. 그들이 방금 새로운 소식을 듣고 놀랐기 때문이다. 천미가 R시에서 쫓겨 죽을 뻔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보호
휴대폰 스피커로 증폭된 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청운각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그 음성을 똑똑히 들었다. 순간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동공이 흔들렸다. ‘이 사람 누구야?’ ‘감히 안우평 등을 쓸모없는 놈들이라고 하다니.’ ‘여기 몇 사람은 각각 한 그룹의 회장님이야.’ ‘모두 명문가 제씨 가문의 조력을 받고 성장한 그룹들.’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아.’ ‘설사 소씨, 오씨, 정씨 등 일류 가문의 가주라도 이 사람들 앞에서 감히 뻣뻣하게 굴며 무시할 수 없다고.’ ‘그런데 지금 감히 어떤 놈이 저런 큰 그룹의 회장님들을 쓸모없는 놈들이라고 매도하는 거지?’ “누구야? 당장 나와!” 안우평은 격노해 이를 악물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그들은 괜한 불똥을 맞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 안우평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서기까지 했다. 모두들 너무 놀라 아연실색했다. 일어선 사람이 어린 여자였기 때문이다. 바로 송소빈이었다. “이봐? 감히 날 도발한 게 새파랗게 어린 너야?” 안우평은 분노로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송소빈은 휴대폰을 꽉 쥐고 더욱 긴장했다. [겁내지 말고 가까이 가서 저놈들이 내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게 하세요.] 휴대폰에서 동혁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우평이라고? 역시 그룹의 회장이라는 아버지가 이렇게 입이 더러우니까, 그 딸도 너처럼 입이 더러운 거겠지? 그렇다면 좀 맞아야 하지 않겠어? ]송소빈은 용감하게 홀 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동혁의 목소리가 점점 더 분명해졌다. 안우평은 즉시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아챘다. “이동혁, 개X식, 네놈이구나.” 안우평은 분노로 이를 갈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당장 튀어와서 우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지 않고?” “야 이 개X식아 거기 숨어서 뭐 하고 있냐? 배짱이
“으어, 너무 아파.” 안우평은 바닥에 주저앉아 아파서 울며 소리쳤다. 방금까지 자신만만했던 그가 연약한 모습을 보이자 많은 사람들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안우평을 경멸했다. ‘방금 수 사장은 그렇게 뺨을 많이 맞아도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는데.’ ‘저 안우평은 고작 한 대 맞고 여자보다도 못하게 울부짖는 꼴이라니.’ 하지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박용구가 정말 동혁의 말을 듣고서 안우평의 뺨을 때릴 줄은 몰랐다. 제원화 역시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는 차갑게 박용구를 쳐다보았다. “박 회장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안우평은 제원화가 J시에서 데려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박용구가 안우평을 때린 것은 마치 제원화의 뺨을 때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참을 수가 없어서요. 회장님 앞에서 실례 좀 했습니다.” 박용구가 먼저 양해를 구했다. 제원화는 표정을 굳히며 낮은 음조로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인지 잘 해명해야 할 겁니다.” “그러지요.” 박용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안우평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서 상대의 배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박용구는 안우평을 자신 앞에 무릎 꿇게 했다. 그는 다시 손바닥을 치켜들더니 좌우로 휘두르며 반복적으로 세게 안우평의 뺨을 때렸다. 안우평은 비명을 연발했다. 얼마나 뺨을 많이 때렸는지 곧 안우평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게 되었다. 박용구는 그래도 멈추지 않고 이어서 안우평의 얼굴을 발로 찼다. 그렇게 안우평은 개처럼 반죽을 때까지 맞아서 박용구에 의해 땅에 내던져졌다. 이 무자비한 모습을 보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그제야 박용구가 제원화를 올려다보며 씩 웃으며 말했다. “굳이 해명하자면, 이건 형님이 제게 이놈 얼굴을 후려갈겨 주라고 하셔서 그런 겁니다.” 제원화는 분노해 눈이 가느다랗게 변했다. 그의 칼날 같은 눈빛이 박용구를 주시했다. 속이 깊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조차 지금 박용구의 도발적인 행동에 화가 나 속눈썹이
경찰의 현장 답사는 아주 빨리 진행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과가 나왔다.조동래가 부하들에게 그 자리에서 교통사고 경위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하는 걸 본 사정우는 웃음을 터뜨렸다.‘보아하니 조동래는 적당히 구슬려서 화해시킬 생각도 없고, 바로 이 자리에서 내게 줄을 대려는 모양이네.’“이동혁, 내가 말했지, H시라는 이 촌동네에서는 아무도 감히 나 사정우를 건드리지 못해.”“이제 너는 내가 즐길 수 있게 순순히 네 마누라를 내놓으면 돼!”사정우는 아주 유쾌한 듯이 웃으면서도 탐욕스러운 눈빛은 줄곧 세화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벌써부터 조금 뒤에 어떻게 이 여자를 시중들게 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동혁이 생각을 바꾸는 것 따위는 전혀 두려워하지도 않았다.동혁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지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감사해야 해. 사람들만 없다면 너는 정말 비참하게 박살이 났을 거야.”‘어쨌든 지금 내가 H시의 시장이니까 영향이 미치지 않게 주의해야 해.’‘아직은 내 신원을 아는 사람이 얼마 없지만,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겠지.’바로 이 점 때문에 동혁은 사정우에게 손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조동래에게 전화할 필요도 없었다. 동혁 자신이 해결하면 될 것이다.“계속 주둥이를 놀려봐.”조동래가 다가오는 걸 보면서도 사정우는 킥킥대며 물었다.“조 국장, 교통사고 경위서는 나왔겠지요?”“이 추돌사고에서 우리 진회장님의 백 퍼센트 과실인가요?”조동래가 천천히 말했다.“사 선생님, 그렇습니다. 우리가 현장 조사를 해 본 결과 당신이 악의적으로 차선을 바꾸고 경쟁을 부추겨서 일어난 추돌사고입니다.”“그래서 이번 사고는 당신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동시에 당신은 난폭운전과 무고한 시민에게 행패를 부린 공갈 협박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나중에 경찰에서 당신에게 상응하는 처벌을 내릴 것입니다...”조동래의 싸늘한 말에 사정우의 표정이 굳어졌다.“조 국장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그 말을 들
눈썹을 찌푸린 사정우가 도발적인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좋아, 그럼 지켜보도록 해!”그렇게 말해도 사정우는 여전히 전혀 동혁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비록 상대방이 돈도 백도 없는 서민은 아니지만 항난그룹 회장이라도 그들 명문가 사람들의 앞에서는 여전히 상대조차 될 수 없었다. 사정우는 설사 H시의 시장이 직접 오더라도, 명문가 사씨 가문의 신분만 앞세운다면, 감히 자신에게 손을 댈 수 없다고 믿었다.“이동혁, 내가 지금 너한테 자유롭게 실력을 발휘할 공간을 줄게. 네 마음대로 전화해서 인맥을 찾아봐. H시 시장을 데리고 와도 괜찮아.”“하지만 감히 나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내가 추잡한 말을 앞세웠다고 탓하지 마. 너는 돈을 배상해야 할 뿐만 아니라, 네 아내를 내 놀잇감으로 바쳐야 해!”“나중에 내가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딴소리하지 마...”사정우는 세화의 아름다운 몸매를 쳐다보면서 사악한 표정으로 말했다.이 말을 들은 세화는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더 이상 사정우 따위의 질 낮은 인간과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동혁을 잡아끌었다.“동혁 씨, 차라리 우리가 손해를 보고 말자...”사정우를 흘겨보던 동혁의 눈빛에서 번뜩이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여보, 날 믿어, 여긴 H시야.”세화를 달랜 동혁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조 서장님, 저하고 제 아내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자가 졸개들을 동원해서 길을 막고 있는데, 서장님이 직접 오셔서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전화를 받은 사람은 바로 H시 경찰국장 조동래였다.동혁의 말을 듣자, 조동래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감히 어떤 놈이 졸개들을 보내서 시장님을 막다니, 살고 싶지 않은 거야!’벌떡 일어난 조동래는 놀란 간부들을 내팽개친 채 회의실에서 뛰쳐나갔다.삐용삐용-10분도 안 되어 사이렌 소리를 울이면서 경찰차들이 잇달아 도착했다.조동래가 직접 온 데다가 H시 경찰국에서 교통업무를 담당하는 도영수 부국장도 함께 왔다.세화는 깜짝 놀랐다.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사정우는 뻔뻔하게도 동혁의 면전에서 네 아내를 데리고 놀 테니 아내를 내게 넘기라고 요구했다.구경하던 시민들조차도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느낄 지경이었다.“더러운 돈 좀 있다고 아주 대단하네 정말. 저 진 회장은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지만 너처럼 그렇게 멋대로 날뛰지는 않아!”“어디서 더러운 외지인이 굴러 들어와서 설치는 거야? H시가 네가 멋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야!”“벼락부자 티나 내면서 정말 무법천지인 줄 아는 모양인데...”격분한 사람들이 잇달아 사정우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그러나 사정우는 이런 비난하는 시민들은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오히려 씩 웃으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너희 같은 교활한 인간들은 말을 좀 아껴야 해.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짖는다고 내 털끝이라도 건드릴 수 있겠어?”“너희 같은 버러지들이 내 신분을 안다 해도 전혀 두렵지 않아. 성도의 명문 가문 사씨 가문은 들어본 적이 있을 거야.” “아이고, 여기 H시가 코딱지 만한 촌동네라는 걸 잊어버렸네. 너희 촌것들은 사씨 가문을 들어본 적도 없겠지.”“아무튼 이 작은 H시에서는 아무도 감히 나 사정우를 건드리지 못해. 나 사정우의 일에 관여하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지!”“못 믿겠으면 좀 봐 봐. 사건이 터지고 나서 지금까지 수습하러 온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사정우는 입만 열면 교활한 인간에 촌것들이라며 사람들을 멸시했다.뼛속까지 드러나는 사정우의 우월 의식에 시민들은 치를 떨어야 했다.그러나 사정우의 말은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섬뜩하게 만들었다.‘확실히 사정우의 말대로 이 일대는 H시의 번화가야.’‘평소라면 관련 부서의 출동 속도는 엄청 빨라. 주차 위반 차량도 3분도 채 안 되어 딱지를 붙이지. 하물며 교통사고는 더 말할 것도 없어.’‘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경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설마 이 사정우의 말대로 H시 경찰조차도 개입을 꺼리는 걸
‘이렇게 변태 같은 인간의 손에 떨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세화는 그런 모욕을 절대 참을 수 없었다!“자기야, 어떻게 사고가 난 거야? 괜찮아?”바로 그때, 세화에게 천상의 목소리처럼 동혁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고개를 들어 보면서 그 순간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동혁은 얼른 세화를 붙잡았다. “여보, 왜 울어? 다친 거야?”방금 전에 세화의 전화를 받았던 동혁은 명성호텔로 차를 몰고 달려왔다.호텔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도로가 꽉 막혀 있었다. 차에서 내려 교통을 정리할 수 있을까 싶어 보던 중에 사람들 틈에 갇힌 세화를 발견한 것이다.“다친 거 아니야, 동혁씨, 진짜 잘 왔어.”바로 마음이 놓이면서 자신감이 치솟은 세화는 동혁을 꽉 붙잡은 채 사정우를 가리켰다.“저 사람이 나를 뒤에서 오게하고는 일부러 사고를 일으켰어. 게다가 나한테 돈을 갚으라고 했어!”“저 사람이 이동혁이야, 진씨 가문의 쓸모없는 데릴사위지.”“쓸모가 없다니? 그건 다 옛날 얘기지. 최근에 항난그룹의 회장이자 원화투자회사의 회장이라는 게 드러났잖아...”구경하는 사람들도 동혁을 알아봤고 세화의 남편이 왔다는 걸 알았다.세화를 도와주러 온 사람이 있자 구경하던 사람들도 용기가 생겼다.“이 회장님, 이 사람들이 고의로 당신 아내를 괴롭히고 있어요. 아내 분이 차를 잘 몰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계속 경적을 울리며 따라가더니, 결국 고의로 차를 중간에 끼우고 추돌사고룰 일으켰어요!”“저 자들 보스는 사람 목숨을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너무 지나쳐요!”“또 진세화 씨에게 잠자리를 강요했어요. 권력과 힘을 믿고 완전히 무법천지로 행동했어요...”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동혁은 상황을 금세 파악했다.동혁의 얼굴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사정우를을 쳐다보았다. “네가 사정우야? 일부러 내 아내의 차를 끼워서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니, 정말 엄청 설치네.”“너는 운이 좋았어. 다행히 내 아
“보상만 하면 이 고물 차를 다시 몰고 가도 돼.” 대충 내뱉듯이 사정우가 말했다. ‘내가 아까 했던 말은 소 귀에 경읽기였어?’ ‘분명히 이 인간은 자기가 고의로 추돌사고를 냈다고 인정했으면서도, 뻔뻔하게 내게 보상을 요구한다고?’ 세화는 치미는 분노에 헛웃음이 나오면서 더 이상 말로 따질 필요도 못 느꼈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세화가 말했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네요. 누가 보상해야 하는지 경찰이 판단하게 해야겠네요.” 하지만 그 순간 나태성이 다가와서 세화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리고 다른 차에서 내린 양아치들도 슬그머니 세화를 둘러싸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휴대폰 돌려줘!” 세화는 화를 내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백주 대낮에 대놓고 핸드폰을 강탈할 줄은 몰랐기에 마음속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시민들도 이 광경을 보고 기가 찼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사정우의 패거리는 척 봐도 대단한 기세라서 평범한 시민들은 감히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세화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감히 나설 수가 없었다. “예쁜 아가씨, 그렇게 긴장할 거 없잖아. 핸드폰이 얼마나 하겠어. 보상이 끝나면 돌려줄게.” 사정우는 세화의 휴대폰을 가지고 놀면서 심지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기도 했다. 마치 세화의 체취이라도 배어 있는 것처럼. “웃기지 마. 당신이 내게 배상해야 돼.” 세화는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자 사정우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쁜 아가씨,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당연한 이치를 모르진 않겠지?” 사정우의 시선이 세화의 몸을 훑어내렸다. “배상할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아도 돼. 나하고 같이 자면 돼.” “흠... 오늘이 내가 이 H시에 온 첫날이니까, 특별히 이렇게 하자.” “내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 당신은 내 여자가 되
세화는 조금 놀랐다. H시의 사씨 가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곳의 이씨 가문과 같은 급의 명문 가문이다. 사정우의 아버지가 사해상공회의소의 이사라는 점도 놀라웠다. 그리고 마침 자신도 사해상공회의소 가입을 앞두고 있기에, 참으로 기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같은 편이 될 텐데 다투지는 않겠지.’ 하지만 세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세화가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관계 때문에 방금 있었던 일을 묵인할 생각은 없었다. “방금 일부러 차선을 바꿔 제 차를 들이받게 한 거 맞죠?” 세화는 사정우의 의도를 꿰뚫어 보았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근하려는 수작이라는 걸 알아차린 세화는 손을 내밀지도 않은 채, 표면적으로는 예의를 지키며 정중하게 질문했다. 사정우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좋아요. 난 그저 당신하고 좀 친해지고 싶었을 뿐이에요.” “사고를 계기로 인연이 시작된다면 낭만적인 드라마 같지 않겠어요?” “낭만적인 드라마?” 세화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그건 낭만이 아니라 교통 법규를 무시하는 행위이고,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예요.” “당신의 행동에서 차가움과 무감각만 느꼈을 뿐이에요. 전혀 낭만적이지 않아요.” 세화의 단호한 태도에도 사정우는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이 세화를 바라봤다. 그동안 자신이 만난 여자들은 아무리 새침한 척해도 그의 신분과 재력을 알고 나면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화는 달랐다.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로 자신을 가르치려고 들었다. ‘이런 여자를 정복하는 건 아주 성취감이 있겠어.’ 사정우는 웃으며 말했다. “너무 진지하시군요. 사람 목숨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래요?” “난 예전에도 사람을 친 적이 있어요. 하지만 보상하고 합의서 받으면 끝나는 일이지.” “물론 돈을 거절하고 내 목숨을 요구하는 바보
“내려! 내려!” 차 안에 앉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세화를 본 꼬붕 놈이 차문을 더욱 세게 발로 찼다. 마세라티의 차문에는 순식간에 움푹 패인 자국들이 생겼다. 그 와중에도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미동도 없이 서서 이 모든 사태를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세화는 가슴이 아팠다. 이 차는 바로 동혁이 자신에게 사 준 첫 번째 차였기 때문이다.세화가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행인들이 많이 몰려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이 무리들이 험악해 보이긴 하지만,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거야.’ 그래서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그만 발로 차, 내리면 되잖아.” 나태성이라는 꼬붕놈은 코웃음을 치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세화는 천천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 “와, 이 여자 진짜 예쁜데? 게다가 2억 원이 넘는 마세라티를 타고 다니는 거 보니 완전 재벌이네.” “이 여자도 몰라? 혜성그룹의 회장, 진세화 씨야! 교통사고를 난 사람이 이 여자일 줄은 몰랐네...” 세화는 H시에서 너무나도 유명했다. 최근에는 주다정이 퍼뜨린 유언비어로 인해서, 더욱 사람들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 덕분인지, 세화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역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함부로 못하겠지.’‘혜성그룹 회장 진세화라고?’ 그 순간, 무표정이던 선글라스 남자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쳤다. “당신 운전을 어떻게 한 거야? 운전할 줄 모르면 아예 도로에 나오질 말든가! 김 여사가 바로 당신 같은 여자 운전자를 두고 하는 말이야.” 거들먹거리면서 세화에게 쏘아붙인 나태성은 세화가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였다. “말해봐. 어떻게 책임질 거야?” “아니, 애초에 당신들이 불법으로 차선 변경을 해서 사고가 난 건데, 내가 왜 책임져야 해?” 세화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내 실수로 일어난 사고였다면, 주저하지 않고 피해를 보상했을
[사해 상공호의소에서 우리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해서 살펴봐야 해.] 세화가 차분하게 말했다. [H시의 시장은 너무 작아. S시의 세방그룹이든 혜성그룹이든 앞으로는 반드시 전국으로 시장을 확대해야 해.] [그리고 N도의 시장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N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해상공회의소의 문을 두드려야 해.] [마침 사해상공회의소에서 고급 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연락을 해 온 거야.]세화도 이 기회를 잡으려고 했기에 쌍방은 자연스럽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남편이 별로 탐탁치 않아 한다는 걸 알아차린 세화가 동혁에게 말했다. [당신도 같이 가. 이미 사해상공회의소 대표하고 약속을 했어,] [새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당신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야.] 동혁의 주량이 좋기도 하지만 동혁을 데리고 가는 데에는 세화가 고심한 또다른 목적이 있었다.바로 사해상공회의소 사람들과 만나면서 동혁을 위한 인맥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세화의 말에서 자신에 대한 관심을 느낀 동혁은 마음속으로 기뻐했다.‘아내가 이렇게 나를 챙겨 주는데 내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너무 눈치가 없는 것이겠지?’동혁은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래, 알겠어. 당신을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기꺼이 뛰어들어야지.” “하물며 술마시는 건데 말이야. 오늘 술 마시러 온 사람들은 다 뻗게 해주겠어!” 동혁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세화는 진지하게 말했다. [좀 진지하게! 이번엔 사고 치면 안 돼. 지난번처럼 술 마신 사람들 병원으로 보내지 말고!] 지난번에 동혁은 몇 개 부문의 책임자들과 술을 마시고 전부 뻗게 만들어서 세화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알았어. 쓸데없는 말은 안 할게. 명성호텔로 와서 나하고 합류하면 돼. 내가 지금 차를 가지고 갈게.]다시 한마디 한 뒤 세화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세라티를 몰고 출발했다.세화가 명성호텔 근처에 왔을 때, 옆 차선에서 오픈 스포츠카 한 대가 세하의 차에 접근해서 나란히 달렸다. 빵! 빵! 선글라스를 낀
한 무리의 기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천진과 주다정의 귀에도 들렸다. 이는 자신들에 대한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였다.30분도 안 되어 천진이 주다정을 폭행한 사실이 인터넷어 폭로되었고, 사방으로 떠들썩하게 퍼져 나갔다.이로써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 주다정과 천진이 결탁해서 간통을 저질렀고, 항난그룹을 삼키려고 작당한 두 사람은 오히려 동혁과 수소야가 간통을 저질렀다고 유언비어를 퍼트렸던 것이다.‘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지!’두 사람을 향한 욕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악명을 세상에 날리게 된 주다정과 천진은, 모든 사람들의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이튿날 H시 방송국에서는 성명을 발표했다, 동혁과 세화 일가에 사과하는 동시에 경병수와 주다정을 파면했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그 뒤로 이 양아버지와 수양딸은 H시에서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소문에 따르면, 주다정은 한 지방 도시의 고급 클럽에서 명문가의 자제들과 고위 관리들을 정성껏 접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다만 예전에는 자신이 기꺼이 원해서 그랬지만, 지금은 억지로 웃음을 보여야 했다.그리고 이 여론을 통해서 먹칠을 했던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수소야도 여러 매체들이 공동으로 증인을 서는 가운데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천진의 파렴치한 행동이 사람들에게 공개된 데다가 동혁도 이 소송에 특별히 관심을 보였다. 법원에서는 신속하게 두 사람의 이혼을 판결했다.결국 천진은 원래 자신의 가문에 속했던 재산을 제외하고, 항난그룹에 대해서는 동선 하나도 건질 수가 없었다.법원의 판결에 불복한 천진은 수소야가 보유한 항난그룹의 지분은 부부의 공동 재산이므로 당연히 자신이 절반을 가져야 한다고 항변했다.하지만 수소야는 항난그룹의 지분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동혁이 전후로 나눠 준 지분은 처음부터 백마리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화가 머리끝까지 난 천진은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인다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항난그룹의 지분을 수중에 넣으려고 할 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