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의 명령으로 판도정과 그의 부하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병사들은 이 화물차뿐만 아니라 나머지 다른 몇 대의 화물차 안에도 있었다. 명령을 받은 그들은 모두 차에서 뛰어내렸다. 다른 판도정의 몇 십 명의 부하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모두 체포되었다. 이 연구소 기기들을 호송하기 위해 H시 군부 장비 연구소에서 한 소대의 병사를 파견했다. 대장은 동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고 드립니다. 톨게이트에서 군부의 물자를 노린 깡패들을 모두 일망타진했습니다.” [알겠습니다. H시 경찰로 넘겨 사건처리를 진행시키세요.] “예!” 곧이어 판도정 등은 팀을 이끌고 달려온 조동래에게 넘겨졌다. H시경찰서로 가는 길에 이미 완전히 놀란 판도정은 이 일의 배후가 나호연임을 순순히 자백했다. 30분 후. H시물류그룹의 사장인 나호연. H시 물류업을 오랫동안 지배해 오던 사람이 체포되었다. 한마디로 대어가 잡혔다. 그러자 그 밑의 작은 새우들도 꼼짝 할 수 없었다. 이 일을 눈 갚아주고, 고속도로 감시를 도왔던 공무원들도 모두 한 그물에 잡혀 체포됐다. 이렇게 H시물류그룹, H시 물류업에 기생해 살던 좀벌레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뿌리 뽑혔다. 반면에 나호연은 내연녀 집에 있다 비교적 조용히 체포되었다. 거기다 3대 가문 모두 오늘 밤 작전에는 아무 이상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밤 3대 가문의 가주들은 염려 없이 달콤하게 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 일찍. 천정윤은 아침을 먹다가 생각난 김에 확인을 했는데, 나호연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일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재빨리 사람을 시켜 H시물류그룹과 항난그룹의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H시물류그룹에 간 사람들에게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그러나 항난그룹 쪽에서는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항난그룹의 연구소가 이미 밤새 준비되었습니다.] [주변 CCTV를 확인한 결과 어젯밤 새벽 4시가 넘어 40여 대의 대형 화물차 도착해 밤새 기기들을 하역
퍽! 천우민은 또다시 허자인의 얼굴을 발로 찼다. “너희들에게 기회를 줄 테니, 오전 내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국현이 가진 기술을 나에게 가져와!” ‘항난그룹에 연구소를 세웠으니, 조국현이 보유한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약품을 실험하는 게 틀림없어.’ 천우민은 항남그룹이 순조롭게 성장하는 것을 결코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 항난그룹. ‘N도경제연합회의 봉쇄 지시는 우리 회장님께서 해결하셨어.’ ‘거기에 하룻밤 사이에 연구실도 준비되었고.’ 항난그룹의 모든 직원들은 현 상황에 고무되어 의욕이 넘쳤다. 수소야는 밤새 바쁘게 일하다 마침내 좀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마이크로정밀공사 사람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어왔다. [수 사장님, 항난그룹에서 구입한 여기 기기들은 언제든지 발송할 수 있습니다. 그룹에서 언제쯤 사람을 보내 잔금을 치르실 건가요?] 전화가 연결되자 마현수가 웃으며 말했다. 어제 대충 얼버무리며 거만하게 나왔던 태도와는 정반대였다. 수소야는 냉정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연구소는 이미 준비가 완료돼서요. 더 이상 기기가 필요하지 않을 거 같네요.” [네? 하룻밤 사이에 연구소를 다 준비했다고요?] 마현수는 놀란 눈으로 멍해졌다. 마이크로정밀공사는 방금 항난그룹에서 다른 경로로 연구소 기기를 구입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더 이상 항난그룹의 목을 졸라 압박을 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제 다시 전화를 해, 협력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고 했다. 몇백억에 달하는 거액의 주문인만큼 그들은 여전히 이 돈을 벌고 싶었고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N도경제연합회의 봉쇄 지시에 관해서는 자신들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도 있었다. ‘항난그룹이 정말로 하룻밤 사이에 연구소를 다 준비했다고?’ ‘말도 안 돼!’ [수 사장님, 농담이시죠?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연구소를 만들었다는 건가요?] 마현수는 수소야의 말을 농담으로 생각하며 물었다. “그럼 믿든지 말든지 그쪽에서 알아서 하시고요.” 수
동혁은 방금 전 회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어젯밤에도 그는 줄곧 항난그룹에 머물렀다. 그사이 세화가 동혁에게 전화를 걸어 왜 집에 안 오냐고 물었다. 동혁은 자신이 항난그룹에서 처리할 일이 있어서 잠시 집에 돌아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세화는 그저 동혁이 이전 기자회견의 일로 항난그룹에 남아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마이크로정밀공사가 우리를 고소하겠다는데요?” 수소야는 화를 내며 방금 전의 통화내용을 다시 말했다. 듣고 난 동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심석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30분도 안 되어 마이크로정밀공사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수 사장님, 죄송합니다. 계약금 40억 원 제가 다시 돌려드릴게요. 그러면 되잖아요. 우리 다 사업하는 사람들인데 굳이 왜 이렇게 일을 극단적으로만 처리하시나요?] 전화로 울부짖는 마현수의 목소리를 듣고 수소야는 깜빡 놀랐다. “대체 왜 그러시는데요? 전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그녀는 머릿속이 의아함으로 가득 찼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수 사장님, 농담하지 마세요. 제가 항난그룹을 고소하겠다고 하자마자 바로 기업감사부에서 나와 저희 회사를 조사하고 있다고요. 분명 수 사장님께서 이렇게 하신 거잖아요.] 마현수는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수 사장님, 이렇게 큰 힘이 있으신 줄 몰랐어요. 제발 너그럽고 큰 아량을 베풀어서 한 번만 봐주세요.] 수소야는 무의식적으로 동혁을 쳐다보았다. ‘회장님의 방금 그 전화 때문이 틀림없어.’ “봐줄 거 없어요. 그 사람에게 전해요. 계약금 40억 원에 위약금을 한 푼도 빼지 말고 보내라고요.” 동혁은 가만히 앉아 담담하게 말했다. ‘이렇게 약속을 쉽게 뒤집는 회사는 그냥 봐줄 수 없지.’ 곧바로 마이크로정밀공사는 240억을 항난그룹 계좌로 송금했다. 이렇게 기기 구입과 관련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때 조국현이 찾아왔다. “수 사장님
“귀가 먹었어? 여보라고 불렀잖아!” 장윤정은 동혁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다시 조국현을 쳐다보았다. “조국현, 역시 쓸모없는 인간, 자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 회장님에게 너 대신 말해달라고 한 거냐?” “내가 말하는 거 잘 들어. 난 자인을 여보라고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린 남편과 아내가 해야 할 일도 모두 다 했어.” “맞지, 여보?” 그녀는 고개를 돌려 애교스럽게 허자인을 바라보았다. “우리 여보 말이 맞아.” 허자인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국현 네가 윤정이와 하지 않은 일도 어젯밤에 호텔에서 우린 했었지. 하하, 끝내줬어!” 조국현은 화가 나 주먹을 불끈 쥐었고 바로 달려들어 허자인의 희죽거리는 눈을 한대 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꾹 참았다. 그는 허자인이 술수를 많이 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상대방이 고의로 자신을 도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지금 손을 쓰면 상대방에게 약점을 잡힐 수도 있어.’ “어젯밤에 같이 호텔에서 묵었어?” 동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장윤정, 당신은 국현 씨와 아직 이혼하지 않았잖아요?” “그게 뭐 어때서? 회장이면 회장이지, 왜 저 쓸모없는 직원을 대신해 우리 일에 상관하는 건데?” 장윤정은 쳐다보지도 않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바로 어젯밤, 죽립로에 있는 그 메리어트 호텔, 우리 거기서 잤다. 왜?” “이혼 안 했으니 뭐? 내가 바람피웠다고 고발이라도 하게? 아니면 다른 남자와 불법 동거했다고 고발하려고?” “조국현, 네가 내게 버림받은 것이 세상에 알려져도 상관없다면 가서 고발해.”“설사 그런다고 내가 너를 무서워할 거 같아?” 장윤정은 아주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명성과 체면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만일 조국현이 일을 크게 벌이게 되면 결국 창피한 것은 분명 그가 될 것이다. “됐어,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빨리 본론부터 말하자고.” 허자인은 손을 내저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조국현, 다시 한
천우민의 뒤로 몇 명의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하나같이 온몸에서 거친 기세를 풍기고 눈빛이 음험하고 매서웠다. 모두 천씨 가문의 고수급 경호원들이다. “도련님, 부하들에게 손 좀 보라고 하시죠. 조국현, 이 쓸모없는 인간은 좀 맞아야 후회하고 정신을 차릴 것 같습니다. 할 수 없이 좀 강하게 대해야 할 거 같아요.” 천우민이 도착하자 허자인은 기세등등해졌다. 그는 동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놈이 바로 항난그룹의 회장 백항서입니다. 싸움도 아주 잘하던데요? 명설이와 전 평소에 킥복싱을 연마했는데 저 놈의 적수가 못됐어요.” 허자인은 동혁을 꺼려하며 마음에 걸렸었다. 그래서 천우민에게 그 가문의 고수급 경호원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국현을 상대하기 위해서 돈을 써서 깡패 몇 명을 고용하기만 하면 됐었다. “저놈이 백항서라고?” 천우민은 동혁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그는 바로 천천히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점점 더 큰 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는 웃음이 이미 포복절도 수준이 되었다. “하하, 진씨 가문의 그 바보 사위잖아!” 큰 웃음소리가 뚝 그쳤고 천우민은 동혁을 노려보며 냉소했다. “지금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정체가 베일에 쌓여있던 백항서가 바로 너 같은 놈이라고?” “뭐라고요? 저 놈이 진씨 가문의 그 바보 사위라고요?” 허자인과 장윤정도 어리둥절해하며 큰소리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여태껏 죽은 백항남에게 친형제가 있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고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서 놀랐는데 알고 보니 가짜였다?” “저 놈이 진씨 가문의 그 쓸모없는 데릴사위라는 거잖아. 길가의 거지들도 깔보는 그런 인간. 그러니 이 전신을 사칭하고 백항서 행세를 하는 거 외에 다른 무슨 재주가 있겠어?” 허자인과 장윤정은 아무 거리낌 없이 크게 비웃었다. 아까전만 해도 동혁의 회장이라는 신분이 그들을 좀 꺼려하게 했었다. 하지만 동혁이 쓸모없는 데릴사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의 꺼림칙함이
“조국현, 이제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어. 도련님에게 미움을 샀으니 누구도 너를 구해주지 못해.” 장윤정이 고소해하며 말했다. 조국현이 분해하며 말했다. “장윤정, 단 하루를 같이 살아도 부부의 정이라는 게 있어. 난 네게 미안한 짓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왜 내게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3대 가문에 특허 기술을 바치지 않아서 내가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게 한 것이 미안한 일이 아니면 뭔데?” 화가 난 장윤정은 매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에 조국현은 이를 악물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장윤정에 대한 마지막 감정마저 모두 사라졌다. “백 회장, 후회돼지?” 허자인은 어젯밤 자신의 뺨을 때린 동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어. 먼저 스스로 네 뺨을 백 대 때리면 내가 도련님에게 부탁해서 네가 덜 아프게 맞게 해 줄게” 동혁은 동정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들어와서 잡아도 됩니다.” 이 말을 마치고 동혁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 쓸모없는 놈이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렸나 보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지금 누가 네놈을 구해 줄 줄 알고?” 허자인은 냉소했다. 그동안 경호원 몇 명은 이미 동혁과 조국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무릎이나 꿇어!” 두 경호원이 각각 두 사람의 뺨을 때렸다. “짝”하는 소리와 함께 조국현은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동혁을 향해 휘두른 손바닥은. 아직 뺨에 닿지도 않았는데 이미 동혁에게 잡혔다. “뽀각!”동혁이 어떻게 힘을 썼는지 제대로 볼 틈도 없이 경호원의 팔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혁은 이어서 발을 들어 이 경호원을 “퍽” 하고 날려버렸다. 이 잔인한 광경을 본 허자인과 장윤정, 두 사람은 모두 놀라 순간 멍해졌다. “저 쓸모없는 놈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하다니. 저 놈보다 더 쓸모없는 것들. 멍하니 뭐 하고 있어.
“군법위반간통죄? 누가 군법을 어겼다고 이러십니까?” 허자인과 장윤정은 너무 어이없어했다. ‘불륜이나 불법 동거 이런 거라면 모두 말이라도 되지.’ ‘그래봤자 큰 잘못도 아니고.’ ‘하지만 군법을 어겼다니? 우리가 그런 큰 잘못을 범할 이유가 없잖아.’ 허자인은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고개를 돌려 매섭게 조국현을 노려보았다. “조국현, 이 개X식, 네가 신분을 조작해서 우리를 모함했구나?” “분명 이동혁, 저 남이나 사칭하고 다니는 놈이 네게 방법을 알려준 것이 틀림없어.” 허자인의 생각은 동혁이 조국현을 가르쳐 군부의 신분을 거짓으로 꾸몄다는 것이었다. 장윤정도 앙칼지게 말했다. “대장님, 조국현은 군부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분명 여러분들을 속인 걸 거예요.” “우리가 확인해 본 결과 조국현 중령은 저희 군부에서 근무하는 사람 맞습니다.” 선두에 선 대장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조국현, 저 사람은 이미 2년 전에 다리가 부러져서 못 쓴다고요. 저렇게 쓸모없는 인간이 어떻게 군부의 사람이겠어요. 틀림없이 위조 신분증을 구해서 사용했을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 다시 한번 자세히 검토해 보세요.” 장윤정이 소리쳤다. “천박한 년, 네 그 썩은 눈을 크게 뜨고 잘 봐. 내가 네가 그렇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쓸모없는 인간인지 아닌지!” 조국현은 순간 녹색 신분증을 꺼내더니 장윤정의 얼굴을 향해 내던졌다. 장윤정은 따끔거리는 얼굴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신분증을 덥석 움켜쥐고 살펴보았다. 허자인 역시 달려들어 함께 보았다. [성명: 조국현.] [소속: H시 군부 장비 연구소.] [직무: 선임연구원(부소장).] [직급: 전문기술중령.] 조국현의 과학 연구 수준은 매우 높았으며 발표된 학술 논문은 이미 군부 내에서도 특정 조건에 도달했다.그래서 장비 연구소에 특별 채용되는 순간 즉시 부소장 수준의 연구원이 되었다. 직급은 전문기술중령, 아주 멀쩡한 신분증이었다. 허자인과 장윤정은
허자인과 하명설 등이 한 짓을 동혁은 항남을 대신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허자인 등이든 천우민과 그의 배후의 3대 가문 모두 내일 응당한 처벌을 받게 해 주지.’ 장윤정이 울부짖는 와중에 그녀와 허자인은 끌려나갔다. “이동혁, 이번엔 네가 이겼어. 하지만 두고 보자!” 천우민은 동혁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고개를 돌려 가버렸다. 그는 지금 매우 기분이 불쾌했다. 조국현이 가지고 있던 특허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동혁에 의해 그냥 물러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천우민의 마음을 더욱 놀라게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동혁, 이 사기꾼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조국현을 군부의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천우민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순간 앞서 3대 가문이 동혁의 또 다른 신분인 백항서와 몇 차례 맞붙었을 때 동혁이 보여준 군부와의 밀접한 관계가 떠올랐다. 이 생각을 한 그는 마음속에서 더욱 놀랐다. “어딜 가? 내가 언제 가도 된다고 했나?” 천우민이 막 몸을 돌려 떠나려 하자 동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천우민은 다시 몸을 돌려 화를 내며 말했다. “그래서 네가 뭘 어떻게 할 건데?” “원래 내일 형제 기일에 너와 3대 가문 모두를 함께 처리할 예정이었어.” 동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네가 먼저 나를 건드렸으니 먼저 너부터 손 좀 봐주고 3대 가문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는 게 좋겠지?” 전에 동혁은 노무식을 시켜 3대 가문에게 말을 전했다. 조 씨 가문의 온 가족은 백항남의 기일 전에 에메랄드정원을 떠나야 한다. 또한 3대 가문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상복을 입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3대 가문의 행보를 보면 그들은 분명히 이런 동혁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처음에는 왕조희를 이용하고 그 다음에는 N도경제연합회를 이용하여 소란을 일으켰다. 그렇게 점점 심하게 항난그룹을 압박했다. 동혁은 그래서 오늘 천우민을 이용해 3대 가문 모두에게 경고할 셈이다. “이동혁, 네
명성호텔에 온 동혁과 세화는 직원들의 환대를 받았다.지난번 동혁이 이곳에서 Y국 영사 해리슨을 무릎 꿇고 사과하게 만든 일은 직원들에게 깊은 이미지를 남겼기 때문이었다.“안녕하세요, 사해상공회의소의 대표에게 통보해 주세요. 세방그룹 회장 진세화 씨가 회견을 요청한다고요...”세화는 친절하게 직접 접대하러 온 매니저에게 말했다.이번에 온 사해상공회의소는 대표단은 모두 명성호텔에 묵고 있다. 그리고 호텔 한 층의 객실을 전부 사용하는데 이는 그들의 재력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그럼 진 회장님, 잠시만 기다리세요.”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인 매니저는 곧바로 통보했다.현재 9층의 회의실.사해상공회의소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이상하게 조용한 분위기였다.“무슨 소리야, 사정우가 체포되다니?”“H시 경찰국 사람들이 뭘 잘못 먹은 거야? 감히 사정우를 잡아넣다니!”비쩍 마른 남자가 펄쩍 뛰면서 화를 냈다.이 사람은 바로 이번 사해상공회의소가 세화를 살펴보기 위해서 H시에 파견한 대표단의 강경영 대표였다.지금 강경영은 섬뜩할 정도로 굳은 표정이었다.사정우는 이번에 대표단의 일원으로, 자신과 함께 H시로 관광 겸해서 왔다.이런 명문가의 도련님은 당연히 대표단에 얌전하게 붙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H시에 도착하자마자 불량배 친구 한 패거리를 불러서 나가서 한밤중까지 쏘다녔다.강경영은 관여하지 않았고 감히 관여할 수도 없었다.사정우의 부친 사세준은 명문 사씨 가문의 중요 인물일 뿐만 아니라, 사해상공회의소의 이사이자 강경영의 자신의 은인이기 때문이다.강경영 자신은 기껏해야 사세준이 기르는 애완견에 불과할 뿐이다.그래서 사정우가 H시에서 누군가와 추돌사고가 났는데, 사고를 낸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 반면에 오히려 사정우가 잡혀서 유치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강경영은 당연히 크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도대체 누가 사정우 도련님을 잡아넣으라고 명령했는지 당장 조사하고 손을 써!”강경영은 사해상공회의소의 직원에게 지시했다.명령을
“너, 너 공직자가 감히 나를 때려! 너 이건 폭력적인 법 집행이야. 너 죽고 싶어?”나태성은 얼굴을 감싼 채 뒤로 물러선 나태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조동래를 바라보았다.“네 따귀를 때린 건 그나마 가벼운 거야.”무표정한 표정의 조동래가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이 사람은 법 집행에 저항하면서 공직자를 위협했기에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 데다가 계속 행패를 부렸기에 체포합니다.”구경하던 시민들이 다시 한번 환호성을 질렀다.아무도 조동래가 뺨을 때린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저 나태성이란 놈은 정말 사람을 열받게 만들었는데. 조 국장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때린 거야.’‘졸졸 따라다니면서 앞잡이 노릇이나 하는 졸개 놈이 감히 노골적으로 한 시의 경찰국장을 위협했지.’ ‘만약 저 놈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면, H시정부의 위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어?’‘조동래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명문 사씨 가문을 앞세운 나태성의 따귀를 때렸어.’사정우의 표정은 극도로 어두웠다.그는 마침내 상대방이 명문 사씨 가문을 들먹여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더 이상 눈치 없이 굴다가는, 조동래의 성질대로라면 나도 뺨을 맞게 될 거야.’이렇게 생각한 사정우는 계속 상대방과 다투려는 생각을 접었다.그러나 두 명의 경찰관에게 끌려가게 되자, 사정우는 참지 못하고 동혁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이동혁, 맞지, 오늘 이 일은 내가 기억해 두겠어.”“이게 끝이라고 생각해? 허허, 나는 곧바로 나와.”“그렇게 되면 너와 네 마누라에게 하나씩 천천히 이 빚을 계산하겠어...”사정우가 소란을 부리는 모습을 웃으면서 보고 있던 동혁이, 갑자기 앞으로 나가더니 맥라렌의 차문을 맹렬하게 걷어찼다.쾅!큰 소리와 함께 차문 전체가 납작해졌다.“이 이가 놈, 너 지금 죽고 싶다는 거지!”분노가 극에 달한 사정우는 핏줄이 솟을 정도로 분노의 고함을 쳤다.‘내가 이 부서진 차를 다시 운전할 생각은 없다 해도, 이동혁은 모든 사람들의 면전
경찰의 현장 답사는 아주 빨리 진행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과가 나왔다.조동래가 부하들에게 그 자리에서 교통사고 경위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하는 걸 본 사정우는 웃음을 터뜨렸다.‘보아하니 조동래는 적당히 구슬려서 화해시킬 생각도 없고, 바로 이 자리에서 내게 줄을 대려는 모양이네.’“이동혁, 내가 말했지, H시라는 이 촌동네에서는 아무도 감히 나 사정우를 건드리지 못해.”“이제 너는 내가 즐길 수 있게 순순히 네 마누라를 내놓으면 돼!”사정우는 아주 유쾌한 듯이 웃으면서도 탐욕스러운 눈빛은 줄곧 세화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벌써부터 조금 뒤에 어떻게 이 여자를 시중들게 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동혁이 생각을 바꾸는 것 따위는 전혀 두려워하지도 않았다.동혁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지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감사해야 해. 사람들만 없다면 너는 정말 비참하게 박살이 났을 거야.”‘어쨌든 지금 내가 H시의 시장이니까 영향이 미치지 않게 주의해야 해.’‘아직은 내 신원을 아는 사람이 얼마 없지만,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겠지.’바로 이 점 때문에 동혁은 사정우에게 손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조동래에게 전화할 필요도 없었다. 동혁 자신이 해결하면 될 것이다.“계속 주둥이를 놀려봐.”조동래가 다가오는 걸 보면서도 사정우는 킥킥대며 물었다.“조 국장, 교통사고 경위서는 나왔겠지요?”“이 추돌사고에서 우리 진회장님의 백 퍼센트 과실인가요?”조동래가 천천히 말했다.“사 선생님, 그렇습니다. 우리가 현장 조사를 해 본 결과 당신이 악의적으로 차선을 바꾸고 경쟁을 부추겨서 일어난 추돌사고입니다.”“그래서 이번 사고는 당신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동시에 당신은 난폭운전과 무고한 시민에게 행패를 부린 공갈 협박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나중에 경찰에서 당신에게 상응하는 처벌을 내릴 것입니다...”조동래의 싸늘한 말에 사정우의 표정이 굳어졌다.“조 국장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그 말을 들
눈썹을 찌푸린 사정우가 도발적인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좋아, 그럼 지켜보도록 해!”그렇게 말해도 사정우는 여전히 전혀 동혁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비록 상대방이 돈도 백도 없는 서민은 아니지만 항난그룹 회장이라도 그들 명문가 사람들의 앞에서는 여전히 상대조차 될 수 없었다. 사정우는 설사 H시의 시장이 직접 오더라도, 명문가 사씨 가문의 신분만 앞세운다면, 감히 자신에게 손을 댈 수 없다고 믿었다.“이동혁, 내가 지금 너한테 자유롭게 실력을 발휘할 공간을 줄게. 네 마음대로 전화해서 인맥을 찾아봐. H시 시장을 데리고 와도 괜찮아.”“하지만 감히 나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내가 추잡한 말을 앞세웠다고 탓하지 마. 너는 돈을 배상해야 할 뿐만 아니라, 네 아내를 내 놀잇감으로 바쳐야 해!”“나중에 내가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딴소리하지 마...”사정우는 세화의 아름다운 몸매를 쳐다보면서 사악한 표정으로 말했다.이 말을 들은 세화는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더 이상 사정우 따위의 질 낮은 인간과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동혁을 잡아끌었다.“동혁 씨, 차라리 우리가 손해를 보고 말자...”사정우를 흘겨보던 동혁의 눈빛에서 번뜩이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여보, 날 믿어, 여긴 H시야.”세화를 달랜 동혁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조 서장님, 저하고 제 아내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자가 졸개들을 동원해서 길을 막고 있는데, 서장님이 직접 오셔서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전화를 받은 사람은 바로 H시 경찰국장 조동래였다.동혁의 말을 듣자, 조동래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감히 어떤 놈이 졸개들을 보내서 시장님을 막다니, 살고 싶지 않은 거야!’벌떡 일어난 조동래는 놀란 간부들을 내팽개친 채 회의실에서 뛰쳐나갔다.삐용삐용-10분도 안 되어 사이렌 소리를 울이면서 경찰차들이 잇달아 도착했다.조동래가 직접 온 데다가 H시 경찰국에서 교통업무를 담당하는 도영수 부국장도 함께 왔다.세화는 깜짝 놀랐다.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사정우는 뻔뻔하게도 동혁의 면전에서 네 아내를 데리고 놀 테니 아내를 내게 넘기라고 요구했다.구경하던 시민들조차도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느낄 지경이었다.“더러운 돈 좀 있다고 아주 대단하네 정말. 저 진 회장은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지만 너처럼 그렇게 멋대로 날뛰지는 않아!”“어디서 더러운 외지인이 굴러 들어와서 설치는 거야? H시가 네가 멋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야!”“벼락부자 티나 내면서 정말 무법천지인 줄 아는 모양인데...”격분한 사람들이 잇달아 사정우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그러나 사정우는 이런 비난하는 시민들은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오히려 씩 웃으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너희 같은 교활한 인간들은 말을 좀 아껴야 해.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짖는다고 내 털끝이라도 건드릴 수 있겠어?”“너희 같은 버러지들이 내 신분을 안다 해도 전혀 두렵지 않아. 성도의 명문 가문 사씨 가문은 들어본 적이 있을 거야.” “아이고, 여기 H시가 코딱지 만한 촌동네라는 걸 잊어버렸네. 너희 촌것들은 사씨 가문을 들어본 적도 없겠지.”“아무튼 이 작은 H시에서는 아무도 감히 나 사정우를 건드리지 못해. 나 사정우의 일에 관여하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지!”“못 믿겠으면 좀 봐 봐. 사건이 터지고 나서 지금까지 수습하러 온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사정우는 입만 열면 교활한 인간에 촌것들이라며 사람들을 멸시했다.뼛속까지 드러나는 사정우의 우월 의식에 시민들은 치를 떨어야 했다.그러나 사정우의 말은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섬뜩하게 만들었다.‘확실히 사정우의 말대로 이 일대는 H시의 번화가야.’‘평소라면 관련 부서의 출동 속도는 엄청 빨라. 주차 위반 차량도 3분도 채 안 되어 딱지를 붙이지. 하물며 교통사고는 더 말할 것도 없어.’‘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경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설마 이 사정우의 말대로 H시 경찰조차도 개입을 꺼리는 걸
‘이렇게 변태 같은 인간의 손에 떨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세화는 그런 모욕을 절대 참을 수 없었다!“자기야, 어떻게 사고가 난 거야? 괜찮아?”바로 그때, 세화에게 천상의 목소리처럼 동혁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고개를 들어 보면서 그 순간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동혁은 얼른 세화를 붙잡았다. “여보, 왜 울어? 다친 거야?”방금 전에 세화의 전화를 받았던 동혁은 명성호텔로 차를 몰고 달려왔다.호텔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도로가 꽉 막혀 있었다. 차에서 내려 교통을 정리할 수 있을까 싶어 보던 중에 사람들 틈에 갇힌 세화를 발견한 것이다.“다친 거 아니야, 동혁씨, 진짜 잘 왔어.”바로 마음이 놓이면서 자신감이 치솟은 세화는 동혁을 꽉 붙잡은 채 사정우를 가리켰다.“저 사람이 나를 뒤에서 오게하고는 일부러 사고를 일으켰어. 게다가 나한테 돈을 갚으라고 했어!”“저 사람이 이동혁이야, 진씨 가문의 쓸모없는 데릴사위지.”“쓸모가 없다니? 그건 다 옛날 얘기지. 최근에 항난그룹의 회장이자 원화투자회사의 회장이라는 게 드러났잖아...”구경하는 사람들도 동혁을 알아봤고 세화의 남편이 왔다는 걸 알았다.세화를 도와주러 온 사람이 있자 구경하던 사람들도 용기가 생겼다.“이 회장님, 이 사람들이 고의로 당신 아내를 괴롭히고 있어요. 아내 분이 차를 잘 몰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계속 경적을 울리며 따라가더니, 결국 고의로 차를 중간에 끼우고 추돌사고룰 일으켰어요!”“저 자들 보스는 사람 목숨을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너무 지나쳐요!”“또 진세화 씨에게 잠자리를 강요했어요. 권력과 힘을 믿고 완전히 무법천지로 행동했어요...”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동혁은 상황을 금세 파악했다.동혁의 얼굴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사정우를을 쳐다보았다. “네가 사정우야? 일부러 내 아내의 차를 끼워서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니, 정말 엄청 설치네.”“너는 운이 좋았어. 다행히 내 아
“보상만 하면 이 고물 차를 다시 몰고 가도 돼.” 대충 내뱉듯이 사정우가 말했다. ‘내가 아까 했던 말은 소 귀에 경읽기였어?’ ‘분명히 이 인간은 자기가 고의로 추돌사고를 냈다고 인정했으면서도, 뻔뻔하게 내게 보상을 요구한다고?’ 세화는 치미는 분노에 헛웃음이 나오면서 더 이상 말로 따질 필요도 못 느꼈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세화가 말했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네요. 누가 보상해야 하는지 경찰이 판단하게 해야겠네요.” 하지만 그 순간 나태성이 다가와서 세화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리고 다른 차에서 내린 양아치들도 슬그머니 세화를 둘러싸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휴대폰 돌려줘!” 세화는 화를 내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백주 대낮에 대놓고 핸드폰을 강탈할 줄은 몰랐기에 마음속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시민들도 이 광경을 보고 기가 찼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사정우의 패거리는 척 봐도 대단한 기세라서 평범한 시민들은 감히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세화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감히 나설 수가 없었다. “예쁜 아가씨, 그렇게 긴장할 거 없잖아. 핸드폰이 얼마나 하겠어. 보상이 끝나면 돌려줄게.” 사정우는 세화의 휴대폰을 가지고 놀면서 심지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기도 했다. 마치 세화의 체취이라도 배어 있는 것처럼. “웃기지 마. 당신이 내게 배상해야 돼.” 세화는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자 사정우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쁜 아가씨,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당연한 이치를 모르진 않겠지?” 사정우의 시선이 세화의 몸을 훑어내렸다. “배상할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아도 돼. 나하고 같이 자면 돼.” “흠... 오늘이 내가 이 H시에 온 첫날이니까, 특별히 이렇게 하자.” “내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 당신은 내 여자가 되
세화는 조금 놀랐다. H시의 사씨 가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곳의 이씨 가문과 같은 급의 명문 가문이다. 사정우의 아버지가 사해상공회의소의 이사라는 점도 놀라웠다. 그리고 마침 자신도 사해상공회의소 가입을 앞두고 있기에, 참으로 기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같은 편이 될 텐데 다투지는 않겠지.’ 하지만 세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세화가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관계 때문에 방금 있었던 일을 묵인할 생각은 없었다. “방금 일부러 차선을 바꿔 제 차를 들이받게 한 거 맞죠?” 세화는 사정우의 의도를 꿰뚫어 보았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근하려는 수작이라는 걸 알아차린 세화는 손을 내밀지도 않은 채, 표면적으로는 예의를 지키며 정중하게 질문했다. 사정우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좋아요. 난 그저 당신하고 좀 친해지고 싶었을 뿐이에요.” “사고를 계기로 인연이 시작된다면 낭만적인 드라마 같지 않겠어요?” “낭만적인 드라마?” 세화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그건 낭만이 아니라 교통 법규를 무시하는 행위이고,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예요.” “당신의 행동에서 차가움과 무감각만 느꼈을 뿐이에요. 전혀 낭만적이지 않아요.” 세화의 단호한 태도에도 사정우는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이 세화를 바라봤다. 그동안 자신이 만난 여자들은 아무리 새침한 척해도 그의 신분과 재력을 알고 나면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화는 달랐다.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로 자신을 가르치려고 들었다. ‘이런 여자를 정복하는 건 아주 성취감이 있겠어.’ 사정우는 웃으며 말했다. “너무 진지하시군요. 사람 목숨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래요?” “난 예전에도 사람을 친 적이 있어요. 하지만 보상하고 합의서 받으면 끝나는 일이지.” “물론 돈을 거절하고 내 목숨을 요구하는 바보
“내려! 내려!” 차 안에 앉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세화를 본 꼬붕 놈이 차문을 더욱 세게 발로 찼다. 마세라티의 차문에는 순식간에 움푹 패인 자국들이 생겼다. 그 와중에도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미동도 없이 서서 이 모든 사태를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세화는 가슴이 아팠다. 이 차는 바로 동혁이 자신에게 사 준 첫 번째 차였기 때문이다.세화가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행인들이 많이 몰려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이 무리들이 험악해 보이긴 하지만,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거야.’ 그래서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그만 발로 차, 내리면 되잖아.” 나태성이라는 꼬붕놈은 코웃음을 치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세화는 천천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 “와, 이 여자 진짜 예쁜데? 게다가 2억 원이 넘는 마세라티를 타고 다니는 거 보니 완전 재벌이네.” “이 여자도 몰라? 혜성그룹의 회장, 진세화 씨야! 교통사고를 난 사람이 이 여자일 줄은 몰랐네...” 세화는 H시에서 너무나도 유명했다. 최근에는 주다정이 퍼뜨린 유언비어로 인해서, 더욱 사람들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 덕분인지, 세화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역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함부로 못하겠지.’‘혜성그룹 회장 진세화라고?’ 그 순간, 무표정이던 선글라스 남자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쳤다. “당신 운전을 어떻게 한 거야? 운전할 줄 모르면 아예 도로에 나오질 말든가! 김 여사가 바로 당신 같은 여자 운전자를 두고 하는 말이야.” 거들먹거리면서 세화에게 쏘아붙인 나태성은 세화가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였다. “말해봐. 어떻게 책임질 거야?” “아니, 애초에 당신들이 불법으로 차선 변경을 해서 사고가 난 건데, 내가 왜 책임져야 해?” 세화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내 실수로 일어난 사고였다면, 주저하지 않고 피해를 보상했을