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하라는 불구자가 운이 좋군.” 이심은 화가 나 이를 갈며 한편으로 증오심을 느꼈다. ‘내 아들의 다리는 이동혁에 의해 맞아 부러졌는데.’ ‘우리 이씨 가문이 겨우 부탁하여 모신 정형외과 최고 의사인 하 선생이 뜻밖에도 그 이동혁의 장인 다리를 치료하러 가시다니.’ “즉시 H시에 있는 이씨 가문 사람들에게 연락하여 하 선생님을 이리로 모셔와.” 이심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예!” 집사가 즉시 나가서 지시했다. 곧 집사가 돌아왔다. “회장님, 저희 사람들이 하 선생님과 접촉했지만 그분께서 이리로 오는 것을 거절하시며 천기 도련님의 다리를 치료하지 않겠다고 하셨답니다.” “뭐?” 이심은 진노했다. 그러면서 의아해했다. “혹시 이동혁, 그 잡종이 기회를 틈타 이씨 가문에 대한 나쁜 말들을 해서 정의감 넘치는 그 늙은이를 화나게 했단 말인가?” 이씨 가문이 진씨 가문을 상대로 벌인 다양한 일들. H시에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조금만 알아보더라도 바로 여러 가지 시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심은 화를 누르며 하원종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께서 부디 저희 N도 이씨 가문의 체면을 봐서 좀 도와주시지요. 하 선생님께서 제 아들의 다리를 치료해주시기만 하면 N도 이씨 가문은 선생님께서 주관하시는 과학 연구 프로젝트에 많은 돈을 기부할 의사가 있습니다.” 이심은 하원종 같은 국가에서 알아주는 최고 의사는 사적인 이익을 제공해 매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어려워.’ ‘그렇다면 방식을 바꿔야지.’ ‘어쨌든 자금이 지원되면 어떻게 쓸지는 하 선생이 알아서 결정하니까.’ “아닙니다. 저도 N도 이씨 가문은 부유하니 인색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씨 가문의 돈을 가져다가 사용하면 문제가 생길까 두렵습니다. 게다가 제 과학 연구 프로젝트에도 자금이 부족하지는 않습니다.”하원종은 알려진 성품 그대로였다. 성품이 강직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다. 이 순간 바로 직접적으로 이
“자네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한가?” 하원종이 물었다. “아닙니다. 요즘은 발병이 없어 정상적으로 잘 걷습니다.” 찰칵! 이원용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걸을 수 있다면 왜 H시로 직접 와서 나를 찾지 않는 거지?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데?” 하원종은 자꾸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담배 냄새에 불쾌함을 느꼈다. “저희 아버지는 집안에만 계시고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을 극히 싫어합니다. 그래서 H시에 오게 하는 것이 너무 번거롭습니다. 그러니 역시 하 선생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것이 더 빠르지요.” 이원용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래층에 이미 하 선생님을 위한 차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난 안 가겠네.” 하원종은 안경을 고쳐 썼다. “난 내일 G시에 수술이 하나 있어서 오늘 저녁에 서둘러 그곳으로 가야 해.” 하원종은 이원용이 어느 가문의 자제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늘 거만하고 격식만을 따지지.’ 하필 하원종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얼마나 중요한 수술이길래요? 굳이 선생님이 꼭 하셔야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대신해도 되지 않습니까?” 이원용은 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 역시 N도 이씨 가문 사람들과 같은 부류이다. 하원종은 얼굴에 노기를 띠며 조용하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자네 아버지의 병세도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군. 그럼 굳이 내가 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지.” “하 선생님께서는 정말 안 가시겠다는 겁니까?” 이원용은 위협적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안 간다고 했잖나. 난 안 가네.” 하원종은 목소리를 높였다. “나가주게. 난 지금 환자를 위해 검사를 해야 하니.” “선생님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군요.” 이원용은 콧방귀를 뀌며 소리쳤다. “들어와. 여기 하 선생님을 모셔.” 말을 마치자 이원용이 R시에서 데려온 부하 고수 몇 명이 걸어 들어왔다. 하원종은 이원용이 이렇게 억지를 부리며 세게 나올 줄은 몰랐고, 화가 나서
“그 사람들이 막 날뛰며 공공연히 사람을 납치한 건 물론이고, 막아선 병원 경호원들도 상대에게 맞아서 다쳤어.” “거기다 우리 엄마와 아빠까지도 맞았어.” 눈시울을 붉히며 세화가 말했다. “진찰? 그럼 하 선생님은 당분간 위험하지는 않겠어.” 동혁은 한숨을 돌렸다. 그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감히 누가 내 코앞에서 하 선생님을 납치해 가다니.’ “누군지는 알아?” ‘지금 무엇보다 하 선생님의 행방을 찾아서 모셔오는 것이 급선무야.’ 동혁은 하원종의 성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납치되면 어떤 말을 해도 치료해 주려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다 만일 그 놈들이 거칠게 굴면 위험할 수 도 있어.’ ‘백주 대낮에 병원에서 하 선생님을 데려간 놈들이니 그런 일쯤은 아무 거리낌 없을 거야.’ “이원용이라는 사람이야. 하 선생님을 데려가 진찰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 아버지고.” 하고 류혜진이 말했다. “이원용이라고요? 네, 알겠어요. 제가 사람을 시켜 연락해 순순히 하 선생님을 모셔오고 직접 집으로 와서 부모님께 사과드리라고 할게요.” 류혜진의 얼굴 위 붉은 손바닥 자국을 본 동혁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동혁아, 넌 그렇게 허풍 좀 떨지 마!” 이때 천미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동혁을 노려보았다. “넌 이원룡이 누군지나 알고 허풍을 떠는 거야?” “천미 언니, 상대가 누군지 알아냈어?” 세화가 얼른 물었다. 동혁은 천미와 따지며 싸우지 않고 그녀가 어떻게 말하는지 들었다.. “그 이원용은 R시의 은둔 고수 이정산의 아들이야.” 천미는 표정이 심각해지며 계속 말했다. “이정산은 암흑가에서 우리 아버지보다 더 연륜이 있지.” R시는 산이 많았고 도 외곽에 있는 위험지대에 있었다.예로부터 성품이 사납고 용맹해 N도 전역에서 유명했다. 이정산은 젊었을 때, 단도 두 자루만을 들고 R시 암흑가 전체를 장악했다. 지금의 이정산은 오랫동안 더 이상 바깥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업상의 일은 모두 외
류혜진은 동혁이 R시에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동혁이 또 병이 도져 말을 잘못하기라도 해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까 봐 걱정됐다. “언니만 가도 돼. 언니 아버지가 장 회장이시니 상대방이 언니의 체면을 세워줄 거야.” 세화도 동혁이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동혁은 집에서 천미의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R강은 R시 내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시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R강 주변 숲 속에는 숨겨진 옛 스타일의 한 정원이 있었다. 그 속에 오래되어 보이는 기와지붕의 목조 건물이 어렴풋이 보였다. 정원으로 가는 숲길은 강을 따라 조성된 관광도로와 자연스럽게 만난다. R시에 여행을 온 외지 관광객들. 그들은 이곳을 지나가다가 숲 속 건물을 관광지로 착각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하려고 했다. 그러면 숲에서 갑자기 나온 헤드셋을 착용한 정장차림의 남자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 남자들은 휴대폰의 사진들을 한번 확인하고 예의 바르게 돌아갈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밖에 있는 “개인 저택,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시를 가리키며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뜻을 내비치었다. 그때마다 관광객들은 매우 놀랐다. ‘어떤 대단한 인물이 이런 곳에 아주 넓은 부지의 개인 정원을 가지고 있는 거지?’ 어떤 사람은 궁금증에 현지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아, 그 정원말인가요? 그곳은 저희 R시의 거물 이무적의 개인 정원이에요.” “이 전신과 이름이 같다고요? 이름이 같으며 어때서요. R시에서는 이 이무적이 이 전신보다 말에 더 힘이 있어요.” “그거 아시나요? R시가 혼란스러운지 아닌지 다 이무적의 말 한마디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R시의 최고 책임자인 시장도 모두 이무적에게 고개를 숙이니까요.” “암흑가 정보상인 백효성이 그보다 더 유명하지 않냐고요? 한마니만 더 말할게요. 명절이 되면 백효성이 직접 이무적 앞에 차 가져다 드립니다.”암흑가 은둔 고수 이정산. R시 사람 누구에게나 다 잘 알려져 있었다
“무슨 일을 벌인 거야?” 이원용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웃기 시작했다. “이 늙은이가 재수가 없죠. 어제는 심 총지휘관에게 납치당하고 오늘은 제가 납치했으니까요.” 짝! 말이 끝나자마자 이원용은 이정산에게 뺨을 맞았다. 새빨간 손바닥 자국이 뺨에 남았다. “아버지, 왜 때려요?” 이원용은 뺨을 가린 채 울분을 터뜨리며 이정산을 째려보았다. “내가 너를 때린 것은 일을 너무 경솔하게 처리했기 때문이야. 그 선생은 어쨌든 국내신문에도 나온 적이 있는 인물이야. 얼마나 많은 명문가들과 친분이 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넌 직접 사람을 데리고 H시에 가서 다른 사람에게서 납치해 왔어. 다른 사람에게 너 대신 이 일을 맡길 수는 없었어?” “설마 우리 이씨 가문이 R시 밖에서도 왕으로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이정산은 직접적으로 훈계했다. “아니에요. 그 선생이 심 총지휘관에게 납치당하고도 별 소란을 피우지 않은 걸 보면 그저 명성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에요. 아마 그는 몸 편히 사는 쪽을 택할 거라고요.” 이원용이 투덜거렸다. 이정산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그래도 이원용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어제 그 선생이 납치당했다는 것도 몰랐으면서 어떻게 그가 H시에 있다는 것은 알았어?” 이정산은 비록 두 개의 단도로 지금의 암흑가 지위를 쟁취했지만. 아무 생각도 없었다면 수십 년 동안 이렇게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역시 그는 이번 일의 수상쩍음을 예리하게 알아차렸다. “N도 이씨 가문 사람들이 알려줬어요. 왜요?” 이원용이 대답했다. 짝! 이정산은 또다시 이원용의 뺨을 세게 때렸다. “멍청한 놈, 넌 이용당한 것도 모른 거야? 이러다 내가 죽으면 네놈은 2년도 안돼 우리 가문의 재산을 모두 탕진당할 거야.” 이정산은 잠깐의 생각 끝에 N도 이씨 가문의 계획을 알아챘다.그 계획에 아들인 이원용이 이용당하고 그걸 이원용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이정산은
하원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말을 듣고 이원용은 화가 나 더욱 펄쩍펄쩍 뛰었다. “이 늙은이가, 뉴스에서 당신을 가리켜 명의의 현신이라고 떠들던데? 내가 당신을 납치했다고 해서 지금 우리 아버지의 치료를 거부하는 거야?” “이런 주제에 명의라니, 흥, 명성이나 쫓는 늙은이라고.” 이정산은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을 하며 이원용의 말을 제지할 뜻이 없어 보였다. “도둑도 따라야할 예의가 있어. 하물며 의사인 하 선생은 더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하원종이 말했다. “간악하고 나쁜 인간은 난 치료하지 않아.” “이 늙은이가 죽고 싶어?” 이원용이 분을 터뜨렸다. “지금 내 구역까지 온 마당에 네가 치료하지 않겠다면 그만인 줄 알아?” “당신이 밖으로 나가서 이무적이 누구인지 이 R시에서 어떤 위치인지 들으면 그런 소리가 나올까?” ‘이무적?’ 하원종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 아버지 이름은 고치는 게 좋을 것 같군. 그렇지 않으면 이 집에 화를 불러올 거야.” 순간 이원용의 얼굴에서 살기가 떠올랐다. 이정산조차 표정이 어두워지며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 선생께서 제가 어떤 이름을 쓰든 무슨 상관입니까? 쓸데없는 참견이 너무 지나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정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무적, 이정산이 R시 암흑가에서 수십 년을 활동하며 적을 죽여서 얻은 이름이었다. 하원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쓸데없이 참견하는 게 아닙니다. 전 그저 호의로 조언한 거예요. 그리고 이 선생이 저를 H시로 돌려보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늙은이가, 않으면 뭐?” 이원용은 말을 끝까지 들을 가치도 없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 이씨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원종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H시에 있는 그분의 거친 성정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지.’ “여기 이 선생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납치했으니, 지금쯤 H시에서 이미 큰 소란이 일어났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나를
“좋아요. 저도 천미 씨에게 첫눈에 반했어요.” 이원용도 이정산이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잘 알 줄은 몰랐다. 대뜸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천미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속에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이원용은 우리 아버지와 비교해도 나이가 별차이가 나지 않아.’ 사실 이원용의 아들조차도 천미보다 몇 살 아래일 뿐이었다. 지금 상대방은 그녀를 완전히 모욕하고 있었다. “심 조카가 싫다면 그냥 돌아가.” 이정산은 예의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전 오늘 꼭 하 선생님을 모시고 돌아가야겠습니다.” 천미도 화를 냈다. 이정산은 콧방귀를 뀌었다. “뭐라고? 장해조도 나를 만나면 예의를 차리는데, 이 계집애가 감히 내 앞에서 날을 세워?” 이정산의 말이 끝나자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두 줄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모두 천미를 노려보았다. “심 사장님, 돌아가시죠.” 선두에 선 고수 하나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회장님, 오늘 일은 제가 꼭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천미는 화를 참으며 인사를 하고는 주저 없이 고개를 돌려 떠났다. 그녀는 이곳에 왔을 때부터 정원 내부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 ‘이 정원 도처에는 이정산의 부하들이 족히 백 명은 있어.’ ‘만일 정말 내가 손을 쓴다면 내가 데려온 고수들만으로는 하 선생님을 모셔가기에 역부족이야.’ ‘잘못하면 오히려 나까지 여기에 붙잡힐 수 있어.’ 천미는 하원종이 당분간 아무 일도 없을 것을 알고는 돌아가서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누가 가라고 했어? 저 여자를 데려와. 오늘 밤 나는 새 신랑이 될 거야.” 정신을 차린 이원용이 천미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퍽! 이정산은 이원용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이 멍청아. 난 장해조에게 경고를 한 것뿐이야. 그와 생사결단을 낼 생각은 없어.” 이원용은 그제야 지시를 그만두었다. 그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고 고개를 돌려 하원종을 보며
하지만 동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세화가 전에 그에게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벌써 직접 R시에 가서 이정산을 만났을 것이다. 동혁은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꺼내 선우설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효성에게 이정산을 찾아가 오늘 저녁 식사 전에 하 선생님을 모셔오라고 전해.” “그 아들놈과 병원에 가서 사람을 납치했던 부하들도 모두 와서 우리 부모님께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하고.” “만약 하 선생님 머리털이 하나라도 건드렸다면 R시의 이씨 가문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거라고도.” 이 말을 끝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동혁은 비로소 분위기가 이상하게 조용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온 가족이 모두 놀라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 이동혁, 너 정말 허풍 한번 대단하구나? 우리 남편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감히 너처럼 그렇게 말할 수 없겠어.” 류혜연은 너무 웃겨 죽을 듯했다. 정신을 차린 류혜진은 동혁이 창피하여 땅속에 숨고 싶은 심정이다. “동혁아, 선생님한테 사고가 생겼는데, 지금 넌 여기서 허풍이나 떨고 있고? 생각이 있어?” 류혜진은 동혁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동혁 씨, 이번엔 당신 정말 너무한 거야!” 세화도 동혁을 노려보았다. “나도 가족들이 믿지 않는 거 다 알아. 그러니 그냥 두고 봐.” 동혁은 어쩔 수 없었다. 한편. 선우설리는 R시에 있는 백효성에게 연락해 동혁의 말을 전했다. 하원종이 납치된 사건은 이미 H시와 R시에 소문이 자자했다. 백효성은 전화를 받고 동혁까지 이 일에 나섰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갑자기 기뻐하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이정산, 네놈, 넌 이번에 정말 큰일 난 거야. 그분을 감히 건드리다니.” 그렇게 흥분한 그는 곧바로 냉정을 되찾았다.동혁의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는 와중에도 흔적도 없이 이정산을 함정에 빠뜨릴 방법을 강구했다. 사람들에게 소문난 대로. 명절이 되면 백효성은 이정산 앞에 가 차를 따랐다.
“보상만 하면 이 고물 차를 다시 몰고 가도 돼.” 대충 내뱉듯이 사정우가 말했다. ‘내가 아까 했던 말은 소 귀에 경읽기였어?’ ‘분명히 이 인간은 자기가 고의로 추돌사고를 냈다고 인정했으면서도, 뻔뻔하게 내게 보상을 요구한다고?’ 세화는 치미는 분노에 헛웃음이 나오면서 더 이상 말로 따질 필요도 못 느꼈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세화가 말했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네요. 누가 보상해야 하는지 경찰이 판단하게 해야겠네요.” 하지만 그 순간 나태성이 다가와서 세화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리고 다른 차에서 내린 양아치들도 슬그머니 세화를 둘러싸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휴대폰 돌려줘!” 세화는 화를 내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백주 대낮에 대놓고 핸드폰을 강탈할 줄은 몰랐기에 마음속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시민들도 이 광경을 보고 기가 찼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사정우의 패거리는 척 봐도 대단한 기세라서 평범한 시민들은 감히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세화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감히 나설 수가 없었다. “예쁜 아가씨, 그렇게 긴장할 거 없잖아. 핸드폰이 얼마나 하겠어. 보상이 끝나면 돌려줄게.” 사정우는 세화의 휴대폰을 가지고 놀면서 심지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기도 했다. 마치 세화의 체취이라도 배어 있는 것처럼. “웃기지 마. 당신이 내게 배상해야 돼.” 세화는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자 사정우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쁜 아가씨,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당연한 이치를 모르진 않겠지?” 사정우의 시선이 세화의 몸을 훑어내렸다. “배상할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아도 돼. 나하고 같이 자면 돼.” “흠... 오늘이 내가 이 H시에 온 첫날이니까, 특별히 이렇게 하자.” “내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 당신은 내 여자가 되
세화는 조금 놀랐다. H시의 사씨 가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곳의 이씨 가문과 같은 급의 명문 가문이다. 사정우의 아버지가 사해상공회의소의 이사라는 점도 놀라웠다. 그리고 마침 자신도 사해상공회의소 가입을 앞두고 있기에, 참으로 기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같은 편이 될 텐데 다투지는 않겠지.’ 하지만 세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세화가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관계 때문에 방금 있었던 일을 묵인할 생각은 없었다. “방금 일부러 차선을 바꿔 제 차를 들이받게 한 거 맞죠?” 세화는 사정우의 의도를 꿰뚫어 보았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근하려는 수작이라는 걸 알아차린 세화는 손을 내밀지도 않은 채, 표면적으로는 예의를 지키며 정중하게 질문했다. 사정우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좋아요. 난 그저 당신하고 좀 친해지고 싶었을 뿐이에요.” “사고를 계기로 인연이 시작된다면 낭만적인 드라마 같지 않겠어요?” “낭만적인 드라마?” 세화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그건 낭만이 아니라 교통 법규를 무시하는 행위이고,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예요.” “당신의 행동에서 차가움과 무감각만 느꼈을 뿐이에요. 전혀 낭만적이지 않아요.” 세화의 단호한 태도에도 사정우는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이 세화를 바라봤다. 그동안 자신이 만난 여자들은 아무리 새침한 척해도 그의 신분과 재력을 알고 나면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화는 달랐다.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로 자신을 가르치려고 들었다. ‘이런 여자를 정복하는 건 아주 성취감이 있겠어.’ 사정우는 웃으며 말했다. “너무 진지하시군요. 사람 목숨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래요?” “난 예전에도 사람을 친 적이 있어요. 하지만 보상하고 합의서 받으면 끝나는 일이지.” “물론 돈을 거절하고 내 목숨을 요구하는 바보
“내려! 내려!” 차 안에 앉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세화를 본 꼬붕 놈이 차문을 더욱 세게 발로 찼다. 마세라티의 차문에는 순식간에 움푹 패인 자국들이 생겼다. 그 와중에도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미동도 없이 서서 이 모든 사태를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세화는 가슴이 아팠다. 이 차는 바로 동혁이 자신에게 사 준 첫 번째 차였기 때문이다.세화가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행인들이 많이 몰려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이 무리들이 험악해 보이긴 하지만,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거야.’ 그래서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그만 발로 차, 내리면 되잖아.” 나태성이라는 꼬붕놈은 코웃음을 치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세화는 천천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 “와, 이 여자 진짜 예쁜데? 게다가 2억 원이 넘는 마세라티를 타고 다니는 거 보니 완전 재벌이네.” “이 여자도 몰라? 혜성그룹의 회장, 진세화 씨야! 교통사고를 난 사람이 이 여자일 줄은 몰랐네...” 세화는 H시에서 너무나도 유명했다. 최근에는 주다정이 퍼뜨린 유언비어로 인해서, 더욱 사람들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 덕분인지, 세화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역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함부로 못하겠지.’‘혜성그룹 회장 진세화라고?’ 그 순간, 무표정이던 선글라스 남자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쳤다. “당신 운전을 어떻게 한 거야? 운전할 줄 모르면 아예 도로에 나오질 말든가! 김 여사가 바로 당신 같은 여자 운전자를 두고 하는 말이야.” 거들먹거리면서 세화에게 쏘아붙인 나태성은 세화가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였다. “말해봐. 어떻게 책임질 거야?” “아니, 애초에 당신들이 불법으로 차선 변경을 해서 사고가 난 건데, 내가 왜 책임져야 해?” 세화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내 실수로 일어난 사고였다면, 주저하지 않고 피해를 보상했을
[사해 상공호의소에서 우리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해서 살펴봐야 해.] 세화가 차분하게 말했다. [H시의 시장은 너무 작아. S시의 세방그룹이든 혜성그룹이든 앞으로는 반드시 전국으로 시장을 확대해야 해.] [그리고 N도의 시장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N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해상공회의소의 문을 두드려야 해.] [마침 사해상공회의소에서 고급 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연락을 해 온 거야.]세화도 이 기회를 잡으려고 했기에 쌍방은 자연스럽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남편이 별로 탐탁치 않아 한다는 걸 알아차린 세화가 동혁에게 말했다. [당신도 같이 가. 이미 사해상공회의소 대표하고 약속을 했어,] [새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당신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야.] 동혁의 주량이 좋기도 하지만 동혁을 데리고 가는 데에는 세화가 고심한 또다른 목적이 있었다.바로 사해상공회의소 사람들과 만나면서 동혁을 위한 인맥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세화의 말에서 자신에 대한 관심을 느낀 동혁은 마음속으로 기뻐했다.‘아내가 이렇게 나를 챙겨 주는데 내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너무 눈치가 없는 것이겠지?’동혁은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래, 알겠어. 당신을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기꺼이 뛰어들어야지.” “하물며 술마시는 건데 말이야. 오늘 술 마시러 온 사람들은 다 뻗게 해주겠어!” 동혁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세화는 진지하게 말했다. [좀 진지하게! 이번엔 사고 치면 안 돼. 지난번처럼 술 마신 사람들 병원으로 보내지 말고!] 지난번에 동혁은 몇 개 부문의 책임자들과 술을 마시고 전부 뻗게 만들어서 세화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알았어. 쓸데없는 말은 안 할게. 명성호텔로 와서 나하고 합류하면 돼. 내가 지금 차를 가지고 갈게.]다시 한마디 한 뒤 세화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세라티를 몰고 출발했다.세화가 명성호텔 근처에 왔을 때, 옆 차선에서 오픈 스포츠카 한 대가 세하의 차에 접근해서 나란히 달렸다. 빵! 빵! 선글라스를 낀
한 무리의 기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천진과 주다정의 귀에도 들렸다. 이는 자신들에 대한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였다.30분도 안 되어 천진이 주다정을 폭행한 사실이 인터넷어 폭로되었고, 사방으로 떠들썩하게 퍼져 나갔다.이로써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 주다정과 천진이 결탁해서 간통을 저질렀고, 항난그룹을 삼키려고 작당한 두 사람은 오히려 동혁과 수소야가 간통을 저질렀다고 유언비어를 퍼트렸던 것이다.‘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지!’두 사람을 향한 욕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악명을 세상에 날리게 된 주다정과 천진은, 모든 사람들의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이튿날 H시 방송국에서는 성명을 발표했다, 동혁과 세화 일가에 사과하는 동시에 경병수와 주다정을 파면했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그 뒤로 이 양아버지와 수양딸은 H시에서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소문에 따르면, 주다정은 한 지방 도시의 고급 클럽에서 명문가의 자제들과 고위 관리들을 정성껏 접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다만 예전에는 자신이 기꺼이 원해서 그랬지만, 지금은 억지로 웃음을 보여야 했다.그리고 이 여론을 통해서 먹칠을 했던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수소야도 여러 매체들이 공동으로 증인을 서는 가운데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천진의 파렴치한 행동이 사람들에게 공개된 데다가 동혁도 이 소송에 특별히 관심을 보였다. 법원에서는 신속하게 두 사람의 이혼을 판결했다.결국 천진은 원래 자신의 가문에 속했던 재산을 제외하고, 항난그룹에 대해서는 동선 하나도 건질 수가 없었다.법원의 판결에 불복한 천진은 수소야가 보유한 항난그룹의 지분은 부부의 공동 재산이므로 당연히 자신이 절반을 가져야 한다고 항변했다.하지만 수소야는 항난그룹의 지분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동혁이 전후로 나눠 준 지분은 처음부터 백마리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화가 머리끝까지 난 천진은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인다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항난그룹의 지분을 수중에 넣으려고 할 때마
경병수는 마침내 주다정이 요 며칠 동안 온갖 방송국 자원을 동원해서 유언비어를 날조해서 얼굴에 먹칠을 하게 만들었던 대상이 동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경병수가 아무리 용서를 빌어도 동혁의 태도는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동혁이 냉혹한 말투로 경병수에게 말했다.“경 국장, 내가 잘못 들었나?” “나는 해고하는 건 못 봤어. 오히려 당신이 가지고 놀다가 질린 음탕한 여자를 나한테 꽂아 넣으려고 한 걸 봤는데.”“경 국장, 당신은 나 이동혁을 얼마나 무시하는 거야?”털썩-경병수는 눈빛마저 초점을 잃은 채 털썩 주저앉았다.이제는 자신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동혁이 이렇게까지 말했다는 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작정임을 드러낸 것이다.더 중요한 건 경병수가 반박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그건 바로 경병수가 생각한 방법이었기에.동혁은 경병수를 더 이상 보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임창호에게 말했다.“방송국 위아래 모두 대청소를 해야겠군요.”“시 방송국의 바로 H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곳인데, 오히려 온갖 오물과 비리가 난무하는 곳이 되었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네!”임창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경병수의 접견을 자신이 주선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자신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웠다.이제는 자신이 시장에게 점수를 잃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반드시 만회해야 해!’임창호는 곧바로 사정 파트의 직원들을 호출했다.“경병수와 주다정은 모두 즉시 파면 처분했다고 공고하도록 해. 그리고 내가 직접 방송국에 주재하면서 대대적으로 정리하겠다.”임창호의 말은 경병수와 주다정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과 마찬가지였다,두 사람은 완전히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야 했다주다정은 자신이 어떻게 시청에서 나왔는지,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줄곧 멍한 표정이었다.똑똑-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천진이 나와서 문을 열었다.그러나 주다정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드러냈다.“다정아,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널
동혁의 이런 비난에 경병수는 놀라서 쓰러질 지경이었다.‘주다정 저 멍청한 X이 자기만 망친 게 아니라 나까지도 망쳤어.‘시장님의 말은 우리 방송국 전체에 아주 불만이 많다는 걸 드러낸 게 분명해.’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면서 경병수는 꽉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시, 시장님... 저 주다정이 갑자기 미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방송국 직원들은 모두 시장님을 존경하고 있고, 불경한 의도를 품은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말을 하면서 경병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장의 싸늘한 태도를 보자 주다정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다.‘이 멍청한 X이 나까지 말려들게 하다니!’경병수는 갑자기 주다정을 걷어차서 바닥에 쓰러지게 만들었다.거기서 그치지 않고 두 발로 계속 거세게 걷어찼다. 퍽! 퍽! “아악! 아파요. 양아버지 제발! 제발 그만 때리세요!!”주다정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누가 네 양아버지야!”주다정의 입에서 양아버지란 말이 나오자, 경병수는 넋이 나갈 정도로 놀랐다.재빨리 달려들어 주다정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연달아 따귀를 때렸다.짝! 짝! 짝!“악! 제발 그만!” “나는 너하고 아무 관계도 없어! 함부로 친척이라고 하지 마!” “한 번만 더 주둥이를 놀리면 때려 죽여버리겠어!”경병수는 이번에 정말 필사적이었기에 온 힘을 다해 주다정을 때렸기에, 주다정은 너무나 비통한 나머지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경병수가 아무리 둔하다 해도 동혁과 주다정 사잉에 원한이 쌓여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주다정은 이미 시장님의 마음 속에서 끝났어.’‘지금 만약 주다정이 내 수양딸이라는 게 들통나면 이동혁이 나를 그냥 두겠어?’주다정의 얼굴이 엉망이 되도록 때리던 경병수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때리던 걸 멈췄다.지금 주다정은 갯벌의 진흙처럼 엉망이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마치 숨이 간들간들한 강아지마냥 입으로는 연신 끙끙 신음소리를 내
“이, 이동혁?!” 주다정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설마 요즘 내가 너무 잠자리에 탐닉하느라 피곤해서 환각을 보는 건가?’ 자시을 때려 죽인다 해도 동혁이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여기는 시장님의 관저이자 H시 권력의 중심지야. H시에서 가장 존귀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이동혁 같은 쓰레기가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어?’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와서 자세히 보고는, 주다정은 다시 한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책상 뒤에 있는 남자는... 정말로 이동혁이 맞아!’주다정은 완전히 멍한 상태였다.요 며칠 동안 주다정은 전력을 다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모두가 욕을 퍼붓자, 동혁은 H시에서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주다정의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동혁은 집 밖에도 못 나오고 쥐 죽은 듯이 지내거나, 몰래 H시에서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동혁이 당당하게 시장실 한가운데 서 있다니?’ ‘이게 말이 돼?’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주다정은 무의식적으로 동혁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화를 냈다. “야, 이동혁! 너 같은 쓰레기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넌 인간 말종인 쓰레기야! 이곳이 어디라고 너 따위가 감히 들어와?” 주다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장실 안은 이미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시장실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부시장 임창호와 방송국 국장 경병수. 그리고 그들을 안내한 시장실 직원들까지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마치 바보를 보는 것처럼 주다정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느끼자, 주다정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자신감이 없어졌다. 불안해진 주다정이 주변을 둘러보니, 시장실 안에는 동혁 외에 임창호 부시장과 시장실의 직원들이 있었다.‘시장님은?’주다정은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동혁이 이런 중요한 장소에 버젓이 나타난 데다가, 부
“시장님, 경병수 국장은 오랫동안 방송국에서 근무한 베테랑입니다. H시 내에서도 명망 있는 인물이고도 하고요. 만나보시겠습니까?” 임창호가 허리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송국 국장이?” 동혁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답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곧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남성이 임창호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시장님, 이쪽은 시 방송국의 경병수 국장입니다.” 임창호가 간단하게 소개했다.동혁을 본 경병수는 첫눈에 새 시장이 과연 바깥에 떠도는 소문 그대로라는 느낌이 들었다.‘정말 너무나 젊은데!’시장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인 경병수가 겸손하게 인사했다. “시장님, 그냥 ‘경 국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가볍게 대답한 동혁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임 부시장이 보고할 게 있다고 하던데 이번 우수직원 선발과 관련된 건가요?” “아, 네! 그렇습니다, 시장님!” 순간 당황했던 경병수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이번에 저희 시 방송국에서 선발된 우수직원은 주다정이라는 경제 뉴스 앵커입니다.” “어제 시장님께서 지시하신 뒤에, 저희도 내부적으로 철저한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동혁은 담담하게 물었다. “아 그래요? 조사 결과는 어떤가요?” 경병수가 몰래 동혁의 표정을 살폈지만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주다정이 앞서 시장이 단독으로 자신을 접견하기로 했다고 말한 걸 떠올리고, 시장이 주다정에게 악의가 있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주다정의 직속 상관인 자신이 주다정에게 좋은 얘기를 하라고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경병수가 얼른 입을 열었다.“네! 시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내부 조사 결과 주다정 기자는 진지한 태도로 업무를 책임지고 있고 업무 능력도 아주 뛰어납니다.” “게다가 도덕성과 인품 면에서도 방송국 내에서 아주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주다정 기자가 몇 년 간 연속해서 우수직원에 선정된 것은 바로 방송국 전체 직원들의 지지를 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