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혁은 방금 전 회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어젯밤에도 그는 줄곧 항난그룹에 머물렀다. 그사이 세화가 동혁에게 전화를 걸어 왜 집에 안 오냐고 물었다. 동혁은 자신이 항난그룹에서 처리할 일이 있어서 잠시 집에 돌아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세화는 그저 동혁이 이전 기자회견의 일로 항난그룹에 남아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마이크로정밀공사가 우리를 고소하겠다는데요?” 수소야는 화를 내며 방금 전의 통화내용을 다시 말했다. 듣고 난 동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심석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30분도 안 되어 마이크로정밀공사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수 사장님, 죄송합니다. 계약금 40억 원 제가 다시 돌려드릴게요. 그러면 되잖아요. 우리 다 사업하는 사람들인데 굳이 왜 이렇게 일을 극단적으로만 처리하시나요?] 전화로 울부짖는 마현수의 목소리를 듣고 수소야는 깜빡 놀랐다. “대체 왜 그러시는데요? 전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그녀는 머릿속이 의아함으로 가득 찼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수 사장님, 농담하지 마세요. 제가 항난그룹을 고소하겠다고 하자마자 바로 기업감사부에서 나와 저희 회사를 조사하고 있다고요. 분명 수 사장님께서 이렇게 하신 거잖아요.] 마현수는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수 사장님, 이렇게 큰 힘이 있으신 줄 몰랐어요. 제발 너그럽고 큰 아량을 베풀어서 한 번만 봐주세요.] 수소야는 무의식적으로 동혁을 쳐다보았다. ‘회장님의 방금 그 전화 때문이 틀림없어.’ “봐줄 거 없어요. 그 사람에게 전해요. 계약금 40억 원에 위약금을 한 푼도 빼지 말고 보내라고요.” 동혁은 가만히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 ‘이렇게 약속을 쉽게 뒤집는 회사는 그냥 봐줄 수 없지.’ 곧바로 마이크로정밀공사는 240억을 항난그룹 계좌로 송금했다. 이렇게 기기 구입과 관련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때 조국현이 찾아왔다. “수 사장님
“귀가 먹었어? 여보라고 불렀잖아!” 장윤정은 동혁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다시 조국현을 쳐다보았다. “조국현, 역시 쓸모없는 인간, 자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 회장님에게 너 대신 말해달라고 한 거냐?” “내가 말하는 거 잘 들어. 난 자인을 여보라고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린 남편과 아내가 해야 할 일도 모두 다 했어.” “맞지, 여보?” 그녀는 고개를 돌려 애교스럽게 허자인을 바라보았다. “우리 여보 말이 맞아.” 허자인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국현 네가 윤정이와 하지 않은 일도 어젯밤에 호텔에서 우린 했었지. 하하, 끝내줬어!” 조국현은 화가 나 주먹을 불끈 쥐었고 바로 달려들어 허자인의 희죽거리는 눈을 한대 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꾹 참았다. 그는 허자인이 술수를 많이 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상대방이 고의로 자신을 도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지금 손을 쓰면 상대방에게 약점을 잡힐 수도 있어.’ “어젯밤에 같이 호텔에서 묵었어?” 동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장윤정, 당신은 국현 씨와 아직 이혼하지 않았잖아요?” “그게 뭐 어때서? 회장이면 회장이지, 왜 저 쓸모없는 직원을 대신해 우리 일에 상관하는 건데?” 장윤정은 쳐다보지도 않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바로 어젯밤, 죽립로에 있는 그 메리어트 호텔, 우리 거기서 잤다. 왜?” “이혼 안 했으니 뭐? 내가 바람피웠다고 고발이라도 하게? 아니면 다른 남자와 불법 동거했다고 고발하려고?” “조국현, 네가 내게 버림받은 것이 세상에 알려져도 상관없다면 가서 고발해.”“설사 그런다고 내가 너를 무서워할 거 같아?” 장윤정은 아주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명성과 체면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만일 조국현이 일을 크게 벌이게 되면 결국 창피한 것은 분명 그가 될 것이다. “됐어,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빨리 본론부터 말하자고.” 허자인은 손을 내저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조국현, 다시 한
천우민의 뒤로 몇 명의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하나같이 온몸에서 거친 기세를 풍기고 눈빛이 음험하고 매서웠다. 모두 천씨 가문의 고수급 경호원들이다. “도련님, 부하들에게 손 좀 보라고 하시죠. 조국현, 이 쓸모없는 인간은 좀 맞아야 후회하고 정신을 차릴 것 같습니다. 할 수 없이 좀 강하게 대해야 할 거 같아요.” 천우민이 도착하자 허자인은 기세등등해졌다. 그는 동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놈이 바로 항난그룹의 회장 백항서입니다. 싸움도 아주 잘하던데요? 명설이와 전 평소에 킥복싱을 연마했는데 저 놈의 적수가 못됐어요.” 허자인은 동혁을 꺼려하며 마음에 걸렸었다. 그래서 천우민에게 그 가문의 고수급 경호원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국현을 상대하기 위해서 돈을 써서 깡패 몇 명을 고용하기만 하면 됐었다. “저놈이 백항서라고?” 천우민은 동혁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그는 바로 천천히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점점 더 큰 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는 웃음이 이미 포복절도 수준이 되었다. “하하, 진씨 가문의 그 바보 사위잖아!” 큰 웃음소리가 뚝 그쳤고 천우민은 동혁을 노려보며 냉소했다. “지금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정체가 베일에 쌓여있던 백항서가 바로 너 같은 놈이라고?” “뭐라고요? 저 놈이 진씨 가문의 그 바보 사위라고요?” 허자인과 장윤정도 어리둥절해하며 큰소리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여태껏 죽은 백항남에게 친형제가 있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고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서 놀랐는데 알고 보니 가짜였다?” “저 놈이 진씨 가문의 그 쓸모없는 데릴사위라는 거잖아. 길가의 거지들도 깔보는 그런 인간. 그러니 이 전신을 사칭하고 백항서 행세를 하는 거 외에 다른 무슨 재주가 있겠어?” 허자인과 장윤정은 아무 거리낌 없이 크게 비웃었다. 아까전만 해도 동혁의 회장이라는 신분이 그들을 좀 꺼려하게 했었다. 하지만 동혁이 쓸모없는 데릴사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의 꺼림칙함이
“조국현, 이제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어. 도련님에게 미움을 샀으니 누구도 너를 구해주지 못해.” 장윤정이 고소해하며 말했다. 조국현이 분해하며 말했다. “장윤정, 단 하루를 같이 살아도 부부의 정이라는 게 있어. 난 네게 미안한 짓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왜 내게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3대 가문에 특허 기술을 바치지 않아서 내가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게 한 것이 미안한 일이 아니면 뭔데?” 화가 난 장윤정은 매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에 조국현은 이를 악물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장윤정에 대한 마지막 감정마저 모두 사라졌다. “백 회장, 후회돼지?” 허자인은 어젯밤 자신의 뺨을 때린 동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어. 먼저 스스로 네 뺨을 백 대 때리면 내가 도련님에게 부탁해서 네가 덜 아프게 맞게 해 줄게” 동혁은 동정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들어와서 잡아도 됩니다.” 이 말을 마치고 동혁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 쓸모없는 놈이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렸나 보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지금 누가 네놈을 구해 줄 줄 알고?” 허자인은 냉소했다. 그동안 경호원 몇 명은 이미 동혁과 조국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무릎이나 꿇어!” 두 경호원이 각각 두 사람의 뺨을 때렸다. “짝”하는 소리와 함께 조국현은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동혁을 향해 휘두른 손바닥은. 아직 뺨에 닿지도 않았는데 이미 동혁에게 잡혔다. “뽀각!”동혁이 어떻게 힘을 썼는지 제대로 볼 틈도 없이 경호원의 팔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혁은 이어서 발을 들어 이 경호원을 “퍽” 하고 날려버렸다. 이 잔인한 광경을 본 허자인과 장윤정, 두 사람은 모두 놀라 순간 멍해졌다. “저 쓸모없는 놈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하다니. 저 놈보다 더 쓸모없는 것들. 멍하니 뭐 하고 있어.
“군법위반간통죄? 누가 군법을 어겼다고 이러십니까?” 허자인과 장윤정은 너무 어이없어했다. ‘불륜이나 불법 동거 이런 거라면 모두 말이라도 되지.’ ‘그래봤자 큰 잘못도 아니고.’ ‘하지만 군법을 어겼다니? 우리가 그런 큰 잘못을 범할 이유가 없잖아.’ 허자인은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고개를 돌려 매섭게 조국현을 노려보았다. “조국현, 이 개X식, 네가 신분을 조작해서 우리를 모함했구나?” “분명 이동혁, 저 남이나 사칭하고 다니는 놈이 네게 방법을 알려준 것이 틀림없어.” 허자인의 생각은 동혁이 조국현을 가르쳐 군부의 신분을 거짓으로 꾸몄다는 것이었다. 장윤정도 앙칼지게 말했다. “대장님, 조국현은 군부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분명 여러분들을 속인 걸 거예요.” “우리가 확인해 본 결과 조국현 중령은 저희 군부에서 근무하는 사람 맞습니다.” 선두에 선 대장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조국현, 저 사람은 이미 2년 전에 다리가 부러져서 못 쓴다고요. 저렇게 쓸모없는 인간이 어떻게 군부의 사람이겠어요. 틀림없이 위조 신분증을 구해서 사용했을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 다시 한번 자세히 검토해 보세요.” 장윤정이 소리쳤다. “천박한 년, 네 그 썩은 눈을 크게 뜨고 잘 봐. 내가 네가 그렇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쓸모없는 인간인지 아닌지!” 조국현은 순간 녹색 신분증을 꺼내더니 장윤정의 얼굴을 향해 내던졌다. 장윤정은 따끔거리는 얼굴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신분증을 덥석 움켜쥐고 살펴보았다. 허자인 역시 달려들어 함께 보았다. [성명: 조국현.] [소속: H시 군부 장비 연구소.] [직무: 선임연구원(부소장).] [직급: 전문기술중령.] 조국현의 과학 연구 수준은 매우 높았으며 발표된 학술 논문은 이미 군부 내에서도 특정 조건에 도달했다.그래서 장비 연구소에 특별 채용되는 순간 즉시 부소장 수준의 연구원이 되었다. 직급은 전문기술중령, 아주 멀쩡한 신분증이었다. 허자인과 장윤정은
허자인과 하명설 등이 한 짓을 동혁은 항남을 대신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허자인 등이든 천우민과 그의 배후의 3대 가문 모두 내일 응당한 처벌을 받게 해 주지.’ 장윤정이 울부짖는 와중에 그녀와 허자인은 끌려나갔다. “이동혁, 이번엔 네가 이겼어. 하지만 두고 보자!” 천우민은 동혁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려 가버렸다. 그는 지금 매우 기분이 불쾌했다. 조국현이 가지고 있던 특허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동혁에 의해 그냥 물러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천우민의 마음을 더욱 놀라게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동혁, 이 사기꾼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조국현을 군부의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천우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순간 앞서 3대 가문이 동혁의 또 다른 신분인 백항서와 몇 차례 맞붙었을 때 동혁이 보여준 군부와의 밀접한 관계가 떠올랐다. 이 생각을 한 그는 마음속에서 더욱 놀랐다. “어딜 가? 내가 언제 가도 된다고 했나?” 천우민이 막 몸을 돌려 떠나려 하자 동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천우민은 다시 몸을 돌려 화를 내며 말했다. “그래서 네가 뭘 어떻게 할 건데?” “원래 내일 형제 기일에 너와 3대 가문 모두를 함께 처리할 예정이었어.” 동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네가 먼저 나를 건드렸으니 먼저 너부터 손 좀 봐주고 3대 가문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는 게 좋겠지?” 전에 동혁은 노무식을 시켜 3대 가문에게 말을 전했다. 조 씨 가문의 온 가족은 백항남의 기일 전에 에메랄드정원을 떠나야 한다. 또한 3대 가문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상복을 입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3대 가문의 행보를 보면 그들은 분명히 이런 동혁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처음에는 왕조희를 이용하고 그 다음에는 N도경제연합회를 이용하여 소란을 일으켰다. 그렇게 점점 심하게 항난그룹을 압박했다. 동혁은 그래서 오늘 천우민을 이용해 3대 가문 모두에게 경고할 셈이다. “이동혁, 네
“으아아!” 고통이 극에 달한 천우민은 처량하기 짝이 없는 비명을 질렀다. 잠시 후에도 천우민은 거의 기절할 정도로 아픔을 느꼈다. “이 부러진 이 두 다리는 조국현을 대신해서 갚는 것뿐이야. 내 형제 항남의 원수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생각해 보자고.” 동혁은 말을 마치고 이미 겁에 질려있는 경호원 몇 명을 힐끗 쳐다보았다. “3대 가문에게 데려가고 그들에게 내가 준 시간이 이제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고 전해.” 경호원 몇 명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천우민을 데리고 떠났다. 조동래도 와서 경례를 하고 허자인과 장윤정을 데리고 나갔다. 카페 안은 순식간에 텅 비었고 동혁과 조국현 두 사람만 남게 됐다. 조국현이 동혁을 향해 몸을 돌리며 진심을 담아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백 회장님께서 마침내 억울함을 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장님께서 정말로 3대 가문을 벌하고 돌아가신 백 회장님을 위해 정의를 다시 되찾으실 거야.’ ‘거기다 감사하게도 그 천박한 년놈을 혼내주시기까지 해 주셨어.’ 수소야는 돌아와서 조국현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천우민이 두 다리가 불구가 되어 벌을 받았다는 사실에 그녀는 이미 충분히 만족했다. 그전에는 이런 일을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내일 양부모님을 모시고 에메랄드정원에 가서 3대 가문이 항남의 관을 나르고 상복을 입고 애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세요.” 그러자 동혁이 말했다. 관과 상복 등의 항남의 기일에 사용할 물건들이 많았다. 동혁은 이미 노무식에게 물건들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내일 항남의 기일은 H시 역사상 가장 성대한 규모의 경조사로 치러질 거야.’ “알겠어요.” 수소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혁에 대해 그녀는 이미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동혁은 하늘 거울 저택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고 항난그룹을 나서기 전 석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취임식을 앞당겨 내일로 바꿔야겠어.” “장소
“또한 경호원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 조국현이 장비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 되었다는 거야.” “백항서가 가지고 있는 군부의 배경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거 같아.” “그러게 H시 군부의 직속 장비 연구소인데 제 집처럼 쉽게 드나들다니!” 3대 가문의 가주들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들의 놀라움이 커질수록 후회도 더 깊어졌다. ‘백항서가 군부에 대단한 배경이 있을 거라는 건 일찍이 우리 모두 예상했던 일이었어.’ ‘그렇다면 H시물류그룹이 기기를 망가뜨리게 시도하도록 놔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지금 나호연이 잡힌 이상 우리 3대 가문의 H시 물류업은 반드시 대대적인 개편을 피할 수 없겠군.’ ‘막대한 손실뿐만 아니라 더불어 H시에 대한 우리의 장악력도 심각하게 약화될 거야.’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어.” 조구영이 말했다. 나머지 두 사람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항서가 항난그룹을 재건한 것은 바로 우리 3대 가문을 노린 거야.’ ‘이틀 전 백항서는 노무식에게 조씨 가문에 에메랄드정원을 비워 백항남의 의관총으로 쓸 거라고 전했지.’ ‘거기에 우리 3대 가문 사람 전원이 상복을 입고 참석해야 한다고도 했어.’ ‘우리 3대 가문과 백항서는 처음부터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사이야.’ “그리고 경호원이 말하길 백항서가 진씨 가문의 그 쓸모없는 사위라고 하던데 진짜일까?” 허윤재가 갑자기 물었다. 지금까지 3대 가문 가주 중 동혁을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 바로 허윤재였다. ‘내 아들 명신이 식물인간이 된 것은 바로 세화 때문이야.’ ‘이동혁이 정말 백항서라면.’ ‘그럼 명신이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건 이동혁 그놈이 틀림없어.’ ‘어쩐지 군사훈련이라고 하기엔 너무 미심쩍긴 했어.’ 조구영은 콧방귀를 뀌었다. “지금 사실이건 거짓이건 무슨 상관이야? 이제 진씨 가문의 그 바보 같은 사위를 우리도 더 이상 예전처럼 그냥 무시할 수는 없어.” “내일이 백항남의 기일이야. 백항서가 그 쓸모없는 이동
“세화야, 이게 다 네가 이 바보를 그냥 둬서 이런 거야. 이제 너와 네 온 가족이 동혁이와 연루되게 생겼어.” “내가 너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동혁이, 저놈과 관계를 끊을 거야.” 류성중이 세화에게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화는 얼굴이 종잇장처럼 창백해져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동혁 씨, 우리 그냥 빨리 돌아가자. 하늘 거울 저택으로 가자고.” 집으로 피하는 게 지금 세화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 집은 설 대도독의 경호원들이 있어서 해리슨 영사라도 감히 들이닥치지 못해.’ ‘임시방편일 뿐이지만 일단 시간을 벌고서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자.’ “여보, 겁낼 거 없어. 우린 아무 데도 안 가도 돼. 해리슨이 와서 사과할 때까지 기다리자.” 동혁은 세화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 세화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 이렇게 큰 일을 벌이고도 동혁 씨는 웃음이 나와?’ 세화는 할 수 없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동혁과 함께 기다렸다. ‘그래, 난 두 그룹의 회장이고, 동혁 씨는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이야. 다른 사람이 와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잖아. 기껏해야 뭔가 대가를 치르면 그만이야.’ 세화는 동혁과 관계를 끊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부라면 무슨 어려움이 있어도 함께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외교관 통행증을 단 고급 차 몇 대가 명성호텔에 들어섰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더니 신분을 묻는 호텔 경호원을 거칠게 밀치고 돌진했다. “다다다.” 바깥 복도에서 급하고 어수선한 발자국 소리가 나자 연회장 안의 모든 사람들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하, 해리슨 영사님이 오셨나 보군.” 무릎을 꿇은 대니얼이 광기가 가득 담긴 표정으로 소리쳤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10여 명의 사람들이 뛰어들어왔다. 그 가운데에는 외국인과 H국 사람이 있었는데 대부분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 시장님, 스탠슨은 우리 영광스러운 Y국을 위해 피를 흘려 큰 공을 세운 공신이에요.” “당신들은 반드시 스탠슨을 때린 그 범인을 내놓아야 할 겁니다. 우리가 그놈을 처리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Y국의 공식적인 항의를 받을 거예요.” H시 시청 시장실. 금발에 구레나룻이 긴 한 백인 남자가 하세량에게 거만한 표정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바로 N도 주재 Y국 영사관의 영사 해리슨이었다. 바로 그대 대니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에서 상대방의 말을 들은 해리슨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더니 이어서 버럭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죽일 놈, 대니얼, 네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게 분명 귀찮은 일이 생긴 거지? 그래서 일부러 나를 열받게 하는 거 아니야?” “하찮은 H국 인간 놈이 감히 어떻게 내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해? 어디서 그런 거짓말이야? 네놈이 죽고 싶어?” 해리슨은 대니얼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대니얼이 언급한 일은 근본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리슨, 왜 믿지 못하겠어? 당신은 H국에서 순직한 Y국 초대 영사가 되는 거야.] 그런데 그때 다른 목소리가 전화 반대편에서 들려왔다. 뜻밖에도 누군가 자신의 죽음 언급하자 성격이 불같기로 유명한 해리슨은 다시 벌컥 화를 냈다. “이 개X식이, 너 누구야? 감히 나한테 그런 막말을 하다니.” [내가 누군지, 못 알아듣겠어?] “10분의 시간을 줄 테니 튀어와서 내 앞에 무릎 꿇어. 그렇지 아니면 어디 가서 자살이라도 해야 할 거야.” 해리슨에게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동혁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연회장 안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완전히 멍해졌다. ‘대니얼 씨를 무릎 꿇게 하더니, 이제는 Y국 영사를 무릎 꿇게 하겠다고?’그러나 상식을 벗어난 일을 모두 이미 직접 한번 본 상황이었다. 그래서 동혁이 해리슨 영사를 협박해 자살하게 하는 것도 아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설사 동혁이 지금 전화를 걸어 Y국 여왕을 무릎 꿇게 한다
털썩! 대니얼은 동혁에게 뺨을 세게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 뺨 한대에 온몸이 저려오고 얼굴에는 감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동혁은 대니얼을 그대로 두지 않고 다시 다가와 그의 멱살 잡고 강하게 걷어차 다리종아리를 부러뜨렸다. “으아.” 대니얼은 가슴이 터져나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동혁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옆에 있던 주다정은 동혁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놀라서 얼굴빛이 하얗게 변했다. “너, 너 지금 뭐 하려고... 아!” 동혁은 주다정을 붙잡아 뺨을 때려 바닥에 쓰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한 다음 발을 내밀었다. “아까 전에 말했잖아. 막돼먹은 개는 무릎을 꿇게 해서 내 신발을 깨끗이 핥게 해야 한다고.” “이 쓸모없는 데릴사위 놈, 네놈이 뭔데 내게 그딴 걸 하라고 해?” “아, 네놈 아내가 시킨 거야?” 주다정은 화가 나 소리치며 동혁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동혁에게 또다시 뺨을 맞고 바로 얌전하게 굴었고, 눈물을 흘리며 동혁의 발밑에 머리를 내밀었다. Y국 귀족인 대니얼은 데릴사위인 동혁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주다정이라는 경제채널의 미녀 진행자는 동혁의 신발 밑창을 핥았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예상이 모두 틀렸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지금 이 상황은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동혁이,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아? 네놈이 감히 대니얼 씨와 그의 파트너를 이렇게 대하다니. 아주 인생 끝장을 보려고 이러는 거야?” 정신을 차린 류성중은 눈앞이 캄캄했다. 그는 동혁이 미쳐 날뛴다고 생각하고 자신까지 때릴까 봐 겁이 나 멀찌감치 서 있다가 화를 내며 다가와 동혁을 꾸짖었다. “이 사장님, 골스 재단과 완전히 적이 되려고 이러십니까?” “어서 빨리 대니얼 씨를 일으켜 세우지 않고 뭐 하고 계세요?” 오늘 밤 연회를 계획한 의료공단의 왕근식 등도 모두 이번 사태에 휘말린 것을 후회하며 잇달아 동혁에게 한 마디씩 했다. “시끄러워요.” 동혁은 잔소리하는 사람들을 쳐다보지
“진 회장, 아무래도 당신 남편 장례 치를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네.” 주다정은 동혁이 비명에 죽는 순간을 마치 본 것처럼 말했다. 세화는 그녀의 말을 듣고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변했고,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만해!” 대니얼은 날카로운 음성으로 주다정이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막으며 차가운 두 눈으로 동혁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이 미천한 H국 인간 놈, 네놈이 해리슨 영사님을 모욕한 것만으로도 넌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을 범한 거야.” “이 일이 해리슨 영사님에게 전해지기 전에 내가 그를 위해 먼저 나서야겠군.” 말을 하며 대니얼은 자신 뒤에 있는 경호원들에게 강하게 손짓을 했다. “저 미천한 H국 인간 놈이 우리 영사님과 Y국을 모욕했어. 먼저 저놈의 팔다리를 부러뜨려 본떼를 좀 보여줘.” 10명의 경호원이 동혁을 노려보았다. 아까 전에 동혁이 경호원들에게 전해준 두려움은 동혁이 한 무례한 말과 함께 이미 완전히 사라졌고 오히려 그들에게 끝없는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해리슨 영사님은 전쟁터에 있을 때 우리의 오랜 상사였어. 동시에 우리 Y국의 희망이신 분이지. 어느 누구도 그분을 모욕할 수는 없어.” “이 H국 인간 놈, 죽여주마.” 한 경호원의 분노 가득한 음성과 함께 다른 9명의 경호원이 주저하지 않고 동혁에게 달려들었다. “동혁 씨, 도망가.” 세화는 비명을 지르며 동혁을 잡아당겼지만 동혁은 이미 몸을 돌려 세화의 앞을 가로막았다. 10명의 늑대 같은 경호원들을 상대로 동혁은 뜻밖에도 물러서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격했다. “턱!” 그는 번개같이 손을 뻗어 가장 가까이 다가온 경호원이 휘두른 주먹을 움켜쥐고는 조금 힘을 주었다. 전쟁터에 나갔을 때 팔이 통나무처럼 굵고 힘이 강했던 에이스 경호원도 동혁의 손에서는 병아리처럼 허약하기만 했다. “으아.” 팔의 뼈가 부러지며 처절한 비명 소리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고통에 몸이 굳어버린 순간 동혁의 발길질에 맞아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퍽!
H국에 있는 Y국의 주재기관 중 최고위급 대사관 밑으로 영사관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다. H국에는 Y국 영사관이 모두 몇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N도에 있었다. ‘영사관 하나하나가 바로 Y국 전체를 대표해.’ ‘그런데 이동혁이 지금 그런 영사에게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하다니. 이게 정말 미친 소리가 아니면 뭐야?’ “이런 쓸모없는 놈, 지금 현직 Y국 영사가 어떤 분인지 알고 하는 소리야? Y국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외교관으로 국외전장에도 가본 적이 있는 분이야.” “그런 분에게 네놈이 감히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하다니. 네놈이 정말 죽는 게 뭔지 알고 싶어서 그래?” 류성중이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는 동혁 때문에 미칠 것은 심정이었다. ‘이 자식이 이 정도로 생각이 없는 놈인 줄 알았다면,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오늘 연회에 이놈을 참석시키지 않았을 거야.’ ‘지금 동혁이, 이놈이 한 말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해리슨 영사 귀에 들어가 가라도 하는 날에는 어떤 풍파가 일어날지 불 보듯 뻔한 일이야.’ ‘만약 이 일이 외교 갈등으로라도 번지면 오늘 밤 연회에서 공무원으로서 가장 직급이 높은 난 상상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게 될 거야.’ ‘해리슨 영사에게 해명하기 위해 내 공무원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몰라.’ “너 정신병 있는 거 맞지? 그래서 사실 넌 Y국 영사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류성중은 최대한 이 일을 대충 얼버무리려고 화를 내고 다그치며 동혁을 얌전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동혁의 다음 말은 그의 두 눈에서 불을 뿜게 만들며 동혁을 산채로 찢어 죽이고 싶게 만들었다. “아뇨, 알고 있는데요. 현 Y국 영사는 해리슨이라는 사람으로 겉으로는 강한척하지만 실제로는 연약한 쓸모없는 인간이잖아요.” 동혁은 차분하게 계속 말했다. “전 그 해리슨이 지금 H시에 있는 줄은 알고 있어요. 이렇게 공교롭게 그 사람에게 와서 내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할 줄은 몰랐지만요.” 연회장에 오는 길에
한겨울의 서릿발처럼 이가 덜덜 떨릴 정도의 차가운 목소리로 대니얼이 이를 갈며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온몸이 오싹하다고 느꼈다. ‘대니얼 씨가 이번에 정말 화가 단단히 났나 보네.’ “쫙!” 주다정이 갑자기 와인 한 병을 집어 들어 나오더니 동혁에게 세게 퍼부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게 만들었다.. “이 미천한 데릴사위 놈. 대니얼 씨가 살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데 감히 헛소리를 지껄여?”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대니얼 씨에게 아주 크게 혼날 테니까.” 주다정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다정 씨,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우리 남편이 언제 다정 씨에게 뭐라 한적 있어요?” 세화는 화가 난 채로 재빨리 냅킨을 동혁에게 건네주었다. 주다정은 팔짱을 끼고 거만한 표정으로 세화를 바라보았다. “사리분간도 못하는 여자 같으니라고, 뜻밖에 저런 쓸모없는 인간에게 자기 몸을 버리고 싶어 하다니. 이런 사람이 대니얼 씨의 침대에서 잠자리를 해도 그건 대니얼 씨의 고귀한 신분에 누가 될 뿐이야.” “당신은 지금 저 쓸모없는 인간을 신경 쓸 게 아니라 대니얼 씨의 화를 어떻게 풀지나 걱정해.” 주다정은 어떻게든 대니얼이 세화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하려고 계속적으로 세화를 비하했다. “당신 말이면 다인 줄 알아요?” 세화는 주다정을 가리키며 화를 냈다. 세화의 성품과 교양은 그녀 자신을 추잡하고 더러운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주다정처럼 굴 수 없게 했다. “여보, 흥분하지 마.” 동혁은 담담히 냅킨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기다려봐. 저 막돼먹은 X같은 여자를 내 앞에 무릎 꿇려서 내 발에 뿌린 술을 조금씩 핥게 할 테니까.” 세화는 동혁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그가 이미 주다정에게 화가 아주 많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 ‘동혁 씨는 원래 상대가 아무리 싫어도 그저 손바닥으로 뺨을 때려서 혼냈었는데?’ ‘뜻밖에 지금 그런 식으로 저 여자를 혼낸다고?’ “너 같은 쓸모없는 인간이, 나를?” 주다정은 시큰둥하
“진 회장님, 자고로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당신 남편이 나와 골스 재단을 무시하며 도발한 이상, 이 정도 내 요구는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대니얼은 경호원이 10명이나 있어서 믿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그는 냉소를 머금고 무심한 듯 말했다. “물론, 요구를 거절해도 상관없어요.” “그렇다면 난 당신과 당신 남편이 내 요구를 거절한 결과를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니까.” 이 말을 하고 그는 손을 내저었다. “처벅!” 그의 뒤에 있던 10명의 경호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세화는 경호원들이 낀 선글라스에서 자신과 동혁을 향한 열 줄기 야수 같은 시선을 느꼈다. 미세한 살기가 그들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역시 전쟁터에 나가서 피를 본 노병들다웠다. 그들 특유의 살기로 인해 앞에 서있는 세화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창백해졌을 뿐만 아니라 연회장 안의 모든 사람들이 긴장하여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모두들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연회장의 분위기는 극도로 무거워졌고 사람들은 처음으로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느꼈다. ‘앞으로 대니얼 씨의 눈밖에 나면 아주 큰일이 나겠어.’ 연회장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의 같은 생각을 했다. “여보, 겁낼 거 없어.” 바로 그때 동혁이 갑자기 일어나 자연스럽게 세화의 앞을 막아서자 살기가 차단되었다. 이상하게도 경호원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포스러운 살기가 동혁을 거치면서 마치 먼지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10명의 경호원들이 동혁을 주시하자 더욱 강한 살기가 동혁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폭풍 같은 살기에도 동혁은 여전히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그 순간 경호원들 마치 거대한 블랙홀을 마주한 것 같았다. 그들의 모든 살기가 그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당신들 죽고 싶나요?” 바로 그때 동혁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경호원들을 바라보았다. “윽.
“진 회장님, 당신의 저 쓸모없는 남편은 이제 끝이야.” 주다정의 목소리는 득의양양하며 독기가 가득했다. 대니얼은 동혁을 보고 비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동혁에게 두 번이나 뺨을 맞은 일로 복수를 고민하다가, 특별히 사람을 소개받아 이 열 사람을 자신의 경호원으로 고용했다. “헉.” 주다정의 말에 사람들은 놀라 한번에 숨을 들이마시는 듯한 소리를 냈다. ‘경호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대단해 보이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열 명이나 오다니.’ 사람들은 순간 동혁이 뼈가 부러지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대니얼의 발밑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면서 모두 고소하다고 생각했다. 세화는 마음속에서 점점 두려움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녀는 동혁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설득했다. “동혁 씨, 저 대니얼이라는 사람하고 맞서지 말아. 괜히 화풀이를 당할 필요는 없잖아. 우리 방법을 생각해서 어떻게든 부드럽게 넘어가자.” “걱정 마. 내가 절대 동혁 씨를 무릎 꿇리지 않을 거니까. 기껏해야 돈으로 조금 보상해 주면 그만 일거야.” 세화는 동혁의 성격이 강하지만 때로는 마음 약한 구석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혁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일어나서 대신 사과했다. “대니얼 씨, 제 남편이 저 때문에 아까 괜한 실수를 한 거 같네요.” “어떻게 하면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 주시겠어요?”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건 좀 지나치니, 다른 방식으로 사과를 대신할게요.” 세화가 저자세로 나오자 대니얼은 웃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두 눈으로 세화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는데, 세화는 마음이 불안해지며 상대방이 무슨 부당한 요구를 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니얼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냉랭하게 말했다. “만약 진 회장님이 제 요구를 들어준다면, 쓸모없는 남편에 대한 회장님의 헌신적인 노력을 생각해 지난 모든 무례한 일들을 묻지 않고 관대하게 용서하죠.” 세화는 마음속에서 더욱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요구가 뭔지 말
류성중은 자신의 말에도 동혁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시 세화를 노려보았다. “세화야, 쓸모없는 네 남편 놈이 아직도 뭘 모르는구나. 그리고 너는 또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빨리 네 남편이 대니얼 씨에게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해.” “대니얼 씨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혼내줄지 각오해.” 류성중의 말에 분노한 세화의 하얀 얼굴이 더 차갑게 변했다. ‘저 사람이 정말 내 친외삼촌 맞아? 어떻게 조카의 기분은 전혀 신경 쓰지도 않지?’ ‘내 남편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니얼, 저 사람에게 무릎을 꿇게 하라니?’ ‘단지 저 외국인이 Y국의 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러는 거야?’ 세화는 너무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바로 그때 동혁이 그녀의 손을 힘껏 잡았다. “여보, 별것도 아닌 두 사람 때문에 이렇게 화낼 필요 없어. 그냥 동네의 개가 짖는다고 생각해.” “난 오히려 오늘 누가 날 사과하게 만들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은데?” 동혁은 세화를 끌어당겨 앉혀 뜨거운 물 한 잔을 따라주고, 자신도 한 잔을 따른 다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연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마치 공기처럼 그저 안 보이는 사람 취급하며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동혁의 모습을 본 류성중은 화가 나 표정이 구겨졌다. ‘지금 동혁이, 저놈은 상황이 어떤지 이해를 못 하는 건가?’ ‘여기서 가장 신분이 미천하고 지위도 가장 낮은 놈이 감히 대니얼 씨를 도발해?’ ‘정말로 죽고 싶어서 저러는 거야?’ “대니얼 씨, 저 부부가 정말 예의가 없네요. 대니얼 씨와 골스 재단을 완전 무시하고 있어요.” 대니얼 곁에 있던 주다정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녀의 관심은 동혁이 아니라 줄곧 세화에게 쏠려 있었다. 세화와 동혁이 대니얼을 이렇게 화나게 하는 것을 보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도리어 기뻐했다. 그녀는 세화가 외모, 신분, 지위에서 자신보다 몇 단계나 높은 위치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많이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