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기의 눈썹이 갑자기 실룩실룩 거렸다. 옆에 있던 여비서에게는 바드득 이를 가는 소리까지 들렸다. “헉!” 경매장 안은 온통 탄식소리로 가득했다. ‘저 이동혁은 정말 죽고 싶어서 저렇게 이천기를 도발하는 건가?’ 그러나 이내 동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동정심이 가득하게 되었다. ‘지금 이천기를 도발해봤자야.’ ‘전혀 의미가 없어.’ ‘N도 이씨 가문의 풍부한 재력을 어떻게 이길 건데?’ ‘거기다 저렇게 앞뒤 없이 행동하다가 이천기에게 원한이라도 산다면.’ ‘그 끝은 안 봐도 처참할 거야.’ “6200억!” 이천기가 팻말을 들고 단번에 가격을 180억 올렸다. 분노한 그가 도발했다. “쓸모없는 놈, 자, 계속해보든지.” “올려요.” 동혁은 별다른 반을 없이 손짓을 했다. “6200억 200원이요.” 서인영이 팻말을 들었다. “8000억!” 이천기가 화를 터트리듯 재빨리 소리쳤다. 경매장 안이 순식간에 한바탕 소란스러워졌다. ‘이동혁의 저 도발로 N도 이씨 가문이 이번 경매에 바로 2000억을 더 내게 생겼어.’ “쓸모없는 놈, 추가된 2000억은 내가 항난그룹과 세방그룹에 그대로 갚아주지.” 이천기 이를 악물고 냉소했다. “계속!” 서인영이 팻말을 들고 외쳤다. “8000억 200원!” “1조.” 경매장에서 놀라는 사람들의 탄식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이천기는 이미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2000억이 됐든, 4000억이 됐든.’ ‘어쨌든 나중에 이동혁과 저놈 아내의 두 그룹에게 그대로 비용을 받아낼 거야.’ “1조 200원.” 서인영이 팻말을 들었다. 이천기는 콧방귀를 뀌었다. “1조 2000억...” “도련님,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저희가 낼 수 있는 금액의 최대가 1조입니다.” 그때 이씨 가문의 집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천기는 이를 악물고 팻말을 내려놓았다. “세방그룹, 혜성그룹을 낙찰받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사회자가 낙찰 망치를 내려쳤다. 경매장에서 또다시 한
“인수인계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죠. 전 지금 제 아내부터 찾아봐야 하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는 가운데 동혁이 일어섰다. 그는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갔다. 동혁이 내뱉는 말이 모두를 어처구니가 없게 했다. ‘1조를 들여 사들인 그룹을 저렇게 별거 아니라는 듯 여기다니.’ “아, 맞다.” 이미 경매장 입구까지 간 동혁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이천기를 제대로 보지도 않던 그가 손가락을 뻗어 상대를 가리켰다. “쓸모없는 놈.” 단 두 마디 말을 던졌다. 그리고 동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훌쩍 떠났다. 소리는 작았지만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는 그렇지 않았다. 이천기는 전에 동혁에게 쓸모없는 놈이라며 한마디 한마니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지금 동혁이 말한 똑같은 그 두 마디에 그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었다. “아, 저 자식이 뭔데 감히 나를 쓸모없는 놈이라고 욕해? 대체 무슨 자격으로? 자기가 뭐가 대단하다고?” 이천기는 미친 듯이 얼굴이 일그러졌다. 경매장 전체가 그의 분노로 가득 찼다. ‘별것도 아닌 이동혁에게 내가 쓸모없는 놈이라고 욕을 먹다니.’ 이전에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상황에 그는 착착함으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확실한 능력으로 1조를 썼어.” “그런 능력이 있으니 이 선생이 돈으로 상대를 눌러 버린 거야. 능력 없는 사람은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질 것 같지 않던 상대가 패배자가 되다니.” 군중 속에서 몇몇 그룹의 임원들이 애매한 어조로 말했다. 아까 전에 이천기는 N도 이씨 가문을 언급하며 혜성그룹을 포기하라고 그들에게 강요했고, 그들은 울화가 치밀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천기의 무능과 그가 격노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누구야? 지금 누구냐고? 할 말 있으면 나에게 직접 해!” 화난 이천기가 눈을 붉히며 소리쳤다.물론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군중 속에서 한바탕 야유가 들려오더니 사람들이 연이어 현장을 떠났다. 오직 이천기만이
“걱정 마. 괜찮을 거야. 차에 가만히 있어.” 동혁은 세화의 손을 두드리며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그는 차 옆에 기대어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앞뒤로 다가오던 네 남자들은 모두 약간 의외라고 여겼다. ‘이 상황에서 이동혁이 창문을 닫고 차에서 버티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고?’ ‘감히 스스로 차에서 내리다니.’ 네 사람이 천천히 동혁에게 걸어왔다. 야구 방망이는 땅에 끌려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누가 보냈지?” 동혁이 차가운 음조로 물었다. 그의 머릿속에 이천기의 그 분노한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이번 태백산장 방문에서 동혁과 마찰이 있었던 사람이 적지 않았다. “흥, 누구한테 원한을 샀는지도 잘 모르겠나 보지?” 네 남자 중 하나인 천수권이 냉소했다. “누군가 우리에게 네 두 다리를 부러뜨려 너를 완전히 못쓰게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 네놈이 올래 아님 우리가 그리로 갈까?” 말을 마치자 야구 방망이를 동혁에게 던졌다. 그는 비실비실 웃으며 동혁을 쳐다봤다. ‘이놈들의 얼굴 골격이 험한 것이 뭔가 수련을 하긴 했나 보군.’ ‘그러니 이렇게 겁이 없겠지.’ “내가 먼저 가지.” 동혁은 손을 뻗어 야구 방망이를 받았다. 휙! 야구 방망이가 손에 들어오는 순간 동혁은 직접 그 야구 방망이를 잡은 손을 뒤로 젖혀 앞에 있는 그 남자를 향해 던졌다. “아직도 상황판단이 안 되는가 보군.” 천수권은 동혁이 이렇게 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이 아무런 놀라는 반응이 없었다. 콧방귀를 뀌며 손을 들었다. 그리고 손을 매의 발톱처럼 구부렸다. 손의 다섯 개의 손가락 뼈는 마치 뒤틀린 마른 가지와 같았다.손가락에는 온통 굳은살이 박여있었다. “나는 십여 년 동안 이 손을 강하게 수련했지. 내 손은 단단해 조약돌도 부술 수 있다고. 내가 네놈의 온몸의 뼈를 뿌리째 뽑아주마.” 천수권이 매섭게 웃었다. 그리고 흉악무도한 손으로 바로 동혁이 던진 야구 방망이를 잡았다. ‘이 딱딱한 야구 방망
“또각!” 그 남자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다. 이미 화가 난 동혁은 그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다. “으아아!” 그 남자는 부러진 다리를 잡고서 비명을 질렀다. ‘나를 죽이고, 세화를 잡아오라고?’ 이천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동혁도 다 알고 있었다. “이천기, 이 짐승 같은 놈!” 차 안의 세화도 식은땀을 쓸어내리며 분노했다. “동혁 씨, 우리 경찰에 신고하자!” “그러면 오늘은 잡아넣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내일이면 다시 풀려날 거야.” 동혁은 세화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천기에게 전화해서 일이 잘 해결됐으니 오라고 해.” 다리가 부러진 남자는 온몸에 땀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고통을 참고 이천기에게 전화했다. “도련님, 말씀하신 일은 잘 처리했습니다.” [진세화는 잡았어? 하하, 좋아. 일을 잘 처리했다니, 내가 바로 내려갈게.] 이천기는 미친 듯이 기쁘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호화로운 차량 행렬이 산을 빙빙 돌며 내려왔다. 이천기가 차에서 내려 허겁지겁 걸어왔다. 그는 네 명의 부하를 발견했는데 뜻밖에도 단 한 명만 멀쩡하게 정신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모두 하나같이 큰 상처를 입었다. 이천기는 깜짝 놀랐다. “예전부터 이동혁, 그 잡종 힘이 세다고 들었는데, 이렇게까지 사나울 줄은 몰랐네. 진작에 알았다면 사람을 더 보낼 걸 그랬어.” “그런데 이 잡종 놈이 마침내 죽었다니 내 마음이 아주 통쾌해. 이게 바로 나 이천기에게 대항한 놈들의 최후지! ”이천기는 큰소리로 미친 듯이 웃었다. “진세화는?” 바닥에 앉은 다리가 부러진 남자가 차를 가리켰다. “제수씨, 제 사촌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으니 슬퍼하지 말고 앞으로 저와 함께하면 됩니다. 제가 그놈 대신 잘 돌봐드릴게요. 하하.” 이천기는 지체 없이 차 앞으로 다가갔다. ‘진세화가 지금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안 나오나 보지?’ 이천기는 몸을 굽혀 차 안을 살폈다. “이동혁? 너, 네놈이 어떻게?” 그 순간 이천기는 놀
동혁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다. 이천기는 그 말을 듣고 놀라서 얼이 빠졌다.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고 두 눈에서는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예전에 그 오만방자했던 N도 이씨 가문의 도련님이 지금 큰 굴욕을 당했다. “이동혁, 이씨 가문이 네 놈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넌 명문가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전혀 모르지? 아무도 널 구할 수 없어!” 이천기가 가슴을 찢는 듯 울부짖었다. “내가 왜 너를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게 하지 않았는지 알아?” 동혁의 말에 놀란 이천기가 울음을 그쳤다. 그는 동혁이 지금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단지 자신을 위협하려는 것이 아님을 알아챘다. ‘만약 내가 여기서 더 소란을 피운다면.’ ‘이놈은 정말 나를 죽일 수도 있어.’ “너의 참상을 이씨 가문에 직접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야. 이연, 그 늙은 놈을 비롯한 이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에게 네 이 모습을 보여줄 거야.” “넌, 한 달 전 날 건드렸을 때, H시에 와서 내 아내 가족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한 말을 듣지 않은 경고가 될 거야.” 말을 마친 동혁은 몸을 돌려 차에 올랐다. 그렇게. 마세라티 기블리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훌쩍 떠났다. “동혁 씨, 방금 너무 잔인한 거 아니야?” 산을 내려오며 세화가 말했다. “잔인하다고? 이게 어디가?” 동혁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아직도 휠체어만 타고 다니시는데 그렇게 란 이씨 가문은 잔인하지 않고?” 동혁은 일찍이 진창하의 다리를 치료해 그를 다시 일어서 걷게 하려고 했다.하지만 살펴보고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몇 년이 지나서 최적의 치료 시기를 놓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천기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이씨 가문이 보복할까 봐 무서워.” 세화는 사실 이것을 걱정했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그들 가족이 겪은 재난과 고통은 모두 N도 이씨 가문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세화는 강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그녀는 불안함
[회장님, 이미 이연홍 씨가 처리하러 출발했습니다.] 이전에 태백산장에서 동혁은 이미 이연홍이 B시 최씨 가문에서 스카우트한 전문 경영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최씨 가문의 투자 업무를 전담했다. 매우 능력 있는 여자였다. “응, 알겠어.” 동혁은 전화를 끊었다. 점심때. 이전에 3대 가문의 뇌물을 받아 H시 군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던 세화의 이모부 장영도가 돌아왔다. 가족들이 다들 기뻐했다. “여보, 사건은 잘 끝난 거야? 앞으로 승진에 영향은 없을까?” 류혜연이 물었다. “영향은 무슨 영향. 아마 사건보고서도 안 올라갈 거야.” 가족들 앞에서 장영도는 딱히 숨길 말이 없었다. 그는 기분 좋게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별일 아니야. 상관이 나를 대신해 말을 잘해줘서 이틀 동안 구금하고 반성문만 쓰고 그냥 넘어갔어.” “역시 천기의 아버지가 말을 잘해줬나 봐. 덕분에 다행이야.” 류혜연은 완전히 안심했다. “그러게 어떤 사람은 내가 당하는 걸 보고 싶어 했겠지만 아쉽게도 내 뒤가 든든하고 연줄도 있으니까.” 장연도는 동혁을 노려보았다. “내 상관은 N도 군부 부지휘관이라고, 그분 도움이 있으니 아무리 신고해도 소용없어.” 그는 이미 동혁이 자신을 신고한 것을 알고 있었다. 동혁은 듣고 그냥 웃기만 했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여보, 근데 오늘 근무하는 날 아니야? 갑자기 왜 집으로 온 거야?” 류혜연이 물었다. 장영도는 말을 듣고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일단 밥 먹고 나서 다들 저와 함께 어디 갈 곳이 있어요.” “물론 이동혁은 갈 필요 없으니 넌 할 일 하고.” 동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사람이 일부러 나를 빼는 걸 보니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거 아니야?’ “이모부따라 다들 가보세요. 저는 못 갈 거 같아요. 오후에 회사에 가봐야 해서요.” 세화는 장영도가 일부러 동혁을 두고 한 말을 듣고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그건 안돼.” 장영도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를 따라 들어가면 다 알아.” 장영도는 웃으며 말했다. 가족들은 그저 그를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회사양도법무사무실이 온통 시끌벅적했다. 3대 가문이 무너지면서 그로 인한 재산권이전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많은 회사들에서 자신들을 대신해 책임자들을 이곳으로 파견했다. “여보, 당신이 말한 좋은 일이 대체 무슨 일이야?” 류혜연이 물었다. 다 가족들도 궁금했다. “저기 봐. 오고 있네.” 장영도는 의기양양하게 앞을 가리켰다. 가족들은 의아해하며 앞을 보았다. 10여 명의 정장과 구두가 보였는데, 딱 봐도 회사 임원들이 두 줄로 늘어서서 그들을 향해 오고 있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일제히 이동했다. 그래서 즉시 회사양도법무사무실의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아, 저 사람은 원도의 장고천 사장이잖아요.” “원도라면 예전에 3대 가문에서 관리하던 사업이잖아요. 제가 듣기로 자산이 수십억은 돼요.” “오늘 이미 N도 이씨 가문이 40억 원에 낙찰받았잖아요.”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그들은 원도의 임원들을 무리를 지어 한 곳으로 가는 이유가 뭔지 몰랐다. 그렇게 사람들이 어수선한 사이에 원도의 임원들은 이미 세화의 가족 앞으로 왔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장고천 사장이 대표로 인사를 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놀란 눈빛과 함께 십여 명의 원도의 임원들도 일제히 세화에게 허리를 굽혔다. “진세화! 진씨 가문에서 바보 같은 놈이랑 결혼한 그 진세화야.” “원도가 N도 이씨 가문에 낙찰됐는데, 진세화를 왜 회장이라고 부르는 거지?” 잠시동안 사무실 안이 떠들썩했다. “장 사장님? 여러분들이 왜?” 세화도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진 회장님, 오늘부터 저희 원도가 세방그룹에 합병되게 되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세화는 어리둥절했다. 장고천이 말했다. “누군가 40억을 주고 저희 원도를 사들여진 회장님께 선물했습니다.” “뭐라고? 40억짜리 회사를 선물했다고?” “설마 N도 이씨
“와, 40억짜리 회사를 선물하면서 고백이라니 너무 로맨틱한 거 아니에요?” “맞아요, 천송이 장미보다 훨씬 낭만적이에요. 완전 사랑이야.” “저 백천기라는 사람은 꿈속에서 나 볼만한 백마 탄 왕자님 같네요.” 장영도의 말에 회사양도법무사무실은 다시 발칵 뒤집혔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세화를 쳐다봤다. ‘회사를 매입해 고백한다고?’ ‘여러 로맨틱한 고백을 들어봤어요 이보다 로맨틱한 건 본 적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천기가 천천히 세화 앞으로 걸어갔다. “세화야, 오늘 경매에서 N도 이씨 가문에 당했다고 해서 내가 직접 이씨 가문을 찾아가 원도를 사 온 거야.” “다행히 이씨 가문이 내 체면을 고려해서 이 일을 승낙했어.” “이렇게 원도를 네게 선물하고, 지난번 가정법원에서의 일을 사과하려고 해.” 지난번 가정법원에서 그는 세화에게 동혁과 이혼하라고 강요했었다. 하지만 결국 화가 치민 세화에게 욕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간 백천기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이 여전히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했다. 백천기는 세화와 다시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며칠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그 기회를 얻었다. 백천기가 말했다. “세화야, 이제 접수처에 가서 서명만 하면 돼. 그러면 원도는 네 것이야.” “천기야, 생각해 줘서 고마워.” 세화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냥 말로 사과해도 돼. 이렇게 귀한 회사까지 줄 필요는 없어.” 백천기는 세화의 이런 거절을 이미 예상했던지 웃었다. 그가 말했다. “원도의 사업은 네 세방그룹의 사업과 상호 보완적인 부분이 있어서 원도와 합병하는 건 결국 네 그룹의 성장에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네가 정말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원도의 소유권을 가지고 네 세방그룹에 출자하는 형식으로 가는 것도 괜찮아.” “물론 앞으로 사업상의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 나는 일절 관여하지 않을 거야.” ‘내가 세화의 세방그룹의 주주가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앞으로 우리 두 사람 사
“내려! 내려!” 차 안에 앉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세화를 본 꼬붕 놈이 차문을 더욱 세게 발로 찼다. 마세라티의 차문에는 순식간에 움푹 패인 자국들이 생겼다. 그 와중에도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미동도 없이 서서 이 모든 사태를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세화는 가슴이 아팠다. 이 차는 바로 동혁이 자신에게 사 준 첫 번째 차였기 때문이다.세화가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행인들이 많이 몰려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이 무리들이 험악해 보이긴 하지만,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거야.’ 그래서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그만 발로 차, 내리면 되잖아.” 나태성이라는 꼬붕놈은 코웃음을 치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세화는 천천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 “와, 이 여자 진짜 예쁜데? 게다가 2억 원이 넘는 마세라티를 타고 다니는 거 보니 완전 재벌이네.” “이 여자도 몰라? 혜성그룹의 회장, 진세화 씨야! 교통사고를 난 사람이 이 여자일 줄은 몰랐네...” 세화는 H시에서 너무나도 유명했다. 최근에는 주다정이 퍼뜨린 유언비어로 인해서, 더욱 사람들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 덕분인지, 세화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역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함부로 못하겠지.’‘혜성그룹 회장 진세화라고?’ 그 순간, 무표정이던 선글라스 남자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쳤다. “당신 운전을 어떻게 한 거야? 운전할 줄 모르면 아예 도로에 나오질 말든가! 김 여사가 바로 당신 같은 여자 운전자를 두고 하는 말이야.” 거들먹거리면서 세화에게 쏘아붙인 나태성은 세화가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였다. “말해봐. 어떻게 책임질 거야?” “아니, 애초에 당신들이 불법으로 차선 변경을 해서 사고가 난 건데, 내가 왜 책임져야 해?” 세화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내 실수로 일어난 사고였다면, 주저하지 않고 피해를 보상했을
[사해 상공호의소에서 우리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해서 살펴봐야 해.] 세화가 차분하게 말했다. [H시의 시장은 너무 작아. S시의 세방그룹이든 혜성그룹이든 앞으로는 반드시 전국으로 시장을 확대해야 해.] [그리고 N도의 시장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N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해상공회의소의 문을 두드려야 해.] [마침 사해상공회의소에서 고급 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연락을 해 온 거야.]세화도 이 기회를 잡으려고 했기에 쌍방은 자연스럽게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남편이 별로 탐탁치 않아 한다는 걸 알아차린 세화가 동혁에게 말했다. [당신도 같이 가. 이미 사해상공회의소 대표하고 약속을 했어,] [새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당신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야.] 동혁의 주량이 좋기도 하지만 동혁을 데리고 가는 데에는 세화가 고심한 또다른 목적이 있었다.바로 사해상공회의소 사람들과 만나면서 동혁을 위한 인맥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세화의 말에서 자신에 대한 관심을 느낀 동혁은 마음속으로 기뻐했다.‘아내가 이렇게 나를 챙겨 주는데 내가 승낙하지 않는다면 너무 눈치가 없는 것이겠지?’동혁은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래, 알겠어. 당신을 위해서라면, 불 속이라도 기꺼이 뛰어들어야지.” “하물며 술마시는 건데 말이야. 오늘 술 마시러 온 사람들은 다 뻗게 해주겠어!” 동혁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세화는 진지하게 말했다. [좀 진지하게! 이번엔 사고 치면 안 돼. 지난번처럼 술 마신 사람들 병원으로 보내지 말고!] 지난번에 동혁은 몇 개 부문의 책임자들과 술을 마시고 전부 뻗게 만들어서 세화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알았어. 쓸데없는 말은 안 할게. 명성호텔로 와서 나하고 합류하면 돼. 내가 지금 차를 가지고 갈게.]다시 한마디 한 뒤 세화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신의 마세라티를 몰고 출발했다.세화가 명성호텔 근처에 왔을 때, 옆 차선에서 오픈 스포츠카 한 대가 세하의 차에 접근해서 나란히 달렸다. 빵! 빵! 선글라스를 낀
한 무리의 기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천진과 주다정의 귀에도 들렸다. 이는 자신들에 대한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였다.30분도 안 되어 천진이 주다정을 폭행한 사실이 인터넷어 폭로되었고, 사방으로 떠들썩하게 퍼져 나갔다.이로써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 주다정과 천진이 결탁해서 간통을 저질렀고, 항난그룹을 삼키려고 작당한 두 사람은 오히려 동혁과 수소야가 간통을 저질렀다고 유언비어를 퍼트렸던 것이다.‘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지!’두 사람을 향한 욕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악명을 세상에 날리게 된 주다정과 천진은, 모든 사람들의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이튿날 H시 방송국에서는 성명을 발표했다, 동혁과 세화 일가에 사과하는 동시에 경병수와 주다정을 파면했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그 뒤로 이 양아버지와 수양딸은 H시에서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소문에 따르면, 주다정은 한 지방 도시의 고급 클럽에서 명문가의 자제들과 고위 관리들을 정성껏 접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다만 예전에는 자신이 기꺼이 원해서 그랬지만, 지금은 억지로 웃음을 보여야 했다.그리고 이 여론을 통해서 먹칠을 했던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수소야도 여러 매체들이 공동으로 증인을 서는 가운데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천진의 파렴치한 행동이 사람들에게 공개된 데다가 동혁도 이 소송에 특별히 관심을 보였다. 법원에서는 신속하게 두 사람의 이혼을 판결했다.결국 천진은 원래 자신의 가문에 속했던 재산을 제외하고, 항난그룹에 대해서는 동선 하나도 건질 수가 없었다.법원의 판결에 불복한 천진은 수소야가 보유한 항난그룹의 지분은 부부의 공동 재산이므로 당연히 자신이 절반을 가져야 한다고 항변했다.하지만 수소야는 항난그룹의 지분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동혁이 전후로 나눠 준 지분은 처음부터 백마리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화가 머리끝까지 난 천진은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인다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항난그룹의 지분을 수중에 넣으려고 할 때마
경병수는 마침내 주다정이 요 며칠 동안 온갖 방송국 자원을 동원해서 유언비어를 날조해서 얼굴에 먹칠을 하게 만들었던 대상이 동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경병수가 아무리 용서를 빌어도 동혁의 태도는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동혁이 냉혹한 말투로 경병수에게 말했다.“경 국장, 내가 잘못 들었나?” “나는 해고하는 건 못 봤어. 오히려 당신이 가지고 놀다가 질린 음탕한 여자를 나한테 꽂아 넣으려고 한 걸 봤는데.”“경 국장, 당신은 나 이동혁을 얼마나 무시하는 거야?”털썩-경병수는 눈빛마저 초점을 잃은 채 털썩 주저앉았다.이제는 자신이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동혁이 이렇게까지 말했다는 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작정임을 드러낸 것이다.더 중요한 건 경병수가 반박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그건 바로 경병수가 생각한 방법이었기에.동혁은 경병수를 더 이상 보지도 않은 채 담담하게 임창호에게 말했다.“방송국 위아래 모두 대청소를 해야겠군요.”“시 방송국의 바로 H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곳인데, 오히려 온갖 오물과 비리가 난무하는 곳이 되었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네!”임창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경병수의 접견을 자신이 주선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자신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웠다.이제는 자신이 시장에게 점수를 잃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반드시 만회해야 해!’임창호는 곧바로 사정 파트의 직원들을 호출했다.“경병수와 주다정은 모두 즉시 파면 처분했다고 공고하도록 해. 그리고 내가 직접 방송국에 주재하면서 대대적으로 정리하겠다.”임창호의 말은 경병수와 주다정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과 마찬가지였다,두 사람은 완전히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야 했다주다정은 자신이 어떻게 시청에서 나왔는지,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줄곧 멍한 표정이었다.똑똑-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천진이 나와서 문을 열었다.그러나 주다정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드러냈다.“다정아,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널
동혁의 이런 비난에 경병수는 놀라서 쓰러질 지경이었다.‘주다정 저 멍청한 X이 자기만 망친 게 아니라 나까지도 망쳤어.‘시장님의 말은 우리 방송국 전체에 아주 불만이 많다는 걸 드러낸 게 분명해.’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면서 경병수는 꽉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시, 시장님... 저 주다정이 갑자기 미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방송국 직원들은 모두 시장님을 존경하고 있고, 불경한 의도를 품은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말을 하면서 경병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장의 싸늘한 태도를 보자 주다정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다.‘이 멍청한 X이 나까지 말려들게 하다니!’경병수는 갑자기 주다정을 걷어차서 바닥에 쓰러지게 만들었다.거기서 그치지 않고 두 발로 계속 거세게 걷어찼다. 퍽! 퍽! “아악! 아파요. 양아버지 제발! 제발 그만 때리세요!!”주다정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누가 네 양아버지야!”주다정의 입에서 양아버지란 말이 나오자, 경병수는 넋이 나갈 정도로 놀랐다.재빨리 달려들어 주다정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연달아 따귀를 때렸다.짝! 짝! 짝!“악! 제발 그만!” “나는 너하고 아무 관계도 없어! 함부로 친척이라고 하지 마!” “한 번만 더 주둥이를 놀리면 때려 죽여버리겠어!”경병수는 이번에 정말 필사적이었기에 온 힘을 다해 주다정을 때렸기에, 주다정은 너무나 비통한 나머지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경병수가 아무리 둔하다 해도 동혁과 주다정 사잉에 원한이 쌓여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주다정은 이미 시장님의 마음 속에서 끝났어.’‘지금 만약 주다정이 내 수양딸이라는 게 들통나면 이동혁이 나를 그냥 두겠어?’주다정의 얼굴이 엉망이 되도록 때리던 경병수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때리던 걸 멈췄다.지금 주다정은 갯벌의 진흙처럼 엉망이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마치 숨이 간들간들한 강아지마냥 입으로는 연신 끙끙 신음소리를 내
“이, 이동혁?!” 주다정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설마 요즘 내가 너무 잠자리에 탐닉하느라 피곤해서 환각을 보는 건가?’ 자시을 때려 죽인다 해도 동혁이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여기는 시장님의 관저이자 H시 권력의 중심지야. H시에서 가장 존귀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이동혁 같은 쓰레기가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어?’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와서 자세히 보고는, 주다정은 다시 한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책상 뒤에 있는 남자는... 정말로 이동혁이 맞아!’주다정은 완전히 멍한 상태였다.요 며칠 동안 주다정은 전력을 다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모두가 욕을 퍼붓자, 동혁은 H시에서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주다정의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동혁은 집 밖에도 못 나오고 쥐 죽은 듯이 지내거나, 몰래 H시에서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동혁이 당당하게 시장실 한가운데 서 있다니?’ ‘이게 말이 돼?’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주다정은 무의식적으로 동혁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화를 냈다. “야, 이동혁! 너 같은 쓰레기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넌 인간 말종인 쓰레기야! 이곳이 어디라고 너 따위가 감히 들어와?” 주다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장실 안은 이미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시장실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부시장 임창호와 방송국 국장 경병수. 그리고 그들을 안내한 시장실 직원들까지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마치 바보를 보는 것처럼 주다정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느끼자, 주다정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자신감이 없어졌다. 불안해진 주다정이 주변을 둘러보니, 시장실 안에는 동혁 외에 임창호 부시장과 시장실의 직원들이 있었다.‘시장님은?’주다정은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동혁이 이런 중요한 장소에 버젓이 나타난 데다가, 부
“시장님, 경병수 국장은 오랫동안 방송국에서 근무한 베테랑입니다. H시 내에서도 명망 있는 인물이고도 하고요. 만나보시겠습니까?” 임창호가 허리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송국 국장이?” 동혁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답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곧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남성이 임창호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시장님, 이쪽은 시 방송국의 경병수 국장입니다.” 임창호가 간단하게 소개했다.동혁을 본 경병수는 첫눈에 새 시장이 과연 바깥에 떠도는 소문 그대로라는 느낌이 들었다.‘정말 너무나 젊은데!’시장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인 경병수가 겸손하게 인사했다. “시장님, 그냥 ‘경 국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가볍게 대답한 동혁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임 부시장이 보고할 게 있다고 하던데 이번 우수직원 선발과 관련된 건가요?” “아, 네! 그렇습니다, 시장님!” 순간 당황했던 경병수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이번에 저희 시 방송국에서 선발된 우수직원은 주다정이라는 경제 뉴스 앵커입니다.” “어제 시장님께서 지시하신 뒤에, 저희도 내부적으로 철저한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동혁은 담담하게 물었다. “아 그래요? 조사 결과는 어떤가요?” 경병수가 몰래 동혁의 표정을 살폈지만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주다정이 앞서 시장이 단독으로 자신을 접견하기로 했다고 말한 걸 떠올리고, 시장이 주다정에게 악의가 있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주다정의 직속 상관인 자신이 주다정에게 좋은 얘기를 하라고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경병수가 얼른 입을 열었다.“네! 시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내부 조사 결과 주다정 기자는 진지한 태도로 업무를 책임지고 있고 업무 능력도 아주 뛰어납니다.” “게다가 도덕성과 인품 면에서도 방송국 내에서 아주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주다정 기자가 몇 년 간 연속해서 우수직원에 선정된 것은 바로 방송국 전체 직원들의 지지를 받고
“오 사장님, 과찬이세요. 오 사장님은 리성투자회사에 명문가인 이씨 가문을 배경으로 가지고 계시기에, 언론계도 오 사장님 앞에서는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지요.” “오 사장님에 비한다면 저는 감히 비교할 가치도 없는 미미한 존재지요.” 주다정이 웃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이 전화를 한 이유가 말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거야.’ “오 사장님이 갑자기 전화를 주신 게 혹시 저한테 시키실 일이라도...?” 전화기 너머에서 오한민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킬 정도는 아니고, 주 기자가 요즘 이동혁과 이동혁의 아내를 상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흥미가 생겼어.] ‘휴... 다행이야.’ 그 말을 듣자 주다정은 한숨을 돌렸다.주다정은 오한민이 이씨 집안을 대표하는 동혁과 원한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게다가 이전에 오한민과 어정쩡한 관계였던 대니얼도 동혁에 의해 폐인이 되어 참혹한 모습으로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이동혁을 싫어하는 오한민이 이동혁을 도우려고 전화한 건 분명히 아니야.’ 이렇게 생각한 주다정은 곧바로 억울하다는 듯이 가장하고 말했다. “오 사장님, 저는 정말 억울해요! 그 이동혁과 진세화 그 두 사람이 얼마나 저를 무시했는지 아세요? 심지어 제게 무릎을 꿇고 구두를 핥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이 부부하고 끝까지 싸우려는 거예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부부의 힘이 너무 강해요. 제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여전히 그 부부를 넘어뜨릴 수가 없어요.” “오 사장님께서 좀 도와주신다면, 제게는 정말 큰 힘이 될 거예요.”주다정은 자본시장의 큰손인 오한민은 자신은 꿈도 꿀 수 없는 언론 매체 장악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한민이 일단 힘을 쓰기만 하면 이동혁 일가의 오명을 전국적으로 퍼지게 할 수 있어!’ 침묵하고 있던 오한민이 차갑게 말했다. [이동혁은 내 아들을 망가뜨린 놈이야. 나도 그 개자식을 죽여버리고 싶지.] [하지만 지금 그놈은
경병수의 말이 당연히 사실임을 잘 알고 있기에 주다정은 속으로 득의양양했다.하지만 경병수의 말과 전혀 다른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저는 시장님이 너무 빨리 저를 가지게 하고 싶지 않아요.” “쉽게 얻게 된다면 저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테니까요” “쉽게 얻은 건 쉽게 버려지니까요.” “그래서 우선 시장님의 비서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감정을 쌓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싶어요.” “그래서 국장님이 이번엔 꼭 도와주셔야 해요.” “저하고 같이 가서 시장님께 업무 보고를 하시면서, 저를 비서로 적극 추천해 주세요.” 주다정은 언제나 명문가에 시집가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내 육체를 팔아서 단기간의 이익은 얻을 수 있겠지만, 그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해’‘새 시장의 부인이 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쟁취할 거야.’‘남자의 그늘 아래서 늘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그런 정부 말고!’ 주다정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경병수에게 속삭였다. “국장님, 꼭 도와주실 거죠?” “앞으로 제가 더 잘 챙겨 드릴게요.” 방송국에서 십여 년 동안 국장으로 있었기에, 경병수는 H시의 터줏대감으로 유명했고 인맥도 넓었다.자신이 적극적으로 추천한다면, 자신의 체면을 고려해서라도 시장이 틀림없이 주다정을 비서로 채용할 거라고 생각했다,경병수는 잠시 고민했다. ‘주다정은 예쁘지만 솔직히 몇 년 동안 즐겨서 이젠 좀 질렸어.’ ‘마침 방송국에 젊고 예쁜 인턴들이 들어왔으니, 주다정을 대신할 새로운 타겟을 찾을 때가 됐지.’ 하지만 주다정은 너무 영악해서 줄곧 정리할 기회를 찾지 못했는데 이제 기회가 온 거야.’‘주다정과 정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다정이 정말로 시장 비서가 된다면 앞으로 아주 쓸모 있는 백 그라운드를 가지게 되겠지.’ ‘정말로 시장님 여자가 된다면 그럼 금상첨화지.’ ‘원래 주다정의 행실로 봐서는, 시장님과 같은 큰 인물은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다정 같은 여자는 받아들일 수가 없어.‘하지만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